화엄경 사구게 절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아니한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절 집 안 일에 익숙해 갈 무렵인데, 여름안거를 마치고 만행을 떠나던 어느 날, 노스님과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가을 들판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어느 절에 찾아가는데, 갑자기 뱀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아나다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고 똬리를 틀고는 혀를 내밀며 우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뱀을 보기만 하면 웬일인지 소름이 돋고 불식간에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나 그때, 노스님은 조용히 합장을 하고, “나무대방광불화엄경”을 세 번 염하고 마지막으로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라고 아주 진지하게 외우셨다. 그 모습이 참으로 경건하고 병든 자식을 돌보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아 보여서 나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