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로 출가하다
관음사에 나를 보냈던 사촌 형님에게 출가의 뜻을 비치자 해인사에 계시는 성철 스님 앞으로 소개장을 써주었다. 당시 절집엔 ‘북 전강 남 성철’ 북쪽에서는 전강 스님이, 남쪽에서는 성철 스님이 가장 훌륭하다는 뜻이었다.
해인사에 도착한 나는 일주문 앞에서 사촌 형님이 써준 소개장을 찢어 버렸다.
‘내가 취직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생사를 타파할 도를 구하러 가는데 소개장을 들고 가다니, 에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서였다.
친구들의 주소를 적어 놓은 수첩도 버리고 해인사 일주문을 들어섰다.
해인사에서의 행자 생활이 시작되었다. 행자는 견습생이나 마찬가지다. 집에서 입고 온 옷을 그대로 입고 생활한다고 해서 속복 행자라고 불린다. 물론 머리도 덥수룩한 그대로다. 절에 들어간다고 대번 머리 깎고 승복을 입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가 될 수 있을지 가만히 지켜보는 기간이 행자 시절이다.
나는 속복 행자인 채 스님들이 시키는 대로 설거지와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냈다. 당시 해인사 주지 스님은 지월 스님이었고 지금 송광사 방장이신 보성 스님이 교무의 소임을 보았다. 행자인 주제에 내가 얼마나 건방지게 굴었는지 교무 스님이 “이래 건방진 행자 필요 없다. 가라 가” 라고 말하곤 했다.
보름쯤 지나자 해인사에서 가장 큰 스님이 성철 스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성철 스님은 백일 동안을 참선을 주제로 한 법문을 하여 불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큰스님으로 존경을 받고 계셨다.
스님은 오전 열 시에 해인사 법당에 대적광전에 나와 예불을 드렸는데 스님이 지나가시면 행자들은 설거지를 하다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서로 보려고 난리들이었다. 나는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고 뭐 별 게 있나’ 하면서 마음속으로 건방을 떨었다.
도를 구하러 왔으니 이기든 지든 일단은 제일 센 사람과 붙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던 날, 구정물이 잔뜩 묻은 작업복바지에 머리는 덥수룩한 채 백련암으로 올라갔다. 당시 스님은 해인사 산내 암자인 백련암에 머물고 계셨다.
“방장 스님 뵈러 왔습니다.”
성철 스님을 모시는 시자스님이 방장 스님과 약속이 되어있느냐고 물었다 승복도 못 얻어 입은 속복 행자가 건방지게 방장 스님을 뵈러 왔냐는 투였다. 군데로 치면 이등병도 못된 새까만 훈련병이 육군 참모총장을 만나겠다고 온 셈이다. 내가 “방장 스님한테 가서 여쭤보고 안 된다고 하면 모르지만 왜 스님이 여기서 되고 안 되고를 결정합니까?” 라고 대꾸하면서 좀 시끄러워졌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억센 진주 사투리가 흘러나왔다.
“뭐꼬? 와 이리 시끄럽노, 니 뭐 하는 놈이고?”
나는 인사할 생각도 없이 눈을 똑바로 뜬 채 방장 스님을 쳐다보았다. 첫 대면에 눈도 깜빡거리지 않은 채 째려보았더니 노장님이 물으셨다.
“이노무 자슥 봐라, 니 와 그리 빤히 쳐다 보노?”
누군가와 처음 대면했을 때 눈싸움에서지지 않으려고 했던 학창시절의 습관으로 빤히 꼬나보는 나에게 성철 스님이 “이노무 자슥, 니 눈병 낫나?” 하며 웃으셨다.
옆에 있던 시자스님이 절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행자인데 방장스님 뵙겠다고 와 가지고 이 그래, 우째 왔노?”
엎드려 삼배를 올리고 여쭈었다.
“무명번뇌를 자를 보검을 구하러 왔습니다.”
행자의 유치한 질문이 가소로웠는지 노장이 씩 웃었다.
“야 임마, 니 그리 말하는 거 어서 배웠노? 선방에 한 십 년 다닌 수좌도 그런 건방진 소리는 안 한데이. 어린 노무 자슥이 벌써부터, 니 몇 살이고?”
나는 그때 스무살이었다.
“어린놈이 건방만 잔뜩 들어 가지고, 그래 이놈아 절엔 우짠다고 왔노?”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부터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절에 있으면서 겪였던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노장님은 관음사에서 출가하기로 마음먹었던 이야기를 듣자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즐거워하셨다.
“그래 법당에서 울고 그랬단 말이재.”
학교 다닐 때 싸움박질 한 얘기를 할 때는 꼬치꼬치 물으셨다.
“그래 가지고 니가 뚤팼나?”
“애들이 때로 몰리면 아까 스님을 쳐다보듯이 눈으로 확 째려보고 기를 팍 죽였죠.”
성철 스님은 생전에 어린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셨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때문이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스님이 보시기에 스무 살의 나도 순수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스님과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 덧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점심 설거지를 끝내고 올라갔는데 저녁 공양을 지을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 내 보니까 니는 전생에 불법과 인연이 있는 놈이다. 내려가서 스님들 말씀 잘 듣고 행자 생활 잘 하고 있그래이.”
백련암에서 쏜살같이 내려와 밥을 하려고 부엌으로 들어가는데 원주 스님이 쫓아왔다. 아마 내가 내려온 지 십 분도 채 안 되어서였을 것이다.
“보따리 싸. 노장님이 백련암으로 너를 데려 오라신다.”
성질 급한 노장님다운 일이었다.
출처 : 명진 스님 / 스님은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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