普雨 보우
虛應堂集 허응당집
禪心詩思 爭雄不已 선(禪)의 마음과 시(詩)의 생각이 영웅을 다툼
詩魔禪將兩爭雄 시(詩)의 마귀와 선(禪)의 장군이 서로 영웅을 다투어
愁殺天君日夜攻 밤낮으로 공격하여 마음을 근심스럽게 하네.
將必遜魔興筆陣 장군이 마귀에게 지면 붓의 기세가 일고
魔應輸將倒邪鋒 마귀가 장군에게 지면 삿된 칼날 꺾이네.
難兄難弟魔情快 마귀의 기운이 발랄하니 난형난제요
無弱無强將氣濃 장군의 기상이 왕성하니 강약이 없네.
安得二讎俱打了 어떻게 하면 두 원수를 다 물리쳐
大平家國任從容 태평한 나라에서 조용하게 지내볼꼬.
睡餘聞鍾卽事 잠을 자고 난 뒤 종소리를 듣고
睡餘閑捲箔 잠을 자고 나서 한가로이 발을 걷으니
雨後轉靑山 비 온 뒤라 산 더욱 푸르구나.
何處雲邊寺 구름 곁 어디가 절인지?
齋鍾杳靄間 아득한 안개 속에 들려오는 종소리.
秋樓述懷 가을의 누각에서 회포를 적다
每向虛樓坐省躬 매양 빈 누각에 앉아 스스로를 성찰하노니
日來秋興起無窮 나날이 가을 흥취가 일어 무한하구나.
露凝黃菊花含玉 이슬 맺힌 황국은 옥을 머금었고
楓雜靑松碧鬪紅 단풍과 소나무는 푸름과 붉음을 서로 다투네.
風勁自隤新罅栗 드센 바람 잦아드니 밤송이 벌기 시작하고
霜寒多寂舊鳴蟲 서리 차가와지니 울어대던 벌레 소리 조용하구나.
只堪獨許伊消息 나만이 이 소식을 받아들이나니
難與師資暗洩通 스승 제자 사이에서도 통하기가 어렵도다.
霽夜秋窓坐詠 비 개인 가을 밤 창문가에 앉아 읊다
月窓細影簷前樹 달빛 비치는 창문에 처마 앞의 나무는 가는 그림자 드리우고
靜夜寒聲霽後灘 고요한 밤에 비 그친 여울물은 차가운 소리 울리네.
欲喚小師同此樂 어린 스님 불러다가 이 즐거움 함께 하고 싶건만
恐將情見起邪觀 감정이 일렁이어 잘못된 생각 일어날까 두렵네.
山中卽事 산중에 살면서 어느 날
僧房雖本靜 중의 방은 본래 고요한 것이지만
入夏轉淸虛 여름이 되니 더욱 맑고 비었네.
愛獨朋從散 고독을 좋아하니 벗들도 흩어지고
嫌喧客任疎 시끄러움 싫어하니 나그네도 드물다.
蟬聲山雨後 산에 비 오고 나니 매미 소리 들리고
松籟曉風餘 새벽 바람 불고 나니 솔바람 소리 들리네.
永日東窓下 동창 아래 긴 하루 동안
無心讀古書 무심으로 옛 서적을 읽노라.
偶吟 우연히 읊다
花發山紅面 꽃이 피니 산의 얼굴 붉어졌고
風柔鳥亂心 바람이 부드러우니 새가 마음을 어지럽게 하네.
多年求捉漢 오래토록 바라고 집착하던 놈
今日忽生擒 오늘에야 홀연히 산채로 붙잡았네.
病裏懷故山 병 중에 옛 산을 그리워함
應世慙非分 세상에 맞춰 사는 것 나의 분수 아니니
悠悠思萬般 유유히 만 가지로 생각해 보네.
每緣衰病睡 매양 병으로 쇠약하여 잠에 빠지어
常夢舊靑山 옛날 지내던 청산을 꿈꾸기만 하네.
白髮催禪鬢 흰 머리는 참선하는 귀밑머리 재촉하고
紅腰損道顔 붉은 허리는 도 닦는 얼굴을 쇠약하게 만드네.
何時肩破衲 어느 때에 어깨에 헤진 누더기 걸치고
歸去賦雲閑 돌아가 한가롭게 구름을 두고 읊어 볼까?
楓嶽懷歸客 풍악산에 돌아가고픈 나그네
煙霞一懶僧 안개와 놀 속의 한 게으른 중.
岩松身共瘦 몸은 바위와 소나무와 함께 여위어 가고
江霧病俱興 병은 강안개와 함께 일어나네.
愛日心方赤 사랑하는 날에는 마음이 붉어지지만
哀時哭未懲 슬퍼할 때에는 통곡이 멈추지 않네.
故山菴下路 옛 산 암자 아래로 난 길
奚定卜重登 다시 한번 오르길 기약할 수 있을지.
遣興 흥겨움
宇宙逍遙孰我當 누가 나처럼 우주를 소요할 것인가?
尋常隨意任彷徉 늘 기분대로 자유롭게 배회하노라.
石床坐臥衣裳冷 돌 침상에 앉고 누우니 옷이 차갑고
花塢歸來杖屨香 꽃 언덕에 돌아오니 신발이 향기롭구나.
局上自知閑日月 바둑판 위에서야 세월이 한가로움을 알겠거니와
人間那識擾興亡 인간 세상 흥망의 요란함을 어찌 알리오?
淸高更有常齋後 늘 하는 공양 뒤의 맑고 높은 기운
一抹茶煙染夕陽 한 줄기 차 연기가 석양을 물들이네.
有客來問 山中之樂 以偈示之
어떤 나그네가 와서 산중의 즐거움을 묻기에 게송으로 보여주다
客問山中樂幾多 산중의 즐거움이 어떠한지 나그네가 묻기에
山僧無地口吧吧 시끄러운 말이 없는 곳이라 대답했지.
遊南池上行西磵 남쪽 연못으로 가보기도 하고 서쪽 골짜기로 다니기도 하는데
無禁無爭興可誇 아무도 말리거나 다투지 않으니 흥겹기만 하구나.
靑山高且大 청산은 높고 크며
澗水深且淸 계곡물은 깊고 맑다네.
有客來問法 어떤 나그네가 와서 법을 묻고는
俯仰笑聾盲 굽어보고 우러러 보며 귀머거리 맹인이라 비웃네.
淸平雜詠 청평사(淸平寺)1)에서
1) 청평사(淸平寺) : 강원도 춘천시 청평산에 있는 절. 이 시의 작자인 허응당은 과
거 제도 중에 승과를 두어 불교계의 행정을 담당하는 승려를 선발하고, 승려에
게 신분증 제도를 마련하여 국가가 공인하는 승려를 대대적으로 모집하는 등의
불교 진흥책을 펴다가 잠시 청평사 주지로 있은 다음 다시 서울의 봉은사 주지
로 옮겼다.
淸平山上淸平寺 청평산 위의 청평사
殿古僧殘情可哀 집도 낡고 스님도 줄어 애처롭구나.
雲中孤塔沒靑草 구름 속의 외로운 탑은 푸른 풀에 묻히었고
松下兩碑生綠苔 소나무 아래 두 비석엔 푸른 이끼 생겨났네.
當時眞樂問何在 당시의 참 즐거움 어디에 있는지?
此日淸風吹面來 오늘은 맑은 바람 얼굴에 불어오네.
獨立天壇望復望 천단(天壇)2)에 홀로 서서 보고 또 보니
一輪明月上崔嵬 둥그렇게 밝은 달이 우뚝한 봉우리에 솟네.
2) 천단(天壇) :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壇). 이것은 원래 도교적 성격의 장치인
데, 조선시대에 도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불교나 민속과 습합된 상
태로 존재하였다.
獨坐金文誦兩篇 홀로 앉아 두 편의 경전 외우고 있으니
夜深山月照床邊 밤 깊은 산 달이 침상 곁을 비추네.
蝶夢自消雙眼碧 잠은 절로 달아나고 두 눈이 푸르니
客情非動一心圓 들뜬 감정은 움직이지 않고 한 마음이 원만하네.
王喬駕鶴神猶淺 왕교(王喬)3)가 학을 탔다지만 정신이 오히려 얕고
禦寇乘風道亦顚 바람을 타고 적을 막았다는 것 또한 도가 전도된 것이라.
爭似懶菴無伎量 어찌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나만 같으랴.
渴泉飢粟臥雲眠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구름 아래 누워 자네.
3) 왕교(王喬) :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신선. 흔히 왕자교(王子喬)라 한다. 학을 타
고 다녔다 한다.
獨坐高堂萬首詩 높은 집에 홀로 앉아 만 수의 시를 즐기나니
閑吟不覺到朝㬢 한가로이 읊다 보면 어느 사이 아침 햇살 비치네.
燈生煖蕚鍾鳴曉 등불에는 따뜻한 꽃받침이 생기고 종은 새벽을 알리는데
雪作寒梅日上時 해가 솟으면 매화는 눈에 덮여 차갑네.
淡粥沸鐺香滿竈 맑은 죽이 솥에 끓으니 향기가 부엌에 가득하고
凍烏移樹影翻枝 추위에 언 까마귀 나무 사이로 그림자 번득인다.
致知格物功成客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여 공을 이룬 사람.
雲裏如吾更有誰 구름 속에 나와 같은 이 또 누가 있을지?
辭宗來舊隱 글 잘 쓰던 사람이 옛날 은거지로 와서
無事可驚神 일 없이 지내니 가히 정신이 경이롭구나.
金殿參西佛 불전에선 아미타불 참배하고
天壇禮北辰 천단(天壇)에선 북극성에 예배하네.
眼將溪共碧 눈은 시냇물과 함께 푸르고
道與日俱新 도는 해와 함께 새로워지네.
岩畔和烟臥 바위 곁 안개 속에 누우니
都緣聖德春 모두가 거룩한 봄 덕분이로다.
林間了無客 숲 사이에는 나그네 전혀 없고
幽興獨恢恢 깊은 흥만 홀로 넓고 크구나.
每浴龍潭水 매일 용담수(龍潭水)에 목욕하고
常風盤石臺 늘 반석대(盤石臺)에 바람 쐬노라.
吟松山雨至 소나무를 읊고 있으니 산 비가 내리고
香谷木蓮開 향기로운 계곡에는 목련이 피었네.
石逕歸來慣 돌아가는 돌 오솔길은 이미 익숙하고
芒鞋半綠苔 짚신에는 온통 이끼가 붙었네.
古寺無隣竝 옛 절에는 이웃도 없어
林間獨賞春 숲 사이에서 홀로 봄을 완상하노라.
花開仙洞霧 꽃 피니 신선같은 골짜기에 안개가 끼고
草軟佛峯烟 부처님 같은 봉우리에 구름 끼어 풀줄기 부드럽구나.
西澗聞琴盡 서쪽 골짜기에는 거문고 소리 들려오고
南池照影頻 남쪽 못에는 그림자 자주 비치네.
年光眞可樂 계절의 빛깔이 참으로 즐거우니
幽興自通神 그윽한 흥이 일어 절로 정신이 통하네.
飛瀑輕雷動 날아 떨어지는 폭포는 가벼운 우뢰소리요
寒松午日陰 차가운 소나무는 한낮에도 서늘하네.
臺中無限味 대(臺) 가운데 무한한 맛이 있으니
都付一高吟 이 모두를 시로 지어 큰 소리로 읊어보네.
恐踏藥苗嫌鹿下 약초에 흙 묻을라 발걸음 조심하고
忌渾淸澗掃蝦蟆 맑은 산골물 흐려질라 개구리를 쫓아내네.
蒼苔小逕無人到 푸른 이끼 낀 작은 오솔길에 오는 사람 없으니
轉覺淸平與世賖 청평사가 세상에서 멀다는 걸 알겠구나.
五更雲淨月色冷 날 샐 무렵 구름 깨끗하고 달빛은 차가운데
一杖雙屨登天壇 지팡이 하나 신발 둘로 천단에 올랐네.
禮象三三祝復祝 삼배의 예를 거듭 올려 기원하고 또 기원하니
不知空翠沾衣冠 푸른 풀에 의관이 젖는 줄도 몰랐네.
自住淸平樂自多 스스로 청평사에 사니 즐거움도 저절로 많아
終年無譽亦無呵 일년 내내 명예도 없고 꾸짖음도 없도다.
有時閑向西川畔 때로는 한가롭게 서쪽 시냇가로 향하다가
快脫雲衫掛碧蘿 장삼을 훌훌 벗어 푸른 겨우살이 줄기에 걸어두네.
自憐盤石白玲瓏 넓직한 바위가 희고 영롱하여 아름답고
下有淸潭如鑑空 아래로는 맑은 못이 빈 거울같구나.
齋餘曳杖獨遊賞 점심 먹고 지팡이 끌며 홀로 다니다 보니
古逕落花深自紅 옛 길에 떨어진 꽃이 절로 붉디 붉구나.
淸平何事好 청평사 무슨 일로 좋은가?
最好遠京城 서울이 멀다는 것. 가장 좋아라.
嶺有雲舒卷 고개에는 구름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고
門無客送迎 문에는 오가는 손님이 없도다.
神凝消蟻夢 정신이 모이니 헛된 꿈이 사라지고
心靜聽鸞笙 마음이 고요하니 난(鸞)새 소리 들려 오네.
此是忘機處 이것이 기틀을 잊은 곳이니
虛堂月自盈 빈 집에 달빛 절로 가득하구나.
仙洞深深瑞日長 선선 같은 골짜기 깊고 깊어 상서로운 해가 길고
梨花數樹濕雲香 몇 그루 배꽃은 구름에 젖어 향기롭구나.
子規似識幽人意 자규는 숨어 사는 이 마음 알기라도 하는 듯
叫過繁枝雪滿場 가지 사이로 울며 지나가니 눈이 마당에 가득하네.
幸住希夷古道場 다행히도 고요한 옛 도량에 사노라니
風泉崖谷稱吾望 바람과 샘과 언덕과 계곡이 내 마음에 꼭 맞네.
藥畦忌客開深壑 나그네를 꺼리는 약초밭은 깊은 골짜기에 펼쳤고
花卉憐蜂種夕陽 석양 속에 심겨진 꽃은 벌을 사랑하네.
蘿月照心資慧力 달빛은 마음을 비추어 지혜의 힘을 길러주고
松風吹面動詩腸 솔바람은 얼굴에 불어 시심(詩心)을 움직이네.
何知造物虛靈境 어떻게 알까, 조물주의 텅 비고 신령스런 경지가
巧引疎慵直洞房 서툴고 게으른 사람 교묘하게 깊은 방으로 인도하는 것을.
天能敎我入杉蘿 하늘이 나를 깊은 산 속으로 들어오게 하니
泉石榮華與世賖 샘과 돌과 번성한 꽃이 세상과 멀리 떨어졌네.
深碧坐臨西澗水 앉아서 바라보니 서쪽 산골물은 짙푸른 빛이요
淺紅行見後山花 지나가며 보니 뒷산의 꽃은 옅은 홍색이라.
茶爐備火收松子 차 끓이는 화로에 솔방울로 불을 지펴
丹竈添羞采蕨芽 캐 온 고사리 싹으로 반찬을 만드네.
更有十分堪畫處 정말로 그림같은 곳이 또 있으니
南峯舒卷紫烟霞 붉은 안개 모였다 흩어지는 남쪽 봉우리라네.
性癖耽泉石 자연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築臺西澗涯 서쪽 계곡 물가에 대(臺)를 쌓았네.
高閑常獨臥 높고 한가로운 곳에 항상 홀로 누우니
幽興每自怡 그윽한 흥이 일어 늘 절로 기쁘네.
檀樹風搖處 바람이 박달나무 흔드는 곳
松梢月掛時 소나무 가지에 달이 걸린 때.
洞深誰識此 골짜기 깊어 누가 이를 알리오?
林下翠禽知 숲 아래 푸른 새는 알고 있겠지.
眞樂文殊古院西 참으로 즐겁구나 문수보살 옛 절의 서쪽
有臺蕭爽景難題 상쾌한 대(臺)가 있어 형용하기 어려워라.
琴彈香桂風搖葉 바람이 잎을 흔드니 향기로운 계수나무 거문고를 타고
玉振淸湍雨打溪 비가 시냇물에 떨어지니 옥이 맑은 여울물에 튕기는 듯.
磵石白銀誰甲乙 은처럼 하얀 계곡의 돌 어느 것이 더 좋은고?
岩花紅錦鬪高低 바위 틈 붉은 비단 같은 꽃 높고 낮게 피었네.
鶴邊松月收棋局 학이 앉은 소나무에 달이 걸려 세상 풍경이 아니며
隔巚子規枝上啼 저만치 산봉우리를 두고 두견새는 가지 위에서 우네.
逍遙遣寂 고요함 속에서 거닐며
春深花織地 봄이 깊으니 땅이 꽃으로 뒤덮이는데
臺訪佛峯腰 불봉(佛峯)의 허리에 있는 대(臺)를 찾아가네.
空碧浮雲卷 푸른 허공에 떠 있는 구름 걷히고
山晴宿霧消 날 맑은 산엔 밤새 있던 안개가 사라진다.
九天遙底處 구만 리 하늘은 저 멀리 낮은 곳에 있고
三島杳難招 세 섬은 아득하여 다가가기 어렵구나.
一遺枯禪寂 메마른 선(禪)의 고요함을 한번 버리고 나니
悠悠興自饒 유유한 흥이 절로 넉넉해지네.
息菴觀靜 식암(息菴)에서 고요함을 관(觀)하다
庵在仙區奧 암자가 신선의 땅처럼 깊은 곳에 있으니
軒臨古澗圍 집이 예스런 산골물이 집을 휘감아 도네.
山花紅錦障 산에 핀 붉은 비단 같은 꽃 주위를 둘러싸고
岩桂碧羅幃 푸른 비단같은 계수나무는 휘장이 되네.
隣遠僧來少 이웃이 멀어 찾아오는 스님도 적고
雲深俗到稀 구름이 깊어 세속 사람도 잘 오질 않네.
寥寥無事坐 고요하고 고요한데 일 없이 앉아
觀靜露天機 고요함을 관(觀)하니 자연의 비밀이 드러나네.
夜聞童子洗鐺聲 有省
밤중에 동자가 주전자 씻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淸香一炷坐高堂 맑은 향 피어오르는 높은 집에 앉았다가
忽破多生夢一場 홀연히 여러 생(生)의 한바탕 꿈을 깨트렸네.
人靜古廚明月夜 달 밝은 밤 인기척 없는 부엌에서
汲泉童子洗茶鐺 동자는 샘물 길어 차 주전자를 씻는구나.
見山茶花 야생차 꽃을 보고
齋餘仙洞訪雲中 점심 공양 뒤 구름 속 신선같은 골짜기 찾아갔더니
鶴老人歸菴自空 학은 늙고 사람은 돌아가 암자 절로 텅 비었네.
唯有山茶花萬朶 오직 야생차 꽃만이 만 송이나 피어서
倚岩依舊笑春風 바위에 기대어 봄 바람에 웃고 있네.
書興 흥을 적다
曹溪佩印愧多譏 선가(禪家)에서 벼슬한 것4) 부끄러워라
移住淸平已一期 청평사(淸平寺)로 옮겨 지낸 지 이미 일 년이구나.
萬朶靑松眞益友 수많은 가지 드리운 푸른 솔은 참된 벗이요
數床黃卷正明師 책상 위 경전은 정녕 밝은 스승이로다.
4) 작자는 1551년 선종판사(禪宗判事)가 되어 불교를 부흥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臨深履薄當時我 조심조심 살아온 당시의 나
說白言玄此日誰 희다 하고 검다 하는 오늘의 나는 누구인고?
八載是非皆幻夢 팔 년 동안의 시비는 모두가 헛된 꿈이니
都忘禪室臥支頤 모두 잊고 선방에 턱을 괴고 누웠노라.
卽事 즉흥시
乍陰還霽霽還陰 한때 흐렸다 다시 개이고 개였다가 다시 흐리니
天意分明似我心 하늘의 뜻이 분명 내 마음과 비슷하구나.
安得此心能中節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적절하게 절제하여
閑敎造物適晴霪 조물주가 때 맞추어 개었다 비를 내렸다 하게 할까?
雲拖南山雨 구름은 남산의 비를 끌어오고
松傳北壑風 소나무는 북쪽 골짜기의 바람을 전해주네.
欣欣物自樂 만물은 흐뭇하게 스스로 즐거워하는데
飛燕落銜蟲 날아가는 제비는 입에 물었던 벌레를 떨어뜨리네.
臨終偈 임종게
幻人來入幻人鄕 허깨비가 허깨비 마을로 들어와
五十餘年作戲狂 오십 년이 넘도록 미친 짓 하였구나.
弄盡人間榮辱事 인간 영욕의 일을 다 희롱하고서
脫僧傀儡上蒼蒼 중이라는 꼭두각시 벗어버리고 푸른 하늘로 올라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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