靜觀集 정관집(一禪 일선)
話頭鳥 화두새
各各話頭鳥 각각의 화두새가
時時勸話頭 수시로 화두를 권하네.
禪窓終夜臥 참선하는 창문 가에 밤새도록 누워
聞此可無羞 이를 듣고 있으면 부끄럽지 아니하랴!
贈盲聾禪老 맹롱(盲聾) 노선사에게 드림
不聞聞自性 듣지 않으면 자성(自性)을 듣고
無見見眞心 보지 않으면 진심(眞心)을 보네.
心性都忘處 자성과 진심일랑 모두를 잊은 곳에
虛明水月臨 텅 비고 밝은 물과 달을 만나리라.
臨終偈 임종게
三尺吹毛劍 세 척의 취모검
多年北斗藏 여러 해 동안 북두성에 감춰져 있다가
太虛雲散盡 태허(太虛)에 구름 다 흩어지고 나니
始得露鋒鋩 비로소 그 칼날 드러나누나.
不忘記 불망기-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글
世間何有所 이 세상에 가진 게 무엇이 있나?
身外更無餘 몸 밖에는 더 남은 게 없구나.
四大終離散 이 몸마저 다 흩어져 버리고 나면
快如登太虛 태허(太虛)에 오른 듯이 상쾌하리라.
山堂雨後 산 속 집에 비 온 후
雨收南岳捲靑嵐 비 그친 남쪽 산줄기에 푸른 기운 물러가니
山色依然對古菴 산색은 의연하게 옛 암자를 마주하네.
獨坐靜觀心思淨 홀로 앉아 고요히 살펴보니 마음과 생각 맑아지나니
半生肩掛七斤衫 어깨에 일곱 근 장삼 걸치고 반 평생을 살았구나.
夜坐 밤 깊도록 앉아서
風淸月白夜塘寒 바람 맑고 달 밝은데 밤 연못 차가웁고
坐對孤燈意自閒 외로운 등불 마주하니 생각 절로 한가롭네.
一顆靈珠光粲爛 한 알의 신령한 구슬 찬란하게 빛나는데
更於何處問心安 다시 어디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물으리오?
贈俊道人 준(俊) 도인에게 드림
揚眉瞬目非臻妙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껌쩍거린다고 깨치는 것이 아니고
對面熙怡亦未堪 얼굴을 마주하여 희희낙락한다고 될 일도 아니라.
爭似一生無事漢 어찌 일생 동안 일 없는 사나이가 되어서
春秋長臥碧雲菴 일 년 내내 푸른 구름 속의 암자에 누워 지냄만 하리
古寺 오래된 절
客尋蕭寺正春天 봄날에 나그네 스산한 절을 찾아서
煮茗岩前起夕煙 바위 앞에서 차를 끓이니 저녁연기 피어오르네.
古塔隔林人不管 사람들이 내버려 둔 숲 저쪽의 오래된 탑
暮鴉飛入白雲邊 저물녘 까마귀가 흰 구름 곁으로 날아 들어가네.
贈詩僧 시승(詩僧)에게 드림
翫水看山虛送日 물을 즐기고 산을 보며 세월을 허송하고
吟風詠月謾勞神 바람을 읊고 달을 노래하며 정신을 수고롭게 하도다.
豁然悟得西來意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을 활연히 깨닫고 나면
方是名爲出世人 비로소 세상을 벗어난 이라 이름할 수 있으리.
贈盲禪者 맹목적으로 참선하는 이에게 드림
不見色時還見性 색을 보지 않을 때에 도리어 성품을 보고
不聞聲處反聞心 소리를 듣지 않는 곳에서 도리어 마음을 듣도다.
不用肉眼通沙界 육안을 쓰지 않아야 모래알같은 세계와 통하나니
那律佳名播古今 아나율1)의 아름다운 이름이 고금에 퍼져 있네.
1) 아나율 :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 부처님 앞에서 자다가 꾸지람을 들은
후 여러 날을 자지 않고 수행하다 눈이 멀었으나 나중에 천안통(天眼通)을 얻게
되었다.
偶吟 우연히
竹院春風特地寒 대숲 속의 절간에 봄바람조차 싸늘한데
沈吟長坐小欄干 작은 난간에 오래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기네.
沒絃琴上知音少 줄 없는 거문고2) 알아주는 사람 적은데
獨抱梧桐月下彈 홀로 오동나무3) 안고서 달 아래 튕겨 보네.
2) 줄 없는 거문고 : 상식이나 사량분별을 넘어선 불립문자의 세계를 상징한다.
3) 오동나무 : 보통 거문고는 오동나무로 만든다.
贈芝禪客 지(芝) 선객(禪客)에게 드림
優游超物外 세속을 벗어나 유유자적하노니
自在度朝昏 자유롭게 아침 저녁 지내네.
足踏千山月 발은 천 산의 달을 보며 다니고
身隨萬里雲 몸은 만 리의 구름을 따랐네.
本無人我見 본래는 나와 남도 없는데
那有是非門 시비의 문이 어찌 있으리오?
鳥不含花至 새는 꽃을 물고 오지도 않는데
春風空自芬 봄바람만 부질없이 따스하구나.
贈觀禪子 관(觀) 선자(禪子)에게
靜坐南臺上 남쪽 대 위에 고요히 앉아
觀空不是空 공(空)이 공 아님을 관하고 있네.
勿拘聲色外 소리와 빛깔 그 너머에도 구애되지 말지니
寧墮見聞中 어찌 보고 듣는 가운데 떨어지리오?
湛湛秋潭月 고요하고 맑은 가을 연못의 달이여
亭亭雪嶺松 눈 덮인 고개의 우뚝한 소나무로다.
玄關搥擊碎 깊은 관문을 때려 부수고 나면
方得震禪風 비로소 선의 기풍을 떨치리라.
題七佛菴 칠불암(七佛菴)4)
4) 칠불암(七佛菴) : 경상남도 하동군 지리산 쌍계사(雙溪寺)에 부속된 암자.
寺在頭流般若東 두류산 반야봉 동쪽에 절이 있으니
月明金殿影玲瓏 달 밝은 법당 달빛도 영롱하네.
香消瑞靄飛庭榻 향기 녹은 상서로운 안개는 뜰 앞에 날고
夢覺疎鍾落晩風 꿈을 깨고 보니 드문 종소리 저녁 바람 속으로 떨어지네.
靑鶴不來靑鶴洞 푸른 학이 오지 않는 청학동(靑鶴洞)이요
白雲長鎖白雲峯 흰구름에 늘 둘러싸인 백운봉(白雲峯)이로다.
石門遠見雙溪下 석문(石門)에서 멀리 쌍계 5)아래로 보니
秋色依微一望中 희미한 가을빛이 어려 있네.
5) 칠불암 아래 쪽으로 두 줄기 계곡물이 흘러 ‘쌍계’라고 하며, 그 아래 쪽에 쌍계
사가 있다.
行路難 세상 살이의 어려움
早脫紅塵出故關 일찍이 붉은 먼지 벗어나서 고향을 떠나
芒鞋踏破遍名山 짚신 신고 이름난 산들을 두루 다녔네.
昔年秋月隨雲去 예전엔 가을 달 아래 구름 따라 떠났다가
今日春風渡水還 오늘은 봄바람에 물을 건너 돌아왔네.
肉味那知蔬味苦 고기맛을 아는 자가 어찌 나물의 쓴맛을 알며
錦衣誰識衲衣寒 비단 옷을 입는 자가 누더기옷 추운 줄을 누가 알까?
欲歸故園煙霞裏 고향의 안개와 노을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萬里悠悠行路難 만리 길 멀고 멀어 가는 길이 힘겹도다.
贈禪者 참선 수행자에게
出家須是出凡流 출가를 하였다면 평범한 무리에서 벗어나야 하니
一鉢身隨萬事休 몸에는 발우 하나만 가지고 만사를 쉬어야지.
物外煙霞心已契 세상 바깥의 안개와 노을이 마음에 맞으니
人間榮辱意何求 인간세계 영욕에서 무슨 뜻을 구하랴?
悠悠歲月逍遙遣 유유한 세월에 소요자적하며 보내나니
處處山川自在遊 곳곳의 산천에 자유롭게 노닌다네.
欲向語言知自性 말에서 자성(自性)을 알고자 한다면
還如撥火覓浮漚 마치 불을 피우면서 뜬 거품을 찾음과 같으리.
本源自性天眞佛 본원자성(本源自性)이 참된 부처
妙性頭頭本現成 묘한 자성이 사물마다 드러나
靑黃紅白萬般形 청황홍백 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네.
山元默默天元碧 산은 원래 묵묵하고 하늘은 원래 푸르며
水自澄澄月自明 물은 절로 맑고 달은 절로 밝다네.
春到燕來秋便去 봄이 오면 제비 오고 가을이면 다시 가며
夜深人寢曉還惺 밤 깊으면 사람이 자고 새벽이면 다시 깨어나네.
鶴長鳧短天眞體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는 짧은 것이 참된 몸이니
陌上農歌是太平 논두렁에 농부들의 노래가 태평함이로다.
行脚歸故山 행각을 다니다가 원래 산으로 돌아와
髫年早出家 어린 나이에 일찍 출가를 하여
投佛剃鬚髮 불가에 투신하여 머리를 깎았네.
奉律備三衣 계율을 받들어 세 가지 옷6) 갖추었고
行藏唯一鉢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니는 것은 발우 하나뿐이라.
6) 세 가지 옷 : 하는 일의 종류에 따라 입는 옷의 종류가 세 가지가 있다. 대의(大
衣)와 상의(上衣), 중의(中衣).
身隨萬里雲 몸은 만리의 구름을 따르고
足踏千山月 발은 천 산의 달을 밟았지.
撥草訪明師 무명(無明)의 풀을 뽑으려 눈 밝은 스승을 방문하고
尋眞求聖轍 진리를 찾아 성인(聖人)이 갔던 길을 따라갔지.
參禪通祖關 참선은 조사의 관문으로 통하고
學道繼賢哲 도를 배움은 지혜로운 이를 계승하네.
口裏誦千經 입으로는 천 가지 경을 외우지만
囊中無一物 보따리에는 아무 것도 없다네.
遍遊名勝區 좋은 곳을 두루 다녀보다가
歸臥故岩窟 예전에 있던 바위굴로 돌아와 누웠더니
竹院綠陰淸 대숲 속 절간에는 푸른 그늘이 맑고
梅窓疎影沒 매화 핀 창문은 성근 그림자에 묻히네.
淸風吹故園 맑은 바람이 옛 뜰에 불어오고
白日照虛室 밝은 해는 텅빈 방을 비추네.
春谷鳥含花 봄의 골짜기에 새는 꽃을 물었고
秋林猿摘實 가을의 숲에는 원숭이가 열매를 따네.
床寒夜漏長 침상이 차가우니 밤 시간이 길기만 하고
更盡爐香歇 밤이 다하니 화로에 향도 꺼졌구나.
洞府曉雲深 골짜기에 새벽 구름이 깊고
岩扉人跡絶 바위 사이 사립문엔 인적이 끊기었네.
寥寥合性空 텅 빔은 자성의 공함과 합치하고
寂寂契眞滅 고요함은 참된 소멸7)과 들어맞네.
7) 소멸 : 열반과 같은 의미이다.
渴後汲寒泉 목 마르면 차가운 샘물을 길러오고
飢來收凍栗 배고프면 언 밤을 주워오네.
深林歸暮禽 깊은 숲으로 돌아오는 저녁 새
微逕照斜日 떨어지는 석양빛이 작은 오솔길을 비추네.
無物作生涯 살아갈 아무런 물건도 없고
孤燈爲計活 외로운 등불만이 살아갈 계책이라.
白雲誰共遊 흰 구름 속에서 누구와 함께 노닐 것인가?
松月自怡悅 소나무에 걸린 달을 보고 스스로 즐거워하도다.
[출처] 靜觀集 정관집(一禪 일선)|작성자 실론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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