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

淸虛堂集 청허당집(休靜 휴정)

수선님 2023. 8. 13. 12:48

淸虛堂集 청허당집(休靜 휴정)

佛日庵 불일암(佛日庵)1)

深院花紅雨 깊은 절 붉은 꽃비

長林竹翠煙 긴 숲 대나무는 푸른 안개.

白雲凝嶺宿 흰 구름은 고개에 엉기어 잠 자고

靑鶴伴僧眠 푸른 학은 스님과 함께 졸고 있네.

1) 불일암(佛日庵)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리산에 있는 암자. 신라 말

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하였고,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창

하여 수도도량으로 삼은 뒤 불일암이라 하였다.

登天王峰 천왕봉(天王峰)2)에 올라

2) 천왕봉(天王峰) : 지리산의 최고봉. 높이 1915m.

仲秋一陣風 한 바탕 부는 가을 바람에

雲散月輪孤 구름이 흩어지자 달 덩어리 하나.

登高望復望 높이 올라 보고 또 보니

八表元無隅 사방 팔방 펼쳐져 모퉁이가 없구나.

萬國如蟻垤 세상은 개미둑3)과 같아서

混沌無完膚 매끈한 곳 없이 뒤엉켜 있네.

南柯大夢裡 남쪽 가지의 큰 꿈 속에4)

誰是大丈夫 누가 대장부란 말인가.

3) 개미둑 : 개미가 땅에 구멍을 파면서 그 주변에 쌓아놓은 흙더미.

4) 남쪽 가지의 큰 꿈 : 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고사에서 나온 말. 순우분이란 사

람이 자신의 집 남쪽에 있는 느티나무의 가지 아래서 잠시 졸았는데, 어떤 나라

의 벼슬아치가 되어 부귀영화를 20년이나 누리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인간의

부귀영화가 한 편의 꿈에 불과하다는 비유이다.

遊香峰 향로봉(香爐峯)5) 나들이

5) 향로봉(香爐峯) : 묘향산(妙香山)의 봉우리 이름. 높이 1600m. 휴정은 묘향산에

서 수행 생활을 많이 하였으므로, 묘향산과 관련된 시가 많다.

步步又步步 걷고 걷고 또 걷고 걸으니

層崖幾重重 층층의 벼랑이 몇 겹이나 되는지.

白雲生洞壑 흰 구름이 골짝에서 생겨나

忽失香爐峰 문득 향로봉이 어딘지 잃어버렸네.

汲澗燃秋葉 산골물을 길어다가 낙엽을 태워

烹茶一納胸 차를 달여 가슴 속에 한 잔 쏟아넣는다.

夜來嵓下宿 밤이 되어 바위 아래 잠자니

魂也御飛龍 영혼은 용을 타고 하늘을 나네.

明朝俯天下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천하를 내려다보니

萬國列如峰 세상은 봉우리처럼 늘어섰구나.

望鄕 고향을 바라보며

(1)

白雲千里 흰 구름 천 리

萬里明月 만 리 밝은 달.

前庭後庭 앞 뜰 뒷 뜰

惆悵鄕關 슬프구나, 고향이여.

不去洛陽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데

柳色靑靑 버들잎만 푸르고 푸르구나.

(2)

瞻彼白雲 저 흰구름을 쳐다보니

在天之涯 하늘 끝에 떠 있구나.

離家遊子 집을 떠나 돌아다니는 사람

空望咨嗟 부질없이 바라보며 한탄만 하네.

答白雲子 흰구름에게 답하노라

我思我思 나는 생각하네 나는 생각하네,

天之南兮 하늘의 남쪽을.

心之所期 내 마음이 바라는 것,

難與人兮 다른 사람과는 함께하기 어려워라.

白雲白雲 흰 구름만 흰구름만

寫我心兮 내 마음 그대로네.

淸虛歌 맑고 텅빔의 노래

君抱琴兮倚長松 그대 큰 소나무에 기대어 거문고 타니

長松兮不改心 큰 소나무는 마음 변하지 않지.

我長歌兮坐綠水 나 푸른 물가에 앉아 길게 노래하니

綠水兮淸虛心 푸른 물은 맑고 텅 빈 마음이라.

心兮心兮 마음이여, 마음이여!

我與君兮 나 그대와 함께하리.

寄松竹軒主人 송죽헌(松竹軒) 주인에게

初因過客 聞主人之名 再因沙彌 知主人之行也. 吁! 主人營臺榭植松

竹 如遺世節義人也. 臥江山詠風月 依俙晉唐高士也. 上察煙飛 俯觀魚

躍 髣髴格物君子也 鳴琴橫笛 樂而忘生 儼然一太古人也. 吾知主人之

備重德 感興而爲之歌 曰,

처음에는 지나가는 나그네에게서 주인의 이름을 들었었고, 다음에는 사미에

게서 주인의 행실에 대하여 들었다. 아! 주인이 대를 쌓고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으니 마치 세상을 잊고 절개와 의리를 지키며 사는 사람과 같구나. 강과 산

을 보며 바람과 달을 읊조리니 진나라나 당나라의 고결한 선비인 듯하구나.

위로는 안개가 나는 것을 보고 아래로는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것을 살펴서

사물의 이치를 하나하나 터득해 가는 군자와 같도다. 거문고를 타거나 피리

를 불면서 생사를 잊고 즐기니 틀림없는 태고의 한 사람이로다. 주인이 이처

럼 많은 덕을 갖춘 것을 알고 감흥이 일어나 그를 위하여 노래하노라.

移天地兮納胸中 하늘과 땅을 가슴 속으로 옮겨 넣고

任日月兮西復東 해와 달이 떠가는 대로 동서로 돌아다니네.

一杯悠悠萬萬古 한 잔 술에 만고의 세월이 유유하기만 하니

無盡英雄如過風 그 많던 영웅들도 지나가는 바람일 뿐.

廖廖獨立誰與伴 드넓은 곳에 홀로 우뚝 서니 누가 짝할 수 있으리?

貫古今兮無極翁 고금을 궤뚫은 무극6)의 노인이로다.

6) 무극(無極) : 중국철학에서 우주 만물이 형성되기 이전의 어떠한 형태도 존재하

지 않고 시간조차 없는 근원적인 세계를 말한다.

上滄海 창해(滄海)7)에게 올림

7) 창해(滄海) : 양사언(1517~1584)의 호. 양사언은 조선 초기에 살았던 인물인데,

시와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초서를 잘 쓰기로 유명하였다. 도가의 신선사상

에 깊은 조예가 있었고, 산수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자청하여 벼슬하였다. 양

사언과 청허당은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蓬萊兮古寺照 봉래산 오래된 절을 비추네

空壁兮十年燈 텅 빈 벽의 십 년 등불.

登高兮望遠山 높이 올라 먼 산을 바라보니

疊疊兮雲層層 첩첩 산중에 구름도 층층이로다.

噫 아!

秋山獨聽鍾 가을 산에 홀로 종소리 들으니

雨色連滄海 빗물 빛이 푸른 바다로 이어졌구나.

落日望堅城 떨어지는 해 속에 견고한 성을 바라보네

故人何處在 그리운 벗 어디에 있는지?

詠懷 생각을 읊다

乾坤逆旅中 여관과도 같은 이 세상

露電身如寄 번갯불에 몸을 맡긴 격이네.

明月三山竹 뭇 산의 대숲엔 밝은 달

獨坐聞翡翠 홀로 앉아 비취새 소리를 듣네.

春雨一池蛙 봄비 내리는 연못의 개구리

出入當鼓吹 드나들 때마다 울음소리 드높기만 하네.

念念轉千經 천 권의 경전을 외우는 소리이니

何須讀文字 굳이 문자를 읽어야만 할까.

平生沒伎倆 평생에 재능이 별로 없어

早學林下睡 일찌감치 숲 속에서 조는 것만 배웠네.

睡熟漸交魂 잠이 깊어지면서 혼령도 뒤바뀌어

變作蝴蝶翅 나비의 날개로 변하고 말았네.8)

夢裏甚紛紜 꿈 속에서 온갖 일 겪다가

覺來寂無事 깨어나고 보니 아무 일 없이 고요하기만 하네.

呵呵開大笑 껄껄껄 큰 웃음 터트리니

萬法眞兒戲 만법이 참으로 아이 장난이로다.

8) 『장자』「제물론」에 나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비유를 표현한 것이다. 장자

가 꿈에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날아다니며 즐기다가 깨었는데, 장자 자신이 나비

가 된 것인지,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지 구분이 안 되더라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

이다. 모든 시비분별은 상대적일 뿐, 지극한 도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라는 의미

를 말한다.

頭流內隱寂 두류산(頭流山) 은적암(隱寂庵)9)

9) 두류산은 지리산의 별칭이다. 두류산의 내은적암은 원래 신라말에 창건된 절이

나 훼손되어 있었는데, 1560년 청허당이 이 곳에 와서 중수하였다. 청허당은 내

은적암에서 3년간 머물렀다고 전한다.

有僧五六輩 스님 대여섯 분이

築室吾庵前 내 사는 곳 앞에 집을 짓더니

晨鍾卽同起 새벽 종 치면 다같이 일어나고

暮鼓卽同眠 저녁 북 울리면 다같이 잠에 드네.

共汲一澗月 달빛에 젖은 샘물 함께 길어와

煮茶分靑烟 차를 달이니 푸른 연기 흩어지네.

日日論何事 하루 하루 무슨 일을 논하리오

念佛及參禪 염불이나 참선만 할 뿐이네.

登望海亭 망해정(望海亭)10)에 올라

10) 망해정(望海亭) : ‘바다를 조망하는 정자’라는 의미의 명칭으로, 전국 여러 곳에

망해정이 있어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客登望海亭 나그네가 망해정에 오르니

大風激大水 큰 바람이 큰 물에 부딪히네.

白浪翻長鯨 흰 물결 속에 큰 고래 요동쳐서

銀山摧復起 은산이 꺾였다가 다시 일어서는 듯하네.

驚天動地聲 하늘과 땅을 놀라게 하는 소리

萬古無終始 만고에 시작도 끝도 없구나.

回首望南中 머리를 돌려 남쪽을 바라보니

泰山如人砥 태산이 숫돌 같구나.

雁沒楚天邊 기러기는 남쪽 하늘 끝으로 사라지고

皓月生鏡裏 거울 속에 밝은 달이 생겨나네.

疑坐大鵬背 마치 큰 붕새의 등에 앉아

逍遙九萬里 구만리 장천을 소요하는 듯하구나.11)

問客客是誰 나그네에게 묻노니, 그대는 누구이신가?

客是淸虛子 나그네는 바로 청허당12)이로다.

11) 『장자』「소요유」에 나오는 말. 여기서 장자는 일체의 시비를 넘어선 도의 경지

를 갖가지 비유로 표현하였다. 본문의 내용은 곤(鯤)과 붕(鵬)의 비유를 따온 것

이다. 북쪽 바다에 사는 큰 물고기인 곤은 붕새로 변하여 남쪽바다로 가는데, 얼

마나 거대한지 한번에 구만리나 날아오른다고 한다.

12) 작자의 당호.

途中有感 길을 가다가

客在長安道 나그네 장안 가던 길

長安春色早 장안은 이른 봄빛이었네.

崔娘恨落花 최씨 낭자는 떨어지는 꽃을 보며 아쉬워하고

李子怨芳草 이씨 낭자는 싱그러운 풀을 보며 원망하네.13)

落花自落花 떨어지는 꽃은 절로 떨어지는 꽃이요

芳草自芳草 싱그러운 풀은 절로 싱그러운 풀이건만

可笑人間苦 가소롭구나, 인간의 괴로움이여!

可笑人間苦 가소롭구나, 인간의 괴로움이여!

13) 한번 떠난 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꽃다운 풀은 해마다 다시 돋아나니, 풀을

보며 님을 원망한다는 의미.

還鄕曲 환향의 노래

死也爲誰死 죽기는 누굴 위해 죽으며

生也爲誰生 살기는 누굴 위해 사는고.

本無去來相 본래는 오고 가는 모습조차 없건만

惟爲利群生 오직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라.

來爲衆生來 올 때도 중생을 위해 오고

去爲衆生去 갈 때도 중생을 위해 가는데,

去來一主人 오고 가는 한 주인14)

畢竟在何處 결국에는 어디에 있는고?

14) 주인 : 선가(禪家)에서 주인이란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는 참모습을 의미한다.

楓嶽山 풍악산(楓嶽山)15)

15) 풍악산(楓嶽山) :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금강산은 계절마다 달리 불리

는 별칭이 있었다.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金剛)이라 하

고,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리므로 봉래(蓬萊)라 하고, 가을에는 일

만 이천 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므로 풍악이라 하고,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지

고 나면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皆骨)이라고 한다.

壯哉楓岳山 씩씩하구나, 풍악산이여!

截然高屹屹 깎아지른 듯 우뚝하구나

幾經風與雨 몇 번이나 비바람 겪었을까?

脊梁長不屈 등줄기는 언제나 굽히지 않네.

幾經雪與霜 몇 번이나 눈서리 겪었을까?

落落扶天立 꿋꿋이 하늘을 받치고 섰구나.

亦多老松杉 오래된 소나무 삼나무도 많으니

靑海通雲濕 푸른 바다와 구름의 습기 통하여서이겠지.

珍重古之人 보배롭고 소중한 옛사람이여!

與山猶相揖 산과 더불어 서로 허리 굽혀 절하였네.

天生大丈夫 하늘이 낳은 대장부는

節義要先習 절의를 먼저 익혀야 하네.

我來一登臨 내가 와서 한번 올라보니

天邊紅日入 하늘 끝에 붉은 해가 지는구나.

獨宿塔寺空 홀로 자는 절은 고요하기만 한데

如聞龍象泣 마치 훌륭한 스님의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네.

內隱寂 내은적암

頭流有一庵 두류산에 암자 하나 있어

庵名內隱寂 내은적이라 이름하네.

山深水亦深 산도 깊고 물도 깊어

遊客難尋迹 유람객은 찾아내기 어려우리.

東西各有臺 동과 서에 각각 대가 있어

物窄心不窄 땅은 좁아도 마음은 좁지 않네.

淸虛一主人 맑고 텅 빈 한 주인이

天地爲幕席 천지를 집으로 삼아

夏日愛松風 여름날엔 솔바람 좋아하여

臥看雲靑白 희뿌연 구름 보면서 누워 있네.

戰場行 전쟁터16)

16) 전쟁터 : 임진왜란 때의 일을 가리키나, 정확하게 어디를 두고 지은 시인지는 알

수 없다.

憶曾當日水戰時 일찍이 그날 수전을 벌이던 때를 생각해보면

萬艇飛海如天鶻 만 척의 배는 하늘의 송골매처럼 바다를 날았었지.

兩兵交攻杳莫分 양쪽 병사 서로 쳐서 분간할 수 없었고

忍痛大聲波欲渴 고통 참는 고함 소리에 물결조차 목이 마른 듯하였지.

霜劒如林飜日色 서릿발 같은 칼은 숲을 이루어 햇빛에 번득였으니

斬盡千頭如一髮 천 개의 머리를 베는 것을 터럭 하나같이 하였지.

茫茫碧海驚魂泣 망망한 푸른 바다엔 놀란 혼이 울고

夜月寒沙照白骨 밤 달은 차가운 모래밭 백골을 비추누나.

百里春林燕子飛 백리의 봄 숲에는 제비가 날아다니고

柳村無人鸚語滑 사람 없는 버드나무 마을엔 꾀꼬리 소리만 흐르누나.

君不聞 그대 듣지 못하였는가,

太平日久人心頑 태평한 날이 오래면 사람 마음이 미련해져서

放逸懈怠天亦罰 방일하고 게으른 자 하늘도 벌을 주심을.

客過秋風一杖去 가을바람에 지팡이 하나로 나그네는 떠나가는데

古寺斷碑荒草沒 옛 절의 동강난 비석은 거친 풀 속에 묻혀 있네.

春日詠懷 봄날에 생각을 읊다

東風昨夜至 어제 밤 동풍 불더니

病客來山中 병든 나그네 산 속으로 왔도다.

林鳥已新語 숲 속의 새는 싱그럽게 지저귀고

野花將欲紅 들판의 꽃은 붉어지려 하건만,

人間郭郞巧 인생이란 연극과도 같은 것이요

世事浮雲空 세상일은 뜬 구름처럼 부질없을 뿐.

臨濟一聲喝 임제스님 고함 한 소리에17)

直開千日聾 긴 세월 먹었던 귀가 한 순간에 뚫려버리네.

17) 중국 당나라 말기의 선사인 임제의현은 대단히 동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제

자들을 지도하였다. 특히 크게 한번 소리를 질러 제자의 안목을 열여주기도 하

였는데 이를 ‘할[喝]’이라 한다.

詠月 달을 노래하다

月出靑天面 달이 푸른 하늘로 떠오르니

誰當問古今 누가 고금의 세월을 묻겠는가.

盈虛知進退 차고 비는 것에서 진퇴를 알고

顯晦學昇沈 밝고 어두운 데서 오르내림을 배우노라.18)

幾入詩人句 시구를 거의 다 채워가노라니

還傷遠客心 도리어 먼 나그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건만

山僧都不管 산승은 전혀 개의치 않고

高臥聽松琴 높이 누워 소나무 악기 소리 듣노라.

18) 진퇴와 오르내림은 나서서 세상에 기여를 하거나, 혹은 물러나서 내면의 덕을 기

르는 일을 말한다. 욕심이나 집착을 부리지 않고, 때에 맞게 행동함을 의미한다.

秋懷 가을의 회포

- 在妙香山 想頭流師翁 故寄興如此

- 묘향산에 있으면서 두류산의 노스님이 생각나서 이와 같은 감흥을 써 보내었다.

渺渺多懷思 아련히 먼 곳을 무척이나 그리워하여

悠悠望不窮 한없이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鳥飛山色裏 새는 산빛 속에서 날아다니고

蟬咽夕陽中 매미는 석양빛 속에서 웁니다.

黑髮愁人白 머리가 검은 사람은 남의 머리 희다고 근심스러워 하고

靑林病葉紅 푸른 숲은 단풍 든 잎을 병들었다 여깁니다.

生離同死別 살아도 떨어져 있으니 죽어 이별한 거나 한가지입니다.

何更問西東 동과 서를 따진들 무엇하겠습니까?19)

19) 서쪽은 서방정토, 즉 극락을 가리킨다. 동과 서는 곧 생과 사를 의미한다.

次李方伯韻別 이사또 시의 운에 맞춘 이별시

早脫紅塵網 일찌감치 붉은 먼지20)의 그물을 벗어나

招提獨閉門 절로 들어가 홀로 문을 닫았네.

今逢千里客 이제 천 리에서 온 나그네를 맞아

來破萬山雲 만 산의 구름을 걷어 헤쳤네.

出野麟無族 들판을 벗어나니 가족 없는 사슴이요

歸嵒鶴失群 돌아온 바위엔 무리 잃은 학이로다.

梨亭從此別 배꽃 핀 정자에서 이제 이별하노니

對月更思君 달을 보며 그대 생각하리라.

20) 붉은 먼지 : 세속의 번뇌를 의미. 공중에 떠오른 티끌이 햇빛을 받아 붉게 보인

다는 뜻. 세속에서의 생활은 먼지와 티끌처럼 욕망과 번뇌로 떠다닌다는 의미

로 쓰이는 말이다.

贈泉禪和子 참선하는 천(泉)스님에게

歷歷提公案 또렷하게 공안을 들되

莫浮亦莫沈 들떠서도 아니 되고 가라앉아서도 아니 되네.

虛明如水月 텅비고 밝은 것이 물 속의 달과 같고

緩急若調琴 빠르고 느림은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아야 하지.

病者求醫志 병든 자가 의원을 찾는 의지로

嬰兒憶母心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해야하네.

做工親切處 공부가 아주 절박해질 때

紅日上東岑 붉은 해가 동쪽 봉우리에 떠오르리.

又贈眞機 진기(眞機)21) 스님에게

21) 진기(眞機) : 휴정의 스승인 부용영관(芙蓉靈觀)에게 동문 수학했던 도반이다.

不變曰眞, 觸事曰機. 或曰, “群生出於眞 沒於眞” 或曰, “出於機 入於

機” 是雖達人之言, 皆未免對待立名 而令人尤增法縛者也. 我這裏本

來無妄 何有眞而可得, 本來無事 何有機而可立. 欲作出世高士 請高着

眼. 吁! 大丈夫一言一行 可以動天地 感鬼神, 可以呼吸春秋, 呑吐日月

不可徒然也. 姑以忘機二字 因成一律以示之.

변하지 않는 것을 ‘참됨[眞]’ 이라 하고, 일에 접촉하는 것을 ‘기(機)’22)라 한

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모든 생명은 참됨에서 나와 참됨으로 사라진다고”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기에서 나와 기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것이 비

록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말이긴 하겠으나, 대상을 두고 명칭을 부여한 것

을 면하지 못하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이론에 집착하게 한다. 내 여기

에는 애당초 거짓됨이 없는데 어찌 찾을 수 있는 진이 있으며, 본래 아무 일

이 없는데 어찌 세울 수 있는 기가 있겠는가. 이 세상을 벗어난 뛰어난 인물

이 되고자 한다면 청컨대 높은 수준으로 보기를 바란다. 아! 대장부의 한 마

디 말 한 가지 동작이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을 감응시킬 수 있으며, 세월을

들이쉬고 내쉬며, 해와 달을 삼켰다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이 헛말이 아니로

다. 그래서 잠시 ‘기를 잊는다[忘機]’는 두 글자로써 율시 한 수를 지어 보이

노라.

22) 기(機) : 어떤 상황에 따라 반응하여 일어나는 상호 작용.

今我大圓鏡 지금 나의 크고 둥근 거울23)

本無凡與聖 본래는 범인과 성인의 구분이 없네.

忘機佛道隆 기를 잊으면 불교의 도가 높아지고

分別魔軍盛 분별을 하면 마군이 성한다네.

欲去眼中花 눈 속의 꽃24)을 없애려 한다면

先除心上病 먼저 마음에 있는 병부터 없애야지.

長風忽掃雲 긴 바람이 문득 구름을 쓸어가니

天月當窓映 천공의 달이 창에 나타나 비추네.

23) 크게 둥근 거울 : 원래는 유식학(唯識學)에서 쓰는 용어. 크게 둥근 거울에는 사

물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진다는 뜻에서 부처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24) 눈 속의 꽃 : 눈병이 생겨 사물의 모습이 이그러지거나 겹쳐 보이는 현상을 눈

속에 꽃이 핀 것 같다는 비유로 표현한 것. 눈 속의 꽃을 없앤다는 말은 보이는

대상을 왜곡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

哭蓬萊禪子 봉래선자(蓬萊禪子)25)의 죽음을 애도하며

25) 봉래선자(蓬萊禪子) : 봉래는 양사언의 호. 조선 전기의 뛰어난 서예가였던 그는

회양군수로 재직하던 시절, 금강산을 매우 아끼고 즐겨 유람하였다. 도가는 물

론 불가에도 조예가 깊었다.

我愛蓬萊客 내 봉래의 나그네를 사랑하였나니

笑中心自閑 웃음 중에 마음 절로 한가로왔도다.

重重水歸水 겹겹의 물은 물로 돌아가고

疊疊山連山 첩첩의 산은 산으로 이어지네.

碧落在頭上 머리 위로는 푸른 허공이 있고

白雲生脅間 겨드랑이 사이로는 흰 구름이 생겨나네.

因悲乘鶴去 학을 타고 떠나버림을 슬퍼하노니

一去不知還 한번 가고 나면 돌아오지 않으리.

登楓岳九井峯 풍악산(楓岳山) 구정봉(九井峯)에 올라

遠客尋秋上九井 멀리서 온 나그네 가을을 찾아 구정봉에 오르니

層層木落已森森 층층으로 나뭇잎 떨어져 빽빽하구나.

浮雲朝暮有翻覆 뜬 구름은 시시각각 모양이 뒤바뀌고

流水東西無古今 흐르는 물은 동서로 변함이 없구나.

白鳥亂飛靑海面 흰 새들 푸른 바다 수면 위로 어지러이 날고

玉峯爭出碧天心 옥같은 봉우리는 푸른 하늘로 다투어 솟았네.

登山小魯曾如許 태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겼다 하더니26)

一望中原思不禁 세상을 한번 바라보니 여러 생각 금할 수 없네.

26) 『맹자』「진심장」상편에서, ‘공자께서는 동산(東山)에 오르니 노나라가 작게 여

겨지고, 태산(泰山)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이더라(孟子曰, “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는 내용에 근거한 말. 태산은 중국 노나라 땅(현 산동성)에 있다.

贈昱禪子 욱(昱) 선자(禪子)27)에게

27) 선자(禪子) : 선수행을 하는 학인을 일컫는 말.

靑年勤著唐虞典 유가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던 청년이

壯歲深窮貝葉書 장년이 되어 불경 공부를 깊이 하였네.

萬古乾坤雙幻化 만고의 하늘과 땅 모두가 환상이러니

百年身世一籧廬 백 년 사는 동안 이 세상은 하나의 여관일 뿐.

嶺雲起處眠猶熟 구름 일어나는 높은 고개에서 깊은 잠에 빠졌는데

山鳥啼時耳亦虛 산새 지저귈 때 귀 또한 텅 비었네.

獨坐寥寥當白月 홀로 고요히 앉아 밝은 달을 마주하니

不知松露滴襟裾 소나무 이슬이 옷깃 적시는 줄도 몰랐네.

贈別麟壽禪子 인수(麟壽) 선자와의 이별에 드림

金剛道士促裝歸 금강도사(金剛道士)28) 서둘러 차려 입고 돌아가는데

風滿懷中雲滿衣 가슴엔 바람 가득 옷에는 구름 가득.

啼鳥落花春寂寂 우는 새 떨어지는 꽃 쓸쓸한 봄이로다

夕陽山郭雨霏霏 석양녘의 산 성곽엔 부슬부슬 비가 내리네.

一聲長笛離情苦 한 줄기 피리 소리 이별하는 정은 괴롭고

千里孤帆海色微 천 리 떠날 외로운 돛배 바닷빛은 흐릿하구나.

今夜故人何處宿 오늘 밤 벗님은 어디에서 주무실런지?

半窓梅竹月依依 창문엔 매화와 대나무, 교교한 달빛 보이네.

28) 금강도사(金剛道士) : 금강은 금강석으로, 지혜를 상징한다. 금강석이 모든 다른

물질을 깨트릴 수 있듯이 지혜는 모든 잘못된 견해를 깨트림을 의미한다.

題頭流山凌波閣 두류산(頭流山) 능파각(凌波閣)에 붙여

畫閣飛雲槁臥水 구름 속의 채색 누각 물가에 누웠고

山僧每日踐長虹 산승은 매일같이 길다란 무지개를 밟는다.

幾多塵世翻新局 티끌 세상은 수없이 새로운 형국으로 뒤바뀌는데

何代閑民作老翁 어느 시대가 되어야 한가로운 백성이 늙은이 같이 될까.

春暮仙間花雨亂 신선세계에 봄이 저무니 꽃은 비처럼 흩날리고

月明天上玉樓空 하늘의 달은 옥같은 누각 위로 밝구나.

澗琴松瑟無終曲 시냇물과 소나무는 악기가 되어 끝이 없는 곡을 연주하는데

萬古乾坤一笑中 만고의 천지는 한 웃음 속에 있도다.

금강산 산영루(山映樓)에 붙은 시의 운에 맞춰

高樓如畫鬼應慳 그림같은 높은 누각 귀신도 아끼리라

壁上風騷柳與韓 벽 위에 작품들은 유종원과 한유29)로다.

帶月癯仙千丈檜 여윈 신선 곁엔 달 걸린 천 길 회나무

隔林鳴瑟一聲灘 건너 숲에 울리는 비파는 여울물 소리.

山間樂勝人間樂 산 속의 즐거움이 인간세상보다 나으니

世道難於蜀道難 세상살이는 촉나라 가는 길30)보다 어렵도다.

欲識金剛眞面目 금강의 진면목을 알고자 하는가

白雲堆裏列峯巒 흰 구름 쌓인 속에 숱한 봉우리 늘어섰구나.

29) 유종원(柳宗元)과 한유(韓逾) : 모두 중국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이자 문장가.

30) 촉나라 가는 길 : 원래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 제목이다. 지금의 사천성(四

川省) 지역으로, 당나라 서울이었던 장안(長安)에서 사천성으로 가는 길의 험난

함을 묘사하면서 인생살이의 어려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表訓寺 표훈사(表訓寺)31)

31) 표훈사(表訓寺) : 금강산에 있는 절. 휴정이 수행을 하던 곳이며, 휴정의 진영(眞

影)이 이 절에 안치되어 있다.

春風昨入蓬萊洞 어제는 봄바람이 봉래동(蓬萊洞)32)에 들더니만

客夢殘時鳥亂啼 나그네 꿈 깨기도 전에 왁자한 새소리.

八十樓臺皆寺刹 팔십 누대는 모두가 다 사찰인데

萬千峯嶺各高低 천만의 봉우리와 고개는 높낮이도 제각각.

白雲影裏飛靑鶴 흰 구름 그림자 속엔 푸른 학이 날고

明月光中瀉玉溪 밝은 달빛 속에 옥같은 시냇물이 쏟아져 내리네.

天外有天君信否 하늘 바깥에 또다른 하늘 있음을 그대는 믿는지?

落花流水使人迷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 사람을 정신 없게 만드네.

32) 봉래동(蓬萊洞) : 금강산 골짜기를 말한다. 금강산을 달리 봉래산이라 한다.

賽義玄禪子求語 의현(義玄)스님의 부탁으로 짓다

擬紙墨時初夢境 종이와 묵으로 무얼 하려는 것은 갓 꿈이 깬 정도요

要思量處兩頭機 생각으로 해 보려는 것은 머리가 둘이 되는 격.

夢中說夢重重妄 꿈 속에서 꿈을 설하면 거듭 거듭 엉터리가 되고

頭上安頭疊疊非 머리 위에 또 머리를 두면 겹겹이 틀려 버리네.

絲竹傳心心乃錯 현악기 관악기로 마음 전하나 이 마음이 아니요

風雲示法法之違 바람과 구름으로 이치를 보여도 이 이치가 아니라.

師乎欲識吾宗旨 스님이여, 나의 종지를 알고 싶은가?

白日靑天霹靂威 흰 해와 푸른 하늘에 무시무시한 벼락이로다.

贈楓岳山能長老 풍악산 능(能) 장로(長老)33)

33) 장로(長老) : 학덕이 높고 역량을 갖춘 선지식을 부르는 말. 수행 경력이 오래됨

을 중시한 것.

竹風松月是相知 대 바람과 소나무 달 서로 알아

坐臥經行任意之 앉거나 눕거나 경행하거나 마음대로였지.

覺滿如來差病客 깨달음 가득한 부처는 병든 나그네 낫게 하고

行圓菩薩止啼兒 행이 원만한 보살은 우는 아이 그치게 하네.

烹茶苦菜連根煮 씀바귀를 뿌리채 태워서 차를 끓이고

齋飯香蔬帶葉炊 향기로운 채소잎을 태워서 밥을 짓네.

人問一生何事業 인간 일생에 무슨 일을 할 것인가?

只這開眼展雙眉 다만 이렇게 두 눈 뜨고 양 눈썹 펼 뿐이네.

次朴學官韻 박(朴) 학관(學官)34)이 지은 시의 운에 맞춰

一光無始亦無終 하나의 빛은 시작도 끝도 없으니

三敎名言枉費功 삼교35)의 말씀들이 잘못 들인 공이로다.

火裏開花非好手 불 속에 꽃을 피우는 것도 대단한 솜씨가 아닌데

虎頭生角豈神通 호랑이 머리에 뿔이 나게 한들 어찌 신통이 되리오.

風雷起處銀山裂 바람과 우레가 일어나는 곳에 은산이 찢어지고

棒喝馳時鐵壁窮 방할36)이 내달리는 곳에 철벽이 끝이 나네.

天上人間徒縹緲 천상의 인간은 다만 멀고 아득하기만 한데

少林曾坐獨扶宗 소림37)에선 일찍이 홀로 앉아 종풍을 부지하네.

35) 삼교 : 유·불·도를 통칭하여 삼교라 한다.

36) 방할 : 선가에서 스승이 제자들의 안목을 열어주기 위해 쓰는 특별한 지도방법.

방[棒]은 몽둥이로 때리기, 할[喝]은 ‘훽’하고 소리지르기. 불가에서는 관용적으

로 棒은 ‘방’, 喝은 ‘할’이라 읽는다.

37) 소림(少林) : 선가(禪家)의 맥은 중국 소림사의 달마조사로부터 비롯되었다. 곧

소림사는 선가의 원조에 해당한다.

贈玄昱禪和 현욱(玄昱) 스님에게

平生欲奏沒絃琴 평생 동안 줄 없는 거문고를 타려 했으나

惆悵東西未遇音 슬프게도 지음38)을 만나지 못하였네.

闕里秋陽曾炙背 궐리39)의 가을 볕이 아직도 등을 따스하게 하는데

少林寒月更醒心 소림의 싸늘한 달은 다시 정신을 일깨우네.

坐松坐石忘天地 소나무에 앉고 돌에 앉아 세상을 잊노라니

花落花開送古今 꽃 피고 지는 사이에 세월을 보내누나.

珠在澤中光在澤 구슬이 못 가운데 있어 그 빛도 못에 있으니

豈隨狂醉拾華鍼 어찌 미치광이를 따라 꽃바늘40)을 주우리오?

38) 지음(知音) :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가리키는 말.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달인이었던 백아와 그의 음악을 잘 알아

주었던 종자기의 일화에서 나왔다. 백아가 거문고를 연주하면 그의 의도를 기

막히게 잘 알아맞추었다고 하는데, 종자기가 일찍 죽자 백아는 자신의 음악세

계를 더 이상 알아주는 이가 없다 하여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는 고사에서 나

왔다.

39) 궐리(闕里) : 공자의 고향. 공자가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쳤다.

40) 꽃바늘 : 자수용 바늘. 옷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도구를 의미한다.

寄贈大雄 큰 영웅에게 드림

夏日松風裏 여름날 소나무 바람 속에서

頹然臥短亭 작은 정자에 아무렇게나 누웠으니

林深能鳥語 숲이 깊어 새들이 지저귀고

雲破露山形 구름 흩어지자 산의 자태 드러나네.

苦菜連根煮 씀바귀를 뿌리채 삶고

寒泉汲古甁 차가운 시냇물을 오래된 병에 담노라.

逃名塵自遠 명성을 피하였으니 속세가 절로 멀어지고

棲寂地應靈 고요함에 깃드니 사는 곳이 절로 신령스럽네.

莫妄吾家法 우리 불가의 법을 망령되게 하지 말고

君須洗耳聽 그대는 먼저 귀를 씻고 듣게나.

示明鑑尙珠彦和諸門輩

명감(明鑑)·상주(尙珠)·언화(彦和) 등 여러 문도들에게 보임

出家修道輩 출가하여 수도하는 사람들은

財色最先禁 재물과 여색을 가장 먼저 금해야 하니,

群居須愼口 여럿이 함께 있을 때에는 입을 신중히 하고

獨處要防心 홀로 있을 때에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하네.

明師常陪席 밝은 스승이 항상 함께 해야 하고

惡友勿同衾 나쁜 벗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네.

語當離戲笑 말을 할 때는 웃고 떠들고 해서는 아니 되고

睡亦莫昏沈 잠잘 때에는 정신이 흐려져서는 아니 되네.

法如龜上木 법은 거북이 위의 나무와 같고41)

身若海中鍼 몸은 바다 속의 바늘과 같네.

回光眞樂事 회광반조42)야말로 참으로 즐거운 일이니

忍負好光陰 좋은 시간을 차마 저버릴손가!

41) 바닷속의 눈 먼 거북이가 물위로 한번 올라올 바로 그때 떠다니는 나무토막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 불도에 입문·수도하여 진리를 깨치기가 그만큼 어렵다

는 점을 비유한 것.

42) 회광반조(回光返照) : 밖으로 향하는 의식의 빛을 돌이켜 자기 내면의 세계를 되

살핀다는 의미.

志願如山海 뜻하고 바라는 것이 산과 바다와 같아

期超大覺城 큰 깨달음의 성을 뛰어넘기를 기약하게나.

擇師兼擇友 스승을 택하고 벗을 택하는 것은

精妙更精明 세심하고 밝게 해야 하나니

坐必向西坐 앉을 때에는 반드시 서쪽을 향하여 앉고

行須視地行 다닐 때에는 모름지기 땅을 보면서 다녀야 하네.

療身常一食 몸을 돌보기를 하루에 한 끼만을 먹으며

許睡限三更 잠은 여섯 시간만 자야 하네.

金書不離手 경전을 손에서 떼어놓지 말고

外典莫留情 다른 책들43)에는 마음을 두어서는 아니 되네.

人世雖云樂 인간 세상이 비록 즐겁다고는 하나

死魔忽可驚 죽음의 마귀가 문득 놀라게 하네.

吾儕論實事 우리들은 진실한 일을 말하는 것이니

安得尙虛名 어찌 헛된 명성을 숭상할 수 있으리?

43) 다른 책들 : 불교 경전 이외 다른 서적을 말함.

天鑑禪子 求我於一言 懃懃懇懇 我先嘖自己 以及於師 師亦自責可也

천감(天鑑) 스님이 나에게 한 말씀 해 주기를 바라기에 내가 먼저 간

절하게 스스로를 점검한 다음에 스승에게 요청해야 하며, 스승도 또

한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이 옳다 하였다.

一生無伎倆 일생 동안 아무런 기량도 없이

虛作白頭翁 헛되이 머리 허연 늙은이가 되어버렸네

鑽紙求眞覺 종이가 뚫어지도록 공부하여 참된 깨달음을 구하였으니

蒸沙立妄功 모래를 쪄서 망령된 공을 세우려 한 셈이라.

空花栽石上 허공의 꽃을 돌 위에 심고

燄水吸喉中 불꽃 물을 목구멍 속으로 들이키네.

難出四邊網 사방의 그물을 벗어나기 어려워

長隨八倒風 오래토록 여덟 가지 뒤집어진44) 바람을 따르네.

持珠悲乞丐 구슬을 갖고도 찾으러 다니는 것이 슬프구나,

守藏恨貧窮 갖고 있으면서도 가난하다고 한탄하네.

欲識吾家寶 우리 집안의 보배를 알고 싶은가?

秋天亂點鴻 가을 하늘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기러기.

44) 여덟 가지 뒤집어진 : 팔도(八倒) 혹은 팔전도(八顚倒)라고 한다. 세간에는 상·

락·아·정이 없고 열반에는 이것이 있는데, 이를 뒤집어 세간에는 이것이 있고,

열반에는 이것이 없다고 생각함을 의미한다.

賽印悟禪子求偈 인오(印悟)45) 스님이 게송을 원하기에 짓다

45) 인오(印悟) : 1548~1623. 호는 청매(靑梅). 휴정의 제자로 임진왜란에 출전하여

공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수행에도 뛰어나 휴정 이후에 일가를 이루어 청매파

를 형성하여 선풍의 진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청매집(靑梅集)』이란 문집을 남

겼다.

十年飛櫛標 십 년 동안 지팡이 날려

雲水與江湖 구름처럼 물처럼 온 세상을 다녔네.

獨坐庵猶靜 홀로 앉았으니 암자도 고요하고

虛窓月亦孤 빈 창엔 달 역시 외로워라.

故鄕千里遠 고향은 천 리 먼 곳

萱室兩親俱 원추리 핀 집46)에는 두 어버이 다 계시는데,

碧海遙連楚 푸른 바다는 멀리 초나라로 이어지고

靑天半入吳 푸른 하늘은 반쯤 오나라로 들어가네.47)

雖稱割愛釋 비록 애욕을 버린 것이 승려라 하지만,

忍負賣柴盧 차마 땔나무를 팔던 노행자48)를 저버릴손가.

身世凝朝露 아침 이슬과도 같은 이 신세

光陰過隙駒 시간은 문틈을 지나는 망아지49)와 같구나.

做工先發憤 공부란 먼저 분발을 해야 하니

爲法便忘軀 진리를 위하여 몸을 잊어야 하지.

活句疑團破 활구50)의 의심 덩어리를 깨트려야만

方名大丈夫 비로소 대장부라 이름할 수 있으리.

46) 원추리 핀 집 : 어머니가 주로 계시는 뒷채의 마당에 원추리를 많이 심었으므로

‘어머니’를 상징하는 의미가 되었다. 여기서는 양친이 함께 계시는 공간의 의미

로 사용하였다.

47) 초나라와 오나라는 중국 남방에 있던 나라 이름이다. 드넓은 바다가 오나라 지

역으로 연결되고 가없는 하늘이 오나라를 반쯤 뒤덮고 있다는 말은 천지의 광

활함을 의미한다.

48) 땔나무를 팔던 노행자 : 육조 혜능을 가리킨다. 혜능의 속성이 노씨이며, 출가하

기 전 땔나무를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49) 문틈을 지나는 망아지 : 달리는 망아지를 문틈 사이로 보면 극히 짧은 순간에 지

나가 버린다. 시간의 짧음, 세월의 무상을 의미한다.

50) 활구(活句) : 의미가 통하는 말을 사구(死句)라 하고, 의미가 통하지 않는 말을

활구라 한다. 선불교에서는 논리적으로 의미가 통하는 말은 진리를 제대로 전

달하지 못하는 죽은 말이라고 보고, 오히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 속에 진리

가 있다고 보아, 그 활구를 참구하여 진리를 터득한다고 한다. 이러한 활구는 논

리가 맞지 않는 아무 말이나 다 지칭하는 용어는 아니고, 조사가 남긴 말 중에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격외의 언어를 지칭한다.

四仙亭 사선정(四仙亭)51)

51) 사선정(四仙亭) : 신라시대 경치 좋은 곳을 두루 유람하였던 영랑(永郎)·술랑

(述郎)·남랑(南郎)·안상(安詳)의 네 신선을 추모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 삼일포

(三日浦) 앞의 작은 섬에 세운 조선시대의 정자.

海枯松亦老 바다도 오래되고 소나무도 늙었는데

鶴去雲悠悠 학이 떠나니 구름도 유유하구나.

月中人不見 달빛 속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三十六峯秋 서른 여섯 봉우리는 가을이구나.

草屋 초가집

草屋無三壁 삼면에 벽이 없는 초가집

老僧眠竹床 노승은 대나무 침상에서 졸고 있네.

靑山一半濕 청산은 반쯤 젖어 있고

疎雨過殘陽 해질녘 가랑비 스쳐가네.

感興 감흥

鶯花各天性 앵무새와 꽃은 제각각의 천성이지만

風月亦人心 바람과 달은 또한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지.

李杜翻詩海 시의 바다를 뒤집었던 이백과 두보52)

波瀾動古今 그 세찬 물결이 고금을 뒤흔드네.

52) 이백과 두보 : 두 사람 모두 중국 당나라 때 사람으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

으로 꼽힌다.

崇義禪子訪淸虛 숭의(崇義) 스님이 청허를 찾아왔기에

欲識淸虛主 청허당53)의 주인을 알고 싶은가?

相逢定不逢 만났다 하더라도 만난 것이 아닐세.

須知白雲外 알지어다, 흰 구름 그 너머에

別有一奇峯 또다시 기이한 봉우리가 있음을.

53) 이 시의 저자인 휴정의 당호. 자신이 거처하던 집의 이름을 따서 호로 삼은 것.

竹院 대나무가 있는 집

黃花泣露日 누런 꽃에 이슬이 우는 날

楓葉政秋天 잎에 단풍 드니 바로 가을이구나.

鳥宿群山靜 새도 잠든 뭇 산은 고요하기만 한데

月明人未眠 달이 밝아 잠 못 이루는 사람.

贈江湖道人 강호도인(江湖道人)에게

世事空中鳥 세상 일은 허공 속의 새,

浮生水上漚 뜬 인생은 물 위의 거품.

天下無多地 세상에 별 곳 없으니

山僧一杖頭 산승에겐 지팡이 하나 뿐.

宿楓嵒 풍암(楓)에서 하루 묵으며

遠岸秋沙白 먼 언덕엔 가을 모래 하얗고

西庵起暮鍾 서쪽 암자에선 저녁 종소리 들려오네.

眼隨歸鳥盡 돌아가는 기러기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노라니

雲斂露三峯 구름 걷히자 산 봉우리 셋 드러나네.

俊禪子 준(俊) 스님에게

悲歡一枕夢 슬픔과 기쁨이란 한바탕 꿈이요

聚散十年情 모이고 흩어짐이란 십 년의 정이라.

無言却回首 말 없이 문득 고개 돌려 보니

山頂白雲生 산 꼭대기에 흰 구름이 생겨나네.

過蓼川 요천(蓼川)을 지나며

遠樹起村烟 먼 나무엔 마을 연기 피어오르고

碧波人捲釣 푸른 물결엔 사람들이 낚시줄 걷어올리네.

一雁入秋空 한 마리 기러기 가을 허공 속으로 사라지자

千鴉下落照 천 마리 까마귀가 낙조 속에 내려앉누나.

上玉溪 옥계(玉溪)54)에게 올림

54) 옥계(玉溪) : 정확하게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인물 가운

데 노진(盧禛, 1518~1578)이 ‘옥계’라는 호를 썼으나,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逆旅駒陰裏 여관같은 이 세상 순식간의 세월인데

何人歸去休 돌아가 쉬는 이 그 누구일까.

閑窓一睡覺 한가로운 창가에서 졸음을 깨고 보니

可敵萬封侯 만 명의 제후라도 대적하겠네.

會友 벗을 만나

雲樹幾千里 구름 낀 나무 숲이 몇천 리나 될지

山川政渺然 산천은 정말 아득히 넓기만 하네.

相逢各白首 머리가 하얘지고 나서 서로 만나니

屈指計流年 손가락 굽혀서 흐른 세월을 헤아려보네.

詠懷 생각을 읊다

一聲發大笑 크게 한번 웃음을 터뜨리노니

神鬼哭哀哀 귀신들이 슬피 슬피 우는구나.

逆旅彭殤夢 여관같은 이 세상 오래 산들 일찍 죽은들 꿈이러니

幾人曾覺來 몇 사람이나 이런 이치를 깨달았을꼬.

一巖 일암(一巖)

寒流飛絶壁 차가운 물줄기가 절벽에서 날아 떨어지고

深樹鎖烟霞 깊은 숲은 안개로 둘러싸였구나.

鐵石肝腸客 철석같은 간장의 나그네도

開門踏落花 문을 열고 나가 떨어진 꽃잎을 밟아보네.

送願禪子之關東 원스님을 관동으로 보내며

飄飄如隻雁 한 마리 외기러기처럼 표표하도다

寒影落秋空 싸늘한 그림자 가을 허공에서 떨어지네.

促筇暮山雨 저물녘의 산비는 갈 길을 재촉하고

欹笠遠江風 먼 강바람에 삿갓 기울어지네.

途中有感 길 가던 중에

有名難避世 이름이 있다 보니 세상을 피하기 어렵네.

無處可安心 마음 편히 할 곳 어디에도 없구나.

飛錫又飛錫 지팡이를 날리고 또 지팡이를 날리어도

入山恐不深 산이 좀더 깊지 못할까 두려워지네.

宿蔡邕亭 채옹정(蔡邕亭)에 묵으며

明月近村留 밝은 달은 마을 근처 머물고

淸晨遠寺鍾 맑은 새벽엔 먼 절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竹風移醉客 대나무 바람은 취한 나그네 거닐게 하고

花雨定遊蜂 꽃비는 다니는 벌을 붙잡아 놓네.

送人關西 관서로 가는 사람을 보내며

遠山橫落日 먼 산엔 비스듬히 떨어지는 해

西望水空流 서쪽으로 바라보니 물이 그냥 흘러가는구나.

客子情何許 나그네의 기분은 어떠하신지?

天邊一雁秋 하늘 가에 외기러기 날아가는 가을.

靑海白沙行 푸른 바다 하얀 모래의 노래

海色傷心碧 바다 빛은 속이 상하여 저렇게 푸른데

天涯一病身 하늘 끝에 사는 병든 이 한 몸.

秋來江上葉 가을철 강 위의 낙엽,

雁趁日邊人 기러기는 해 곁의 사람55)을 좇네.

55) 해 곁의 사람 : 해가 기운 곳 가까이 있는 사람. 즉,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

어져 있다는 의미이다.

示行珠禪子 행주(行珠) 스님에게

十年工做人 십 년 동안 공부한 사람

積慮如氷釋 쌓인 시름 얼음 녹듯이 풀렸네.

看盡大藏經 대장경을 두루 다 보았고

焚香又讀易 향 피우며 주역을 읽었네.

忘我兼忘世 나를 잊고 세상도 잊으니

頹然只一身 그저 몸뚱이 하나만 남았구나.

夜深風不動 밤 깊고 바람도 잔데

松月影侵人 소나무 달 그림자가 사람에게 달겨드네.

白雲爲故舊 흰 구름은 옛 친구요

明月是生涯 밝은 달은 나의 삶이라.

萬壑千峯裏 만 골짜기와 천 봉우리 속

逢人卽勸茶 사람만 만나면 차를 권하네.

歎逝 세월이 가는 것을 한탄함

人生行樂處 인생 살이 즐거운 이 세상

過眼年光催 눈길을 스치는 계절 풍광이 분주히 펼쳐지네.

春隨流水去 봄은 물을 따라 흘러 가고

夏逐綠陰來 여름은 우거진 녹음을 따라 오는구나.

題古宅 오래된 집

客來傷往事 나그네는 지나간 일로 마음 아파 하건만

花發去年紅 꽃은 지난해처럼 붉게 피어났구나.

古人何處在 옛 사람은 어느 곳에 계시는지?

山寄碧虛中 산이 푸른 허공 속에 맡겨져 있네.

賞春 봄의 완상

洛陽春色好 서울의 봄빛이 아름다워

歌舞滿街時 노래와 춤이 거리에 가득하도다.

花發酒增價 꽃이 피니 술값이 올라가고

夜深人未歸 밤이 깊어도 사람들 돌아갈 줄 모르네.

登佛頂嵒 불정암(佛頂)에 올라

木落露山骨 나뭇잎 떨어지니 산의 뼈가 훤히 드러나고

天晴見海心 날씨가 맑으니 바다 속이 다 보이네.

大哉男子量 크구나, 남자의 도량이여!

千日照虛襟 천 개의 해가 텅 빈 가슴을 비추는구나.

山南行 산 남쪽 나들이

草屋柴門裏 사립문 속 초가집

老人頭白絲 노인은 머리가 하얀 실이라.

扶藜訪花落 지팡이 짚고 떨어지는 꽃을 찾아나서서

能賦送春詩 봄을 보내는 시를 짓누나.

途中卽事 길을 가던 중에

遠遠水東去 물은 동쪽으로 멀리 멀리 흐르고

長長山北來 산은 북쪽에서 길게 길게 내려오네.

茫茫天下客 아득하고 아득한 하늘 아래 나그네

誰識道人懷 누가 알리오 도인의 회포를.

失母烏 어미 잃은 까마귀

失母慈烏子 어미 잃은 새끼 까마귀

啞啞哀怨深 까악 까악 설움이 깊구나.

何論人與鳥 사람과 까마귀가 어찌 다르리

今日起予心 오늘 나의 마음을 일으키네.

哭康陵 강릉(康陵)56)을 애도함

56) 강릉(康陵) : 조선왕조 제13대 왕인 명종(1545~1567)의 무덤 이름. 임금이 죽고

나면 무덤 이름으로 그 임금을 지칭하였다.

愛國憂宗社 나라를 사랑하고 종사를 근심하노니

山僧亦一臣 산승도 또한 한 사람의 신하라.

長安何處是 서울이 어디인가?

回望淚沾巾 고개 돌려 바라보며 눈물 적시네.

望高臺 높은 대에서 바라보니

獨立高峰頂 높은 산 꼭대기에 홀로 서니

長天鳥去來 먼 하늘로 새들이 오가누나.

望中秋色遠 바라보니 가을 풍경 아득하여

滄海小於杯 푸른 바다가 찻잔보다도 작구나.

詠月 달을 노래함

悲悲又喜喜 슬픔과 슬픔 또 기쁨과 기쁨

古古亦今今 옛날 옛날 또 지금 지금

天生大明鏡 하늘이 커다랗고 밝은 거울을 만들어서

照破幾人心 몇 사람의 마음을 비추어 내었을까.

遊伽耶 가야(伽耶)57) 지방을 다니다가

57) 가야(伽耶) : 서기 전후 무렵부터 562년까지 우리 나라의 경상남·북도 서부 지

역에 존재했던 국가들의 총칭.

落花香滿洞 떨어지는 꽃 향기가 골짜기에 가득하고

啼鳥隔林聞 새 소리는 숲 너머에서 들려오네.

僧院在何處 스님과 절은 어디에 있는고?

春山半是雲 봄 산이 반은 구름이로고.

處士亭 처사정(處士亭)

渚禽飛入竹 물가의 새 대숲으로 날아가 버리니

枝動落殘紅 가지가 흔들리며 남은 꽃잎 떨어지네.

亭高呑遠海 정자는 높아서 먼 바다를 삼키고

江近數飛鴻 강은 가까워 날아가는 기러기 셀 수가 있네.

遊西山 서쪽 산으로 가는 길에

暮山客迷路 해 저무는 산에서 나그네가 길을 잃으니

筇驚宿鳥心 지팡이가 자는 새를 놀라게 하네.

鍾鳴西嶽寺 서쪽 산사에서 종소리 울리니

松竹碧雲深 소나무 대나무에 푸른 구름 깊구나.

過扶餘 부여(扶餘)58)를 지나며

58) 부여(扶餘) : 백제 시대에 수도였던 도시이다.

往事皆陳迹 지나간 일이란 모두 케케묵은 자취일 뿐

山川尙不迷 산천은 이를 잘 알고 있지.

衣冠晨月上 의관(衣冠) 위로는 새벽달 떠오르고59)

花草野禽啼 화초엔 들새가 울부짖네.

59) 의관은 왕조 지배자들의 화려한 의상을 말한다. 왕조가 망하고 나자 그 화려하

던 의관들이 들판에 내버려지고 그 위로 달이 떠오른다는 의미이다.

老病吟 늙고 병들어 보니

老去人之賤 늙어지니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고

病來親也疎 병이 오니 가까운 이도 멀어지네.

平時恩與義 평소때의 은혜와 의리가

到此盡歸虛 이쯤 되니 모두가 공허할 따름일세.

寄蓬萊子 봉래자(蓬萊子)60)에게 드리는 시

60) 봉래자 : 양사언의 호.

山蒼蒼海茫茫 산 푸르고 바다 아득하며

雲浩浩雨浪浪 구름 드넓고 비 줄기차네.

何處美人在 아름다운 이 어디에 있나?

望之天一方 하늘 한쪽을 바라보노라.

筆健頹三岳 필세가 활달하여 산악을 기울게 하고

詩淸直萬金 시는 맑아 만금의 가치가 있네.

山僧無外物 산승에게야 다른 무엇이 없고

惟有百年心 다만 백년의 마음이 있을 뿐.

贈一禪子 일(一) 선자(禪子)61)에게

61) 일(一) 선자(禪子) : 휴정의 제자인 일선(一禪, 1533~1608)을 가리키는 듯. 일선

은 호가 정관(靜觀)이며, 휴정의 4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문집으로 『정관집

(靜觀集)』이 있다.

三敎大圓鏡 삼교62)는 대원경63)이나

文章只一能 문장은 다만 하나의 능력에 불과하지.

費工徒汗馬 노력을 해 본들 말을 땀나게 할 뿐이니64)

沙飯亦鏤氷 모래로 밥을 짓고 얼음에 글자를 새기는 일이라.

62) 삼교(三教) : 불교의 교설을 세 종류로 나눈 것으로, 그 세 가지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돈교·점교·원교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여기서는 넓고 깊은 불교

학의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63) 대원경(大圓鏡) : 크고 둥근 거울. 이 세상의 실상을 비춰보는 지혜를 거울에 비

유하여 표현한 말.

64) 전투에 참여한 말이 땀이 나도록 힘껏 달린다는 뜻. 심한 고생을 의미한다.

思量是鬼窟 생각이란 귀신의 소굴이요

文字亦糟粕 문자 또한 찌꺼기일 뿐.

若問解何宗 나는 무엇을 근본으로 하느냐고 묻는다면

捧行如雨滴 받들어 행하기를 빗방울처럼 한다고 하지.

法王峯 법왕봉

山立碧虛半 푸른 허공 가운데로 솟은 산

白雲能有無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는 흰 구름.

仰天一大笑 하늘을 우러러 크게 한번 웃노라

萬古如須臾 찰나같은 만고의 세월.

集孤雲字 고운(孤雲)의 글자를 모아65)

65) 신라시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시에 쓰인 글자를 그대로 활용하

여 지은 시이다.

山中何事奇 산중에서 무엇이 기특한 일인가?

石上多松栢 돌 위에 소나무 잣나무가 무성하도다.

夷險不移心 평탄하고 험난함에 마음 흔들림 없이

四時靑一色 사시사철 한 색으로 푸르도다.

探密峯 밀봉(密峯)을 찾아

千山木落後 천 산에 나뭇잎 떨어진 후

四海月明時 온 세상에 달 밝은 때

蒼蒼天一色 하늘은 푸르고 푸르러 한 색인데

安得辨華夷 어찌 중화니 오랑캐니 구분할 수 있으리.

答南海翁(因事有感)

남해의 늙은이에게 답하다 (어떤 일로 인해 느낀 생각이 있어서 짓다)

南海波雖動 남해에 파도가 넘실대어도

頭流色自蒼 두류산의 빛은 절로 푸르네.

可憐渠發業 가련토다 업을 일으키는 그대

割水與吹光 물을 베고 빛을 불다니.

次李方伯(拭) 관찰사66) 이식(李拭)67)의 시를 보고

66) 관찰사 : 조선시대 각 도에 파견된 행정 책임자.

67) 이식(李拭) : 1522~1587. 여러 관직을 거쳐 이조참판까지 지냈으며, 1566년에 강

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휴정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江海豈無意 강과 바다가 어찌 뜻이 없으리오?

山林亦有心 산과 수풀 또한 마음이 있도다.

不如金玉帶 차라리 금옥의 띠를 차고서68)

與世善浮沈 세상 흐름에 따라 오르내림이 더 나으리.

68) 높은 벼슬을 상징한다.

贈李秀才 이(李) 수재(秀才)69)에게

69) 수재(秀才) : 과거 공부하는 사람, 혹은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寒夜撲飛螢 찬 밤에 날아다니는 반디불이를 잡아다가70)

喃喃讀六經 육경을 중얼중얼 외건만은

十年勞且苦 십 년토록 노력하고 고생하여

所得一虛名 얻는 것은 헛된 이름 하나뿐.

70) 가난한 선비가 날아다니는 반디불이를 잡아 모아서 등불 대신 불을 밝혀 책을

읽었다는 고사가 있다.

惠訔禪子 혜은(惠) 선자에게

菊花將解笑 국화는 이제 막 웃으려 하는데

頭髮不禁秋 머리칼은 가을의 도래를 막지 못하네.

行陰那可記 흐르는 세월 어찌 다 적으리오마는

揮筆寫新愁 붓을 휘둘러 새로 생긴 시름을 써 보네.

次尹方伯 윤(尹) 관찰사의 시를 보고

夜雨鳴松榻 소나무 평상을 울리는 밤비 속에서

靑燈獨自明 푸른 등은 제 홀로 빛을 발하네.

長天爲一紙 먼 하늘을 한 장의 종이로 삼더라도

難寫此中情 내 가슴 속의 정을 다 적기 어려우리.

山居 산에 살면서

山河雖有主 산하는 주인이 없다 하지만

風月本無爭 바람과 달은 본래 다툼이 없어라.

又得春消息 봄소식을 얻고 보니

梅花滿樹生 매화가 나무 가득히 피어났구나.

贈李竹馬 이죽마(李竹馬)71)에게 드림

71) 이죽마(李竹馬) : 죽마는 이종인(李宗仁, ?~1593)의 호. 조선 중기의 무신. 이제

신의 반란을 평정했고 북방 수비에 수차 공을 세웠다. 1593년 진주성이 왜적에

게 포위되자 성을 방어, 끝까지 용전했으나 성이 함락되자 순국했다. 휴정이 이

죽마에게 증정한 시가 문집에 7편이나 실린 것으로 보아 꽤 깊은 교유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閑忙雖異路 한가로움과 분주함의 길은 서로 다르지만

歲月忽同流 세월은 똑같이 흘러버렸소.

相逢說往事 서로 만나서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노라니

白髮黃花秋 흰 머리의 나이에 누런 국화 피는 가을이구료.

送明禪子 명(明) 선자를 보내며

飄飄竹一筇 대나무 지팡이 하나로 표표히 떠나가니

葉落沒行蹤 낙엽 지자 자취조차 사라졌네.

白雲迷去處 흰 구름도 갈 곳 몰라 하누나

棲息定何峯 어느 봉우리에 머물러야 할지.

訪謫客 유배 간 사람을 찾아 가서

春去山花落 봄도 가고 산 속의 꽃도 졌는데

子規勸人歸 두견새는 그만 돌아가라 권유하네.72)

天涯幾多客 하늘 끝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空望白雲飛 부질없이 흰 구름 나는 것을 보았으리.

72) 두견새는 중국 촉(蜀)나라 망제(望帝)가 죽어서 변한 것이라 한다. 망제는 나라

가 망하여 쫓겨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했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 두견새가 되어 그 한을 슬픈 울음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그래서 두견새는

억울하게 쫓겨난 사람이 복귀를 꿈꾸는 상징으로 흔히 사용되어 왔다.

登高賞秋 높이 올라 가을을 완상하다

送眼南天遠 멀리 남쪽 하늘로 눈길을 보내나니

遙山點點靑 먼 산이 점점이 푸르구나.

長生應有苦 긴 인생에 응당 고통도 많으련만

誰拜老人星 누가 노인성73)을 숭배한단 말인가!

73) 노인성 : 목숨을 관장한다고 하는 별.

嘆世 세상을 탄식함

靑山人白髮 산은 푸르건만 사람은 흰 머리가 되었으니

歲月如流星 세월이 유성처럼 빠르도다.

浮生何處好 뜬 구름같은 인생 어딘들 좋은 곳이 있으랴

天地亦冥冥 온 세상이 아득하고 아득할 뿐이로다.

偶吟 우연히

松榻鳴山雨 소나무 평상에 산 비 내리는 소리

傍人詠落梅 옆 사람은 떨어진 매화를 두고 시를 읊는다.

一場春夢罷 한바탕 봄 꿈이 끝나자

侍者點茶來 시자는 차를 따라 오는구나.

過邸舍聞琴 어떤 저택을 지나다가 거문고 소리를 듣고서

白雪亂纖手 흰 눈발처럼 흩날리는 섬섬옥수

曲終情未終 곡이 끝나도 흥취는 끝나지 않았네.

秋江開鏡色 가을 강에는 거울같은 빛이 열리어

畫出數靑峯 몇 개의 푸른 봉우리 그려내는구나.

次許學士遊石門韻

허(許) 학사(學士)가 석문에 갔다가 지은 시의 운에 맞춰

松吟石上月 소나무는 돌 위로 뜬 달을 노래하고

人弄花間琴 사람은 꽃 사이에서 거문고를 희롱하네.

靑山古人眼 청산은 옛사람의 눈

留與後人心 뒷사람에게 마음을 전해 주네.

過湖寺 호수가의 절을 지나며

天門一長嘯 하늘 문이 한번 길게 휘파람 부니

江上白雲飛 강 위의 흰 구름이 드날린다.

暮鍾穿竹露 저물녘 종소리는 대잎에 맺힌 이슬을 궤뚫고

山月隨僧歸 산 위에 뜬 달은 나를 따라 돌아가는구나.

題淸涼影帖 청량국사74)의 영정을 보고

74) 청량국사(淸凉國師) : 화엄학으로 유명한 중국 당나라 때 스님 징관(澄觀,

738~839)의 존칭. 선과 교를 회통하고자 하였으며, 실천을 중시하였다.

八萬大藏經 팔만대장경을

師能彈一舌 스님은 혀 하나를 퉁기어 설파하셨네.

淸風灑金沙 맑은 바람이 금모래 씻어내리고

桂子落秋月 가을 달빛 아래 계수나무 열매 떨어지네.

上郭戎帥 곽재우75) 장군에게 올림

75) 곽재우 : 1552~1617.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서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당

쟁으로 정세가 더욱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벼슬에 뜻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曾學萬人敵 일찍이 만인을 대적하는 능력을 배웠으나

河淸志未酬 황하를 맑게 하려는 뜻을 다 풀지 못하였네.76)

長歌時激烈 긴 노래가 때때로 격렬하니

壯氣凜如秋 씩씩한 기운은 가을처럼 늠름하도다.

76) 황하(黃河)는 중국 북부의 동서를 흐르는 강으로, 황토의 유입으로 인하여 늘

누런 색을 띠었다. 이 황하는 맑아지는 일이 거의 없는데, 황하가 맑아진다는 것

은 세상이 태평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過古戰場 옛 전장을 지나며

山雪河氷裏 산에는 눈 내리고 강물은 얼어붙었는데

當年飮馬人 그 당시 말에게 물 먹이던 사람이여.

黃沙餘白骨 누런 모래에 백골만 남았는데

腥草自靑春 비린내 나는 풀은 그저 푸르기만 하구나.

與趙學士遊靑鶴洞

조(趙) 학사(學士)와 함께 청학동(靑鶴洞)77)을 여행하며

77) 청학동(靑鶴洞) : 지리산에 있는 지명으로, 푸른 학이 서식하는 곳이라 하여 붙

여진 이름. 예로부터 은둔하기 좋은 곳으로 이름이 있었다.

山僧雲水偈 산승은 구름과 물을 노래하고

學士性情詩 학사는 마음의 성정을 읊는다.

同吟題落葉 함께 시를 지어 낙엽에 적어보지만

風散沒人知 바람에 흩어져 아는 이 아무도 없네.

過尹上舍舊宅 윤(尹) 상사(上舍)78)의 옛집을 지나며

78) 상사(上舍) : 생원 혹은 진사를 가리키는 말.

歌舞今寥落 노래와 춤은 이제 조용해지고

松風獨有臺 솔바람에 누대만 홀로 남아 있네.

鳥啼人不見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새들만 지저귀고

怪石眠蒼苔 기암괴석엔 푸른 이끼가 졸고 있네.

隱夫 은거하는 사람

耕鑿無餘事 밭 갈고 우물 파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없는

林泉一老翁 숲과 샘물과 더불어 사는 한 늙은이.

因鶯驚午夢 꾀꼬리 소리에 오수를 깨고 보니

殘雨細隨風 잦아드는 여린 빗줄기 바람 따라 흩날리네.

草堂 초당

月沈西海黑 달 떨어지니 서쪽 바다 컴컴하고

雲盡北山高 구름 사라지니 북쪽 산이 높구나.

何處靑袍客 어디선가 푸른 도포 입은 사람

焚香讀楚騷 향 피우고 이소경(離騷經)79)을 읽는구나.

79) 이소경(離騷經) : 중국 초나라의 굴원(B.C. 343?~B.C. 278?)이 지은 작품. 도덕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을 등용하지 않아 나라가 혼란에 빠진 것을 비관하여 방랑

길에 올라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는 자신의 인생관을 절절하게 표현하였다. 흔

히 나라와 사회를 걱정하는 양심적 지식인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작품 내지는

인물로 인용되어 왔다.

松巖道人 송암 도인

一枕客殘夢 베갯머리에 잠 아직 덜 깨었는데

空中飛鳥過 공중에는 나르는 새 지나가네

落花僧院靜 꽃 떨어지는 절집 고요하기만 한데

泥燕汚袈裟 제비가 물고 가던 진흙이 가사를 더럽히네.

林下閑文字 숲 속에선 글자를 등한히 하니

多多必亂心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을 어지럽힐 뿐이지.

情詩唯一首 정다운 시 한 수만이

可以備吾吟 내 할 말을 갖추어줄 뿐이야.

送鑑禪子之雲遊 구름처럼 떠나는 감(鑑) 선자를 보내며

洗鉢焚香外 발우 씻고 향 피우는 것 이외엔

人間事不知 세상 일 알지 못하네.

想師棲息處 스승을 생각하며 머무는 곳

松檜聒涼颸 소나무 노송나무에 신선한 바람 불어오네.

菜根兼葛衲 나물 뿌리 먹으며 갈옷 입고 지내니

夢不到人間 꿈 속에서조차 인간세상에 가 닿지 않네.

高臥長松下 긴 소나무 아래 편안히 누우니

雲閑月亦閑 구름도 한가롭고 달 또한 한가롭도다.

焚香又洗鉢 향을 피우고 발우를 씻으며

林下水邊身 숲 속의 물가에 사는 몸이라네.

淸苦吾家事 맑으면서 고단한 것이 우리 집안의 일이니

松巖道人 송암 도인

一枕客殘夢 베갯머리에 잠 아직 덜 깨었는데

空中飛鳥過 공중에는 나르는 새 지나가네

落花僧院靜 꽃 떨어지는 절집 고요하기만 한데

泥燕汚袈裟 제비가 물고 가던 진흙이 가사를 더럽히네.

林下閑文字 숲 속에선 글자를 등한히 하니

多多必亂心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을 어지럽힐 뿐이지.

情詩唯一首 정다운 시 한 수만이

可以備吾吟 내 할 말을 갖추어줄 뿐이야.

送鑑禪子之雲遊 구름처럼 떠나는 감(鑑) 선자를 보내며

洗鉢焚香外 발우 씻고 향 피우는 것 이외엔

人間事不知 세상 일 알지 못하네.

想師棲息處 스승을 생각하며 머무는 곳

松檜聒涼颸 소나무 노송나무에 신선한 바람 불어오네.

菜根兼葛衲 나물 뿌리 먹으며 갈옷 입고 지내니

夢不到人間 꿈 속에서조차 인간세상에 가 닿지 않네.

高臥長松下 긴 소나무 아래 편안히 누우니

雲閑月亦閑 구름도 한가롭고 달 또한 한가롭도다.

焚香又洗鉢 향을 피우고 발우를 씻으며

林下水邊身 숲 속의 물가에 사는 몸이라네.

淸苦吾家事 맑으면서 고단한 것이 우리 집안의 일이니

勿親濁富人 탁하면서 부귀한 자는 친하지 말지어다.

假托甁中雀 병 속의 참새에 가탁하였다가

還成夢裏人 도리어 꿈속의 사람이 되고 마나니,

營營求世利 끙끙대며 세속의 이익을 구하는 것은

業火更加薪 업의 불길에 장작을 덧보태는 격이 된다네.

南行卽事 남쪽 지방을 다니다가

可笑人間事 우습구나 인간사여

高才不作家 훌륭한 재주로도 일가를 이루지 못하였네.

寒窓老博士 썰렁한 창문가의 늙은 박사여

捫蝨話生涯 이를 잡으며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네.

江月軒 강월헌(江月軒)80)

80) 강월헌(江月軒) : 6각형의 정자로 남한강변의 가파른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주

변 경치가 뛰어나 남한강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현재 위치는 신

륵사에서 입적한 고려 말의 고승 혜근(惠勤, 1320~1376)의 다비 장소였는데, 그

의 문도들이 정자를 세우고 혜근 생전의 당호인 강월헌이라고 이름 붙였다.

左手捉飛電 왼손으로는 날아가는 번개를 거머잡고

右手能穿鍼 오른손으로는 바늘구멍을 궤뚫을 수 있네.

山雲生定眼 산과 구름은 흔들림 없는 안목을 낳고

江月入禪心 강과 달은 선정의 마음으로 들어오네.

草屋 초가집

石上亂溪聲 돌 위로는 시냇물 소리 어지럽고

池邊生綠草 못 가에는 푸른 풀이 돋아나네.

空山風雨多 고요한 산에 비바람 심하더니

花落無人掃 꽃이 떨어져도 쓸어내는 사람이 없구나.

訪謫客 유배객을 찾아

靑天一雁沒 파란 하늘에 한 마리 기러기 사라지고

碧海三峯出 푸른 바다엔 세 봉우리 솟았네.

笛奏落梅花 피리는 떨어진 매화 노래81)를 연주하는데

客心增鬱鬱 나그네 마음은 더욱 답답하구료.

81) 떨어진 매화 노래 : 피리 연주곡 이름이다.

贈無相居士 무상(無相) 거사에게

宇宙一閑客 우주의 한가로운 한 사람

離家歲月深 집 떠난 세월이 깊었도다.

桃源花竹夢 도원의 꽃과 대나무를 꿈꾸니

楓岳水雲心 단풍 든 산의 물과 구름 같은 마음이라.

嘆世 세상을 탄식함

石火光陰走 세월이 전광석화와도 같이 내달리어

紅顔盡白頭 홍안이 모두 백발이 되었도다.

山中十年夢 산중의 십 년도 꿈일 따름이요

人世是蜉蝣 인간세상이란 하루살이에 불과한 것.

登嶺憶頭流 고개에 올라 두류산을 생각하며

北地新爲客 북쪽 땅으로 새로 온 사람

南天舊主人 남쪽 지방의 옛 주인이로다.

十年山獨在 십 년 동안 산은 홀로 있었건만

千里月相親 천 리 길을 달과 서로 가까이하였네.

南天舊主人 남쪽 지방의 옛주인이

北地新爲客 북쪽 땅으로 새로이 왔네.

千里月相親 천 리 길을 달과 서로 친하였건만

十年山獨碧 십 년토록 산은 홀로 푸르렀네.

 

浮休子 부휴자(浮休子)82)에게

82) 부휴자(浮休子) : 부휴는 선수(善修, 1543~1615)의 호이다. 선수는 휴정과 함께

영관(靈觀, 1485~1571)에게서 동문 수학한 관계이다. 수행이 대단히 뛰어나서

당시의 선풍을 크게 일으키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十年磨一劍 십 년 동안 칼 하나 갈아서

斬盡狐貍肝 여우와 살쾡이의 간을 다 베었네.

箭輕穿鐵鼓 화살은 경쾌하여 쇠북을 궤뚫고

鎚重碎金山 쇠망치는 육중하여 쇠산을 부수네.

臨行情脈脈 이별을 하려니 정은 하염없고

桂子落紛紛 계수나무 열매는 어지러이 떨어지누나.

拂袖忽歸去 소매를 떨치고 문득 돌아갈 때에

萬山空白雲 만 산엔 그저 흰구름만 끼었네.

哭兒 아이를 곡함

二十年前夢 이십 년 전의 꿈이

昏昏一枕中 베개 하나 속에서 어두웠네.

人間生死苦 인간 생사의 고통이여

西去聽柯風 서쪽으로 가서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소리83) 들으소서.

83) 불교에서는 극락이 서쪽에 있다고 하고, 또한 그 곳에서는 나뭇가지에 바람이

불어 갖가지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고 한다.

詠懷示永貞禪子 생각을 읊어 영정(永貞) 선자에게 보여주다

晝夜天開闔 하늘은 주야로 계속 열고 닫으며

春秋地死生 땅은 봄가을로 죽고 살기를 거듭하네.

奇哉這一物 기이하구나, 이 한 물건이여!84)

常放大光明 항상 큰 광명을 발하는도다.

84) 선불교에서 만법의 근원이라고 보는 마음을 가리킨다.

讚栽松道者 소나무를 심던 도인85)을 기림

85) 소나무를 심던 도인 : 달마 이후 5조 홍인의 별칭이다. 홍인은 우두산(牛頭山)

에 소나무를 심어 길렀던 적이 있으며, 4조인 도신을 따라 배우고자 하였으나

몸이 너무 늙은 탓에 죽어 환생하여 7살의 나이로 도신의 문하에 들어가 제자

가 되었다.

兩身一夢覺 두 몸이 한 꿈을 깨었으니

松月冷相照 소나무에 달이 서늘하게 비추도다.

白髮却紅顔 백발이 문득 홍안이 되었으나

千年鶴自老 천 년의 학은 스스로 늙어가네.

題檜嵒方丈 회암방장86)에서

86) 회암방장(檜嵒方丈) : 방장은 고승이 거주하던 처소를 가리킨다. 회암방장은 고

려말 나옹화상과 무학대사가 거처하던 곳이 아닌가 한다.

閑神野鬼窟 잡귀신의 소굴에서도 마음은 한가하니

明眼衲僧居 눈 밝은 수행자가 있어야 할 곳이라.

烹祖又烹佛 조사를 삶고 또한 부처를 삶아버려야

神光爍太虛 신령스런 빛이 태허를 녹이리라.

嘆世 세상을 탄식함

三世世間法 과거 현재 미래의 세상 모습은

猶如夢電雲 꿈이나 번개나 구름과도 같네.

變壞幷不淨 변하여 사라지고 깨끗하지도 않아서

蟲輩亂紛紛 벌레들만 어지러이 들끓는도다.

贈泰安禪子 태안(泰安) 선자에게

不許靑山靑 청산이 푸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不許白雲白 백운이 흰 것을 인정하지도 않네.

石窓有一人 돌 창문에 한 사람이 있어

四顧虛空窄 사방으로 돌아보니 허공이 비좁구나.

人境俱奪 사람과 대상을 모두 빼앗음

梨花千萬片 천 만 조각 배꽃이

飛入淸虛院 맑고 텅 빈 절로 날아드네.

牧笛過前山 목동의 피리소리가 앞산을 지나가는데

人牛俱不見 사람도 소도 모두 보이지 않네.

人境不奪 사람과 대상을 모두 빼앗지 않음

樓閣秦樓閣 누각은 진나라 누각이요

山河漢山河 산하는 한나라 산하라.

桃源有客子 도원에 어떤 나그네 있으니

天外一聲歌 하늘 바깥에 한 자락 노래소리.

四也亭 사야정(四也亭)

水也僧眼碧 물은 스님 눈처럼 푸르고

山也佛頭靑 산은 부처님 머리처럼 파랗네.

月也一心印 달은 일심의 도장이고

雲也萬卷經 구름은 만 권의 경전이라.

念佛僧 염불하는 스님

合掌向西坐 합장하고 서쪽으로 향하여 앉아

凝心念彌陀 마음을 모아 아미타불 외우네.

平生夢想事 평생 꿈 속에서도 생각하는 일은

常在白蓮花 항상 흰 연꽃에 있다네.87)

87) 서방 정토에는 아미타불이 주재하고 있으며, 흰 연꽃이 늘 피어있다고 한다.

覺禪子 각(覺) 선자

好是淸涼地 맑고 시원한 땅 참 좋구나

白雲飛滿庭 흰 구름이 뜰에 가득 날리도다.

視身如草葉 몸을 보기를 풀잎같이 하고서

敷坐眼惺惺 자리 펴고 앉으니 눈빛이 성성하도다.

過鳳城聞午鷄

봉성(鳳城)88)을 지나다가 한낮의 닭 울음 소리를 듣고

88) 봉성(鳳城)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혹은 전라남도 구례군의 옛 별호. 정확하

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髮白非心白 머리는 희어도 마음은 희지 않나니

古人曾漏洩 옛사람이 이미 누설한 것이라.

今聽一聲鷄 이제 한 마디 닭 울음 소리를 듣고서

丈夫能事畢 장부가 해야 할 일 끝냈도다.

忽得自家底 문득 나의 집을 얻으니

頭頭只此爾 사물 하나하나가 다만 이것일 뿐이라.

萬千金寶藏 만 가지 천 가지 금과 보배라 한들

元是一空紙 원래는 한 장의 빈 종이일 뿐인 것을.

贈蓮華道人 연화(蓮華) 도인에게

根身四大聚 몸뚱아리는 네 가지89)가 모인 것이요

大地一樊籠 땅덩어리는 하나의 새장과 같은 것.

山僧觀落日 산승이 떨어지는 해를 보고 있노라니

世界忽成空 세계가 문득 공이 되었네.

89) 네 가지 :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네 가지를 일컬어 사대(四大)라 한다. 인도에서

는 모든 물질은 이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고, 그 사상이 불교에도 그대

로 도입되었다. 사람의 신체 또한 지·수·화·풍의 조합물로 본 것이다. ‘지’는

고체성 물질, ‘수’는 액체성 물질, ‘화’는 열기, ‘풍’은 운동성을 의미한다.

贈德義禪子 덕의(德義) 선자에게

吾家有寶燭 내 집에 보배로운 촛불 있거니

可笑西來燈 가소롭게도 서쪽에서 온 등불이라.90)

半夜黃梅信 한밤중 황매산의 소식91)이

虛傳粥飯僧 헛되이 밥이나 축내는 중에게 전해졌도다.

90) 서쪽에서 온 등불은 달마가 전해 준 선불교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91) 한밤중 황매산의 소식 : 선종 5조 홍인이 황매산(黃梅山)에서 한밤중에 6조 혜

능에게로 법을 전하였다.

講圓覺 원각경을 강론하면서

廓然虛豁豁 텅 비고 확 트였으니

心口絶商量 마음과 입에 어떤 생각도 끊었네.

可憐常寂土 가련하도다, 항상 고요한 이 땅을

終作是非場 끝내 시비 벌이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白日雷聲動 밝은 해 비치는데 우레소리 진동하여

碧潭驚老龍 푸른 못에 늙은 용을 놀라게 하네.

淸風吹鷲嶺 맑은 바람은 영취산92) 고개로 불어오는데

明月上圭峯 밝은 달이 규봉93)에 솟아올랐네.

92) 영취산 : 부처님이 인도에서 설법을 하던 산 이름.

93) 규봉 : 실제 중국에 있는 산봉우리 이름이며, 동시에 당나라의 고승 종밀(宗密)

의 호이기도 하다.

酬天敏禪子 천민(天敏) 선자에게 답하는 시

虛寂本無物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아무 것도 없는데

何勞轉大藏 어찌 수고로이 대장경만 파고드는가?

秋江寒月色 가을 강에 차가운 달빛은

元不屬張王 원래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것을.

草堂詠栢 초당에서 잣나무를 읊다

月圓不逾望 달은 둥글어졌다가도 보름을 넘기지는 않고

日中爲之傾 해는 하늘 가운데로 왔다가는 기울어지네.

庭前栢樹子 뜰 앞에 잣나무94)만

獨也四時靑 홀로 사시로 푸르도다.

94) 잣나무 : 공안에 나오는 나무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선사에게 묻기를, “달

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조주선사가 답하기를, “뜰 앞

의 잣나무니라”라고 하였다 한다. 이것은 화두선에서 대표적인 공안이 되어 수

많은 수행자가 이를 참구하였다.

內隱寂 내은적암

飄泊十年客 십 년토록 유랑하던 나그네

歸來白髮添 돌아와 보니 흰 머리만 더해졌구나.

樵人刈竹盡 나뭇꾼이 대나무를 다 베어버렸으니

何處覓香嚴 어디에서 향엄95)을 찾을꼬?

95) 향엄(香嚴) : 중국의 선승으로, 마당을 쓸다가 돌멩이가 튀어서 대나무에 부딪

히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古意 옛 생각96)

96) 옛 생각이란 과거 사람의 뜻을 이어받았다는 의미이다. 시의 첫 두 구절은 중국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이 지은 시의 일부이다.

風定花猶落 바람 그치자 꽃은 오히려 떨어지고

鳥鳴山更幽 새 우니 산은 더욱 그윽하구나.

天共白雲曉 하늘은 흰구름과 함께 밝아오고

水和明月流 물은 밝은 달과 함께 흘러가누나.

寒林 서늘한 숲

三輪世界碎 삼륜97)의 세계가 다 부서지고

四大形骸分 사대의 형해가 나눠지네.

烏鳶何厚薄 까마귀와 솔개 중에 누가 더 나은가?98)

可臥靑松雲 구름 흘러가는 솔숲에 누워나 봤으면.

97) 삼륜(三輪) : 쇠와 바람과 물로 된 세 바퀴. 불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에는

수미산이 있고, 이 세 바퀴가 수미산을 지탱한다고 한다.

98) 까마귀와 솔개는 둘 다 음식에 탐욕이 많은 새이다.

靈芝禪子 영지(靈芝) 선자에게

道窮心絶處 길이 다하고 마음조차 끊어진 곳

平地起干戈 평지에 전쟁이 일어나는도다.

千人口呿走 천 사람은 입 벌린 채 달아나고

一人笑呵呵 한 사람은 깔깔깔 하고 웃는구나.

心禪子行脚 심(心) 선자가 행각을 떠나다

枯木別春色 고목은 봄빛과 이별하고

羚羊挂石邊 영양은 돌에다 뿔을 걸었네.99)

山川遊歷罷 산천을 이리저리 다니고 나면

還我草鞋錢 나에게 짚신값을 되돌려주시오.

99) 영양은 잠잘 때 나뭇가지에 뿔을 걸고 잔다고 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자

취를 숨기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표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가 말의 개념

과 논리의 맥락을 넘어서 있음을 의미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上布天網子 위로는 하늘그물100)을 펼치고

下設陷虎機 아래로는 호랑이 잡는 함정을 놓네.

單刀直入處 단도직입101) 하는 곳에

高拂大將旗 대장군의 깃발을 높이 떨치리라.

100) 하늘그물 : 하늘이 펼친 법도의 그물.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의 대강을 의미한다.

101) 단도직입(單刀直入) : 칼 하나를 들고 곧바로 들어간다는 말. 복잡한 우회의 과

정을 거치지 않고 본질을 향해 곧바로 치고 들어감을 의미한다.

道雲禪子 도운(道雲) 선자

衲子一生業 수행 납자의 일생 사업이란

烹茶獻趙州 차를 달여 조주에게 드리는 일.102)

心灰髮已雪 마음은 재가 되고 머리칼은 흰 눈이 되어버렸는데

安得念南洲 어찌 이 남염부주103)를 생각하리.

102) 중국 당나라의 조주는 누구에게나 차를 권하였다. 한 일화가 있어 이것이 유명

한 화두가 되었다. 조주가 한 승려에게 여기에 온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승려가

있다고 대답하자, 조주는 ‘차나 마셔라[喫茶去].’ 하였다. 또 다른 승려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는데, 승려가 없다고 하자, 이번에도 조주는 ‘차나 마셔라.’ 하였다.

옆에 있던 원주(院主)가 온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차를 권하고, 온 적이 없는 사

람에게도 차를 권하냐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조주는 원주에게도 ‘차나 마셔

라.’ 하였다.

103) 남염부주(南閻浮州) : 수미산 남쪽에 있다고 하는 땅.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은

세모꼴인데, 염부나무가 무성하며, 오직 이 땅에서만 부처가 출현한다고 한다.

뒤에는 인간 세계 또는 현세를 통털어 이르는 말이 되었다.

應和禪子 응화(應和) 선자

仰天噓一聲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나니

箭盡弓還折 화살도 다하고 활조차 부러졌네.

若也更商量 만약에 다시 무슨 생각을 하려고 든다면

依前入鬼窟 여전히 귀신소굴로 빠져들리라.

有約君不來 약속을 했는데도 그대는 오지 않고

眼隨歸雁盡 돌아가는 기러기 사라지도록 바라보노라니

碧海連天蒼 푸른 바다는 하늘로 이어져 푸르구나.

十里猶春草 십 리 사방이 다 봄풀이요

萬山空夕陽 만 산은 그저 낙조에 물들었구나.

洛中卽事 서울에 있다가 문득

春色歸何處 봄빛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長安百萬家 서울에는 백만의 집이 있구나.

山僧掩門坐 산승이 문을 닫고 앉았으니

空落一庭花 뜨락에 꽃잎 하나 떨어지네.

贈志彦大選之歸寧

지언(志彦) 대선104)이 속가 부모를 찾아뵙는 데 드림

104) 대선(大選) : 승과 시험에 합격한 승려가 처음으로 받는 작위.

敎育恩均重 가르치고 기르는 은혜가 다같이 소중하니

師親禮豈輕 스승과 어버이에 대한 예의가 어찌 가벼우리.

長安纔到日 서울에 도착하는 즉시

聽取子規聲 두견새 우는 소리 들으리라.

禪子歸寧日 스님께서 속가 부모 찾아뵙는 날

江南二月春 강남은 이월의 봄이라네.105)

休將山水衲 산수간을 다니는 승복에다

取染馬蹄塵 말발굽의 티끌을 묻히지는 마소서.

105) 강남은 한강 남쪽을 말하며, 봉은사가 있던 곳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월은 음력

이월로 계절로는 봄에 해당한다.

送芝大師 지(芝) 대사를 보내며

離程葉飛晩 떠나가는 길, 낙엽 날리는 저녁

一水去悠悠 한 줄기 물은 유유히 흘러가네.

斷雁聲悲壯 짝 잃은 외기러기 울음소리도 비장한데

千峯月亦秋 천 봉우리 달 또한 가을이로다.

過古都 옛 도읍을 지나며

暮雲連癈堞 저녁 구름은 무너진 성가퀴로 이어지고

寒雨洗荒臺 차가운 비는 황량한 돈대를 씻는다.

山色靑依舊 산빛은 늘 그렇듯이 푸르기만 한데

英雄幾去來 영웅은 몇 번이나 왔다 갔는지.

幻庵(曾辭爵 故云云) 환암 (일찍이 벼슬을 사양한 적이 있어서 지었다)

富貴不留心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니

功名豈染指 공명에 어찌 뜻을 더럽히리.

世情已作灰 세상에 대한 마음은 이미 재가 되었으니

鼓翼靑雲裏 푸른 구름 속에서 날개짓하네.

身與白雲雙 몸은 흰구름과 짝이 되고

心將明月一 마음은 밝은 달과 하나가 되네.

行行宇宙間 우주 사이를 다니고 또 다니니

自在無倫匹 나만큼 자유자재한 사람 없으리.

答行禪子 행(行) 선자에게 답하다

萬里經年別 수 년 동안 만 리나 떨어져 있어

孤燈此夜心 외로운 등불같은 이 밤의 마음.

何時開一笑 어느 때나 한바탕 웃음 터뜨려볼까

風月對床吟 바람과 달빛 속에 마주 앉아 시를 읊으며.

太熙沙彌歸寧

태희(太熙) 사미가 속가 부모를 찾아뵙는다고 하여

可笑世間愛 우습구나, 세간의 사랑이여

氷銷瓦解時 얼음이 녹고 기와가 흩어지는 때로다.

恩多翻作恨 은혜가 많은 것이 도리어 한이 되고

歡極却成悲 기쁨이 지극한 것이 도리어 슬픔을 이루도다.

圓徹大師 원철(圓徹) 대사

一徹祖師關 조사의 관문 한번 궤뚫으니

不疑三世佛 삼세의 부처106)를 의심하지 않네.

黃梅半夜信 한밤중 황매산의 소식이여

可笑是何物 가소롭구나, 이 무슨 물건인고!

106) 삼세의 부처 :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를 말한다.

圓徹萬重雲 만 겹의 구름을 두루 궤뚫어

永爲曺溪嫡 길이 조계산107)의 적자가 되었도다.

大笑臥空山 크게 웃으며 고요한 산에 누웠으니

月中松子落 달빛 속에 솔방울 떨어지네.

107) 조계산 : 선불교를 크게 일으킨 6조 혜능이 주석하던 곳이 조계산이다. 이후 조

계산은 선종의 상징이 되었다.

元惠長老 원혜(元惠) 장로

閑靜丈夫兒 한가롭고 고요한 대장부여

離塵出世師 티끌세계 벗어난 스님이 되시었네.

一生功與業 일생의 공과 업이란

惟有白雲知 흰구름만이 알리라.

贈華亭道人 화정(華亭) 도인에게

瀟湘竹一枝 소상강108) 대나무 한 가지를

斫去洞庭吹 베어다가 동정호에서 피리 부네.

不是華亭客 연꽃 핀 정자109)의 나그네가 아니라면

誰能此味知 누가 이 맛을 알리오.

108) 소상강 : 중국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강. 동정호(洞庭湖)로 흘러 들어가며, 이

부근에는 대가 많이 난다.

109) 연꽃 핀 정자 : 연꽃 핀 정자는 벼슬을 떠나 자연에 묻혀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

는 공간을 의미한다.

示圓密二禪子 원(圓)과 밀(密) 두 선자에게

黑風起瞋火 검은 바람이 성냄의 불길을 일으키어

生生做鑊湯 살면 살수록 확탕지옥이 되는도다.

古人用心處 옛사람이 마음을 쓰던 곳은

人我定雙亡 나와 남이 결정코 둘 다 사라지는 경지라.

活水淸如鏡 활기찬 물은 맑기가 거울 같고

天光碧一痕 하늘 빛은 푸른 가운데 티 하나

多生漂遠派 여러 생을 먼 파도에 휩쓸려다니니

何日返初源 어느 날에나 처음의 근원으로 돌아갈까.

答座主問 좌주111)의 물음에 답하다

111) 좌주 : 선가에서 경론을 강의하는 스님을 가리키는 말.

百二十邪師 백이십 명의 잘못된 스승이

俱迷眞實義 모두 진실한 뜻을 잘못 알았네.

一念忘又忘 한 생각을 잊고 또 잊으면

身心忽無寄 몸과 마음 문득 맡길 곳 없으리라.

緣心多巧僞 반연하는 마음에 거짓됨이 많아서

妄識亂浮沈 망령된 생각이 오르락 내리락 어지럽구나.

霜劍一揮處 서리같은 검을 한번 휘두른다면

寒光爍古今 써늘한 빛이 고금을 녹이리라.

送鑑禪子之五臺 감(鑑) 선자를 오대산으로 보내며

短髮千莖雪 짧은 머리는 천 가닥의 눈이요

長衫萬片霞 긴 장삼은 만 조각의 안개로다.

涅槃如昨夢 열반이란 어젯밤 꿈과 같고

生死亦空花 생사 또한 허공의 꽃112)이라네.

112) 허공의 꽃 : 실제로 있는 꽃이 아니라 눈병이 생겨 헛것으로 보이는 꽃을 말한다.

贈道能禪子 도능(道能) 선자에게

歷歷離賓主 손님과 주인을 떠나 또렷하고

寥寥絶色空 색과 공을 끊어 고요하기만 하네.

目前勤記取 눈 앞에 보이는 그대로를 부지런히 잘 챙기라

山立白雲中 산이 흰 구름 속에 서 있도다.

次申上舍韻 신(申) 상사(上舍) 시의 운에 맞추어

活活孔夫子 말이 분주하게 많았던 공자

空空釋世尊 말 없이 잠잠했던 석가세존

呑含一口客 입에서 내뱉고 머금었던 두 분 중에

誰識臥雲軒 구름 낀 절에 누운 재미를 어느 분이 아시리오?

禪榻秋光冷 참선하는 평상에 가을빛 차갑고

螢窓月色新 반딧불이 창가에 달빛이 새롭네.

箇中惟一味 그 가운데 오직 한 맛 있으니

愼莫辨甘辛 달다 맵다 가리지 마소서.

贈眞覺禪和 진각(眞覺) 스님에게

莫逐塵緣轉 세속의 인연을 좇아 헤메지 마시고

須歸一念醒 반드시 한 생각 또렷하게 깨어 있어야 하리.

失頭狂走輩 머리를 잃고 미친 듯이 달리는 무리들이여

役役枉勞形 몸만 고생시키느라 끙끙대는구나.

贊達摩眞 달마의 진영을 기림

落落巍巍子 높고 우뚝하신 분이여

誰開碧眼睛 누가 푸른 눈동자를 열었나.

夕陽山色裏 석양 산빛 속에

春鳥自呼名 봄 새는 자기 이름을 부르네.

贊先師眞 옛날 스님의 진영을 기림

剪雲爲白衲 구름을 베어 흰 승복을 짓고

割水作淸眸 물을 잘라 맑은 눈동자를 만들었네.

滿腹懷珠玉 뱃속 가득 옥구슬을 품었고

神光射斗牛 신비로운 빛은 북두성을 비추네.

登白雲山吟 백운산(白雲山)113)에 올라

113) 백운산(白雲山) : 전라북도 장수군과 경상남도 함양군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279m.

白雲山幾疊 백운산 몇 겹인가

身在妙高峰 이 몸은 묘고봉에 올랐도다.

千古扶天勢 천고의 세월동안 하늘을 떠받쳐서

劫風無改容 영겁의 바람에도 변함이 없네.

桂熟香飄月 계수나무 익으니 달빛 속에 향기 드날리고

松寒影拂雲 소나무 차가우니 그림자 구름에 떨치네.

山中奇特事 산중의 이같은 특별한 일을

不許俗人聞 세속 사람은 알지 못하게 하네.

答禪和問 어떤 스님의 물음에 답하여

簷外鳴山雨 처마 너머에는 산비가 울고

窓前點客燈 창문 앞에는 등불이 켜지네.

一參相見了 서로 한번 보면 다 되는거지,

何必問三乘 삼승114)에 대해 물을 것 무엇 있으리.

114) 삼승(三乘) :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부류를 셋으로 나눈 것으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이 있다. 성문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배운 이,

연각은 스승 없이 스스로 인과의 법칙을 깨달은 이, 보살은 나와 남의 해탈을 함

께 추구하는 이를 말한다.

哭亡僧 돌아가신 스님을 곡하다

來與白雲來 오실 적에는 흰구름과 함께 오시고

去隨明月去 가실 적에는 밝은 달과 함께 가시었네.

去來一主人 가고 오는 이 한 주인

畢竟在何處 필경에는 어느 곳에 계신가.

題一禪庵壁 일선암(一禪庵) 벽에 붙임

山自無心碧 산은 무심으로 푸르고

雲自無心白 구름은 무심으로 희도다.

其中一上人 그 속의 한 스님

亦是無心客 또한 무심한 나그네로다.

詠懷 생각을 노래함

病在肉團心 병은 육단심115)에 있으니

何勞多集字 어찌 수고로이 많은 글자를 모으리오.

五言絶句詩 오언절구 시 한 편이면

可寫平生志 평생의 뜻을 다 담을 수 있는 것을.

115) 육단심 : 고기 덩어리로서의 마음.

關東行 관동(關東)의 노래

歲月如流水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고

興亡若去鴻 흥망은 날아가는 기러기와 같구나.

高吟天地外 천지 바깥에서 높이 읊조리니

山海動胸中 산과 바다가 가슴 속에 일렁이네.

移居 옮겨 살다

十年居海上 십 년 동안 바닷가에서 살다가

茅屋大風侵 띠집이 태풍에 쓰러져버렸네.

移入白雲裏 흰 구름 속으로 옮겨 왔더니

萬山惟一心 만 산이 한 마음이로다.

宿瀛洲 영주(瀛洲)에서 자다

鵬去天門廓 붕새116) 떠난 하늘은 드넓기만 하고

三山落桂花 세 산엔 계수나무 꽃 떨어지네.

長風過碧海 긴 바람이 푸른 바다를 지나가고

白月留寒沙 흰 달은 차가운 모래밭에 머무누나.

116) 붕새 : 『장자』에 나오는 새 이름. 한번 날면 9만리를 난다고 한다.

訪松間隱士 솔숲 사이에 은거하는 선비를 찾아

自悅松間屋 솔숲 사이에 지은 집을 좋아하다 보니

松間亦有臺 솔숲 사이에 또한 넓직한 대(臺)가 있구나.

客來不掃石 손님이 와도 돌을 쓸지 않는 것은

惟恐損蒼苔 오직 푸른 이끼 상할까 하는 걱정에서라.

送人之南海 남해로 가는 사람을 전송하며

月入江江水 달은 이 강 저 강의 물로 비춰들고

花連處處春 꽃은 곳곳의 봄으로 이어졌네.

橫天三竹嶺 하늘을 가로지른 삼죽령

萬里獨歸人 만 리 길 홀로 돌아가는 사람.

雙溪方丈 쌍계(雙溪) 방장117)

117) 방장(方丈) : 선종 사찰에서 최고의 지도자, 혹은 그 처소를 가리키는 말. 총림에

서는 방장, 선원에서는 조실이라 한다.

白雲前後嶺 고개 앞뒤로 구름 끼고

明月東西溪 계곡 동서로 밝은 달 지나가는데

僧坐落花雨 스님은 떨어지는 꽃비에 앉고

客眠山鳥啼 나그네는 산새 울음 속에 졸고 있다.

詠秋 가을을 노래함

窓竹夜鳴雨 창가 댓닢에 밤비 소리 울리고

秋梧葉滿床 가을 오동잎 평상에 가득하네

雲收碧海出 구름 걷히자 푸른 바다 드러나고

雁沒靑天長 기러기는 멀리 푸른 하늘로 사라지네.

花山隱者 꽃 핀 산의 은자

洗心不洗耳 마음을 씻되 귀는 씻지 않나니118)

人世已忘形 인간 세상에서 이미 형체를 잊었도다.

抱犢上山去 송아지를 안고 산 위로 올라가니119)

春田一帶靑 봄 밭이 온통 푸르도다.

118) 허유(許由)라는 사람은 요임금이 자신에게 벼슬을 맡기자 못 들을 말을 들었다

고 하며 시냇가로 가서 귀를 물로 씻었다. 이것은 무욕의 삶을 지향하는 도교적

설화이지만, 불교적 관점에서는 귀를 씻기보다는 마음을 씻는 것이 더 근본적

인 일이라는 점을 내세운 표현이다.

119) 송아지를 안고 산에 오르는 것은 은자의 일상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尋雲溪洞 구름 낀 골짜기를 찾아

帆過彈琴石 거문고를 타는 돌 곁으로 배가 지나니

雲生舞鶴臺 학이 춤추는 대에서 구름이 생겨나네.

桃源知不遠 무릉도원이 멀지 않음을 알겠나니

流水落花來 흐르는 물에 복숭아 꽃잎 떠내려오네.120)

120) 전설에 의하면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오는 시냇물을 계속 거슬러 올라갔더니 무

릉도원이 있었다 한다.

別山友 산에 사는 벗과 이별하며

山客送山客 산에 사는 사람이 산에 사는 사람을 보내니

白雲何處尋 흰 구름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松聲月下苦 달빛 아래 소나무 소리는 고통스럽고

山色雨中深 비 속의 산빛은 짙어만 가네.

贈禪長老 선(禪) 장로121)에게 드림

121) 장로(長老) : 학덕이 높고 역량을 갖춘 선지식을 부르는 말.

海暮雲空結 바다에 날 저무니 구름이 부질없이 생겨나고

山寒葉自吟 산이 차가와지니 나뭇잎 절로 소리를 내네.

虛潭描坐影 텅 빈 못은 좌선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秋月照禪心 가을 달은 참선하는 마음을 비추는구나.

夜坐 밤에 앉아서

有客一長嘯 한 나그네가 길게 읊나니

風生萬壑間 바람은 수많은 골짜기에서 생겨나네.

夜深燕子院 밤 깊은 연자원(燕子院)122)

月照淸涼山 달은 청량산을 비추네.

122) 연자원(燕子院) : 절 이름. 『퇴계집(退溪集)』에 보면 안동 서쪽 20리 지점에 있던

절로, 수십 장(丈)의 높이가 되는 미륵불상을 세워 놓아 보는 이를 놀라게 하였

다고 한다.

贈元敏禪子 원민(元敏) 선자에게

出家年二十 출가한 지 이십 년 동안

從我學淸閑 나를 따라 맑고 한가로운 세계를 배웠네.

一生棲息處 한 평생 거처하는 곳은

東國四名山 우리나라 네 명산이로다.

祖室有感 조실 스님이 생각나

十年消息斷 십 년 동안 소식이 끊기었더니

一別死生分 한번 이별한 뒤 삶과 죽음이 나뉘었도다.

秋風萬里客 가을 바람은 만 리의 나그네이니

含淚獨看雲 눈물 머금고 홀로 구름을 쳐다보네.

屛嵒草堂 병암(屛) 초당

人臥草堂上 초당 위에는 사람이 누워있고

江流入古城 옛 성에는 강물이 흘러들어가네.

栽花看蝶舞 꽃나무를 심었더니 춤추는 나비가 보이고

移柳聽鶯聲 버들을 옮겼더니 앵무새 소리 들리네.

天熙禪子 천희(天熙) 선자

塞外將軍令 변방에서 장군의 명령은

政如衲僧家 절집 일과 흡사하네.123)

劍衝龍虎陣 용호진124)에 검이 부딪치자

人血滿黃沙 누런 모래밭에 사람 피가 흥건하네.

123) 전쟁터에서 장군의 명령이 절대적이듯, 부처나 조사의 가르침을 령(令)이라 한다.

124) 용호진(龍虎陣) : 전투에서 작전상 군인의 대열을 갖추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

言前無的旨 말 앞에 명료한 뜻이 없으면

句下絶追尋 언구를 찾아들어갈 길이 없지.

惆悵知音少 슬프구나, 알아줄 사람도 적어

長眠碧洞深 깊고 푸른 골짜기에서 긴 잠을 자노라.

戲次李忠義韻 이충의(李忠義)가 지은 시의 운에 맞추어

莫笑山家淡 산 속 집이 너무 맑다고 비웃지 마시오

白雲閑往來 흰구름이 한가로이 가고 온다오.

古今城市客 예나 지금이나 도시에 사는 사람은

滿面是塵埃 얼굴 가득 티끌이외다.

還鄕曲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래

生來死去處 태어날 때 왔다가 죽을 때 가는 곳

畢竟如何是 결국은 그 어느 곳인지?

太虛本寂寥 태허는 본래 고요할 따름이니

脚下淸風起 발 아래서 맑은 바람이 이네.

送一晶禪子 일정(一晶) 선자에게

半夜開淸話 밤이 깊도록 맑은 대화 나누니

千珠落玉盤 천 개의 구슬이 옥쟁반에 쏟아지네.

錫飛山影晩 저녁 산 그림자 속에 지팡이 옮기노라니

風送水聲寒 바람은 차가운 물소리 전해주네.

靑海白沙行 푸른 바다 흰 모래의 노래

鵾海風常擊 큰 물고기 사는 바다에 바람이 계속 부딪쳐

乾坤不暫閑 하늘과 땅 잠시도 쉬지를 못하네.

人心亦如此 사람의 마음 또한 이와 같아

翻覆萬重山 뒤집기를 만 겹 산처럼 하네.

風生大海中 큰 바다 가운데서 바람이 생겨나

展錦三千里 삼천리에 비단을 펼쳤구나.

何人是上賓 누가 으뜸 손님인가?

楓岳淸虛子 풍악산 청허자125)로다.

125) 이 시의 작자인 휴정을 가리킨다. 휴정의 당호가 청허당이다.

宿雙溪方丈見故人詩

쌍계 방장에 묵다가 벗의 시를 보고

月白霜淸夜 달 밝고 서리 맑은 밤

棖黃橘綠時 등자나무 누렇고 귤은 푸른 시절이라.

孤燈燃客榻 나그네 평상에 외로운 등불 타오르는데

千里故人心 천 리 벗 그리는 마음이라.

金剛山百塔洞 금강산 백탑동(百塔洞)126)

126) 백탑동(百塔洞) : 금강산에 있는 계곡 이름으로, 탑이 많다고 하여 백탑동이라 한다.

雨暗疑無地 비 내리니 어두워져 땅이 없는 듯하더니

雲開忽有山 구름 걷히자 홀연히 산이 나타나 있네.

逢僧一相笑 스님을 만나 서로 한번 웃으니

大得百年閑 백 년의 한가로움을 크게 얻었네.

夢覺 꿈에서 깨어나

高臥邯鄲枕 한단의 베개127)에 편안히 누워

周流百十城 수십 수백의 성을 두루 다녔네.

遽然開一夢 문득 한바탕 꿈을 깨고 보니

殘月半摟明 새벽달이 누각에 걸려 밝구나.

127) 한단의 베개 :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는 고사를 의미한다. 중국 조(趙)나라 서

울인 한단에서 있었다는 이야기로, 밥 짓는 사이에 잠시 꿈을 꾸어 80평생을 경

험했다는 내용이다.

示玉溪主人 옥계(玉溪) 주인에게

屈志爲官日 벼슬살이 하던 시절엔 뜻을 굽혔지만

放懷年老時 이젠 늙었으니 마음을 편히 해야지.

非惟忘利祿 이익과 복록을 잊으려 하는 것만이 아니니

況復外形儀 하물며 바깥 차림새를 신경쓰리오.

夏日 여름날

炎蒸天下日 온 세상이 푹푹 찌는 날

獨坐白雲臺 홀로 흰 구름 나는 대에 앉았네.

淸風會人意 맑은 바람이 사람 마음을 알고서

竹林深處來 대숲 깊은 곳에서 불어오네.

謝送瓜 오이를 보내줌을 감사하며

五月新瓜子 오월에 새로 나온 오이로

田夫慰病僧 농부가 병든 중을 위로해주네.

破來一入齒 쪼개어서 입 속으로 넣었더니

蒼玉骨寒氷 푸른 옥 조각이 뼈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네.

次李秀才韻 이(李) 수재 시에 답하여

無心雲出岫 구름은 무심으로 생겨나지만

有意鳥知還 새는 뜻이 있어 집으로 돌아오네.

儒釋雖云一 선비와 승려가 비록 같다고 하지만

一忙而一閑 한 쪽은 바쁘고 한 쪽은 한가롭다네.

贈朴學錄 박(朴) 학록(學錄)128)에게

128) 학록(學錄) : 조선조 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 학생의 훈육과 학습독려를 맡았던 관리.

君戀千金富 그대는 천금의 부를 그리워하지만

我甘一衲貧 나는 승복 한 벌의 가난함이 좋다네.

莫論窮與達 곤궁하고 영달함을 따지지 말게나

同是夢中人 똑같이 꿈 속의 사람이로다.

賞春 봄의 완상

門前碧柳垂 문 앞에 푸른 버들 드리워져

漏洩春消息 봄 소식을 누설하고 있구나.

喚友踏靑歸 벗을 불러 봄나들이 하고 돌아오니

千山爭暮色 천 산마다 다투어 해 저무는 광경이로다.

亡友嘆 죽은 벗을 탄식하며

人物非吾輩 사람은 이미 우리에게서 떠나갔건만

山川似去年 산천은 지난 해와 그대로로다.

悠悠悲隻影 유유히 걸어가는 슬픈 외그림자

停錫問蒼天 지팡이를 멈추고 푸른 하늘에 물어보노라.

題淳師卷 순(淳) 스님의 저술에 붙여

松鳴驚宿鳥 소나무 바람 소리 자는 새를 깨우고

雲破露靑山 눈이 부서져내려 푸른 산이 드러나네.

一衲淸閑客 승복 한 벌로 사는 맑고 한가한 이는

長年獨掩關 언제나 문을 닫고 지내지.

贈眞禪和 진(眞) 스님에게

人間長役役 사람이 늘 열심히 일하다 보면

不曾半日閑 반나절의 한가로움도 얻기 어렵네.

珍重吾師獨 진중한 우리 스님은

經年不下山 한 해가 지나도록 산을 내려오지도 않네.

蓬蒿一隻箭 쑥으로 만든 화살 하나129)

曾自賣西東 동서남북으로 팔러 다니다가

歸去還來此 다시 여기로 돌아와

臥聽松竹風 누워서 솔바람 대바람 소리 듣누나.

129) 쑥으로 만든 화살은 아무 쓸모가 없는 물건을 의미한다.

秋夜 가을밤

雨霽驚新月 비 개자 보름달이 불쑥 나타나고

夜深魂更淸 밤 깊으니 정신이 더욱 맑아지네.

擁衾眠不得 이불을 둘러써도 잠들지 못하는데

木葉送秋聲 나뭇잎은 가을 소리를 보내주네.

宿圓嵒驛 원암역(圓驛)에 자면서

淸秋未歸客 청량한 가을 돌아가지 못한 나그네

終夜聽子規 밤이 다하도록 두견새 소리 듣누나.

一窓山月落 창에는 산 위의 달 떨어지는데

千里夢相思 천 리 먼 곳 꿈속에서 그리워하네.

淸澗亭 청간정(淸澗亭)

淸澗有聲玉 맑은 산골물이 옥소리를 내니

聲聲洗客心 소리마다 나그네 마음을 씻어주네.

秋天不覺暮 가을하늘이 저무는 줄도 모르는 사이

山月照楓林 산 위의 달이 단풍 숲을 비추고 있네.

誦經贊 경전 독송을 찬탄함

一紙畫千佛 종이 한 장에 천 분의 부처님을 그려놓고

盡力高聲喚 힘을 다해 높은 소리로 부르는도다.

喚之欲應之 그렇게 부르면 응해 주실런지

可謂癡頑漢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紅流洞 홍류동(紅流洞)130) 계곡

130) 홍류동(紅流洞) : 가야산 해인사 입구에 있는 계곡 이름.

東風一吹過 동풍이 한번 불고 지나가니

花落滿溪紅 꽃 떨어져 계곡 가득 붉구나.

山出白雲外 흰 구름 너머로 산이 우뚝 솟았는데

僧歸夕照中 스님은 저녁 노을빛 속으로 돌아가네.

顧影有感 내 그림자를 보고서

一別萱堂後 어버이 한번 이별한 후

滔滔歲月深 세월은 도도히 깊었구나.

老兒如父面 늙어 버린 아이가 어버이 얼굴과 같아졌으니

潭底忽驚心 연못 속을 들여다 보고는 문득 놀래는 마음.

看棋 바둑 두는 것을 보면서

成敗倏如電 이기고 지는 것이 번개처럼 빠르고

昇沈疾若輪 올라가고 내려앉는 것이 수레바퀴처럼 날래구나.

一生如一局 사람의 일생도 바둑 한 판과 같으니

亦如夢中人 이 또한 꿈 속의 사람이로다.

三夢詞 세 꿈 이야기

主人夢說客 주인이 손님에게 꿈 꾼 이야기를 하니

客夢說主人 손님도 주인에게 꿈 꾼 이야기를 하네.

今說二夢客 지금 꿈 꾼 이야기 하는 두 나그네

亦是夢中人 이 또한 꿈 속의 사람이로다.

賽藏大師求偈 장(藏) 대사가 게송을 청하기에

共坐靑山影 청산의 그림자와 함께 앉아

回看落日天 해 저무는 하늘을 바라본다.

長江流不盡 긴 강은 끝없이 흘러만 가니

今古亦如然 고금의 세월도 또한 이와 같도다.

寄新庵主人敬先禪子

신암(新庵)의 주인 경선(敬先) 스님에게 드림

聖凡收掌上 성인과 범인을 손바닥 위에 거두어 들이고

塵刹納胸中 티끌처럼 수많은 세상 가슴 속으로 받아들이네.

却問是誰者 문득 묻노니 이 누구인가?

童頭碧眼翁 민머리에 눈 푸른 늙은이라네.

楓岳山 풍악산

無盡數無盡 끝이 없고 또 끝이 없어

登山更見山 산을 오르면 다시 산이 보이네.

虛空亦可窄 허공도 좁아 보이니

何物大而寬 무엇이 크고 넓다 하겠는가.

賞春 봄의 완상

柳上鶯聲滑 버드나무 위에는 꾀꼬리 소리 매끄럽고

梅枝雪欲飛 매화가지 위에는 눈발이 흩날리려는 듯.

山僧觀物眼 산승의 세상 보는 안목을

不許世人知 세상사람들은 알지 못하리.

送芝師 지(芝) 스님을 보내며

今朝相別後 오늘 아침 서로 이별하고 나면

消息幾時聞 소식 들을 때 언제일지.

明日秋雲隔 내일이 되어 가을 구름에 막히면

思君不見君 그대 그리워하면서도 그대 만나지 못하리.

雜詠 우연히 읊음

天地一虛堂 천지간에 하나의 텅 빈 집

古今一瞬息 고금간에 하나의 순간이라.

其中一主人 그 속의 한 주인

曠劫一顔色 영원토록 한결같은 안색이라네.

千聖猶難測 천 명의 성인도 헤아리기 어려우니

六凡安得知 여섯 범부131)가 어찌 알리오.

八窓虛豁豁 팔방의 창문이 텅텅 비어 있어서

風月自相吹 달빛 아래 바람이 절로 불어오네.

131) 여섯 범부 : 성인이 되지 못하고 평범한 부류에 속하는 지옥·아귀·축생·수라·

인간·천상의 여섯 가지.

十年奔走人 십 년토록 분주하던 사람

戲遂花邊蝶 꽃을 좇는 나비격이었네.

拂枕歸山眠 베개를 떨치고 산으로 돌아와 누우니

淸風生竹葉 댓닢 사이에서 맑은 바람이 생겨나네.

贈別白蓮社處敏禪子

백련사에서 처민(處敏) 선자와의 이별에 드림

別後十三年 이별한 지 십삼 년

今逢情不已 오늘에사 만나니 정이 다함 없구나.

連床夜話長 침상에 나란히 누워 밤 깊도록 이야기하다 보니

澗月低窓紙 창호지에 비친 산골 달이 낮아졌구나.

告別天南去 이별을 고하고 하늘 남쪽으로 떠나간 것은

山紅澗碧時 산은 붉고 계곡물은 푸르던 때였지.

人間眞火宅 인간세상은 참으로 불난 집과 같으니

毋失白蓮期 백련사의 기약을 잊지 마소서.

禪敎流名利 선과 교는 명리로 흐르고

榮華誤世間 부귀영화는 세상을 그르쳤도다.

夢中無限好 꿈 속에 그리던 무한히 좋은 곳

只是在靑山 그곳은 바로 청산이어라.

送英庵主出山

암자의 주인 영(英)132)이 산을 나서는 것을 보내며

132) 영(英) : 휴정의 제자였던 처영(處英), 혹은 인영(印英)으로 추정된다.

一身眞逆旅 이 한 몸은 여관이요

萬事皆浮雲 만사는 다 뜬 구름이라.

如見鴟爭鼠 부엉이가 들쥐를 다투는 것을 보거든

高飛愼不群 높이 날아서 함부로 어울리지 마소서.

산을 나서는 내은적암의 각(覺) 스님에게 글을 써서 경계함

宜棲內隱寂 은적암은 거처하기가 좋으니

地勝更泉甘 땅도 좋고 샘물도 달다네.

却憶新羅主 문득 신라의 임금을 생각하노니

曾來駐此庵 일찍이 이 암자에 와 머물렀었지.

松花兼葛衲 송화 속에 갈옷으로 지내나니

爲法更忘身 진리를 위해서는 몸을 잊는다오.

往古多賢聖 예전에 그 많았던 성현들도

皆曾耐苦人 모두가 고통을 이기던 분이셨지.

謝金信士來訪 김(金) 신사(信士)133)가 방문함을 감사하며

133) 신사(信士) : 남자 신도를 가리킨다.

金公物外客 김공은 물욕을 벗어난 사람이라

抱瑟訪山居 비파를 안고서 산 속 거처로 찾아오셨네.

一曲開心目 한 곡조 울리자 마음과 눈이 열리어

江淸月亦虛 강 맑고 달 또한 텅 비었네.

無限心中事 무한한 심중의 일들

平生說向誰 평생 누구를 향하여 말을 할꼬?

陽春彈一曲 양춘곡(陽春曲)134) 한 곡조 타니

松月滿窓時 소나무와 달이 창에 가득한 때로다.

134) 양춘곡(陽春曲) : 거문고 곡명.

謝行雲禪子之訪 행운(行雲) 선자의 방문에 감사하며

千峯與萬壑 천 봉우리 만 골짜기 속에서

靑鶴共徘徊 푸른 학과 함께 배회하노니

本是山中物 본래부터 산중의 것이건만

淸風引出來 맑은 바람이 이끌어 내었네.

贈李秀才 이(李) 수재에게 드림

喃喃書萬卷 중얼중얼 만 권의 책을 읽어

論古亦論今 옛날을 논하기도 하고 지금을 논하기도 하네.

積學非他術 학문을 쌓는다는 것은 별다른 방법이 아니니

只要攝我心 다만 내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라네.

隱夫 은자

風月非塵世 바람과 달은 티끌 세상과 다르고

山川是畫圖 산과 시내는 그림과도 같아라.

君能向此老 그대 능히 이렇게 늙어간다면

不曰丈夫乎 대장부라 이를 만하지 않겠는가!

庭梧 뜰 앞의 오동나무

半夜鳴山雨 깊은 밤 산속에 비소리 울리어

悽然客夢驚 처연하게 나그네의 잠을 깨우네.

開窓見庭樹 창을 열고 뜰 앞의 나무를 내어다보니

萬葉一秋聲 수많은 잎들 한결같이 가을 소리.

雜興 어떤 감흥

月出千山靜 달 솟은 천 산은 고요하고

春回萬木榮 봄 돌아오자 만 그루 나무 피어나네.

人能知此意 사람이 능히 이 뜻을 알아낸다면

勝讀大藏經 팔만대장경을 읽는 것보다 나으리.

光陰繩不繫 시간은 밧줄로 잡아두지 못하니

衰病藥難醫 늙고 병든 것은 약으로도 고치기 어려우리.

我有眞方術 나에게 정말 좋은 처방이 있으니

心經勉受持 마음의 경전을 힘써 익히소서.

苦下元無苦 고통 속에는 원래 고통이 없고

忙中亦不忙 분주함 속에도 분주함이 없도다.

誰知火宅裏 누가 알리오, 불길 휩싸인 집 속에도

別有好淸涼 시원한 곳이 따로 있음을.

山中贈友 산중에서 벗에게 드림

誰道深林下 누가 말했던가, 깊은 숲 속에서는

鳥鳴山更幽 새 울면 산 더욱 고요해진다고.

與君成二老 그대와 더불어 이제는 두 늙은이가 되었건만

談笑一風流 웃고 대화하는 것이 하나의 재미로다.

過古寺 옛 절을 지나면서

病樹蟬聲咽 병든 나무에 매미 우는 소리

寒塘鳥影回 차가운 연못엔 새 그림자 맴도네.

巋然餘古殿 남은 옛 법당 훤칠하건만

千佛一莓苔 천불엔 한결같이 이끼 끼었네.

因事有感 어떤 일로 인해 느낌이 있어

巧笑枕邊斧 아리따운 웃음은 베갯머리의 도끼요

甘言席上蛇 달콤한 말은 침상 위의 뱀이로다.

老夫有眼疾 이 늙은이는 눈병이 있어

長對決明花 오래토록 결명자135) 꽃을 마주하노라.

135) 결명자 : 시력에 좋다고 알려진 식물의 한 종류.

一禪子 일(一) 선자에게

山碧烟無色 산 푸르니 안개가 빛을 잃고

花殘竹有春 꽃 시드니 대나무에 봄이 있네.

惡衣甘守節 거친 옷을 입고도 달게 지키소서

嵒谷好藏身 몸을 간수하기에는 바위 골짜기가 좋으리.

松軒 소나무가 있는 집

林深多葉密 숲이 깊으니 무수한 잎들이 빽빽하고

衆鳥集吾廬 온갖 새들도 내 집으로 모여드네.

獨臥東軒下 집 동쪽에 홀로 누웠더니

松窓月入虛 소나무 보이는 창문으로 달빛이 허공에 비쳐드네.

詠懷 생각을 읊다

風行雲吐月 바람이 부니 구름은 달을 토하고

樹密葉生秋 무성한 나뭇잎은 가을을 낳는구나.

堆枕起增歎 베개 밀치고 일어나니 탄성이 더해지고,

長江不盡流 긴 강은 다함 없이 흘러가네.

西來曲 서쪽에서 온 곡조

西來這一曲 서쪽에서 온 이 한 곡조

千古沒人知 천고에 아는 사람 없구나.

韻出靑霄外 푸른 하늘 너머로 소리 울리니

風雲作子期 바람과 구름만이 알아주는구나.

性默 성품의 고요함

身心俱不動 몸과 마음 모두 움직이지 않으니

性默以爲宗 성품의 고요함을 근본으로 하네.

祖印高提處 조사의 경지 높이 걸린 곳

風搖月影松 달빛 아래 소나무 바람에 흔들리네.

贈念佛僧 염불하는 스님에게

參禪卽念佛 참선이 곧 염불이요

念佛卽參禪 염불이 곧 참선이라.

本心離方便 근본 마음이란 방편을 떠난 것이니

昭昭寂寂然 밝고 밝으며 고요하고 고요하니라.

贈圓禪子 원(圓) 선자에게 드림

人人皮有血 사람마다 가죽 속에 피가 있으니

可忍消白日 그냥 하루를 지낼 수가 있으랴.

斷臂豈徒然 팔을 자른 것136)이 어찌 그냥 그리했으리?

及時生死決 늦기 전에 생사를 결판지어야 하리.

136) 선종을 창시한 달마에게 혜가가 찾아와 배움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팔을 잘

랐다 한다.

贈一靈禪子 일령(一靈) 선자에게

一靈心地月 하나의 신령스런 마음 속 달

六識海中沈 육식137)은 바다 속으로 빠져드네.

擧目望天外 눈을 들어 하늘 멀리 바라보니

淸光徹古今 맑은 빛이 고금을 궤뚫는도다.

137) 육식(六識) : 의식을 형성하는 여섯 가지.

謝金樂士來訪 김(金) 악사(樂士)의 방문을 감사하며

客來春日暮 저무는 봄날에 손님이 오시어

爲我一彈琴 나를 위해 거문고 한 곡조 타시는구료.

鳥啼花落處 새 울고 꽃 떨어지는 곳

山影倒江心 산 그림자 강물 속에 거꾸로 섰네.

自嘲 스스로를 조롱함

天地一閑客 하늘과 땅 사이에 한가로운 한 사람

曰惟忘世人 오직 세상을 잊은 사람이라 하네.

雲山不辜我 구름과 산이 나를 저버리지 않고

風月亦從貧 바람과 달 또한 나와 함께 가난하도다.

永郞嶺 영랑령(永郞嶺) 고개

步虛聲斷後 허공을 디디어 소리 끊어진 이후로는

無復想形容 다시는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네.

雨洗孤輪月 비가 저 외로운 달을 씻어주니

風驅萬壑松 바람은 만 골짜기 소나무를 스쳐 달리네.

花開洞 화개동(花開洞)138)

138) 화개동(花開洞) : 지리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 한겨울에도 꽃이 피는 안온

한 곳이라고 하여 ‘화개동’이라 하였다.

花開洞裏花猶落 화개동(花開洞)에는 꽃이 오히려 떨어지고

靑鶴巢邊鶴不還 청학소(靑鶴巢)에는 청학이 오질 않네.

珍重紅流橋下水 보배로운 홍류교 아래의 물이여

汝歸滄海我歸山 너는 푸른 바다로 가지만 나는 산으로 돌아간다네.

望鄕 고향을 바라보며

白雲千里萬里 흰 구름은 천 리 만 리

明月前庭後庭 밝은 달은 앞뜰 뒤뜰

惆悵鄕關不去 슬프구나 고향을 가지 못하니

洛陽柳色靑靑 서울의 버들 빛이 푸르고 푸르도다.

挽詞 죽음을 애도하며

山寂寂海茫茫 산은 고요하고 바다는 아득하기만 한데

風淡淡烟蒼蒼 바람은 맑고 안개는 푸르스름하구나.

孤魂何處在 외로운 혼은 어느 곳에 있는지

目斷天之方 하늘 한 모퉁이에 시선이 멈추네.

遊漢江 한강에서 놀다

楊柳靑靑朝雨過 아침비 지나가자 버들이 푸르고

東風微動水如烟 동풍이 살짝 불자 물은 안개와도 같구나.

一聲玉笛舟中出 배 위에 울려퍼지는 옥피리 소리

漁子指云江上仙 어부는 강 위의 신선이라 일컫네.

送靑蓮禪子之楓岳 풍악산으로 가는 청련(靑蓮) 선자를 보내며

靑蓮禪子向楓岳 청련선자가 풍악산으로 향하니

足下江山重復重 발 아래 강과 산이 겹겹이로고.

隻影飄飄何處去 외로운 그림자 표표히 어디로 가는고?

白雲萬里蒼茫中 아득히 푸른 빛 속에 만 리 흰구름이로다.

栽松菊 소나무와 국화를 심으며

去年初種庭前菊 지난 해 처음 심은 뜰 앞의 국화

今年又栽檻外松 올해는 또 난간 너머 소나무를 심었네.

山僧不是愛花草 산승은 화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要使人知色是空 사람들에게 색즉시공의 이치를 알게 함이라.

雪岳山花喦寺 설악산 화암사(花寺)139)

139) 화암사(花喦寺) : 이 절은 769년에 진표율사가 창건한 화엄사(華嚴寺)를 가리키

는 듯하다.

鳥飛碧海長天外 새는 푸른 바다 먼 하늘 너머로 날고

人臥靑山落照中 사람은 푸른 산 낙조 속에 누워 있네.

前澗雪波鳴石齒 앞 계곡물 눈처럼 흰 물결은 뾰족한 바위를 울리고

後園紅雨逐春風 뒤뜰의 붉은 꽃비는 봄바람 좇는구나.

夢過李白墓 꿈에 이백(李白)의 묘를 지나다

過客悠悠千古恨 오래토록 천고의 한을 품은 지나는 길손

山靑雲白首空回 푸른 산 흰 구름을 부질없이 뒤돌아 보네.

當年把酒人何去 그 당시에 술잔 잡았던 이 어디로 갔는지?

杳杳長天月自來 아득히 먼 하늘에 달이 떠오르네.

還鄕 고향 나들이

余丱年孤哀 十歲離家 三十五歲還鄕, 則昔之南鄰北閭 蕩然爲耕 桑麥

靑靑 動搖春風耳. 不勝哀楚 書懷于廢宅之壁 一宿而還山焉.

내가 어린 아이 적에 부모를 잃고 10세에 집을 떠났다가 35세에 고향에 돌

아와 보니, 예전의 남쪽 이웃과 북쪽 마을이 모조리 경작지로 변하여 뽕나

무와 보리만이 청청하게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에 애절함을 이기지

못하여 쓰러진 집의 벽에 느낀 바를 시로 적어 붙이고 하룻밤 자고 산으로

돌아왔다.

三十年來返故鄕 삼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니

人亡宅癈又村荒 사람들은 죽고 집은 쓰러지고 마을도 황폐했구나.

靑山不語春天暮 청산은 말이 없는데 봄날은 저물어가고

杜宇一聲來杳茫 어디선가 두견새 소리 아득히 들려오네.

一行兒女窺窓紙 아녀자들은 창문 틈으로 살펴보고

鶴髮鄰翁問姓名 흰머리 이웃노인은 이름을 물어보네.

乳號方通相泣下 어릴 적 이름을 듣고서야 서로 눈물 흘리는데

碧天如海月三更 바다와 같은 푸른 하늘에 밤 깊은 달이로다.

斷髮日書懷 머리 깎는 날의 회포

之乎取味管城公 문자에 맛들인 글쟁이가

二十年前錯用工 이십 년 동안 엉뚱한 노력을 하였도다.

一覺此身同幻夢 이 몸이 환몽과 같음을 깨달으니

世間無物不爲空 세상에 공이 아닌 것이 없도다.

愛名愛利身輕薄 명리를 좋아하면 몸이 경박해지나니

二十年前苦海漂 이십 년 동안 고통의 바다를 떠다녔네.

一夜細聽禪語了 하룻밤 선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듣고는

朝將靑髮就銀刀 그날 아침 바로 푸른 머리카락 은도에 맡기었네.

蓬萊草堂 봉래산140) 초당(草堂)

140) 봉래산(蓬萊山) : 도교 신선사상에서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장소의 하나이다. 한

국에서는 여름 금강산을 특별히 봉래산이라고 불러 왔다.

處處開花遠近迷 여기 저기 흐드러지게 꽃이 피니

幾多紅雨落前溪 수많은 붉은 꽃비가 앞 시냇물에 떨어지네.

黃庭讀罷一回首 황정경141) 읽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八萬峯頭月欲低 팔만 봉우리에 달이 나지막하구나.

141) 황정경(黃庭經) : 심신의 수련을 통해 신선의 경지를 추구하는 도교 경전의 하나.

送天雨之蓬萊 천우(天雨) 스님을 봉래산으로 보내며

靑海白沙新活計 푸른 바다 흰 모래는 새로이 살아갈 곳이며

千嵒萬壑舊因緣 천 바위 만 골짝은 지나간 인연이로다.

送爾南天雲斷處 그대를 구름조차 끊긴 남쪽 지방으로 보내노라니

老夫回首一潸然 늙은이 고개 돌리고 한동안 눈물 흘리네.

呼犢鳥 호독조142)

142) 호독조(呼犢鳥) : 전설에 이 새는 전생에는 소치는 머슴이었다가 현생에는 새가

되어 태어났다고 한다. 우는 소리가 흡사 소를 모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송

아지를 부르는 새’라는 뜻으로 ‘호독조’라 한다.

前是牧童今是鳥 전생에는 목동이었다가 지금은 새가 되어

年年猶愛舊春風 해마다 그 시절 봄바람을 그리워하네.

山深樹密無尋處 깊은 산 빼곡한 나무 찾을 곳 없건만

呼犢一聲烟雨中 송아지 부르는 한 소리 안개비 속에 들려오네.

病懷 병 중의 생각

春深院落客多病 봄 깊은 뜨락에 병 많은 사람

雨過池塘愁閉門 비 내린 연못에 근심으로 문을 닫았네.

童子走云蓮出水 동자는 달려와서 연꽃이 물 위로 솟았다 하고

老僧來報竹生孫 노승은 대나무 순이 돋았다고 알려주네.

淸虛堂 청허당(淸虛堂)143)

143) 청허당(淸虛堂) : 청허당은 휴정이 거처하던 건물의 호칭이며, 동시에 자신의 호

이기도 하다.

草戶柴門長不閉 사립문 언제나 닫지도 않은 채

月明高臥北窓前 달 밝을 땐 북쪽 창문 앞에 높이 누워보네.

莫言隱者耽寥寂 은자가 고요함을 탐닉한다 말하지 마소서

內外淸風是管絃 안팎의 맑은 바람이 바로 관현악이로다.

老入頭流專一壑 늙어서 두류산 한 골짜기에만 있으면서

碧雲寒竹可安身 푸른 구름 서늘한 대만 있어도 몸을 편안히 할 수 있네.

從今永斷西歸計 이제부터 서쪽으로 돌아갈 계책144)일랑 영원히 끊어버리면

免向人間更問津 사람들에게 나루터145) 묻는 일을 면할 수 있으리.

144) 서쪽으로 돌아갈 계책 : 죽어서 서방에 있다는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계책.

145) 나루터 : 고통의 강을 건너 저 언덕[피안, 해탈]으로 건너갈 수 있는 나루터. 해

탈의 길목을 의미한다.

通長老 통(通) 장로

一衲一瓢一間屋 누더기 한 벌 물병 하나에 집 한 칸

一生長臥白雲山 일생을 흰 구름 낀 산에서 지내시네.

柴門草戶無迎送 사립문에 맞이하고 보내는 사람조차 없으니

明月淸風自往還 밝은 달 맑은 바람만이 절로 오가네.

送慧聰禪子 혜총(慧聰) 선자를 보내며

南北東西無定着 동서남북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서

生涯只在一枝筇 한 평생 다만 지팡이 하나 뿐.

舌頭細嚼烟霞味 혀 끝엔 안개의 맛을 느끼면서

直入千峯更萬峯 천 만의 산봉우리로 들어갈 뿐이네.

行脚僧 행각승

春從東海南飛錫 봄에는 동해에서 남쪽으로 지팡이를 옮기더니

秋向西山又北方 가을에는 서쪽 산에서 다시 북쪽으로 향하네.

三百六旬長擾擾 삼백 육십 일을 늘 분주히 다니기만 하니

不知何日到家鄕 어느 날에나 집에 도착할지 알 수가 없네.

贈別李竹馬(仁彦) 죽마 이인언과 이별하면서

十年故友初相見 십 년 된 친구 처음 만났을 때

說盡山雲海月情 산과 구름과 바다와 달의 정을 다 토로하였네.

握手臨溪還惜別 손을 잡고 계곡에 이르러 아쉬운 이별을 하자니

一林啼鳥送春聲 온 숲에 새 울음소리 봄의 소리 들려주네.

送應沙彌之楓岳 풍악산으로 가는 응(應) 사미를 전송하며

碧草長堤只一筇 푸른 풀 긴 언덕에 다만 지팡이 하나

白雲無路可追蹤 길도 없는 흰 구름을 좇아갈 수 있을런지?

從今夜夜關東月 지금부터 밤마다 관동146)의 달

應望天涯八萬峯 하늘 끝 팔만 봉우리를 바라보리라.

146) 관동 : 대관령 동쪽 지역을 이른다.

送人赴京 서울로 가는 사람을 전송하며

四十年來老判事 나이 마흔의 늙은 판사147)

性甘雲水臥靑嵐 천성이 자연을 좋아하여 산에 깃들어 사노라.

有人若問棲身處 누가 사는 곳을 묻거들랑

知異山中一草庵 지리산 속의 한 초가 암자라 하시오.

147) 판사(判事) : 지은이는 30세(1549)년에 선과에 급제하여 선종과 교종을 총괄하

는 선교양종판사가 되었으나 스스로 수행자의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37세

에 사직하였다.

寄天吼山年兄 천후산(天吼山)148)의 연형149)에게

148) 천후산(天吼山) : 설악산 울산바위의 별칭. 바람이 불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149) 연형(年兄) : 과거 시험에 동시에 합격했던 동료를 일컫는 말. 여기서는 승과시

험 합격 동기를 말한다.

東西渺渺思何許 동서가 멀고 아득한데 얼마나 그리운지,

不見尊兄已五年 형을 만나지 못한 지 벌써 오 년이구료.

夜夜夢魂相會處 밤마다 꿈속에서 혼이 서로 만나는 곳

連天靑海白鷗邊 하늘과 맞닿은 푸른 바다의 흰 갈매기 나는 그 곳이로다.

別應禪子 응(應) 선자와 이별하며

送別故人靑鶴洞 친구와 송별하는 청학동

白雲流水幾重重 겹겹의 흰구름과 흐르는 물.

欲知此後相思處 이 다음에 서로 어디서 그리워할지?

月照千山半夜鍾 달빛 비치는 천 산에 깊은 밤 종소리 울리는 곳이겠지.

謝李竹馬來訪 이죽마의 내방에 감사하며

竹杖春風千里客 봄바람 속에 대지팡이 짚고 온 천 리의 나그네

松窓夜雨十年燈 소나무 보이는 밤비 내리는 창문에 십 년 만의 등불

含情欲說前身事 정을 품고 전생의 일을 말하려니

笑殺鄰單一老僧 우습구나, 이웃의 한 노승이었구료.150)

150)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속인이 전생에 함께 수행하던 도반 스님이었다는 이야

기가 있다. 자신을 찾아온 이죽마가 전생의 도반이었음을 말한다.

太白山 태백산(太白山)151)

151) 태백산(太白山) : 강원도 영월군과 경상북도 봉화군에 걸쳐 있는 산. 휴정이 승

과에 급제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의 직위까지 맡게 되었으나, 수행

에 전념하고자 하는 의지로 1577년(38세)에 금강산·지리산·태백산·오대산·

묘향산 등으로 운수행을 떠났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이 시가 지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混沌骨頭磨碧落 들쑥날쑥한 바위 봉우리 하늘을 쓰다듬는 곳에

山僧開鑿立茅庵 산승은 터를 닦아 암자를 세웠네.

傍人指點無窮域 곁에 있던 사람이 끝없이 펼쳐진 쪽을 가리키니

一片中原接海南 한 조각 들판이 바다 남쪽으로 이어졌구나.

自嘲 스스로를 비웃음

大抵人生年齒貴 대저 인생이란 나이가 소중한 것인데

如今方悔昔時行 이제사 지난 시절의 행동이 후회스럽구나.

何當手注通天海 어떻게 하면 하늘 바다152)의 물을 끌어다 대어

一洗山僧判事名 산승의 판사 이름을 단번에 씻어버릴까.

152) 하늘 바다 : 원래는 통천(通天)이라는 별 이름. 하늘의 별은 각각 맡은 소임이 있

다고 하는데, 통천성은 관개의 일을 맡아서 관장한다고 한다.

賽成方伯求韻 성(成) 방백(方伯)153)의 청으로 시를 지음

153) 방백(方伯) : 각 도의 행정책임자였던 관찰사(觀察使)의 별칭이다.

衾裏戈矛杯鴆毒 이불 속에 창칼이 있고 술잔 속에 독이 들었으니

莫因親昵漏吾微 나하고 친하다고 나의 은미한 생각을 누설하지는 마시오.

世間亦有平田地 세간에도 평평한 땅이 있을 것이니

端坐虛懷泯是非 단정히 앉아 마음을 비우고 시비를 소멸시키소서.

謝鑑禪子來訪 감선자의 내방에 감사하며

十年衰病掩柴扉 십년 동안의 병고로 사립문을 닫고 지냈더니

水遠山長客到稀 물도 멀고 산도 멀어 오는 손님 드물었네.

林下鳥啼如有思 숲 아래 우는 새도 그리움이 있는 듯

白雲深處一僧歸 흰 구름 깊은 곳에 한 스님이 찾아오셨네.

遊龍門晩泊驪江

용문산(龍門山)154) 가는 길에 날 저물어 여강(驪江)에 배를 대고

154) 용문산(龍門山) :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산으로, 여기에 용문사(龍門寺)라는 유

명한 사찰이 있다.

數聲長笛散雲窓 몇 가락 긴 피리소리가 구름 보이는 창가로 흩어지고

松上奇禽忽作雙 소나무 위로는 기이한 새가 홀연히 쌍을 이루네.

晩泊孤舟神勒寺 날 저물어 신륵사에 외로운 배를 대니

更看明月落秋江 밝은 달이 가을 강으로 떨어지네.

贈白雲處士 백운(白雲) 처사

不是人間不是仙 인간도 아니요 신선도 아니면서

耕山釣月度流年 산을 경작하고 달을 낚으면서 세월을 보내누나.

皇王帝伯非吾事 임금이나 재상과 같은 것은 나와는 무관한 일

蛙鼓蚊雷土榻邊 흙침상 곁 개구리 울음 북소리 같고 모기 소리 우레와 같구나.

賞秋 가을을 완상하다

遠近秋光一樣奇 원근의 가을 빛이 한결같이 기이하기만 한데

閑行長嘯夕陽時 석양 무렵 한가로이 거닐며 길게 시를 읊노라.

滿山紅綠皆精彩 산 가득히 울긋불긋 몹시도 아름답구나,

流水啼禽亦說詩 흐르는 물소리 우는 새소리도 시를 읊는 듯.

朴上舍草堂 박상사의 초당에서

浮雲富貴非留意 뜬 구름같은 부귀엘랑 뜻을 두지 아니하거늘

蝸角功名豈染情 공명을 다투는 데 어찌 마음을 더럽히리.

春日快晴春睡足 봄날 맑은 날씨 낮잠을 실컷 자고 나서

臥聽山鳥百般聲 드러누운 채 온갖 산새 소리 들어 보네.

走次朴雲卿韻 박운경(朴雲卿)의 시에 운을 맞추어

我是鸞翔逐彩雲 나는 난새가 되어 오색 구름을 좇고

君爲蘭葉吐奇芬 그대는 난잎이 되어 기이한 향기 내뿜네.

山林朝市皆天性 산중이든 저자거리든 모두가 천성에 따른 것이니

一世行藏燕尾分 일세의 행실이 제비꼬리처럼 분명하리라.

過柯亭有感 과가정(過柯亭)에서 느낀 바 있어

新沙已換古沙岸 예전 모래 언덕이 새 모래로 바뀐 후

二水洲中白鷺閑 강 가운데 삼각주에 백로가 한가롭구나.

舟子不知陵谷變 뱃사공은 지형이 바뀐 줄도 모르고

逢人猶道舊江山 만나는 사람마다 예전 강산을 묻는구나.

登天王嶺 천왕령(天王嶺)155)에 올라

155) 천왕령(天王嶺) :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시의 내용으로 보아

지리산의 서쪽 지역에 있는 고개 이름인 듯하다.

萬壑泉聲處處聞 골짜기마다 샘물 소리 들려오는데

奇嵒古木勢難分 기이한 바위와 오래된 나무들이 뒤엉켜 있구나.

東行明日咸陽道 내일은 동쪽 함양156)으로 가려는데

回首頭流是白雲 두류산 돌아보니 흰 구름에 뒤덮였네.

156) 함양 : 경상남도에 있는 지명. 지리산(일명 두류산)의 서남부에 있다.

還鄕曲 고향으로 돌아옴

嚗然放杖天魔走 쾅 하고 주장자 내려놓으니 마귀들이 다 달아나고

古路分明脚不差 옛 길157)이 분명하니 발걸음 틀림 없네.

生死去來爲一貫 죽고 살고, 가고 옴이 하나일 뿐이니

囉囉哩哩哩囉囉 라라리리 리라라.

157) 옛 길 : 선각자들이 걸어갔던 길.

元惠長老 원혜(元惠) 장로에게

八字打開人不識 운명이란 열려 있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落花三月睡初醒 꽃 지는 삼월에야 봄잠이 어렴풋이 깨어나네.

一雙碧眼淸如水 물과 같이 맑은 한 쌍의 맑은 눈

坐奪乾坤日月明 앉은 채로 건곤과 일월의 밝음을 빼앗네.

覺行大師 각행(覺行) 대사

雲房高臥遠塵紛 구름 낀 방에 높이 누워 세속의 먼지를 멀리하나니

只愛松風不閉門 다만 솔바람을 좋아하여 문도 닫지 않네.

一柄寒霜三尺劍 서릿발같은 세 척 검을 한 손에 쥐고서

爲人提起斬精魂 세상 사람 위하여 번뇌망상을 베어버리네.

僧兼山水三知己 중과 산과 물의 셋은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요

鶴與雲松一世間 학과 구름과 솔은 함께 살아가는 벗이라.

虛寂本心如不識 텅 비고 고요한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此生安得此身閑 어찌 이 몸의 편안함을 얻을 수 있으리.

示離幻禪子 이환(離幻) 선자에게

圓頓二門曾立命 일찍이 원교와 돈교158) 두 공부에 뜻을 두었고

曺溪一句亦安身 조계의 한 구절159)에 또한 몸을 편안히 하였네.

靑山猶唱還鄕曲 청산에서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온 노래를 부르니

定是禪家休歇人 정녕코 선가의 휴식하는 사람이로다.

158) 원교와 돈교 : 원교는 치우침 없이 진리를 원만하게 갖춘 가르침, 돈교는 점차적

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순간적으로 진리를 터득하게 하는 가르침이란 뜻이다.

159) 조계의 한 구절 : 육조 혜능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眞如鏡上鼓心機 진여의 거울 위에서 마음이 고동치고

寂滅海中翻識浪 적멸의 바다 속에서 식160)의 물결 출렁이네.

一喝倒鋒生死軍 한마디 고함으로 생사의 군사를 물리치니

太虛自在飛靑杖 태허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나다니네.

160) 식(識) : 팔식.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개념으로 번뇌의 근원이 된다.

一生無事臥雲間 일생을 일 없이 구름 사이에 편안히 사니

却笑東坡半日閑 소동파의 반나절 한가로움을 비웃노라.

得失是非都放下 시비와 득실을 다 버리고

戲牽跛鼈載三山 세 산을 짊어진 느림보 자라161)를 장난삼아 이끌어보네.

161) 동해에 신선이 산다는 세 산이 있는데, 상제가 자라를 시켜 세 산을 떠받치게 하

였다 한다.

登高望海 높이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虛空無內亦無外 허공은 안도 밖도 없으니

南北東西逐妄知 동서남북이란 망령된 생각일 뿐.

春秋風月伸還屈 봄과 가을, 바람과 달은 순환을 거듭하는데

五岳滄溟一髮吹 큰 산과 넓은 바다는 터럭 하나 날리는 듯 같구나.

次允大師韻 윤(允) 대사 시의 운에 맞추어

對面何論格外禪 무엇 하러 얼굴 마주하고서 격외선162)을 논하리오?

一眉新月挂靑天 눈썹 같은 새 달이 푸른 하늘에 걸렸거늘.

海爲硯水山爲筆 바다를 먹물로 삼고 산을 붓으로 삼더라도

難寫胸中無盡篇 가슴 속 무진장한 생각들을 다 적을 수 없으리.

162) 격외선(格外禪) : 언어와 논리의 형식을 벗어난 선 수행법.

目擊昭然一味禪 일미선163)을 분명히 보았지

入窓松月正當天 창문으로 보이는 소나무의 달 하늘에 떠 있네.

始知此性離文字 이제사 이놈의 성품이 문자를 떠나 있음을 알겠거니

枉向華嚴讀萬篇 쓸데없이 화엄경을 만 번이나 읽었구나.

163) 일미선(一味禪) : 언어문자에 의하지 않고 한 순간에 깨달음을 얻는 선 수행법.

書退溪卷 퇴계(退溪)164)선생의 책에 쓰다

164) 퇴계(退溪) : 조선 시대 최고의 유학자로 인정 받는 이황(1501~1570)의 호.

伏羲數理三才主 주역의 이치는 천지의 주인이고

孔子綱常萬世師 공자의 윤리는 만세의 스승이라.

忠恕敬誠公已達 충(忠)과 서(恕)와 경(敬)과 성(誠)165)을 당신 이미 통달하였으니

海東天地一男兒 해동 천지에 진정한 남아로다.

165) 충(忠)과 서(恕)와 경(敬)과 성(誠) : 유학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上敎師 가르치는 선생에게 올림

未明自己外邊走 자기도 밝히지 못하면서 바깥으로 내달리며

妄作人師慙宇宙 망령되이 남의 스승이 되어 세상을 부끄럽게 하도다.

血脈不知宗眼無 맥락도 알지 못하고 안목도 없으니

一生安得斷言句 한 평생 한 마딘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贈別壽禪師之頭流

두류산으로 떠나는 수(壽) 선사(禪師)를 보내며

禪子晞陽人也. 其生於世也 後乎吾生之七年也, 年纔八九 與我同事于

頭流山德庵先師 操拔篲立師之門庭者 尙至於三十年 可謂所得非一也.

先師亦以善應機鋒 愛而重之.

丁卯春 余辭退 遊歷諸方 至於妙香山 病臥三年, 不幸 先師忽焉厭世

甑蓮鏡蛇 禍孼多端 千里訃音 一朝歘至 徒自哀哀哭 望天涯而已. 禪子

於是 收靈骨 豎浮屠.

喪已終事已畢 端坐虛室 寂若忘生, 一日忽覺尋思之囑 禮辭靈龕 足繭千

里訪我於香山北麓之茅庵. 初相見 各無一語, 良久 拭淚畢 忽驚兩頭俱

白 重重太息. 因結四夏 同甘粥飯 往往開吐竹馬事 亦老病中 一啓齒也 .

然禪子之生涯在南 不得久住 今日告歸 索我一語 云懃懃懇懇 遂不已

已. 吁! 臨別感懷 古人形於紙墨者多矣, 余豈獨無慨然哉. 況禪子之於

我也 於義則有兄弟之親 於法則有師資之分, 情鍾莫逆恩愛綢繆者 古今

希有也.

雖予伏枕鳴鳴蜂管蠹毛也 久則久矣, 然當此送別 情不自抑 不經意而

强揮之三絶句, 乃情也 非詩也. 所謂百年肺肝千里面目者以此.

스님은 희양(晞陽)166) 사람이다. 그는 나보다 7년 뒤에 태어났는데, 나이 겨

우 8,9세일 때 나와 함께 두류산 덕암(德庵)167) 스님을 모시면서 스승의 곁에

머문지 30년이나 되었으니 얻은 바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스승 또한 수행을

잘 지도하며 애지중지하였다.

1567년 봄에 나는 승직을 물러나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묘향산에 이르

러 몸이 좋지 않아 3년을 머물렀는데, 불행히도 스승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

시자 천 리 밖에서 부음을 듣고 하루 아침에 달려가니 모두가 슬피 울며 하

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스님은 이에 사리를 수습하고 부도를 세웠다.

상 치르는 일이 끝나자 빈 방에 단정히 앉아 마치 삶을 잊은 듯이 고요하더

니, 하루는 자세히 잘 살펴 공부하라는 부탁을 생각해 내고 스승의 사리탑

에 예를 올리고는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배기도록 천 리 길을 달려 묘향산 북

쪽 기슭에 있는 나의 암자로 찾아왔다. 처음에 서로 만나 아무 말도 없다가,

한참 만에 눈물을 훔치면서 서로의 백발에 놀라와하며 거듭 한숨을 내쉬었

다. 이에 4년 동안 죽을 달게 먹고 지내며 왕왕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이야

기를 나누는 것이 늙고 병든 중의 한 가지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스님의 생활기반이 남쪽에 있었으므로 더 이상 오래 머물지 못하고

오늘 돌아가신다고 하기에 내가 한 마디 말을 찾아 깊은 정을 토로하지 않

을 수 없게 되었다. 아! 이별하는 감회를 글로 적은 이가 예부터 많았으니,

난들 어찌 울컥한 마음이 없겠는가. 하물며, 스님은 나에게 의리로는 형제와

같은 친함이 있고 도에 있어서는 함께 배운 사이이니, 이처럼 정과 은혜가

깊은 경우는 고금에 드물 것이다.

비록 내가 벌이나 좀벌레처럼 낑낑대며 병들어 누워지낸 것이 오래 되었으

나, 이 송별의 때를 당하여 정을 억누를 길이 없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

수의 시를 휘갈겨 쓰니, 이것은 정이지 시가 아니다. 이른바 백년 동안 속 깊

이 생각해 온 사람을 천 리 밖으로 떠나보낸다는 것이다.

166) 희양(晞陽) : 전라남도 광양시의 옛 이름.

167) 덕암(德庵) : 휴정이 1534년(15세)에 과거에 낙방한 뒤 곧바로 지리산으로 들어

가 출가를 하여 숭인(崇仁)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였다. 덕암스님은 숭인스님의

호일 것으로 추정된다.

臨別匆匆說不盡 이별에 임하여 하고 싶은 말 다하지 못하고

索然相顧更遲遲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보며 머뭇거리네.

平林漠漠烟如織 숲에는 끝없는 안개 자욱히 끼고

鶴影飄飄獨往時 학 그림자는 홀로 훨훨 날아가는데.

香山已禮先師了 묘향산에서 스승에게 인사 드리니

月入淸江上下天 달이 맑은 강에 비치어 상하가 다 하늘이었지.

畫燭一雙今更寄 촛불 한 쌍 오늘 다시 맡기노니

須依世諦奠靈前 세속에서 하듯이 제사 올리소서.

寂寞緇門事可悲 적막한 불가의 일 서글퍼라

人生浮幻轉於戲 물거품같은 인생이 장난보다 더하구나.

南方若欲傳禪旨 남방에 선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한다면

須及山僧未死時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해야 하리라.

自嘲 스스로를 조롱함

祖師深旨落言詮 조사의 깊은 뜻이 언구에 떨어졌으니

悔讀緇門勉學篇 『치문(緇門)』168)의 「면학」편 읽은 것이 후회스럽네.

草履抛來東海外 동해 바깥으로 짚신을 내던져 버렸으나

蓬萊猶在短筇邊 봉래산은 여전히 지팡이 끝에 있구나.

168)『치문(緇門)』 : 『치문경훈(緇門警訓)』을 간단히 일컫는 명칭. 승려들이 공부하는

데 교훈으로 삼을 만한 고승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으로, 조선조 불교의 기본 교

재로 쓰였다.

偶吟 우연히 읊음

山川日月是唐虞 산천과 일월은 예부터 있던 것인데

濟世無才稱丈夫 세상을 구할 재주도 없는 이를 장부라 칭할손가?

一筆寫成還抹却 붓 들어 한번 썼다가는 도로 지우고

低頭抱膝暗長吁 무릎 안고 고개 숙여 남몰래 긴 한숨을 쉰다.

送蟾禪子之鑑湖 섬(蟾) 선자를 감호(鑑湖)169)로 보내며

169) 감호(鑑湖) : 금강산에 있는 호수 이름. 동해 바다와 바로 접한 곳에 있다.

年來無事自閑居 근자에는 일 없이 한가로이 지내면서

看盡西來貝葉書 서쪽에서 온 불전을 두루 읽었네.

若問山中何所有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鑑湖明月照淸虛 감호의 밝은 달이 청허(淸虛)170)를 비춘다고 하리라.

170) 청허(淸虛) : 작자 자신의 호. 자기 자신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맑고 텅빔’이라는

의미도 함축한다.

水澄偸白月 물이 맑아 흰 달을 훔치고

雲捲露靑山 구름 걷히자 푸른 산이 드러나네.

淸虛賓子鑑湖主 청허는 손님이요 감호는 주인인데

惆悵賓閑主不閑 슬프도다, 손님은 한가롭고 주인은 한가롭지 않으니.

書懷 회포를 적다

志欲靑年分孔釋 의지에 충만했던 청년은 공자와 석가를 구분하였으니

着工心地死前休 공부하려는 마음은 죽어서야 쉬리라.

光陰箭疾身多病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고 몸은 병만 많은데

一事無成空白頭 이룬 일 하나 없이 머리만 세었도다.

招白雲子 흰구름을 부르다

白雲子白雲子 흰구름이여 흰구름이여

何年何日入靑山 어느 해 어느 날에 청산에 들어왔는지?

雖言本是山中物 비록 본래는 산중의 것이라 하겠지만

恨逐淸風久不還 맑은 바람 따라갔다가 오래토록 돌아오지 않는것을!

寄新庵主人新庵禪子

신암(新庵) 주인 경선(新庵) 선자에게 드림

老僧寄語新庵主 노승이 신암의 주인에게 한 말씀 드리노니

外客來時莫等閑 바깥 손님 오실 때에 소홀히 하지 마소서.

山與一身雖不動 산과 내 몸 움직이지 않아도

白雲流水到人間 흰구름과 흐르는 물이 사람에게 오지요.

因事有感 어떤 일로 인하여 느낌이 있어

儒釋虛名紛指馬 유교니 불교니 하는 헛된 이름으로 잡다하게 시비를 벌이니

山林朝市各酸然 산 속이나 조정이나 저자, 어디에 있건 피곤할 뿐이라.

由來至道離文字 지극한 도는 문자를 떠나 있거늘

今日無言政合天 오늘의 말 없음이 정녕 자연에 합치되리라.

人世是非何日已 인간 세상의 시비는 어느 때에나 그치려나

一身生計可愴然 이 한 몸의 살아갈 계책이 참 고달플 따름이라.

靑山若也年年長 청산은 년년세세 오래토록 존속할지라도

太白老夫應上天 태백노인171)은 하늘로 올라가리라.

171) 태백노인 : 자를 ‘태백(太白)’이라 하였던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을 가리키

는 듯하다. 이백은 신선술을 닦았으며, 시에 하늘로 신선이 되어 올라가기를 염

원하는 내용이 많다.

法藏大師 법장대사(法藏大師)172)

172) 법장대사(法藏大師) : 법장대사는 중국 화엄학의 대가였던 법장 현수(賢首,

643~712)와 조선 초기의 승려 법장(1351~1428)이 있다. 시의 내용이 선적인 것

으로 보아 조선 초기의 법장인 것으로 보인다(법장은 고려 말 유명한 선승이었

던 나옹화상의 제자였다). 이 시는 휴정이 제자인 소요(逍遙) 태능(太能)을 가르

칠 때 일종의 화두처럼 탐구할 문제로 내어주었다고 전한다.

斫來無影樹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

燋盡水中漚 물 속의 거품을 다 태우네.

可笑騎牛者 우습도다 소를 탄 사람이여

騎牛更覓牛 소를 타고서 또 소를 찾다니!

上滄海 창해 양사언에게 드림

秋風兮吹衣 가을 바람이 옷에 불어오고

夕鳥兮爭還 저녁새는 다투어 돌아오네.

美人兮不來 아름다운 사람은 오지 않고

明月兮空山 고요한 산에 밝은 달만 솟았네.

松寒兮竹冷 차가운 소나무와 서늘한 대나무여

月出兮天邊 하늘 끝에 달이 솟네.

幽人兮夜坐 은자는 밤중에 앉아

顧影兮自憐 자기 그림자 돌아보며 가엾이 여기네.

題檜岩方丈(示住持) 회암(檜岩) 방장에 쓰다(주지에게 보임)

白的的靑寥寥 명명백백하고 끝없이 넓고 푸르며

空索索赤條條 아무 것도 없이 텅 비고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咄 是何境界 어잇! 이게 무슨 경계인고?

原頭多草色 들판에 풀빛이 무성하니

野火不能燒 들불도 태우지 못하리라.

德峻禪子 덕준(德峻) 선자

月波翻石壁 달빛 어린 물결이 석벽에 부딪치고

松籟送淸音 소나무에서는 맑은 소리 보내오네.

於斯若不會 여기에서 알아채지 못한다면

辜負老婆心 늙은이의 염려를 저버리게 되리라.

良久云 잠시후 말하기를,

卽今休去便休去 지금 마음을 쉰다면 곧바로 쉬어질 것이며

若覓了時無了時 만약에 찾으려고 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라.

示義天禪子 의천(義天) 선자에게

火裏生蓮雖好手 불 속에 연꽃을 피우는 것은 훌륭한 솜씨이지만

爭如千劍日中行 어찌 천 개의 검 속을 하루 종일 다니는 것에 비하랴.

山僧指示無端的 산승이 보여주는 것은 어떤 단서도 없으니

斬却心頭辦死生 죽고 삶에 대한 생각을 끊어버리시오.

定眼三年能射蝨 눈빛을 고정한지 삼 년이면 이를 활로 쏘아 맞힐수 있고

凝神五月可粘禪 정신을 모은지 다섯 달이면 매미를 마음대로 붙잡을 수 있지.

山僧日用無多子 산승이 날마다 쓰는 것은 별 게 없어

念念常看火裏蓮 생각마다 불 속에 피어나는 연꽃을 볼 뿐.

登香爐峯 향로봉(香爐峯)에 올라173)

173) 휴정이 1577년(38세)에 금강산·지리산·태백산·오대산 등으로 다니다가 마지

막으로 도착한 곳이 묘향산이었다. 이 시는 묘향산의 향로봉에서 지어진 것인

데, 이 시의 내용에 왕권에 대한 반란의 뜻이 있다는 무고가 들어가 한때 구금

당하기도 하였으나, 혐의가 없음이 밝혀져 왕이 도리어 사과의 뜻으로 대나무

그림을 하사하였다.

萬國都城如蟻窒 만국의 도성은 개미둑과도 같고

千家豪傑若酼鷄 천 나라의 호걸은 초파리와도 같도다.

一窓明月淸虛枕 창 하나에 비치는 밝은 달빛을 청허가 베고 누웠더니

無限松風韻不齊 무한한 솔바람 소리가 가지런하지 않구나.

贈熙長老 희(熙) 장로에게 드림

十年端坐擁心城 십년토록 단정히 앉아 마음의 성을 지키시니

慣得深林鳥不驚 깊은 숲의 새도 익숙해져 놀라지 않네.

昨夜松潭風雨惡 어제 밤 소나무 드리운 연못에 비바람 거세더니

魚生一角鶴三聲 물고기에 뿔이 돋고 학이 세 번 울었네.

贈印英大師 인영(印英)174) 대사에게 드림

174) 인영(印英) : 휴정의 제자.

西來這一曲 서쪽에서 온 이 한 곡조

千古沒人知 천고에 아는 사람 없구나.

韻出靑霄外 푸른 하늘 저 멀리 울려 퍼지니

風雲作子期 바람과 구름만이 알아주네.

臨終偈 임종게

千計萬思量 천 번 생각하고 만 번 헤아림이

烘爐一點雪 불타는 화로에 한 점 눈이 되었네.

泥牛水上行 진흙소가 물 위를 걸어다니고

大地虛空裂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