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승비문

05.여주고달원원종대사혜진탑비문(驪州高達院元宗大師慧3)眞塔碑文)

수선님 2023. 9. 17. 13:17

05.여주고달원1)원종대사혜진탑비문2)

驪州高達院元宗大師慧3)眞塔碑文

1) 고달원(高達院):이 절의 초창(初創)은 764년(신라 경덕왕 23)이다. 그 후 고려조

에 접어들어 특히 광종(949~975)이 매우 소중히 여겼던 사원(寺院)이었다. 그러

므로 971년에 광종이 원화전(元和殿)에서 대장경(大藏經)을 개독(開讀)할 때 고

달원, 희양원(曦陽院), 도봉원(道峰院) 등 삼원(三院)의 주지(住持)는 반드시 각

기 그의 문하제자(門下弟子)가 상속주지(相續住持)토록 하라고 교지(敎旨)를 내

린 바 있다.

2) 비(碑)의 보존연혁(保存沿革):이 비석은 975년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北內面)

상교리(上橋里) 고달원에 세워졌다. 그 후 이 절의 폐사연대(廢寺年代)는 확실하

지 않다. 그 유지(遺址)에는 이수(螭首)를 이고 귀부(龜趺)만이 남아 있다. 오랫

동안 풍마우세(風磨雨洗)를 겪어 오다가 1916년 마침내 도괴(倒壞)되면서 비신

(碑身)이 양단(兩斷)되었는데, 이를 여주군청(驪州郡廳)으로 옮겨 보관하다가,

다시 일제치하(日帝治下)에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경복궁)으로 옮겨

복원(復元)하였으나, 약간의 하흔(瑕痕)이 남아 있음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3) [拓本][全文]에는 慧이고 [總覽]에는 惠이니, 상통한다.

있는 곳:국립중앙박물관(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 유지로부

터 이전)

세운 때:고려 광종 26년 을해 (975)

所 在:國立中央博物館(北內面 上橋里 高達院址로부터 移轉)

年 代:高麗 光宗 26年 乙亥 (975)

혜목산(慧目山) 고달선원(高達禪院) 국사(國師) 원종대사지비(元宗大師

之碑) [제액]

고려국(高麗國) 광주(廣州) 혜목산(慧目山) 고달원(高達院) 고국사(故國

師)이며, 왕이 원종대사(元宗大師)라고 시호를 추증(追贈)한 혜진탑비명

(惠眞塔碑銘)과 아울러 서(序)

慧目山, 高達禪院, 國師元宗大師之碑, [題額]

高麗國, 廣州慧目山, 高達院, 故國師, 制贈諡元宗大師, 慧眞

之塔碑銘, 幷序.

광록대부4) 태승5) 한림학사6) 내봉령7) 전예부사8) 참지정사9) 감수국사인10)

신 김정언11)이 왕명을 받들어 짓고, 봉의랑좌윤12) 전군부경13) 겸내의승지

사인14) 신 장단열15)이 왕의 칙서(봉제)16)를 받들어 비문(碑文)과 전액(篆

額)을 쓰다.

光祿大夫, 太丞, 翰林學士, 內奉令, 前禮部使, 叅知政事, 監

修國史, 臣, 金廷彦, 奉制, 撰.

奉議郞, 佐尹, 前軍部卿, 兼內議承旨舍人, 臣, 張端說, 奉制,

書, 幷篆額.

4) 광록대부(光祿大夫):고려 문산계(文散階) 관계(官階) 중의 하나. 종3품(從三品)

으로 문종(文宗) 때 제정. 1275년(충렬왕 1)부터 이 칭호가 없어졌다가 1356년

(공민왕 5) 환원되어 종2품상(從二品上)으로 되었으며, 1362년(공민왕 11)에 폐

지되고, 1369년(공민왕 18)에 정2품상(正二品上)으로 정하였다.

5) 태승(太丞):승상(丞相) 곧 최고의 관직을 가리킨다.

6) 한림학사(翰林學士):고려 때 한림원(翰林院:王의 命을 받아 문서를 꾸미는 일을

맡아 보던 관청)에 소속된 정4품(正四品) 관직. 정원은 2명.

7) 내봉령(內奉令):내봉성(內奉省)의 장관. 내봉성은 고려 초기의 관청으로 백관

(百官)을 지휘하는 관부.

8) 예부(禮部):의례(儀禮)를 맡아보던 관청(官廳). 제향(祭享), 조회(朝會), 학교(學

校), 교빙(交聘), 과거(科擧)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9) 참지정사(參知政事):고려 때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국가 행정을 총괄하던 관

청)의 종2품 벼슬. 뒤에 첨의평리(僉議評理)로 개칭하였다.

10) 감수국사(監修國史):고려 춘추관(春秋館)의 최고 관직. 시중(侍中:從一品)이 겸임

하도록 하여 따로 임명하지 않았다. 1325년(충숙왕 12)에 이르러 영관사(領館事)·

감관사(監館事)로 그 명칭이 바뀌었으나, 역시 수상(首相)인 시중이 이를 겸하였다.

11) 김정언(金廷彦):고려 전기의 문신・학자. 생몰년 미상. 정사(正史)에는 이름이

보이지 않으나, 그가 지은 세 편의 비문을 통해 이력을 알 수 있다. 958년(광종

9) 통직랑 정위 한림학사(通直郞正衛翰林學士)가 되었고, 975년(경종 즉위년) 광

록대부 대승 내봉령 전예부사 참지정사 감수국사(光祿大夫大丞內奉令前禮部使

參知政事監修國史)를 지냈다. 「옥룡사통진대사보운탑비문玉龍寺洞眞大師寶雲

塔碑文」을 958년(광종 9)에 지었고,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문高達寺元宗大

師慧眞塔碑文」을 975년에 지었으며, 「보원사법인국사보승탑비문普願寺法印國

師寶乘塔碑文」을 978년(경종 3)에 지었다. 「통진대사보운탑비문洞眞大師寶雲

塔碑文」 주5)김정언金廷彦 [고려편1] p.349 참조.

12) 봉의랑좌윤(奉議郞佐尹):봉의랑(奉議郞)은 고려 초기의 문산계(文散階)로, 문

산계가 정비된 성종 14년 이전부터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등과 함께 사용

되었다. 좌윤(佐尹)은 고려 초기의 관계(官階) 중 제6품 11등급에 해당한다.

13) 군부경(軍部卿):군사상(軍事上) 국방에 관한 사무와 군인 감독, 지휘 등을 관장

(管掌)하였던 직책. 최고위직인 령(令)에 이은 차관직.

14) 내의승지사인(內議承旨舍人):내의란 내의성(內議省)을 말하는데, 고려 초기

삼성(三省)의 하나로 중앙행정(中央行政)의 최고기관의 하나이며, 조칙(詔勅)

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였다. 승지사인(承旨舍人)이란 승지방(承旨房)이라고도

하며, 크고 작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는 기관이었는데, 1298년(충렬왕 34)에

이르러 인신사(印信司)로 고쳤다. 관원은 사(使;從三品) 2인, 부사(副使;從四

品) 2인, 판관(判官;從六品) 2인을 두었다. 사인은 종 4품 관직이었다.

15) 장단열(張端說):생몰년 미상. 일찍이 한림원 서학박사(書學博士)를 지내고 군

부경(軍部卿)에 이르렀다. 구양순(歐陽詢)체를 익혀 당대(當代)의 명필가로 꼽

혔다. 「문경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문聞慶鳳岩寺靜眞大師圓悟塔碑文」과 「고

달원원종대사혜진탑비문高達院元宗大師慧眞塔碑文」을 썼다. 「정진대사원오탑

비문靜眞大師圓悟塔碑文」 주6)장단열張端說 [고려편1] pp.388~389 참조.

16) 봉제(奉制):제(制)는 왕이 제가(制可), 즉 결재하였다는 뜻으로 조칙(詔勅)과 같

은 말이다.

관찰해 보건대, 태양이 부상17)으로부터 떠오름에 모든 사람의 우러름이

되고, 부처님께서 천축(天竺)에서 탄생하시니, 모든 인류의 정신적 귀의처

가 되어 군자의 나라18)로 하여금 법왕(法王)의 도(道)를 배우게 하였다. 이

른바 그 도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부처님 또한 우리들 각자의 신

중(身中)에 내재(內在)한 것이니, 도를 깨달음이 높고 깊으므로 도사(導

師)가 되었고19) 덕이 두터우므로 사생(四生)의 자부(慈父)가 되셨다. 이에

그 위대한 자취로 말미암아 드디어 즉심즉불(卽心卽佛)의 이치를 개시(開

示)하였으니, 그 광명(光明)은 마치 물 위에 나타난 연꽃 같고, 밝기는 별

들 가운데 둥근 달과 같았으니 실로 대사(大師)가 바로 그분이시다.

觀夫, 日出扶桑, 作人間之瞻仰, 佛生天竺,20) 爲世上之歸依,

俾君子之邦, 學法王之道. 所謂道非心外, 佛在身中, 故得道之

尊, 爲導師, 德之厚, 爲慈父. 爰因象跡, 遂示它心, 光如水上

之蓮, 皎若星中之月, 實大師其人矣.

17) 부상(扶桑):동해(東海) 가운데 있는 신목(神木)으로 양수(兩樹)가 동근(同根)인

데, 날 때부터 서로 의지하고 있으므로 부상(扶桑)이라고 한다. 동해(東海) 중에

있다고 하여 일출(日出)하는 곳을 지칭한다. 『산해경山海經』「해외동경海外東

經」에 “湯谷之上 有扶桑 十日所浴 在黑齒北 居水中 有大木 九日居下枝 一日居

上枝”라 하였다.

18) 군자지방(君子之邦):풍격(風格)이 순량(醇良)하며 온후(溫厚)한 군자의 미풍(美

風)이 있는 나라로서 동해 중에 있다고 전하는데, 신라(新羅)를 가리키니, 『당서

唐書』「신라新羅」에 “新羅號君子國 知詩書”라 하였다. 일본(日本)에서는 일본국

의 자칭(自稱)이라 한다.

19) 득도지존위도사(得道之尊爲導師):도(道)를 깨달음이 높고 깊어 도사(導師)를

삼는다는 뜻.

20) [總覽]의 笁은 [全文]의 竺의 오자임.

대사의 존칭(尊稱)은 찬유(璨幽)요, 자는 도광(道光)이며, 속성(俗姓)은

김씨(金氏)이니, 계림(鷄林)의 하남(河南) 출신이다. 대대손손(代代孫孫)

명문호족(名門豪族)이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청규(淸規)이다. 종조(宗

祖)를 공경한 효도와 나라에 대한 충성 등 아름다운 행적은 너무 많아서

기록하지 않으니, 특히 불교에 대한 신심이 돈독하였다. 아버지의 휘는 용

(容)이니 백홍21)의 영기(英氣)와 단혈22)의 기자(奇姿)를 띠고 태어났다. 노

을과 비단처럼 고상한 빛을 함유(含有)하였으며,23) 서리내리는 늦가을 새

벽 범종(梵鐘)소리의 아운(雅韻)을 풍겼다.24) 드디어 출세하여 창부25)의 낭

26)이 되었다가 얼마 되지 않아서27) 곧 장사현28)의 현령이 되어 백리의

관할 영내에 행춘(行春)의 덕화29)를 베풀었고, 화현30)을 만들어

아름다운 향기가 진동하였다.31) 구중향일(九重向日)하는 일편충심32)

마치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33)

大師, 尊稱璨幽, 字道光, 俗緣金氏, 鷄林河南人也. 孫孫著族,

代代名家. 尊祖淸規. 敬宗芳蹟, 刪而不記, 遵釋宗矣. 考諱容,

白虹英氣, 丹穴奇姿. 含霞綺之餘光, 振霜鍾之雅韻. 遂起家爲

倉部郞中, 無何出爲長沙縣令, 百里行春之化, 花縣騰芬. 九重

向日之心, 葵園著美.

21) 백홍(白虹):백색(白色)의 무지개. 예부터 저침(眡祲), 즉 일관(日官)이 10가지로

태양(太陽)의 광기(光氣)를 관찰하여 길흉(吉凶)과 선악(善惡)을 판단(判斷)하

였으니, 그 십휘(十煇;煇는 暈과 같은 뜻)란 『주례周禮』「춘관종백春官宗伯」‘지

수 祲’에 “掌十煇之氾 以觀妖祥 辨吉凶 一曰祲 二曰象 三曰鑴 四曰監 五曰闇

六曰瞢 七曰彌 八曰敍 九曰隮 十曰想”이라 하였다. 이 가운데 칠(七)의 미(彌)는

백홍미천(白虹彌天)의 뜻이니, 『예기禮記』「빙의聘義」에 “君子比德于玉焉 … 氣

如白虹”이라 하였다.

22) 단혈(丹穴):단사(丹沙)가 출토되는 구멍. 단혈의 금옥(金玉)과 같은 기특(奇特)

한 자태(姿態)란 말. 『산해경山海經』「남산경南山經」에 “丹穴之山 其上多金玉 丹

水出焉 而南流注於渤海”라 하였다.

23) 함하기지여광(含霞綺之餘光):하기(霞綺)의 여광(餘光)을 함유한다는 뜻이니,

비단 같이 영롱한 노을의 빛처럼 고상하다는 말.

24) 진상종지아운(振霜鐘之雅韻):상종의 아운을 떨친다는 뜻. 상종이란 겨울의 새

벽에 울려퍼지는 우아한 종소리를 말한다. 이백(李白)의 「청탄금시聽彈琴詩」에

“客心洗流水 餘響入霜鐘”이라 하였다. 즉, 인품(人品)이 이른 새벽에 울려퍼지

는 맑은 종소리처럼 청아(淸雅)하다는 말이다.

25) 창부(倉部):①신라 때의 중앙관청. 최초에는 집사성(執事省)의 일부분이었으나

636년(선덕왕 5)에 독립되었는데, 재정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다. 영(令; 大阿飡

~大角干)이 2명, 경(卿;阿飡)이 3명, 대사(大舍;舍知~奈麻)가 2명, 조사지(租舍

知;舍知~大舍)가 1명, 사(史)가 30명으로 구성되었다. ② 고려 초 향리(鄕吏)의

한 직소(職所)였는데, 983년(성종 2) 사창(司倉)으로 개칭되었다.

26) 낭중(郎中):① 신라의 관직. 집사성·병부(兵部)·창부(倉部)에 속한 관직으로

사지(舍知)로부터 나마(奈麻)가 이에 임명되었다. ② 고려 때 상서성(尙書省)·

고공사(考功司)·도관(都官) 및 육조(六曹)에 속한 정5품 벼슬. ③ 고려 초기의

향직으로 983년(성종 2)에 호정(戶正)으로 개칭하였다.

27) 무하(無何):거무하(居無何)의 준말. 무기(無幾), 소시(少時) 또는 망하(亡何) 등

과 같은 뜻이니, ‘얼마되지 않아서’라는 말. 『사기史記』 「조상국세가曹相國世

家」, “蕭何卒 參聞之 告舍人 趣治行 吾將入相 居無何 使者果召參”이라 하였다.

28) 장사현(長沙縣):전라북도(全羅北道) 무장(茂長)의 옛 이름. 현재는 고창군(高敞

郡)에 편입되었다.

29) 행춘지화(行春之花):봄철에 태수(太守)가 자기의 관할 현(縣)을 순행(巡行) 하면

서 농상(農桑), 즉 농사와 누에를 권장(勸奬)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정

홍전鄭弘傳」에 “弘少爲鄕嗇夫 太守第五倫行春 見而深奇之 召署督郵 擧孝廉”이

라 하였다.

30) 화현(花縣):현(縣)의 전지역(全地域)이 꽃으로 아름답다는 뜻이니, 하양일현화

(河陽一縣花)의 준말. 진(晋)나라 때 반악(潘岳)이 하양현령(河陽縣令)이 되어 현

중(縣中)에 많은 도리(桃李)를 심게 하여 아름답게 한 데서 온 고사. 이백(李白)

의 「증최추포시贈崔秋浦詩」에 “河陽花作縣 秋浦玉爲人”이라 하였으니, 현명한

현령이 현치(縣治)를 잘함을 칭송하는 말이다.

31) 등분(騰芬):[總覽]과 [拓本]은 騰芬. [全文]은 勝芬. [全文]의 勝은 騰의 오자이

나, 뜻으로는 모두 무방하다. 온 고을이 꽃나무로 심어져 봄이 되면 그 꽃의 향

기가 널리 퍼진다(騰), 또는 왕성한(勝) 꽃냄새가 풍긴다는 뜻이다.

32) 구중향일지심(九重向日之心):신하(臣下)로서 임금에 대한 일편단심(一片丹心)

의 충성을 가리킨다. 구중은 왕궁(王宮)이니, 천자(天子)를 이른다. 향일은 규경

향일(葵傾向日)의 준말이니, 해바라기가 태양을 따라 돌 듯 충신(忠臣)이 왕을

향한 충성(忠誠)을 뜻한다.

33) 규원저미(葵園著美):향일규(向日葵) 또는 규경향일(葵傾向日)이라고도 하니,

해바라기 공원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는 뜻. 해바라기 꽃이 태양 쪽으로 향한

다는 말이나, 전(轉)하여 군주(君主) 또는 어른을 존경(尊敬)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에 비유한 것. 태불화(泰不華)의 「배행서호시陪幸西湖詩」에 “葵傾惟向日 荷

偃借風張”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조야(朝野)가 모두 그를 기둥처럼 의뢰(依賴)하였고, 지방 향

34)에서는 한결같이 우러러 의지하였다.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니, 부덕

(婦德)을 두루 닦았고35) 모의(母儀)는 부유하여36) 그 우아함이 비길 만한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고하기를, “원컨

대 어머님을 삼아 아들이 되어서 출가(出家)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자 하므로37) 묘연38)에 의탁하여 공경히 자비(慈悲)하신 교화를 펴려 합니

다.”라는 수승한 태몽을 꿈으로 인하여 임신하게 되었다. 삼가 조심함으로

써 문왕(文王)과 같은 아들을 출생하려고39) 정성껏 태교40)를 봉행하였다.

함통 41)10년42) 용집43) 기축 4월 4일에 대사를 탄생하였다. 선아(善芽)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하여44) 묘한 결과는 조금도 지지부진(遲遲不進)한 적이

없었다. 드디어 13살 때 아버님께 여쭙기를, “비록 혜가45)를 결핍하였으나

다만 각수(覺樹)를 기약하려 합니다.”46)라고 하였다. 이 때 아버지가 말씀

하시기를, “내가 비록 섭동자47)이긴 하나 일찍 선근(善根)을 보았으니, 너

는 마땅히 부지런히 배전(培前)의 용맹심으로 승과(勝果)를 닦으라.”하고

당부하였다.

朝野因而倚賴, 鄕閭所以瞻依. 妣李氏, 婦德聿修, 母儀富有.

夢有一神人, 告之曰, “願言爲母爲子, 爲佛爲孫, 故託妙緣,

敬敷慈化.” 以爲得殊夢, 因有娠. 愼出身文, 奉行胎敎. 以咸

通十年, 龍集己丑, 四月四日, 誕生大師. 善芽尙早, 妙果不遲.

年甫十三, 遂言於父曰, “雖乏惠柯, 祇期覺樹.” 父因謂曰, “吾

縱葉瞳者, 嘗見汝善根也, 汝宜孜孜, 培之修勝果而已.”

34) 향려(鄕閭):시골. 촌리(村里).

35) 율수(聿修):율(聿)은 발어사(發語辭). 부덕(婦德)을 이어 닦는다는 뜻.

36) 모의부유(母儀富有):현모(賢母)의 몸가짐이 풍요롭고 후덕하였다는 뜻.

37) 원언위모위자 위불위손(願言爲母爲子 爲佛爲孫):어머니가 되고 아들이 되어 부

처님을 따라 법손(法孫)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38) 묘연(妙緣):친연(親緣)과 불연(佛緣)을 말한다.

39) 신출신문(愼出身文):삼가 근신함으로써 문왕(文王)과 같은 아들을 임신하여 출

생하려 한다는 뜻. 출(出)은 출생(出生), 신(身)은 태임유신(太妊有身)의 준말이

니, 임신을 가리킨다. 문(文)은 문왕이라는 뜻.

40) 태교(胎敎):태회(胎誨), 태육(胎育)이라고도 하니, 태아(胎兒)에게 베푸는 교육

(敎育). 부인(婦人)이 임신(姙娠) 중 앉고 섬을 단정히 하고, 정미(正味)를 먹으

며, 정색(正色)을 보고, 정악(正樂)과 정사(正事)만을 들어 태아를 감화(感化)시

키는 것. 『신서新書』「태교胎敎」에 “靑史氏之記曰 古者胎敎之道 王后有身 七月

而就蔞室 太師持銅而御戶左 大宰持斗而御戶右 大卜持蓍龜而御堂下 諸官皆以

其職御於門內 比三月者 王后所求聲音非禮樂 則太師撫樂 而稱不習 所求滋味者

非正味 則太宰荷斗 而不敢煎調而已 不敢待王太子”라 하였다.

41) 봉행태교(奉行胎敎):받들어 태교를 행한다는 뜻.

42) 함통(咸通) 10년:당 의종(懿宗) 때의 연호. 869년(경문왕 9).

43) 용집(龍集):용은 별이름. 목성(木星)이니, 태세(太歲)를 말한다. 이 별은 1년에

하늘을 한 바퀴 돌므로 1년을 용집(龍集)이라 한다. 또는 기년(紀年)의 뜻으로도

쓰인다. 예컨대 용집 기축(己丑)이란 세차(歲次) 기축과 같다. 「법경대사보조혜

광탑비문法鏡大師普照慧光塔碑文」 주114)용집 [고려편1] p.228 참조.

44) 선아상조(善芽尙早):선아는 훌륭한 싹. 곧 사람됨됨이의 바탕. 어릴 때부터 다

른 아이들보다 뛰어나고 앞서서 조숙(早熟)하였다는 뜻이다.

45) 혜가(惠柯):혜가(慧柯)와 같은 뜻. 지혜의 가지, 곧 지혜의 용(用)을 말한다.

46) 기기각수(祇期覺樹):마침내 깨달음(覺樹)을 기약(期約)한다는 뜻.

47) 오종섭동(吾縱葉瞳):내 비록 섭동이기는 하다는 뜻. 섭동이란 투명한 밝은 눈

동자가 아니고 ‘풀잎을 붙여 놓은 것과 같은 눈’이라는 말. 속담(俗談)에 ‘눈에

명태 껍질을 붙인 눈’이란 말이 있다.

대사께서 소원(所願)을 허락받아 삭발하고 출가하여 상주 공산 삼랑

48)의 융제선사49)를 스승으로 복승(伏承)하면서, “현현(玄玄)한 도(道)를

논(論)하며 혁혁(赫赫)하게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오니, 원컨대 제자가 되

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간청하였다. 이때 선사가 이르기를, “너를 대하여50)

오늘 너의 모습을 보니 후일에 크게 중생(衆生)을 이익51)케 할 것 같다. 우

리 선종(禪宗)에 ‘심희(審希)’라는 법호를 가진 큰스님이 계시니 52)참으로

진불(眞佛)이 출세하여 동국(東國)을 교화할 주인이시다. 현재 혜목산(慧

目山)에 있으니 너는 마땅히 그곳에 가서 그를 스승으로 섬기면서 불법을

배우도록 하라.”고 이르시니, “나의 소원에 적합(適合)함이여! 그곳에 가서

깨달음을 얻은 후53) 남을 이롭게 할 수 있을 때54) 비로소 떠나리라.” 하고

문득 혜목산55)으로 찾아가서 스님으로부터 복응(服膺)을 허락받고56) 학도

(學道)할 마음을 증장(增長)하고 습선(習禪)의 뜻을 배려(倍勵)하였다.

大師, 以邂逅適願, 卽落髮出家, 伏承尙州公山三郞寺, 融諦

禪師, “論道玄玄, 化人赫赫, 願爲弟子.” 遙詣禪師, 禪師若曰,

“格汝, 見今日之來儀, 認他時之利見. 吾宗禪和尙, 法號‘審

希’, 眞一佛出世, 爲東化主. 見在慧目山, 汝宜往師事之.” 大

師, “以是吾師也, 適我願兮, 得不時然後行, 利有攸往.” 便詣

慧目, 允叶服膺, 增修學道之心, 倍勵習禪之志.

48) 상주 공산 삼랑사(尙州公山三郞寺):사적(事蹟) 미상.

49) 융제선사(融諦禪師):상주 공산 삼랑사 스님으로 고달선원(高達禪院) 원종대사

(元宗大師) 찬유(璨幽)의 은사(恩師)스님.

50) 격여(格汝):너를 대하여(比對).

51) 이견(利見):보기에 좋다, 훌륭하게 보이다, 이롭게 보이다, 훌륭하게 나타나다

등의 뜻. 안연지(顔延之)의 「삼월삼일조연서지시三月三日詔宴西池詩」에 “河嶽

曜圖 聖時利見”이라 하였다.

52) 오종선화상(吾宗禪和尙):나의 법사(法師)인 선화상이란 뜻이니, 진경대사(眞鏡

大師)심희(審希:玄昱의 제자)를 가리킨다.

53) 득불시연후행(得不時然後行):‘언제든지 깨달음(見性)을 얻은 연후에 행각(行

脚)을 떠나라.’는 뜻. 불시란 미정(未定)의 시간. 언제든지, 갑자기, 뜻밖에, 임시

(臨時) 등의 뜻이다. 소식(蘇軾)의 「후적벽부後赤壁賦」에 “婦曰 我有斗酒 藏之

久矣 以待子不時之需”라 하였다.

54) 이유유왕(利有攸往):‘남을 이롭게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바가 있은 연후에 떠나

라.’는 말이니,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이타(利他)의 뜻이다. 「통진대사보운탑

비문」 주86)이유유왕利有攸往 [고려편1] p.356 참조.

55) 혜목산(慧目山):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에 위치.

56) 윤협복응(允叶服膺):심희(審希)스님이 자기의 회하(會下)에서 시봉(侍奉)하면

서 수도하도록 허락하였다는 말. 복응(服膺)은 받들어 모시는 것, 시봉하는 것을

뜻한다.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아 묘리(妙理)를 연구하고 깊이 현기(玄機)를 깨

달았다. 각로(覺路)를 수행하여 비록 진리를 통달하더라도 마땅히 먼저

율의(律儀)를 의지하여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22세 되던 해에 양주(楊

州) 삼각산(三角山) 장의사(莊義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그로

부터 인초57)가 싹을 내고 계주(戒珠)가 빛을 발하는 초기임에도 오히려 도

를 배움에 피로(疲勞)를 잊고, 스승을 찾되 조금도 게을리하지 아니하였

다. 그러던 중 본사58)인 진경대사(眞鏡大師)가 광주(光州) 송계선원(松溪

禪院)으로 옮겨갔다. 대사도 행장(行裝)을 정돈하여 육환장(六環杖)을 짚

고 송계선원으로 따라가서 예족(禮足)의 소충(素衷)을 나타내어 주안(鑄

顔)의 현조(玄造)에 대하여 감사하였다.59) 진경스님께서 이르기를, “백운

(白雲)이 천리나 만리에까지 덮혀 있더라도 모두가 똑같은 구름이며, 명

월(明月)이 전후의 시냇물에 비추나 오직 달은 하나 뿐이다.”라고 했다. 이

는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요, 오직 마음에 있을 뿐이다. 대사가 생각하

기를, “무릇 도에 뜻을 둔 자가 어찌 일정한 곳에 고정된 스승이 있으랴!”

하고, 스님에게 제방(諸方)으로 다니면서 심사문도(尋師問道)할 것을 고

하였다.

未幾, 精窮妙理, 高悟玄機. 行覺路以雖通, 仗律儀而斯在, 年

二十二, 受具於楊州三角山㽵義寺. 於是, 忍草抽芽之後, 戒

珠瑩色之初, 尙以問道忘疲, 尋師靡懈. 時本師迻住光州松溪

禪院. 大師, 遠携笻杖, 特詣松溪, 申禮足之素衷, 謝鑄顔之玄

造. 師謂曰, “白雲千里萬里, 猶是同雲, 明月前谿後溪, 嘗無

異月.” 爰因識識, 只在心心而已. 大師, “以爲凡志於道者, 何

常師之有.” 迺告以遠遊泛覽.

57) 인초(忍草):계생인초(戒生忍草)의 준말. 지계(持戒)는 인욕(忍辱)을 발생(發生)

한다는 뜻이니, 인초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권27(대정장12, p.525c)에 “雪山

有草 名爲忍辱 牛若食者 則出醍醐”라 하였고 「정각선사비명淨覺禪師碑銘」에

“戒生忍草 定長禪枝”라 하였다.

58) 본사(本師):창원(昌原) 봉림사(鳳林寺)의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를 지

칭한다.

59) 사주안지현조(謝鑄顔之玄造):주안의 현조에 대하여 감사한다는 뜻. 주안이란

철액동두(鐵額銅頭)와 같은 말이니, 곧 쇠로 만든 이마와 구리로 된 머리. 이는

어떤 물건으로도 타쇄(打碎)할 수 없는, 어떤 것에도 유혹(誘惑)되지 않는 지조

가 굳은 수행자를 비유하는 말. 『몽창록夢窓錄』상에 “漫天網子百千重 鐵額銅頭

跳不出”이라 하였다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너의 그 마음을 주저하지 말고60) 속히 떠나도록

하라. 나는 자네에게 깊이 징험(徵驗)하였다.”면서 기꺼이 떠날 것을 허락

하였다. 그리하여 대사는 멀리 해외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산을 내

려와 해변(海邊)으로 가서 중국으로 가는 선편(船便)을 찾았고,61) 드디어

경복 원년62) 봄 송나라로 들어가는 상선(商船)을 만나 편승(便乘)하여 중

국에 도착하였다. 운수(雲水)를 바라보면서 마음내키는 대로 행각(行脚)

하되 연하63)를 향하여 자취를 행하였다. 그리하여 큰스님이 있는 곳에는

빠짐없이 참방(叅訪)하고, 이름있는 고적은 샅샅이 답사하였다.

師因謂曰, “它心莫駐, 迅足難留, 吾於子驗之.” 笑而聽去. 大

師以道之云, 遠行之則是, 迺出山並海, 覗西汎之緣, 景福元年

春, 適有商舶入漢者, 遂寄載而西. 卽以望雲水以從心, 指煙霞

而抗64)跡. 僧之眞者, 必詣, 跡之古者, 必尋.

60) 타심막주(它心莫駐):“너의 그 원유행각(遠遊行脚)하려는 마음을 더욱 견고히

하여 멈추지 말라.”는 뜻. 타(它)는 타(佗)와 같은 자(字)이니, ①짊어지다, 메다

②더하다[加]의 뜻으로 쓰였다.

61) 사서범지연(覗西汎之緣):서쪽인 당나라로 가는 선편(船便)의 기회(機會;緣)를

기다린다는 말. 사(覗)는 기다릴 사.

62) 경복 원년(景福 元年):경복은 당 소종(昭宗) 때의 연호. 경복 원년은 892년(진성

여왕 6).

63) 연하(煙霞):연기와 안개. 또는 구름과 안개가 서로 자욱이 덮힌 경치. 곧 산수

(山水)의 경치가 뛰어난 절경(絶景)을 말한다 「남악형산구정관비南岳衡山九貞

館碑」에 “簫鼓騰空 煙霞相接”이라 하였다.

64) [總覽]에는 抗. [全文]의 抏은 抗의 오자임.

서주(舒州) 동성현(桐城縣) 적주산(寂住山)에 나아가 투자선화상65)을 친

견하였으니, 그의 법호는 대동(大同)이며, 석두산66) 희천(希遷)의 법손(法

孫)이고, 취미무학대사(翠微無學大師)의 적윤제자(嫡胤弟子)이다. 그는 대

사의 연꽃같은 눈,67) 특수한 자태(姿態), 미간백호(眉間白毫)와 같은 특이

한 상모(相貌)를 보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인도로부터 동류(東流)하여 설

법한 자와 동국(東國)에서 중국에 와서 구학(求學)하는 자가 매우 많았으

나, 가히 더불어 도담(道談)을 나눌 만한 이는 오직 그대 뿐이다.”하고 기

뻐하였다.

遂往舒州桐城縣寂住山, 謁投子禪68)和尙, 法號大同, 是石頭

山法孫, 翠微無學大師之嫡胤也. 見大師, 蓮目殊姿, 玉毫異

相, 乃曰, “其有東流之說, 西學之求者, 則可以與言道者, 唯

子矣.”

65) 투자선화상(投子禪和尙):819~914.청원하(靑原下) 취미무학(翠微無學)의 제자.

서주(舒州, 安徽省) 회령(懷寧) 유씨(劉氏)의 아들. 어릴 때 출가(出家)하였고, 처

음부터 『화엄경華嚴經』을 열람하다가 성해(性海)를 발명(發明)하고는 취미(翠

微)를 참방(參訪)하여 현지(玄旨)를 깨달았다. 그후 제방(諸方)을 주유(周游)하

다가 고토(故土)에 돌아와 투자산(投子山)에 은서(隱棲)하다가 동성현(桐城縣)

에서 조주(趙州)를 만나 상량(商量)하였다. 다시 투자산에 돌아가 30여 년 동안

납자(衲子)의 제접(提接), 신사(信士)를 지도하다가 건화(乾化) 4년(914) 4월 6일

세수(世壽) 96세를 일기(一期)로 입적하였다. 『조당집』권6「투자화상전投子和尙

傳」;『경덕전등록』권15 등 참조.

66) 석두산(石頭山):석두산희천선사(石頭山希遷禪師)이니, 그 법계(法系)는 다음과

같다. 청원행사(靑原行思) → 석두희천(石頭希遷) → 단하천연(丹霞天然) → 취

미무학(翠微無學) → 투자대동(投子大同) → 신라(新羅) 원종찬유(元宗璨幽).

67) 연목(蓮目):청련화목(靑蓮華目)의 준말.

68) [總覽]에는 禪. [全文]의 祥은 오자임.

대사는 이때 미언(微言)을 투자(投子)의 혀끝에서 깨닫고 진불(眞佛)이

바로 자신의 신(身)중에 있음을 알았으니, 어찌 선서(善逝)69)가 가섭(迦

葉)에게 밀전(密傳)을 계승하며, 정명(淨名)이 문수(文殊)와 묵대(默對)함

을 받들 뿐이겠는가! 대사가 투자화상에게 하직인사를 하니, 화상이 이르

기를, “너무 먼 곳으로 가지 말고 또한 너무 가까운 곳에 있지 말라.”하니,

대사가 대답하기를, “비록 스님의 말씀처럼 원근양처(遠近兩處)가 아닌

곳에도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화상이 이르기를, “네가 이미

마음으로 전하는 이치를 체험했으니, 어찌 상대하여 서로 말할 필요가 있

겠는가!”하였다. 그후 곁으로는 훌륭한 도반(道伴)을 찾아 순례하면서 고

명한 선지식을 참방(叅訪)하되, 때로는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 은거(隱

居)할 만한 곳을 찾으며,70) 혹은 강좌71)지방에서 현리(玄理)를 탐구하여

진여(眞如)의 성해(性海)에 들어가서 마니(摩尼)의 보주(寶珠)를 얻기도

하였다. 이에 큰 붕새는 천지72)에서 변화하고 학(鶴)은 마침내 요해73)로 돌

아가는 것과 같이, 시작도 있고 끝이 있는 것이니, 이를 생각하면 그곳에 있

게 되는 것이다.

大師, 於是, 悟微言於舌底, 認眞佛於身中, 豈止於承善逝之

密傳, 奉淨名之 對而已矣. 大師, 將辭投子和尙, 因謂曰,

“莫遠去, 莫近74)去.” 大師答云, “雖然非遠近, 要且不停留.”

和尙曰, “旣驗心傳, 何須目語.” 尒後, 旁求勝友, 歷謁高師,

或索隱於天台, 或探玄於江左, 入眞如之性海, 得摩尼之寶珠

也. 迺以鵬必變於天池, 鶴須歸於遼海, 有始有卒, 念玆在玆.

69) 선서(善逝): sugata. 부처님 또는 여래(如來) 십호(十號) 중의 하나이니, 여래

의 십호란 ①여래 ②응공(應供) ③정편지(正遍知) ④명행족(明行足) ⑤선서(善

逝) ⑥세간해(世間解) ⑦무상사(無上士) ⑧조어장부(調御丈夫) ⑨천인사(天人

師) ⑩불세존(佛世尊)이다.

70) 혹색은어천태(或索隱於天台):혹은 천태산중(天台山中)에 은서(隱棲)할 만한 곳

을 찾았다는 말.

71) 강좌(江左):중국 장강(長江) 하류(下流)의 남안지대(南岸地帶). 현재 강소성(江

蘇省) 지방.

72) 천지(天池):조물자(造物者)가 만들었다는 대지(大池). 바다를 말한다. 『장자莊

子』「소요유逍遙遊」, “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73) 요해(遼海):학(鶴)이 많이 서식하는 북쪽의 바다. 요하(遼河)라고도 한다.

74) [總覽]에는 近. [全文]의 遠이 오자임.

때마침 본국으로 돌아오는 배를 만나 타고 정명 7년75) 가을 7월 강주76)

덕안포에 도달하였으며, 배에서 내리자 마자 곧바로 창원 봉림77)으로 가

서 진경대사에게 귀국인사를 드렸다. 대사가 이르기를, “마침 오늘에야 만

나게 되었구나!”하고, 상봉하게 됨을 크게 기뻐하면서 따로 선당(禪堂)을

꾸미고 대사를 법상(法床)에 오르게 하여 중국에서 보고 배운 법문78)을 듣

는 한편 구법(求法)하고 무사히 귀국한데 대한 환영연도 겸하였다.79)

님은 담좌80)에 앉아 종용(縱容)히 말하되, “사람에는 노소가 있으나 법에

는 선후가 없다.”고 하였으며, 또한 여래의 밀인(密印)을 가지고 가섭의 비

81)을 연설하기도 하였다. 그후 삼랑사(三郞寺)로 가서 선백82)이 되었다.

대사가 그곳에서83) 3년을 지내고 보니84) 참으로 낙도(樂道)의 청재(淸齋)

이며, 또한 참선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느꼈다. 그러나 오히려 새들도

편안히 쉬려면 나무를 선택하거늘 내 어찌 포과85)에만 매달려 있겠는가.

복문(伏聞)하니 태조신성대왕86)께서 큰 포부를 품고87) 응기88)하여 포를 잡

89) 성스러움을 보여주려 하니,90) 마치 하(夏)나라 순(舜)임금이 개혁할

때 고천의 명을 받아91) 주나라를 비롯하여 출일(出日)의 성스러운 나라를

이룩함과 같았다.92)

適値本國歸舟, 因而東棹, 貞明七年, 秋七月, 達康州德安浦,

逕詣鳳林, 歸覲眞鏡大師. 師曰, “適當今日.” 深喜相逢, 別颿,

93) 禪堂, 俾昇譚座, 聽94)西訪之眞法, 慶東歸之妙緣. 縱95)容

謂曰,“人有老少, 法無先後.” 95) 尒其佩如來之密印, 演迦葉之秘

宗. 宜住三郞寺, 爲禪伯矣. 大師應奉而住更三冬, 迺以爲當寺

誠樂道之淸齋, 乃安禪之勝踐. 尙以鳥則擇木, 吾豈包96)瓜. 伏

聞,97) 我太祖神聖大王, 懷斗膺期, 握褒啓聖革98)夏, 受顧天之

命, 載周興出日之邦.

75) 정명(貞明) 7년:정명(貞明)은 후량(後梁) 말제(末帝)의 연호. 정명 7년은 921년

(경명왕 5).

76) 강주(康州):경상남도 진주의 옛 이름.

77) 봉림(鳳林):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에 위치한 봉림사를 지칭.

78) 서방지법(西訪之法):‘중국에 가서 듣고 배운 불법(佛法)’이라는 말.

79) 동귀지묘연(東歸之妙緣):원종대사(元宗大師)가 중국에 가서 불교를 배우고 다

시 동국, 즉 신라로 돌아온 것이 묘한 인연(因緣)이라는 말이다.

80) 담좌(譚座):법좌(法座) 또는 법상(法床)이란 뜻.

81) 가섭지비종(迦葉之秘宗):선종을 지칭한다.

82) 선백(禪伯):선덕(禪德)이 높은 선사(禪師). 백(伯)은 존칭으로, 후백(侯伯), 강백

(講伯), 화백(畵伯)과 같은 뜻이다.

83) 응봉(應奉):덕이 높은 스님을 받들어 모시면서 그의 회하(會下)에서 수도한다

는 뜻.

84) 주경삼동(住更三冬):융제대사(融諦大師)의 회하(會下)에 머문 지 이미 3년이 되

었다는 말. 경(更)은 음이 경이니, 지날 경字이다.

85) 포과(包瓜):포과(匏瓜)와 같은 말. 표주박이나 오이 따위가 꼭지에 매달려 있어

서 따거나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그 꼭지를 떠나지 못하고 붙어 있다는 뜻. 자

그만한 고토(故土)에서 넓은 세계로 떠나지 못하고 있음을 비유하는 말. 『논어』

「양화陽貨」,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통진대사보운탑비문」 주99)오기

포과吾豈匏瓜 [고려편1] p.357 참조.

86) 태조신성대왕(太祖神聖大王):신성은 고려 태조의 시호.

87) 회두(懷斗):마음에 큰 포부를 품는다는 뜻. 곧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하는

마음.

88) 응기(膺期):자신이 어떤 중요한 기회를 만나는 것. 곧 천운(天運)이 다가와 그

운을 이어받고 임금이 되는 것. 안수(晏殊),「진양제삼관모단시표進兩制三館牡

丹詩表」, “虞舜膺期 有皐陶之賡”.

89) 악포(握褒):순(舜)임금의 수중(手中:손바닥)에 포자(褒字)의 문양(文樣)이 있

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니, 노고(勞苦)로부터 이룩한 포식(褒飾). 큰 길상(吉

祥)을 성취함에 비유한 것이다.

90) 계성(啓聖):성스러움을 열어 보여주었다는 뜻. 곧 손바닥에 포자의 문양으로

성스러움을 보여주었다는 말이다.

91) 혁하수고지명(革夏受顧之命):하(夏)나라를 혁신(革新)함에는 고천지명(顧天之

命)을 받았다는 뜻.

92) 재주흥출일지방(載周興出日之邦):주(周)나라를 시작함에 출일(出日)의 방(邦)

을 이룩하였다는 뜻.

93) [總覽]에는 . [全文]의 飭(닦을 칙)은 과 同字인 飾의 오자임. 식(飾)과 칙(飭)

은 닦고 가꾼라는 뜻에서는 통함.

94) [總覽]에는 聽. [全文]의 廳은 聽의 오자임.

95) [全文]의 從과 [總覽]의 縱은 相通하는 字이다.

96) [全文]에는 탈락되었고, [總覽]에는 包이다.

97) [全文]에는 聞과 我 兩字 사이에 褒字가 더 있으니, 이는 삭제되어야 한다.

98) [總覽]에는 革. [全文]의 華는 革의 오자임.

이즈음 대사는 마치 조각달이 허공에 떠있듯이 고운(孤雲)이 산정(山頂)

의 바위 사이를 오가듯 고상하였다. 푸른 용(龍)이 창랑(滄浪)을 건널 때

뗏목에 의지할 마음이 없다 하나, 봉새가 허공을 날면서도 오히려 오동(梧

桐)나무 가지에 서식할 뜻이 없지 않은 것과 같았으니, 스님은 청려장99)

짚고 곧바로 옥경100)으로 나아가 궁중에 들어가서 태조대왕(太祖大王)을

근알(覲謁)하였다. 대왕은 대사의 도덕이 고매하고 법신(法身)이 원현(圓

現)하신 분이라고 존경하면서 광주(廣州) 천왕사(天王寺)에 주지(住持)하

도록 청하므로101) 스님은 왕청(王請)에 따라 주지하면서 사부대중(四部大

衆)을 크게 교화하였다. 그러나 항상 광주 혜목산은 고운 노을이 덮여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써 연좌(宴坐)하기에 가장 적합하며, 구름 덮인 계곡은 선

거(禪居)에 가장 좋은 곳이라 여겨 오던 차 다시 그곳으로 이주하였다. 이

후 사방 먼 곳에서 법문을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 천리를 마치 규보102)와 같

이 가깝게 여겨 구름처럼 모여와 바다와 같은 해회(海會)를 이루었으며,

분주히 달려오는103) 불자(佛子)들에게 선도(善道)로써 끊임없이 지도하여

현문(玄門)에 문법대중(問法大衆)이 제제104)하였다.

遂乃片月遊空, 孤雲出岫. 彼蒼龍濟浪, 本無憑筏之心, 丹105)

鳳冲虛, 猶有栖梧之志, 遠携藜106)杖, 逕詣玉京, 遂入107)覲太

祖大王. 大王, 以大師, 玄道周行, 法身圓對, 艿請住廣州天王

寺,遂從之住焉, 居則化矣. 而以慧目山, 乃霞嶠, 偏宜於宴坐,

雲溪, 甚愜於禪居, 迻而住焉. 於是, 四遠問津者, 視千里猶跬

步, 如雲來者, 似海納之, 莫不犇馳, 善道以憧憧, 出入玄門而

濟濟.

99) 청려(靑藜):명아주 대공을 말려 만든 지팡이. 옛부터 신선이 짚는 지팡이라고

한다. 이는 물에 띄우면 가로로 뜨지 않고 세로로 반듯하게 선다고 한다. 『삼보

황도三輔黃圖』「각閣」에 “夜有老人 著黃衣植靑藜杖 叩閣而進”이라 하였다.

100) 옥경(玉京):도교(道敎)에서 천제(天帝)가 거(居)하는 곳을 가리킨 것이나, 전

(轉)하여 황도(皇都), 곧 서울을 지칭한다.

101) 잉청(艿請):인하여 청(請)하다. 잉(艿)은 잉(芿)과 같은 뜻이니, 내(乃)와 같은

말이다.

102) 규보(跬步):일거족(一擧足)을 규(跬), 이(二)거족을 보(步)라 하므로 규보란 한

발자국을 뜻한다. 『대대례大戴禮』「권학勸學」에 “是故不積跬步 無以致千里”라

하였는데, 그 주(注)에서는 “跬 一擧足也”라 하였다. 『예기집설禮記集說』에서는

“君子須臾不離道 跬步不忘孝”라 하였다. 「진감국사대공영탑비문」 주48)규보跬

步 본서 p.89참조.

103) 동동(憧憧):노상(路上)에 행인(行人)의 왕래가 끊임없이 이어진 모양. 『역易』

「함咸」에 “憧憧往來 朋從爾思”라 하였다.

104) 제제(濟濟):제제다사(濟濟多士)의 준말. ①중다(衆多) ②중성지모(衆盛之貌).

『상서尙書』의 “誓于師曰 濟濟有衆 咸聽朕命”에 대해 그 「전傳」에서 “濟濟 衆盛

之貌”라 하였고, 『한서』「초원왕전楚元王傳」에 “濟濟多士 秉文之德”이라 하였다.

105) [總覽]에는 丹. [全文]의 舟는 丹의 오자임.

106) [總覽]에는 藜. [全文]의 黎은 藜의 오자임.

107) [全文]의 人과 [總覽]의 八은 모두 入의 오자임.

태조가 바야흐로 스님을 존경하여 사자(師資)의 인연(因緣)을 표하고자108)

적색 비단으로 만든 하납의109)와 좌구(座具) 등을 송정(送呈)하였다.

그로부터 109)얼마후 태조가 승하하니110) 마치 해가111) 우천112)에 지는 것과 같

이 천지가 캄캄하였다. 선시113)의 아름다운 인을 생각하며 식종( 終)의

현로,114) 즉 임종의 명복(冥福)을 장식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였다. 이어

혜종대왕115)이 천조116)하여 공손한 생각으로 선왕(先王)을 받들어 추모하

는 효심이 간절하였으며, 인(仁)을 권장하여 속(俗)을 교화하고, 부처님을

존중하고 스님들을 높이 받드는 한편, 차(茶)와 향(香), 무늬를 놓은 비단

법의117)를 정상(呈上)하였다. 대사 또한 불심으로 계도하여 부처님의 신통

법력(神通法力)을 펴기도 하였다.

太祖, 方當際會, 欲表因緣, 送霞衲衣幷座具. 未幾, 太祖天崩

杞國, 日入虞泉. 念善始之芳因,118) 引119) 終之玄路, 惠宗大

王, 踐阼思恭, 奉先追孝, 興仁化俗, 重佛尊僧, 贄以茗馞120)幷

紋羅法衣. 大師啓以佛心, 陳之神力.

108) 욕표인연(欲表因緣):태조(太祖)가 불심(佛心)이 돈독할 뿐만 아니라 원종대사

와 사자(師資)의 인연을 맺고자 하였다는 뜻.

109) 하납의(霞衲衣):하의(霞衣)라고도 한다. ①노을과 같은 옷 ②아름다운 옷 ③신

선(神仙)의 옷 ④미인(美人)의 옷 ⑤적색(赤色)의 옷 등의 뜻. 여기서는 적색 옷

이라는 말이니, 태조가 적색(紅袈裟) 비단가사를 선사하였다는 뜻. 당 중종(中

宗)의 『석종시石淙詩』에 “霞衣霞錦千般狀 雲峯雲岫百重生”이라 하였고, 왕정백

(王貞白)의 『기천태섭존사시寄天台葉尊師詩』에 “採藥霞衣濕 煎芝古鼎焦”라 하

였다.

110) 천붕(天崩):천붕지탁(天崩地坼)의 준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터진다는 뜻.

『사기』「노중련전魯仲連傳」에 “周烈王崩 齊後往 周怒赴於齊曰 天崩地坼 天子下

度 東蕃之臣 因齊後至 則斮”이라 하였다.

111) 기국(杞國):기우(杞憂), 또는 기인우천(杞人憂天)이라고도 한다. 필요없는 걱정

을 하여 지나친 심적(心的) 고통을 부른다는 데서 온 말. 기국(杞國)의 어떤 사람

이 하늘이 무너지면 몸을 둘 곳이 없지 않나 하고 염려하여 침식(寢食)을 폐(廢)

하였다는 고사. 『열자列子』「천서天瑞」에 “杞國有人 憂天地崩墜 身亡無所寄 廢

寢食者 又有憂彼之所憂者 因往曉之曰 天積氣耳 … 奈何憂崩墜乎 其人曰 天果

積氣 日月星宿 不當墜邪 曉之者曰 日月星宿 亦積氣中之有光曜者 只使墜 亦不

能有中傷 其人曰 奈地壞何 曉者曰 地積塊耳 … 奈何憂其壞 其人舍然大喜 曉之

者 亦舍然大喜”라 하였다. 천붕기국(天崩杞國)이란 태조가 자신이 죽은 뒤에 나

라가 어찌될까 근심하는 것에 비유하는 말이다.

112) 우천(虞泉):우연(虞淵)과 같은 뜻이니, 해가 지는 곳. 『태평어람太平御覽』「천

일상天·日上」에 “淮南子曰 日薄於虞泉 是謂黃昏 淪于蒙谷 是謂定昏 日入崦滋

經細柳 入虞泉之地 曙於蒙谷之蒲”라 하였다.

113) 선시(善始):선시선종(善始善終)의 준말. 시작도 잘하고 끝도 잘한다는 것이니,

시는 생(生)이고, 종은 사(死)이다. 그러므로 수도인(修道人)의 활계(活計)는 생

과 사를 모두 시인(是認)하여 대자연(大自然) 그대로 일임(一任)하여 임운자재

(任運自在)하는 것. 『장자莊子』「대종사大宗師」에 “善夭善老 善始善終”이라 하

였다.

114) 인식종지현로(引餝終之玄路):餝은 飾과 同字이다. 식종의 현로를 인도한다는

말. 즉, 임종의 명복(冥福)을 장식하여 정토(淨土)에 인도(引導)한다는 뜻이다.

식종이란 사자(死者)의 최후를 장식하는 것.

115) 혜종대왕(惠宗大王):고려 제2대 임금(943~945 재위).

116) 천조(踐阼):천자(天子)가 보위(寶位)에 오르는 것. 조(阼)란 동쪽의 계단. 처음

으로 천자의 자리에 즉위한 임금이 종묘의 동계(東階)로 올라가서 제사를 주관

(主管)하므로 임금의 위(位)를 계승하는 것을 천조라 한다. 『예기』「곡례曲禮」

‘하’에 “踐阼臨祭祀”라 하고, 그 「소疏」에 “踐 履也 阼 主人階也 天子祭祀 升阼階

… 履主階行事 故云踐阼”라 하였다.

117) 문라법의(紋羅法衣):무늬가 찬란한 비단으로 만든 가사(袈裟).

118) [全文]에는 因, [總覽]에는 囘이니 囘은 因의 속자(俗字)이다.

119) [總覽]에는 引. [全文]의 列은 오자임.

120) [總覽]에는 馞. [全文]의 은 오자임

3년이 지난 후121) 공왕122)이 승하(昇遐)하고 정종123)대왕이 보업(寶業)을

계승124)하여 스님의 진풍125)을 첨앙하였으니, 운납가사(雲衲袈裟)와 마납

법의(磨衲法衣)를 송봉(送奉)하기도 하였다. 대사는 성조를 깊이 생각하

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하여 불사공덕(佛事功德)의 기도를 봉행하였

다. 어찌 갑작스럽게 궁거126)가 운궐127)을 떠나며,128) 홀연히 짚신을 인간세

129)에서 벗어 버리는130) 때가 올 줄을 꿈엔들 알았겠는가.

越三年, 恭王昇遐, 定宗大王, 統承寶業, 瞻仰眞風, 送雲衲131)

袈裟. 磨衲法衣, 大師深喜, 聖朝聿興佛事. 豈悟遽宮車於雲

闕, 俄脫屣於人寰.

121) 월삼년(越三年):태조의 장자인 혜종이 승하한 945년.

122) 공왕(恭王):의공왕(義恭王)이니, 혜종의 시호이다.

123) 정종(定宗):고려의 제3대 임금(945~949 재위). 태조의 둘째 아들. 이름은 요(堯).

자(字)는 의천(義天).

124) 통승보업(統承寶業):보업을 통승하였다는 말이니, 왕위(王位)에 올랐다는 뜻

이다.

125) 진풍(眞風):불교의 교리를 지칭한다.

126) 궁거(宮車):안가(晏駕)의 뜻과 같다. 천자(天子)가 타는 수레. 안가란 천자가 붕

어(崩御)함을 기피하여 다르게 표현하는 말. 안(晏)은 만(晩)이니, 영구차(靈柩

車)가 해가 진 후 어두워서 남들이 보지 않는 시간에 발인(發靷)한다는 뜻. 『전

국戰國』「진책秦策」에 “秦王老矣 一日晏駕 有子異人 不足以結秦”이라 하고, 「주

注」에 “高誘曰 晏 晩也 日暮而駕 歸太陰也 謂死亡也 韋昭曰 凡初崩爲晏駕者 臣

子之心 猶謂宮車 當駕而出也”라 하였다.

127) 운궐(雲闕):높이 솟아 구름 속에 들어있는 궁궐. 곧 임금이 있는 궁중을 지칭한

다. 포조(鮑照)의 「대군자유소사시代君子有所思詩」에 “西出登雀臺 東下望雲闕”

이라 하였다.

128) 기오거궁거운운(豈悟遽宮車云云):어찌 갑자기 궁거(宮車)가 운궐을 떠나며, 홀

연히 짚신을 인간 세상에서 벗어 던져버리는 시기가 올 줄 꿈엔들 알았으랴!

129) 인환(人寰):인경(人境)과 같은 뜻이니, 사람이 사는 곳. 인간세상이란 말. 백거

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 “回顧下望人寰處 不見長安見塵霧”라 하였다.

130) 탈사(脫屣):①짚신을 벗는 것인데, 모든 것을 가벼이(輕視) 여겨 애착(愛着)함이

없이 던져버린다는 비유에서 온 말. 사망자(死亡者)가 모든 소유물(所有物)을 마

치 헌 신짝처럼 미련없이 버리고 떠나갔음을 표현함. ②천자(天子)가 황위(皇位)

에서 내려오는 것. 『한서』「교사지郊祀志」에 “吾視妻子 如脫屣耳”라 하였고, 양

(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도정절집陶靖節集』「서序」에 “唐堯四海之主 而

有汾陽之心 子晉天下之儲 而有洛濱之志 輕之若脫屣 視之若鴻毛”라 하였다.

131)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에는 衲임.

지금의 임금이 당벽132)하여133) 보기(寶基)에 올라 나라를 다스림에134)

경을 잡고 용방(龍邦)의 풍속을 비추며,135) 지(篪)를 불어 취령(鷲嶺)의 가

136)을 넓히고 더욱 성공(聖功)을 나타내어137) 한층 더 불화(佛化)를 존숭

(尊崇)하였다. 대사는 심왕의 묘결138)을 연설하며, 각제139)의 미언(微言)을

선양(宣揚)하되, 마치 거울이 항상 비춤에 피로함을 잊고, 범종(梵鐘)이 언

제나 걸려 있어도 조금도 권태를 느끼지 않는 것과 같았다. 학법대중(學法

大衆)은 도마(稻麻)처럼 열(列)을 짓고, 문법불자(問法佛子)의 왕래로 도

리지혜(桃李之蹊)를 이루었다140). 임금께서는 스님을 신향(信向)하는 마음

이 깊고, 흠모하는 뜻 또한 지극하였다.

今上當璧承基,141) 垂142)衣理國, 握鏡炤龍邦之俗, 吹篪,143) 弘鷲

嶺之風, 益顯聖功, 增崇佛化. 大師演心王之妙訣, 宣覺帝之微

言, 朗鏡忘疲, 洪鍾待扣. 衆學有稻麻之列, 朋來成桃李之蹊,

上乃信向心深, 欽承志至.

132) 당벽(當璧):구슬을 사직(社稷)에 제사(祭祀)하는 뜰에 묻어 놓고 무작위로 서게

하여 그 구슬 바로 위에 서서 절하는 왕자를 선택(選擇)하여 왕위를 계사(繼嗣)

하게 되었던 고사. 『좌전左傳』「소공昭公」 13에 “初共王無冢適 有寵子五人 無適

立焉 乃大有事于群望 而祈曰 請神擇於五人者 使主社稷 乃徧以璧 見於群望 曰當

璧而拜者 神所立也 誰敢違之 旣乃與巴姬密埋璧於大室之庭 使五人齋而長入拜

康王跨之 靈王肘加焉 子干 子晳 皆遠之 平王弱 抱而入 再拜皆厭紐”라 하였다.

「법인국사보승탑비문法印國師寶乘塔碑文」 주274)당벽當璧 [고려편] p.110 참조.

133) 금상당벽(今上當璧):이제 임금(光宗)께서 구슬에 해당되었다는 뜻이니, 광종이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말이다.

134) 수의(垂衣):수의상이천하치(垂衣裳而天下治)의 준말. 옷소매를 드리우고 가만

히 있어도 천하가 스스로 다스려진다는 뜻. 옛날의 제왕(帝王)은 무위(無爲)로써

천하를 다스렸다는 말. 『역易』「계사繫辭」‘하’에 “黃帝堯舜 垂衣裳而天下治 蓋取

諸乾坤”이라 하고, 그 「주註」에 “垂衣裳而辨貴賤 乾尊坤卑之義也”라 하였다.

135) 용방지속(龍邦之俗):중국(中國)의 풍속(風俗)이니, 유교(儒敎)의 사상을 지칭

한다.

136) 취령지풍(鷲嶺之風):영취산(靈鷲山)의 가풍(家風)이니, 불교사상을 가리킨다.

137) 익현성공(益顯聖功):더욱 왕의 성스러운 공을 나타낸다는 뜻.

138) 심왕지묘결(心王之妙訣):심왕이란 종속인 심소(心所)에 대한 말이니, 불교에서

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주창에 따라 모든 것이 마음에 의해 성취(成就)되

거나 파괴(破壞)된다고 한다. 이러한 진리를 설파(說破)한 것을 심왕지묘결이라

한다.

139) 각제(覺帝):각왕(覺王), 법왕(法王) 등의 뜻과 같은 말. 『성령집性靈集』7에 “奇

哉 覺帝之德 異哉 經王之功”이라 하였다.

140) 붕래성도리지혜(朋來成桃李之蹊):도리나무의 공원(公園)에는 구경꾼을 일부러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길이 생겨난다는 말. 「대경대사현

기탑비문大鏡大師玄機塔碑文」 주43)도리성혜桃李成蹊 [고려편1] p.73;「법경대

사보조혜광탑비문法鏡大師普照慧光塔碑文」 주89)도리성혜桃李成蹊 [고려편1]

p.225.

141) [總覽]에는 基이나 [全文]에는 탈락됨.

142) [總覽]에는 垂이나 [全文]에는 탈락됨.

143) [全文]에는 篪이고 [總覽]에는 箎이니, 箎는 속자(俗字)이다.

드디어 스님의 호를 증진대사(證眞大師)라 하고 도속(道俗)의 중사(重

使)를 보내되 지검144)을 지참하여 금성으로 왕림(枉臨)하도록 초빙하였

다.145) 대사는 불도를 흥행(興行)하려면 좋은 시기를 놓쳐서는 안될 뿐 아

니라 부처님께서도 불법의 유통(流通)을 국왕에게 부촉(咐囑)하신 것을

생각하여 왕궁으로 가기를 결심하였으며, 드디어 호계146)를 나와 용궐147)

나아갔다. 이 때 백설148)같은 청중(聽衆)과 조정대부(朝廷大夫)인 군영149)

들이 스님의 법안(法眼)을 우러러 보되 마치 주련150)과 같았으며, 자안(慈

顔)을 대하되 환앙151) 즉 마치 둥근 고리처럼 둘러서서 앙모(仰慕)하였다.

모시고 왕성에 있는 사나원152)에 이르렀다. 그 다음날 임금이 사나원(舍那

院)으로 행행(幸行)하여 감사하되 제자가 동림153)을 바라보듯 존경하였으

며, 남간154)을 향하여 정성을 기울였다.

遂奉師號, 爲證眞大師, 仍遣155)道俗重使, 遽飛芝檢, 徵赴金

城. 大師, 以爲道之將行, 時不可失, 念付囑故, 吾其往矣, 遂

出虎溪, 特詣龍闕. 於是, 雪眉淸衆, 鷺序群英, 瞻法眼以珠聯,

對慈顔以環仰. 送至王城舍那院. 翌日, 上幸舍那院, 謝曰, 弟

子, 望東林以引領, 向南澗以傾心.

144) 지검(芝檢):지니(芝泥), 인육(印肉), 인주(印朱), 자분(紫粉) 등과 같은 뜻이니,

지초의 즙으로 황토(黃土)를 반죽한 것. 유신(庾信)의 「한무제취서찬漢武帝聚書

贊」에 “芝泥印上 玉匣封來”라 하였고, 『양신외집楊愼外集』에 “今之紫粉, 古謂之

芝泥 今之石帛砂 古謂之丹雘 皆濡印染石帛之具也”라 하였다.

145) 징부금성(徵赴金城):임금이 스님을 초빙하여 금성으로 오게 하였다는 뜻. 금성

이란 견고한 성이니, 왕성(王城), 곧 서울을 가리킨다. 가의(賈誼)의 「과진론過

秦論」에 “天下已定 始皇之心 自以爲關中之固 金城千里 子孫帝王萬世之業也”라

하였다.

146) 호계(虎溪):호계란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백련결사(白蓮結社)를 맺은 여산(廬

山) 동림사(東林寺)를 가리킨다. 경치가 절경(絶景)이었으므로 흔히 수도하는

명산(名山)의 대명사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원종대사가 주석하는 혜목산(慧目

山)을 지칭한다.

147) 용궐(龍闕):왕궁을 지칭한다.

148) 설미(雪眉):연로(年老)하여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눈썹까지 백설(白雪)처럼 희

다는 말. 「진공대사보법탑비문」 주126)설미雪眉 [고려편1] p.101 및 「정진대사

원오탑비문」 주224)신설미이희가견伸雪眉而喜可見 [고려편1] p.411 등 참조.

149) 노서군영(鷺序群英):‘높은 관직을 가진 군영’이라는 말. 노서란 조정대신(朝廷

大臣)들의 서열(序列)이니, 관료를 지칭한다. 그 관료들의 정연(整然)한 모습이

마치 갈매기들이 날으는 차서(次序)와 같음을 상징한 것. 『금경禽經』에 “寮寀

雝雝 鳩儀鷺序”라 하고, 그 「주注」에 “鷺 白鷺也 小不踰大 飛有次序 百官縉紳之

”이라 하였다. 요채(寮寀)는 요채(僚寀)라고도 한다.

150) 주련(珠聯):많은 아름다운 구슬이 연이어 달려(連聯)되어 빛나는 모양이니, 스

님의 법안(法眼)을 앙첨(仰瞻)하는 서로의 눈동자가 구슬을 이어 놓은 것과 같

다는 말이다.

151) 환앙(環仰):주변에 있는 청중(聽衆)과 군영(群英)들이 스님의 자안(慈顔)을 대

하는 것이 마치 고리처럼 둘러서서 우러러 본다는 말이다.

152) 사나원(舍那院):개성(開城)의 궁성 밖에 있던 절. 919년(太祖 2)에 창건하였다.

법왕사(法王寺), 자운사(慈雲寺), 왕륜사(王輪寺), 내제석원(內帝釋院), 사나사

(舍那寺) 등은 모두 그 당시 대찰(大刹)이며 호국사찰이었다.

153) 동림(東林):여산 동림사의 혜원법사를 가리킨다. 스님이 이곳에서 승(僧)·유

(儒)·도(道)·속(俗) 등 123인과 함께 백련결사를 맺고 30여 년간 산문(山門) 밖

을 나오지 아니하였다. 진왕(晋王)이 스님을 지극히 존경하였다는데서 온 말이

다. 「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문」 주147)의혜결동림지사疑惠結東林之社 [고려편1]

p.32;「진공대사보법탑비문」 주134)여부廬阜 [고려편1] p.102;「징효대사보인탑

비문澄曉大師寶印塔碑文」 주84)혜원거여부慧遠居廬阜 [고려편1] p.249 등 참조.

154) 남간(南澗):남간사(南澗寺)를 이름이니, 항주부(杭州府, 浙江省) 전당현(錢塘縣)

에 위치한다. 지봉(志逢)이 개창(開創)하고 오월왕(吳越王)이 중건(重建)하였는

데, 일명(一名) 법우사(法雨寺) 또는 남간사라고도 한다. 송나라 때 지칭(智稱)

스님이 이 절에 있었는데, 당시 효무제(孝武帝 453~464)가 지극히 존숭(尊崇)하

였다. 스님의 속성은 배씨(裵氏), 하동(河東) 문희(聞喜) 출신. 특히 율부(律部)에

정통(精通)하여 『십송율의기十誦律義記』8권을 지었으며, 제(齊)나라 영원(永

元) 2년(500) 72세로 입적하였다. 『양고승전梁高僧傳』권11「석지칭전釋智稱傳」

(대정장50, p.402b) 참조.

155) [全文]에는 遣. [總覽]의 遺은 遣의 오자임.

스님께서 수기설법(隨機說法)함은 마치 깊은 골짜기에서 부는 회오리

바람소리156)와 같고, 수연부감(隨緣赴感)하는 것은 맑은 못에 비치는 달그

림자와 같았다. 귀의(歸依)하는 마음이 다시 간절하며 찬앙(鑽仰)하는 향

심 또한 더욱 깊었다. 3일을 지낸 후 궁내의 중광전(重光殿)에서 법회를

여니 금란가사(金襴袈裟)를 입고 자전(法床)에 올랐다. 임금이 스님의 과

157)을 보고 선열(禪悅)에 잠겼으며 연안158)을 받들어 정성을 다하였다.

환구(環區)가 모두 피석(避席)의 예의를 폈으며 거국(擧國)이 함께 서신

(書紳)의 뜻을 바쳤다. 삼귀의(三歸依)의 마음을 더욱 책려(策勵)하고 십

선(十善)을 한층 더 닦게 되었다. 내지 개자겁이 다하고159) 반석겁이 다하

더라도160) 반드시 부처님을 친견한 양인(良因)은 다하지 않으며, 또한 스

님의 위대한 업적은 다할 때가 없을 것이라 염원하였다. 곧 곤룡포(袞龍

袍)를 입고 면류관을 쓰고는161) 스님을 받들어 국사로 모시고 경건한 마음

으로 향화(香火)의 인연을 맺었으니, 돈독한 정성으로162) 사자(師資)의 예

를 행하고는, 마납163)가사, 마납장삼164)과 좌구165)·은병(銀甁)·은향로(銀香

爐)·금구자발166)·수정염주(水精念珠) 등을 선물로 헌납하였다.

師尊隨機, 如飇167)谷之聲, 赴168)感似月潭之影. 瞻依更切, 鑽仰

彌深. 越三日, 於重光殿, 開法筵, 及乎曳以金襴, 昇於紫殿.

上覩菓脣而禪悅, 奉蓮眼以精誠. 爲其環區,169) 申避席之儀, 擧

國展書紳之志. 三170)歸益勵,171) 十善增修. 乃至, 芥子172)城空,

衣磨石盡, 必也, 見聖之良因不歇, 爲師之美道無窮. 卽以服

冕, 奉爲國師, 虔虔173)結香火之緣, 慥慥結師資之禮, 仍獻踏174)

納袈裟, 磨衲襖, 幷座具, 銀甁, 銀香爐, 金釦瓷鉢, 水精念珠.

156) 표곡지성(飇谷之聲):깊은 골짜기에 메아리치는 회오리바람 소리. 표(飇)는 회

오리바람 표字.

157) 상도과순(上覩菓脣):정종(定宗) 임금이 스님께서 설법함에 마치 붉은 과일과

같은 입술을 보았다는 뜻. 과순이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성모(聖貌)를 찬

양하는 『관음예문觀音禮文』에 “正法明王 聖觀自在 髮凝翠黛 唇艶朱紅 臉透丹

霞 眉彎初月”이라 하였으니, 진염주홍(唇艶朱紅)이 곧 과순과 같은 말. 「정진대

사원오탑비문」 주340)과순果脣 [고려편1] p.420 참조.

158) 연안(蓮眼):청련화목(靑蓮華目)의 준말. 부처님의 삼십이상(三十二相) 중 제29

안색여감청색(眼色如紺靑色:눈동자가 검푸르다)에서 온 말이다.

159) 개일성공(芥噎城空):일자(噎字)는 자(子)의 오자인 듯하다. 개자성공(芥子城空)

이란 사방 40리(里)의 성중(城中)에 가득 채웠던 개자가 다 없어졌다는 말이니,

불교의 시간론(時間論)에 있어서 개자겁(芥子劫), 불석겁(拂石劫), 증감겁(增減劫

등 3가지의 겁(劫)이 있는데, 개자겁이란 둘레 40리가 되는 성중에 개자를 가득

채워놓고 장수천(長壽天) 사람이 3년 마다 한 알씩 가지고 가서 그 개자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를 1겁이라 한다. 소겁(小劫), 중겁(中劫), 대겁(大劫)이 있는데, 이

를 소겁이라 한다. 「통진대사보운탑비문」 주222)개성芥城 [고려편1] p.368 참조.

160) 의마석진(衣磨石盡):앞의 주(註)에서 말한 불석겁(拂石劫, 또는 盤石劫)이니,

사방 40리가 되는 반석(盤石)을 천인(天人)이 무게 삼수(三銖)인 가볍고 엷은

천의(天衣)로 3년마다 한 번씩 스쳐 그 돌이 다 없어질 때까지의 기간을 1겁이

라 한다.

161) 복면(服冕):임금의 정복(正服)이니 곤룡포와 면류관을 지칭한다.

162) 조조(慥慥):진실하며 독실한 모양. 『중용中庸』에 “言顧行 行顧言 君子胡不慥慥

爾”라 하였다.

163) 답납(踏衲):답(踏)은 마(磨)의 오자(誤字)인 듯하다.

164) 마납오(磨衲襖):마납비단으로 만든 장삼(長衫).

165) 좌구(座具):좌복(坐複).

166) 금구자발(金釦瓷鉢):금으로 테를 두른 와발(瓦鉢).

167) [全文]에는 飇이고 [總覽]에는 颷이니, 颷는 飇의 속자(俗字)이다.

168) [全文]에는 赴와 感 兩字 사이에 颷字가 더 있으나, 이는 삭제되어야 한다.

169) [全文]에는 珠이고 [總覽]에는 區이니, 어느 자가 옳은지 未詳이다.

170) [全文]에는 三과 歸 兩字 사이에 區字가 더 있으나, 이는 삭제되어야 한다.

171) [全文]의 切과 [總覽]의 勵는 뜻으로 兩字 모두 무방하다.

172) [全文] [總覽] 모두 噎이나, 子字가 아닌가 추정한다.

173) [總覽]에는 虔虔. [全文]의 處處는 虔虔의 오자임.

174) [全文] [總覽] 모두 踏이나, 磨의 誤字가 아닌지 미상이다

대사는 물 속에 비친 달과 같이 맑으며 구름없는 산봉우리처럼 고고(孤

高)하였다. 일심으로 묘각(妙覺:부처님)의 교풍을 선양하며 천안175)으로

대자(大慈:관세음보살)의 교화를 보였다. 임금께서 크게 기꺼워하여 이르

기를, “제자가 깊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도를 깨달았으며 묘한 도리를 계승

하여 미묘(微妙)한 법을 알았나이다. 앞으로 정성을 다하여176) 불법을 받들

어 실추(失墜)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하고는 천덕전(天德殿)에서

크게 법회를 열고177) 큰 원심(願心)을 발하여 심향(心香)의 일주(一炷)를 태

웠다. 대사가 법상(法床)에 앉아 불자(拂子)를 한 번 휘두르고178) 얼굴을 약

간 움직였다.179)

大師, 潭心有月, 嶽頂無雲. 一心宣妙覺之風, 千眼示大慈之

化. 上乃大喜曰, “弟子聽玄言而達道, 承妙旨以知微, 奉以周

旋, 不敢失墜.” 迺於天德殿, 高敞法筵, 傾180)願海之千181)波,182)

183)心香之一炷. 大師纔麾麈尾, 乍動龍頤.

175) 천안(千眼):천수천안(千手千眼)의 준말.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은 천수와 천

안뿐만 아니라 8만 4천의 보목(寶目)과 8만 4천의 팔, 8만 4천의 손이 있어 중생

들에게 한량없는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신다.

176) 주선(周旋):일이 잘 되도록 이리저리 힘을 써서 변통해 주는 일. 『좌전』「양공襄

公」31에 “進退可度 周旋可則 容止可觀”이라 하였다.

177) 고창법연(高敞法筵):높이 법회(法會)를 연다는 뜻. 敞은 열 창字.

178) 재휘주미(纔麾麈尾):겨우 주미(麈尾)인 불자(拂子)를 지동지서(指東指西)로 가

리킨다는 뜻. 곧 설법한다는 말이다.

179) 용이(龍頤):원종대사의 존안(尊顔).

180) [總覽]에는 傾. [全文]의 偕는 傾의 오자임.

181) [總覽]에는 千. [全文]의 天은 千의 오자임.

182) [全文]에는 千과 의 兩字 사이에 波字가 탈락되었다.

183) [全文]에는 心이란 兩字 사이에 茶字가 더 있으나, 이는 삭제되어야 한다

이 때 청법대중 가운데 어떤 스님이 묻기를, “향상일로184)란 어떤 것입

니까?”하니, 대사가 이르기를, “일천 성인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라.”하였다. 또 묻기를, “천성(千聖)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가섭(迦

葉)으로부터 조조(祖祖)가 서로 전하여 온 것은 무엇으로부터 있게 된 것

입니까?”하니, 대사가 이르기를, “다만 천성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고, 스

스로 증득(證得)하는 것이므로 초조 가섭으로부터 서로 전해오는 것이니

라.”하였다. 또 묻기를, “이러한즉185) 이조(二祖) 혜가(慧可)가 서천(西天)

의 달마대사(達磨大師)를 바라보지 않았으며, 달마대사 또한 당토(唐土)

에 오지 아니한 것입니까?”하니, 대사가 이르기를, “비록 천성(千聖)으로

좇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달마가 부질없이 동토(東土)에 온 것도 아닌 것

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문답할 때 인천(人天)이 모두 감응(感應)하

였으며 현성(賢聖)도 함께 기꺼워하였다.

有僧問, “如何是向上一路.” 大師曰, “不從千聖得.” 又問, “旣

不從千聖得, 從上相傳, 從何而有.” 大師曰, “只爲不從千聖

得, 所以, 從上相傳.” 又問, “與 186)卽二祖不望西天, 達摩不

到唐土, 大師曰, 雖不從千聖得, 達摩不虛過來.” 於是, 人天

感應, 賢聖喜歡.

184) 향상일로(向上一路):위로 한층 더 나아감. 하근기(下根機)에 해당하는 문자언

구(文字言句)를 벗어나 최상근기(最上根機)의 겸추(鉗鎚)인 본분초료(本分草

料)를 가리킨다. 『경덕전등록』권7(대정장51, p.253b), 「반산보적상盤山寶積狀」

에 “師上堂示衆曰 心若無事 萬生不生 意絶玄機 纖塵何立 道本無體 因道而立

名 道本無名 因名而得號 若言卽心卽佛 今時未入玄微 若言非心非佛 猶是指蹤

之極則 向上一路 千聖不傳 學者勞形 如猿捉影 夫大道無中 復誰先後 長空絶際

何用稱量 空旣如斯 道復何說 夫心月孤圓 光呑萬像 光非照境 境亦非存 光境俱

亡 復是何物”이라 하였다.

185) 여마(與摩):여마(與麽)라고도 한다. 이몰(異沒), 이마(伊摩), 이마(伊麽) 등과 같

은 뜻. 이렇다고 진술한 사물의 상태와 실현(實現)하고 있는 상태를 지적(指摘)

하는 것으로, 이와 같이, 저와 같이 또는 그렇다면 등의 뜻. 『조주록趙州錄』 중에

“與麽來從師接 不與麽來 師如何接”이라 하였고, 『무문관無門關』 23에 “不思善

不思惡 正與麽時 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이라 하였다.

186) [全文]에는 磨이고 [總覽]에는 摩이니, 모두 무방하나, 麽이어야 한다.

꽃비가 공중(空中)에 날고, 전단향(栴檀香)의 연기가 태양을 가리우는

상서가 나타났다.187) 마치 마등(摩騰)스님이 한(漢)나라에 오고,188) 강승회

대사(康僧會大師)가 오(吳)나라에 들어간189) 때와 같아서 부처님의 크신

공덕과 승가(僧伽)에 귀의하는 그 지극함이 이보다 더한 때가 없었다. 이

른바 사방이 모두 존경하고190) 만세토록 모두가 영원히 의뢰하였다. 부처

님의 혜일(慧日)이 다시 중흥하는 때를 당하였으니, 이는 인방191)이 크게

변혁할 때이다.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노승은 이제 나이 상유(桑楡)에 임

박하고192) 몸은 포류(蒲柳)처럼 노쇠하였으므로193) 다만 송문(松門)에 가서

휴족(休足)하면서 궁중인 금궐(金闕)을 향하여 폐하(陛下)에게 귀심(歸心)

하기를 원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花雨飛空, 檀煙194)蔽日, 彼摩騰赴漢, 僧會遊吳, 其奉佛之大

功, 歸僧之專 , 無以加也, 所謂, 四方咸賓, 萬世永賴, 當慧

日再中之際, 是仁方丕變之時, 大師迺言曰, 老僧, 年迫桑楡,

齒衰蒲柳, 但願往松門而休足, 向金闕而歸心而已.

187) 단연폐일(檀煙蔽日):전단향의 연기가 해를 가리웠다는 말. 곧 상서(祥瑞)가 나

타남을 뜻한다.

188) 마등부한(摩騰赴漢):중국 후한(後漢) 명제(明帝) 영평(永平) 10년에 서역(西域)

의 마등스님 일행이 처음으로 한나라에 불교를 전래(傳來)한 사실이니, 「지증대

사적조탑비문」 주21)한징패일漢徵佩日 [신라편] p.296, 주38)섭등동입攝騰東入

[신라편] p.298;「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문」 주116)마등선척한왕지전摩騰先陟

漢王之殿 [고려편1] p.29;「통진대사보운탑비문」 주10)마등부한 [고려편1] p.350

등 참조.

189) 승회유오(僧會遊吳):강거국의 승회스님이 중국에 불교 전파를 위해 오(吳)나라

에 가서 사리의 영험을 보여 손권(孫權)의 귀의(歸依)를 받아 비로소 오나라에

불교가 전파되었다는 데서 온 말. 「지증대사적조탑비문」 주40)강회남행康會南

行 [신라편] p.298;「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문」 주117)강거승회시승오주지거康

居僧會始昇吳主之車 [고려편1] p.29;「통진대사보운탑비문」 주9)승회유오 [고

려편1] pp.349~350;대정장50, p.325a 등 참조.

190) 사방함빈(四方咸賓):사방(四方)에서 모두가 스님의 도덕을 흠복(欽服;賓服)한

다는 뜻.

191) 인방(仁方):동방인 우리나라를 지칭한다.

192) 연박상유(年迫桑楡):나이 상유(桑楡)에 임박하였다는 말. 일모(日暮), 즉 석양

(夕陽)에 해 그림자가 나무의 끝을 비추는 것. 죽음이 눈앞에 있다는 뜻. 스님은

세수(歲壽) 89세로 입적(入寂)하였다. 상유란 해가 지는 곳을 가리킨다. 만년(晩

年), 또는 열반(涅槃) 직전(直前)을 말한다.

193) 치쇠포류(齒衰蒲柳):나이가 많아 이가 마치 포류처럼 쇠퇴하고 약해졌다는 뜻.

포류란 버드나무의 일종(一種). 곧 수양버들. 『이아爾雅』「석목釋木」에 “楊 蒲柳”

라 하였고, 『본초本草』「수양水楊」에 “釋名 靑楊 蒲柳 蒲楊 蒲栘 雚柳 雚苻”라 하

였다.

194) [全文]의 烟과 [總覽]의 煙은 같은 字이다.

임금이 비록 스님의 자안(慈顔)을 연모하나 다만 현지(玄旨)를 준수할

뿐이다. 떠나는 스님이 탄 상헌195)을 바라보면서 전송하였고 안찰196)을 우

러러 항상 마음을 그곳으로 기울였다. 그후 자주 성기197)를 보내어 뜻을

전하며 선한198)을 날려 보내어 정성을 피력하되, 다음과 같은 송덕시(頌德

詩)를 지어 보냈다.

上, 雖戀慈顔, 祗遵玄旨. 望象199)軒而目送, 瞻鴈刹以心傾. 尒

後, 馳星騎以傳情, 飛仙200)翰而寫懇, 迺製誦201)德詩, 寄獻曰.

195) 상헌(象軒):용상대중(龍象大衆)이 탄 큰 수레이니, 대사(大師)가 타고가는 연

(輦)이다.

196) 안찰(鴈刹):사찰(寺刹)을 가리키니, 곳곳에 사찰이 많이 나열(羅列)되어 있는

것이 마치 기러기가 열(列)을 지어 날아가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권3「원종흥법原宗興法」에 “寺寺星張 塔塔雁行”이란 말이

있다.

197) 성기(星騎):천자의 기마사(騎馬士)이니, 곧 천자의 사자(使者)를 이름. 채양(蔡

襄)의 「조공사시詔貢士詩」에 “星騎翩翩鶴詔來 旋聞歡語沸春雷”라 하였다.

198) 선한(仙翰):천자의 편지. 신한(宸翰)과 같은 뜻. 이교(李嶠)의 「봉교추부구성궁도

중구호시奉敎追赴九成宮途中口號詩」에 “委質承仙翰 祇命遄遙策”이라 하였다.

199) [全文]에는 象과 軒 兩字 사이에 衹字가 더 있으나, 이는 삭제되어야 한다.

200) [全文]에는 宸이고 [總覽]과 [拓本]에는 仙이니, 뜻으로는 相通한다.

201) [全文]에는 誦. [總覽][拓本]에는 講이니, 이는 [全文]의 誦이 옳은 듯하다.

혜등(慧燈)을 높이 들어 해향202)을 비추시었고,

진신(眞身)은 적적(寂寂)하나 화광203)을 나타냈도다.

패엽경(貝葉經) 연설하여 중생(衆生)을 제도하시고,

발우속 연꽃 피어 고요히 입정(入定)하셨네.

慧日高懸曜204)海鄕,

眞身寂寂現和光.

貝中演法開迷路,

鉢裡生蓮入定場.

202) 해향(海鄕):해동(海東)인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203) 화광(和光):화광동진(和光同塵)의 준말. 화광동진은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

의 티끌에 동화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지덕(智德)과 재기(才氣)를 감추고 세속

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또한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그 본색을 숨기고

인간계(人間界)에 나타남을 이르는 말이다.

204) [總覽]의 曜와 [全文]의 耀는 같은 뜻이다

사자후(師子吼) 일음(一音)으로 무명(無明)을 흩어주시니,

이문205)이 상(相)을 떠나 진로(塵勞)에서 벗어났도다.206)

현관(玄關)은 깊고 깊어 산천(山川) 밖 저넘어 있어,

그곳을 선망하나207) 친견할 길 전혀 없네.

一唱208)209)成音收霧淨,

二門離相出塵凉.

玄關遠隔山川外,

恨不奔波謁上房.

205) 이문(二門):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

206) 출진량(出塵凉):복잡한 세간진로(世間塵勞)를 벗어나서 마음이 항상 청량(淸

凉)과 같이 고요하다는 뜻이다.

207) 분파(奔波):물이 흘러가듯 목적지로 쫓아간다는 뜻이다

208) 상방(上房):사원(寺院)의 주지(住持)를 일컬는다. 주지가 거처(居處)하는 곳은

사중(寺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므로 상방이라 하였는데, 전(轉)하여 주지

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상기전象器箋』 5에 “道忠曰 上方 本稱山上佛寺 而今呼

住持人 爲上方 其所居在寺最高深處 亦可稱上方也”라 하였다.

209) [總覽]에는 唱. [全文]의 喝은 唱의 오자임.

이 송덕시와 아울러 오정210)·방천211)·단요212)·명향213) 등의 선물을 보내

어 신심(信心)을 표하고 간절히 법력(法力)을 빌었다. 대사는 천궐214)에 하

직하고 곧 운산(雲山)에 이르렀다. 구름과 칡넝쿨이 얽힌 산림은 깃들어

머물기에(栖遲) 적합하며, 수도하면서 바윗돌로 베개하고 흐르는 물로 양

치질하기에 편의하여215) 마음으로 열반할 곳으로 삼으려 하였다.216)

仍贄之以烏裎, 芳荈, 丹徼, 名香, 用表信心, 遙祈法力. 大師,

自辭天闕, 却到雲山. 煙蘿更叶於栖遲, 水石偏宜於枕漱, 心無

限矣, 志有終焉.

210) 오정(烏裎):오정은 방천(芳荈), 단요(丹徼), 명향(名香) 등과 함께 선물에 속하

는 명칭이다. 형남(刑南)에는 오정이 있고, 예북(豫北)에는 죽엽(竹葉)이 있다

하였다. 장협(張恊)의 『칠명七命』에 “乃有刑南烏程 豫北竹葉”이라 하였다. 여기

서 오정과 죽엽은 모두 주명(酒名)이다. 오정인 술을 스님께 선사한 것으로 보

아 이는 술이라기 보다 높은 분에게 드리는 일종의 보약(補藥)인 것 같다.

211) 방천(芳荈):가을 늦게 딴 다료(茶料)의 일종이니, 방신(芳茞)와 같은 것. 곧 귀

진(貴珍)한 차(茶)를 말한다.

212) 단요(丹徼):붉고 누런 색실로 화려하게 수를 놓은 가리개, 즉 병풍을 가리킨다.

213) 명향(名香):이름 그대로 유명(有名)한 향이니, 예컨대 전단향, 울금향, 첨복향

등을 일컫는다.

214) 천궐(天闕):천자나 임금이 있는 대궐(大闕), 즉 궁문(宮門)이나 여기서는 임금

을 지칭한다.

215) 침수(枕漱):침석수류(枕石漱流)의 준말이니, 깊은 산중에서 수도함에 있어 백

운(白雲)과 청산(靑山)을 벗과 집으로 삼아 돌로 베개를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

질하면서 초연한 기개(氣槪)로 수도하기에 가장 마땅한 곳이라는 뜻. 「통진대사

보운탑비문」 주102)침수최의枕漱最宜 [고려편1] p.358 참조.

216) 지유종언(志有終焉):마음에 이곳을 종언지지(終焉之地)인 열반할 곳으로 정하

려는 생각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로부터 누더기를 입은 납자217)가 바람처럼 찾아오고, 대중공양을 올

리기 위하여218) 오는 이가 구름과 같이 모여들었다.219) 대사는 색(色)과 공

(空)을 모두 초월하여 선정(禪定)과 지혜가 함께 원만하였으며, 지극한 도

(至道)를 산중에서 행하고 그윽한 공력(玄功)을 천하220)에 두루 베풀었으

니, 신비하면서 중생을 교화하시니 어찌 불(佛)이나 각자(覺者)와 다르겠

는가?

於是, 擁毳者風趍, 攝齋者雲萃. 大師, 色空雙泯, 定惠俱圓,

行至道於山中, 施玄功於宇內, 則何異佛者覺也, 神而化之矣.

217) 옹취자(擁毳者):누더기를 입은 스님이란 뜻.

218) 섭재자(攝齋者):부처님께 불공(佛供)을 올리고, 대중(大衆) 스님들에게는 대중

공양을 올리려는 신도(信徒)들을 지칭한다.

219) 운췌(雲萃):운집(雲集)과 같은 말이니, 구름과 같이 사방에서 많이 모여든다는

뜻이다.

220) 우내(宇內):국내 또는 천하(天下)라는 뜻이니, 스님의 덕화(德化)가 온 천하에

널리 베풀어졌다는 말이다.

현덕 5년221) 세집222) 돈장223) 8월 월결 5일224) 대사께서 곧 열반에 들고자

하여 목욕한 다음 방 앞에 대중을 모으라고 명하였다. 대중이 모두 뜰 앞

에 모였다. 대사가 유훈(遺訓)하여 가로이르기를, “만법(萬法)은 모두 공

(空)한 것, 나는 곧 떠나려 하니 일심(一心)으로 근본을 삼아 너희들은 힘

써 정진하라. 마음이 일어나면 곧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법도 따

라서 멸하나니, 인심(仁心)이 곧 부처님이거늘 어찌 별다른 종류가 있겠

는가? 여래(如來)의 정계(正戒)를 힘써 보호하라!” 유훈의 말씀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서 엄연(儼然)히 가부좌를 맺고 앉아 입적하였으니, 고달원

(高達院) 선당(禪堂)이었다. 오호라!225) 동신(東身)에 응한지는226) 90세이

고, 서계(西戒)를 받은지는227) 69하이다. 호계228)는 소리내어 오열하고 학

229)의 빛은 우울함이 가득하였다. 문생들은 앞으로 누구를 의지할 것인

가 하여 슬픔에 잠겼으며, 산중의 노스님들은 모두 자신의 노쇠함과 고위

(枯萎)함을 탄식하였다.230) 스님과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들이 함

께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통곡하는 소리가231) 암곡을 진동하였다.

顯德五年, 歲集敦牂, 秋八月, 月缺五日, 大師將化往, 盥浴

訖, 房前命衆. 悉至于庭. 迺遺訓曰, “萬法皆空, 吾將往矣, 一

心爲本, 汝等勉旃. 心生法生, 心滅法滅, 仁心卽佛, 寧有種乎.

如來正戒, 其護之勗之哉.” 言畢入房, 儼然趺坐, 示滅於當院

禪堂. 於戱, 應東身者, 九十春, 服西戒者, 六十九夏. 虎溪聲

咽, 鵠232)樹色憂. 門生銜安仰之悲,山老233)起其萎之歎. 緇234)

白235)士女, 擗踴慟哭, 聲振巖236)谷.

221) 현덕(顯德) 5년:현덕은 후주(後周) 세종(世宗) 때의 연호. 현덕 5년은 무오(戊

午). 958년(光宗 9).

222) 세집(歲集):세차(歲次) 또는 태세(太歲)와 같은 말.

223) 돈장(敦牂):고갑자(古甲子) 중 지지(地支)의 ‘오(午)’라는 뜻이니, 현덕 5년이 무

오년이므로 마땅히 돈장 위에 천간(天干)의 무(戊)인 저옹(著雍)을 첨가하여 ‘저

옹돈장(著雍敦牂)’이라 하여야 한다.

224) 월결(月缺) 5일:달은 음력 16일부터 이지러지므로 달이 기울어지기 시작한지 5

일째란 말이니, 20일이라는 뜻. 이지관, 『신행일감信行日鑑』, p.255 및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문」 주6)창월暢月;주7)월결지칠일月缺之七日 본서 p.116 등 참조.

225) 어희(於戱):오호라로 음독(音讀)하여야 한다. 슬퍼하는 모양. 호곡(號哭)하면서

서러워하는 것.

226) 응동신(應東身):세속(世俗)의 나이, 곧 세수(世壽)라는 뜻이다.

227) 복서계(服西戒):수계(受戒) 이후의 나이. 법랍(法臘) 곧 승랍(僧臘)이라는 뜻

이다.

228) 호계(虎溪):중국 여산 동림사의 입구에 있는 계천(溪川)을 뜻하나, 여기서는 원

종대사가 열반한 곳인 혜목산(慧目山)을 가리킨다.

229) 학수(鶴樹):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구시나가라에 있던 사쌍팔척(四雙八隻)의 사

라나무인데, 부처님의 열반을 애도(哀悼)하여 그 나무가 모두 백색(白色)으로

변하였으므로 이를 학수라고 한다.

230) 산세기기위지탄(山世起其萎之歎):산세의 세자(世字)가 [全文]에는 노(老)로 되

어 있으니, 노자(老字)가 옳다. 산중의 노스님들은 모두 자신이 노쇠(老衰)하고

고위(枯萎)함을 탄식하였다는 뜻이다.

231) 벽용통곡(擗踴痛哭):가슴을 치고 뛰면서 통곡한다는 뜻. 벽(擗)은 가슴두드릴

벽字. 벽용부심(擗踊拊心).

232) [全文]의 鶴과 [總覽][拓本]의 鵠은 뜻으로는 같다.

233) [全文]에는 老. [總覽][拓本]의 世는 老의 오자임.

234) [總覽]에는 緇. [全文]의 繅는 緇의 오자임.

235) [全文]에는 白과 士 兩字 사이에 世緇란 兩字가 더 있으나, 이는 삭제되어야 한다.

236) [全文]의 嵓과 [總覽][拓本]의 巖은 같은 字이다

다음날 신좌(神座)를 혜목산(慧目山)으로 옮겨 감실(龕室)을 열고 보니

안색(顔色)이 생전(生前)과 같았다. 터를 고르고237) 석호(石戶)를 시설하

여 유골을 봉폐(封閉)하였다. 임금께서 부음(訃音)을 들으시고 선월(禪月)

이 너무 일찍 빠짐을 개탄하며, 각화(覺花)가 먼저 떨어짐을 슬프다 하시

고, 성사238)를 보내 곡서239)로써 조의를 표하고 시호를 원종대사(元宗大師),

탑호를 혜진(慧眞)이라 추증하였다. 그리고 진영 일정240)을 조성하고, 국공

(國工)으로 하여금 돌을 다듬어 층총(層冢)을 만들었다.241) 문인들이 호곡

하면서 색신(色身)을 받들어 혜목산 서북쪽 산기슭에 탑을 세웠으니 이는

상법(像法)을 준수한 것이다.

翌日, 奉遷神座於慧目山, 龕242)觀, 顔色如生. 權施石戶封閉.

上聞之, ‘慨禪月之早沉, 嗟覺花之先落.’ 降之星使, 吊以鵠書,

追諡元宗大師, 塔號243)惠眞. 敬造眞影一 ,244) 仍令國工, 攻石

封層冢. 門人等, 號奉色身, 竪塔于慧目山西北崗, 遵像法也.

237) 권(權):탑을 세울 장소에 기초를 다지는 것. 권시석호봉폐(權施石戶封閉)란 기초

를 튼튼히 구축한 다음 그위에 석호, 즉 석함(石函)을 놓고 신좌(神座)를 넣고는

덮어서 봉폐한다는 것이니, 임시로 유해(遺骸)를 안장(安葬)하는 것을 말한다.

238) 성사(星使):옛날 천문가(天文家)들이 말하기를, “천상(天上)에 사성(使星)이란

별이 있어서 인간천자(人間天子)의 사신(使臣)을 주관(主管)한다.”고 하였으므

로 세상에서 천자의 사자를 성사라 하였다. 『후한서』「이합李郃」, “和帝分遣使者

觀採風謠 使者二人 到益投郃候舍 郃因仰觀 問曰 二君發時 寧知朝廷遣二使耶

問何以知之 郃指星示云 有二使星 向益分野 故知之”.

239) 곡서(鵠書):곡판(鵠板) 또는 곡두판(鵠頭板)과 같은 뜻이니, 임금의 명(命)인 조

서(詔書)를 가리킨다. 곡두서체(鵠頭書體)로 썼기 때문에 곡두라 한다.

240) 진영일정(眞影一 ):정성을 다하여 스님의 영정(影幀) 일위(一位)를 조성하였

다는 뜻.

241) 석봉층총(石封層冢):돌을 다듬어 층총(層冢)인 층탑(層塔)을 만들어 유해(遺骸)

를 안치하고 봉폐(封閉)하였다는 뜻이다.

242) [總覽]에는 龕. [全文]의 顔은 龕의 오자임.

243) [全文]에는 號이고 [總覽]에는 号이니, 号는 號의 약자이다.

244) [全文] [總覽] 모두 이나, 이어야 한다.

대사는 심등(心燈)이 강렬하며 정수(定水)는 파랑(波浪)이 없고,245) 지혜

는 바다와 같이 원융하며 자비의 구름은 온 세계를 덮었다. 불법을 배우고

선을 깨달은 덕행과 마군에게 항복받고 세속을 진압한 위릉246)과 입송서

학(入宋西學)한 246)혁혁하고 현현247)한 공적과 귀국동화(歸國東化)한 미묘(微

妙)하고 외외248)한 법력은 반도249)로 하여금 윤색(潤色)케 하였으니, 마치

맑은 물이 광명을 발하는 것과 같았다. 그 성스러운 공덕은 가히 지해(知

解)로써 알지 못하며, 그 신비한 덕화(德化)는 가히 지식(知識)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大師, 心燈有焰, 定水無波, 智慧海融, 慈悲雲覆. 學佛悟禪之

德行, 降魔鎭俗之威稜, 西遊顯顯之功, 東化巍巍之法, 遂使盤

桃潤色, 若木生光. 其聖功也, 不可以知250)知, 其神化也, 不可

以識識.

245) 정수무파(定水無波):삼매( samādhi)의 힘이 깊고 번뇌가 없음.

246) 위릉(威稜):『한서』「이광李廣」, “是以名聲暴於夷貈 威稜憺乎鄰國”의 주에서 “李

奇曰 神靈之威曰稜”이라고 하였다.

247) 현현(顯顯):혁혁(赫赫)하고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나타난 위대한 업적. 『시경

詩經』「대아大雅」‘가락假樂’, “假樂君子 顯顯令德”.

248) 외외(巍巍):외외언(巍巍焉), 외외호(巍巍乎), 외외연(巍巍然) 등과 같은 뜻이니,

높고 큰 모양. 『논어』 “子曰 巍巍乎 惟天爲大”.

249) 반도(盤桃):천도(天桃)라고도 하는데, 신선들이 먹는다는 상상적인 복숭아로,

색깔이 우아하고 매우 아름다워 누구나 먹으면 수천년(數千年)을 살게 된다고

한다. 이 복숭아는 동해(東海)의 섬에 있으므로 해동(海東)을 가리킨다.

250) [總覽]에는 智. [全文]은 知이니 뜻으로는 知이다.

그러나 오히려 법신(法身)은 무상(無像)한 것이지만 반드시 모양을 말

미암아 공덕을 나타내며, 도체(道體)는 말이 없는 세계이나 반드시 말을

인하여야 교리를 보여줄 수 있으니, 어찌 묘유(妙有)를 말미암지 아니하

고 진공(眞空)을 체험할 수 있겠는가.251) 여기 스님의 큰 제자인 양가승통

(兩街僧統) 삼중대사252) 흔홍(昕弘) 등이 있으니, 그들은 법원(法苑)에서

의 경종253)이며 선문(禪門)의 귀경(龜鏡)이다. 자비의 집에서 널리 중생을

구제하였던 옛 대덕(大德)스님들의 자취를 밟았으며,254) 법광(法光)의 횃

불을 들어 중생의 혼구(昏衢)를 비추어 군생(群生)을 교화하였던 옛 고승

(高僧)들의 남긴 빛을 이어받았다.255)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탄식하기를,256)

“비록 은밀히 명심경구(銘心警句)를 설하였더라도 만약 위대한 기적(奇

跡)을 돌에 새겨두지 않으면 어찌 일진(一眞)의 법을 표하여 그대로 완전

하게 남아 있게 할 수 있겠는가!”257)하였다. 그리하여 대사의 행장을 모아

임금께 주달(奏達)하여 유부(幼婦)의 문사258)를 지어 우리스님의 덕업(德

業)을 비석에 기록(記錄)할 수 있도록 간청하였다. 임금께서 “가하다” 하

시고, 한림학사(翰林學士)인 신 김정언259)에게 명하기를, “고국사(故國師)

혜목대사(慧目大師)는 덕행(德行)은 높아 구름 위에 있고 복덕(福德)은 넓

어 모든 인간을 윤택하게 하였으니, 그대는 마땅히 훌륭한 문장260)으로 국

사의 공훈(功勳)을 적어 비석에 그 무성한 업적을 기록하도록 하라”고 하

였다.261)

然, 猶法身無像, 必因像而宣功, 道體無言, 必因言而示敎, 盍

因妙有, 以驗眞空. 厥有大弟子, 兩街僧統,262) 三重大師, 昕弘

等, 法苑鯨鍾, 禪門龜鏡. 踵慈軒263)之往轍,264) 繼法矩之餘輝.

喟然歎曰, “雖然秘說銘心, 若不奇蹤刻石, 則何265)以表一眞

之法, 盡可有矣.” 於是, 狀大師行, 覬大君恩, 請幼婦之文辭,

紀吾師之德業. 制曰, “可.” 乃命翰林學士, 臣, 金廷彦 曰,

“故國師慧目大師, 行高雲外,266) 福潤人間, 汝宜鴻筆書勳, 玄

碑紀茂.”

251) 개인묘유이험진공(蓋因妙有以驗眞空):어찌 묘유를 인하지 아니하고 진공을 체

험할 수 있으리오! 드러난 세계(緣起)가 실상(實相;空)의 구현임을 가리킨다.

252) 삼중대사(三重大師):고려 초부터 소위 구산(九山)인 선종과 오교(五敎)인 교종

에서 각각 법계고시(法階考試)를 거쳐 그 합격에 따라 선교종(禪敎宗) 모두 법계

가 승진(昇進)되었으니, 교종과 선종의 법계는 다음과 같았다.

선종법계:大選 → 大德 → 大師 → 重大師 → 三重大師 → 禪師 → 大禪師

교종법계:大選 → 大德 → 大師 → 重大師 → 三重大師 → 首座 → 僧統

대선을 법계로 보지 않는 견해도 있다. 허흥식,『고려불교사연구』,일조각, p.327.

253) 경종(鯨鐘):경음(鯨音)과 같은 뜻. 불교사원에는 대종(大鐘)과 소종(小鐘)이 있

다. 대종은 범종(梵鍾) 또는 경종(鯨鐘)이라 하는데, 이는 새벽종(曉鐘)·재사의

례종(齋鐘)·저녁종(昏鐘)·취침을 알리는 종(開枕鐘) 등 일정한 시간에 치고, 소

종은 승당(僧堂)·법당(法堂)에 있어서 각종(各種)의 행사 때 친다.

254) 종자헌지왕철(踵慈軒之往轍):자비의 집에서 널리 중생을 구제하였던 옛 대덕

(大德)스님들의 자취를 밟았다는 뜻. 「통진대사보운탑비문」 주105)종자헌지왕

철 [고려편1] p.358 참조.

255) 계법거지여휘(繼法炬之餘輝):법보(法寶)의 횃불을 들어 중생(衆生)의 혼구(昏

衢)를 비추어 군생(群生)을 제도하였던 옛 고승들의 여휘를 이어받았다는 뜻.

「통진대사보운탑비문」 주106)계지거지여휘 [고려편1] p.358 참조. 여기서는 법

거(法炬)이고, 통진비(洞眞碑)에는 지거(智炬)이나, 뜻으로는 같다.

256) 위연(喟然):위언(喟焉) 또는 위이(喟爾)라고도 하니, 탄식하는 모양. 한숨쉬는

것. 『논어』「자한」, “顔淵喟然歎”.

257) 하이표일진지법진가유의(何以表一眞之法盡可有矣):무엇으로써 일진의 법을

표하여 모두 그대로 남아 있게 할 수 있으리오!

258) 유부지문사(幼婦之文辭):‘세련되고 아름답게 다듬어진 명문(名文)’이라는 말. ‘황

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虀臼)’에서 따온 말.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문朗慧

和尙白月葆光塔碑文」 주105)제구虀臼 본서 p.129;「숭복사비문崇福寺碑文」 주

269)혹해팔자或解八字 [신라편] p.272;「진공대사보법탑비문」 주111)제구虀臼

[고려편1] p.152 등 참조.

259) 김정언(金廷彦):고려 문신(文臣). 한림학사 내봉령 참지정사 감수국사(翰林學

士 內奉令 參知政事 監修國史)를 지냈고, 「통진대사보운탑비문」 주5)김정언金廷

彦 [고려편1] p.349와 본비문주11)김정언金廷彦 p.238 등 참조.

260) 홍필(鴻筆):①훌륭하고 뛰어난 문장(文章)을 짓는 일. 또는 뛰어난 문장력(文章

力) ②대필(大筆) 또는 연대지필(椽大之筆)의 뜻. 『논어』「수송須頌」, “古之帝王

建鴻德者 必須鴻筆之臣 襃頌紀載 鴻德乃彰 萬世乃聞 問說書者 欽明文思以下

誰所言也 曰 篇家也 篇家誰也 孔子也 然則孔子鴻筆之人也”.

261) 현비기무(玄碑紀茂):현묘한 비석에 스님의 무성(茂盛)한 위적(偉跡)을 기록한

다는 뜻이다.

262) [全文]에는 統. [總覽][拓本]의 捴은 統의 오자임.

263) [總覽]에는 軒. [全文]의 井은 軒의 오자임.

264) [全文]에는 轍. [總覽][拓本]의 徹은 轍의 오자임.

265) [總覽]에는 何. [全文]의 嘆은 何의 오자임.

266) [總覽]에는 外. [全文]의 水는 外의 오자임.

신이 명을 받으니 땀이 온 몸에서 흘러내렸다.267) 임금께 계수례배하고

여쭙기를,268) “신은 학식이 천박하여 어두운 밤에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착

각하듯,269) 스님의 고매하신 그 경계(境界)를 제대로 나타낼 수 없으며, 또

한 허공에 실을 드리우면 분간하기 어려운 것과 같이,270) 스님의 자재무애

(自在無礙)하며 신묘불사의(神妙不思議)한 경지는 필설(筆說)로써 표현할

수 없습니다. 천근(淺近)한 마재(麽才)로써 스님의 현미(玄微)하고 빛나는

위대한 행적271)을 기록하려는 것이 마치 섬궁272)의 달을 잡으며, 여룡(驪龍)

의 턱 밑에 있는 여의주(如意珠)를 탐색하려는273)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나

이다. 설사 푸른 하늘이 내려앉아 절구통 위에 걸쳐져 있는274) 때와, 푸른

바닷물이 줄고 줄어 옷을 벗지 아니하고 바지만 걷어올리고도 능히 건널

수 있는275) 때가 다가올 때까지 스님의 큰 공적도 길이 남아276) 묘한 행적

(行跡)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며,276) 이로 인하여 감히 성덕(盛德)의 형

용(形容)을 아름답게 하며 또한 장래 승사(僧史)에 도움이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277)하였다. 거듭 그 뜻을 펴고자 드디어 명(銘)하여 이르기를,

臣, 汗四匝. 拜稽首曰, “臣夜繩易惑, 空縷難分, 以淺近之

麽278)才, 紀玄微之景行. 其猶蟾宮攬月, 驪海探珠矣. 設使蒼天

倚杵之時, 碧海褰裳之際, 所望玄功可久, 妙蹟猶存, 因敢美盛

德之形容, 庶有補於將來僧史.” 重宣其義, 遂爲銘云,

267) 단한사잡( 汗四匝): 은 땀 단字. 곧 땀이 온 몸 사방에 흘러내린다는 뜻이다.

268) 배계수왈(拜稽首曰):절을 하고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말하되란 뜻. 계수란 범

어(梵語)의 반담(伴談) 또는 반담(槃談 vandana)을 번역한 말. 혹은 반제(伴題

vandi)라고도 한다. 『행종기行宗記』「상」에 “頭至地爲稽首”라 하였다.

269) 야승이혹(夜繩易惑):「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문」주161)야승이혹夜繩易惑 본서

p.137 참조.

270) 공루난분(空縷難分):「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문」 주162)공루난분空縷難分 본서

p.137 참조.

271) 경행(景行):빛나고 위대한 행적(行跡). 「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문」 주208)경행

景行 [고려편1] p.38;「통진대사보운탑비문」 주199)경행 [고려편1] p.365 등 참

조.

272) 섬궁(蟾宮):달의 다른 이름. 월궁(月宮), 옥혼(玉魂), 옥륜(玉輪), 옥경(玉鏡), 옥

토(玉兎) 등이라고도 한다. 원교(袁郊), 「월시月詩」, “嫦娥竊藥出人間 藏在蟾宮

不肯還”.

273) 여해탐주(驪海探珠):탐려획주(探驪獲珠)와 같은 말. 여룡(驪龍)의 턱 밑에 있는

여의주(如意珠)를 더듬어 그 구슬을 얻는다는 뜻. 여룡이란 검은 용의 일종(一

種)이다. 『장자莊子』「열어구列禦寇」, “河上有家貧 恃緯蕭而食者 其子沒於淵 得

千金之珠 其父謂其子曰 云云 千金之珠 必在九重之淵 而驪龍含下 子能得珠者

必遭其睡也”.

274) 창천의저(蒼天倚杵):푸른 하늘이 내려앉아 절구통 위에 걸쳐져 있다는 말이니,

결코 그러한 때는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275) 벽해건상(碧海褰裳):바닷물이 줄고 또 줄어 그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얕

아져서 옷을 벗지 않고 그냥 바지를 걷어올리고도 능히 건널 수 있을 정도로 바

닷물이 거의 마른 상태를 가리킨다. 마침내 그런 시기는 올 수 없다는 말.

276) 현공가구(玄功可久):현공이 가히 오래간다는 뜻이니, 현공이란 심오한 공적(功

蹟)이다.

277) 서유보어장래승사(庶有補於將來僧史):스님의 현공이 가히 오래 가고, 묘적(妙

蹟)은 영원히 존재하리니, 감히 미성(美盛)과 성덕(盛德)의 형용(形容)으로 인하

여 장래의 승사(僧史)에 큰 도움이 있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278) [總覽]에는 麽. [全文]의 魔은 麽의 오자임.

크고도 위가 없는 무상(無上)한 묘각경지(妙覺境地),

높고 멀고 또 깊어 심심미묘(甚深微妙) 그 진종(眞宗).

현(玄)하고 또 현하여 찾을 길 전혀 없고,279)

오로지 이심전심(以心傳心) 목격(目擊)으로 통함일 뿐.

大哉妙覺,

邈矣眞宗.

玄玄示化,

宣風.

279) 현현시화(玄玄示化):개시교화(開示敎化)의 준말. 현현한 진리를 보여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

진유(眞有)의 그 세계는 유(有)이지만 유 아니고,

진공(眞空)의 그 이치는 공(空)이지만 공 아니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연꽃처럼 물방울이 묻지 않고,280)

수많은 별들 중엔 둥근 달이 으뜸이듯.281)

眞有非有,

眞空不空.

蓮開水上,

月出星中.

280) 연개수상(蓮開水上):연꽃이 물 위에 핀 것과 같다는 뜻이니, 위의 비문(碑文) 중

‘心光如水上之蓮’ 구(句)를 명(銘)한 것이다.

281) 월출성중(月出星中):둥근 달이 중성(衆星) 중에 우뚝 나타난 것과 같다는 뜻이

니, 위의 비문 중 ‘皎若星中之月’ 구를 명한 것.

온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볼 수 있고,282)

인천(人天)이 바라보고 모두가 기뻐하네.283)

생각을 집중하여 현하(玄河)를 바라보고,284)

지극한 신심(信心)으로 불리(佛理)를 탐구하다.

溥率見之,

人天仰止.

注意玄河,

歸心佛理.

282) 부솔견지(溥率見之):넓고 진솔하게 본다는 뜻이다.

283) 앙지(仰止):우러러 머문다는 뜻이다.

284) 현하(玄河):현은 현묘(玄妙)하고 심오한 진리를 가리킨다. 하는 형용사이니, 마

치 하수(河水)처럼 자연스런 무작위(無作爲)의 진리세계.

적정(寂靜)한 선열미(禪悅味)로 무아(無我)에 몰입(沒入)하고,

법희(法喜)에 배가 불러 태평가(太平歌)를 불렀도다.

허다(許多)한 고승대덕(高僧大德) 그 누가 이러한가,

고달산(高達山) 원종대사(元宗大師) 그 분 밖에 또 있을까?

味之禪悅,

飫以法喜.

誰其有之,

唯我師矣.

울울창창(蔚蔚蒼蒼) 고송(高松)처럼 중중(衆中)에 우뚝하니,

사부대중(四部大衆) 존경함이 부처님과 다름없다.

이심전심(以心傳心) 그 경지(境地)는 삼매중(三昧中)의 삼매(三昧)일세,

이르는 그곳마다 광명(光明)이 두루하다.285)

蔚爲將聖,

欽若空王.

傳心寂住,

抗286)跡輝光.

285) 항적휘광(抗跡輝光):스님의 행적(行跡)이 휘광과 대적한다는 뜻이니, 대사의

행적 그 하나 하나가 모두 빛나는 광명(光明)과 같이 혁혁하다는 말이다. 「통진

대사보운탑비문」 주154)연하항적烟霞抗跡 [고려편1] p.361(대정장10, p.1095c혹

항적연하지표或抗跡烟霞之表)참조.

286) [總覽]에는 抗. [全文]의 抏은 抗의 오자임.

조각배 집어타고 바다를 건너가서,287)

뗏목은 버려두고 당당(堂堂)히 참방(參訪)했다.288)

가섭(迦葉)의 정법안장(正法眼藏) 소중히 전해받고,289)

선법(禪法)을 받은 다음 부상(扶桑)에 돌아왔네.290)

乘杯泛泛,

捨筏堂堂.

去傳迦葉,

來化扶桑.

287) 승배범범(乘杯泛泛):892년에 무역상의 선편(船便)으로 당나라에 들어감을 가

리킨다.

288) 사벌당당(捨筏堂堂):중국에 가서 선지식을 두루 찾아보고 수행하였다는 뜻이다.

289) 거전가섭(去傳迦葉):당나라에 가서는 가섭의 심인(心印), 즉 선종(禪宗)의 법안

(法眼)을 전해받았다는 뜻이다.

290) 내화부상(來化扶桑):본국으로 돌아와서는 부상, 즉 동국(東國)을 교화하였다는

뜻이다

불일(佛日)을 중흥코자 곳곳에 전파하니,

법운(法雲)은 뭉게뭉게 천지(天地)를 뒤덮었네.291)

나라위해 임금과는 사자연(師資緣)을 맺었으니,292)

군신(君臣)은 한자리에 우연히 만났다네.

佛日再中,

法雲丕冒.

邦國師資,

君臣邂逅.

291) 법운비모(法雲丕冒):법의 구름을 크게 덮는다는 뜻이니, 부처님의 법을 시공

(時空)을 통하여 널리 편다는 말이다.

292) 방국사자(邦國師資):정종(定宗) 임금이 스님을 국사로 봉(封)하고 사자의 인연

을 맺었다는 뜻이다.

가료(可料)타 불이법문(不二法門) 선정(禪庭)에서 함께 하니,293)

우연히 만난 인연(因緣) 지혜로서 얽혔네.294)

계족산(雞足山) 중턱에선 조용히 비추지만,295)

스님의 그 모습은 언제쯤 다시 보리.296)

可料禪庭,

俄傾惠搆.

鷄足潛輝,

龍頤曷遘.

293) 가료선정(可料禪庭):대사의 문하에 제자가 쟁쟁할 뿐만 아니라, 선정에까지 가

득찼음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는 뜻이다.

294) 아경혜구(俄頃惠搆):회하(會下)에 있는 제자들이 모두 정혜(定惠)를 구족하였

다는 뜻이다.

295) 계족잠휘(雞足潛輝):가섭존자가 부처님으로부터 의발(衣鉢)을 전해받은 다음

계족산(雞足山)에서 열반에 들었다는 데서 온 말이니, 대사의 입적을 가리킨다.

296) 용이갈구(龍頤曷遘):“스님의 얼굴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는가.”라는 뜻. 용

이란 위대한 사람의 얼굴을 존칭하는 말이다.

개보 8년297) 용집298) 연헌299) 10월에 세우고,

이정순(李貞順)은 글자를 새기다.

開寶八秊, 龍集淵獻,300) 十月日, 立,

刻字, 李貞順.

297) 개보팔년(開寶八年):개보는 송 태조 때의 연호. 개보 8년은 975년(光宗 26).

298) 용집(龍集):기원(紀元) 또는 태세(太歲)라는 뜻.

299) 연헌(淵獻):대연헌(大淵獻)이니, 고갑자(古甲子)의 지지(地支) 중 해(亥)이다.

『이아爾雅』「석천釋天」에 “太歲在亥曰大淵獻”이라 하였다. 개보 8년은 975년 을

해(乙亥)이므로, 고갑자로는 旃蒙(乙)大淵獻(亥)이라고 하여야 한다.

300) [總覽]에는 獻. [全文]의 默은 獻의 오자임.

【이면裏面】

새긴 때:고려 경종 2년 정축 (977)

年代:高麗 景宗 二年 丁丑 (977)

건덕(乾德) 9년301) 세차(歲次) 신미(辛未) 10월 21일 원화전(元和殿)302)

서 대장경(大藏經)을 개독(開讀)할 때 황제폐하께서 조칙을 내려 이르기

를, “국내의 사원(寺院) 중에 오직 삼처(三處)303)만은 전통을 지켜 문하(門

下)의 제자들이 상속(相續)으로 주지하여 대대(代代)로 단절되지 않도록

할 것이니, 이 규정을 꼭 지키도록 하라.”304)고 하였다. 그 삼처란 이른바

고달원(高達院)·희양원(曦陽院)·도봉원(道峰院) 등이다. 주지(住持) 삼보

(三寶)는 모름지기 국주(國主)의 힘을 의지하여야 하나니, 그 까닭인즉 석

가여래께서 출세(出世)하사 이르시기를, “불법의 외호(外護)를 국왕과 대

신들에게 부촉(咐囑)하였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신이 이로써 우리 황제

폐하께서도 지극하신 정의(情誼)로 깊이 석문(釋門)의 묘리(妙理)를 경중

(敬重)하시고, 함께 양인(良因)을 맺어 이 규칙이 영원히 유통(流通)되도

록 하였다.

乾德九年, 歲次辛未, 十月, 二十一日, 於元和殿, 開讀大藏經

時, 皇帝陛下, 詔曰, 國內寺院, 唯有(三處), 只留不動, 門下弟

子, 相續住持, 代代不絶, 以此爲矩, 所謂高達院, 曦陽院, 道

峯院, 住持三寶, 須憑國主之力, 所以, 釋迦如來出世道, 佛法

付囑國王大臣, 是以我皇帝陛下, 情深敬重, 釋門妙理, 共結良

因, 軌矩恒流.

301) 건덕9년(乾德九年):건덕은 송 태조 때의 연호. 건덕 9년은 971년(光宗 22).

302) 원화전(元和殿):광종 때 궁중의 한 건물이었다.

303) 삼처(三處):삼처란 삼사(三寺)를 말하니, 여주 고달원, 문경 봉암사, 양주 도봉

사를 가리킨다.

304) 공결양인(共結良因):광종대왕과 원종대사가 사자인연(師資因緣)을 맺었다는

것이다.

문하제자인 도(道)·속(俗) 등의 성명은 다음과 같다.

중대사 동광,

중대사 행근,

대사 전인,

대덕 금경,

삼중대사 훈선,

중대사 준해,

대덕 승연,

대덕 의광,

대덕 전상,

대덕 승앵,

화상 행희,

화상 행해,

화상 행위,

승총 계정,

대통 담홍,

대덕 행길 등, 오백여인.

門下弟子, 道俗等, 姓名, 如後.

重大師 同光,

重大師 幸近,

大師 傳印,

大德 金鏡,

三重大師 訓善,

重大師 俊解,

大德 勝演,

大德 義光,

大師 全狀,

大德 僧 ,305)

和尙 幸希,

和尙 幸海,

和尙 幸位,

僧摠306) 戒定,

大統307) 談弘,

大德 幸吉 等, 五百餘人.

305) 승앵(僧 ):전기는 다른 자료에 보이지 않는다. [全文]의 과 [總覽]의 은 모

두 (밝을 앵)字의 오자임. 『육서략六書略』에 “ 明也 一曰 六合皆淸明”이라 하

였다.

306) 승총(僧摠):승통(僧統)과 같은 말이니, 승관(僧官)의 이름.

307) 대통(大統):승관의 이름.

삼강전.

원주승 효안,

전좌승 행숭,

직세승 법원,

유나승 행온,

문하각자승 행언, 경연, 종능, 광규,

탑명사 대상 신보,

부사 좌윤 영허,

송장사 정보, 신강,

부사 좌윤 규강,

재사 원윤 수영,

녹승사 영순,

수비사 경 규응,

직무 헌규,

장지필연관 진서 좌직학생 이홍렴.

석장 잉을희.

三剛典.308)

院主僧 孝安.

典座僧 幸崇.

直歲僧 法元.

維那僧 幸溫.

門下刻字僧 幸言, 慶然, 宗能, 廣規.

塔名使309) 太相 神輔,

副使, 佐尹 令虛,

送葬使310) 正輔 信康,

副使, 佐尹 圭康,

齋使311) 元尹312) 守英,

祿僧史313) 英順,

修碑使314) 卿 圭凝,

直務315) 憲規,

掌持筆硯官316) 眞書317) 左直學生 李弘廉,

石匠318) 仍乙希.

308) 삼강전(三剛典):삼강전(三綱典). 절에서 대중을 통솔하여 규칙을 유지하는 세

직책이니, ①상좌(上座)·사주(寺主)·도유나(都維那). 상좌란 비구(比丘) 중에서

덕망이 있는 이. 사주란 사찰 운영의 책임자. 도유나란 총림의 규칙에 따라 대중

의 수도와 일상생활(日常生活)의 모든 일을 지도하는 이 ②상좌·유나(維那)·전

좌(典座) ③우리나라 사원(寺院)에서는 주지(住持)·수승(首僧)·서기(書記) ④

서기·승통·삼보(三甫) 서기·승통· 삼보(典座) ⑥삼보·수승(首僧)·직사(直使,

海印寺 梵雲大師碑) ⑦삼보·서기·직사(直使, 海印寺 曇華大師碑) ⑧삼보·서기·

직세(直歲) 등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309) 탑명사(塔名使):왕이 추증한 시호와 탑호(塔號)를 전달하고, 동시에 조탑공사

(造塔工事)의 지휘를 맡은 사신(使臣).

310) 송장사(送葬使):왕 대신 조문(弔問)을 위해 보내온 사신.

311) 재사(齋使):장례비와 49재를 지낼 조의금(弔儀金)과 물품(物品)을 가지고 온

사신.

312) 원윤(元尹):고려 초기 관계(官階) 중 제6품 10등급.

313) 녹승사(祿僧使):부의금 접수, 조문객의 방명록(芳名錄) 등 장의에 대한 사적(史

的) 기록을 담당한 소임(所任). 녹(祿)은 녹(錄)의 오자(誤字)인 듯하다.

314) 수비사(修碑使):탑비건립(塔碑建立)에 대한 감독과 후원을 담당하려고 온 사신.

315) 직무(直務):탑비건립에 대한 일절(一切) 사무(事務)를 맡은 직책.

316) 장지필연관(掌持筆硯官):장지란 책임을 맡는다는 뜻이니, 비문(碑文)을 쓰는

등 일절 기록(記錄)을 맡은 관리(官吏).

317) 진서(眞書):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장례식을 거행하는 동안 도량(道場)과 화장

장 주위에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등 진언(眞言)의 범서(梵書)를 쓰는 것이 아

닌가 생각된다.

318) 석장(石匠):탑의 조성을 맡은 석공(石工), 즉 도편수(都片手).

병인년에 비탑공사를 시작하여319) 정축년320)에 준공하였다.321)

始丙寅年, 郢工碑塔, 終至丁丑年, 功畢也.

319) 시병인년(始丙寅年):건탑공사(建塔工事)를 966년(광종 17, 丙寅)에 시작하였다

는 말이다.

320) 종지정축년(終至丁丑年):정축년(丁丑年)은 977년(경종 2)이니, 공사를 시작한

지 12년 만에 준공되었다는 말이다.

321) 영공(郢工):석장(石匠)과 같은 뜻이니, 탑비 조각 총책임자

원주승 효안,

전좌승 행숭,

유나승 행온,

직세승 법원,

院主僧 孝安.

典座僧 幸崇.

維那僧 幸溫.

直歲322)僧 法圓.323)

322) 직세(直歲):한 번 맡으면 1년씩 봉직하여야 하는 소임(所任)이니, 토공(土工),

목공(木工), 와공(瓦工) 등 가장 힘들고 험한 일을 하는 책임.

323) [全文] [總覽] 모두 앞쪽에서는 직세승(直歲僧) 법원(法元)이라 하고 여기서는

직세승(直歲僧) 법원(法圓)이라 하여 원(元)과 원(圓)이 음은 비록 같으나 글자

를 혼돈하고 있으니, 어느 자(字)가 옳은지 불확실하다.

[비신(碑身)의 높이(高)는 9척3촌(九尺三寸), 폭(幅)은 5척3촌(五尺三寸), 두께(厚)는 1척1

촌(一尺一寸), 글자의 간격은 7분(七分)이며, 해서(楷書)이다. 제액(題額)의 글자 간격은 2촌

(二寸)이며 전서(篆書)이다. 비신은 1916년에 무너졌다[倒壞].]323)

[揭載]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上, pp.207~215.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 中世 上, pp.39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