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승비문

07.원주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문(原州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文)

수선님 2023. 9. 24. 13:22

07.원주법천사지광국사1)현묘탑비2)

原州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文

1) 제액(題額):[苑]에는 「요고려지광국사탑명遼高麗智光國師塔銘」이라 하였으

   며, [總覽]상에는 「원주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原州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

   라 하였고, [全文]에는 「원성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라 하였으며, 『대동금석

   서大東金石書』에는 「법천사지광선사탑法泉寺智光禪師塔」이라 하였고,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46에는 「명봉산법천사지광탑비鳴鳳山法泉

   寺智光塔碑」라 하였다.

2) 국보지정:탑비는 국보 제59호이며, 부도는 국보 제101호로 현존 부도 중에는

   가장 정묘(精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있는 곳3):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

세운 때4):고려 선종 2년 을축 (1085)

所 在:江原道 原州市 富論面 法泉里 法泉寺址

年 時:高麗 宣宗 2年 乙丑 (1085)

3) 있는 곳: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에 있으며, 부도는 일제강점기

   (日帝强占期) 때 서울 경복궁으로 옮겼다.

4) 세운 때:1085년(선종2).

 

증시(贈諡) 지광국사(智光國師) 현묘지탑비명(玄妙之塔碑銘).[제액]

고려국(高麗國) 원주(原州) 법천사(法泉寺)5) 강진홍도(講眞弘道) 명료돈

오(明了頓悟) 계정고묘응각(戒正高妙應覺) 탐현도원(探玄道源) 통제연오법

동(通濟淵奧法棟) 구행료성도수(具行了性導首) 융소낭철(融炤朗徹) 증시지

광국사(贈諡智光國師) 현묘지탑비명(玄妙之塔碑銘)과 아울러 서문(序文)

贈諡智光國師, 玄妙之塔碑銘. [題額]

高麗國, 原州, 法泉寺, 講眞弘道, 明了頓悟, 戒正高妙應覺,

探玄道源, 通濟淵奧法棟, 具行了性導首, 融炤朗徹, 贈諡智光

國師玄妙之塔碑銘, 幷敍.

5) 법천사(法泉寺):여러 곳에 법천사가 있었으나, 여기의 법천사는 강원도 원주

   시 부론면 법천리 명봉산(鳴鳳山)에 있었던 사찰을 말한다. 조선조 초기 태재

   (泰齋) 유방선(柳方善:1388~1443)이 이 절에서 강학(講學)하였는데, 권람(權擥:

   1416)·한명회(韓明澮:1415~1487)·강효문(康孝文:?~1467)·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보흠(李甫欽:?~1457) 등이 모두 이 절의 태재(泰齋) 문하에서 수

   학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46 「원주목原州牧」‘불우佛宇’ 참조.

 

중대부6) 문하시랑7) 동중서문하 평장사8) 판상서예형부사9) 감수국사10)

겸태자태부10)1) 상주국12) 신 정유산13)은 왕명을 받들어 비문을 짓고,

승봉랑14) 상서도관15)낭중16) 비어대를 하사받은 신 안민후17)는 칙선(勅

宣)을 받들어 비문과 전액(篆額)을 쓰다.

中大夫門下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 判尙書禮刑部事, 監脩

17)18)史, 兼太子太傅, 上柱國, 臣, 鄭惟産, 奉宣, 撰.

承奉郞, 尙書都官郞中, 賜緋魚袋, 臣, 安民厚, 奉宣, 書, 幷

篆額.

6) 중대부(中大夫):고려 때의 문산계(文散階). 문종(1046~1083) 때에 종4품하(從四

   品下)로 제정되었다. 1298년에 종4품으로 승격되었으며, 1308년에 폐지되었다

   가 1356년에 다시 종4품하로 제정되었다. 1362년에 없어졌다.

7) 문하시랑(門下侍郞):고려 때의 관직.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정2품 관직. 수

   상격인 종1품의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은 고위 재상직이다. 중서문하성에는

   문하시랑평장사, 중서시랑평장사, 문하평장사, 중서평장사의 4인의 정2품 직책

   이 있었다.

8)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고려 때의 관직. 문종 때 내사문하성(內史門

   下省)을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으로 개칭하면서 성종 이래의 내사시랑평장사

   (內史侍郞平章事)를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고쳤는데, 정원은 1명,

   품계는 정2품(正二品)이었다. 『고려사高麗史』권2, 7, 8, 10 등 참조.

9) 판상서예형부사(判尙書禮刑部事):고려 때의 관직. 상서성의 6부에 책임자로 상

   서(尙書, 정3품)를 두었으나 중서문하성의 재신(宰臣)들이 6부의 판사(判事)를

   겸하도록 하였다. 정유산도 재신으로서 예부와 형부의 판사를 겸직하였음을 말

   해준다.

10) 감수국사(監修國史). 고려 때 사관(史館)의 벼슬. 종 1품. 감수국사는 고려 춘추

    관(春秋館)의 최고 관직으로, 시중(侍中)이 겸임토록 하여 따로 임명하지 않았

    다. 1325년 영관사(領館事)·감관사(監館事)로 그 명칭이 바뀌었으나, 역시 수상

    (首相)인 시중이 겸하였다. 『고려사』 참조.

11) 태자태부(太子太傅):대(大)는 태(太)의 오자. 태자태부는 태자를 가르치는 스

    승이다. 태부는 삼사(三師) 중의 하나이니, 삼사란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

    (太保)를 말한다. 중국의 옛 제도를 모방하여 설치하였다. 삼공(三公)과 함께 임

    금의 고문 또는 국가 최고의 명예직으로 실무에는 종사치 않고 적임자가 없으

    면 공석(空席)으로 두었다. 최초로 설치된 연대는 미상이나, 문종(1046~1083) 때

    각 1명으로 정1품(正一品)이었고, 충렬왕 때 폐지되었다가 1356년에 다시 설치

    되었으며, 1362년에 폐지되었다.『고려사』권1, 2, 6, 8, 10 등 참조.

12) 상주국(上柱國):고려의 훈계(勳階). 문종 때 훈계를 정하여 상주국은 정2품, 주

    국(柱國)은 종2품(從二品)으로 하였는데, 충렬왕(1274~1308) 이후에 폐지되었

    다.「혜조국사탑비문慧炤國師塔碑文」 주6)주국柱國 [고려편2] p.307;『고려사』

    권1, 2 참조.

13) 정유산(鄭惟産):?~1091. 고려의 문신. 1062년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써 국자시

    (國子試)을 관장. 시권(試卷)에 봉미법(封彌法)을 처음으로 시행케 했다. 1072년

    한림학사(翰林學士)·국자좨주(國子祭酒)가 되었고 이듬해 지공거(知貢擧)를 겸

    하고 섭형부상서(攝刑部尙書)·예부상서(部尙書)가 되었다. 1075년 참지정사감

    수국사(參知政事監修國史)·이부상서(吏部尙書), 1077년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

    部事) 등을 역임하였다. 뒤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14) 승봉랑(承奉郞):고려 때의 문산계(文散階). 문종 때 종8품상(從八品上)으로 제

    정. 1298년에 정6품(正六品)으로 개정, 1356년에 일시 폐지하였던 것을 1362년

    에 다시 두었다가 1369년에 폐지했다.

15) 상서도관(尙書都官):고려 때 노비의 부적(簿籍) 및 소송을 맡은 관청. 초기에는

    도관(都官)이라 하던 것을 995년에 상서도관으로 개칭. 1308년에는 헌부(獻部)

    에 병합시켰다가 소송 사건이 빈번하여지자 1310년 상서도관을 부활시켜 도관

    이라 하였다. 『고려사』권7 참조.

16) 낭중(郎中):고려 때의 관직. 상서성과 상서6부 등에 설치되었던 정5품 관직.

17) 안민후(安民厚):전기는 미상(未詳)이고, 『대동금석서』에는 그의 직책이 시중이

    었다고 전하고 있다.

18) [苑] [全文] [總覽]의 圀은 國의 고자(古字)임

 

신(臣)이 듣건대, 구담미19)께서 묘음(妙音)을 부연(敷演)하시니 삼마지20)

에 걸쳤으며, 소반도21)로써 고론(高論)을 성취하였다. 팔식22)의 근원을 궁

구하고 알선하여 유식(唯識) 상응23)의 진종(眞宗)을 개창하였고, 점차 널

리 정교(正敎)를 현양(顯揚)하였으니, 이는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을 벌

24)에서 경계하고 주재25)와 궤지26)를 나타내었다. 비록 지극한 이치는 허

현(虛玄)에 그 근본을 두었으니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나, 모든 근기(根機)

가 영리하고 어리석은 것을 말미암아 깨달음에도 천심(淺深)이 있으니,

우미(愚迷)한 중생을 급인(汲引)함에 있어서는 권실(權實)의 교리27)를 지

진(指陳)하였다. 점차 시간이 흘러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더욱 멀어져,

[상법시대(像法時代)를 지나 말법기(末法期)에 접어들면서] 부처님께서 남기

신 유문28)은 점점 무너졌다.

臣聞, 瞿曇彌, 敷演妙音, 亘29)三摩地, 蘇槃度, 製成高論. 窮八

識源, 斡開相應之眞宗, 30)廣顯揚之正敎, 斯所以誡我人於筏

喩, 旌主31)宰與軌持. 雖至理本乎虛玄, 等無差別而諸根. 由乎

利鈍, 悟有淺深, 然, 汲引於愚迷, 則指陳其權實, 曁乎去佛滋

遠, 遺文漸隳.

19) 구담미(瞿曇彌): Gautama. 구역(舊譯)에는 구담(瞿曇) 또는 구담(具譚)이라

    하고, 신역(新譯)에는 교답마(喬答摩)라고 음역하였는데, 석종(釋種)의 성(姓)으

    로서 구담·감자(甘蔗)·일종(日種)·석가(釋迦)·사이(舍夷) 등 5가지로 일컫는

    다. 부처님의 이모(姨母)를 구담미라 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부처님을 지칭한다.

20) 삼마지(三摩地): samādhi.삼매(三昧)·삼마제(三摩提) 등으로도 음역된다. 정

    (定)·등지(等持)·일경성(一境性) 등으로 번역된다.

21) 소반도(蘇槃度):소반다(蘇槃多 Subanta)라고도 한다. 범어(梵語)문법에서 명

    사형을 뜻하는 말로서 성(性)·수(數)·격(格)에 따라 어미가 변화하는 것을 말한

    다. 소(sup)란 범어의 7격 가운데 마지막인 처격(處格)을 말하고, 반다(anta)는

    ‘끝’을 의미하므로 즉 7격으로 끝나는 모든 형태의 어미변화를 뜻한다. 범어의

    명사는 저마다 남(男)·녀(女)·중(中)의 성이 있는데 그것들은 단수(單數)·양수

    (兩數)·복수(複數), 그리고 문장에서의 성격에 따라 어미가 변한다. 범어의 격을

    7가지로 보면 모두 21가지 어미변화가 있고, 호격(呼格)을 포함해 8가지 격으로

    보면 24가지 어미변화가 있다. 『유식추요상본唯識樞要上本』(대정장43, p.609a16)

    에 “聲論辨此聲中 蘇字居後 槃度是後義 則是蘇字 居後聲也”라 하였고, 「남해기

    귀전南海寄歸傳」4(대정장54, p.228b25)에 “言七例者 一切聲上 皆悉有之 一一聲

    中 各分三節 謂一言 二言 多言 總成二十一言也 ……於七例外 更有呼召聲 便成

    八例 初句旣三 餘皆准之 恐繁不錄 名蘇槃多聲 總有三八二十四聲”이라 하였다.

22) 팔식(八識):통팔식(通八識)이니, 의식 또는 마음을 말한다. 제1 안식(眼識), 제2

    이식(耳識), 제3 비식(鼻識), 제4 설식(舌識), 제5 신식(身識), 제6 의식(意識), 제7

    말나식(末那識),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 전체를 포괄한다.

23) 상응(相應):유가(瑜伽 yoga)를 번역한 말. 상순일치(相順一致)하는 뜻으로 수

    행자의 마음과 경계(境界)가 상응융합(相應融合)함을 뜻하니, 이로 말미암아 정

    력(定力)이 자재(自在)하게 된다.

24) 벌유(筏喩):뗏목의 비유. 경전 속에 실려 있는 언어문자(言語文字)는 진리 그 자

    체가 아니므로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는 것과 같이 문자로 말미암아 뜻을 터

    득한 후에는 설사 경전(經典)의 말에도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다. 『금강경金剛

    經』「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제육第六’(대정장8, p.749b)에 “……是諸衆生 若心

    取相 卽爲着我人衆生壽者 若取法相 卽着我人衆生壽者 何以故 若取非法相 卽着

    我人衆生壽者 是故 不應取法 不應取非法 以是義故 如來常說 汝等比丘 知我說

    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이라 하였다.

25) 주재(主宰):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사물(事物)과 생로병사(生老病死)하는 유

    정(有情)의 연속적인 활동을 담보하고 주재(主宰)하는 가아(假我)를 지칭한다.

26) 궤지(軌持):법(法)에 대한 자의(字義)를 설명한 것. 법(法)에는 궤(軌)와 지(持)

    의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첫째 궤란 그 자체가 궤범(軌範)이 되어 사람들에

    게 이해심을 내게 하는 것이며, 둘째 지란 그 자체를 유지(維持)하여 타체(他體)

    와 혼란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임지자성(任持自性)하여 궤생물해(軌生物

    解)라 하여 따라서 법(法)이란 임시로 자성을 견지하고, 궤범을 세워 유정과 세

    간을 이해케하는 것이다. 『유식론술기唯識論述記』(대정장43, p.239c1), “軌謂軌

    範 可解物解 持謂任持 不捨自相”이라 하다.

27) 권실(權實):‘권교(權敎)와 실교(實敎)’라는 뜻

28) 유문(遺文):부처님께서 남기신 글이란 말이니, 불교를 지칭한다.

29) [總覽]에는 亙, [苑]의 互와 [全文]의 瓦은 亘의 오자임.

30) [苑] [總覽] [拓本]에는 이고, [全文]에는 寖인데, 뜻으로는 상통하여 점차(漸

次) 또는 차제(次第)의 뜻이다.

31) [苑]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에는 主임.

 

이와 때를 같이 하여 현장법사(玄奘法師)와 같은 스님32)이 상속(相續)

출세하여 아수라(阿修羅)의 굴33)에 뛰어들어 권권복응34) 하였으며, 보승

(寶乘)을 돈독히 신봉하여 칼날 같은 변재35)로 널리 홍포(弘布)하였다. 진

(晋)나라 때 번역한36) 경전들의 내용을 승습(承襲)하여 그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고 아울러 무너진 강령37)을 떨쳤으며, 수역38)된 경전에 따라 그 심

오(深奧)함을 끌어내었으니, 이는 다 함께 끊어진 단추를 다시 이은 것이

다.39) 동쪽으로 전래된 법이 특이한 것이 아니니, 내향자의 마음이 그 마

음 스스로 통달한 것 뿐이다. 그러므로 간간이40) 헌걸한 영윤41)이 출세하

여 선현(先賢)들의 자취를 밟아 그 위명(威名)을 현겁42)에 떨치고, 계정(戒

定) 등의 삼학(三學)을 범제43)에서 연마하였다. 자씨(慈氏)의 분신이 양무

제(梁武帝) 때 쌍림부대사(雙林傅大士)로 강림한 것을 본받았으며,44) 문수

보살이 자취를 나투어45) 서주(西周) 목왕(穆王) 때 중국으로 불교를 전래

한 것과 같다고46) 하겠다.

有如玄奘47)之儔, 念念相續, 探彼修羅之窟, 拳拳服膺, 崇信寶

乘, 競騰鋒辯. 襲晋翻而覩奧, 竝振頹 ,

48) 氵公隋譯以鉤深, 俱

維絶紐. 東流之法, 法非異, 內向者心, 心自通. 玆故, 間出魁

雄, 踵爲 49)胤50), 播威名於賢劫, 硏戒定於梵題. 效慈氏之分

身, 降毗梁帝, 軼文殊之現跡, 來應穆王.

32) 현장지주(玄奘之儔):현장법사(玄奘法師:602~664)와 같이 고난을 무릅쓰고 인

    도에 가서 구법(求法)한 스님들이란 뜻이다.

33) 수라지굴(修羅之窟):수라굴(修羅窟)이니, 아수라왕이 주(住)하는 석굴(石窟)로,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의 곳곳에 이에 관한 기록

    이 보인다. 마치 범의 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죽음을 무릅쓰고 불교를 위하여

    헌신한다는 뜻이다.

34) 권권복응(拳拳服膺):권권은 정성껏 받드는 태도. 복응은 심중(心中)에 깊이 새

    겨 존경하며 시봉(侍奉)하는 것을 말한다. 「통진대사비문洞眞大師碑文」 주95)

    권권拳拳 [고려편1] p.357 참조.

35) 봉변(鋒辯):칼날과 같이 예리한 변재(辯才). 법(法)을 개설(開說)함에 막힘이 없

    이 자재(自在)함을 설통(說通)이라고도 한다.

36) 진번(晋翻):진(晋)나라 때 번역된 경전들.

37) 퇴강(頹 ):무너진 강령.

38) 수역(隋譯):수(隋)나라 때 번역된 경전들.

39) 구유절뉴(俱維絶紐):함께 끊어진 단추를 연결한다는 뜻이다.

40) 간출괴웅(間出魁雄):오랜만에 간간이 출생(出生)하는 위인(偉人)을 가리킨다.

41) 영윤( 胤):영납적윤(靈衲嫡胤)의 준말. 은 靈의 고자(古字)임.

42) 현겁(賢劫):과거의 대겁(大劫)을 장엄겁(莊嚴劫), 현재의 대겁을 현겁, 미래의

    대겁을 성수겁(星宿劫)이라고 한다.

43) 범제(梵題):범어(梵語)로 된 경전.

44) 효자씨지분신강비양제(效慈氏之分身降毗梁帝):자씨(慈氏:미륵불)의 분신이

    양나라 때 쌍림부대사(雙林傅大士)로 강림하였음을 본받았다는 말이니, 쌍림

    부대사는 곧 미륵불의 현신(顯身)이란 뜻이다. 예컨대 인도의 유마거사(維摩

    居士)는 금속여래(金粟如來)의 후신이고, 중국의 보지선사(寶誌禪師)는 관음

    불(觀音佛)의 응신(應身)이며, 쌍림부대사는 미륵불(彌勒佛)의 응신이다. 한국

    의 진묵대사(震默大師)는 석가여래응신(釋迦如來應身)으로 전한다. 한불전10,

    p.877 참조.

45) 문수현적(文殊現跡):문수보살은 오직 호법(護法)을 위할 때마다 자취를 나타낸

    다. 『당화엄경唐華嚴經』「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대정장10, p.241b), “東北方有

    處 名淸凉山 從昔已來 諸佛菩薩 於中止住 現有菩薩 文殊師利 與其眷屬 諸菩薩

    衆 一萬人俱 常在其中 而演說法”.

46) 내응목왕(來應穆王):서주(西周) 목왕(穆王:B.C.1001~B.C.947) 때 문수보살이 중

    국에 불교를 전래(傳來)하였다는 말이다.

47) [苑] [總覽]에는 奘. [全文]의 獎은 奘의 오자임.

48) [苑] [總覽] [全文]에는 . 은 의 오자이고, 은 綱과 通字이다.

49) [苑] [總覽]의 과 [全文]의 訆은 모두 (靈의 古字)의 오자임.

50) [全文] [總覽]에는 胤. [苑]의 은 胤의 오자임.

 

널리 동국(東國)인 인□(仁□)을 교화하되 상·정시대51)의 법을 크게 홍

포하고, 성조(聖祚)를 위해 정성껏 기도하며52) 임금을 도와 홍균53)을 이루

게 한 스님은 오직 우리 국사 뿐이라 할 것이다. 스님의 휘는 해린(海麟),

자는 거룡(巨龍), 속성은 원씨(元氏), 어릴 때의 이름은 수몽(水夢)이었으

며 원주(原州) 출신이다. 고조부와 증조부54) 때부터 선행을 쌓고 경사스러

움을 행하였다. 희역(犧易)과 안정(安貞)의 인요(因繇)를 상고해 보건대,55)

길(吉)·흉(凶)·회(晦)·린(悋) 중의 회로 말미암아 밝혔으며, 언승(彦升)

이 검소하며 절약하였던 가풍을 지키고56) 그 순박한 바탕을 깨뜨리지 아

니하였다.57) 할아버지의 휘는 길견58)이니, 마음은 서수(筮首)로 점을 쳤으

며,59) 음양(陰陽)을 연구하여 상징을 나타내었으니60) 어찌 운수가 불길하

게 변하는 것을 보고 구차하게 그를 면하려고 하였겠는가!61) 찬구62)타와

(打瓦)의 점을 쳐서 그로부터 얻은 조짐(兆朕)으로 의심하였던 운수(運數)

를 예지(豫知)하여 세상일로 하여금 미혹함이 없었다.63)

普化仁□, 丕弘象正, 顒祈聖祚, 助致鴻均者, 唯我國師而

已哉.

師諱海麟, 字巨龍, 俗姓元氏, 幼名水夢, 原州人也. 惟高惟曾,

積善積慶. 覈犧易安貞之繇, 用晦而明, 遵彦升儉約之風, 不

劊其朴. 祖諱吉肩, 心卜筮首, 事陰陽著象, 何虞觀變而仰膺.

乹64)顧65)鑽龜, 得兆決疑而無俾世迷.

51) 상정(象正):불교가 흥성(興盛)하던 상법(像法)과 정법시대(正法時代)란 뜻.

52) 옹기(顒祈):앙기(仰祈), 즉 우러러 기도한다는 뜻. 정성껏 기도한다는 뜻이다.

53) 홍균(鴻均):왕이 정치를 잘하여 그 덕화(德化)가 국민에게 골고루 미친다는 뜻.

    즉, 임금의 교화가 순미(淳美)한 태평성세(太平盛世)를 말한다. 홍(鴻)은 태(太),

    균(均)은 평(平)의 뜻으로써 태평성세를 지칭한다. 왕포(王襃),『사자강덕론四子

    講德論』, “夫鴻均之世 何物不樂”.

54) 유고유증(惟高惟曾):오직 고조부와 오직 증조부란 뜻이니, 곧 선조(先祖)들을

    가리킨다.

55) 핵희역안정지요(覈犧易安貞之繇):희역과 안정의 인유(因由)를 상고해 보니, 보

    광(葆光)으로써 밝혔다는 뜻이다.

56) 준언승검약지풍(遵彦升儉約之風):언승이 검소하며 절약했던 풍도(風度)를 준

    수하였다는 뜻. 언승은 진(晋)나라 때 원양(袁羊)이니, 진군(陳郡) 출신으로, 자

    (字)는 언승이다. 청렴하고 검소하여 평생(平生)동안 검약(儉約)을 가풍(家風)으

    로 삼았던 사람이다. 『진서晋書』권75 참조.

57) 불회기박(不劊其朴):질박(質朴)한 바탕을 그대로 지키고 조금도 파괴하지 않았

    다는 뜻. 劊는 찢을 회字. 끊다, 쪼개다 등의 뜻. [總覽] [苑]에는 字임.

58) 길견(吉肩):지광국사의 할아버지 이름. 전기는 미상이다.

59) 심복서수(心卜筮首):마음은 항상 서수로 점을 쳤다는 말. 서수란 서구(筮龜)와

    같은 뜻으로, 거북으로 점치는 것을 복이라 하고, 시초(蓍草)로 점치는 것을 서

    라 한다. 시초는 갈대와 같은 풀로 주역(周易)의 괘(卦)를 뽑을 때 쓰는 풀이다.

    뒤에는 대나무로 하였다.

60) 사음양저상(事陰陽著象):사변(事邊)으로는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역괘(易卦)

    를 풀어 상(象)을 나타냈다는 뜻이다.

61) 하우관변이앙응(何虞觀變而仰膺):“어찌 운수(運數)가 불길(不吉)하게 변함을

    보고, 이를 염려하여 그 불길한 재액(災厄)을 면하려 하였겠는가”라는 뜻이니,

    낙천적으로 소요자재(逍遙自在)하였다는 말.

62) 찬구(鑽龜):찬구타와(鑽龜打瓦)의 준말. 『장자莊子』「외물外物」에 있는 말. 찬구

    (鑽龜)란 송원군(宋元君)이 강에서 한 마리의 흰 거북을 낚았는데, 그 둘레가 5

    자이고 등에는 64문(紋)과 72지(痣 검은 사마귀)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를 가지

    고 길흉을 점치게 하였는데, 영애(靈艾)를 사마귀 위에 꽂고 불로 태우면 길할

    경우에는 사마귀의 자국이 뽀쪽(凸) 튀어 오르고, 흉할 때에는 오목(凹)하여진

    다고 한다. 타와(打瓦)란 왼쪽으로 꼰 새끼[左綯]로 한개의 기와장의 허리를 세

    번 두르고 소원(所願)을 빈 다음, 땅바닥에 던져서 길하면 엎어지고, 흉하면 뒤

    집어진다고 한다. 또한 그 파편(破片)이 홀수이면 흉하고, 짝수이면 길한 것이라

    고 하였다. 『대혜서장大慧書狀』「황문사장黃門司狀」(대정장47, p.940a)에 “若是

    聽卿之流 一任鑽龜打瓦”라 하였다

63) 득조결의이무비세미(得兆決疑而無俾世迷):찬구의 점으로 나타나는 징조로 의

    심(疑心)나는 것을 해결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세상(世上) 일에 현혹되지 않고

    현명(賢明)하게 처세(處世)하였다는 뜻이다.

64) [全文] [總覽]에는 乹. [苑]의 軋은 乹의 오자고, 乹은 乾의 고자(古字)임.

65) [全文]에는 顧. [苑] [總覽]의 는 顧의 속자임.

 

아버지의 휘는 휴66)이니 관직은 아관67)에 이르렀는데,68) 모든 사람들이

선연(先掾)들보다 뛰어난 관리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69) 일찍부터 훌륭

한 상황(床喤)의 아들 낳기를 염원하여70) 항상 초연(椒衍)의 시 듣기를 원

하였다.71) 어머니는 이씨(李氏)니 영리함은 제호72)에 계합하고 공손함은

거안73)보다 더 얌전하였다. 끝없는 원력(願力)은 광목부인74)과 같고 용모

의 아름다움75)은 묘안76)임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성선(聖善)의 태몽에 하해

(河海)의 물이 맑게 범렴(泛瀲)하고 정천(井泉)에서는 물이 솟아 올랐다.

이로 인하여 임신하고는 일과로 탄기77)를 행하여 태아를 교육하였다. 이

에 미루어 보면 어찌 발자취를 밟고78) 잉태하여 태어난 강원79)을 부러워하

겠는가? 탁태(託胎)할 때에는 그윽히 왕소80)의 경우와 같았다. 이미 만삭

이 되어서는 드디어 그 상서(祥瑞)를 발(發)하였다. 옹희 원년81) 세재 알봉

군탄년82) 도월83) 그믐날 사제84)에서 탄생하였다.

父諱休, 職簉衙官, 譽先掾85)吏. 思得床喤之嗣, 愛聞椒衍之詩.

母李氏, 利契提壺, 恭踰擧桉. 無邊善願, 宛然光目婦人, 最勝

姝容, 知是妙顔. 聖善86)嘗87)夢, 河海澄瀲, 井泉涌㳅88). 因以有

娠, 甚於呑氣. 履拇之跡, 那羨於姜嫄. 託胎之期, 冥符於王劭. 

旣彌厥月, 爰發其祥. 以雍熙元年, 歲在閼逢涒灘, 涂月, 晦日,

誕師於私第歟.88)

67) 아관(衙官):①자사(刺史)의 속관(屬官) ②관청이란 뜻. 『당서唐書』「백관지百官

    志」, “刺史領使則置副使·推官·衙官”.

68) 직추아관(軄簉衙官):직책(職責)은 아관(衙官)에 버금하였다는 뜻. 軄은 職의 俗

    字. 簉는 버금 추字.

69) 예선연리(譽先掾吏):칭송함이 연리를 앞서갔다는 뜻. 掾은 아전 연字. 연리란

    연속(掾屬)이라고 한다. 하급관리(下級官吏), 말단 관리란 뜻이다. 『후한서』「마

    원馬援」, “爲郡掾吏 守墳墓 鄕里稱善人.”

70) 사득상황지사(思得床喤之嗣):훌륭한 아들(嗣) 낳기를 염원한다는 뜻. 상황의

    床은 牀과 같으니, 아기를 낳을 때 아이를 받아 눕히는 평상(平床)을 말하고, 황

    은 어린 아이가 크게 우는 것을 말한다. 곧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특이한

    점이 많은 아이로서 장래가 크게 촉망되었다는 뜻. 「시詩」에 “其泣喤喤”이라 하

    고, 「단주段註」에 “啾 謂小兒小聲, 喤 謂小兒大聲也”라 하였다.

71) 애문초연지시(愛聞椒衍之詩):초연의 시 듣기를 희망한다는 뜻. 초연이란 초료

    (椒聊)와 같은 뜻이니, 산초나무를 지칭한다. 산초의 열매는 그 수가 많으므로

    자손이 번창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시경詩經』「당풍唐風」‘초료椒聊’, “椒聊之實

    蕃衍盈什 彼其之子 碩大無朋 椒聊且 遠條且”.

72) 제호(提壺):동자가 술병을 들고 술을 따른다는 뜻. 『태현경太玄經』, “文人扶觚

    竪子提壺”. 壺는 禮, 提는 用의 뜻으로 예의범절이란 말. 「원융국사비문圓融國

    師碑文」 주92)제호提壺 [고려편2] p.279 참조.

73) 거안(擧案):거안제미(擧案齊眉)의 준말로, 아내가 남편을 지극히 존경함을 이

    른다. 후한 양홍(梁鴻)의 처 맹광(孟光)이 남편에게 밥상을 올릴 때 눈높이까지

    받쳐 들었다는 데서 온 말. 『후한서』「일민逸民」 참조.

74) 광목부인(光目婦人):광목녀(光目女)라고도 하니 지장보살의 전신(前身)이다.

    지장보살이 구원겁전(久遠劫前)에 한 여자였는데 그 이름이 광목이었다. 그 때

    광목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한 나한(羅漢)에게 공양을 올리면서 악취(惡趣)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할 서원(誓願)을 세우기를, “나는 지금으로부터 일체중생

    (一切衆生)을 제도하여 모두 성불(成佛)한 다음에야 정각(正覺)을 이룰 것이다.”

    라고 하였다. 중생이 모두 성불하는 때는 기약이 없으니, 지장보살을 대비천제

    (大悲闡提)라 한다. 즉 일체중생이 성불하는 날까지 영원히 성불할 수 없는 불구

    (不具)의 보살이기 때문이다.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권상(대정장13,

    pp.780~781) 참조.

75) 주용(姝容):아름다운 얼굴이니, 미인(美人)이란 뜻. 주희(姝姬)·주녀(姝女) 등

    과 같은 뜻이다.

76) 묘안(妙顔):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인.

77) 탄기(呑氣):탄하복기(呑霞服氣)의 준말. 기(氣)를 들이키는 것. ①신선이 노을

    을 삼키고 천지(天地)의 기운을 들이키는 것 ②호흡을 조절하여 태아(胎兒)를

    교육하는 것.

78) 이무지적(履拇之跡):전인의 자취를 밟는 것. 낭야대취(琅瑘代醉),『이적履跡』,

    “姜嫄 履巨人跡而生棄”.

79) 강원(姜嫄):중국 상고(上古) 때 유태씨(有邰氏)의 딸. 제곡(帝嚳)의 비(妃)이다.

    어느 날 거인(巨人)의 족적(足跡)을 보고 이를 밟은 다음 임신하여 드디어 후직

    (后稷)을 출생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강원(姜原)이라고도 한다. 『열녀전烈女

    傳』「모의전母儀傳」에 “棄母 姜嫄者 邰侯之女也”라 하였고, 『당강원신묘비唐姜

    嫄新廟碑』에 “姜嫄者 炎帝之後 有邰氏之女 姓姜 字嫄 帝嚳之元妃 后稷之母也”

    라 하였다. 「원공국사승묘탑비문圓空國師勝妙塔碑文」 주358)비궁閟宮 [고려편

    2] p.253 참조.

80) 왕소(王邵):소(邵)는 소(劭)의 오자이다. 왕소는 진(晉)나라 사람으로 왕도(王

    導)의 아들이며, 자(字)는 경륜(敬倫), 시호는 간(簡)이다. 풍조(風操)가 있고 호

    연지기가 강했다. 벼슬은 동양태수(東陽太守), 오국내사(吳國內史) 등을 역임했

    다. 『진서晉書』권69 참조.

81) 옹희원년(雍熙元年):옹희는 송나라 태종 때의 연호. 옹희 원년은 고려 성종 3년

    (984).

82) 알봉군탄(閼逢涒灘):알봉은 고갑자의 천간(天干) 중 갑(甲)에 해당되고, 군탄은

    고갑자의 지지(地支) 중 신(申)에 해당된다. 984년은 갑신년(甲申年)이다.

83) 도월(涂月):음력 12월의 이명(異名). 『이아爾雅』「석천釋天」, “十二月 爲涂”. 涂

    는 除의 뜻. 음12월(陰十二月)을 계동(季冬) 또는 축월(丑月)이라고도 한다.

84) 사제(私第):사택(私宅)과 같은 뜻.

85) [全文][總覽]은 椽. [苑]에는 掾. 椽은 掾의 오자임.

86) [苑] [總覽] [全文]은 모두 결락이나, 문맥으로 보아 善인 듯하다. 

87)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嘗임.

88) [苑] [總覽] [全文]의 㳅는 流의 고자(古字)임.

 

어릴 때의 이름은 수몽(水夢)이었다. 옛날 중국에서 주(周)나라 명왕(明

王) 24년에 강하(江河)와 천지(泉池)가 홀연히 범람하였으니,89) 이것이 부

처님께서 탄생하신 상서였는데, 이것을 우리 국사의 탄생과 비교하면 그

시종(始終)의 징조가 하나도 다름이 없다.90) 국사는 일자분정,91) 즉 태양의

정기를 타고 났으며, 연꽃과 같은 향기롭고 아름다운 성품을 받아 태어났

다.92) 의지는 탐애(貪愛)를 단제(斷除)하는 데 예리하였고93) 마음은 색신

(色身)과 명예(名譽)를 위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94) 초년(齠年)의

나이에 이르러95) 이미 학문에 뜻을 두어 이수겸96)을 찾아가서 학업을 청하

였다. 수겸(守謙)이 스님을 보고 특이한 그릇인줄 알고 말하기를, “나는 석

학(碩學)이 될 기량96)7)을 지도할 능력이 없으니 너는 마땅히 밝은 스승을

찾도록 노력하라.” 하였다.

故童年號爲水夢也. 昔明王卽位二十四年, 江河泉池, 忽然汎

漲, 是佛生之瑞, 比於吾師, 資始之徵, 一無異焉. 師98)日99)蔗

分100)精, 淤蓮稟性. 銳意於斷除貪愛, 非心乎資益色身. 甫及齠

秊,101) 勤恁幼學, 謁李守謙, 請業. 謙見異之曰, “余則不知碩

量, 爾宜務擇明師矣.”

89) 명왕…홀연범창(明王…忽然汎漲):불타(佛陀)께서 탄생하신 상서이니, 북전설(北

    傳說)에 의하면 석가세존은 주(周)나라 소왕(昭王) 26년 갑인 4월 8일에 탄생하였

    으므로 명왕(明王) 즉위 24년은 주나라 24년을 지칭한다. 주소왕은 주나라 제4대

    의 왕이며 명은 하(瑕)이고, 시호는 소(昭)이다. 명왕은 ①정사(政事)에 밝은 어진

    군주 ②삼보(三寶)·국토·인민을 수호하는 신 ③신불(神佛)의 봉호(封號)이다.

90) 불생지서…일무이언(佛生之瑞…一無異焉):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상서(祥瑞)와

    우리 스님이 자시(資始)한 태몽을 비교하면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뜻.

91) 일자분정(日蔗分精):지광국사는 태양의 정기(精氣)를 타고 태어났다는 뜻.

92) 어련품성(淤蓮稟性):연꽃 같은 청정(淸淨)한 성품(性品)을 품수(稟受)하였다

    는 말.

93) 예의어단제탐애(銳意於斷除貪愛):뜻은 탐애를 단제하는데 예리하다는 뜻.

94) 비심호자익색신(非心乎資益色身):마음이 색신을 유지하는 데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말.

95) 보급초년(甫及齠秊):‘비로소 초년에 이르러서’라는 뜻. 초년이란 초츤(齠齓)과

    같은 말이니, 남자는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이가 나고 8살에 이를 갈며, 여자는 

    7개월 만에 이가 나고 7살에 이를 간다고 하여, 7, 8세의 어린아이를 지칭한다.

   「보조선사창성탑비문普照禪師彰聖塔碑文」 주32)초츤지세齠齓之歲 본서 p.61

    참조.

96) 이수겸(李守謙):전기 미상이다.

97) 석량(碩量):석학기량(碩學器量)의 준말. ①큰 학자 ②큰 그릇 ③큰 인품. 『진서』

   「민제기론愍帝紀論」, “宣帝 以雄才碩量 應時而仕”.

98) [全文] [總覽]에는 師. [苑]의 阝는 師의 오자임.

99) [苑] [總覽]에는 日. [全文]의 曰은 日의 오자임.

100) [全文] [總覽]에는 分. [苑]의 兮는 分의 오자임.

101) [苑][全文]에는 秊. [總覽]에는 䄵. 䄵과 年은 동자이며, 秊은 年의 본자이다.

 

어느 날 관상을 잘 보는 한 노인이 있어102) 스님의 손금을 보고103) 국사

에게 이르기를, “네가 만약 출가하여 스님이 된다면 반드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앞으로 통인달사(通人達士)가

되리라는 말을 듣고104) 다만 도주(道籌)에 종사할 생각에만 골똘히 잠기

고,105)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오

히려 노장(老莊)의 개설(槪說)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106) 따라

서 사대부들의 헌면107)을 치수108)처럼 보고 고량진미(膏粱珍味)를 마치 강

109)와 같이 여겼다.

或有一老嫗, 善相者, 見文在手, 謂師曰, “你若爲僧, 必貴於

世.” 師洎聞達算, 秪事道籌, 不觀孔孟之方, 尙鄙老莊之槪.

錙銖軒冕, 糠秕膏粱.

102) 선상자(善相者):관상가. 관상을 잘 보는 사람.

103) 견문재수(見文在手):‘손바닥에 무늬가 있음을 보고’라는 뜻이니, 손금을 보았다

     는 뜻.

104) 달산(達算):관상보는 사람으로부터 “만약 출가하여 스님이 되면 통인달사(通人

     達士)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뜻.

105) 지사도주(祗事道籌):다만 수도하려는 생각에만 골똘히 잠겼다는 뜻.

106) 상비로장지개(尙鄙老莊之槪):오히려 노자와 장자의 개설도 대수롭지 않게 여

     긴다는 뜻.

107) 헌면(軒冕):헌은 대부(大夫)들이 타는 수레. 면은 대부 이하(以下)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관(冠)을 가리킨다. 곧 사대부(士大夫)를 지칭한다.

108) 치수(錙銖):저울 눈금이니, 6수가 1치이며 8냥이 1치이니, 지극히 적은 것을 비

     교하는 말이다. 미세(微細)하고 작은 것을 비유하는 것. 『예기』「유행儒行」, “雖

     分國如錙銖 不臣不仕 其規爲有如此者”. 즉, 신분이 낮은 사람을 가리킨다.

109) 강비(糠粃):곡식의 쭉정이. 전하여 하찮은 물건이나 시시한 것을 가리킨다. 『진

     서』「손작전孫綽傳」, “簸之提之 糖粃在前”.

 

급히 서둘러 법고사110)의 관웅대사(寬雄大師)의 처소로 가서 수학하던

중 관웅스님이 경화(京華)인 개성으로 떠나게 되었으므로 국사도 그 산

111)을 하직하고 떠나게 되었다. 관웅대사가 배를 타고112) 강을 건너 오운

113)을 벗어나자마자 스님은 곧 걸망을 짊어지고 따라갔다. 천리를 멀리

여기지 않고 함께 연하114)로 돌아갔다. 이어 곧 산의 서쪽을 점지하였는

114)15) 해안사116)와 선접(旋接)한 곳이었다. 준광방장117)에게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수도하면서 함장(函杖)에게 욕의(縟儀)를 펴고 시봉하기를

희망하며118) 정성을 다하여 표질(縹帙)을 관화(貫花)에서 연마하였다.119)

위(魏)나라의 창서(蒼舒)가 코끼리의 무게를 작은 저울로 알아 내던 나이

120) 이미 불교를 전해 듣고 알았으며,121) 가위나국122) 구오사미의 유123)와 

같은 어린 나이에 이미 모든 사람들이 김공124)이라 존칭하였다. 그는 기연

을 검괄125)하여 종요126)를 격양(激揚)하되, 한 가지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

달아 진도의 결과가 그의 엄사127)보다 배나 높았다.

遽就法皐寺, 大師寬雄處, 斅學之次, 雄公適指京華, 俄辝水

石, 彼則浮杯以渡, 纔出五雲, 我則負笈而追, 匪遙千里, 同歸

輦128)下, 卽占山西, 旋接于海安寺. 俊光方丈, 剃髮毁容, 出家

脩道, 蘄展縟儀於函杖, 款窮縹帙於貫花. 魏蒼舒秤象之年, 解

傳眞諦, 迦衛國駈129)烏之類, 僉讓金公, 其於檢括機緣, 迺□激

揚宗要, 一聞千悟, 功倍於嚴師.

110) 법고사(法皐寺):위치와 사적은 미상이다. 혹시 법천사(法泉寺)가 아닌가 한다.

111) 수석(水石):깊은 산중을 가리킨다.

112) 부배(浮杯):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뜻.

113) 오운산(五雲山):오색의 구름이 자욱히 덮인 산곡(山谷)이니, 법천사가 위치한

     명봉산(鳴鳳山)을 가리킨다.

114) 연하(輦下):서울을 가리키니, 개성을 뜻한다.

115) 즉점산서선접해안사(卽占山西旋接海安寺):곧 바로 개성 봉명산(鳳鳴山) 서쪽

     으로, 해안사(海安寺)에 선접(旋接)해 있는 지역을 점유하였다는 뜻.

116) 해안사(海安寺):경기도 개성군 봉명산에 있던 절. 고려 초부터 역대 왕의 진영

     (眞影)을 이 절에 봉안해 왔으나, 명종(明宗 1170~1197) 때 무신(武臣)들이 의논

     하기를, “의종(毅宗 1146~1170)께서는 무인(武人)을 원수처럼 여겼으니, 조종(祖

     宗)의 제왕진영(諸王眞影)을 무방[玄武;北方의 神]에 모시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여 성동(城東)에 있는 오미원(吳彌院)을 선효사(宣孝寺)로 이름을 고쳐 이곳

     으로 진영을 이안(移安)하였고, 해안사는 중방원당(重房願堂)으로 삼았다. 『신

     증동국여지승람』권5 「개성부開城府」하‘고적古跡’ 참조.

117) 방장(方丈):해안사 방장, 즉 조실스님이란 말.

118) 기전욕의어함장(蘄展縟儀於函杖):함장에게 욕의 펴드리기를 희망한다는 뜻

     이니, 시봉(侍奉)하기를 원하는 것. 蘄는 바랄 기字. 욕의의 縟字는 褥이어야 하

     나 相通하는 字이고, 함장의 杖字는 丈이어야 하나, 이것 또한 상통하는 글자이

     다. 욕의란 욕의(褥儀)라고도 한다. 스승이나 또는 존경하는 사람을 위해 침구를

     펴 드리며, 청소 등을 시봉하는 것이니, 곧 스승을 모시고 불법(佛法)을 배운다

     는 뜻이다. 함장(函杖)이란 인장(仁丈)이라고도 한다. 스승을 지칭하니, 스승의

     자리와 자기의 자리 사이에 일장(一丈;10尺)의 거리를 둔다는 말이다. 함(函)은

     용납(容納)의 뜻. 『예기』에 “席間函丈”이라 하였으니, 스승을 존경하는 태도를

     말한다. 전하여 선생(先生) 또는 장자(長者)에게 드리는 편지에 받는 이의 성명

     아래에 써서 존경하는 뜻을 나타낸다. 『예기』「곡례曲禮」‘상’에 “凡爲長者云云

     若非飮食之客 則布席 席間函丈”이라 하였다.

119) 관궁표질어관화(款窮縹帙於貫花):정성을 다하여 옥색(玉色)빛으로 책가위를

     장식한 관화를 연궁하였다는 말이니, 관화는 관천섭화(貫穿攝化)의 준말이므로

     관화(貫化)로 기록되어야 한다. 표질이란 옥색으로 장식한 책가위. 전하여 경책

     (經冊;書卷)을 지칭함. 질(帙)은 책가위. 『당태종제경唐太宗帝京』에 “韋編斷復

     續 縹帙舒還卷”이라 하였다. 관천섭화란 경율론 삼장(三藏) 중 수다라( sūtra)

     를 번역하면 선(線)·조(條)·성경(聖經)·계경(契經) 등이라 하니, 계경(契經)이

     란 계리계기(契理契機)의 준말로써 진리에 계합하고 또한 중생들의 근기(根機)

     에도 부합한다는 말이며, 관천(貫穿)이란 불타(佛陀)의 법음을 결집(結集)한 것

     이 마치 흩어져 있는 꽃을 끈에 꿰어 두면 오래토록 완전하게 보존할 수 있게 한

     것이고, 섭화(攝化)란 이렇게 결집된 경전으로써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이다. 청

     량(淸凉),『화엄경華嚴經』「현담懸談」(대정장35, p.507a01) 참조.

120) 위창서칭상지년(魏蒼舒秤象之年):칭상지년(秤象之年)이란 코끼리의 무게를

     헤아리는 방법을 알아낸 나이, 즉 5~6세 때를 말한다. 위나라 창서(倉舒)가 어

     려서부터 총명하여 큰 코끼리의 무게를 다루는 방법을 일러 주던 나이라는 말.

     위나라 등애왕(鄧哀王) 충(沖)이 선상(船上)에 코끼리를 실어 물금(水痕)에 의

     하여 그 중량(重量)을 헤아리게 하였던 고사에서 온 말. 등애왕 충의 자는 창서

     이니,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리 뛰어나 5~6세 때 이미 사물을 판단하는 지

     혜가 성인과 같았다. 그 때 왕인 손권(182~252)이 큰 코끼리 한 마리를 구하여

     그의 무게를 알고자 군신(群臣)들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그 방법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5~6세 밖에 되지 않는 충이 “코끼리를 큰 배에 태워서

     물금을 표시하고, 다시 다른 물건을 그만큼 실어서 비교하면 가(可)히 그 코끼

     리의 무게를 알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위지魏志』「등애왕충전鄧哀王沖傳」,

     “字 倉舒 少聰察岐嶷 生五六歲 智意所及 有若成人之智 時孫權曾致巨象 太祖欲

     知其斤重 訪之群下 咸莫能出其理 沖曰 置象大船之上 而刻其水痕所至 稱物以

     載之 則校可知”.

121) 해전진제(解傳眞諦):5~6살 때부터 이미 진제(眞諦) 즉 불교를 전해 듣고 알았

     다는 말이다.

122) 가위국(迦衛國):가비라위(迦毘羅衛)의 준말이니 가비라바소도(迦毘羅婆蘇都

     Kapilavastu)라고도 하는데, 싯달다태자가 태어난 가비라국(迦毘羅國)을 지칭

     한다.

123) 구오지류(驅烏之類):사원(寺院)의 음식물이나 곡식 등을 지키기 위하여 까마

     귀, 새, 쥐 등을 쫓는 일을 맡아 보는 어린 사미(沙彌)스님을 지칭한다. 사미는

     크게 셋으로 구분하는데, 7살에서 13살까지를 구오사미(驅烏沙彌)라 하니, 어려

     서 다른 일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4살부터 19살까지를 응법사미(應法沙

     彌)라 하니, 모든 규칙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며, 20살부터 70살까지를 명자사

     미(名字沙彌)라 하니, 20살이 되면 비구계(比丘戒)를 받아 비구의 분한(分限)을

     가지게 되므로 명자(名字)만이 사미이고 실은 비구이기 때문이다.

124) 김공(金公):어려서 출가하여 사미(沙彌)가 된 지광국사를 지칭한다. 김공이란

     높혀서 존칭하는 말.

125) 검괄기연(檢括機緣):기연을 온전히 들어 섭수함이니, 총괄(總括)한다는 것이

     다. 기연이란 기(機)와 연(緣)이니, ①기는 기회(機會). 연은 인연(因緣). 즉, 학인

     이 선지식의 교화를 받는 기회 ②기는 종지(宗旨)를 제시(提示)하는 종사(宗師).

     연은 종지(宗旨)를 질문하는 학인(學人). 예컨대 달마와 양무제가 대화하였으

     나, 무제(武帝)가 달마의 뜻을 체득하지 못한 것을 기연불투(機緣不投)라 하고,

     달마와 혜가(慧可)의 문답을 기연상투(機緣相投)라고 하는 따위이다.

126) 종요(宗要):종지추요(宗旨樞要)의 준말이니, 최상승인 선(禪)의 종지를 일컫

     는다.

127) 엄사(嚴師):아버지를 엄부(嚴父)라고 하는 것과 같이 스승을 지칭한다.

128) [全文]에는 輦. [苑] [總覽]의 輩는 輦의 오자임.

129) [苑] [總覽]에는 駈. [全文]의 은 駈의 오자임. 駈는 驅와 同字이다. 

 

양지130)와 삼명131)으로 도덕이 높아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계승하였

다.131)132) 이와 같이 영특함을 알게 된 웅공133)은 기꺼워하면서 해린(海潾)이

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 통화 17년134) 수하(首夏)의 달135)에 용흥사136) 관단

(官壇)에서 구족계를 품수(稟受)하였다. 탐·진·치의 마음을 씻어 그 오염

(汚染)을 여의었으니 마치 손으로 공중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았다. 29

살 때 숭교사137)를 창건할 때 감독을 맡았던 은공으로 그 절의 초대 주지

가 되었다.138) 자운사139)에서 거행하는 창살도량에 나아가서140) 부처님께 

향을 올려 기도하였다.141) 어느 날 관웅 스님이 법천사(法泉寺)에서 잠을

자고 있는 동안, 꿈에 새매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왼쪽 손을 펴서

손바닥에 받들었다. 또 두 마리의 산군142)이 절 후원에 들어와서 서로 뛰

고 놀다가 날이 밝아지자143) 떠나간 일도 있었다. 관웅 스님이 이를 이상

하게 여겨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144) 국사께서 본사를 찾아왔으니145)

이것이 바로 그 꿈의 감응인 것이다. 또 어느 날 꿈에 바닷가에 가서 손으

로 직접 작은 고기를 잡아서 삼키고 꿈을 깨었는데, 해몽하는 사람이 말하

기를, “어(魚)는 비늘(鱗)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린(潾)을 린

(鱗)으로 고쳐 해린(海潾)을 해린(海鱗)으로 개명하고, 자를 거룡(巨龍)이

라 하였던 것이다.

兩智三明, 道存於紹佛. 雄公, 悅而名之海潾. 以統和十七年,

首夏之月, 稟具於龍興寺之官壇. 洗心離146)染, 如手畵空矣. 時

年二九, 例被崇敎寺開刱之恩, 初職爲得名也. 仍赴慈雲寺唱

薩之場, 焚脩向畢. 雄公, 於法泉寺, 安寢之頃間, 夢見一鷹飛

到, 則伸左拳以捧之, 又兩山君, 來入於後園, 互相踊躍, 徹明

而去. 雄公異而誌之, 翊日師 147)來本寺, 此其應也148). 師夢到

海濱, 手捉小魚呑之, 覺而解之曰, “魚則鱗也.” 因以鱗爲名,

巨龍爲字矣.

130) 양지(兩智):이지(二智)라고도 하니, 여러 가지가 있다. ①여리지(如理智)와 여

     량지(如量智) ②근본지(根本智)와 후득지(後得智) ③진지(眞智)와 실지(實智) ④

     무착지(無着智)와 무애지(無礙智) ⑤차별지(差別智)와 무차별지(無差別智) ⑥진

     지와 속지(俗智) ⑦권지(權智)와 실지(實智) 등이 있다.

131) 삼명(三明):①전생(前生)의 일을 밝게 아는 숙명명(宿命明) ②수천 수만리를 꿰

     뚫어보는 천안명(天眼明) ③모든 번뇌가 다한 누진명(漏盡明)을 가리킨다.

132) 소불(紹佛):법력(法力)이 높아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 불교를 흥륭

     케하는 것을 말한다.

133) 웅공(雄公):법고사(法皐寺)의 관웅대사(寬雄大師).

134) 통화십칠년(統和十七年):요(遼) 성종(聖宗)때의 연호. 통화 17년은 999년으로

     고려 목종(穆宗) 2년이다.

135) 수하지월(首夏之月):여름이 시작되는 음력 4월.

136) 용흥사(龍興寺):용흥사가 여러 개가 있어 어느 절인지 미상(未詳)이다.

137) 숭교사(崇敎寺):경기도 개성 남쪽 환희방(歡喜坊)에 위치해 있던 절. 1000년(목

     종3)에 왕의 후원과 해린(海潾)스님의 감독으로 창건하였다. 현종(顯宗)이 어

     릴 때 대량원군(大良院君)에 봉해졌으나, 12세 때 금치양(金致陽)과 사통(私通)

     하여 태어난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는 천추태후(千秋太后), 즉 경종비

     (景宗妃) 헌애왕후(獻哀王后)의 강요로 밀려나 숭교사에 와서 삭발하고 스님으

     로 있다가, 1006년 삼각산 신혈사(神穴寺)로 옮겨져 신혈소군(神穴小君)으로 불

     리었다. 누차 태후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될 뻔 하였으나 1009년 마침내 강조(康

     兆)의 옹립으로 즉위(卽位)하였다. 『고려사』권1, 2, 3;『신증동국여지승람』권5

    「개성부開城府」하‘고적古跡’ 등 참조.

138) 초직위득명(初職爲得名):지광국사(智光國師)가 숭교사(崇敎寺)의 초대주지(初

     代住持)가 되었다는 뜻.

139) 자운사(慈雲寺):경기도 개성시 노운교(勞運橋) 곁 영평문(永平門) 밖에 위치.

     919년(태조2) 창건.

140) 부자운사창살지량(赴慈雲寺唱薩之場):목종이 즉위(卽位)한 후 자운사에서 봉

     찬법회(奉讚法會)를 열고 스님들과 충신들의 격려와 위로를 위한 도량(道場)에 

     참석하였다는 뜻. 창살(唱薩)이란 범어이니, 파도(婆度 sadu)라고도 한다. 창

     살 또는 살(薩)이라고도 하니, 선재(善哉)·선성(善成)·호선(好善) 등으로 번역

     된다. 즉, 지극히 잘한 일에 대하여 “선재 선재.”라고 찬탄하는 말이다. 『현응음

     의玄應音義』권16에 “唱薩訛音 婆度正音”이라 하였다.

141) 분수(焚修):불전에 향을 사르고 기도하는 것.

142) 산군(山君):산신령이니, 호랑이를 지칭한다. 양산군(兩山君)은 두마리의 호랑

     이. 『설문說文』에 “虎 山獸之君也”라 하였다.

143) 철명(徹明):철은 철야(徹夜)이니, 호랑이가 밤새도록 있다가 날이 밝은 다음에

     야 돌아갔다는 말.

144) 익일(翊日):翊은 翌과 통자(通字)로 다음날, 이튿날이라는 뜻이다.

145) 걸래(朅來):알래(謁來)와 같은 뜻이니, 찾아왔다는 말. 또는 방문(訪問)의 뜻.

146) [苑] [全文]에는 離. [總覽]의 雖는 離의 오자임.

147) [苑]의 圦과 [總覽] [全文]의 朅은 같은 字로 알(謁)자임.

148) [全文] [總覽]에는 也. [苑]의 芝는 也의 오자임

 

나이 21세 때 왕륜사149) 대선150)장에 나아가서 담경(談經) 시험을 보았는

데, 그의 말은 평범(平凡)하나 그 뜻은 매우 심오하였다.151) 시험의 문제는

같았으나 국사의 답안(答案)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이하였다.152) 저들 자신

의 답안이 틀려서 자신의 소망(所望)에 어긋난 자들은153) 마치 소경이 촛

불을 잡은 것과 같았으며, 혹은 시기하여 머트럽게 다투던 자들은 마치 함

154)한 것과 같이 입을 열지 못하였다. 마음에는 모든 반연을 쉬었으니 

감히 파도가 물에 의지한 것을 탄식할 것이며, 진여법(眞如法)은 모든 움

직임을 여의었으니 마땅히 탁약155)의 가풍(假風)을 비웃을 수 있겠는가.156)

토의하는 광장(廣場)에서는 주위로부터 집중적인 공세를 받았으나 마치

교범파제157) 등의 호부장자(豪富長者)들로 구성된 그룹의 첩벽(疊壁)이 무

너지고 모두 논리에 항복하여 부처님께로 귀화한 것과 같았으며158) 견고

한 인욕의 갑옷이여!159) 니건자(尼乾子)를 비롯한 외도(外道) 육사(六師)들

의 일(一)·이(異)·유(有)·무(無) 등의 교란적인 주장이 부처님 사자후(獅

子吼)의 일성(一聲)으로 말미암아 모두 사라진 것과 같았다.160)

春秋二十一, 赴王輪寺大選, 談經而言近意深. 命侶而問同答

異. 彼觖望者, 如盲之執燭, 或醜爭者, 止語於銜枚. 心息諸緣,

敢歎波濤之依水, 法離群動, 應嗤槖籥之假風. 解議圍而憍梵

壘降. 峨忍鎧兮, 尼乹161)轍亂.

149) 왕륜사(王輪寺):경기도 개성시 송악산 기슭에 있던 절. 919년(태조 2)에 법왕(法

     王)·자운(慈雲)·왕륜(王輪)·내제석(內帝釋)·사나(舍那)·천선원(天禪院)·신

     흥(新興)·문수(文殊)·원통(圓通)·지장사(地藏寺) 등 16사를 창건하였다. 『신증

     동국여지승람』권4 「개성부」상‘불우佛宇’ 참조.

150) 대선(大選):승과(僧科)에 합격한 스님에게 처음 제수되는 법계(法階)이다.

151) 언근의심(言近意深):대선(大選法階)의 고시장에서 경을 담론함에 있어 말은 비

     록 비근(卑近)하나, 그 뜻은 매우 심오(深奧)하였다는 뜻.

152) 문동답이(問同答異):시험의 문제는 같았으나, 스님의 답안(答案)은 다른 사람

     들보다 특이(特異)하였다는 뜻.

153) 결망(觖望):결망(缺望)과 같은 뜻. 기대에 어긋났다는 뜻으로, 소망(所望)이 만

     족스럽지 못하다는 말이다. 즉 자신들의 실력이 부족(不足)함을 한탄하는 뜻이

     다.

154) 함장(銜杖):함장(㗸杖)이라고도 하니, 입에 매(枚)를 물게 하는 것. 매는 젓가락

     과 같은 모양의 막대기. 양쪽에 끈을 묶어 입에 물게 하는 것이니, 옛날 행군(行

     軍)하다가 적을 습격할 때 사병(士兵)들로 하여금 각각 매를 입에 물게 하여 말

     을 못하도록 하는 것. “古行軍 襲敵時 令士卒 銜枚 枚狀如箸 橫銜口中 所以止諠

     譁也”. 『주례周禮』「추관秋官」‘서언序言’ 함매씨(銜枚氏)에 “銜枚 止言語囂讙也

     枚狀如箸 橫銜之爲繣 結於項”이라 하였다.

155) 탁약(槖籥):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대장장이가 사용하는 풀무. 탁은

     외면(外面)의 함독(函櫝), 약은 내면(內面)의 풍관(風管)이니, 탁을 고동하는 것.

156) 응치(應嗤):치(嗤)는 치(蚩)와 같은 자(字)이니, 조소(嘲笑)할 치字.

157) 교범파제(憍梵婆提): Gavāmpati. 부처님의 제자. 사리물이 교도(敎導)하였다.

158) 해의위이교범루강(解議圍而憍梵壘降):토론의 광장에서 사방(四方)으로부터 질

     문 공세가 집중적으로 위요(圍繞)하였으나, 그들을 설복시킴이 마치 바라나성

     (波羅奈城 varānāsi)의 많은 장자(長者)들 중 제1장자의 아들인 야사(耶舍

     Yaśa)가 호부(豪富)한 가정을 버리고 출가입산(出家入山)함에 따라, 제2장자의

     아들 부루나(富樓那 Pūrna), 제3장자의 아들 무구(無垢 Vimala), 제4장자의

     아들 교범파제(憍梵婆提 Gavāmpati), 제5장자의 아들 묘견(妙肩 Sudarśana)

     등이 계속 뒤를 이어 50명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므로 이를 교범

     루강(憍梵壘降)이라 한다. 『유부비내야파승사有部毘奈耶破僧事』권6 참조. 누강

     (壘降)이란 호부장자(豪富長者)들로 형성된 그룹 누벽(壘壁)이 무너지고 모두

     부처님께로 귀화(歸化)하였다는 뜻이다.

159) 인개(忍鎧):인욕(忍辱)의 갑옷이란 뜻이니, 인욕은 일체의 외난(外難)을 막게

     되므로 갑옷에 비유한 것. 『지도론智度論』권10(대정장25, p.133a)에 “忍鎧心堅固

     精進己力强 智慧利勁箭 破憍慢諸賊”이라 하였으니, 자실(慈實)에 상대하는 말

     이다.

160) 니건철란(尼乹轍亂):니건자(尼乹子)를 비롯한 외도육사(外道 六師)들의 부조리

     하고 불합리한 질문과 비방이 불타(佛陀)의 자비와 인욕으로 말미암아 모두 사

     라진 것과 같다는 뜻이다. 마명보살(馬鳴菩薩)이 편집하고, 일칭(日稱) 등(等)이 

     번역한 『니건자문무아의경尼乾子問無我義經』1권에 의하면 니건자 외도가 무

     아(無我)의 뜻을 질문하자 그에 대하여 게송(偈頌)으로 대답하였다. 니건자란

     니건타약제자(尼乾陀若提子)의 준말이니, 니건타는 이름이고 야제자는 어머니

     의 이름이다. 인도 육사외도의 한 사람.

161) 니건(尼乹)은 尼乾이니, 乹은 乾의 고자(古字)이다

 

국사께서 법상(法床)에 앉아 불자(拂子)를 잡고 좌우로 한번 휘두르니162)

가히 청중들이 많이 모여 앉은 걸상이 부러진 것과 같았다.163) 임금이 국사

의 도덕을 찬양하고164) 대덕(大德)의 법계를 서증하였다.165) 이 때 스님께서

이르기를, “내가 의룡(義龍)과 서성(瑞聖)인 후배에게는 부끄럽지만166) 

수(仁獸) 보다는 앞서기를 기대하므로167) 린(麟)자로 린(鱗)자를 고쳐 이

름하겠다.”고 하였다. 통화년중168)에 “강진홍도(講眞弘道)”란 법호를 받았

으며, 28년169)에는 국사께서 법고사(法皐寺)로 돌아가는 길에 도강170)인 진

조(眞肇) 스님을 만나 동행171)하였는데, 진조(眞肇) 스님이 역산172)하는 법을

잘 안다는 말을 듣고 국사께서 가르쳐 주기를 청하였다. 누구나 이를 취하

려 하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고,173) 도모하여 옮기면 밝아서 소경이

눈을 뜬 것과 같이 여용174)을 보통 무리들에게나 끼쳐주며,175) 다능(多能)

을 비루176)한 것을 연구함과 같았다. 통화 말년은 우리 성고177) 현종(顯宗)

께서 보위에 오르신 지 5년째 되던 해이다.178) 특히 현종 임금으로부터 존

장(尊獎)하는 은총을 입어179) 대사(大師)의 법계를 받았다.

捉麈而一趍, 試可折床之衆. 許明揚仍署大德. 于時師以謂曰,

“紛吾慙後於義龍瑞聖, 冀180)先於仁獸故, 181)以麟改鱗爲名

也.” 統和年中, 受法號曰, “講眞弘道”, 二十八182)年183), 師將還

法皐寺, 路値都184)講眞肇, 偕行次, 聞肇公會185)曆算之法, 師請

傳之. 取則而易於反掌, 移謀而明若發矇, 賈餘勇於恒流, 究多

能於鄙事者矣. 屬統柇186)末考187), 我聖考顯宗, 御宇第五年也.

特蒙睿獎, 加署大師.188)

162) 착주일추(捉麈一趍):법상에 올라 앉아 불자(拂子)를 잡고 좌우(左右)로 한번 휘

     두른다는 뜻.

163) 시가절상지중(試可折床之衆):가히 절상의 대중에 비교할만 하였다는 말. 절상

     지중이란 걸상[腰掛]이 부러질 정도로 많은 청중이 운집(雲集)함을 지칭한다.

    「원공국사승묘탑비문」 주203)절상이청折牀而聽 [고려편2] p.241 참조.

164) 허명양(許明揚):지광국사의 법문에 대하여 대중이 모두 달마종지를 밝게 천양

     (闡揚)한다면서 칭송하였다는 말이다.

165) 서대덕(署大德):왕으로부터 대덕(大德)이란 법계의 서명을 받았다는 말.

166) 분오참후어의룡서성(紛吾慙後於義龍瑞聖):내가 의룡과 서성에 대하여는 부끄

     러움이 많다는 뜻. 의룡이란 교의(敎義)에 정통한 스님을 가리킨다. 서성은 부처

     님을 지칭한다.

167) 기선어인수(冀先於仁獸):인수보다는 앞서기를 바란다는 뜻. 인수(仁獸)란 린수

     (麟獸)를 가리키니, 공자(孔子)를 뜻한다.

168) 통화년중(統和年中):통화는 요(遼)나라 성종(聖宗)때의 연호이니, 고려

     983~1011년(성종2~현종2)이다.

169) 이십팔년(二十八年):[全文]에는 이십팔년이니, 즉 통화 28년(현종1;1010)을 가

     리킨다.

170) 도강(都講):주강(主講)이니, 강사주임(講師主任) 즉 강주(講主)와 같은 뜻이다.

171) 해행(偕行):함께 가는 것. 동행(同行).

172) 역산(曆算):역산(歷算)이라고도 하니, ①역에 관한 수리(數理) ②역술(曆術)의 방

     법(方法)을 말한다.

173) 이어반장(易於反掌):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다는 뜻.

174) 고여용(賈餘勇):자신이 변변치 못하여 다른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줄 능력이 없다는 뜻이니, 「통진대사비문」 주205)고용지여賈勇之餘 [고려편1]

     p.366;「법인국사보승탑비문」 주299)고용賈勇 [고려편2] p.113 등 참조.

175) 항류(恒流):보통의 무리. 일반 대중.

176) 비사(鄙事):①비근할 일 ②일반적인 상식(常識) ③비상(非常)하지 않고 심상(尋

     常)한 일.

177) 아성고(我聖考):아는 고려 제13대왕 선종(宣宗)의 자칭(自稱)이고, 성고는 조부

     (祖父)이니, 8대 현종(顯宗)을 지칭한다. 9대 덕종(德宗)은 현종의 장자(長子)이

     고, 10대 정종(靖宗)은 현종의 제2자이며, 11대 문종(文宗)은 현종의 제3자이고,

     12대 순종(順宗)은 문종의 장자이며 13대 선종은 문종의 제2자이다.

178) 속통화말아성고현종어우제오년야(屬統柇末考我聖考顯宗御宇第五年也):‘그때

     가 마침 통화말년이니, 상고해 보면 우리 성고인 현종이 즉위하여 어우(御宇)한

     지 5년째’라는 뜻이다. 그런데 현종 어우 5년은 1014년이니, 1014년은 개태(開

     泰) 3년이고, 통화말년은 1011년이므로 현종 즉위 5년은 통화년간이 아니고 개

     태년간(1012~1020)에 속한다.

179) 특몽예장(特蒙睿獎):‘특히 현종 임금의 추장(推獎)함을 입어서’라는 뜻.

180) [苑] [總覽]에는 冀. [全文]의 奠은 冀의 오자임.

181) [全文]에는 탈락됨. [苑] [總覽]의 百는 癿의 오자, 癿는 曁의 고자(古字)이다.

182) [苑]은 결락이나, [總覽] [全文]에는 八임.

183) [苑]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에는 年임.

184) [苑] [總覽]에는 都. [全文]의 寒은 都의 오자임.

185) [苑] [總覽]에는 會. [全文]의 念은 會의 오자임.

186) [苑] [總覽] [全文] 모두 柇이니, 라고도 한다. 和와 같은 字이다.

187) [全文]에는 考가 있으나, [總覽][苑]에는 考가 탈락됨.

188) 서대사(署大師):[總覽][苑][全文] 모두 3글자가 결락이나, 문맥으로 보아 ‘서대

     사(署大師)’ 3자인 듯하다.

 

대중상부 10년189)에는 ‘명료돈오(明了頓悟)’란 법호를 증사(贈賜)받았고, 

천희 5년190) 호경191) 중흥사192)에서 여름 결제(結制) 중에 강경법회가 있었

는데, 국사께서 법을 설하시니, 그 법의 혜택이 화택 중생들에게 두루 미

쳐 마치 새벽 기온처럼 청량하게 만들어 주었다.193) 자비의 등불을 혼구(昏

衢)의 밤거리에 비추어 축건(竺乾)의 서래밀지(西來密旨)를 깨닫게 하였

다.194) 국사가 매일 한 번씩 기자195)의 고도196)를 일컬으면 대중은 세 번씩

창송하였다. 그 후 기숙197)인 선공의 사회사소198)가 문리가 맞지 아니함을

보고 고쳐 지어주면서 [결락] 도(道). 지만적(枝蔓的)인 부사는 잘라 버렸

.199) 스님은 어떤 말을 하여도 곧 훌륭한 문장을 이루게 되었으니,200) 

201)의 문장력도 혼비백산하였고,202) 문장을 나누면 척척 음운에 부합하

였으니203) 담빙204)의 음운학의 실력도 부끄러워할 정도였다.205) 뿐만 아니

라 그의 주연206)하고 민첩함을 누가 능히 그를 적대할 수 있겠는가!207)

太中祥符十年208)賜法209)號爲‘明了頓悟’, 天禧五年, 於鎬京重

興寺, 爲夏講說, 師談傾法, 澤伻火宅以晨凉. 炤徹慈燈底昏衢

之夜, 曉竺乾210)西意. 師每一稱箕211)子古都. 衆皆三讚. 其後見

耆宿先公, 社會詞疏, 文理不便, 改而製之, □212)□□道, 翦截

浮辭. 出語成章, 惠璩以之魄褫, 分文足韻, 曇憑于以顔怩, 其

遒姸敏捷之能, 侯誰的對乎.

189) 태중상부십□(太中祥符十□):태는 대(大)의 오자이며 □은 문맥으로 보아 년

     (年)인 듯하다. 즉 대중상부십년(大中祥符十年)이니, 대중상부는 송나라 진종(眞

     宗)때의 연호로 1008~1016년이다. 대중상부는 9년까지 밖에 없으며, 여기에서

     의 대중상부 10년은 1017년(현종8)을 가리킨다.

190) 천희오년(天禧五年):천희는 송나라 진종(眞宗) 때의 연호. 천희 5년은 1021년

     (현종 12).

191) 호경(鎬京):중국의 무왕(武王)이 도읍하였던 곳. 전하여 서울이란 뜻으로 쓰인

     다. 여기서는 당시 서울인 개성을 가리킨다.

192) 중흥사(重興寺):경기도 개성에 있던 절. 1053년 10월 19일에 문종(文宗)이 이

     절에 행차(幸次)하였으며, 1087년 10월 5일 선종(宣宗)이, 1102년 8월 23일에는

     숙종(肅宗)이 각각 이 절에 행행(行幸)했었다.

193) 택팽화택이신량(澤伻火宅以晨凉):법(法)의 혜택(惠澤)이 화택 중생들에게 두루

     미쳐 마치 새벽 기온처럼 서늘하게 만들어 준다는 뜻.

194) 효축건서의(曉竺乾西意):축건(竺乾:인도)의 서래밀의(西來密意)인 선지(禪旨)

     를 깨닫게 한다는 말.

195) 기자(箕子):중국 은(殷)나라 주(紂)의 친척.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의하면

     나라가 망하자 조선에 들어와서 예의·전잠(田蠶)·방직(紡織)과 팔조(八條)의

     교(敎)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진(晉)나라 두예(杜預)의 주(註)에는 기자동

     래설(箕子東來說)이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려 중엽에 평양에 기자묘(箕子

     墓)를 찾아 묘사(廟祠)를 세웠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이 때부터 기자에 대한 숭

     배사상이 심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평양에 기자릉·묘사·비석 등 유적이

     있는데, 이는 모두 고려 및 조선 때 설치한 것이다.

196) 기자고도(箕子古都):종래로 기자의 도읍지를 평양으로 보고 있으나, 아직 확정

     된 학설은 없다. 항상 한번씩 기자 고도를 칭한 것은 한국의 초전불교지(初傳佛

     敎地)가 고구려이기 때문에 기자의 고도가 성지(聖地)이므로 매칭(每稱)한 것이

     아닌가 한다.

197) 기숙(耆宿):나이 많은 노인(老人).

198) 사회사소(社會詞疏):사회절(社會節)의 행사 때 고(告)하는 축소(祝疏), 즉 토

     지신(土地神)에게 제사를 지낼 때 고(告)하는 축원문이다. 사회(社會)란 사(社)

     가 회합(會合)한 집단체이니, 사일(社日)이나 절일(節日)이란 입춘(立春) 후(後)

     와 입추(立秋) 후(後)의 제5에 해당하는 술일(戌日)에 토지신(土地神)에게 제사

     하는 날로써, 봄철에는 오곡(五穀)의 풍년(豊年)을 비는 것으로 춘사(春社)라 하

     고, 가을에 지내는 것은 추수(秋收)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니, 이를 추사(秋社)라

     하였다.

199) 전절부사(翦截浮辭):산만하고 허부(虛浮)한 언사들은 모두 전절(翦截)하거나

     추고하였다는 뜻.

200) 출어성장(出語成章):입으로부터 나오는 말들이 그대로 훌륭한 문장을 이룬다

     는 말.

201) 혜거(惠璩):북송(北宋) 때 단양(丹陽) 사람. 와관사(瓦官寺)에 가서 출가하였고

     경론(經論)과 사서(史書)를 두루 섭렵하였을 뿐 아니라, 특히 창도(唱導;梵唄)

     에 능통하였다. 말을 뱉으면 곧 문장(文章)이 이루어졌다(出語成章). 송의 태조

     문황제(424~453)가 크게 존중하였으며, 초왕(譙王)이 형주(荊州)를 진압하려고

     스님과 동행(同行)하여 양산(梁山)에서 법회(法會)를 가지기도 하였다. 그후 효

     무제(孝武帝 453~464)는 스님을 융숭히 대접하고 경읍(京邑)의 도유나(都維那)

     로 추대하였다. 대명(大明) 말년(457~464) 와관사에서 세수 72세를 일기로 입적

     하였다. 『양고승전梁高僧傳』권13「석혜거전釋慧璩傳」(대정장50, p.416a).

202) 백치(魄褫):치백(褫魄)이라고도 하니, ①깜짝 놀라게 하여 혼백(魂魄)을 뺏는

     것 ②초월적(超越的)인 일을 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잃게 하는 것

     ③혼비백산케 하는 것. 『문선文選』「장형張衡」‘동경부東京賦’에 “罔然若酲 朝疲

     夕倦 奪氣褫魄之爲者也 又若魂魄亡離其身”이라 하였다.

203) 분문족운(分文足韻):문장을 나누면 음운(音韻)에 부합한다는 뜻. 문장과 음조

     (音調)에 뛰어났다는 뜻이다.

204) 담빙(曇憑):속성(俗姓)은 양건씨(楊犍氏). 남안(南安) 출신. 어려서 출가하여 서

     울에서 경론을 배웠고 백마사(白馬寺)에 있었는데, 음조(音調)에 조예가 깊었으

     며, 규구(規矩) 즉 음규(音規)에 정통하였다. 뒤에 성악(聲樂)을 닦아 추종을 불

     허(不許)하였다. 용연사(龍淵寺)에 있으면서 음학(音學)을 지도하였다. 그리하

     여 범음(梵音)을 한번 토(吐)하면 새와 말들이 슬피 울었다고 한다. 동경(銅鏡)

     을 만들어 팔음(八音)과 사변(四辯)을 지도하다가 백마사에서 입적하였다. 『양

     고승전』권13「석담빙전釋曇憑傳」(대정장50, p.414b).

205) 안니(顔 ): 는 怩이니, ①부끄러워할 니字 ②겸연쩍어할 니字이니, 부끄러워

     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 ③참괴하는 얼굴.

206) 주연(遒姸):주(遒)는 ①굿셀 주 ②아름다울 주字. 주연이란 주염(遒 )·주경(遒

     勁)·주려(遒麗) 등과 같은 뜻으로, 서화(書畵), 문장(文章), 필법(筆法) 등에 정통

     함을 지칭한다.

207) 후수적대호(侯誰的對乎):“그의 주연하고 민첩함을 누가 능히 적대할 수 있겠는

     가.”라는 뜻.

208) [苑] [總覽] [全文] 모두 결락이나, 문맥으로 보아 年字인 듯하다.

209) 결락된 2字는 문맥으로 보아 賜法 2字인 듯하다.

210) □의 缺字는 문맥으로 보아 乾字인 듯하다.

211) [全文] [總覽]에는 箕. [苑]의 萁는 箕의 오자임.

212) [總覽]에는 결락이나 [苑]은 忄, [全文]에는 小임.

 

태평년중213)에 중대사의 법계를 진정(進呈)하고 아울러 ‘계정고묘응각

(戒正高妙應覺)’이란 법호를 올리고는 수다사214)를 맡도록 하였다. 태평 10

215)에 이르러 현종이 칙명(勅命)으로 해안사216)로 이주하도록 앙청(仰請)

하였다. 그 후 덕종217)이 즉위하여서는 보다 더욱 존중히 모시는 한편 특

별히 삼중대사의 법호를 수정(授呈)하고 아울러 마납(磨衲)으로 만든 법

복 한 벌을 증사(贈賜)하였으며, ‘탐현도원(探玄道源)’이라는 법칭(法稱)을

첨가(添加)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않아 수좌의 법호를 올리고 겸하여

마납복전의218) 한 상자219)를 하사하였다. [결락] 자심하거늘220) 어찌 우물안

개구리가 바다의 깊음를 측량할 수 있겠는가. 치류221)들이 환희심에 넘친

마름으로 경하하여222) 하연(廈燕)이 투서(投棲)함을 경멸히 여겼으니,223)

지광국사는 마치 각왕(覺王)의 출세가 아닌가 하여 의심할 정도였다.224)

다행히 인주225)와 동시에 출세하여 그의 법음은 마치 바다를 덮을 정도로 

해조음226)과 같았으며, 현하(懸河)와 같은 변재227)는 그 도도하며 민첩함을

이루 다 형언할 수가 없었다.

太平年中, 加重大師, 戒228)正高妙應覺爲號, 住持水多寺. 十

秊, 有勅移住海安寺. 迄于悳229)宗臨朝, 轉甚重之, 特授三重大

師, 幷賜磨衲法服一領, 加法稱曰, ‘探玄道源’. 未幾, 加授首

座, 兼賜磨衲田衣一笥者. □□□滋深, 寧許井蛙之測. 緇流翩

賀, 却輕厦燕之投, 疑出世之覺王. 幸同時於仁主, 盖海之聲無

央數, 懸河之辯不盡言.

213) 태평년중(太平年中):태평은 요(遼)나라 성종(成宗)의 연호이니, 1021~1030년

     (현종 12~21).

214) 수다사(水多寺):강원도 명주에 있던 절. 신라 진덕여왕 말년(647~653)에 창건

     하였다. 『삼국유사』권4「자장정률慈藏定律」(대정장49, p.1005c).

215) 십년(十秊):십년(十年)은 태평십년(太平十年)이니, 1030년(현종 21).

216) 해안사(海安寺):본비문 주116)해안사海安寺 p.370 참조.

217) 덕종(悳宗):悳은 德의 古字이니, 德宗이다. 고려 제9대 임금. 1031~1034년간 재

     위(在位).

218) 전의(田衣):복전의(福田衣)의 준말이니, 가사(袈裟)를 지칭한다.

219) 일사(一笥):한 상자, 곧 ‘가사(袈裟) 여러 벌을 담은 상자’라는 뜻.

220) □□□자심(□□□滋深):3字의 결락 부분은 문맥으로 보아 대해수(大海水)인

     듯하다.

221) 치류(緇流):치문지류(緇門之流)의 준말이니, 스님들을 지칭한다.

222) 편하(翩賀):대중스님들이 환희에 넘쳐 손뼉을 치고 빙빙 돌면서 경하(慶賀)하

     는 것.

223) 각경하연지투(却輕廈燕之投):도리어 하연의 상하(相賀)를 경멸히 여긴다는 뜻.

     즉 세상의 오욕락(五欲樂)을 초로와 같이 여긴다는 말이다. 하연이란 연작상하

     (燕雀相賀)의 준말이니, 연하(燕賀)라고도 한다. ①가옥을 신축하여 그 낙성을

     축하하는 것 ②큰 집을 지으면 제비와 새들이 기꺼워한다는 뜻. 『회남자』「설림

     훈說林訓」, “大廈成而燕雀相賀”.

224) 의출세지각왕(疑出世之覺王):지광국사는 마치 각왕 즉 부처님의 출세가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위대함을 감탄하였다는 뜻. 각왕이란 부처님을 지칭한다.

225) 인주(仁主):인자하고 위대한 임금. 덕종을 지칭한다.

226) 개해지성무앙수(盖海之聲無央數):지광국사의 법음(法音)의 소리는 마치 바다

     를 뒤엎을 정도로 한량이 없어 해조음(海潮音)과 같다는 말.

227) 현하지변(懸河之辯):마치 공중(空中)에 매달려 있는 폭포수의 거침없이 도도

     (滔滔)하게 흐르는 물과 같이 걸림이 없고 민첩한 변재(辯才). 『수서隋書』「유림

     전儒林傳」, “罄縣河之辯”.

228) [全文] [總覽]에는 戒. [苑]의 戉는 戒의 오자임.

229) [苑] [總覽] [全文] 모두 悳이니, 悳은 德의 고자(古字)임.

 

중희년중230)에 ‘통제연오법동(通濟淵奧法棟)’이라는 법호를 가상(加上)

하였다. 갑자기 어느 날 선조(宣詔)를 보내 궁내로 초빙하여231) 묘법연화

경(妙法蓮華經)을 연설토록 하였다.232) 국사는 궁중의 높은 섬돌233)을 밟

234) 예상(猊床)인 법상에 올라 앉아 법우를 내려주어 진리를 표하고 정

법(正法)을 나타내었다.235) 우거(牛車)에 따른 오지(奧旨)의 관기(關箕)를

활짝 열어236) 무명(無明)인 혹(惑)을 전제(剪除)하고 의문(疑問)의 구름을

휘산(揮散)하였다.237) 맹구우목(盲龜遇木)238)과 같이 만나기 어려운 묘법

을 들은 임금은 마음에 크게 감동하였으니,239) 어찌 귀중한 보배와 사사공

양(四事供養)을 하사하는데 인색하였겠는가!240) 특별히 가는 실로 수를 놓

은 당상복241) 두 벌을 하사하였다. 14년242)에는 발탁하여 승통(僧統)의 법

계(法階)를 올렸다. 지금의 임금243)이신 문종이 즉위하여 하(夏)나라의 정

통을 계승하여 국민에 임하였으며,244) 마치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 은

(殷)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을 견제(甄除)한 것과 같이 인정(仁政)을 펴

245) 홍업(洪業)은 이미 의삭246)에 이르렀으며, 약성247)은 나마248)에 간절하

였다. 왕이 국사를 임궁249)으로 초빙하여 유심(唯心)에 대한 묘의250)를 강

설케 하고는 마납(磨衲) 비단으로 만든 승가리(僧伽梨) 한 벌을 하사하

였다.

重凞䄵中, 加號曰, ‘通濟淵251)奧法棟’. 忽一旦, 宣許入內, 俾

演蓮經.251) 師螭陛躡雲, 猊252)床講雨, 標眞顯正. 牛車之奧旨箕

張, 剪惑裁疑. 龜木之妙詮玉振, 曁諧黈253)聽, 奚恡254)珍頒. 別

賜細繡幢相服二領. 十四年, 擢授僧統. 迨于今聖上, 育夏臨

民, 甄殷布政, 洪業, 己臻於懿鑠, 瀹誠, 深255)切於那摩. 迺召

師於琳宮, 講唯心妙義, 仍賜磨衲僧伽梨一領.

230) 중희년중(重凞秊中):凞는 熙와 같은 字이고, 秊은 年의 古字이다. 중희는 요나

     라 흥종(興宗)때의 연호로 1032~1055년간을 말한다.

231) 선허입내(宣許入內):정종(靖宗) 임금이 친서를 보내 궁내(宮內)로 초빙하였다

     는 뜻.

232) 비연연경(俾演蓮經):지광국사로 하여금 연경(蓮經)을 강연토록 하였다는 말이

     니, 연경이란 『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의 준말이다.

233) 이폐(螭陛):궁전의 섬돌. 또는 계단, 층층대. 궁중의 섬돌 등 석물(石物)에는 이

     룡(螭龍) 등 뿔이 없는 용을 새겨두기 때문이다

234) 섭운(躡雲):운(雲)은 높다는 뜻. 즉 궁전의 높은 계단을 밟고 설법장으로 올라

     간다는 뜻이다.

235) 예상강우(猊床講雨):예상은 사자좌(獅子座)이니, 법상 즉 법상에서 법을 강설

     하여 청중의 마음에 법우(法雨)를 내려 주었다는 말이다.

236) 기장(箕張):마치 키처럼 펼쳐진다는 뜻. 빗장의 손잡이를 밀어 대문을 연다는

     뜻이니, 우거지오지(牛車之奧旨), 즉 대승의 심오한 진리의 관기(關箕)를 활짝

     연다는 말이다.

237) 전혹재의(剪惑裁疑):무명의 혹을 잘라내고 번뇌의 의(疑)를 끊어버린다는 뜻.

238) 구목(龜木):맹구부목(盲龜浮木) 또는 맹구우목(盲龜遇木)의 준말이니, 바다에

     빠진 눈 먼 거북이가 떠다니는 부목을 만나는 일이니, 불법(佛法) 만나기가 극

     히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 『열반경涅槃經』권2(대정장12, p.372c8), “生世爲人難

     値佛世亦難 猶如大海中 盲龜値浮木孔”.

239) 기해주청(曁諧黈聽):임금이 법문을 듣고 마음에 크게 감동함에 이르렀다는 뜻.

     주청이란 임금이 듣는다는 뜻이다. 주는 황(黃)의 뜻으로, 황(黃)은 오행(五行)

     중 중앙의 황토(黃土)이니, 왕(王)을 가리킨다.

240) 해린진반(奚恡珍頒):“어찌 귀중한 보배와 사사공양(四事供養)을 하사하는데 인

     색하겠는가.”라는 뜻. 반(頒)은 사(賜)의 뜻이다.

241) 당상복(幢相服):해탈당상의(解脫幢相衣)의 준말이니, 해탈복(解脫服)이라고

     도 한다. 즉 ①가사를 가리키니, 해탈을 구하기 위해 수도하는 스님네가 입는

     옷 ②조엽(條葉)의 사위(四圍)모양이 마치 불탑(佛塔)의 당상(幢相)과 같기 때

     문. 현장(玄獎) 역(譯),『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권4(대정장13,

     p.742c)에 “被殑伽沙佛 解脫幢相衣 於此起惡心 定墮無間獄”이라 하였다.

242) 십사년(十四年):중희십사년(重熙十四年)이니, 1045년(靖宗 11).

243) 금상(今上):고려 제11대 문종.

244) 육하림민(育夏臨民):문종이 왕위에 올라 선정(善政)을 베푸는 것이 마치 주무

     왕(周武王)이 은(殷)의 주왕(紂王)을 멸하고 인정(仁政)을 행(行)한 것과 같다는

     말이니, 하(夏)나라의 정통을 이어받은 주나라 무왕인 발(發)이 은나라 폭군 주

     왕을 멸하고 왕이 되어 호경(鎬京)에 도읍한 것에 비유한 말.

245) 견은포정(甄殷布政):문종이 즉위하여 선정을 행하는 것이 마치 주(周)의 무왕

     이 은(殷)의 주왕을 견제(甄除)하고 인정(仁政)을 편 것과 같다는 말.

246) 의삭(懿鑠):아름답고 왕성한 것이니, 정치를 잘하여 민심(民心)이 아름답고 국

     력(國力)이 왕성하게 빛난다는 뜻. 채옹(蔡邕),「이태위비李太尉碑」, “懿鑠之美

     昭登於上”.

247) 약성(瀹誠):깊고 돈독하고 맑은 정성.

248) 나마(那摩):나무(南無 namo)라고도 한다. 귀의(歸依)라 번역된다. 『구사론광

     기俱舍論光記』권5, “梵云 那摩 唐言 言名 是隨義 歸義 赴義 名義 謂隨音聲 歸赴

     於境 呼召色等 名能詮義”.

249) 임궁(琳宮):임우(琳宇)와 같음. 아름다운 옥으로 장식된 집. 도교(道敎)의 수도

     처인 도관(道觀) 또는 도원(道院)의 뜻이나, 여기서는 왕궁(王宮)을 지칭한다.

     오균(吳筠),「유선시遊仙詩」, “上元降玉闥 王毋開琳宮”.

250) 유심묘의(唯心妙義):유심(唯心)을 종지(宗旨)로 하는 성종(性宗)에 속하는 종교

     (終敎)·돈교(頓敎)·원교(圓敎) 등 대승경전을 지칭한다.

251) [總覽] [全文]에는 淵. [苑]의 은 淵의 오자임.

252) [苑] [總覽]에는 猊. [全文]의 貌는 猊의 오자임.

253) [苑] [總覽] [全文] 모두 黈이니, 누를(黃色) 주字.

254) [苑]의 와 [總覽]의 恡는 같은 글자임. [全文]의 惓은 恡의 오자임.

255) [全文]에는 深. [苑] [總覽]의 冞는 深의 오자임.

 

궁중256)의 구중257)에서 부의258)하고 있는 임금께서 친히 상보259)하는 용

상대덕(龍象大德) 스님들을 영접한 백고좌(百高座)는 모두 용문(龍門)을

뛰어넘어 오도견성(悟道見性)한 도인들이었다.260) 담수(曇邃) 스님은 북좌

(北座)에서 정통(精通)하였음을 부끄러워 했고,261) 승철대사(僧徹大師)는 

편독(篇牘)과 시부(詩賦)에 뛰어나 낙필성장(落筆成章)하는 문호이므로262)

많은 대덕들을 제치고 왕으로부터 총석263)받은 것을 사양할 정도였다. 그

리고 중희년중264)에 거듭 다시 ‘구행료성도수(具行了性導首)’라는 법호를

첨가받았다.265) 또 기원(祇園)의 적손(嫡孫)이니 이는 오직 불교가 중흥할 

인유(因由)인 것이다. 척리266)의 신동(神童)들이 예문(禮聞)을 거치지 아니

하고 와서 수학하였다. 이로써 작고(作故)하신 수태사(守太師)의 문하시

중(門下侍中)이며 중서령(中書令)을 추증받은 장화공(章和公) 이씨(李氏)

의 휘는 자연267)이니, 드디어 다섯째 아들을 허락하여 그로 하여금 낙발268)

하고 정성을 다하여 국사에게 구의하고269) 신족270)이 되어 복근(服勤)하기

를 희망하였다. 그리하여 국사가 직접 찾아가서 친견하고 찬앙(讚仰)하였

으니, 그 분이 누구인가? 지금의 금산사(金山寺) 주지로 있는 삼중대사인

소현271)이 바로 그 스님이다. 국사는 부모를 하직하고 속가를 떠나 입산하

였다.272) 음식을 항상 절제하여273) 묘재274)인 아침 공양만 먹었다. 초액275)

후비를 살펴 보건대 모두가276) 동기이며,277) 악루278)의 형제들은 함께 외손

인 것이다.

漢闕九重, 負扆者, 親迎象步, 慧徒十百, 升堂者, 謂透龍門.

邃公, 慙在北之精通, 僧徹, 讓流中之寵錫. 其年中, 荐加‘具

行了性導279)首’爲號, 且或祇園釋胤, 寔惟敎所由興. 戚里神童

疇, 不禮䎹280)來學. 是以故守大師, 門下侍中, 追贈中書令, 章

和公李, 諱子淵, 遂許第五男, 遄令落髮, 竚望摳衣, 爲神足以

服勤. 謁法身而讚仰, 何者, 今金山寺住持三重大師, 韶顯是

也. 大師辭親甲第. 節食卯齋. 想椒掖之后妃, 悉云同氣, 矧萼

樓之兄弟, 皆謂此甥.

256) 한궐(漢闕):한(漢)나라의 궁전이나, 여기서는 문종의 궁전(宮殿)을 지칭한다.

257) 구중(九重):①궁중(宮中). 왕성(王城)의 문은 구중(九重)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②천자(天子)를 지칭한다. 『초사楚辭』「구변九辯」, “豈不鬱陶而思君兮 君之門以

     九重”. 『칭위록稱謂錄』, “天子古稱九重”. 「진공대사탑비문眞空大師塔碑文」 주

     126)구중지궐九重之闕 [고려편1] p.154;「광자대사비문廣慈大師碑文」 주94)구

     중九重 [고려편1] p.297 등 참조.

258) 부의자(負扆者):왕(王)을 가리키니, 왕은 의(扆)를 배면(背面)에 치고 남쪽을 향

     해 앉음을 말한다. 의(扆)는 ①용과 도끼 등의 수를 놓아 만든 도포 ②도끼와 용

     또는 봉황을 그린 병풍 따위.

259) 상보(象步):코끼리와 같이 위엄있게 당당히 걸어가는 용상대덕(龍象大德), 즉

     중중존(衆中尊)인 고승대덕(高僧大德)을 가리킨다.

260) 투룡문(透龍門):잉어가 상류(上流)하다가 폭류가 심하고 높은 곳을 뛰어 오르

     는 것을 뜻함이니, 이를 과거(科擧)에 급제함을 비유하였으나, 여기서는 세간(世

     間)을 역류(易流)하고 오도견성(悟道見性)한 도인을 가리킨다.

261) 수공참재북지정통(邃公慙在北之精通):석담수(釋曇邃) 스님이 자신은 북좌(北

     座)에 있고, 제자는 남좌(南座)에서 정통하였음을 스스로 부끄러워할 정도라

     는 뜻. 『양고승전』권12「석담수전釋曇邃傳」(대정장50, p.406b)에 따르면 스님의 

     출생지는 알 수 없다. 어릴 때 출가하여 하음(河陰) 백마사에서 소식(蔬食)과

     누더기로 『정법화경正法華經』을 하루에 한 편씩 독송하였다. 경지(經旨)를 깊

     이 통달한 후 사람들에게 설법해 주기도 했다. 어느 날 밤중에 누군가 홀연히

     문을 두드리며, 90일 동안 설법을 해달라고 청법(請法)하였다. 스님은 굳게 거

     절하다가 부득이하여 나아갔지만, 실은 여전히 수면중에 있으면서 백마오(白

     馬塢)의 신사중(神祠中)에서 한 제자와 같이 있게 되었는데,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다. 그 후 한 스님이 신사 앞을 지나다가 두 고승(高僧)을 보았는데, 담수

     (曇邃)는 북쪽에 앉아 있고, 제자는 남쪽에 앉아 있었고(邃在北 弟子在南), 마치

     강설(講說)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또한 기이(奇異)한 향내가 가득하였다고

     하였다.

262) 승철양류중지총석(僧徹讓流中之寵錫):‘승철 스님이 왕으로부터 많은 사람을 제

     치고 총석을 받은 것을 지광국사에 비교하면 승철이 사양할 정도’라는 뜻이다.

    『양고승전』권7「석승철전釋僧徹傳」(대정장50, p.370c)에 따르면 스님의 속성은

     왕씨(王氏)이며, 태원(太原) 진양(晋陽)출신인데,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16세 때

     여산동림사(廬山東林寺)로 가서 혜원법사(慧遠法師)에게서 출가하였다. 그로부

     터 경론(經論)을 배우면서 틈이 날 때마다 편독(篇牘)과 시부(詩賦)에 뜻을 두어

     그 방면에도 조예가 깊었다. 일부(一賦)와 일영(一詠)도 읊기만 하면 곧 낙필성

     장(落筆成章)하는 문호(文豪)가 되었다. 그러나 혜원으로부터 시문(詩文)은 사

     량계교(思量計較)하는 것이므로 수도에 장애가 된다는 말을 듣고 중단하였다.

     24세 때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을 강설하였고, 혜원법사가 입적(入寂)한 후에

     는 강릉성내(江陵城內)의 오층사(五層寺)에 주석하다가 만년에 비파사(琵琶寺)

     로 옮겼다. 팽성왕(彭城王) 의강(義康)이 스님에게 수계(受戒)하였고, 송 원가(元

     嘉) 29년(452) 세수 70세를 일기(一期)로 입적하였다.

263) 총석(寵錫):총애하여 내리는 선물이니, 총황(寵貺) 또는 사물(賜物)이라고도

     한다.

264) 기년중(其年中):중희년중(重凞年中)이니 1032~1055년간이다.

265) 천가(荐加):거듭 ‘구행료성도수(具行了性導首)’라는 법호를 첨가하였다는 뜻.

     荐은 거듭 천字.

266) 척리(戚里):①친척들이 사는 마을, 곧 고향을 뜻함 ②천자의 외척(外戚), 곧 어

     머니의 친척이니, 외가(外家)를 지칭함 ③왕비(王妃)의 친정.

267) 이자연(李子淵):?~1086. 고려 문신. 본관은 인주(仁川). 1024년(현종15) 문과에

     급제하였고, 덕종 때 우보궐(右補闕), 이부랑중어사잡단우승선(吏部郞中御史雜

     端右承宣), 1047년(문종1)에 이부상서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 1050년(문종

     4) 내사시랑평장사(內事侍郞平章事)에 올랐다. 딸 셋이 각각 인예태후(仁睿太

     后)·인경현비(仁敬賢妃)·인절현비(仁節賢妃) 등으로 모두 문종의 비가 됨으로

     써 세력을 장악했으며, 1052년(문종6) 수태위(守太尉)로 승진하였고, 이듬해인

     1053년에는 문하시중판상서이부사(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가 되었다. 이어 지공

     거(知貢擧)·개부의동삼사태사(開府儀同三司太師)·중서령감수국사상주국경원

     군개국공(中書令監修國史上柱國慶源郡開國公) 등을 역임하였다. 『고려사』권1, 7,

     8, 10 등 참조.

268) 낙발(落髮):[總覽][苑][全文]에는 모두 . 은 髮의 오자. 머리를 깎는 것. 삭

     발한다는 뜻이다. 「징효대사보인탑비문澄曉大師寶印塔碑文」 주20)낙채落采

     [고려편1] p.243 참조.

269) 저망구의(竚望摳衣):꼿꼿하게 서서 옷자락을 여미며 지광국사를 정성껏 모시

     기를 희망한다는 뜻.

270) 신족(神足):제자(弟子)란 뜻.

271) 소현(韶顯):1038~1096. 속성은 이씨, 이름은 민(民). 이자연의 다섯째 아들로 휘

     는 소현이고, 시호는 혜덕(慧德), 탑호는 진응(眞應). 스님의 비(碑)가 금산사(金

     山寺)에 있는데, 그 비의 제액(題額)은 ‘金溝金山寺慧德王師眞應塔碑’라 하였다.

272) 사친갑제(辭親甲第):부모와 집을 하직하고 출가입산(出家入山)하였다는 말. 갑

     제란 제1의 저택, 훌륭한 가옥이니, 여기서는 부모가 살고 있는 속가(俗家)를 지

     칭한다. 『사기史記』「무제기武帝紀」, “賜列侯甲第”.

273) 절식(節食):“음식을 절제하거나 또는 적게 먹으라.”는 뜻.

274) 묘재(卯齋):묘반(卯飯)과 같은 뜻. 묘는 묘시(卯時)로써 오전 5시부터 7시까지

     이니, 아침 밥을 지칭한다.

275) 초액(椒掖):후궁(後宮)·초방(椒房)의 뜻. ①한기(寒氣)를 막고 향기를 더하게

     하기 위하여 벽에 산초의 기름을 바르는 것 ②왕비(王妃)의 친정, 곧 왕의 처가

     (妻家)이니 외가를 뜻한다. 『진서』「유량등전론庾亮等傳論」, “外戚之家 連耀椒掖

     之內 進御以序”.

276) 후비실운동기(后妃悉云同氣):문종의 후비 세사람이 모두 이자연의 딸이고, 소

     현대사(韶顯大師)도 또한 자연의 제5자이므로 동기(同氣)가 된다는 말.

277) 동기(同氣):형제자매를 뜻함. 여기서는 문종의 후비와 소현대사가 남매간(男妹

     間)이라는 뜻.

278) 악루(萼樓):왕자(王子)를 가리킨다. 사방에 연꽃 받침과 같이 둘러쌓여 있는 화

     려한 누각이니, 곧 왕자가 거(居)하는 처소(處所)를 지칭한다. 초액(椒掖)인 후궁

     과는 달리 전면(前面)에 나타나 있는 누관(東宮)이니 문종의 왕자를 가리킨다.

279) [總覽][苑][全文]에는 모두 . 는 䆃의 오자이고, 䆃는 導와 同字이다.

280) [苑] [總覽] [全文] 모두 이나, 䎹의 오자임. 䎹은 聞의 고자(古字)임

 

이 사람은 도의 극치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281) 유교와 불교를 두루 통달

하여 그와 대등한 자가 없었다.282) 덕행과 문장이 노당283)의 십철284)을 크게

엄압(掩壓)하였고 자비와 지혜는 위사의 천승285)보다 훨씬 초월하였다. 자

질은 현반(玄班)을 크게 높혔고,286) 법력은 온 세상의 중생을 부호(扶護)할

만 하였다.287) 국사의 문하가 왕성하고 장려(壯麗)함이 스님보다 더 큰 스

님은 없었다.288) 중희 23년289) 남려월290)에 성칙291)을 내려 현화사292)로 이석

(移錫)케 하므로 국사는 고사하였으나 하는 수 없이 마침내 허락하였다.

임금께서 유마293) 일필을 이에 앞서 절에 희사(喜捨)하였다. 갑자기 한 비

구가 와서 말을 희사한 데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는 잠시 후 어디

론가 사라지고 없어 간 곳을 알지 못하였으니 이는 문수(文殊)의 화현(化

現)인 성승294)의 영험인 것이다. 현화사(玄化寺)에 입사(入寺)한 후 어느

날 야분295) 혼허할296) 무렵, 한 스님과 같이 있었는데, 그 곁에 신인(神人)

이 서서 말하기를, “너는 국사이고,297) 저는 왕사이다.”라고 하였다.298) 

잠을 깨었으나, 그가 말한 소리는 아직도 귀에 역력하였다. 

乃如之人, 以 其道, 倂通儒釋, 頓絶等倫. 德行文章, 夐掩魯

堂十哲, 慈悲智惠, 全超魏寺千僧. 資峻玄班, 力扶赫世. 其壯

麗師門之盛, 莫之與京乎. 重熙二十三年, 南呂月, 有聖勑移

住玄化寺, 師固辭不得. 迺捨騮299)馬一疋, 先納于寺. 俄有一比

丘, 來申賀謝, 須臾不知所去, 此則聖僧之靈驗也. 入院後, 夜

分魂栩之際, 與一僧同遊, 則傍有神人, 告曰, “而國師也, 彼

王師也.”300) 寤則言猶在耳.

281) 이치기도(以 其道): 는 致의 俗字. 그 도의 극치를 터득하였다는 뜻이다. [全

     文]에는 字가 없다.

282) 돈절등륜(頓節等倫):지광국사는 유교와 불교를 모두 통달하였으므로 절대적인

     위치를 점유(占有)하여 등륜(상대)할 자가 없다는 뜻.

283) 형엄노당(夐掩魯堂):멀리 노당을 엄압(掩壓)하였다는 말. 노당이란 공자를 지

     칭하니, 노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284) 십철(十哲):공문십철(孔門十哲)의 준말. 공자의 제자가 3,000名인데, 이 중에

     서 칠십이제자(七十二弟子)와 십철 등의 구분이 있으니, 십철이란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재아(宰我)·자공(子貢)·염유(冉

     有)·계로(季路)·자유(子遊)·자하(子夏) 등이다.

285) 위사천승(魏寺千僧):①위나라 불교 전성기 때 천고좌(千高座)의 고승을 가리키

     니, 후위(後魏, 북위)의 태무제(太武帝)인 탁발도(拓跋燾 423~452)가 불교를 사태

     (沙汰)하여 절을 헐고 스님들을 죽였으나, 그의 손자이며 문성제(文成帝)인 탁

     발준(拓跋濬 452~465)이 즉위(卽位)하여 다시 불교를 중흥하고, 1,000명의 고승

     을 선발하여 정성껏 받들면서 정신적 지주(支柱)로 삼았다. ②조송(趙宋, 宋太祖

     인 趙匡胤)의 신종(神宗) 원풍(元豊) 3년(1080) 1월 궁내(宮內)에 천승재(千僧齋)

     를 베풀고 공양을 올린 다음, 가사 천령(千領)과 『금강경』 1,000부를 시주하여

     신종(神宗)의 비(妃)인 자성태후(慈聖太后)의 명복을 기원하였다. 『불조통기佛

     祖統紀』권45(대정장49, p.408c)에 “詔賜天台敎文入藏 及賜白金百兩 飯靈山千衆”

     이라 하였다.

286) 자준현반(資峻玄班):자질은 현반을 크게 높힌다는 말이니, 심오한 진리를 깨달

     은 큰 그릇이라는 뜻. 현반이란 ‘현묘(玄妙)한 진리’를 지칭한다.

287) 역부혁세(力扶 世):혁( )은 赫의 略字. 즉 지광국사의 도력(道力)은 넓은 세

     상의 모든 중생을 이끌고 갈만하다는 말.

288) 막지여경호(莫之與京乎):지광국사보다 더 위대하고 큰 스님은 없다는 뜻.

289) 중희이십삼년(重熙二十三年):1054년(문종 8).

290) 남려월(南呂月):음력 8월. 8월의 이명(異名)은 중추월(中秋月)·장월(壯月)·유

     월(酉月)·관월(觀月)·남려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291) 성칙(聖勅):성은 문종을 지칭한다.

292) 현화사(玄化寺):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현화리(玄化里)에 있던 절. 1011년(현종

     2)에 창건. 「교감역주고려영추산대자은현화시창건비명」『가산학보』7호,1998,

     pp.235~295 참조.

293) 유마(騮馬):유구(駵駒)와 같은 뜻이니, 몸은 검고 붉은 털을 가진 말. 騮는 駵와

     같은 字이다.

294) 성승(聖僧):선원(禪院)의 승당(僧堂) 중앙에 모시는 성승상(聖僧像)을 말한다.

     대승사원(大乘寺院)에서는 문수상(文殊像)을, 소승사원(小乘寺院)에서는 교진

     여, 빈두로, 마하가섭, 수보리 등의 상(像)을 주로 봉안하지만 일정하지는 않다.

    『상기전象器箋』권3 참조.

295) 야분(夜分):새벽녘. 즉 오전 3시에서 5시 경.

296) 혼허(魂栩):잠이 들려고 정신이 혼몽해질 때이니, ‘잠이 들자마자’라는 뜻. 가매

     (假寐)와 같은 말이다.

297) 이국사야(而國師也):‘너는 국사’라고 지칭하는 말.

298) 피왕사야(彼王師也):‘저는 왕사’라고 지적하는 말.

299) [苑] [總覽]에는 騮. [全文]의 는 騮의 오자임.

300) [總覽] [全文]에는 也. [苑]의 艹는 也의 오자임.

 

아름다운 징조이며301) 특별한 서록302)이라 칭송되어 길음303)이 환구(環

區)인 온 세상에 가득하였거든,304) 하물며 국사가 어찌 내종305)에만 편국

(偏局)하였겠는가! 또한 외전(外典)도 두루 겸통하였다.306) 날 때부터 이

미 여러 가지 묘법(妙法)을 알았을 뿐 아니라,307) 숙령308)의 어린 나이에 주

309)과 같은 천재를 업신여길 정도의 재동이었다.310) 아주 많은 서적을 독

파하였으므로311) 당시 사람들이 혜초(惠超) 스님을 능가하였다고 칭송이

자자하였다.312) 학사313) 뿐만 아니라,314) 사봉315)은 태양을 의지하며 필총316)

은 하늘을 받들었다. 경구(警句)를 독실하게 공부하여317) 거유(鉅儒)로써

의 과문(寡聞)한 이에게 영향을 입혔다.318) 화탕319)한 개사320)가 벽운시321)

의 아작(雅作)을 읊었으니, 이것이 어찌 괴기322)한 명문이 아니겠는가! 이

에 비하면 이적선323)의 백설시324)의 청음(淸吟)도 진실로 쇄열325)한 졸작이

라 할 것이다. 치소(緇素)의 무리들과 비교하더라도 또한 동년선상에 두

고 말할 수 없다. 혹은 유교와 불교를 기빙326), 즉 비교해 보건대, 범복327)

더욱 수승하였다.

嘉兆首稱於瑞錄, 吉音漏溢於環區矣, 況國師也, 何偏局乎內

宗. 亦兼贏乎外典. 生知衆妙, 夙齡欺朱勃才童. 强識群書, 時

譽冠惠超. 學士至若, 詞峯倚日, 筆塚擎天. 若警句之愈工被鉅

儒328)之寡. 和湯開士, 碧雲雅作, 豈是瓌奇. 李謫仙白雪淸吟,

誠爲瑣劣. 較於緇素之侶, 亦不可同年而語矣. 其或期憑, 梵福

益盛.

301) 가조(嘉兆):아름다운 징조. 가조(佳兆)와 같은 말.

302) 서록(瑞錄):위대한 업적으로 말미암아 감득한 상서로움을 기록한 것.

303) 길음(吉音):칭찬하는 소리. 반가운 소리.

304) 길음누일어환구(吉音漏溢於環區):칭송하는 음성(音聲)이 흘러퍼져 환구에 가

     득하다는 말. 환구란 온 세상, 천하(天下), 천지간(天地間) 등의 뜻이다.

305) 내종(內宗):불교를 지칭한다.

306) 영호외전(贏乎外典):외전에도 정통하였다는 뜻.

307) 생지중묘(生知衆妙):날 때부터 이미 여러 가지 묘법(妙法)을 알았다는 말.

308) 숙령(夙齡):어린 나이. 연소(年少)한 때.

309) 주발(朱勃):후한(後漢) 때 부풍(扶風)사람. 자(字)는 숙양(叔陽). 벼슬은 운양령

(雲陽令)에 이르렀고 마원(馬援:茂陵사람. 字는 文淵, 諡는 忠誠. 武官)과 교우(交

友)하였다. 『후한서』권54 참조.

310) 숙령기주발재동(夙齡欺朱勃才童):어릴 때부터 주발의 천재(天才)를 업신여길

     정도의 재동이었다는 말. 주발은 어려서부터 마원과 친했다. 그후 마원이 참소

     당함에 발(勃)이 구명운동을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으므로 벼슬을 던져 버렸다.

     그후 명제(明帝:57~75)가 즉위하여 곡식 2,000섬을 하사하여 그의 충직함을 정

     선(旌善)하였다.

311) 강식군서(强識群書):많은 서적을 두루 통달하였다는 뜻.

312) 예관혜초(譽冠惠超):지광국사의 지혜와 덕이 혜초스님보다 더 높다는 뜻. 혜

     초란 『양고승전』권13「혜초전慧忍傳」(대정장50, p.414c)에 ‘齊代知名’이라 하였

     으나, 이는 아니고, 여기의 혜초(惠超, 慧超라고도 함)는 『속고승전續高僧傳』권

     28(대정장50, p.687b)에 나오는 석혜초(釋慧超)로, 속성은 범씨(汎氏 혹은 沈氏)로

     단양(丹陽) 건원(建元) 사람이며, 천성(天性)이 온유인자(溫柔仁慈)하였고, 약령

     (弱齡) 때에 이미 발심출가하여 법화경(法華經)을 독송수도하였다. 그후 천태

     (天台)의 삼지삼관(三止三觀)을 수행하였으며, 여러 해 동안 도업(道業)을 닦아

     행우지원(行優智遠)하며 덕관시현(德冠時賢)이라 칭송되었다. 어느날 병을 앓

     고 있었는데, 제자가 생사(生死)에 대한 소감을 물으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吾

     之常也 長生不欣 夕死不慼”이라 하고,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서 “第一義空

     淸淨智觀”이라 하며 622년(武德5) 12월 6일에 마치 살아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

     았지만, 엄연(奄然)히 입적하였다. 춘추(春秋)는 77세였다.

313) 학사(學士):학식 또는 학문, 학자(學者) 등의 뜻.

314) 지약(至若):가지(加之)라고도 한다. 학사(學士)는 약(若)에 이르다는 뜻. ①그뿐

     만 아니라 ②그 위에 ③~에 이르러서는 ④~에까지 된다.

315) 사봉(詞鋒):문장과 의론의 성세(盛勢)이니, 그 예리함이 마치 칼날과 같아서 누

     구도 그를 꺾지 못한다는 뜻. 유신(庾信),「제왕헌신도비명齊王憲神道碑銘」, “水

     湧詞鋒 風飛文雅”.

316) 필총(筆塚):필총(筆冢)과 같은 말. 붓을 묻어둔 무덤. 명필(名筆)인 지영(智永)

     스님은 왕희지(王羲之)의 후예로 여러 해 동안 붓글씨를 썼는데, 글씨를 쓰다가

     붓이 부러지면 큰 독에 담아 두었다가 많아지면 이를 땅에 묻었다는 데서 온 말

     이다. 『선화서보宣和書譜』, “智永所用筆退 卽投大甕中 歲久輒貯數甕 自爲銘以

     瘞之 當時詩人 有筆冢對墨池”. 『국사보國史補』, “長沙僧 懷素 好草書 自言 得草

     聖三昧 棄筆堆積 埋于山下 號曰筆冢 筆冢低低高似山 墨池淺淺深如海”.

317) 유공(愈工):더욱 돈독히 공부한다는 뜻.

318) 피거유지과(被鉅儒之寡):거유의 과문(寡聞)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말. 孺는 儒

     의 誤字이니, 대학자(大學者)·석학(碩學)·대유(大儒) 등의 뜻이다. 『한서』「채의

     蔡義」, “鉅儒宿學 不能自解”.

319) 화탕(和湯):화합탕탕(和合湯湯)의 준말이니, 육화합(六和合)으로 뭉쳐진 고승

     을 지칭한다.

320) 개사(開士):보살(菩薩) 또는 대사(大士)란 뜻이니, 도덕이 고매한 스님을 지칭

     한다.

321) 벽운(碧雲):시(詩)의 편명(篇名). 이백(李白),「추사시秋思詩」, “海上碧雲斷 單于

     秋色來”.

322) 괴기(瓌奇):瓌는 瑰와 同字이다. ①진귀(珍貴)하고 기이(奇異)한 것 ②귀중한

     것. 사랑스럽다. 귀엽다 등의 뜻.

323) 이적선(李謫仙):적선은 귀양온 신선이란 뜻. 중국 당나라 현종 때의 시인 이태

     백(李太白 701~762)을 가리킨다. 자는 태백, 이름은 백(白), 호는 청련거사(靑蓮

     居士). 사천(泗川)에서 소년 시기를 보내고, 그후 여러 지방을 유랑하며 호화로

     운 생활을 하고 명사(名士)와 교유(交遊)하였으며, 742년 한림(翰林)에 뽑혀 현

     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화려한 궁전에 드나들면서 시와 술로 이름이 높

     았다. 이윽고 실각(失脚)하여 강남각지(江南各地)를 떠돌다가 안록산(安祿山)의

     난(亂) 때는 현종의 아들 영왕(永王)의 모반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로 752년에 귀

     양가게 되었는데, 도중에 용서를 받았다. 대종(代宗) 때 습유(拾遺)라는 벼슬을

     받고, 그 해 채석강(采石江)에서 놀다가 익사하였다고 한다.

324) 백설(白雪):백설곡(白雪曲)의 준말. 슬곡(瑟曲)의 이름. 백운양춘곡(白雲陽春

     曲)과 함께 초(楚)나라의 가곡으로 그 곡조가 고상하여 고래(古來)로부터 창화

     (唱和)하기가 매우 어려운 곡(曲)이라고 한다.

325) 쇄열( 劣):①부서진 가는 가루 ②시시한 것 ③세소(細少)한 것. 「원진시元稹

     詩」, “詞旨瑣劣 冒瀆尊嚴”.

326) 기빙(期憑):유교(儒敎)와 불교를 비교해 보는 것. 불교 쪽인 지광국사와 유교

     편인 거유(巨儒)들을 비교한다는 뜻.

327) 범복(梵福):불교를 신봉하므로써 받는 복(福).

328) [全文]은 孺. [苑] [總覽]은 . 는 孺의 속자이고, 여기서 孺는 儒의 오자이다.

 

신도329)께서 정재(淨財)를 기울여 현화사의 보수공사에 필요한 공사비

를 국가에서 부담하도록 하였다.330) 그리고 개필331)을 불러 수용332)의 탱

화를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종333)을 주조하며, 일체법구(一切法具)를 마련

하였다. 이와 같이 보수한 보찰(寶刹)이 그 장려함이 마치 도사다334)의 천

궁(天宮)을 옮겨 놓은 것과 같았다. 금언(金言)인 경전을 판각하여335) 

(名)·구(句)·문(文)인 구나336)의 용궁해장(龍宮海藏)을 담았으니 이것이

이른 바 시단337)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일으켜 마침

내 원만하게 성취하고,338) 임금이 지광국사(智光國師)를 스승으로 모시고

사자(師資)의 큰 인연(因緣)을 맺었다.339) 이와 같이 모든 악은 짓지 아니

하는 한편 여러 가지의 선한 일을 봉행(諸善奉行)한 일들을 어찌 이루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340) 청녕 2년341) 1월 일에 임금께서 이르기를, “대붕새

도341) 늙어지면342) 법이 아니고는 그 미혹(迷惑)함을 구제할 수 없고, 성스러

운 병아리343)라도 스승이 아니면 법익(法益)을 청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진

실로 능히 법을 깨달은 이라야 가히 스승이 될 수 있다.

宸圖, 傾檀施之財, 蕆344)工依之價. 爰徵愷筆345), 繪出睟容, 或

鑄鳧鍾, 兼成法346)具. 新營寶刹347), 移覩史之 348)宮. 敬造金

言, 悉拘那之海藏, 斯所謂始檀349)乎. 發弘誓願, 終圓乎締大因

緣. 其諸善奉行之采, 豈可殫籌乎. 淸寧二年, 十月日, 上謂之

曰, “鵬耆, 則非法無以救迷, 聖則, 非師無以請益.” 苟能悟

法者, 可以爲師乎.

329) 신도(宸圖):임금의 마음.

330) 천공의지가(蕆工依之價):“현화사(玄化寺)의 보수공사비를 국가에서 부담하도

     록 하라.”는 왕의 칙명(勅命).

331) 개필(愷筆):명필, 국필이란 뜻. 愷는 앞서간다는 개字. 독보적인 존재.

332) 수용(睟容):온화하고 윤택한 얼굴. 즉 온후(溫厚)하고 인자(仁慈)한 모습이니,

     선풍도골인 도인(道人)의 얼굴을 가리킨다.

333) 부종(鳧鐘):종의 다른 이름. 주나라 때 부씨(鳧氏)가 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씨란 『주례』에 따르면 동관(冬官)에 속하는 관직으로 음악(音樂)과 종의 주조

     를 맡던 장인(匠人)이다. 『주례』「고공기부씨考工記鳧氏」, “爲鐘 栗氏爲量”.

334) 도사(覩史):도솔천(兜率天)으로, 삼계(三界) 이십팔천(二十八天) 중에, 욕계육

     천(欲界六天)인 ①사천왕천(四天王天) ②도리천(忉利天) ③야마천(夜摩天) ④도

     솔천(兜率天) ⑤화락천(化樂天) ⑥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중 제4천(第四天)이

     다. 구역(舊譯)에는 도솔(兜率)·도솔타(兜率陀) 등으로, 신역(新譯)에는 도사다

     (都史多)·도사다(覩史多)·투슬치(鬪瑟哆) 등으로 음역(音譯)되었고, 한역(漢譯)

     으로는 지족(知足)·희족(喜足)·묘족(妙足) 등으로 번역되었다. 「숭복사비문崇

     福寺碑文」 주28)도사다천都史多天 [신라편] p.244 참조.

335) 경조금언(敬造金言):금언은 부처님 말씀이니, 경전을 가리킨다. 즉 경전을 사

     경(寫經)하거나 판각(板刻)하여 유포한다는 뜻.

336) 구나(拘那):구나(求那 guna)와 같은 뜻이니, 사(事)와 물(物)의 바탕을 이루는

     지수화풍 등의 실체(實體)와 색성향미(色聲香味) 등의 덕(德)을 포함하며, 덕·

     용(用)·질(質)·승(勝)·간(幹) 등으로 번역되며, 흔히 공덕(功德)으로 번역한다.

337) 시단(始檀):처음으로 단바라밀(檀波羅密)을 행하다. 단(檀)은 dāna의 음사로

     서 보시(布施)의 뜻이다. 즉 보시를 행한다는 뜻.

338) 종원(終圓):현수(賢首)의 교판(敎判)인 오시교(五時敎) 중에 제3의 종교(終敎)

     와 제5의 대승원교(大乘圓敎)를 지칭한다.

339) 체대인연(締大因緣):문종 임금이 지광국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사자(師資)의 인

     연을 맺었다는 말.

340) 제선봉행지채(諸善奉行之采):모든 악을 짓지 않고, 여러 선행(善行)을 힘껏 행

     (行)한 일들을 뜻한다. 불교의 근본가르침인 칠불게(七佛偈)의 제악막작(諸惡莫

     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의 인용이다.

341) 청녕이년(淸寧二年):청녕은 요나라 도종(道宗) 때의 연호. 청녕 2년은 1056년

     (문종10).

342) 붕기(鵬耆):늙은 대붕새란 뜻이니, 미혹한 중생을 비유하는 말.

343) 구성( 聖):병아리 성인이란 뜻이니, 초발심자(初發心者)를 지칭하는 말. [總

     覽][全文]에는 . [苑]에는 鷇. 와 鷇는 같은 글자이니, 새새끼 구字이다.

344) [苑] [總覽]에는 蕆(신칙할 천字). [全文]의 藏이 오자인 듯함.

345) [苑]은 茟, [全文]은 筆이나, [總覽]에는 탈락됨.

346) [總覽]에는 法. [苑]의 과 [全文]의 茫은 法의 오자임.

347) [苑]의 刂, [全文]의 剝, [總覽]의 이니, 모두 刹의 오자임.

348) [全文] [總覽]에는 天. [苑]의 은 의 오자, 은 天의 고자(古字)임.

349) [苑]에는 檀. [總覽] [全文]의 擅은 檀의 오자임.

 

특별히 국서350)를 보내 초청하였다. 드디어 공부시랑(工部侍郞) 장중

,351) 상서좌승(尙書左丞) 유신352)과 예부시랑(禮部侍郞) 김양지353) 등을

보내되, 세 번이나 되풀이하는 삼반의 예354)를 갖추고는, 이어 다시 중추원

사(中樞院事) 이유충355)을 보내어 왕이 수결(手結)하고 압인(押印)한 편

지와 함께 금계법복(錦罽法服)과 은(銀), 황유(黃鍮)로 만든 기물356)과 향

357) 등을 보냈다.

特降國書358)諮請. 遂差359)遣工部侍郞張仲英, 尙書左丞柳紳,

禮部侍郞金良贄等, 備行三反之禮, 續遣知中樞院事, 異惟忠,

押賜錦罽法服, 銀黃器用香荈等.

350) 국서(國書):①임금의 조칙 ②왕의 친서.

351) 장중영(張仲英):고려의 문신. 1056년(문종10)에 공부시랑(工部侍郞)이 되었고,

     1061년(문종15) 4월 공부상서(工部尙書)로 승진했었다. 『고려사』권1 참조.

352) 유신(柳紳):전기 미상이다. 혹시 유신(柳伸)이 아닌가 한다.

353) 김량지(金良贄):자세한 전기는 알 수 없으나, 1054년(문종8) 4월 급사중(給事

     中)의 신분으로 거란(契丹)에 가서 태자책립(太子冊立)을 고하였고, 1058(문종

     12)년에는 예부시랑(禮部侍郞)에 올랐으며, 1061년(문종15)에는 어사대부(御史

     大夫)로 승진하였다.

354) 삼반지례(三反之禮):어떤 존경하는 사람을 초빙하기 위하여 세 차례 이상 왕

     복(往復)하면서 간청한다는 말이니, 삼고초려(三顧草廬)와 같은 뜻이다. 『사기』

    「맹상군전孟嘗君傳」, “三反而不致一入”.

355) 이유충(異惟忠):1057년(문종11)에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었고, 1060

     년(문종14)에는 중추원사(中樞院事), 1061년(문종15) 1월 형부상서(刑部尙書)를,

     동12월에는 참지정사주국(參知政事柱國)을, 1063년(문종17) 8월에는 판삼사사

     서북면중군마병사(判三司事西北面中軍馬兵使)를, 1071년(문종25) 1월에는 수사

     공(守司空)을 각각 역임하였다. 『고려사』권1 참조.

356) 은황기(銀黃器):은기는 은으로 만든 그릇이고, 황기은 놋쇠로 만든 기물이다.

357) 향천(香荈):향과 찻감. 荈이란 늦게 딴 차 천字이니, 만취다(晩取茶) 또는 노엽

     다(老葉茶). 『이아爾雅』「석목주釋木註」에 “早采者爲茶 晩取者爲茗 一名荈”이라

     하였다.

358) [苑] [總覽]에는 書. [全文]의 王은 書의 오자임.

359) [苑] [總覽]에는 差. [全文]의 措는 差의 오자임.

 

국사는 굳게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왕의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360) 그리

하여 그 해 11월 4일 대가361)가 내제석원(內帝釋院)으로 행행362)하여 예배

(禮拜)를 갖추어 왕사로 추대하였다. 그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가에 

동재363)하고 다녔으니, 마치 강승회(康僧會) 스님이 오왕(吳王) 손권(孫

權)의 어가에 동승하고 다녔던 것364)과 같이하였으니, 이는 모두 스님의

하풍365)에 있었기 때문이다. 청녕 3년에 이르러 ‘융소(融炤)’라는 법칭(法

稱)을 진정(進呈)하였다. 4년 5월 초하루에 임금께서 스님을 국사로 책봉

코자 하여366) 친서를 보내 삼청(三請)하였다. 그리하여 그 달 19일 왕이 금

367)를 준비해 봉은사368)로 행행하여 우리 해린(海鱗) 스님을 국사로 봉하

고, 영통사(靈通寺)의 주승(主僧)인 난원(爛圓) 스님369)을 왕사(王叱)로 책

봉하였다. 연진370)을 택하여 아울러 위대한 칭호371)인 법칭을 봉정하였으

니, 양상372)이 부합되었다. 같은 날에 두 스님이 함께 지총373)을 받았으므

로 이미374)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師膠讓不獲命. 卽以十一月四日, 大駕, 行幸于內帝釋院, 備禮

拜爲王師. 彼其周之同載, 吳之同輦者, 共在下風矣. 三秊, 進

法稱曰, ‘融炤’. 四年五月初一日, 上, 欲 爲 師, 致書三請.

以是月十九日, 備金駕, 親幸奉恩寺, 封我所爲國師, 封靈通寺

主僧統爛圓, 爲王叱375)者, 涓辰竝授於丕稱, 兩相合矣. 同日秪

承於摯寵, 二美顯焉.

360) 사교양불획명(師膠讓不獲命):스님께서 굳게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왕의 허락

     을 받지 못하였다는 뜻.

361) 대가(大駕):어가(御駕)이니, 임금이 타는 수레.

362) 행행(行幸):임금의 거동. 왕의 행차(幸次).

363) 동재(同載):왕이 지광국사를 어가에 함께 태우고 다녔다는 말.

364) 오지동연(吳之同輦):오나라 임금 손권(孫權)이 강거국의 승회(僧會) 스님을 존

     경한 나머지 자신의 수레에 승회스님을 모시고 다녔다는 데서 온 말이니, 「지증

     대사적조탑비문」 주40)강회남행康會南行 [신라편] p.298;「진철대사보월승공

     탑비문」 주117)강거승회시승오주지거康居僧會始昇吳主之車 [고려편1] p.29;

    「요오화상진원탑비문了悟和尙眞原塔碑文」 주50)승회유오지일僧會遊吳之日

     [고려편1] p.53;「원종대사혜진탑비문」 주189)승회유오僧會遊吳 p.266;「법인국

     사보승탑비문」 주252)오주지존승회吳主之尊僧會 [고려편2] pp.108~109;대정

     장50, p.325a 등 참조.

365) 하풍(下風):문종 임금이 지극히 지광스님을 존경하였으므로 스님의 도풍아래

     (道風下)에 있다는 말.

366) 상욕봉위국사(上欲 爲 師):임금께서 저 해린(海麟)스님을 책봉하여 국사로

     추대하였다는 뜻. (古文의 )은 封의 古字이고 은 國의 古字이다.

367) 금가(金駕):금은으로 장식한 수레이니 임금이 타는 수레. 대가(大駕) 또는 어가

     (御駕)와 같은 뜻.

368) 봉은사(奉恩寺):개성 남쪽에 있던 절. 951년(광종 2)에 창건.

369) 난원(爛圓):문종 때 영통사(靈通寺)에 있었다. 속성은 김씨. 1058년(문종 12)에

     왕사가 되었고 1065년(문종 19) 문종의 넷째 왕자 후(煦)를 그에게 맡겨 출가시

     키고 은사(恩師)가 되게 했다. 시호는 경덕(景德). 1066년(문종 20) 10월 8일 세수

     68세, 법랍 57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경덕국사묘지명景德國師墓誌銘」 [고려

     편2] pp.336~340 참조.

370) 연진(涓辰):연일(涓日)과 같은 뜻이니, 길일(吉日)을 택하는 것. 날 받는 것. 涓

     은 가릴 연字. 『송사宋史』「악지樂志」에 “宦容承祀 鍊時涓日”이라 하였다.

371) 비칭(丕稱):위대한 칭호이니, 목종 때 받은 법호(法號)인 ‘강진홍도(講進弘道)’

     와 현종으로부터 받은 ‘명료돈오(明了頓悟)’, 태평년중(1021~1030) 역시 현종으

     로부터 받은 ‘계정고묘응각(戒正高妙應覺)’, 덕종으로부터 받은 ‘탐현도원(探玄

     道源)’, 정종으로부터 받은 ‘통제연오법동(通濟淵奧法棟)’, 문종으로부터 받은

     ‘구행료성도수(具行了性導首)’, 또한 문종으로부터 받은 ‘융소(融炤)’, 1060년(문

     종14)에 역시 문종으로부터 ‘낭철朗徹’과, 1085년(선종2) 선종(宣宗)으로부터 받

     은 ‘지광(智光)’이란 시호와 탑호 ‘현묘(玄妙)’ 등을 가리킨다.

372) 양상(兩相):연진(涓辰)과 비칭(丕稱).

373) 지총(摯寵):왕의 지극한 총애.

374) 이미(二美):왕이 길일(吉日)을 선택하여 난원스님은 왕사로, 해린대사(海麟大

     師)는 국사로 추대한 것을 뜻한다.

375) [苑] [總覽] [全文]의 叱는 師의 고자(古字)임.

 

 까닭을 살펴보니 미증유(未曾有)의 희유(希有)한 일이라고 찬탄하

고도 남음이 있다. 전일의 꿈에 신인이 “너는 국사이고 저는 왕사이다.”라

고 한 예언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때 

에 동유(同遊)하던 스님은 영통사의 주지376)인 난원 바로 그 스님이다. 5

377) 양월378) 8일 국사께서 왕궁 내전(內殿)에 나아가서 백고좌회379)의 

일설법주380)가 되었다. 겨우 반게송(半偈頌)을 설하자마자381) 청법대중이

사방으로부터 거듭거듭 모여들어 큰 성왕(盛旺)의 상서를 나타냈다.382) 

이 다시 ‘낭철(朗徹)’이라는 법칭을 진정하였다.

觀其所由, 歎未曾有. 嚮所夢神人之吉語, 必讖此矣. 同遊之

僧, 靈通寺主是也. 五秊陽月八日, 師赴內殿, 爲百座會, 第一

說主. 才宣半偈, 荐集丕休. 累進法稱曰, 朗徹.

376) 영통사주(靈通寺主):경덕국사(景德國師) 난원스님을 지칭한다.

377) 오년(五秊):청녕오년(淸寧五年)이니, 1059년(문종13).

378) 양월(陽月):음력 10월의 다른 이름. 10월은 음(陰)이 다하는 달이므로 음이 극

     (極)하면 다시 양(陽)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379) 백좌회(百座會):백고좌회(百高座會)의 준말이니, 백명(百名)의 고승대덕을 초

     빙하여 모시고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을 올리면서 법회(法會)를 가지는 것.

380) 제일설주(第一說主):백고좌회의 증명법주(證明法主)스님.

381) 재선반게(才宣半偈):‘겨우 반게송(半偈頌)만 선설하였으나’라는 뜻.

382) 천집비휴(荐集丕休):청법대중이 줄을 이어 거듭 몰려들어 큰 상서(祥瑞)를 나타

     나게 하였다는 말. 『묵자墨子』「상동중尙同中」에 “飄風苦雨 荐臻而至者”라 하였다.

 

함옹 3년383) 2월 일에 국사께서 법천사(法泉寺)에 돌아가 안주(安住)코

자 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모치384)의 탄식을 일으키며, 누차 임금께 사퇴

(辭退)할 것을 고진하였으며,385) 세 번이나 거듭 수두386)의 주청(奏請)을 올

려 간절한 사의(辭意)가 확고함을 알렸다.387) 문종은 하는 수없이 윤허(允

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해 9월 22일 왕이 현화사에 행행하여 합원승

388)를 베풀고 겸하여 국사를 석별하는 인전연389)도 마쳤다. 임금은 양반

의 관솔(官率)을 거느리고 국사에게 하직 인사를 한 다음,390) 좌승선(左承

宣)이며 중서사인(中書舍人)인 정유산391)을 파견하여 수결(手結)을 찍은

조서(調書)와 다(茶), 약(藥), 보화(珤貨) 등을 정상하였는데,392) 그 이름과 

수가 너무 많아 산제(刪除)하고 싣지 않는다. 국사는 이 달 27일 출발하여

본산(本山)인 법천사로 떠났다.

咸雍三年二月日, 師欲歸安于法泉寺, 幾興暮齒之嗟, 縷陳身

退, 三上需頭之奏, 確執懇 . 上優詔從之. 以九月二十二日,

駕幸玄化寺, 特設闔院僧齋, 兼置寅餞之筵訖. 率□班拜 後,

則遣左承宣中書舍人, 鄭惟産, 押上茶藥珤貨等, 名數夥多, 刪

煩不載. 叱393)取是月, 二十七日, 發行, 指本山.

383) 함옹삼년(咸雍三年):함옹은 요나라 도종(道宗) 때의 연호. 함옹 3년은 1067년

     (문종21).

384) 모치(暮齒):나이 많은 노인(老人). 만년(晩年) 또는 모년(暮年)이라고도 한다.

     일생(一生)의 기한이 저물었고, 또한 치아도 모두 빠졌다는 뜻.

385) 누진신퇴(縷陳身退):스님께서 왕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임종지(臨終地)인 법천

     사(法泉寺)로 돌아가려고 간청하였다는 말.

386) 수두(需頭):한대(漢代)에 있어 왕에게 청원하는 상주문(上奏文)의 서식(書式)

     이니, 그 서두(書頭)에 조지(詔旨)로 비답(批答)을 기입(記入)할 일폭(一幅)의 

     여백(餘白)을 남겨 두고 진정할 때에만 사용하는 서식이나, 전(轉)하여 장주(章

     奏)·상주(上奏)·상소(上疏) 등의 뜻이다. 『독단獨斷』, “凡群臣 上書天子者四 一

     曰章 二曰奏 三曰表 四曰博議 凡章奏 皆需頭 稱稽首 表者 不需頭”. 需는 기다릴

     수字이다.

387) 확집간사(確執懇辭):‘본사로 돌아가려는 확고한 집념으로 하는 간절한 언사(言

     辭)’라는 뜻.

388) 합원승재(闔院僧齋):합원이란 合院・全院・擧院 등의 뜻이니, 합원대중(合院大

     衆)을 말한다. 즉 전체 대중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다는 뜻.

389) 인전지연(寅餞之筵):왕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전별연(餞別筵)을 베푸는 것. 전

     은 예물을 바쳐 전송하는 것. 인은 공경하는 뜻. 『서경書經』「효전堯典」에 “分命

     和仲 宅西曰 昧谷 寅餞納日”이라 하였다. [總覽] [苑]에는 莚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筵의 오자임.

390) 솔□반배사후(率□班拜辭後):‘왕이 양반(兩班)을 거느리고 친히 나와 송별(送

     別)한 후’라는 말. □표시는 문맥으로 보아 兩字인 듯하다. 양반은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이다.

391) 정유산(鄭惟産):1069년(문종23) 4월 상서좌승우간의대부(尙書左丞右諫議大夫)

     가 되었고, 1071년(문종25) 1월에는 한림학사국자좨주(翰林學士國子祭酒)가 되

     었으며, 1073년(문종27) 7월 지서북면추동번병마사(知西北面秋冬番兵馬事)가 되

     었다. 1074년(문종28) 2월 섭형부상서(攝刑部尙書)로 승진하였고, 그 해 12월 다

     시 예부상서(禮部尙書)가 되었으며, 1075년(문종29) 1월 참지정사감수국사(參知

     政事監修國史)에 임명되었고, 그 해 7월에 이부상서(吏部尙書), 1077년(문종31)

     11월에는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를 거쳐 1079년(문종33)에 재상(宰相)이

     되었다. 『고려사』권1, 7 등 참조.

392) 압상(押上):왕이 수결(手結)을 하거나 옥새를 찍은 편지와 함께 높은 사람에게

     선물을 올리는 것.

393) [苑] [總覽] [全文]의 叱는 師의 고자(古字)임.

 

임금이 태자에게 명하여 제왕백료(諸王百僚)를 거느리고 남교394)까지

가서 전별(錢別)케하고 특별히 도속(道俗)의 관원395)을 보내어 본사까지

호송(護送)토록 하였다. 국사께서 본산인 법천사에 돌아간 후, 3년 만인

중하지월396)에 성상397)이 연덕궁(延德宮)의 제6왕자398)를 체발(剃髮)하고

스님이 되어 현화사에 있게 하였다. 이전에는 봉천원(奉天院)에 주석하다

가 특히 수좌(首座)의 법계를 증수(贈授)받았으니, 이는 국사의 주변에 있

으면서 깊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399) 이 해 10월400) 23일 편안히401) 

협(右脇)으로 누워 취침하였다. 이날 밤에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렸다.402)

上命太子, 率諸王百僚於南郊餞別, 特差道俗員寮等, 慰送于

本寺也. 師下山後, 三403)□仲夏之月, 聖上以延德宮, 第六王

子, 許令剃髮, 捿404)息于玄化寺. 舊住奉天院, 特授首座者, 斯

緣類肖國師之邊幅也. 是歲十月, 二十三日, 晏陰右臥而寢, 此

夜, 零雨其濛.

394) 남교(南郊):남쪽 교외(郊外). 남쪽 성밖.

395) 원료(員寮):생원(生員)과 관료(官寮)이니, 특차사를 따라가는 모든 수행원.

396) 중하(仲夏):음력 5월.

397) 성상(聖上):고려 제11대 문종.

398) 제육왕자(第六王子):왕자란 문종의 아들로서, 제6자는 도생승통(道生僧統) 정

     (竀)을 말한다. 대각국사 의천은 문종의 제4자이다.

399) 변폭(邊幅):포백(布帛)의 가장자리. 전하여 겉치레, 겉모양을 뜻한다.

400) 시세십월(是歲十月):1070년(함옹 6, 문종24) 10월이다.

401) 안음(晏陰):편안하고 고요한 상태. 청음(晴陰)과 같은 뜻이니, 안은 안(安)이요,

     음은 도정(道靜)의 뜻이다.

402) 우기몽(雨其濛):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

403) [苑]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에는 三임.

404) [苑] [總覽] [全文] 모두 捿이니, 捿는 棲 또는 栖와 통한다. 

 

국사께서 잠을 깨어 가부좌(跏趺坐)를 맺고 앉아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결락] 바깥 날씨가 어떤가?”하니, 대답하기를, “이슬비가 내리고 있읍니

다.”라는 대답을 듣고서 곧 입적하였다. 옛적 추자405)가 입적함에 당하여

무색계(無色界)의 제천406)이 흘린 바 눈물이 마치 봄에 내리는 이슬비와

같았으니,407) 지금 국사께서 시화(示化)하던 오늘밤에 내린 비인들 어찌 

제천이 흘린 눈물이 아니겠는가.

師寤而趺坐, 謂弟子曰, 兒408)□□□答曰, 雨也. 聞言則示化

矣. 昔鶖子入滅, 無色諸天, 所泣之淚, 如春細雨, 今之夜雨,

豈非諸天之淚乎.

405) 추자(鶖子):사리불( Śāriputra)을 번역한 말. 추로자(鶖鷺子) 또는 신자(身子)라

     고도 번역된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중 지혜제일(智慧第一)에 속한다.

406) 무색제천(無色諸天):삼계(三界) 이십팔천(二十八天) 중 무색계(無色界)의 4천

     이니, ①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②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③무소유처천(無所

     有處天) ④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이다.

407) 소읍지루여춘세우(所泣之淚如春細雨):슬피 흘린 눈물이 마치 봄철에 내린 가

     랑비와 같다는 뜻. ‘춘월세우(春月細雨)’는 부처님의 제1제자 사리불열반시에

     내렸던 하늘의 눈물인데, 다음과 같다. 목건련(目犍連 Maudgalyāyana)과 사리

     불(舍利弗 Śāriputra)은 함께 자연론자(自然論者)인 산사야비라지자(刪闍耶毘

     羅胝子 sañjayī-vairatiputra)를 스승으로 섬기다가 뒤에 오비구(五比丘) 중의 한

     스님인 마승비구(馬勝比丘 Aśvajit, 額鞞)를 만나, 인연설(因緣說)을 듣고 발심

     하여 불교에로 개종(改宗)하였다. 이후 그들은 불제자(佛弟子) 중 사리불은 제1

     의 제자, 목건련은 제2의 제자가 되었고 그로부터 두 사람은 불교의 유행전도

     (遊行傳道)에 전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외도(外道)들로부터 제거의 표적이

     되었다. 어느 날 목건련이 나열성(羅閱城)에서 걸식(乞食)하던 중 집장외도(執

     杖外道)들의 집단폭력으로 사방(四方)에서 돌을 던져 타살(打殺)당했다. 비록

     죽기는 하였으나, 신통력(神通力)으로 사리불에게 마지막 고별(告別)을 하려고

     찾아가서 자신이 먼저 떠나게 된 것을 알렸다. 이 때 사리불은 슬픔을 이기지 못

     하여, “존자(尊者)는 어찌하여 신통력으로 난(難)을 피하지 않았는가.”라고 원망

     했다. 이에 대하여 목건련은, “이는 나의 숙업(宿業)인 것이므로 감수키로 결심

     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리불은, “존자여! 잠깐만 기다리시오. 내

     가 먼저 열반(涅槃)에 들겠다.”라 하고 부처님께로 가서 목건련의 죽음을 고한

     다음 자신이 먼저 멸도(滅度)하겠다고 고하였으나, 부처님은 묵연(默然)하시고

     대답이 없었다. 사리불은 세존(世尊)께서도 멀지 않아 열반에 드실 것을 알고

     이를 차마 볼 수 없어 자신이 먼저 열반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 때에도 부처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마침내 사리불이 열반하던 날 밤에 대지(大地)가 육종

     (六種;동(動)·용(涌)·진(震)·격(擊)·후(吼)·폭(爆))으로 진동(震動)하고, 하늘

     의 음악이 들리며 꽃비가 내렸다. 뿐만 아니라 제천(諸天)들이 슬피 통곡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하여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등 삼계

     (三界) 이십팔천이 함께 눈물을 흘렸으니, 마치 화창한 봄날씨에 가랑비(細雨)

     가 내리는 것과 같았다(虛空之中 欲天·色天·無色天 悉共墮淚·亦如春月細雨和

     暢). 이 소식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게송(偈

     頌)을 읊었다. 일절행무상(一切行無常) 생자당유사(生者當有死) 불생부복멸(不

     生不復滅) 차멸최제일(此滅最第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권18「사의단품四意

     斷品」(대정장2, pp.639~641);『월인석보月印釋譜』권1 p.36b 참조.

408) [苑]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에는 兒임.

 

오호 애재(哀哉)라! 세수는 87세요, 승랍은 72세였다. 입적하던 전날 밤

409) 등불 만한 크기의 두개의 별이 나타났고,410) 또 두 줄기의 큰 무지개

가 섰는데, 마치 두마리의 적룡(赤龍)이 나란히 누워 있는 것과 같았다. 이

것은 409)[결락]410) 국사께서 입멸하실 조짐을 보인 것이다.411)

嗚呼哀哉, 報年八十七, 僧臘七十二. 卽世前夜, 有二星見, 其

大如燈, 又有大虹二條, 如赤412)龍413)之雙臥. 此□□□示滅之

兆也.

409) 즉세전야(卽世前夜):죽기 바로 전날 밤, 입적하기 전날 밤.

410) 유이성견(有二星見):두 개의 별이 나타났다는 말.

411) 차□□□시멸지조야(此□□□示滅之兆也):문맥으로 보아 빠진 3字는 즉대사

     (則大師)로 추정된다. 차즉대사시멸지조야(此則大師示滅之兆也), 즉 이는 곧 대

     사께서 입멸(入滅)을 예시한 징조였다는 말이다.

412) [苑] [總覽]에는 赤. [全文]의 亦은 赤의 오자임.

413)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龍임.

 

문인 수좌인 법령(法靈)과 삼중대사인 소현414) 등이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르면서 부음(訃音)을 동폐415)에 주문(奏聞)하였다. 부음을 들은 문종은

크게 진도(震悼)하시고 곧 좌가승록(左街僧錄)인 숭연(崇演)과 보장정416)

인 전삼린417) 등을 파견하여 장사(葬事)를 감호하도록 하였으며, 이어 전

418)인 특사를 보내서 빈당419)에 가서 조문토록 하되, 정중한 탁제420)를 

르도록 하는 한편, ‘지광(智光)’이라는 시호를 증정(贈呈)하고 아울러 다향

(茶香)과 유촉(油燭)을 하사하였으며, 또 원주(原州) 창고에 있는 양곡으

로써 발천위락421)의 법요식(法要式)에 필요한 경비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1월 9일 법천사의 명봉산(鳴鳳山) 동쪽 승지(勝地)를 선택하여422)

다비423)의 예를 거행하였다. 이 때 인간과 영기(靈祇)가 비통하며 슬퍼하

고, 천지가 캄캄하며 새·짐승들은 슬피 울고, 봉만(峰巒)은 처참하게 나열

(羅列)되었으니, 유정(有情)과 무정(無情) 등이 모두 국사의 도덕이 끝남

에 대하여 슬퍼한 것인저!424)

門□425)首座法靈, 三重大師韶顯等, 擗踊訃䎹426)於彤陛. 上則

震悼, 尋遣左街僧錄崇演, 保章正全參藺等, 監護葬事, 續差遣

專介427), 往428)彼殯堂, 致其卓祭, 贈諡曰智光, 倂賜茶香油燭, 

及原州倉穀,428) 以充拔薦之資.429) 十一月九日, 選勝于法泉寺之

山東, 茶毗禮也. 是時, 人祇憯慟, 天地晦冥, 鳥獸悲鳴, 峯巒

慘列, 有情無情, 皆感德之終乎.

414) 소현(韶顯):당시 현화사주(玄化寺主)이며 승통(僧統)이었던 스님. 본비문 주

     271)소현韶顯 p.389과 「혜덕왕사진응탑비문慧德王師眞應塔碑文」 [고려편]3

     pp.20~69 등 참조.

415) 동폐(彤陛):동정(彤庭)과 같은 뜻. 붉은 색으로 칠한 섬돌이니, 궁중(宮中)을 가

     리킨다. 전하여 임금을 지칭한다.

416) 보장정(保章正):고려 초기 태사국(太史局)에는 영(令)·승(丞)·영대랑(靈臺

     郞)·보장정(保章正)·설호정(挈壺正)·사진(司辰)·사력(司曆)·감후(監候)가 있

     었다. 『고려사』권76 참조. 부석사(浮石寺) 원융국사(圓融國師)의 할아버지 벼슬

     이 장보(章保)였는데, 보장(保章)과 장보(章保)가 같은 뜻이 아닌가 한다. 「원융

     국사비문圓融國師碑文」 주69)장보章保 [고려편2] p.278 참조.

417) 전삼린(全參藺):전기 미상이다.

418) 전개(專介):전개(專价)라고도 한다. 왕이 특별히 보내는 사자(使者). 介와 价는

     같은 뜻이다.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 주74)전개專介 [신라편] p.356 참조.

419) 빈당(殯堂):빈소. 상가(喪家). 염하는 장소.

420) 탁제(卓祭):장엄하고 정중한 장례식을 뜻한다.

421) 발천(拔薦):①발고위락(拔苦爲樂)의 준말이니, 사망한 영가를 발제(拔濟)하여

     극락세계로 천도(薦度)하는 것 ②많은 사람들 중에 선발하여 천거하는 것. 여기

     서는 ①을 가리킨다.

422) 선승우법천사지산동(選勝于法泉寺之山東):[總覽][苑][全文] 모두 皐. 皐는 泉

     의 오자임. 법천사 동쪽 승지(勝地)를 선택하였다는 뜻.

423) 다비(茶毗): Jhāpita. 사비(闍毗)·사유(闍維)·사비다(闍鼻多) 등으로 음역. 범

     소(梵燒)라 번역되니, 화장(火葬)이란 뜻이다. 다비례란 장례식을 지칭한다.

424) 개감덕지종호(皆感德之終乎):유정과 무정들 모두가 대덕(大德) 스님의 임종을

     슬퍼하였다는 뜻.

425) [苑] [總覽] [全文] 모두 결락이나, 문맥으로 보아 人字인 듯하다.

426) [總覽][苑][全文] 모두 이나, 䎹의 오자임. 䎹은 聞의 古字임.

427) [苑]의 와, [全文]의 不은 [總覽]의 介의 오자임.

428) [苑] [總覽]에는 往. [全文]의 任은 往의 오자임.

429) [苑] [全文]의 費와 [總覽]의 資는 어느 字가 옳은지 미상이나, 뜻으로는 무방하다. 

 

임금께서 아름다운 궤범(軌範)을 추모하여 감히 제액을 표(標)하지는

못하지만, 황견유부430)인 절묘호사(絶妙好辭)의 명문(名文)을 새긴 정민431)

을 세워 국사의 위적(偉跡)이 영원히 썩지 않게 함이다. 적자432)와 같은 위

대한 행적을 빛나게 할 뿐 아니라 역대에 유전되어 영원히 남아 있게 하

고자 하여, 이에 추유433)에게 명하시어 국사의 홍대(鴻大)하고 탁렬(卓烈)

한 위업을 밝히라고 하셨다.434) 그러나 신의 식견(識見)은 우잠435)으로 토

436)의 물을 측량하는 것과 같아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사양하였지만 어

찌 할 수 없었다. 그릇 윤선을 받드는 것437)은 도저히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438) 그러므로 국사의 가풍에 따라 그의 도덕을 기록하였

다. 비록 견고하나 돌과 같이 궁구는 마음은 아니며439) 학문은 부수(膚受)

이고 재조(才操)는 졸재(拙才)이다. 스스로 수중에는 한푼의 돈도 없음을

부끄러워 하면서도440) 문득 광비441)의 명문을 지으려고 다만 최선의 노력

을 다할 뿐이다. 삼가 이상의 탁적(卓跡)을 명으로 칭송(稱頌)하노라.

上追嘉軌範, 敢弗標題, 欲使刊黃絹之辭, 樹貞珉而不朽. 煥赤

髭之躅, 流歷代□長存, 爰命鯫儒, 俾甄鴻烈. 臣, 牛涔校量兎

海, 寡能謬奉綸宣, 罔由綦讓. 挹其風而紀其德. 雖堅匪石之

心, 膚於學而拙於才. 自愧無錢之手, 輒將442)狂斐. 但罄443)捧444)

培, 謹爲銘曰. 

430) 황견지사(黃絹之辭):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虀臼)의 어의(語意)를 전

     (轉)한 것이니, 절묘호사(絶妙好辭)한 명문장(名文章)을 가리킨다. 「낭혜화상백

     월보광탑비문」 주105)제구虀臼 본서 p.129;「숭복사비문」 주269)혹해팔자或解

     八字 [신라편] p.272;「진공대사탑비문」 주111)제구虀臼 [고려편1] p.152;「법경

     대사자등탑비문法鏡大師慈燈塔碑文」 주218)영수제구令修虀臼 본서 p.224;「원

     종대사혜진탑비문」 주258)유부지문사幼婦之文辭 본서 p.275;「법인국사보승탑

     비문」 주405)제구齏臼 본서 p.344 등 참조.

431) 정민(貞珉):정석(貞石)·정염(貞琰) 등과 같은 뜻이니, 비석이란 말. 「징효대사

     보인탑비문澄曉大師寶印塔碑文」 주119)정석貞石 [고려편1] p.253 참조.

432) 적자(赤髭):불타야사(佛陀耶舍 Buddhayaśas)스님. 각명(覺明)이라 번역. 수염

     빛이 붉다하여 시인(時人)들이 ‘적자비파사(赤髭毘婆沙)’라는 별명을 낳게 하였

     다. 「진감국사대공영탑비문眞鑒國師大空靈塔碑文」 주72)적자赤髭 본서 p.93;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문朗空大師白月瑞雲塔碑文」 주38)적자赤髭 [고려편1]

     pp.319;『양고승전』권2(대정장50, p.333c) 등 참조.

433) 추유(鯫儒):송사리와 같은 변변치 않은 선비란 말이니, 정유산(鄭惟産)이 스스

     로 겸손하는 뜻. 소인(小人) 또는 말학(末學)을 지칭한다. 鯫는 송사리 추字.

434) 비견홍렬(俾甄鴻烈):왕이 나로 하여금 스님의 홍대(鴻大)하고 열열(烈烈)한 위

     업을 나타내도록 하였다.

435) 우잠(牛涔):소의 발자욱에 고인 물이니, 얕고 작으며 좁은 것에 비유한 것이다.

436) 토해(兎海):토는 한사군(漢四郡) 중 현도군(玄兎郡)이니, 현도군은 우리나라 바

     다를 지칭한다.

437) 과능류봉륜선(寡能謬奉綸宣):나는 능력이 없으면서 왕의 명(命)을 받들게 되

     었다는 뜻. 寡는 나 과字. 윤선(綸宣)이란 윤은 윤음(綸音), 선은 선지(宣旨)이니,

     모두 임금의 명령이다.

438) 망유기양(罔由綦讓):어떤 방법으로도 사양할 길이 없었다는 말. 기(綦)는 극히,

     대단히, 매우 등의 뜻. 또는 기(其)의 뜻이다.

439) 비석지심(匪石之心):마치 돌과 같이 자유롭게 뒹굴지 않는 굳은 마음이란 뜻.

    『시경』「패풍邶風」 ‘백주柏舟’, “我心匪石 不可轉也 我心匪席 不可卷也 石雖堅尙

     可轉 我心堅 不可轉也”.

440) 무전지수(無錢之手):수중에 한 푼의 돈도 없다는 말이니, 지극히 가난하다는

     뜻이다. 『논형論衡』「양지量知」, “手中無錢 而之市決貨 貨主必不與也 夫胸中無

     學 猶手中無錢也”. 즉, 학문이 없음을 부끄러워 하는 것이다.

441) 광비(狂斐):진취적인 기백이 풍부한 문장으로 된 문구(文句)란 뜻. 매요신(梅堯

     臣)의 시(詩)에 “下言狂斐頗及古 陶韋比格吾不私”라 하였다.

442) [苑] [總覽]에는 將. [全文]에는 탈락됨.

443) [苑] [總覽]에는 罄. [全文]의 聲은 罄의 오자임.

444) [總覽]에는 결락이나 [苑]의 捧과 [全文]의 奉은 같은 뜻이다. 

 

무상심심(無上甚深) 미묘법(微妙法)은 석가(釋迦)가 시조(始祖)!

사십구년(四十九年) 고구정녕(苦口叮寧) 설(說)하신 내용,

서건(西乾)에서 시작하여 천년후(千年後)에야,

가섭축법(迦葉竺法) 두스님이 동전(東傳)하였네!

일체법장(一切法藏) 진속(眞俗)으로 갈라졌으니,445)

근기(根機)따라 설법하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미(迷)한 중생(衆生) 제도코자 정법(正法)을 보여,

실상법(實相法)을 기본(基本)하고 권법(權法) 설했네!

妙法奚自,

能仁所宣,

西乹446)首出,

東震臚傳.

諦分眞俗,

理應機緣,

導迷歸正,

憑實假權. [其一]

445) 제분진속(諦分眞俗):교리의 내용으로는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로 구분된다

     는 뜻.

446) [苑][全文]에는 軋이고, [總覽]에는 乹이니, 軋은 乹의 오자이고, 乹은 乾의 古

     字이다.

 

무상대교(無上大敎) 그 진리(眞理)를 널리 펴시니,

십이부류(十二部類) 중생들이 서열447)하도다.

자성천(自性天)의 혜일광명(慧日光明) 두루 비추니,

언덕마다 골짝마다 밝아졌었네!

자비하신 구름으로 윤택케 하되,

쑥과 난초(蘭草) 차별 없이 적셔주었다.448)

불타(佛陀)께서 열반하신 시대가 멀어,

남겨주신 그 유풍이 멸절(滅絶)해 가네!

大敎旣周,

群生胥悅.

惠日流光,

岸谷皆徹.

慈雲灑潤,

蒿蘭不別.

去聖逾遙,

遺風欲絶. [其二]

447) 서열(胥悅):서로 서로 다함께 기꺼워한다는 말.

448) 호란불별(蒿蘭不別):쑥과 난초와의 현격한 차이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평등(平

     等)하게 뿌려주었다는 뜻.

 

이심전심(以心傳心) 그 혜명(慧命)을 누가 이을까?

지광(智光)국사 스님 만이 감당할걸세.449)

여러 생에 혁기(赫氣)모아 태어났으니,450)

단적(端的)으로 밝은 시대 만났도다.451)

양친부모(兩親父母) 하직하고 애정(愛情)을 끊어,

속가(俗家)의 소의(素衣) 벗고 치의(緇衣)를 입다.

고상함은 석림중(釋林中)에 악봉(萼鳳)이시고,452)

신령(神靈)함은 상서(祥瑞)로운 시귀(蓍龜)와 같네!453)

其誰紹者.

唯我尸之.

誕鍾 454)氣,

端 455)明時.

辭親割愛,

捨素從緇.

釋林辻鳳,

囿蓍龜. [其三]

449) 유아시지(唯我尸之):‘오직 우리 지광국사만이 이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분’이라

     는 뜻. 시는 맡다, 주관한다는 말이다.

450) 탄종혁기(誕鍾 氣): 은 赫의 약자(略者). 크게 혁혁한 기운을 모았다는 뜻이다.

451) 단악명시(端辻明時):단정히 밝은 시대를 만났다는 말. 辻은 만날 악字.

452) 석림악봉(釋林萼鳳):석림이란 승가(僧伽)를 지칭하고, 악봉이란 위대하다 또는

     출중하다는 뜻이니, 곧 고승(高僧)이란 말이다.

453) 영유시구( 囿蓍龜):[全文]의 은 의 오자이고, 은 靈의 고자(古字)이다. 곧

     신령스러운 동산에 나타난 시구와 같이 귀중한 스님이란 뜻이다. 시구(蓍龜)의

     시(蓍)는 서(筮)라 하니, 시초로 치는 점을 말한다. 구는 복(卜)이라 하니, 거북

     의 등을 불태워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점을 치는 것을 복서(卜筮)

     라 한다.

454) [苑][總覽][拓本]은 . [全文]은 芊. 어느 字가 옳은지 未詳임.

455) [苑][全文]은 蕚. [總覽]은 萼. 蕚과 萼은 同字이다.

 

지극하신 정성으로 발심(發心)하였고,

입으로는 발원(發願)하고 반야(般若)를 닦았다.

안으로는 팔만장경(八萬藏經) 연구하면서,456)

밖으로는 유교사상 공부하였다.457)

품계(品階)로는 삼현(三賢)아닌 십지(十地)이시고,458)

거룩하신 그 칭송은 천하에 떨쳐,

복과 지혜(智慧) 함께 구족(具足) 양족하시어,459)

일체세간(一切世間) 살펴봐도 견줄 자 없네!460)

懇發菩提,

口修般若.

內究空宗,

外工儒雅.

品匪地前,

譽魁天下, 

福智相嚴,

比倫盖寡. [其四]

456) 공종(空宗):상종(相宗)을 상대한 공종(空宗)이 아니고, 여기서는 내교(內敎)인

     불교를 지칭한다.

457) 유아(儒雅):우아한 유학(儒學), 또는 훌륭한 유자(儒者)이니 유교를 가리킨다.

    『한서』「공손홍전찬公孫弘傳贊」, “儒雅則公孫弘 董仲舒”.

458) 품비지전(品匪地前):품위(品位)가 지전(地前)이 아니고 지상(地上)이란 뜻. 품

     (品)이란 수행지위(修行地位)를 뜻하니, 초발심(初發心)에서부터 성불(成佛)에

     이르기까지 55위의 지위품계(地位品階)가 있다. 즉 10신(信)을 외현(外賢)이라

     하고, 10주(住)·10행(行)·10회향(廻向) 등의 3현(賢)을 내현(內賢)이라 하며, 난

     위(煖位)·정위(頂位)·인위(忍位)·세제일위(世第一位) 등을 4가행(加行)이라 하

     고, 10지(地)를 성위(聖位)라 하며, 최후인 구경성불(究竟成佛)을 불위(佛位)라

     한다. 따라서 지전(地前)이란 지광국사는 10지의 전인 현위(賢位)가 아니고, 10

     지의 이상인 성위(聖位)에 올랐다는 말이다.

459) 복지상엄(福智相嚴):복과 지혜를 겸수(兼修)하여 복(福)과 지(智)가 양족(兩足)

     하다는 뜻이니, 부처님을 양족존(兩足尊)이라 한다.

460) 비륜개과(比倫盖寡):스님의 위대함과 비교할만한 대상은 거의 없다는 뜻. 비륜

     이란 비류(比類)와 같은 뜻으로, 비교하다 또는 대비(對比)한다는 말.

 

계현논사461) 화현(化賢)으로 다시 오신 듯,

무착보살462) 도생(度生)위(爲)해 거듭 나투다.

반야덕(般若德)의 병(甁) 속에는 진리 가득히,

거울같이 밝은 마음 더욱 밝도다.

모든 상문463) 수행자(修行者)엔 표본이 되고,

예달464)까지 그 이름이 가득하였다.

요황465)께서 초빙하여 법문(法門) 들었고,

보세466)에는 수도대중(修道大衆) 번영하였다.

戒賢再出,

無着重生. 

德甁恒滿,

心鑑轉明.

桑467)門鍊行,

蘂闥馳聲.

瑤皇請益,

寶世飛468)榮. [其五]

461) 계현(戒賢):시라발타라(尸羅跋陀羅 Śīlabhadra)의 번역. 동인도 삼마달타국의

     왕족(王族)으로, 젊었을 때 마갈타국의 나란타사(寺 Nālanda)에 들어가 호법

     (護法)을 스승으로 섬기면서 법상종(法相宗)인 유사상(有思想)을 배웠다. 636년

     현장(玄奘)이 나란타사를 방문하였을 때, 106세의 고령으로 생존(生存)하였다

     고 전한다.

462) 무착(無着): Asanga의 번역. 불멸(佛滅) 후 1천년 경 스님. 북인도 건타라국 부

     루사부라성의 바라문 출신이다. 교시가(憍尸迦)의 아들이며, 세친(世親, 天親

     Vasubandhu)의 형(兄)이다. 대승 법상종을 크게 천양하였다.

463) 상문(桑門):사문(沙門 śramana)·식심(息心)·근식(勤息) 등으로 번역되니, 출

     가 수도하는 스님을 지칭한다.

464) 예달(蘂闥):예궁(蘂宮)과 같은 뜻. 향초가 번창한 궁전(宮殿)의 문이니, 왕궁을

     지칭한다.

465) 요황(瑤皇):요는 요궁(瑤宮)이니, 아름다운 옥돌로 조성(造成)한 궁전에 있는

     황제(皇帝), 즉 임금을 지칭한다.

466) 보세(寶世):장엄한 세계 즉, 사원(寺院)을 지칭한다.

467) [全文]에는 桑. [苑] [總覽]의 朮은 桑의 속자임.

468) [苑]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에는 飛임.

 

스님께선 덕이 높아 국사(國師)되셨고,469)

모든 일은 평범하게 처리하였다.

자나깨나 국민 위한 일념 뿐이며,

영원토록 큰 원력(願力)을 굳게 가지다.

세상만사470) 모든 것은 점위471)한 것 뿐.

환봉(圜封)속에 갇히어서 이미 늙었네!472)

여산473)같은 본산으로 되돌아가서

정진하고 기도하여 고년(高年)을 바라네.

爲万乘師,

合諸天道.

普祐邦家,

永堅懷抱.

崢歲阽危,

圜封告老.

廬阜于歸,

高年是禱. [其六]

469) 만승사(萬乘師):만승은 천자(天子)이니, 만승의 스승이란 국사(國師)가 되었다

     는 말이다.

470) 쟁세(崢歲):험난한 시대 또는 흉년(凶年)이라는 뜻.

471) 점위(阽危):언덕이 곧 무너지려고 함과 같이 위험이 극에 달한 상태를 말한다.

     『한서』「식화지」에 “安有爲天下阽危者 若是而上不驚者 世之有饑穰 天之行也 禹

     湯被之矣”라 하고, 그 주(註)에 “阽危 欲墜之意也”라 하였다.

472) 환봉고로(圜封告老):환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궁중을 뜻하고, 봉이란 그 속에

     갇혀서 자유가 없이 이미 늙음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473) 여부(廬阜):혜원법사가 있던 여산 동림사(廬山 東林寺)를 지칭한다. 「진공대사

     보법탑비문眞空大師普法塔碑文」 주134)여부廬阜 [고려편1] p.102 참조.

 

몸은 비록 건강하여 새지 않지만,474)

이 생명(生命)은 멀지않아 끝날 것일새.

아름다운 제호(醍醐) 맛도 맛을 잃었고,

향기롭던 담복향(薝蔔香)도 향기가 없네!

대소관원 전재475)들은 여탄476)하였고,

오장육부(五臟六腑) 오려내듯 슬퍼하였다.

여이477)들도 너나 없이 애통함이여!478)

부모479)잃은 아이처럼 통곡하도다.

身雖不漏,

命也云亡,

醍醐輟味,

薝蔔歇香,

筌宰茹歎,

暗斷胏膓,

棃夷軫慟,

如喪爺孃. [其七]

474) 불루(不漏):누(漏)란 ①흐르는 오물(汚物)이니, 사람이 죽으면 육창문(六瘡門)

     으로부터 오물이 새어 나온다는 말 ②각루자(殼漏子)의 준말이니, 육신인 껍질

     을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탈각오음각루자(脫却五陰殼漏子)라고도 한다.

     즉 오음(五陰)의 각루자(껍질)를 벗어 버렸다는 뜻이다.

475) 전재(筌宰):①전재는 사대부(士大夫) 또는 대소관원(大小官員) 등 ② 사부대중

     (四部大衆)들. 전(筌)은 전(荃)과 통하니, 임금을 뜻한다.

476) 여탄(茹歎):여통(茹痛)과 같은 뜻이니, 애통하는 마음을 품는다는 뜻. 즉 애도

     (哀悼)하는 마음.

477) 이이(梨夷):확실하지는 않으나, 이(梨)는 여(黎)의 오자가 아닌가 한다. 만약 여

     자(黎字)라면 여민(黎民) 또는 여서(黎庶)와 같은 말이니, 뭇사람, 서민, 백성 등

     의 뜻이다.

478) 진통( 慟):진( )은 진(軫)의 속자(俗字)이다. 슬퍼하는 것, 애통하는 것, 통곡하

     는 것 등이다. 진은 은(隱)의 뜻. 즉 측은(惻隱)하고 애통(哀慟)하는 것을 말한다.

479) 야양(爺孃):부모에 대한 속칭(俗稱). 야낭(爺娘)이라고도 한다.

 

슬퍼하는 제자480)들은 봉둔481)과 같고,

그 유언에 감동함은 적자(赤子)와 같네!482)

북수(北首)하고 입적(入寂)하니 세우(細雨) 내리고,483)

남(南)을 향해 비를 세워 표본을 삼다.484)

닷물을 막으려는 짧은 지혜로,485)

새사람이 나타난들 고인(故人) 당할까?486)

맑은 덕과 그 웅명(雄名)은 위업(偉業) 보인 것487)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영원(永遠)하소서.488)

吁哲弟之蜂屯,

感遺言而孺慕.

甄北沒之先芬,

勒南刊而後諭.

儻海塞以河堙,

或人新而代故.

庶淑德與雄名,

亘將來而有裕. [其八]

480) 철제(哲弟):훌륭한 제자란 뜻이니, 타인(他人)의 제자를 아칭(雅稱)하는 말.

481) 봉둔(蜂屯):벌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 옛부터 왕벌이나 집주인이 죽으면 통안

     에 있는 벌 전체가 허리에 흰 띠를 두르고 한 곳으로 모인다고 한다. 여기서는

     지광국사의 입적을 추모하는 모양. 한유(韓愈),「송정상서서送鄭尙書序」, “蜂屯

     蟻聚 不可爬梳”.

482) 유모( 慕): 는 孺의 俗字이니,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과 같

     다는 뜻.

483) 견북몰지선분(甄北沒之先芬):지광국사가 1070년 10월 23일 북수우협(北首右

     脇)하며 동배서면(東背西面)의 상태로 누워 입적하기에 앞서 밤새도록 가랑비

     가 내리던 분향(芬香)스러운 상서(祥瑞)를 밝혔다는 뜻.

484) 늑남간이후유(勒南刊而後諭):왕이 “남쪽을 향하여 비(碑)를 세우도록 하라.”는

     명령을 열반한 뒤에 내렸다는 말이니, 고래(古來)로 비를 세울 때에는 대개 남쪽

     을 향하여 세우게 되므로 남간(南刊)이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원공국사비문圓

     空國師碑文」 끝에도 “甘同西笑 用效南刊”이란 말이 있다. [고려편2] p.220 참조.

485) 당해색이하인(儻海塞以河湮):비재(菲才) 천식인 정유산(鄭惟産) 자신이 고매하

     고 위대한 스님의 행적을 비문 속에 모두 나타내려는 것이, 마치 강물 속에 바다

     를 집어 넣으려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는 말이다.

486) 혹인신이대고(或人新而代故):“혹 후인(後人)이 새롭게 나타나 이미 고인(故人)

     이 된 스님이 하시던 일을 대행(代行)할 수 있을는지.”라는 뜻이다.

487) 서숙덕여웅명(庶淑德與雄名):아름다운 덕과 웅장한 그 이름은 스님의 위덕(偉

     德)을 표한 것이다.

488) 긍장래이유유(亘將來而有裕):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영원히 이 비가 남아

     있어 스님의 유덕(裕德)이 빛나기를 바란다는 뜻.

 

비서성489) 배융교위490) 신 이영보491)와 대장492)□ 장자춘493) 등은 왕명을 

받들어 비문을 새기다.

秘書省, 陪戎校尉, 臣, 李英輔, 大匠□, 張子春等, 奉宣, 刻字.

489) 비서성(秘書省):고려 때 축문(祝文)과 경적(經籍)을 맡아 본 관청. 995년(성종

     14)에 내서성(內書省)을 개칭한 것으로 1298년(충렬왕24, 충선왕즉위년)에 비서

     감(秘書監)으로, 1308년(충선왕복위년)에 전교시(典校署)로 예문관에 예속되

     었다가 다시 전교사(典校寺)로 독립되었다. 1356년(공민왕5)에 다시 비서감으

     로, 1362년(공민왕11)에는 전교시로, 1369년(공민왕18) 비서감으로 다시 고치고,

     1372년(공민왕21)에 또 다시 전교시가 되었다.

490) 배융교위(陪戎校尉):고려 때 정9품상(正九品上)인 무관. 995년(현종14)에 설치

     되었다. 배융부위(陪戎副尉)의 바로 위의 관직이다. 「혜소국사탑비문慧炤國師

     塔碑文」 주321)배융교위陪戎校尉 [고려편2] p.334 참조.

491) 이영보(李英輔):전기 미상이다

492) 대장(大匠):탑비 공사의 석공(石工)의 총지휘를 맡은 대장쟁이, 즉 석공 도편

     수. 「혜소국사탑비문」 주323)대장大匠 [고려편2] p.334 참조.

493) 장자춘(張子春):전기 미상이다.

 

【이면裏面】494)

494) [苑]에는 ‘碑陰記’라 하고, [全文]에는 ‘陰記’, [總覽]에는 ‘裏面’이라고 각각 달리

표현되어 있다.

 

고(故) 법천사주(法泉寺主) 지광국사(智光國師)의 비명음기(碑銘陰記)

는 좌(左)와 같다.

故法泉寺主, 智光國師, 碑銘陰記, 如左.

 

현화사주(玄化寺主)이며 승통(僧統)인 소현(韶顯)과 속리사주(俗離寺

主)이며 왕자로써 승통(僧統)인 석정(釋竀)495)과, 

수좌(首座)인 경현(慶玄)

496)과, 삼중대사(三重大師)인 석중(釋重)과,

중대사(重大師)인 관운(灌雲)·홍체(弘諦)·점영(占穎)·융보(融保)·숭

간(嵩幹)·계상(繼相)·승개(僧鎧)·진소(眞召)·상현(尙賢)·승각(承覺)·동

수(同壽)·우상(祐翔)·쌍소(雙炤)·수영(秀穎)·석칭(釋稱)·정신(定神)·각

명(覺明)·관승(冠僧)·원약(元㗉)

497)·우현(右賢)·정여(靗如)

498)·석상(釋

翔)·각지(覺支)·상지(尙之)·석운(釋雲)·방란(邦蘭)·보현(甫賢)·석림(釋

琳)·증상(證祥)·석인(釋因)·품종(稟宗)·우승(祐承)·진령(眞領)·진감(眞

鑑)·세량(世粱) 등 103명과,

대사(大師)인 현개(賢盖)·충약(忠㗉) 등 17명과,

대덕(大德)인 정지(定支)·진보(眞保) 등 22명은 가르침을 받아 계승한

자들이다,

석□□ 승록(僧錄)인 선량(先亮)과 중대사(重大師)인 현점(玄占)·혜종(慧

宗)·양제(梁濟)·광석(廣碩)·경충(慶忠)·염충(念忠)·심월(心月)·응서499)·

민성(敏成)·경조(慶調)·원숭(元崇)·원석(元釋) 등 28명과,

대사(大師)인 의운(義雲)·석승(釋升)·위호(爲顥) 등 23명과,

대덕(大悳)인 숭기(崇器)·섬월(暹月)·홍학(弘學)·균선(均善) 등 25명

은 직책(職責)에 따라 법계(法階)를 첨가(添加) 받은 자이다.

중직(重職)·혜등(惠燈)·홍범(弘範) 등 1,100여 명은 국사의 도덕을 흠

모(欽慕)하여 귀화(歸化)한 자들이요. 

수좌(首座)인 석규(釋虬)·법령(法靈)과, 삼중대사(三重大師)는 점선(占

先)·위현(爲現)·송광(宋光)과,

중대사(重大師)인 승소(昇炤)·성현(成現)·계언(繼言)·안예(安銳)·도

생(道生)·강운(講雲)·이진(利眞)과,

대사(大師)인 섬현(暹現)·주현(周現)·신창(神暢)·관성(貫成)과,

대덕(大德)인 주란(周蘭)·수기(秀㞯)500)·단직(單職)·진약(眞㗉) 등 

52명은 국사를 전후하여 입적한 자들이다.

玄化寺主僧統, 韶顯, 俗離寺主, 王子僧統, 釋 ,

首座慶玄, 三重大師, 釋重,

重501)大師, 灌雲, 弘諦, 占穎, 融保, 嵩幹, 繼相, 僧鎧, 眞召502),

尙賢, 承覺, 同壽, 祐翔, 雙炤, 秀穎, 釋稱, 定神, 覺明, 冠僧,

元㗉, 右賢, 如, 釋翔, 覺支, 尙之, 釋雲, 邦蘭, 甫賢, 釋琳,

證祥, 釋因, 稟宗, 祐承, 眞領, 眞503)鑑, 世梁等, 一百三人,

大師, 賢盖, 忠㗉等, 一十七人,

大德, 定支, 眞保等, 二十二人, 受敎繼業者也.

石504)□□, 僧錄, 先亮, 重大師, 玄占, 慧宗, 梁濟, 廣碩, 慶忠,

念忠, 心月, 應諝, 敏成, 慶調, 元崇, 元釋等, 二十八人,

大師, 義雲, 釋升, 爲顥等, 二十三人, 大悳, 崇器, 暹月, 弘學,

均善等, 二十五人, 隨職加階者也. 

重軄, 惠燈, 弘範等, 一千一百餘人, 慕德歸化者也.

首座, 釋虬, 法靈,

三重大師, 占先, 爲現, 宋光,

重大師, 昇炤, 成現, 繼言, 安銳,505) 道生, 講雲, 利眞,

大師, 暹現, 周現, 神暢, 貫成, 大德, 周蘭, 秀㞯, 單軄, 眞㗉

等, 五十二人, 先後師而沒世者也.

495) 석정(釋竀):문종(文宗)의 제6자로 제4자인 대각국사(大覺國師)의 아우. 

     생몰연 대는 확실하지 않다.      1070년 개성 현화사(玄化寺)에서 혜덕왕사(慧德王師) 

     소현(韶顯)을 은사로 하여 스님이 되었다. 속리산 법주사의 주지로 재임하면서 승통

     의 직을 받았다.

496) 경현(慶玄):전기 미상이다.

497) 원약(元㗉):㗉은 날카로울, 예민할 약字. 약(略), 이(利), 예(銳) 등의 뜻.

498) 정여(靗如):靗은 살필, 들을, 볼 정字.

499) 응서(應諝):諝는 지혜란 뜻. 슬기로울 서字.

500) 수기(秀㞯):㞯는 屺와 같은 字이니, 민둥산 기字. 『전傳』에 “山無草木曰㞯 山有

     草木曰岵”라 하였다

501) [苑]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에는 重임.

502) [總覽]은 召이나 [苑] [全文]의 占이 옳은 듯함.

503) [苑] [總覽]에는 眞. [全文]의 塡은 眞의 오자임.

504) [苑]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에는 石임.

505) [苑]에는 銳이고, [全文]에는 銃이며, [總覽]에는 결락이니, 모두 銳의 오자임. 

 

우건(右件) 문도(門徒)의 개좌(開座)와 직명(職名)을 새겨서 후세(後世)

에 전하도록 한다.

右件 門徒506), 開座職名, 彫錄施行,

506) [苑] [總覽]은 徒이나, [全文]에는 탈락됨.

 

승봉랑(承奉郞) 상서도관낭중(尙書都官郞中)이며 비어대(緋魚袋)를 하

사받은 안민후(安民厚)는 글씨를 쓰고,

대안원년507) 세재(歲在) 을축년(乙丑年) 중추월508)일에 세웠으며,

신 이영보(李英輔)와 신 장자춘(張子春) 등은 글자를 새기다.

承奉郞, 尙書都官郞中, 賜緋魚袋, 臣, 安民厚, □□,

大安元年, 歲在乙丑, 仲秋月日, 樹,

臣, 李英輔, 臣, 張子□509) □.

506) [苑] [總覽]은 徒이나, [全文]에는 탈락됨.

507) 대안원년(大安元年):대안은 요나라 도종 때의 연호. 대안 원년은 1085년(宣宗 2).

508) 중추월(中秋月):음력 8월.

509) [苑]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에는 春임.

 

[비신(碑身)의 높이(高)는 9척8촌(九尺八寸), 폭(幅)은 4척7촌(四尺七寸), 표면의 글자 간격

은 7분(七分), 이면(裏面)의 글자 간격은 9분(九分)이며, 모두 해서(楷書)이다. 제액(題額)의

글자 간격은 3촌(三寸)이며 전서(篆書)이다.]

 

[揭載]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上, pp.419~435.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上, pp.283~291.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 中世 上, pp.517~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