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승비문

04.충주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문(忠州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文)

수선님 2023. 9. 17. 13:16

04.충주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문

忠州淨土寺法鏡大師慈燈1)塔碑文

1) [苑]에서는 鐙이고, [全文]과 [總覽]에서는 燈이나,鐙은 燈의 고자임.

소 재: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

연 대:고려 태조 26년(943)

所 在 : 忠淸北道 忠州市 東良面 荷川里 淨土寺址

年 代 : 高麗 太祖 26年 癸卯(943)

2) 고려(高麗) 중원부(中原府) 고개천산3) 정토사(淨土寺) 교시법경대

사(敎諡法鏡大師) 자등지탑비명(慈燈之塔碑銘)과 서문(序文).

有晉, 高麗4)國5), 中原府, 故開天山, 淨土寺, 敎諡法鏡大師,

慈燈之塔碑銘, 幷序.

2) 진(晉):중국 오대(五代)의 하나, 고조(高祖)인 석경당(石敬塘)은 사타(沙陀) 사

람.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가 되었는데, 후당(後唐)의 말제(末帝)인 이종가(李

從珂)의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할 뻔 하였으나, 거란(契丹) 태종(太宗)의 후원(後

援)을 얻어 후당을 멸하고, 제위(帝位)에 올라 변(汴)에 도읍을 정하고 후진(後

晉)이라 하였다. 그 후 거란에 대하여 신례(臣禮)를 행하여 오다가 2세인 출제

(出帝;重貴) 때 누누이 신례를 행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거란의 태종에게 2세 11

년 만에 멸망을 당했다. 2세란 상조경당(商祖敬塘)과 2세 경유(敬儒:出帝)이니

936년부터 946년까지 유지되었다.

3) 개천산(開天山):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가 있는 산이니, 정토사

는 일명(一名) 개천사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40

「충주목忠州牧」‘산천山川’에 정토산(淨土山)은 일명 개천산이라고 하였다. 이에

미루어 보면 산명(山名)과 사명(寺名)을 통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

증동국여지승람』권8 「죽산현竹山縣」‘불우佛宇’에 의하면 고려 우왕(禑王) 9년

(1383)에 왜구(倭寇)가 난입(亂入)하므로 충주 개천사에 소장하였던 사적(史籍)

을 이곳 칠장사(七長寺)로 옮겼다고 전한다.

4)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麗임

5) [苑], [總覽]은 결락, [全文]에는 결락표시도 없다. [苑] [總覽]은 결락표시이긴

하나, 國字가 아닌가 한다.

태상6) 검교7) 상서8) 좌복야9) 전수병부시랑10) 지한림원사11) 신 최언위12)

가 왕명(王命)을 받들어 찬하고, 사찬13) 전수흥문감경14)비은어대를 하사받은15)

신 구족달16)이 왕명에 의하여 쓰다.

太相檢校尙書, 左僕射, 前守兵部侍郞, 知翰林院事, 臣, 崔彦

撝, 奉敎, 撰,

沙粲, 前守興文監卿, 賜緋銀魚袋, 臣, 具足達17), 奉敎, 書.

6) 태상(太相):태봉(泰封)의 9품관등(九品官等) 중 제3관등으로서 고려 성종 때 향

직(鄕職) 제4품으로 개편되었다. 여기에서는 고려 초기의 관제가 태봉의 관제를

계승한데서 비롯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7) 검교(檢校):고려에서 조선까지 정원(定員)이상으로 벼슬자리를 임시로 늘리거

나 공사(公事)를 맡기지 않고 이름만 갖게 할 경우, 그 벼슬 이름 앞에 붙이던 말

이다.「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문眞澈大師寶月乘空塔碑文」 주2)검교檢校 [고려

편1] p.19 참조.

8) 상서(尙書):고려의 관직.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조(工曹) 등

6부(部)에 두었던 정3품 관직으로서 이 상서 위에 종1품인 판사(判事)의 관직이

있어 재신(宰臣)이 겸임하였으나 실무를 맡는 것은 아니고, 다만 횡적인 연락과

감독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상서가 실제 일을 맡아보는 장관이었다. 후대로 내

려오면서 판서(判書)·전서(典書) 등으로 이름이 자주 바뀌었다. 이는 다음과 같

은 당(唐)나라 관직 제도를 그대로 도입 사용한 것이다.『고려사高麗史』참조.

9) 복야(僕射):관명(官名)이니 좌우복야가 있는데 정2품 벼슬로 상서령(尙書令)의

다음이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선발하여 이 자리에 임용하기도 했고, 항상 왕의

좌우에 있었으므로 경호실장과 같은 소임이었으나 당송이후에는 재상의 직으

로서 천자를 보좌하여 국정(國政)을 의논하는 주재자(主宰者)였다. 「진철대사보

월승공탑비문」 주4)복야僕射 [고려편1] p.19 참조.

10) 병부시랑(兵部侍郞):고려시대의 병부는 태조원년(太祖元年)에 설치되어 영

(令), 경(卿), 낭중(郞中)의 관직체계를 이루었는데, 그 뒤 병부를 병관(兵官)으

로 고치면서 어사(御事) 다음의 벼슬로 시랑(侍郞)을 두었다. 여기에서 병부시

랑이란 관직은 신라의 관제를 계승한 것으로 여겨지지만『삼국사기三國史記』

권38「잡지雜志」7 직관지職官志상에는 병부의 차관(次官)인 대감(大監)을 경덕

왕(景德王) 때 시랑으로 고쳤다가 혜공왕(惠恭王) 때 다시 대감으로 개칭하였다

고 한다.

11) 한림원(翰林院):신라의 한림대(翰林臺)에 소속한 관직으로 후에 학사(學士)로

개칭되었는데, 대조서생(待詔書生) 등과 함께 외교문서를 관장하였다.「적인선사

조윤청정탑비문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文」 주6)한림랑翰林郞 [신라편] p.79 참조

12) 최언위(崔彦撝):최인연(崔仁渷)의 옛 이름.

13) 사찬(沙粲):신라 17관등 중 제8관등으로서 고려 초기까지 이를 사용한 듯하다.

14) 흥문감경(興文監卿):『삼국사기』권40「잡지」직관지하에는 신라의 미상관명(未

詳官名)으로 보이나, 신라 말부터 설치되었던 문한기구(文翰機構)에 속한 관직

으로 추측되고 있다.

15) 비은어대(緋銀魚袋):당(唐)나라의 관리들은 관품의 고하(高下)에 따라 관복의

색깔과 허리에 차고 다니는 어대(魚袋)의 종류가 달랐다. 3품 이상은 자색(紫色)

관복과 금어대(金魚袋), 4·5품은 비색(緋色) 관복과 은어대(銀魚袋), 6·7품은

청색(靑色) 관복과 동어대(銅魚袋), 그리고 8품 이하는 황색(黃色)의 관복과 철

어대(鐵魚袋)로 규정되어 있었다.「진경대사보월능공지탑비문眞鏡大師寶月凌

空之塔碑文」 주4)자금어대紫金魚袋 [신라편] p.347.

16) 구족달(具足達):생몰년 및 전기미상. 고려시대 초의 서예가. 한윤(韓允)·민상

제(閔賞濟) 등과 함께 신라말·고려초 구법(歐法:구양순체(歐陽詢體)를 말한다)

의 대가로 평가된다.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그 시조는 구성길(具成吉)이고, 자

(字)는 완지(完之)이다. 원래는 송나라에서 대부(大夫)를 지냈던 구목(仇牧)의

후예인데,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상고할 수 없다. 구성길은 고려조의

공신(功臣)으로서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고, 의창(義昌:창원)군에 봉해

짐으로써 그의 후손들이 창원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까지 후

손들이 계속 구성(仇姓)을 써 왔으나, 정조(正祖) 때 왕으로부터 구성(具姓)을

하사 받은 후 시조인 성길에 이르기까지 소급하여 구씨(具氏)로 개성(改姓)하게

되었다.「법경대사자등탑비法鏡大師慈燈塔碑」와 강릉 보현사의「낭원대사오

진탑비朗圓大師悟眞塔碑」의 글씨를 썼는데,「낭원대사오진탑비」에서는 구족

달(仇足達)이라고 쓰고 있다.「낭원대사오진탑비문朗圓大師悟眞塔碑文」주5)

구족달具足達 [고려편1] pp.115~116 참조

17)「낭원대사오진탑비문」을 쓴 구족달(仇足達)과 같은 사람임.

대저 새벽달은 높이 떠올라 사방(四方)의 밖에 있는 눈까지 비추고, 봄

바람은 멀리 불어 먼지를 천령(千嶺)의 끝까지 쓸어버린다. 그러므로 목

성(木星)이 밝게 나타나서 일어나는 현무18)를 흩어 버리고, 청훈19)은 멀리

까지 비추어 방서20)의 법운(法雲)을 일으키니, 혹은 물색(物色)을 얼게 하

고, 때로는 따뜻한 햇빛으로 녹여 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태평세계(太平世

界)의 아름다움을 모아 리왈21)의 빛을 격발함일세. 그런 까닭에 이기22)

서로 돕고 삼광23)이 함께 조화(助化)하니, 가히 하늘에 달린 일광24)은 모든

것들의 의지(依止)와 선망(羨望)이 된다. 진리(眞理)를 넓히는 것은 언어문

자(言語文字)에 있으니, 언어문자로써 실상(實相)을 찾아야 한다. 그저 시

험 삼아 말하자면 큰 보배 덩어리만이 보배가 아니요,25) 기로(岐路)에서

방황하는 사람에게는26) 오직 촌음(寸陰)의 시간도 귀하기 그지없다. 아무

도 찾지 못하는 황제(黃帝)의 굉주(宏珠)를 눈먼 소경인 망상27)이 추로(秋

露)에서 찾아냈다.

原夫, 曉月遐昇, 照雪於四方之外, 春風廣被, 揚塵於千嶺之

旁. 然則木星著明, 散發生之玄霧, 靑暈迴耀, 浮芳序之法雲,

或沍色凝寒, 或陽和解凍. 聚此太平之美,28) 激29)于離曰30)之暉,

所以, 二氣相承, 三光助化, 可謂麗天之影, 瞻31)望所宗, 此則

弘之在言, 拾此於實, 嘗試論之, 尺璧非寶, 亡羊則唯貴寸陰.

玄珠是珍, 罔象則眞探秋露.

18) 현무(玄霧):검은 안개이니, 곧 상서롭지 못한 징조를 나타내는 검고 어두운 안개.

19) 청훈(靑暈):태양 주변에 푸른색 해무리. 곧 길상(吉祥)의 징조를 나타내는 상징

(日月傍氣).

20) 방서(芳序):만화(萬花)가 방창(芳暢)하는 좋은 계절이란 말이니, 곧 만물이 약

동하는 봄철을 가리킴. 경괄(敬括), 「화악루부花萼樓賦」, “參歲賦兮徒延佇 懷明

君兮變芳序”.

21) 리왈(離曰): revata. 나한(羅漢)의 이름이니, 부처님 제자 중 좌선제일(坐禪第

一)로 일컬어진다. 리바다(離婆多), 리월(離越) 등으로 일컫는데, 성수(星宿) 또

는 실수(室宿) 등이라 번역된다. 이십팔수중(二十八宿中) 두우녀허위실벽(斗牛

女虛危室壁)인 실성(室星)에 해당된다. 그의 부모가 이 별에 기도하여 낳았다고

하여 이름한 것이다.『법화문구法華文句』권2(대정장34, p.16b29), “離婆多 亦云

離越 此翻星宿 或室宿.”

22) 이기(二氣):음(陰)과 양(陽)이다.『회남자淮南子』「설산훈說山訓」, “天二氣則成

虹 地二氣則泄藏 人二氣則成病”.

23) 삼광(三光):일, 월(月), 성(星) 삼광이니, 『장자莊子』「설검說劒」에 “上法圓天 以

順三光(日月星光)”이라 한다.

24) 리천지영(麗天之影):여(麗)는 음(音)이 리니, 걸릴 리字. 즉 하늘에 걸려 있는

해와 달과 별의 광명(光明). 청량징관(淸涼澄觀), 『화엄경소華嚴經疏』「화엄경왕

복서華嚴經往復序」(대정장35, p.503b10)에 “尋斯玄旨 却覽餘經 其猶杲日麗天 奪

衆景之耀 須彌橫海 落群峯之高”라 하였다.

25) 척벽(尺璧):불귀척벽중촌음(不貴尺璧重寸陰)의 준말. 척벽이란 직경일척(直徑

一尺)이나 되는 큰 보옥(寶玉).『회남자』「원도론原道論」에 “聖人不貴尺之璧 而

重寸之陰 時難得而易失也”라 하였고,『천자문千字文』에서는 “尺璧非寶 寸陰是

競”이라 하였다.

26) 망양(亡羊):다기망양(多岐亡羊)의 준말. 달아난 양을 찾으려 할 때 갈림길이 많

아 이리저리 찾아 헤맨다는 뜻이다.

27) 망상(罔象):눈먼 소경의 이름.『장자』「천지天地」에 나오는 말이다. 황제가 적수

를 구경하다가 구슬을 잃었는데 아는 것이 많은 지(知), 눈이 밝은 이주(離朱),

말 솜씨가 좋은 끽후(喫詬) 등을 시켜 찾게 했으나 찾지 못하였고, 장님인 상망

이 이를 찾았다는 고사이다. “黃帝遊乎赤水之北 登乎崑崙之丘而南望 還歸 遺其

玄珠 使知索之而不得 使離朱索之而不得 使喫詬索之而不得也 乃使象罔 象罔得

之 黃帝曰 異哉 象罔乃可以得之乎”. 말 없는 가운데의 말과 법 없는 가운데의 법

은 현묘하여 언어문자와 사량계교(思量計較)인 세상의 총명으로는 터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문」 주43)득적수소유(得赤水所遺) [신라

편] p.86;「진공대사보법탑비문眞空大師寶法塔碑文」 주69)적수탐주(赤水探珠)

[고려편1] p.97 등 참조.

28)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은 美임.

29) [苑]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은 激임.

30) [苑] [全文] [總覽]의 日은 曰의 오자임.

31) [苑] [總覽]은 瞻. [全文]에는 明이나 瞻의 오자임.

그러므로 유교(儒敎)의 골풍(骨風)은 오직 삼백여 수의 시 속에 담겨 있

고, 노교(老敎)는 오천여 언의 『도덕경道德經』에 실려 있다. 공자는 인의

(仁義)의 근원을 말하였고, 노담(老聃)은 현허32)의 이치를 풀이하였다. 비

록 망(忘) [결락]을 염(念)하기는 하나, 감히 진리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

겠는가. 이러한즉 세계인 성중(城中)의 모든 종교33)와 방내(方內)의 모든

담론34)이 어찌 정각(正覺)의 도를 이루고 일심(一心)을 알고서야 가히 얻

어지는 것과 같으며,35) 진여(眞如)의 성(性)이 청정하여 과거, 현재, 그리

고 미래인 삼제(三際)에 걸쳐 있으나 다르지 않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으

리요.36) 맑은 지혜로 얻어진 육종신통(六種神通)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하

고, 오롯한 삼매(三昧)는 취할 것도 행함도 없는 경지인 것이다. 대개 방편

(方便)의 문을 연유하는 것이 마치 비미(秘微)의 뜻을 알게 하는 것과 같

으니, 모든 사물의 뜻을 잘 가리켜 마음 속에 진리가 있음을 알게 하는 것

이다.

故知儒風則詩惟三百, 老敎則經乃五千. 孔譚仁義之源, 聃37)

演玄虛之理. 然而雖念忘□,38) 敢言得理. 此則域中之敎, 方內

之譚, 曷若正覺道成, 知一心之可得, 眞如性淨, 在三際之非

殊. 故知澡慧六通, 不生不滅, 凝情三昧, 無取無行, 盖因方便

之門, 猶認秘微之義, 事惟善誘, 心在眞宗.

32) 현허(玄虛):현(玄)하고 허(虛)한 진리(眞理)를 형용하는 말. 심히 오묘하여 엿

볼 수 없으며, 따라서 허무(虛無)하고 무위(無爲)하다는 노자(老子)의 도(道)와

장자(莊子)의 설(說)을 지칭함.『한비자韓非子』「해로解老」 , “聖人 觀其玄虛 用

其周行 强字之曰道”라 하다.

33) 역중지교(域中之敎):역중. 즉 세계속의 모든 종교를 망라하여 지칭하는 말.

34) 방내지담(方內之譚):사방(四方). 즉 국내의 모든 학설을 총칭하는 말.

35) 정각운운(正覺云云):불교의 교리가 가장 심오하다는 말.

36) 삼제지비수(三際之非殊):과거(過去)·현재(現在)·미래(未來)인 삼제(三際)가

시간적으로 전후(前後)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同時)라는 말. 유식종

(唯識宗)에서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인 사상(四相)이 시간적으로 생(生)은 과거,

주(住)와 이(異)는 현재, 멸은 미래로 보지만, 성종(性宗)에서는 사상이 전후차

별(前後差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과거와 미래가 동시(同時)라고 본다. 고로

‘生卽死 死卽生’이라 하며, 또한 ‘과거무량겁(過去無量劫)을 안치미래겁(安置未

來劫)’이라고 하였다.

37) [苑]에는 聃. [全文]에는 이나 聃의 오자임.

38) [苑] [全文] [總覽] 모두 결락임.

그러나 지극(至極)의 도는 희하고 이하여,39) 말과 생각으로서는 능히 알

수 없으며, 현종40)의 이치는 멀고도 아득하여41) 명언(名言)으로는 능히 터

득할 수가 없다.42) 이런 까닭에 공자(孔子)·노자(老子)·장자(莊子)가 각

기 자신의 교(敎)인 일방(一方)에만 집착하니 마침내 삼교(三敎)가 서로

통해서 돌아오지 못한다.43) 언어문자 밖에서 혜업(慧業)을 닦는 것은 마

치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44)를 쫓다가 맑은 연못가에 다다르게 되며, 바

다 속에 놀던 거북이가 물 위에 뜬 나무 조각을 만나는 것과 같다 하겠다.

법(法)의 본체(本體)는 본래 생(生)하는 것이 아닌데 망견(妄見)이 일어남

으로 인하여 가히 취할 대상을 보게 되는 줄을 깨달으면, 떳떳하고 여여하

고 시원한 법우(法雨)를 만나게 되고, 문득 뜨거운 번뇌가 사라지게 되니,

기꺼이 미진(微塵)과 같은 많은 대중을 만나서 미혹한 고해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然而至道希夷, 匪稱謂之能鑒, 玄宗杳邈, 非名言之所鈐. 於

是, 各守一隅, 難通三返. 筌蹄45)之外, 慧業所資, 而又雖渴鹿

趣炎, 謂至淸池之畔, 盲龜游沼, 猶逢浮木之中. 則知法本不

生, 因生起見, 見其可取法, 則常如然, 則淨零法雨之滋, 便淸

熱惱, 虔謁微塵之衆, 俄濟迷流.

39) 희이(希夷):「보조선사창성탑비문普照禪師彰聖塔碑文」 주10)희이希夷 본서

p.57 참조.

40) 현종(玄宗):선종을 가리킴.

41) 묘막(杳邈):진리는 넓고 깊으며, 또한 아득하고 멀어서 터득하기 어렵다는 말.

42) 소검(所鈐):검(鈐)은 잡아당겨 붙잡는다는 뜻. 또는 터득한다는 뜻.

43) 각수일우난통삼반(各守一隅難通三返):공자와 노자 및 장자가 각기 자신의 교

(敎)인 일방(一方)에만 집착하여 삼교(三敎)가 서로 통해 돌아볼 수가 없다는 뜻.

44) 취염(趣炎):염(炎)은 양염(陽炎)의 준말이니, 봄철에 아롱거리는 아지랑이. 즉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물인 줄로 알고 그 곳으로 찾아간다는 뜻.

45) [苑] [總覽]은 蹄. [全文]에는 蹏이니 蹄의 고자(古字)임.

보리(菩提)와 열반과 법성(法性)은 상주(常住)하는 불멸의 법이니, 이것

으로써 불토(佛土)를 장엄하고 중생을 깨닫게 하며, 천상과 인간을 모두

제도하고 대승보살을 교화할 때에 비로소 묘용(妙用)이 자재(自在)함을

생각할 수 있으며, 가히 만행을 두루 정진하였다고 할 수 있다.46) 그러므로

옛날 여래(如來)께서 5비구를 위하여 3승의 교리를 말씀하심으로부터 45

년 동안 중생을 교화하시다가 교화의 인연(因緣)이 끝남으로써 대중을 모

아놓고 내외의 호법(護法)을 당부하고 열반에 들고자 할 때,47) 무상(無上)

의 법인(法印)을 비밀리 가섭(迦葉)에게 전하면서 널리 세간에 유포토록

하라 하시고, 이어서 호념(護念)하고 근수(勤修)하여 법인인 혜명(慧命)을

영원히 상속하여 단절함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菩提涅槃, 法性常住, 用此莊嚴佛土, 成就衆生, 度天人, 敎

菩48)薩, 方思妙用, 可謂周勤. 然則昔者, 如來爲五比丘, 說三

乘敎, 化緣已畢, 尋以遷儀, 臨涅槃之時, 以無上法寶, 密傳迦

葉, 流布世間曰, 護念勤修, 無令斷絶, 自49)大.50)

46) 주근(周勤):해야할 일(萬行)에 최선을 다하여 두루 부지런히 정진함. 즉 중생을

제도하는 일에 전력(全力)하였다는 말. 예컨대 나라를 위해 일편단심(一片丹心)

으로 근무하는 것을 근왕(勤王)이라 한다.

47) 천의(遷儀):천화(遷化:入寂)하는 거동. 즉 모습.

48)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菩임.

49)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自임.

50)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大임.

가섭존자가 법안(法眼)을 전해 받고는 다시 아난(阿難)에게 전해 주었

다. 이로부터 조조(祖祖)가 서로 전하며 심심(心心)이 함께 보전되어 왔다.

그 중에 응진보살(應眞菩薩)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원각대사51)인 달마스

님이다. 그는 동토(東土)인 중국으로 건너와서 선법(禪法)을 전파하려 하

였으나, 그 기틀에 맞는 근기(根機)를 만나지 못하여 법을 전하지 못하다

가 혜가(慧可)를 만나서야 비로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신의(信衣)를 전

해 주었다. 당나라 때 이르러 정통으로 승습(承襲)한 자가 여섯이니, 달마

는 혜가에게,52) 혜가는 승찬(僧璨)에게, 승찬은 도신(道信)에게, 도신은 홍

인(弘忍)에게, 홍인은 혜능(慧能)에게로 전승하였다. 혜능 이후에 양계(兩

系)로 나누어졌으니, 하나는 남악회양(南嶽懷讓)의 계파요, 다른 하나는

청원행사(靑原行思)의 계통이다.

迦葉, 得其法眼, 付屬阿難. 祖祖相傳, 心心共保. 爰有應眞菩

薩, 圓53)覺大師. 東54)□中□, 非人不授. 至唐承襲者, 竊惟六

人, 摩傳可, 可傳璨, 璨傳信, 信傳忍, 忍傳能. 能其後分而爲

二, 其一曰讓, 其一曰思.

51) 원각대사(圓覺大師):달마대사(達磨大師)의 시호(諡號)이니, 당나라 대종(代宗)

임금이 추증한 시호이다.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문」 주130)원각조사圓覺祖師

본서(本書) p.133;「진공대사보법탑비문」 주17)원각대사 [고려편1] p.92 참조.

52) 마전가운운(摩傳可云云):달마(達磨:?~528)는 2조혜가(二祖慧可:487~593)에게

전법(傳法)하였고, 혜가는 3조승찬(三祖僧璨:?~606)에게 전하였으며, 승찬은 4

조도신(四祖道信:580~651)에게, 도신은 5조홍인(五祖弘忍:602~675)에게, 홍인

은 6조혜능(六祖慧能:638~713)에게 전법하였다. 혜능의 족하(足下)에 2대산맥

(二大山脈)으로 나누어졌으니, 하나는 남악회양(南嶽懷讓:677~744)이요, 다른

하나는 청원행사(靑原行思:?~740)이다.

53) [總覽]에는 圓. [苑] [全文]의 同은 圓의 오자임.

54) [全文] [總覽]에는 東. [苑]의 惠는 東의 오자임.

이 양계의 밑으로 전승의 계보가 소소(昭昭)하니 어찌 다 말할 수 있으

리오. 상법(像法)과 말법시대55)에 이르러서는 세상이 경박하고 거짓되어56)

대도(大道)는 자취를 감추고 미언(微言)은 단절되었으니, 이러한 시대에

기묘함을 탐색하는 상근기(上根機)와 진리에 계합한 진인(眞人)이 아니면

어찌 퇴폐한 풍속을 바로잡고 다시 법륜(法輪)을 중흥할 수 있겠는가. 반

드시 진리의 세계로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고 마음을 고요한 곳에 두고

정진하는 출중한 사람이 때때로 출세(出世)하여 그 시대에 있게 되는 것

이다.

其下昭昭, 此則何述焉. 洎于像末, 逾57)益澆訛, 大道云喪, 微

言且絶, 則非探奇上士, 契理眞人, 何以一匡頹俗, 再□法輪.

必有涉進玄58)鄕, 心行靜處, 時時間出代.

55) 상말(像末):불법(佛法)의 삼기중(三期中)에 상법(像法)과 말법시대(末法時代)

를 지칭함.

56) 요와(澆訛):인심(人心)이 경박(輕薄)하여 순박(醇朴)함이 없다라는 뜻. 백거이

(白居易)의 「요박시澆朴詩」에 “人漸澆訛 不反質樸”이라 하다.

57)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逾임.

58) [苑] [總覽]에는 玄. [全文]의 元은 玄의 오자임.

여기에 그러한 스님이 있으니, 법휘는 현휘(玄暉)이고, 속성은 이씨(李

氏)다. 그의 선조는 주조59) 때 비덕인 주하사60)벼슬을 지낸 노자(老子)의

후손(後孫)이었다. 영고현(榮苦縣)을 도망쳐 나왔는데, 인걸(人傑)은 지령

(地靈)이라 하니, 마치 맹자61)가 태어난 추향(鄒鄕)과 같았다.62) 하늘은 좋

은 임금이 나타나 세상을 잘 다스리지 못함을 탄식한다고 하였으니,63)

64)와 같은 사람이 아니면 이를 알 수가 있겠는가. 성당(聖唐)이 요동(遼

東)을 원정할 때 먼 조상(祖上)이 종군하여 여기까지 왔다가 고역(苦役)에

얽혀 되돌아가지 못하고 정착하였으니, 지금의 전주(全州) 남원(南原)이

다. 아버지이 휘는 덕순(德順)이니 특히『노자』와『주역』65)에 정통하였고,

거문고와 시를 좋아하였다. 백구(白駒)가 쓸쓸한 공곡(空谷)에 있는 것처

럼 미처 재질이 알려지지 않아 조정의 부름을 받지 못하던 야인시절66)

보냈으나, 학(鶴)이 울면 새끼는 보이지 않는 알 속에서 화명(和鳴)하여

부화할 때와 같이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어도67)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더

욱 고상하게 살았다.

有其人者焉, 大師法諱68)玄暉, 俗姓, 李氏. 其先周朝, 閟德柱

史. 逃榮苦縣, 地靈知69)有, 猶龍之聖鄒70)鄕. 天寶, 昔聞歎鳳

之君, 故言匪魯司寇, 無以知之者也. 遠祖, 初自聖唐, 遠征71)

遼左, 從軍到此, 苦役忘歸, 今爲全州南原人也. 父諱德順, 尤

明老易, 雅好琴詩. 當白駒捿谷之時, 是鳴鶴在陰之處, 高尙其

事, 素無䆠情.

59) 주조(周朝):주나라 조정(朝廷)이니, 주나라 시대란 뜻이다.

60) 비덕주사(閟德柱史):주하사(柱下史)의 준말이니, 노자(老子)를 가리킴. 노자가

젊었을 때 주하사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61) 용지성(龍之聖):맹자를 가리킴인 듯하다.

62) 추향(鄒鄕):맹자가 태어난 곳을 가리킴이니, 전국(戰國) 때 노(魯)나라의 지명

(地名)이다.

63) 탄봉(歎鳳):훌륭한 왕자가 나오지 않아 세상이 잘 다스려지지 못함을 탄식하는

말.『논어』「자한子罕」에 “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라 하다.

64) 노사구(魯司寇):사구는 중국 고대 6경 중 하나로서 형벌(刑罰)과 경찰(警察)을

맡아보던 관직이다. 공자(孔子)가 젊어서 이 벼슬을 역임하였으므로 공자를 가

리킴. 최치원이 지은「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

寇之旨也”라 하다.

65) 노역(老易):『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과 『주역周易』.

66) 백구서곡(白駒棲谷):백구공곡(白駒空谷)과 같은 말. 백구는 흰빛 털을 가진 작

은 말. 서곡이란 쓸쓸한 공곡에서 놀고 있다는 뜻이니, 재질(材質)을 인정받아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초야(草野)에 묻혀 있는 것을 비유하는

뜻.『시경詩經』「백구白駒」에 “皎皎白駒 在彼空谷”이라 하다.

67) 명학재음(鳴鶴在陰):명학재음 기자화지(鳴鶴在陰 其子和之)의 준말. 어미 학

(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면 새끼 학이 이에 화답(和答)하며 부화하여 나온

다는 말이니, 덕(德)이 있는 사람은 때가 되면 저절로 드러나 많은 사람을 감화

(感化)시킨다는 비유.『주역』「중부中孚」에 “鳴鶴在陰 其子和之 我有好爵 吾與爾

靡之”라 하다.

68)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은 諱임.

69) [苑] [總覽]에는 知. [全文]의 如는 知의 오자임.

70) [總覽]에는 鄒. [苑]의 , [全文]의 郡은 鄒의 오자임.

71)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은 征임.

머니72)는 부씨(傅氏)니 잠깐 낮잠을 자며 꿈을 꾸었는데, 어미(阿奶)가

아들을 위하여 보시(布施)하는 것은 구마라타73)가 감득(感得)한 상서74)

증명하는 것이고, 어머니에게 아들이 되게 모자의 인연을 맺게 해 달라고

간청한 것은 마치 학륵나존자(鶴勒那尊者)75)에게 나타내 보인 서상(瑞祥)

과 같았으니, 이미 돌아간 현인(賢人)들의 상서가 모두 그러하였듯이 나

또한 그러하리라 하였다. 13개월 동안 모태 중에 있다가 건부 6년76) 1월77)

1일 오시에 탄생하였다. 스님은 선천적으로 성자(聖姿)를 지니고 태어났

으며,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하는 장난은 하지 않았다. 불상이나 어른을 보

면 합장하고, 앉을 때는 가부좌(跏趺坐)를 맺고 앉으며, 땅과 담벽 등에는

불상(佛像)과 탑형(塔形)을 그렸다. 고기에게 물을 먹여 살리고 벌레들에

게는 먹이를 주어 구제하기도 하였다. 속가(俗家)에 살고 있는 것이 마치

소 발자국에 고인 적은 물에 사는 고기와 같아서 답답함을 느꼈으니,78)

고 깊은 망망대해에 놀고자 하여79) 진세(塵世)인 속가를 버리고 입산할 것

을 결심한 다음 부모에게 허락해 주실 것을 간청하였다. 어버이는 창자를

자르는 듯한 아픔을 참고서 말하기를 “전일(前日)의 꿈을 생각하니 참으

로 부처님과의 인연이 부합하는구나. 이미 숙세(宿世)부터 깊은 인연이었

다고 생각하며 전세(前世)의 불연(佛緣)으로 나 또한 제도될 터이니, 갈 길

을 너에게 맡기나 속히 불위(佛位)에 올라 삼계(三界)의 도사(導師)와 사

생(四生)의 자부(慈父)되도록 하라”고 하였다.

母傅80)氏, 假寐81)之時, 須臾得夢, 阿㜷82)布施, 證鳩摩羅駄之

祥, 聖善因緣, 呈鶴勒夜那之瑞, 歿賢曾83)爾, 唯我亦然. 況又

在孕之時, 十有三月, 免懷之際, 元正伍時, 以乾符六年, 孟陬

之朔, 誕生. 大師生有聖姿, 幼無兒戲. 行惟合掌, 坐乃趺跏,

畵墁84)堆砂, 必模像塔. 分飡汲水, 須給虫魚. 然則因覩牛涔85),

冀游鼇壑, 潛辭塵世, 實欲出家, 聞於二86)親, 志切且87)慊. 父母

謂曰, “今思前夢, 宛若同符, 始覺囊因, 猶如合契, 汝前佛所

度, 汝亦度之, 任你88)東西, 早登佛位, 導師慈父.”

72) 아미(阿㜷):어머니 또는 유모(乳母)의 뜻임.

73) 구마라타(鳩摩羅䭾): Kumāralāta. 구마라타(鳩摩羅陀) 또는 구마라다(鳩摩羅

多)라고도 하니, 서천(西天) 28조 중 제19조이다. 인도 대월지국(大月氏國) 바라

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과거 자재천인(自在天人)이었으나, 보살의 화려한 화만

영락(華鬘瓔珞)을 보고 문득 애착심을 일으킨 탓으로 도리천(忉利天)으로 타락

墮落)하였다. 제석천왕(帝釋天王)의 『반야경』 설법함을 들은 공덕으로 범천(梵

天)으로 올라갔다가 그 후 중천국(中天國)으로 가서 사야다(闍夜多)를 만나 그

에게 전법하고 제자로 삼았으니, 그가 바로 제20조인 사야다존자(闍夜多尊者)

이다. 『경덕전등록』권2「구마라다전鳩摩羅多傳」(대정장51, p212c20).

74) 증구마라타지상(證鳩摩羅馱之祥):구마라타가 감득한 상서(祥瑞)를 증명한다

라는 뜻이니, 법경대사(法鏡大師) 현휘(玄暉)가 태어날 때 어머니의 태몽에 나

타났던 일이 마치 구마라타가 입태(入胎)할 때의 태몽과 같았음을 증명한다

라는 뜻이나, 구마라타의 전기에는 그럴만한 내용이 없고, 제18조인 가야사다

(伽倻舍多)의 전장(傳狀)에 이와 비교할 수 있는 태몽설이 있으니, 혹시 비문

(碑文) 찬자(撰者)나 또는 자료를 제공한 사람이 가야사다를 구마라타(鳩摩羅

䭾)로 혼돈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가야사다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마갈제국(摩竭提國) 사람으로 성(姓)은 울두람(欝頭藍,) 아버지는 천람(天藍),

어머니는 방성(方聖)이다. 어느 날 어머니의 꿈에 대신(大神)이 거울을 건네주

는 꿈을 꾸고 임신한 지 7일만에 탄생하였다. 피부가 마치 유리와 같아서 목욕

하지 않아도 저절로 향기롭게 깨끗하였다. 어릴 때부터 한정(閑靜)함을 좋아

하여 말하는 것이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어느 날 거울을 가지고 밖에 나가 놀

다가 우연히 제17조인 승가난제(僧伽難提)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어 수행 끝

에 대존자(大尊者)가 되었다. 그 후 대월지국으로 가서 구마라타를 만나 그를

발심(發心)케 하여 제자로 삼아 전법하였으니 그가 바로 제19조인 구마라타

이다.

75) 학륵야나(鶴勒夜那): Haklenayaśas. 학륵나(鶴勒那)라고도 하니, 서천 28조 중

제23조. 스님은 대월지국 사람. 바라문종성, 아버지는 천승(千勝), 어머니는 금

광(金光)이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늦게까지 아들이 없어 칠불(七佛)에 기도를

하던 중, 어머니의 꿈에 수미산정(須彌山頂)에 있다는 한 신동(神童)이 금반지

를 가지고 와서 ‘이것은 제가 가지고 온 것이니 받아 주십시오’라는 태몽을 꾸고

잉태하여 태어났다. 그 후 22세 때 출가(出家)하였고, 30세 때에 이르러 제22조

인 마나라존자(摩拏羅尊者)를 만나 그로부터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해 받고

제자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제23조 학륵나존자(鶴勒那尊者)이다. 『경덕전등록』

권2「학륵나전」(대정장51, p.214a29).

76) 건부육년(乾符六年):당의 희종(僖宗) 연호(年號).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5

년(879)이다.

77) 맹추(孟陬):음력 1월의 별칭(別稱)이다.

78) 우잠(牛涔):우적지잠 무척지리(牛跡之涔 無尺之鯉)의 준말이니, 소 발자국에 고

인 작은 물에는 대어(大魚)가 살 수 없듯이, 협소한 곳에는 대기(大器)가 나지 못

한다는 비유. 『회남자』「숙진훈俶眞訓」에 “夫牛蹄之涔 無尺之鯉 塊阜之山 無丈

之材 所以然者 皆其營宇狹小 而不能容巨大也 同氾論訓 牛蹄之涔 不能生鱣鮪

而蜂房不容鵠卵”이라 하다.

79) 오학(鼇壑):오산(鼇山)이라고도 함. 큰 바다를 가리킴이니, 『열자列子』「탕문湯

問」에 보인다. 이 오산 아래의 대학(大壑)을 지칭한다. 「보조선사창성탑비문」

주58)오학鼇壑 본서(本書) p.66참조.

80) [全文] [苑]에는 傅. [總覽]의 傳는 傅의 오자임.

81) [全文]에는 寐. [苑] [總覽]의 는 寐와 同字임.

82) [苑] [總覽]에는 㜷. [全文]의 姿는 㜷의 오자임.

83)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曾임.

84) [苑] [全文] [總覽]의 墁은 [拓本]인 [大系]에는 마멸(磨滅)되어 판독할 수 없음.

85) [苑] [總覽]에는 涔. [全文]의 은 涔의 오자임.

86)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은 二임.

87)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은 且임.

88) [苑] [總覽]에는 你. [全文]의 徐는 你의 오자임.

그리하여 스님은 영원히 진세를 떠나 산을 찾고 고개를 넘어 동으로 길

을 가다가 영각산사89)에 이르게 되었다. 심광대사90)를 찾아 법문을 듣고

마음에 크게 얻은 바가 있었다.91) 심광대사가 말하되 “미루어 5조인 동산

(東山)의 법통을 생각하고92) 마치 5조와 6조를 만나서 더욱 환희(歡喜)하

였으니, 어찌 주야93)를 분간할 수 있었겠는가”라 말하고는, “앞으로 나의

도를 천양(闡揚)함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너에게 있다”고 하였다.

便是其人, 所以永遂離塵, 尋山陟嶺東去, 獲投靈覺山寺. 謁深

光大師, 傾盖如新, 忻然自得. “追念東山之法, 實謂得人, 倍

切歡娛, 寧知昏旭, 闡揚吾道, 不在他人.”

89) 영각산사(靈覺山寺):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남쪽에 있었던 절.

90) 심광대사(深光大師):무염국사의 제자이고 대경대사(大鏡大師) 여엄(麗嚴)의 사

형(師兄)이다.

91) 경개(傾盖):길을 가다가 우연히 서로 선망하던 사람을 만나 거개(車盖)를 기울

이고 가까이하여 상담(相談)하는 것을 말한다.

92) 동산지법(東山之法):동산은 중국 근주(靳州)에 있는데, 4조도신과 5조홍인이

주석하던 산이므로 그들의 법통(法統)을 동산지법 또는 동산지지(東山之旨)라

고 한다.「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주83)동산東山 [신라편] p.357;「진철대사

보월승공탑비문」 주74)동산지지東山之旨 [고려편1] p.25 참조.

93) 혼욱(昏旭):혼(昏)은 석양에 지는 해(夜), 욱(旭)은 동산에 뜨는 해(晝)이니, 주

야(晝夜)를 가리킨다.

조종(祖宗)을 살펴보니 숭엄94)의 적자(嫡子)이며, 또한 마곡95)의 법손(法

孫)으로서 족히 성도(聖道)를 알았으니, 그의 전한 바는 조계(曹溪) 6조를

존조(尊祖)로 하여 대대로 서로 마음이 계합하여 법경대사(法鏡大師)까지

이르렀다. 강서(江西)의 법통(法統)이 동국(東國)의 해우96)까지 전파하여

옴에 성주사(聖住寺) 무염회상(無染會上)은 천하에 비길 바가 없었다. 이

에 그의 회하(會下)에서 진리를 탐구하도록 허락받았다. 그 후 부지런히

불교를 연마하여 사문(寺門)97) 밖으로 외출하지 않았으며 항상 초당(草堂)

에 머물렀다. 심광대사(深光大師)께서는 나에게 실천(實踐)을 강조하시고

분별하는 의논(議論)은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니98) 실로 후생가외(後生可

畏)라고 이를만 함이로다.

所以仰惟祖宗, 仍是崇嚴之子, 猶認先系, 亦爲麻谷之孫也, 足

見聖道, 所傳曹溪爲祖, 代代相契, 至于大師, 所以來自江西,

派於海左海隅, 聖住, 天下無雙, 於是, 許其探玄, 殷勤學佛,

不出蓮宇, 常住草堂, 大師實勞我心, 談不容口, 後生可畏.

94) 숭엄(崇嚴):숭령(崇嶺)과 같은 뜻이니, 숭산(崇山) 소림굴(小林窟)에 있었던 달

마대사를 지칭한다.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 “曹溪之冢子 是崇嶺之玄孫”.

95) 마곡(麻谷):마조도일의 제자. 호는 마곡, 휘는 보철(寶徹)이다.

96) 해좌해우(海左海隅):해좌는 동해인 좌측(左側), 해우는 동해의 모퉁이란 뜻이

니, 모두 해동(海東) 즉 신라를 가리킨다.

97) 연우(蓮宇):사원(寺院)을 가리킨다.

98) 실노아심(實勞我心):수행을 지도하는데 있어 몸소 실천 수행함을 강조한다는

말이다.

그 후로부터 스님의 덕은 날로 새로워지니 숙세(宿世)부터 선근(善根)

을 심고 선천적으로 영성(靈性)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99) 그 누가 능히 이

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으리오. 건녕 5년100) 가야산사101)에서 구족계(具

足戒)를 받고부터는 계주(戒珠)가 다시 청정하였고 위의(威儀)가 더욱 엄

전하였다.102) 선서103)의 선(禪)을 닦되 항상 마음104)에 화두(話頭)를 놓지

아니하고,104)문수(文殊)의 지혜에 계합(契合)하여 경계를 비추되 항상 함이

없는 경지에 있었으며, 삼장(三藏)의 문구를 연설하되, 해(解)와 행(行)이

상응(相應)하고, 사분(四分)의 율장105)을 천양하되 부지런히 신과 행106)

함께 닦게 하였다. 그러므로 분별의 문답과 시조(詩調)의 음영(吟詠) 등을

끊고, 하는 말마다 도를 높히며, 말마다 속(俗)된 말은 뱉지 아니하니, 몸

은 마치 진리를 쌓아 놓은 무더기와 같았다. 삼장 속에 내재(內在)한 교리

를 궁구하면서도107) 진리의 당체는 일리(一理) 중에 있으며,108) 반드시 인

을 일으켜 태평성세(太平聖世)를 만들어 중생을 구제하여야 함이니,109)

조(太祖)가 층암 절벽의 벼랑에 떨어지기 직전에110) 비록 성성장구의 운을

탔으나,111) 일양시생(一陽始生)하는 백육양구(百六陽九)의 위난(危難)을

겪게 되었으니112) 화진(火辰)이 땅을 비추며113) 금호114)인 소인배들이 관직

을 맡아 세상을 어지럽게 하였다.115)

其德惟新, 自非宿植善芽, 生知靈性, 其孰能至於此. 乾寧五

年, 受具於伽倻山寺, 旣而戒珠更淨, 油盋116)彌堅. 修善逝之

禪, 靈臺不動, 契文殊之慧, 照境無爲, 演三藏之文, 解行相應,

開四分之律, 勤修兩存. 所以, 問117)詰18)絶吟,119) 吐言尊道, 口

不談俗, 身猶蘊眞. 118) 然則窮理在三, 體元含弌,

120) 必能興仁, 壽域拯物, 阽危此時, 雖聖運三千而艱期百六, 火辰照地,

金虎司方, 此際風聞.

99) 생지(生知):날 때부터 잘 아는 생이지지(生而知之)를 말한다.

100) 건녕오년(乾寧五年):당의 소종(昭宗) 연호. 신라 제52대 효공왕(孝恭王) 2년

(898)이다.

101) 가야산사(伽倻山寺):가야산 해인사를 지칭한다.

102) 유발미견(油盋彌堅):발(盋)은 발(鉢)과 같은 자(字). 계율(戒律)을 굳게 지키

며 위의(威儀)가 점잖다는 말이니, 『부법장인연전付法藏因緣傳』권3에 기름을

가득히 담은 바리때를 문짝 뒤에 달아 놓고 출입(出入)하는 비구(比丘)의 안상

(安詳)과 위의를 시험한 데서 온 말이니, 계율을 지킴이 더욱 견고하다는 말이

다.(「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문」 주56)유발무경油鉢無傾 [고려편1] p.24;「진공대

사보법탑비문」 주60)만유지발滿油之鉢(대정장50, p.306a) 참조.

103) 선서(善逝): sugatha. 불타(佛陀)의 십호(十號) 중 하나이다.

104) 영대(靈臺):마음이 있는 곳. 즉 마음을 가리킨다.

105) 사분지율(四分之律):사분율이란 오부율(五部律) 중의 하나. 사분은 다음과 같

다. 제1분(第一分)은 비구의 250계(戒)와 비구니(比丘尼)의 348계에 따른 연기

(緣起) 및 계상(戒相)을 설(說)한 부분, 제2분은 수계건도(受戒犍度) 및 설계건도

(說戒犍度), 제3분은 안거건(安居犍) 법제도(法第度), 제4분은 방사건도(房舍犍

度)에서 비니증일건도(毗尼增一犍度)까지다. 이지관,『남북전육부율장비교연구

南北傳六部律藏比較硏究』, p.49 참조.

106) 양존(兩存):신(信)과 행(行) 또는 발심(發心)과 수행을 말한다.

107) 궁리재삼(窮理在三):불교를 연구함에는 삼장(三藏)에 있으니, 경(經)·율(律)·

논(論) 삼장에 정통하였다는 말이다.

108) 체원함일(體元含弌):체는 원래 하나 뿐이란 뜻이니, 심체(心體)는 유일(唯一)이

란 말.

109) 수역(壽域):잘 다스려지는 세상. 즉 태평성세를 말한다. 두보(杜甫), “八荒開壽

域 一氣轉洪釣”.

110) 점위(阽危):층암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있는 극히 위험한 상태를 말한다.

『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 “安有爲天下阽危者 若是而上不驚者 世之有饑穰 天

之行也”.

111) 성운삼천(聖運三千):성군(太祖)의 운이 삼천이라는 뜻. 삼천이란 성성장구(盛

盛長久)하다는 말. 또는 많다는 뜻이니, 고려 태조가 신라와 후고구려(弓裔) 및

후백제(甄萱)를 멸망시키고 통일하여 국운이 욱일승천(旭日昇天)으로 성성장구

하다는 말이다.

112) 백육(百六):백과 육이니, 1년 24절기 중에 한식절(寒食節)을 가리킴. 동지(冬至)

로부터 한식까지는 105일, 또는 106일간인데, 동지로부터 일양(一陽)이 시생(始

生)하므로 이를 백육양구(百六陽九)라 한다. 양구는 액(厄)을 뜻하므로, 이 날에

는 질풍(疾風)과 폭우(暴雨)가 있는 날이니, 다시 궁예(弓裔), 견훤(甄萱), 왕건

(王建) 등이 정립(鼎立)하여 전쟁이 계속되었으므로, 그 때의 전쟁상황(戰爭狀

況)을 표현한 것. 원진(元稹),「연창궁사連昌宮詞」, “初過寒食一百六 店舍無煙宮

樹綠”.

113) 화진(火辰):별의 이름이니 화성(火星)이라고도 한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거리

에 있는데, 오혹(五惑) 중의 하나. 오행(五行)에 대비하면 화(火)에 속하는 별이

므로 국민들의 마음이 모두 전쟁과 기근, 질병의 공포에 싸여 있음을 화진조지

(火辰照地)라고 하였다.

114) 금호(金虎):언행이 진실하지 못하여 군자(君子)를 모함하는 소인배(小人輩)를

비유하는 말. 또는 그러한 악행(惡行)을 가리킨다.

115) 금호사방(金虎司方):금호와 같은 소인배들이 지방을 다스리는 관직을 맡고 있

다는 뜻이다.

116) [苑] [總覽]에는 盋. [全文]의 盈은 盋의 오자임.

117)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은 問임.

118) [苑] [全文]에는 詰, [總覽]에는 誥로 어느 字가 맞는지 미상(未詳).

119) [苑] [總覽]에는 吟. [全文]의 命은 吟의 오자임.

120) [總覽]에는 一. [苑]에는 . [全文]에는 弌. 은 弌의 오자이고, 弌은 一의 古字 이다.

이러한 때 남쪽 무주121)가 안전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 곳에 가서 피난하

여 수도하면서 여생을 보내리라고 결심한 대사는 동려(同侶) 11인과 함께

망망한 먼 길을 따라 그 곳에 도착하니, 과연 많은 사람들이 모여 편안하

게 살고 있었다.122) 얼마 지난 후 남해지방(南海地方)에 많은 사찰이 있다

기에 다시 그곳으로 가서 마땅한 정처를 구하러 다니다가 홀연히 도적123)

의 소굴을 만나게 되었다. 물건을 강탈한124) 후 방으로 끌고 가서 차례로

죽이고 스님의 차례가 되어 칼로 목을 치려하였으나, 스님은 신색(神色)이

태연할 뿐만 아니라, 청운(靑雲)의 눈빛은 더욱 빛나서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태연자약(泰然自若)하였다.

南在武州, 此中安處, 可能避125)難, 修保殘生, 所以, 大師與同

侶十一126)人, 行道茫茫, 至于其所, 果然群黎翕集, 所在康寧,

然則竊承南海, 多有昭隄, 實堪駐足, 不久往於彼處, 謂云何以

棲遲者焉居無何, 忽遇綠林, 潛侵玄127)室, 便爲却128)剝, 俱煞129)

同行訖, 次至大師, 大師臨白130)刃而131)神色怗132)然,133) 志靑雲

而目光瑩134)爾, 唯無悚懼, 自若從容.

121) 무주(武州):백제 때 무진주(武珍州)이며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무주로 고쳤

다. 「적인선사비문寂忍禪師碑文」 주1)무주武州 [신라편] p.79.

122) 군려(群黎):백성(百姓), 만민(萬民), 검수(黔首) 등과 같은 뜻이니, 많은 사람을

지칭한다.

123) 홀우녹림(忽遇綠林):녹자(綠字)가 [苑]과 [全文]에는 연자(緣字)로 되어 있으나,

이는 오자임. 녹림(綠林)이란 도적의 별명이니, 왕망(王莽) 때 신시(新市)의 사

람인 왕광(王匡)과 왕봉(王鳳) 등 무뢰한의 도당 수백명이 깊은 산에 숨어 강도

가 되었으므로 도적을 일컬어 녹림이라한다. 『후한서』「유현劉玄」에 “王莽末 南

方饑饉 人庶群入野澤 掘鳧芘而食之 更相侵奪 新市人王匡 王鳳 爲平理諍訟 遂

推爲渠帥 衆數百人 於是諸亡命 馬武王常成丹等 往從之 共功離鄕 聚藏於綠林中

數月間 至七八千人”이라 하다.

124) 각박(却剝):결박하거나 죽이는 것.

125)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避임.

126)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一임.

127) [全文]의 元은 [苑] [總覽]의 玄의 오자임.

128) [總覽]의 卸는 [苑]의 却과 [全文]의 卻의 오자임.

129) [全文]의 然은 煞의 오자임.

130)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白임.

131)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而임.

132) [苑]과 [總覽]에는 怗. [全文]의 怡는 怗의 오자임.

133)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然임.

134) [全文]의 榮은 瑩의 오자임.

그들의 우두머리는 스님의 풍도(風度)가 늠름하며 말소리 또한 절절(切

切)함을 보고는 크게 감격하여 칼을 버리고 함께 절을 하고는 스승으로 모

시겠다고 간청하였다. 승냥이와 이리135)같은 잔혹한 마음을 고치고 예의

(禮義)를 알게 하였으니, 마치 현장법사(玄奘法師)가 서역(西域)의 구법 도

중 국경을 무단 침범한 죄로 죽게 되었을 때 도리어 그들을 교화한 것136)

과, 남양 혜충국사(慧忠國師)가 남양(南陽)으로 가다가 도적의 소굴을 만

났을 때 동행(同行)은 빨리 피하고자 하였으나, 마침내 도적이 칼을 목에

들이댔음에도 저들을 제자로 교화한 것과 같다고 하겠다.137) 대개 선성(先

聖)들이 어려움을 만난 것이 이와 같아서 만리(萬里)가 동풍(同風)이듯이

대사의 악인교화(惡人敎化)도 피차 같은 것이라 하겠다.

魁首, 觀其風度怡怡, 語聲切切, 投劒羅拜,138) 請師事焉, 至於

豺狼革心, 寇賊知禮, 譬如玄奘三藏, 抛西域之爲牲, 慧忠大

師, 免南陽之遇禍. 夫先聖之遭難也, 如彼, 我大師之化人也,

若斯, 萬里同風, 其歸一揆.

135) 시랑(豺狼):승냥이와 이리이니, 인간들 중에 탐욕(貪慾), 무자비(無慈悲), 포악

(暴惡), 잔혹(殘酷)한 자를 비유하는 말. 『맹자』「이루離婁」‘상’에 “嫂溺不援 是豺

狼也”라 하다.

136) 현장삼장포서역지위생(玄奘三藏抛西域之爲牲):현장(玄奘)스님이 구법(求法)

할 때에 인도의 어느 국경(國境)에서 혼자 지나면 국법(國法)으로 사형에 처하

는 법을 범(犯)하고 죽게 되었는데, 태연자약(泰然自若)하여 그들을 교화시킨

사실을 말한다. 『대당고삼장현장법사행장大唐故三藏玄奘法師行狀』(대정장50,

p.215).

137) 혜충대사면남양지우화(慧忠大師免南陽之遇禍):대력(大曆) 8년(773)에 혜충이

남양으로 가다가 적경(賊境)에 빠졌을 때 동행(同行)이 빨리 피하자고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마침내 도적이 칼을 목에 들이댔으나, 스님의 태연자약함을 본 괴

수(魁首)는 칼을 던지고 공손히 절하고 제자가 되었다. 『송고승전宋高僧傳』권

9(대정장50, p.763a24).

138) [苑]의 는 拜의 오자임

그 후 스님은 “내가 여기에 머물게 되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막혀 버리

리라”하시고, 천우 3년139) 해안(海岸)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우연히 당(唐)

나라로 가는 배를 만나 편승(便乘)을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다.140) 목적지

인 피안에 도달하여 이리 저리 서상(西上)하다가, 길을 동양(東陽)으로 돌

려 팽택(彭澤)을 지나 드디어 구봉산(九峯山)에 이르러 경건한 마음으로

도건141)대사를 친견하게 되었다. 마침 대사가 뜰에 서 있었으니142) 절을 하

고 엎드려 미처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143) 대사가 스님을 보고 “사리(闍

梨)는 머리가 희구려”하거늘, 스님이 대답하되 “현휘(玄暉)는 아무리 보아

도 저 자신을 알 수 없나이다”하니, 다시 “무엇을 알지 못한다는 말인가”

하였다.144) 대답하되 “저의 머리가 희다고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라고 하

였다. 대사는 “추억을 더듬어보니 너와 이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금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하였다. 기꺼운 바는 승당(昇堂)하여

대사의 오묘한 경지를 보고 입실해서 참선(參禪)토록 하였는데, 겨우 10

일이 되자마자 심요(心要)를 전해 받아 묵묵히 서로 계합(契合)하였다. 마

치 병의 물을 다른 병에 옮겨 부은 것과 같아서, 중화145)를 갖추어 평이평

직(平易平直)한 마음으로146) 승강(昇降)을 지켰다. 주선(周旋)하는 절조(節

操)가 있었으나, 의리(義理)를 다하지 못하였으며, 사람 노릇을 함에 있어

서는 반쪽 밖에 되지 못하였다.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을 살펴보니

모두 불성(佛性)으로 돌아가 그 본체는 차별이 없어서 함께 일승(一乘)으

로 회통(會通)하는 것이다.

大師其後謂曰, “終居此地, 必滯前程”, 天祐三年, 獨行㳂海,

尋遇乘槎之者, 請以俱西, 以此寓載凌洋. 達于彼岸, 邐迤西

上, 行道遲遲, 路出東陽, 經過彭澤, 遂至九峯山下, 虔謁道乾

大師. 大師廣庭望塵,147) 膜拜方半, 大師問曰, “闍梨頭白”, 對

曰, “玄暉, 目不知闍梨自己”, “爲什勿148)不知”, 對曰, “自己頭

不白.” “追思別汝, 稍似無多, 寧期此中, 更以相遇.” 所喜昇堂

覩奧, 入室叅禪, 纔留一旬, 密付心要, 受玆玄契. 如瀉德 ,

若備中和, 易直之心, 而無升降. 周旋之節, 於義爲非義, 於人

爲半人. 恭惟世間出世間, 皆歸佛性, 體無分別, 俱會一乘.

139) 천우삼년(天祐三年):당의 애제(哀帝) 연호. 신라 제52대 효공왕(孝恭王) 10년

(906).

140) 청이구서(請以俱西):함께 서쪽인 당나라까지 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는 말

이다.

141) 도건(道乾):복건성(福建省) 출신(出身), 속성(俗姓)은 유씨(劉氏), 석상경저(石

霜慶諸 807~888)의 제자. 도건(道虔)이라고도 함. 구봉산(九峯山)에 오랫도안 주

석하였으므로 호(號)는 구봉(九峯), 시호는 대각선사(大覺禪師)이다. 『경덕전등

록』권16(대정장51, p.329a13).

142) 망진(望塵):거리에 사람과 수레가 왕래하느라 먼지가 일어나는 길을 바라본다

는 말이니, 귀한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먼지 날리는 길가를 바라본다는 뜻.

『진서晉書』「석숭石崇」에 “石崇與潘岳 諂事買謐 廣成君每出 崇降車路左 望塵而

拜”라 하다.

143) 막배방반(膜拜方半):두 손을 들고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 또는 장궤(長跪)하고

절하는 것. 나무(南無 namo/namas)는 나모(南謨), 나막(南膜), 나모(南牟), 나

모(那謨), 나모(娜母), 납막(納幕) 등 여러 가지로 음사되는데, 귀명(歸命), 경례

(敬禮) 등으로 번역한다. 방반(方半)이란 절을 하려고 엎드려 미처 일어나지 않

고 반쯤만 한 상태이다.

144) 습물(什物):습마(什摩), 또는 심마(甚摩), 즘마(怎麽) 등과 같은 뜻이니, ‘무엇’이

란 말이다. [總覽]과 [全文]에 습물(什勿)로 되었으나, 이는 습물(什物)의 오자임.

145) 중화(中和):과(過)와 불급(不及)이 없다. 중정(中正)의 도(道)를 말한다. 『중용

中庸』에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 致中和天地位焉 萬物育

焉”이라 하다.

146) 이직(易直):평이평직(平易平直)의 준말. 『주례周禮』「동관冬官」‘륜인輪人’에 “無

所取之 取諸易直也”라 하니, 취(取)하는 바가 없으면서 모든 이직(易直)을 취한

다는 말이다. 『금강경金剛經』, “應無所住而生其心”과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147) [總覽]에는 塵. [全文]의 座는 塵의 오자임.

148) [全文] [總覽]에는 什勿이니, 이는 什摩物(무슨 물건)의 준말임.

그러므로 한 번 송문에 의탁한 지149) 어언 십경괴율이 경과한150) 지금 홀

로 병(?)과 육환장(六環杖)을 지니고 사방으로 순례(巡禮)하여 선지식을

친견하면서151) 이름난 승경(勝境)은 모두 순례하고 수려한 명산에선 한 철

씩 지내곤 하였다. 천태산(天台山)의 이적(異跡)을 앙모하여 곳곳마다의

풍속을 보면서 영외(嶺外)로 행각(行脚)하되, 지극한 마음으로 천태조사

(天台祖師)의 탑에 참배하고는 호남(湖南)으로 발길을 돌려 이름난 선백

(禪伯)들을 친견하였다. 그리고 다시 북으로 유연(幽燕)을 거쳐 서쪽으로

공촉(邛蜀)을 둘러보았으며, 혹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국경을 넘나들

기도152) 하였다. 많은 성을 몰래 넘기도 하면서 사명(四明)에 당도하여 홀

연히 [결락] 조(鳥)를 만났는데, 동방으로부터 전하는 소식이, 지금 본국에

는 전쟁의 안개가 걷히고 바다에는 점차 파도가 사라져서153) 외난(外難)은

모두 소멸되고 다시 중흥을 이루었다는 것이었다. 동광 2년(924)에 본국에

돌아오자 모든 국민이 서로 경하(慶賀)하여 환영하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

하였으니, 마치 교지군(交趾郡)으로 달아났던 구슬이 다시 합포(合浦)로

돌아오고,154) 진(秦)나라로 팔려갔던 보벽(寶璧)이 무사히 조(趙)나라로 되

돌아온 것과 같이 하였다.155) 이는 오직 우담발화가 한 번 나타나고, 마륵

156)이 중중(重重)히 비추는 것과 같았다.

所以, 一託松門,157) 十經槐律, 獨提 158)錫, 四遠叅 ,159) 境之

幽兮, 往遊, 山之秀兮, 留駐. 所以, 天台仰異, 地境觀風, 嶺外

擔登, 虔禮祖師之塔, 湖南負笈, 遠投禪伯之居. 其後況復, 北

抵幽燕, 西臻叩蜀, 或假途160)諸道, 或偸路百城. 以此, 隅161)到

四明, 忽逢□162)鳥, 只賷音信, 至自東方, 竊承本國, 祁山霧收,

163)海波息, 皆鎖外難, 再致中興. 迺於同光二年, 來歸舊國,

國人相慶, 歡響動天, 可謂164)交165)趾珠還, 趙邦璧返. 唯知優曇

一現, 摩勒重榮.

149) 일탁송문(一託松門):『全文』에 托으로 된 것은 오자임. 한 번 송문에 의탁하라

는 뜻.

150) 십경괴율(十經槐律):10년을 경과했다는 말이니, 괴율이란 괴추(槐秋), 또는 성

율(星律)과 같은 뜻. 괴추는 7월이고, 성율은 연월(年月)의 뜻이니, 성상(星霜)과

같이 1년에 태세성(太歲星)과 괴추가 한 번 있었으므로 괴율이란 1년을 뜻한다.

151) 사원참척(四遠參 ):사방으로 다니면서 참방(參訪)하였다는 말. 척( )은 팔뚝

척字이니, 혜가단비(慧可斷臂)와 같은 뜻이다. 「대경대사현기탑비문大鏡大師玄

機塔碑文」 주14)경성설립척이전심傾誠雪立 以傳心 [고려편1] p.71 참조.

152) 혹가도제도(或假途諸道):가도(假途)란 타국(他國)의 길을 빌리는 것이다. 『사

기』「노중련魯仲連」 , “將之薛 假途於鄒”.

153) 점해파식(漸海波息):바다에는 파도가 점점 사라졌다는 뜻이다.

154) 교지주환(交趾珠還):합포주환(合浦珠還)이라고도 하니, 잃었던 물건을 다시 얻

었다는 비유. 교지와 합포는 연접해 있는 지명(地名). 합포태수(合浦太守)는 곡

물을 생산하지 않고 해중(海中)의 주보(珠寶)를 캐서 이웃 교지군과 통상무역

으로 식량과 교환하였다. 어느 때 태수가 욕심이 많아 마구 채굴하여 사욕(私

慾)을 채웠다. 그리하여 주보가 모두 이웃 교지군으로 옮겨갔는데, 후한(後漢)

때 맹상(孟嘗)이 태수가 되어 청렴(淸廉)한 정치를 함으로써 다시 그 주보가 모

두 합포로 되돌아 왔다는 고사이다. 『후한서後漢書』「순리맹상循吏孟嘗」에 “孟

嘗字 佰周 … 遷合浦太守 郡不産穀實 而海出珠寶 … 先時宰守 並多貪穢 詭人採

求, 不知紀極 珠遂漸徙於交趾郡界 … 嘗到官 革易前幣 求民病利 曾未踰歲 去珠

復還”이라 하다.

155) 조방벽반(趙邦璧返):완벽이환(完璧而還)이라고도 함. 초(楚)나라의 변화(卞和)

가 산중(山中)에서 옥박(玉璞)을 얻어 이를 초의 려왕(厲王)에게 바쳤다. 왕이

옥인(玉人)에게 감정을 시켜보니 돌이라 판정(判定)하므로, 왕은 변화가 왕을

속였다하여 그의 왼쪽 다리를 끊었다. 려왕이 죽은 뒤에 또 무왕(武王)에게 바

쳤더니 무왕도 역시 옥인을 불러 감정한 결과 돌이라 판정함에 왕은 대노(大怒)

하여 선왕(先王)을 속이고 나까지 속인다하여 변화의 오른쪽 다리마저 끊어 버

렸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함에 변화는 그 옥박을 안고 산하(山下)에

서 삼일삼야(三日三夜)를 통곡하였다. 왕이 울음소리를 듣고 사람을 보내어 알

아보니, 대답하기를 나는 양쪽 다리가 베인 것이 아까워 우는 것이 아니라 보옥

(寶玉)을 돌이라 하고, 정사(貞士)를 광자(誑者)라고 하는 것이 안타까워 슬피

운다고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다시 옥인을 시켜 세밀하게 감정한 결과 귀중

한 보옥이라 하므로 이 옥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 명명(命名)하였다. 그 후

이 보옥이 조(趙)나라 혜왕(惠王)의 소유(所有)가 되었다. 이 천하제일(天下第

一)의 보옥의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욕심(慾心)을 내어 15성(城)

을 줄 터이니 교환하자고 요구했다. 이 때 조나라 외교관(外交官)인 인상여(藺相

如)는 옥을 가지고 진나라에 가서 소왕에게 보였다. 왕은 15성을 줄 생각은 하

지 않고 우물쭈물 그냥 차지하려고 궁인남녀(宮人男女)를 모아 놓고 이 남자(男

子) 저 여자(女子)들이 서로 탐애(貪愛)하게 하였다. 영특한 인상여는 그 옥이

보기에는 좋지만 옥티(瑕疵)가 있다고 했다. 이 때 왕신(王臣)은 깜짝 놀라 옥티

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옥을 되돌려 받은 인상여는 옥을 들고 기둥에 매치

려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唯一)한 보물(寶物)인데 당신들은 남녀가 함부

로 불결(不潔)하게 만지니 참을 수가 없다”하며, “내가 이 옥을 가지고 올 때는 3

일간(日間) 목욕재계를 하고 왔으니, 이를 받으려면 당신들도 3일간 목욕재계

를 할 것이며 그 후에 건네주겠다”하였다. 그리고는 비밀리 수행원(隨行員)에게

주어 본국(本國)으로 빼돌려 보냈다. 이를 완벽이환 또는 조방벽반이라고 한다

(『사기史記』권81).

156) 마륵(摩勒):가장 아름다운 금(金). 『남사南史』「이맥夷貊」에 “天竺迦毗黎國 元

嘉五年 國王 遣使奉表獻金剛指環 摩勒金環諸寶物”이라 하였고, 「송쇄어宋瑣

語」에 마륵은 “金之至美者也 卽紫磨金”이라 하다.

157) [全文]에는 松字 다음에 ?이 더 있으나, 이는 삭제되어야 함.

158) [全文]에는 提錫인 兩字 중간에 ?字가 탈락됨.

159) [苑] [總覽]에는 . [全文]의 는 의 오자임.

160) [總覽]에는 途. [苑] [全文]에는 이니, 途가 옳음.

161) [苑] [總覽]에는 隅. [全文]의 偶는 隅의 오자임.

162)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三임.

163) [總覽]에는 . [苑] [全文]의 漸은 의 오자임.

164)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謂임.

165)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交임.

태조 임금이 특사를 보내어 교외(郊外)에서 영접하게 하였으니, 융성한

총애의 영광이 당시로는 으뜸이었다. 다음날 구중166)으로 맞아들여 3등의

품계167)를 내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찬앙하여 국사(國師)로서 우대하였다.

중생들의 마음 가운데에 덮힌 안개를 흩어주는 설법을 할 때에는168) 자주

불자169)를 흔들었고, 임금은 스님의 도풍(道風)을 흠망하여 희색이 만만

(滿滿)하였다. 스님은 어로(語路)가 풍류(風流)로우며, 언천170)이 경절(境

絶)하여 아직까지 얻지 못하였던 것을 얻게 하였으며, 현묘(玄妙)하고 또

현묘하여 홀연히 현현(玄玄)한 법담(法譚)을 듣게 하였으니, 마음에 가득

한 번뇌를 모두 제거하고 우아한 경지를 얻어서 마침내 거울 같이 밝고

맑은 마음을 품게 하였다. 스님은 이어서 말씀하시길 “모든 인연이란 그

실체가 없고 중법(衆法)은 마침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니, 마치 영약171)

과 독초172)가 함께 숲 속에 공존하고, 감로(甘露)의 샘물173)과 수렁의 탁한

물이174) 땅 속에서 같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으므로 이 이치를 잘 분별하여

미혹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임금의 불심은 더욱 돈독해지고 스님을

자주 친견하려는 마음이 깊고 간절하여 가까운 곳인 중주(中州) 정토난야

(淨土蘭若)에 주지(住持)토록 청하였다.

上乃特遣使175)臣, 奉迎郊外, 寵榮之盛, 冠絶當時. 翌日延入九

重, 降於三等, 虔心鑽仰, 待以國師. 大師披霧之時, 頻搖麈176)

尾, 上乃望風之際, 甚悅龍顔. 所以大師, 語路風流, 言泉境絶,

得所無得, 玄之又玄, 忽聽玄譚, 盡去煩襟之悶, 仍承雅況, 終

懷瑩慮之規. 然則大師曰, “群緣體無, 衆法歸一, 若靈藥毒草,

同在林中, 甘泉淤泥, 共生泉下, 能令分別, 不有迷之.” 上, 事

佛精勤, 深177)求親近, 仍于178)中州淨土蘭若, 請以住持.

166) 구중(九重):구중궁궐(九重宮闕)의 준말이니, 왕궁(王宮)을 지칭한다.

167) 삼등(三等):삼등급(三等級)의 법계(法階)이니, 삼중대사(三重大師)이다.

168) 피무지시(披霧之時):청법하는 대중의 마음에 덮인 무명(無明)의 운무(雲霧)를

헤쳐준다는 뜻이니, 설법하는 때를 가리킨다.

169) 주미(麈尾):설법할 때를 가리킨다.

170) 언천(言泉):말의 원천(源泉). 곧 말할 때의 의식(意識)을 말한다.

171) 영약(靈藥):신비한 영약이니, 청정(淸淨)한 불성(佛性)을 가리키며, 모든 부처

(諸佛)를 말한다.

172) 독초(毒草):지독한 질병이니, 오염(汚染)된 불성을 가리키며, 번뇌 중생(衆生)

을 말한다.

173) 감천(甘泉):감로수의 청정한 약수(藥水)이니, 부처님의 지혜를 말한다.

174) 어니(淤泥):진흙탕의 더러운 오수(惡水)이니, 번뇌의 중생계를 말한다. 감천어

니(甘泉 泥)는 “故諸佛衆生同一根 煩惱涅槃無二際”를 말한다.

175) [苑] [總覽]에는 使. [全文]의 便은 使의 오자임.

176) [苑] [總覽]에는 麈. [全文]의 塵은 麈의 오자임.

177)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深임.

178) [苑] [總覽]은 결락이나 [全文]에는 于임.

스님은 스스로 생각하되 “방금 입당유학(入唐遊學)을 마치고 창명(滄

溟)을 헤쳐 귀국하여 항상 주석할 만한 유곡(幽谷)을 생각하던 터이라 이

를 버리고 다시 어디로 가리요”하고는 문득 행장(行裝)을 정돈하였다. 한

광(漢廣)을 건너고 유유히 산을 넘어 그곳에 가서 주석하니, 주변이 매우

아름답고 산천이 수려하였다. 중주에서 소문을 듣고 기꺼운 마음으로 찾

아오는 사람이 백천이나 되었다. 스님이 자리를 정하고 선탑(禪榻)을 펴

자마자 사방으로부터 오는 대중이 모당(茅堂)을 가득히 채웠으며, 마치

도마죽위(稻麻竹葦)와 같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으나, 스님은 가르침에 있

어서는 조금도 권태를 느끼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뒤에는 얻어가지게 되어 마치 안개처럼 모였다가 구름같이 돌아갔으며,

스님의 지도 또한 학류(學流)를 유인(誘引)한 다음 종지를 일러 주었으니,

진리는 깊고 미묘(微妙)하나 말씀은 간결하며,179) 관찰력은 예리하고, 뜻이

깊어 육도(六度)의 모범이며 인천의 으뜸이었다.

大師, 自此, “纔涉滄溟, 每思幽谷, 捨玆奚適, 適我願兮.” 於

是, 便挈山裝. 尋凌漢廣, 悠悠騫嶺, 往以居之, 境地偏佳, 山

泉甚美. 當州聞風而悅, 詣者百千, 大師暫駐慈軒, 尋鋪禪榻,

四方來者, 皆滿茅堂, 森若稻麻, 誨之不倦. 所以先難後獲, 霧

集雲歸, 大師誘引學流, 敷陳宗旨, 理妙詞簡, 機深義精, 六度

之龜麟, 人天之海嶽也..

179) 이묘사간(理妙詞簡):진리는 묘하고, 말씀은 간결하다는 뜻이다

이 때 좌승(佐丞)인 유권열(劉權說)이란 신하(臣下)가 있었는데, 이는

마치 은(殷)나라 고종(高宗)의 재상(宰相)인 부열180)과 같았다. 나라의 충

신이며 재가의 제자였다. 니부181)인 공자(孔子)를 찬양하는 선비이니, 마치

안연(顔淵)의 무리와 같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봉하였으니, 아울러 아

난(阿難)과 같은 유라 하겠다. 특히 선경(禪境)에 이르러182) 스님을 친견하

고 문득 피석(避席)의 의례(儀禮)를 폈으며, 깊이 구의183)의 정성을 오롯하

게 하였다.

爰有佐丞劉權說者, 殷傅說之流也. 於國忠臣, 在家弟子. 鑽

仰尼父, 必同顔氏之徒, 服膺釋迦, 須並阿難之類.184) 特趍185)禪

境, 敬禮慈顔, 便申避席之儀, 深展摳衣之懇.

180) 부열(傅說):은(殷;商)나라 제22대 왕인 고종(高宗)의 재상(宰相). 고종이 은나

라를 부흥시키려고 하였으나, 보좌(輔佐)의 현인(賢人)을 얻지 못하여 3년간 스

스로 정령(政令)을 선포(宣布)하지 않았으며, 정사(政事)는 모두 재상에게 위임

하고 스스로 국풍(國風)을 관찰하였다. 어느 날 꿈에 성인(聖人)을 보고 그 모습

을 그려서 백방(百方)으로 찾았더니, 부암중(傅岩中)에 은거하면서 파괴된 도로

(道路)를 수축하고 있는 자를 보고는 불러 재상에 임명(任命)하니, 나라를 크게

부흥케 한 인물이 되었다. 『사기』권3.

181) 니부(尼父):공자를 존칭하는 말이다.

182) 특추선경(特趍禪境):교종(敎宗)으로부터 선종(禪宗)으로 옮겼다는 뜻.

183) 구의(摳衣):옷 뒷자락(裾)을 약간 끌어올리는 것으로, 공손히 예배(禮拜)한다

는말. 「석문釋文」에 “摳 提也, 衣 裳也 旣不踖席 當兩手提裳之前 徐徐向席之下

角 從下而升 當已位而就坐也”라 하다.

184) [苑] [總覽]에는 類. [全文]의 頰은 類의 오자임.

185) [苑] [總覽]에는 趍. [全文]의 趁은 趍의 오자임.

그 후 하국186)의 어진 군자들이 인(仁)을 구하러 모이고, 중원(中原) 지

방의 선비들이 스님의 덕을 흠모하여 무리를 이루어 찾아와서 공경히 스

님을 친견하였으니, 마치 백련(白蓮)이 안계(眼界)에서 핀 것과 같았고,

공손히 법문을 듣는 이에게는 감로수가 심원(心源)에 내리는 것과 같았

다. 그러므로 스님은 스님 중의 스님이라고 할 만하였다. 천군이라는 법

형(法兄)이 말하되 “스님은 선림(禪林)에서 대중을 거느리고 길을 열어

주었고, 천자의 관헌(官軒)에서는 보수(寶樹)가 우뚝 솟은 것과 같았으

나, 요부(澆浮)한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법왕(法王)의 교화를 펴신 분이

다”라고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상법(上法)을 알기는 쉬우나 상법을 행

하기는 어려우며, 상법을 닦기는 쉬우나 상법을 깨치는 것은 더욱 어려

운 것이다.

其後, 下國之賢, 求仁所聚, 中原之士, 慕德成群, 袛187)奉儀形

者, 白蓮開於眼界, 敬聞言說者, 甘露降於心源. 然則可謂主僧

子. 天君法兄曰, “禪林御衆, 開道人,188) 天189)子之軒, 寶樹居

尊, 施澆季法王之化者也.” 而又知上法易, 行上法難, 修上法

易, 證上法難.

186) 하국(下國):제후(諸侯)의 나라를 가리킨다.

187) [總覽]에는 袛. [全文]의 祗와 [苑]의 은 袛의 오자임.

188) [苑] [總覽]에는 人. [全文]의 入은 人의 오자임.

189)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天임.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만행개공(萬行皆空)”이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수행

을 주장하는가”라고 하니, 대답하되 “본래(本來) 고락(苦樂)이 없건만 망

습(妄習)이 그 원인이 되어 고통을 받게 되므로 중생들의 망심(妄心)이 없

어지면 나의 고통(苦痛)도 따라서 사라지니, 다시 어느 곳에서 아직도 보

리(菩提)를 찾고자 하는가”라고 하였다. 그 후 조정(朝廷)의 사류(士流)들

이 왕명(王命)을 받들고 왕래하되, 중부(中府)인 중원(中原)의 길을 밟는

사람이 수천명에 달했으며, 사류 중에는 만에 하나라도 왕사(王事)에 분

망하여 스님이 계시는 문턱을 밟지 못한 것을 큰 수치로 여기기도 하였다.

或問,190) “‘萬行皆空’, 云何故行.” 對曰, “本無苦樂, 妄習爲

因, 衆生妄除, 我苦隨盡, 更於何處, 猶覓191)菩提.” 然則朝廷

士流, 銜命來往, 路出中府, 終䄵幾千, 萬一192)之流, 忙於王事,

不踐門閾,193) 以爲大羞.

190) [苑] [總覽]에는 問. [全文]의 間은 問의 오자임.

191) [全文]은 覓. [總覽] [苑]의 覔은 覓의 약자(略字)임.

192) [苑] [全文]은 弌. [總覽]은 一. 弌은 一의 古字임.

193) [苑] [總覽]에는 閾. [全文]의 闖은 閾의 오자임.

만약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선사를 배알하고 일심(一心)으로 앙모하여

항상 가르침을 들으니, 마치 긴 밤을 지내고도 아침의 시장함을 씻은 듯

이 잊은 듯하였다.194) 법설(法說)을 위해 운집 종을 크게 친 다음에는 바다

에 들어감에 그 맛이 한가지(同味)이며, 법을 관해보니 체가 없음(無本)이

요, 마음을 관하니 본래 불생(不生)임을 알게 되었다. 오직 최상승만이 중

도의 이치에 머무니, 마치 싸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옴에 백 가지 과실이 모

두 영그는 것과 같았다. “너희들이 부처님의 법을 능히 총지(摠持)하면 나

도 또한 따라 기꺼워하리라.” 하였으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위없는 깨달음

의 수행 방법이 분파(分派)되어 선종(禪宗)이 성립되었다.

若乃195)虔謁禪關, 仰承一眄196), 每聞曉誨, 如洗朝飢. 及其撞鍾

大鳴, 入海同味, 觀法無本, 觀心不生. 惟最上乘, 止於中道,

凉風旣至, 百實皆成. 汝能摠197)持, 吾亦隨喜, 由是, 無上覺路,

分爲此宗.

194) 조기(朝飢):조기(調飢)라고도 함. 아침 먹기 이전의 배고픔을 말한다. 『신서新

書』에 “諭誠 募人朝飢時 酒二酉重裘而立”이라 하다.

195) [苑] [總覽]의 乃와 [全文]의 及은 뜻으로는 무방함.

196) [全文] [總覽]에는 眄. [苑]의 은 眄의 오자임.

197) [總覽]에는 摠. [苑] [全文]의 惣은 摠의 오자임.

대사가 대중에 이르시되 “일찍이 내가 임금과 향화(香火)의 인연을 맺

었으니, 마땅히 최후에 대왕전하(大王殿下)를 찾아가서 부처님께서 마지

막 부촉(付囑)하신 당부를 정성껏 왕신(王臣)에게 부탁하리라”하시고, 노

구(老軀)를 무릅쓰고 병고(病苦)를 참으면서 바람처럼 달려가되 급한 걸

음으로 나아가 여러 날만에 상도(上都)에 당도하였다.198) 당부의 한 가지

만 바랄 뿐 다른 청은 전혀 하지 않기로 하였다. 임금을 만나 간절히 원하

는 바를 여쭙자 임금이 답하되, “불법(佛法)이 국왕(國王)으로 말미암아

흥왕(興旺)된다는 말이 진실로 빈 말이 아님을 알았으니,199) 원컨대 스님

께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수도하시어 오래도록 생령(生靈)을 보호해 주십

시오”하였다. 그 반면에 제자는 “진리의 강역에 튼튼한 담장과 요새같은

외호(外護)가 되리니,200) 사찰(寺刹)을 금성(金城)과 탕벽(湯壁)처럼 수호

(守護)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201) 스님이 답하되 “보살임금의 큰 서

원은 대승심(大乘心)을 발(發)하며, 호법(護法)을 마음에 새기고 자비(慈

悲)를 널리 베푸는 것을 의무로 하리니, 바로 이와 같이 하기 위해 지금 성

조(聖朝)를 찾아뵙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大師謂大衆曰, 曾修香火之因, 於大王殿下, 永言付囑, 虔託

王臣, 所以老僧, 忍202)病趍風, 貪程就日, 冀於一訣, 不在它求,

以此卽到上都. 親申誠懇, 上答曰, “ 由國興, 誠不虛語, 實願

大師, 安心道念, 久護生靈. 弟子, 牆 法城, 金湯祇樹.” 大師

對曰, “菩薩弘誓, 上乘發言, 護法爲心, 流慈是務, 正應如是,

今窺聖朝.”

198) 상도(上都):송도(松都)인 개성(開城)을 가리킴.

199) 법유국흥(灋由國興):법(灋)은 법(法)의 고자(古字). 불법(佛法)이 국왕(國王)의

관심에 따라 흥왕하여진다는 말이다.

200) 장참법성(牆壍法城):불법(佛法)에 대한 튼튼한 원장(垣墻)과 참갱(塹坑)이란

뜻이다. 「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문」 주202)법성지장참法城之墻 [고려편1]

p.37;「진공대사보법탑비문」 주110)법성法城 [고려편1] p.100 참조.

201) 금탕기수(金湯祇樹):금탕은 금성탕지(金城湯池)의 준말이다. 「진철대사보월승

공탑비문」 주201)인국지금탕仁國之金湯 [고려편1] p.37;「진공대사보법탑비문」

주109)금탕金湯 [고려편1] p.100 참조.

202) [全文]의 忽은 [苑] [總覽]의 忍의 오자임.

또 묻기를 “수행의 공용(功用)이 원근(遠近)의 차이가 있습니까”하니,

답하되 “한 방울의 물이라도 바위에 떨어지면 곧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음을 아십시오”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말을 알아듣고 서로 믿으

면 먼저 아는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 어린 동몽(童蒙)이 어떻게 관물발심

(觀物發心)할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대답하되 “어린아이가 먹기를 거부하

고 입을 다물면 유모인들 그를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대저 금이

산중에 감추어져 있으면 그 산을 보악(寶嶽)이다 일컫고, 구슬이 물속에

숨어 있으면 그 물을 진천(珍川)이라 하니, 진리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어

서 이러한 뜻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又問, “修行功用, 遠近當殊.” 答曰, “滴水不巖, 卽知朝海.”

又問, “了言相信, 先會暗同, 爭奈童蒙, 如何勸發.” 曰, “兒喉

旣閉,203) 乳母奚爲.” “夫金韞於山, 則山204)稱寶嶽, 珠藏於水,

則水號珍川, 其道念玆, 亦同於此, 此情何已, 俱在前言.”

203) [全文]에는 閉. [苑] [總覽]의 閇는 閉의 俗글자임.

204)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山임.

이 때 스님이 선상205)에 연좌(宴坐)하고 혜원에206) 경행(經行)하면서 심

법(心法)을 연설한 오묘한 말씀은 신근(信根)을 논(論)한 절절(切切)한 법

담(法譚)이었다. 그러한즉 진공(眞空)은 상(象)이 없고 실제(實際)는 언어

를 초월하였거늘, 어찌 혜일(慧日)의 광명(光明)이 침몰(沈沒)하고야 비로

소 스님의 열반이 빠른 줄 알았겠는가. 자비의 구름 빛이 사라졌으니, 홀

연히 스님의 열반에 대한 슬픔으로 끌어 오르도다.

此際, 宴坐禪牀, 經行慧菀, 演心法玄玄207)之話, 論信208)根切切

之譚, 然則眞空無象, 實際絶言, 豈惟慧日光沉, 方感泥洹之

早, 慈雲色斂, 忽牽滅度之悲而已矣哉.

205) 선상(禪牀):참선한다는 뜻이다.

206) 혜원(慧菀):강원(講院)에서 경전을 연구한다는 뜻. 「낭원대사오진탑비문朗圓

大師悟眞塔碑文」 주160)혜원 [고려편1] p.128 참조.

207) [苑] [總覽]에는 玄玄. [全文]의 元元은 玄玄의 오자임.

208) [苑] [總覽]에는 信. [全文]의 性은 信의 오자임.

천복 6년 11월 26일 이른 아침에 문인을 모아 놓고 이르되 “가고 머무는

것은 때가 있으나, 오고 감은 주(住)함이 없도다”하시고, 조용히 입적하니,

주변은 변함이 없었다. “너희는 힘써 유계(遺誡)를 봉행하여 종지를 무너

뜨리지 않으므로써 나의 은혜를 갚으라”하였다. 열반에 들기 전날 저녁에

제자가 묻기를 “화상께서 세상을 떠나시려는 마당에 법등(法燈)을 누구에

게 부촉하시렵니까”하니, 스님이 말씀하시길 “등등마다 스스로 동자가 있

어 점화(點火)한다”하고 하였다. 다시 묻되 “저 동자는 어떻게 펴 보입니

까”하니, 답하시되 “별이 청천(靑天)에 가득 포열(布列)되어 있으니, 어떻

게 알 수 있을 것인가”라 하고 말씀이 끝나자마자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드

시니, 속년(俗年)은 63세요, 승랍(僧臘)은 41이었다

天福六年十一月二十六日, 詰旦, 告門人曰, “去留有期, 來往

無住.” 於焉示化, 所在如然. “汝勉旃奉行遺誡, 不隳宗旨, 以

報吾恩也.” 未示滅之前夕, 弟子問, “和尙欲去, 付囑何人.” 師

曰, “燈燈自有童子點.” 問, “彼童子如何示展.” 曰, “星布靑天

裏, 於中那得知.” 言竟坐滅, 俗年六十有三, 僧臘四十有一.

이 때 구름과 해는 처참하고, 바람과 샘물은 오열하며 산천이 진동하고,

새와 짐승들은 슬피 울며, 제천(諸天)이 창언(唱言)하되 사람마다 눈이 없

어졌다고 주변 열군(列郡)들의 군민은 한을 머금고 울먹였다. 세상은 공

허하여 천인들마저 슬퍼하는 상심을 가히 알 만하였다. 성감(聖感)과 영

응(靈應)이 어찌 거짓이겠는가. 제자 활행(闊行) 등 300여인이 울면서 유

해를 받들고 3일 만인 그 달 28일 개천산(開天山) 북봉(北峰) 남쪽 기슭에

하관하였으니, 이는 상교를 준수한 것209)이다.

于時, 雲日慘凄, 風泉嗚210)咽, 山川震動, 鳥獸悲啼, 諸天唱言,

人無眼目, 列郡含恨.211) 世且空虛, 天人感傷, 斷可知矣. 聖感

靈應, 豈誣也哉. 弟子闊行等三百餘人, 號奉, 以其月二十八

日, 窆于北峯之陽, 遵像敎也.

209) 상교(像敎):밖으로 보이는 외상(外相). 즉, 의전(儀典)을 준수했다는 뜻이다.

210) [苑] [總覽]에는 嗚. [全文]의 鳴은 嗚의 오자임.

211) [苑] [總覽]에는 恨. [全文]의 憾은 恨의 오자임.

임종하시기 직전 왕에게 표(表)를 받들어 고하니, “노승(老僧)이 뜻하였

던 바를 이룩하지 못하고 영원히 성상(聖上)을 하직하려 하여 인사에 대

신한다”고 하였다. 임금이 표장(表狀)을 펼쳐 보시고 크게 애도하면서 시

호(諡號)를 법경대사(法鏡大師), 탑명(塔名)을 자등지탑(慈燈之塔)이라고

추증(追贈)하였다. 임금으로서 스님을 존중함이 작연212)하면서도 멀리서

나마 깊이 추모하는 예의를 갖추었음을 알겠다.213) 이제 다시는 서울에서

함께 할 수가 없음을 한탄하였다.

臨終之際, 奉表告辭云, “老僧不遂素懷, 永辭聖代矣.” 上乃披

覽, 皇情悼焉, 乃贈諡曰, 法鏡大師, 塔名慈燈之塔. 則知尊師

之道, 焯然, 追遠之儀, 賅矣. 於是乎在莫之與京.

212) 작연(焯然):작작(焯焯) 또는 작삭(焯鑠)과 같은 뜻. [苑]에는 然字가 焉으로 되

었는데, 뜻으로는 양자(兩子)가 모두 무방하다.

213) 해의(賅矣):해(賅)는 갖출 해字.

스님은 오직 영악(靈岳)이 낳은 인물이었으며, 철인(哲人)으로 세상에

나타나서 석교(釋敎)를 부양(敷揚)하고 선종(禪宗)을 천양하였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세상에 현생(現生)하였고, 사람들의 고통을 근심하여 홍도

(弘道)하였으니, 그의 모습은 온화하고 말씀은 과묵(寡默)하였다. 굶주린

배로 찾아와서는 가득히 채워 돌아갔으니, 심수(心樹)의 꽃은 선명하고,

법류(法流)의 물은 청정하며, 달이 밝으니 강이 더욱 넓어 보이고, 나뭇잎

이 떨어지니 산이 한 층 더 높게 보임이라.

惟大師, 惟岳降靈, 哲人生世, 敷揚釋敎, 闡示禪宗. 然則爲物

現生, 憂人弘道, 貌和言寡. 飢至飽歸, 所以, 心樹花鮮, 法流

水淨, 月明江闊, 木落山高.

그러므로 첨복(簷蔔)이 신비로운 향내를 풍기고 제호(醍醐)의 승미(勝

味)지닌 것과 같았다. 정도에는 본래 말이 없으나,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

에는 언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사방(四方)으로부터 시주

하는 신도들의 인연이 대중에게로 돌아오게 되었다. 재물이 있는 이나 없

는 사람들이 모두 스님 회상(會上)의 대중수도에 심요(心要)한 사사공양

(四事供養)을 마음으로나 물질로 넉넉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도는 능가214)

인 선종에서 묻고, 스승은 멀리 인도에서 찾아 심심(甚深)한 미묘법(微妙

法)을 얻어 듣고자 하였으며, 팔을 끊어 바쳐 위법망구(爲法妄軀)하였듯이

전심전법(傳心傳法)에 간절하였다.

故能簷蔔神香, 醍醐勝味. 正道無說, 權機有言. 由是四方, 施

捨之緣, 歸於大衆. 一世有無之屬, 贍215)彼窮人. 然則 可謂 問

道楞伽, 尋師印度, 求深斷臂, 志切傳心.

214) 능가(楞伽):『능가경楞伽經』을 소의(所依)로 하는 선종을 가리킨다.

215) [苑] [總覽]에는 贍. [全文]의 瞻은 贍의 오자임.

드디어 일국(一國)으로 하여금 인(仁)으로 돌아가도록 실조(實助)하였

으니, 제왕(帝王)의 덕화(德化)가 하는 일마다 천문입선(千門入善)하되 치

우치지 않았고, 아울러 각계각층의 백성들의 마음216)을 촉촉이 적셔 주었

다. 하신(下臣)인 제가 홀연히 스님의 비문을 지으라는 성상의 교지를217)

받들었으나,218) 신은 재주가 봉황을 삼킨 양웅(楊雄)에 미치지 못하고219)

학문은 형설(螢雪)의 공(功)을 쌓지 못하였건만,220) 억지로 무딘 언사(言

詞)를 나열하여 스님의 높은 선덕(禪德)을 고양(高揚)하노니221), 바라는 바

는 영원히 썩지 아니하여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길이 길이 보여주길

바라는 바이다.

遂使一國, 歸仁實助, 帝王之化, 千門入善, 偏霑黎庶之心. 下

臣, 忽捧芝泥, 令修虀222)臼, 臣才非呑鳥, 學謝聚螢, 强措菲詞,

式揚禪德, 所冀, 垂于不朽, 永示無窮.

216) 여서(黎庶):서려(庶黎) 또는 여민(黎民)과 같은 뜻이니, 각계 각층의 백성. 즉

군민이라는 뜻이다.

217) 지니(芝泥):인육(印肉), 인(印), 자분(紫粉) 등의 뜻이니, 임금의 교지(敎旨)를

가리킨다. 유신(庾信)의 「한무제취서찬漢武帝聚書贊」에 “芝泥印上 玉匣封來”라

하였고, 양신(楊愼)의 『외집外集』에는 “今之紫粉 古謂之芝泥 今之紫砂 古謂之

丹雘 皆濡印染籒之具也”라 하였다.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문朗慧和尙白月葆

光塔碑文」 주279)지검芝檢 본서(本書) p.157 참조.

218) 영수제구(令修虀臼):제구(虀臼)란 ‘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虀臼)’에서

나온 말로, 뛰어난 명문을 가리킨다.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문朗慧和尙白月葆

光塔碑文」 주105)제구虀臼 본서 p.129;「진공대사보법탑비문」 주111)제구虀臼

[고려편1] p.152 참조.

219) 탄조(呑鳥):탄봉(呑鳳) 또는 토봉(吐鳳)이라고도 함. 봉황을 삼켰다는 말이니,

문장(文章)의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이름. 한(漢)나라 때 양웅(楊雄)이 백봉(白

鳳)을 삼키는 꿈을 꾸고 『태현경太玄經』을 지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

220) 취형(聚螢):가난한 사람이 등을 켤 만한 기름이 없어 반딧불을 모아 등화(燈火)

를 대신하였음을 뜻함이니, 각고(刻苦)의 학문 탐구를 비유하는 말. 『안씨가훈

顔氏家訓』「면학勉學」에 “照雪聚螢”이라 하고 『북사北史』「최랑전崔廊傳」에는

“聚螢映雪 懸頭刺股”라 하다.

221) 식양선덕(式揚禪德):스님의 선덕을 비문에 담아 법답게 선양(宣揚)하려 한다는

말이다. 「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문」 주205)식양고촉式揚高躅 [고려편1] p.38 참조.

222) [苑] [總覽]에는 虀. [全文]의 苞는 虀의 오자임.

국주(國主)가 추모하여 전액(篆額)을 써서223) 돌아가신 스님에 대한 애

통함을 나타내었다. 문인이 귀문224)에 대해 감모(感慕)하되, 절학(絶學)의

슬픔을 표하는 바이다.

명하여 가로되,

國主追哀225)鳳篆226), 彰亡師之慟. 門人, 感慕龜文, 表絶學之

悲, 銘曰,226)

223) 국주추□봉전(國主追□鳳篆):봉전(鳳篆)은 어필(御筆)을 가리킴이니, 임금이

추모하는 뜻에서 비(碑)의 전액(篆額)을 쓴다는 말. [全文]에는 봉탁(鳳啄)으로

되었으니, 이는 봉전(鳳篆)의 오자임.

224) 귀문(龜文):비문(碑文)을 가리킴.

225) [苑] [總覽]은 결락이고 [全文]에는 哀이나, 未詳함.

226) [苑] [總覽]에는 篆. [全文]의 喙는 篆의 오자임.

위대하심이여 크게 깨달은 우리스님!

우리들의 우매함을 불쌍히 여기시도다.

아지랑이를 물로 여기지 말며,227)

화성(化城)인 방편(方便)에 머물지 말라.

懿歟大覺,

慜我群生.

休飮炎水,

莫趍228)化城

227) 염수(炎水):따뜻한 봄철에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보고 물인 줄 알고 마시

려고 쫓아간다는 비유. 본비문주44)취염趣炎 p.194 참조.

228) [苑] [總覽]에는 趍 [全文]에는 越이니, 뜻으로는 무방함.

눈에 보이는 물색(物色)에 착(着)하지 말 것이니,

일체(一切)의 명상(名相)은 오직 가명(假名) 뿐 일세.

오직 그 진실(眞實)만을 알아야 하니,

시험 삼아 혜명(慧明)을 찾아볼지어다.

色則非色,

名惟假名.

知惟眞實,

試是慧明.

크신지라, 개천산(開天山) 법경대사(法鏡大師)여!229)

마조(馬祖)의 법을 이은 보철(寶徹)의 손자이시다.

체(體)를 갖춘 것이 두루 원만함은229)

마치 공자의 제자 안씨(顔氏)와 같도다.

倬230)哉至人,

麻谷孫子.

具體則圓,

猶如顔氏.

229) 탁재지인(倬哉至人):탁월하고 위대한 지인이란 말.

230) [苑] [全文]은 悼, [總覽]과 [拓本]에는 倬이니 이는 倬字가 뜻으로 더 좋음.

도덕은 비둘기를 살린 것보다 높고,231)

자비는 개미의 무리를 구제함보다 뛰어났도다.232)

불법(佛法)의 진종(眞宗)을 깊이 깨달았고,

도건(道乾)의 법통을 전해 받았네.233)

道冠憐鷹,

慈超救蟻.

□悟眞宗,

潛傳閟234)旨.

231) 연응(憐鷹):부처님께서 과거인행시(過去因行時) 산중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

새매에게 쫓긴 비둘기를 감추어 주었다. “새매가 같은 생명(生命)이거늘 어찌

나의 배가 고파 죽는 것은 방치하느냐”고 원망하므로,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몸

을 보시하여 먹게 하였다. 이 본생담(本生譚)에서 근거한 것으로서 스님의 자비

가 그 보다 높고 넓다는 말.

232) 구의(救蟻):물에 떠내려가는 많은 개미를 구제하였다는 말. 「자적선사능운탑

비문慈寂禪師凌雲塔碑文」 주76)구의 [고려편1] p.171 참조.

233) 비지(閟旨):깊이 닫혀 있는 심오(深奧)한 종지(宗旨). 즉, 서래밀지(西來密旨)를

가리킴.

234) [苑] [總覽]에는 閟. [全文]의 悶은 閟의 오자임.

해동(海東)에 전파하여 소륭(紹隆)하였고,

사방(四方)에서 모여드는 납자(衲子)를 제접하되,

깊고도 오묘한 밀지(密旨)로써 실어 나르고,

신통한 묘용(妙用)으로 모든 기(機)를 쉬게 하시네.

紹隆三235)寶,

236)接四依,

玄情乘運,

妙用息機.

235) [總覽]은 결락이나 [苑] [全文]에는 三임.

236) [苑] [總覽]에는 . [全文]의 祀는 의 오자임.

지혜의 흐르는 물은 빠르고 상쾌하며

마음의 길 돌아갈 곳 알았네.

아직까지 듣지 못한 것 모두 들었고,

여지껏 얻지 못했던 법 두루 얻었도다.

智流激爽,

心路知歸,

聞所未聞,

得其無得.

법체(法體)는 본래 오고 감이 없으나,

종지(宗旨)로는 남북종(南北宗)으로 나누어졌네.

성스러운 불심(佛心)을 깨치지 못하였다면,

그 누가 선덕(禪德)이라 존숭(尊崇)하리요.

法無去來,

宗判南北.

靡見聖心,

誰尊禪德.

계행(戒行)은 청정(淸淨)하게 항상 지켰고,

말씀은 언제나 한결 같았네.

마음으론 영기(靈器)를 전해 받았고,

도덕으론 항상 성조(聖朝)를 도왔도다.

佛戒237) 恒行,

師言不忒,

心傳靈器,

道贊聖朝.

237) [苑] [全文]에는 戒. [總覽]의 戎은 戒의 오자임.

교화는 모든 중생(衆生)에게 널리 입혔고,

위력(威力)은 뭇 요망(妖妄)함을 꺾었으며,

처음 산중에서 연좌(宴坐)할 그 때부터,

여러 차례 임금의 초빙을 받았도다.

化被群惑,

威摧衆妖,

初從宴坐,

屢赴嘉招.

생각은 깊고 깊어 과묵(寡默)하시고,

생활은 검소하여 사치함이 없도다.238)

의복(衣服)은 언제나 굵은 삼베 뿐이었고239)

음식은 법희선열(法喜禪悅)로 수용하였다.

惟思惟慮,

匪 240)匪雕.

服煖241)縕242)黂,243)

食甘禪悅.

238) 비착비조(匪斲匪彫):스님의 바탕은 천진소박(天眞素朴)하여 깎고 다듬는 수식

이 없다는 말.

239) 복난온분(服煖縕黂):온분(縕黂)이란 온저(縕著)와 같은 뜻으로, 빈천(貧賤)한

사람들이 입는 조악(粗惡)한 옷. 『열자列子』「양주楊朱」에 “昔者 宋國有田夫 常

衣 蘊黂 僅以過冬”이라 하고, 그 주에 온분(縕黂)은 “謂入弊麻衣也”라 하다.

240) [苑] [總覽]에는 . [全文]의 斯는 의 오자임.

241) [苑] [總覽]에는 煖. [全文]의 煩은 煖의 오자임.

242) [總覽]에는 縕. [苑] [全文]의 緹는 縕의 오자임.

243) [苑] [全文] [總覽]의 廣은 黂의 오자임.

열반 소식 전해지자 임금이 슬퍼했고,

법문을 듣고자 목말라 하였네.

오직 학인 지도하기를 좋아하여서,

중도(中途)에서 그치는 일은 전혀 없었네.

大君感傷,

眞宰思渴.

唯喜學人,

並無中輟.

천복 8년244) 세차계묘(歲次癸卯) 유월(六月) 정미삭(丁未朔) 오일(五日)

신해(辛亥)에 세우다.

天福八年, 歲次癸卯, 六月丁未朔,245) 五日辛亥, 立.

전자승(鐫字僧)은 광예(光乂), 장초(壯超), 행총(幸聰), 행초(行超) 등이다.

鐫字僧:光乂, 壯超, 幸聰, 行超.246)

【음기陰記】*

개천산

유천복구년, 세차갑진, 육월일일신축, 입비기사.

원유중원부, 도속이관, 공경부로, 려인사서, 공

시귀앙, 건위대사제자, □재차비, 약제명자.

開天山

維天福九秊, 歲次甲辰, 六月一日辛丑,

立碑記事.

爰有中原府, 道俗二官, 公卿夫老, 黎

人士庶, 共是歸仰, 虔爲大師弟子, □

載此碑, 略題名字.

홍림대덕 경부대순 법예대통

담홍대덕 엄신화상 석방화상

제홍화상 훈예화상 능주의낭

권열좌승 견서좌승 준양원보

필량원보 용희원윤 박겸원윤

서긍원윤 최율원윤 의정좌윤

공융좌윤 준홍좌윤 장희아찬

봉희아찬 훤직아찬 최유아찬

신성아찬 최충나 춘일나

최정나 국봉나 인경나

예봉나 관훈시랑 용간시랑

견훈시랑 봉립시랑 김간시랑

인왕시랑 형유시랑 언유시랑

총명시랑 직봉시랑 형봉경

□보경 최양경 거율경

문간경 유신경 필봉경

청양경 신흥경 한달내경

김달경 집사랑중 □□□□ 현위

사수정 병부경 충식경

□□경 창부경 언서경

공율경 행규

弘琳大德 景孚大純 法譽大統

談弘大德 嚴信和尙 釋訪和尙

帝弘和尙 訓乂和尙 能珠儀娘

權說佐丞 堅書佐丞 遵讓元輔

弼良元輔 龍希元尹 朴謙元尹

舒兢元尹 崔律元尹 義貞佐尹

孔融佐尹 俊弘佐尹 張希阿粲

奉希阿粲 萱直阿粲 崔濡阿粲

新城阿粲 崔忠柰 春一柰

崔貞柰 國奉柰 仁鏡柰,

乂奉柰 官訓侍郞 龍偘侍郞

堅訓侍郞 奉立侍郞 金偘侍郞

仁往侍郞 儒侍郞 彦猶侍郞

聰明侍郞 直奉侍郞 敻奉卿

□寶卿 崔讓卿 居律卿

門偘卿 由信卿 必奉卿

聽讓卿 信興卿 漢乃達卿

金達卿 執事郞中 □□□□ 玄魏

史秀貞 兵部卿 忠式卿

□□卿 倉部卿 彦書卿

孔律卿 幸規

대사문하승 총예, 활행, 총신, 정유, 인일, 경수,

법언, □오, 법랑등, 삼백여인.

원주승 행주.

전 좌 석오.

사 승 행유.

직세승 효행.

도유나승 행린.

유덕산인 청주, 석희시랑.

원주인인원외.

당성 행린경.

목죽현 총예촌주.

大師門下僧 聰芮, 闊行, 聰信, 貞裕, 仁一, 慶修,

法言, □悟, 法郞等, 三百餘人.

院主僧 行周.

典 座 釋悟.

史 僧 行裕.

直歲僧 孝行.

都維那僧 行璘.

諭德山人 靑州, 釋希侍郞.

元州仁人員外.

當 城 幸璘卿.

目竹縣 聰乂村主.

[비신(碑身)의 높이(高)는 10척4촌(十尺四寸), 폭(幅)은 4척8촌5분(四尺八寸五分), 글자의

간격은 8분(八分)이며, 해서(楷書)이다. 제액(題額)은 늑멸(泐滅)되었다.]

[揭載]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上, pp.251~268.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上, pp.149~157.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 中世 上, pp.318~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