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지리산 오두막 수행자가 보내는 산중편지, 조용한 행복 2 / 도현 스님

수선님 2023. 9. 24. 13:16

한적

 

아득히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한 밤중의 소쩍새 울음소리, 새벽이면 새들의 지저귐, 건너 산에서 곰들이 다투는 소리,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그윽한 산중... 초록 산색에 밤나무 꽃꿀 향기 달콤하다. 대나무 죽순은 쑥쑥 자라 낚싯대 보다 긴 장대가 되었다. 마당에 비질을 하면서 들여 쉬는 산소와 피부에 스치는 산뜻한 감촉, 누구와 나눌까 돌아보아도 더불어 나눌 이 없어 아쉬운 날들이다.

 

이 쪽 마당 끝과 저 쪽 마당 끝에 반환점을 두고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일 없이 소요하니, 사노라 분주한 이들에겐 미안하기도 하지마는, 누가 한가하게 못 살도록 훼방하는 이도 없건마는 세상사 번다하다 못해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이는, 언제 해가 뜨고, 달이 지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다 자기의 세계가 있고 인생이 있어서 꼭 이렇게만 살아야 한다고 고집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떠한 믿음 속에 적을 두고 사는 사이라면 서로가 멋있게 잘 사는 일들을 공유하고, 이러 이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의논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믿음의 영역 안에서 믿음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우리가 최소한 불자라면 불교도라는 테두리 안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서로의 역할을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이 첫째다. 그 다음에 수행해야 하고 그 다음엔 행복해야 한다. 오늘은 역할 수행 행복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하고 한적을 말해야겠다.

 

평신도들의 역할은 첫째가 보시다. 수행자들과 물질적으로 나누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재가신도가 출가승을 가장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보시다. 어려울 때 보시한 신도들은 평생 은혜롭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스님들이다. 때론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으나 늘 마음에 고마움을 지니고 있다.

 

그 다음은 수행이다. 나중에 가서는 수행이란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수행이다 라는 곳까지 가지만, 그럴수록 처음 초심자처럼 저마다 하고 있는 염불, 간경, 참선, 다라니 중에 선택한 자기방법을 곧이곧대로 잘 챙겨야 한다. 살, 도, 음, 망, 주, 라는 오계를 잘 지켜야 하는 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행복이란 보시 잘 하고, 계 잘 지키고, 수행 잘 하는 그 자체를 즐기는 삶이다. 나중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보시하고 계 잘 지키고 수행한다면 그 일은 한 템포 늦은 행복 찾기이다. 붓다의 마지막 유훈이 “수행 잘해라. 게으르지 말고” 아니었던가? 바로 이 시간과 공간에서 행복하는 일이 불교의 핵심인 현법낙주다. 최소한 내가 아는 불자들은 이점을 명심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못하는 것은, 한평생 익힌 나름대로 즐기는 방법에 중독이 되어서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로 재미있는 일을 찾아 동분서주하기 때문에 참 즐거움은 늘 뒤로 쳐진다. 참 즐거움이란 수행을 통한 선열, 진리를 이해하는 법열의 즐거움이지만 중생의 업은 참으로 무섭다. 좋은 길로 가지 않고 마음을 유혹하는 쪽으로 시종일관하려고 하니 문제인 것이다.

 

도현 스님 

 

 

 

 

 

 

 

지리산 오두막 수행자가 보내는 산중편지, 조용한 행복 2 / 도현 스님

한적 아득히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한 밤중의 소쩍새 울음소리, 새벽이면 새들의 지저귐, 건너 산에서 곰들이 다투는 소리,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그윽한 산중... 초록 산색에 밤나무 꽃꿀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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