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한국 선어록 - 해제

수선님 2023. 12. 3. 13:16

總目次 총목차

眞覺語錄 진각어록

白雲語錄 백운어록

太古語錄 태고어록

懶翁語錄 나옹어록

凡例 일러두기

1. 이 책은 대한불교조계종에서 한국불교 전통사상의 선양・유통을 위하여 기획한 한국전통사상총서 제8권 [선어록편]이다.

2. 이 책의 번역과 관련한 제반 사항은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의 번역 지침에 따랐다.

3. 이 책에 수록한 네 편의 어록은 조선 중종(中宗) 21년(1526)간・중종 23년(1528)간 목판본과 1940년 보제사(普濟社)간 연인본(鉛印本)『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이상 고려대학교 소장), 고려 우왕(禑王) 4년(1378)간 목판본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940년 보제사간 연인본『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고려대학교 소장), 고려 우왕 5년(1379)간 목판본『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을 각각의 저본으로 하고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권6을 참고하여 각 어록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주요 부분을 일부 발췌하여 역주한 것이다.

4. 이 책에 실린 진각어록 상당(上堂) 편은 김영욱(金榮郁) 역해(譯解)『진각국사어록 역해1』(2004, 가산불교문화연구원출판부)의 번역과 해설을 참조하여 일부 수정하고 전거를 보충한 것이며,「소참」・「법어」・「서답」은 새로 발췌하여 역주하였다.

5.『조계진각국사어록』은 ‘진각어록’으로, 『백운화상어록』은 ‘백운어록’으로,『태고화상어록』은 ‘태고어록’으로,『나옹화상어록』은 ‘나옹어록’으로 지칭하였다. 주석 부분에 실린 전거들의 책명 또한 일반적으로 쓰이는 약명을 사용하였으며, 책명・편명 등은 한자로만 표기하고 한글을 병행하여 쓰지 않았다.

6. 해당 어록 내에서 참조주석 연관을 보일 경우에는 어록 명을 따로 제시하지 않고 주석 번호만을 명기하였으며, 다른 어록의 참조주석 연관을 보일 경우에는 해당 어록 명과 주석 번호를 함께 명기하였다.

7. 이 책의 분장(分章) 및 각 장의 제목은 저본의 기본 편제와 내용을 고려하여 역주자가 임의로 가한 것이며, 단락 역시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역주자가 구분한 것이다.

8. 한 낱말 또는 구절에 주석을 붙일 경우, 본문에 한글과 한자가 병기되어 있을 때는 바로 주석을 하고, 한자가 병기되어 있지 않을 때는 주석에 한자 또는 한자어를 명시하고 주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9. 원문 교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감 표시 없이 올바른 글자를 취하여 썼다.

10. 한글 번역문과 한문의 문장 구성상의 특성에 따라 표점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밝힌다.

11.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은 高로,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는 韓으로,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은 大로, 만속장경(卍續藏經)은 卍으로 표시하였다.

12. 산스크리트어는 , 팔리어는 , 티베트어는 로 표시하였다.

解題 해제

1. 선어록의 세계

2. 한국 선어록의 선법

3. 서지 사항

1. 선어록의 세계

1) 선어록과 경전

선어록은 조사(祖師)라는 인간상의 출현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그 형식과 내용 면에서 한국 선어록의 원초적 계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어록이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과 그 문하의 선승들에게서 비롯한 것도 이들로부터 조사의 진면목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사는 생활 반경 전체를 수행의 장으로 삼고 그 안에서 자신이 터득한 어록은 경전의 권위와 버금가는 지위를 누렸고, 생생한 사물 세계를 전하기 위하여 개성적 사유와 언어로 타성적 관습을 넘어선 경계를 지향했다. 조사들은 주어진 모든 이론과 관념을 깨끗이 버리는 것을 공부의 전제로 요구한다. 그 처분 과제에는 경전도 포함된다. 나옹은 「일주수좌에게 주는 법어」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배웠거나 이해하고 있는 부처에 대한 견해와 법에 대한 견해는 한꺼번에 쓸어내어 바다 속에 버리고 다시는 들먹이지 마라.”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경전과 동일한 무게를 지니지는 못할지라도 선어록의 언어는 언제나 경쾌한 움직임으로써 굳어져버린 의미체계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세상에 군림하는 온갖 군자풍의 가치를 싼값으로 끌어내리기도 한다. 불교의 모든 종파가 의지하는 만고불변의 근거가 되는 경전의 말씀과는 달리, 어록의 문답은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현상을 표현하는 언어로 엮어져 있다. 이론가의 엄밀한 논리와 교설도 조사들에게는 타파해야 할 한낱 족쇄에 불과하다. 어록이 경전에서 완전히 벗어난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경전을 대변하는 교설의 변주곡으로 전락하지도 않는다. 조사들은 경전에서 인용한 구절들도 각개의 상황에 따라 소도구로 활용할 뿐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교설로 환원시켜 해석할 경우 그 특징을 파악할 수 없다. 본분을 밝히기 위해 끌어들인 경전과 어록의 내용은 조사들에게 소화되는 과정에서 질적으로 새롭게 변신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분명하게 그 관계를 포착할 수 없다. 조사들의 성향에 따라 특정한 경전의 말씀이 다른 어떤 것보다 빈번하게 인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선(禪)의 경계를 지시하기 위한 도구의 역할을 마치면 바로 물리칠 대상이 된다.

조사의 어록에는 어떤 형식에도 제한 받지 않고 주고받은 일상생활의 문답과 기연도 있지만, 상당・소참・시중 등의 법문은 의례화 된 선종의 전통이다. 이것은 여러 대중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므로 아무 준비 없이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설법이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 법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선가 전통에서 전거가 있는 구절이 소재가 된다. 물론 이에 대한 단순한 해설이나 소개에 그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선조들의 견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통하여 당사자의 선기(禪機)를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진각어록』상당「씨줄과 날줄」의 용화회(龍華會)와 같이 매년 일정한 날에 개최하는 법문,『백운어록』・『태고어록』・『나옹어록』의 첫부분에 나오듯이 주지가 되어 처음으로 어떤 절에 들어가서 베푸는 입원법문(入院法門), 매달 정기적으로 행하는 상당 등은 최소한의 형식을 공유하며, 바로 이 점 때문에 내용상으로만 보면 동일한 유형의 법문이 발견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 선어록에는 상당(上堂)과 같은 공식적 법문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일상 속에서 조사들의 선기가 우연히 부딪치며 일어나는 내용의 기록은 드물다.

2) 선어록의 방법적 요소

조사들이 전하는 긴 말이나 한마디 말 그 어디에도 잡아챌 수 있는 ‘실(實)’은 없다. 임제의현(臨濟義玄)이 ‘자신이 드러내는 말에 실을 가진 법은 없다’1)고 한 뜻과 같다. 그들이 내뱉는 언어 한가운데는 함정과 같은 ‘허(虛)’가 잠복하고 있다. 진실로 믿고 안주하겠다는 마음으로 그 말을 밟고 멈추는 순간 그 함정에 떨어지고 만다. 이것이 화두의 본질적 속성이다. 화두의 허(虛)에 걸려들기를 반복하다가 의지할 실(實)이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장막이 온전히 걷히고 허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미끼를 따먹으려다가 걸려든 물고기들이 풀려나고서야 그것이 미끼인 줄 아는 것과 같다. 더 이상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백척간두의 소식은 이 허에서 전해지며, 선어록의 말들은 최대한 이것을 전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들이다.

1) 태고어록 주석266) 참조.

간화선에서 개발한 화두의 실마리도 여기에 있다. 화두는 철저하게 허(虛)로 주어지므로 공부를 할 때 화두의 난관을 해결해주리라고 기대되는 모든 의지 대상과 수단을 텅 비워 없애고 오로지 화두 하나만 남겨 두어야 한다. 『진각어록』「노상서에게 보내는 답신」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만일 화두를 참구하여 진실로 깨닫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이전에 좌선하면서 얻은 경계, 경전의 교설에서 터득한 내용, 옛사람의 어록에서 얻은 분별, 종사가 한 말에서 터득한 수단, 일정한 맛이 있어 진실로 아끼던 지식 등을 모두 한꺼번에 다른 세계로 쓸어버리고 화두만 자세하게 살펴보십시오.” 진각이 다른 사람의 견해에 미혹되어 따라다니지 말 것을 강조한 것2)도 동일한 맥락이다. 만일 실(實)한 관념에 의지하여 옛사람이 제시한 화두를 이해하고 해명한다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생명을 죽이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조사의 본분을 터득한 자들은 주어진 화두에 끌려 다니며 현혹되지 않고 그 안에서 소재를 끌어내어 또 하나의 화두로써 대응한다. 이것이 하나의 화두에 대하여 또 다른 화두로 맞서는 이중공안(二重公案)의 형식이다. 조사들은 전대의 화두나 문답에 대하여 긍정하거나 부정하면서 어떤 형태로 말을 붙이더라도 그 화두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설명 방식은 거부한다. 그들은 오직 그 화두와 대결할 자신만의 화두를 던지는 기개를 펼칠 뿐이다. 모든 화두를 하나의 착각으로 받아들여 그것에 물들지 않고, 스스로 착각의 관문을 또 하나 창안하여 응답하는 장착취착(將錯就錯)의 방법이 그것이다.『진각어록』「광엄선인에게 주는 법어」 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오로지 뚫고 나아가야 하는 관문을 세웠다 허물고 그 빈터에 다시 화두의 관문을 재건할 뿐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 화두에서 확정된 해답을 추구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실제적’ 착각이고, 화두의 긴장은 거기서 끊어지고 만다.

2) 진각어록「진강 후비 왕도인에게 답하는 글」 참조.

본분을 추구하는 선사들은 절묘한 듯이 보이는 성인의 말들이 어떤 맛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이러한 안목을 가지고 조사들은 그 말들을 남김없이 몰자미(沒滋味)한 화두로 설정하는 것이다. 선어록을 대하는 독자는 이 점에 유의하여 표면적인 구절에 드러나지 않은 반전의 요소를 읽어야 한다. 승부에 진 사람에게 이기는 패를 주고, 이긴 사람에게는 지는 패를 주는 방식으로 화두를 평가하여 단정적 승부를 갈구하는 경직된 의식을 녹이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연출법이다. 하나의 공안을 대하고 그 속에 주어진 언어의 형식과 전혀 다른 뜻으로 평가하거나 짓누르듯이 비판하는 의중을 자세히 반복하여 살피다 보면 조사선이 지향하는 뜻을 엿볼 수 있고 화두의 묘미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부정과 비판의 형식이 내용적으로 그 공안의 취지를 모두 뒤집어엎는 것도 아니다. 이와는 달리 상대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는 긍정의 형식을 취할 때도 부정의 뜻은 그대로 살아 있다.

앞의 두 가지 수단을 적절하게 나타내는 개념이 파주(把住)와 방행(放行)이다. 파주는 모든 입과 논리를 틀어막는 부정의 수단이고, 방행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는 전면적인 긍정의 수단이다. 이 두 가지 수단을 양 날개로 삼아서 한 번은 뒤집고 한 번은 바로 세우는 것이 화두를 운용하는 묘미이다. 상대가 뒤집어 놓으면 바로 세우고 바로 세우면 다시 뒤집어 놓으며, 모으면 찢어서 사방으로 벌리고 흩어지면 다시 모은다. 이런 방식으로 파주와 방행을 번갈아 넘나들며 활용함으로써 안주할 터를 빼앗아 화두에 대한 분별의 근거지를 쳐부수는 것이다. 그것은 잘 알려진 공안과 경론의 내용까지 자유롭게 재구성함으로써 선기(禪機)를 발휘하는 힘의 원천이다.

어떤 자들은 선어록이 무의미한 문답을 남발할 뿐이며 비논리적이라고 고개를 돌리지만, 선어록은 독자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 말들 속에는 분명한 논리가 들어 있다. 화두는 우리의 판단을 고착시키고 안목을 마비시키는 온갖 잡다한 의미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것이 지향하는 뜻은 단순하지만 의식을 세척하고 다듬는 수단으로 본다면 어떤 수행법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 속의 은밀한 논리와 수단을 파악하려면 선어록을 깊이 있고 정확하게 탐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조성한 무의미와 실(實)을 가장한 허(虛)의 논리 등은 하루아침에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2. 한국 선어록의 선법

한국의 불교 전통에서 선어록으로 분류되는 현존 문헌은 이 책에서 역주의 대상으로 삼아 발췌한 네 편의 어록이 전부이다. 이 책은 네 어록에서 주요한 법어들을 선별하여 번역하고 주석을 붙인 것이다. 비록 완역은 아니지만 한국 선어록의 면모를 일람하는 근본 자료로서는 모자람이 없으리라 생각하며, 앞으로 이 어록들이 모두 엄밀한 역주를 거쳐 독립적인 책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의 선어록에는 조사선(祖師禪)과 간화선(看話禪)의 특징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 두 선법(禪法)은 확연한 경계로 그 영역이 구분되지는 않지만 막연하게 뒤섞여 있지도 않다. 간화선은 조사선에서 닦아 놓은 기반에 입각하여 화두 참구라는 특수한 방법으로 그 성과를 계승한 것이다. 전래의 가치와 언어를 비롯하여 대면하고 있는 상대의 충만한 관념들을 뒤집어엎고 그 전도된 판을 다시 전도시키는 부단한 과정을 통하여 구현된 궁지(窮地)에서 조사선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 궁지를 한마디 말에 담아 던지는 것이 간화선의 방법이고, 그 말을 화두라 한다. 모든 화두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를 맛보고 최후에 그것을 타개하여 장애가 없는 경지를 여는 사람이 조사의 반열에 들어간다. 조사들은 경전의 교설이나 설화도 믿고 받들어야 하는 당위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의 화두로 재구성 한 다음에야 진리에 이르는 가교로 수용한다. 이와 같이 경전을 새롭게 조정하여 조사의 안목을 드러내는 방식을 운문문언(雲門文偃)은 간경안(看經眼)3)이라 했다. 간화선이라는 화로(火爐)에서 단련된 자들은 이러한 조사선의 세계와 태생적으로 밀착되어 있는 것이다.

3) 백운어록「경전을 꿰뚫어보는 눈」참조.

이 네 어록의 주인공들은 간화선이 선법의 핵심으로 정착하여 성숙된 시기에 활동했던 선사들이다. 『진각어록』에는 조사선의 선풍과 간화선의 방법이 동시에 발견된다. 상대적으로 태고와 나옹의 어록은 간화선에 한층 치중되어 있지만 여기에도 조사선의 경계를 넘나드는 법어가 적지 않다.

이들 어록의 문답과 평가에서 조사선 풍의 구절 하나하나에 숨은 화두의 궁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핵심을 포착할 수 없다. 『백운어록』의 경우 조사선의 법어가 충실하게 수용되어 있지만 간화선의 특색은 다른 세 어록과 비교하여 희미하다. 이 어록에 몇몇 화두가 소재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화두 참구의 본격적인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진각・태고・나옹 등 세 어록에 조주(趙州)의 무자(無字) 화두가 절대적인 수로 제기되는 것은 우리나라 간화선에만 보이는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간화선의 방법에 따라 무자를 최초로 해석한 오조법연(五祖法演1024~1104)이 그 방법론적 골수를 세상에 드러낸 이후로 그것은 간화선의 대표적인 화두로 자리잡았다. 이 업적을 이어 간화선을 대성시키고 당시 수행자와 지식인 사회에 널리 전파한 대혜종고(大慧宗杲)가 특별히 무자를 통하여 화두 참구의 기본적 틀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그는 무자 화두를 참구할 때 발생하는 병통을 빈번하게 제기하여 그 의미를 확충하였고, 그것을 보조지눌(普照知訥)이 십종병(十種病)이라는 용어로 정리하여 본 어록의 세 주인공과 후대의 서산휴정(西山休靜)에까지 이어지는 주된 테마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 선사의 법맥에 대해서도 정확한 분석과 고증이 수반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막연하게 임제종(臨濟宗)의 전통이라 규정하여 그들의 선법을 헤아리기도 하지만, 이러한 단정은 우리 선맥(禪脈)의 실상에 대한 인식을 진작시키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한 흔히 진각을 제외한 세 선사가 원나라에 방문하여 석옥청공(石屋淸珙)・지공(指空)・평산처림(平山處林) 등을 만나 인가를 받고 귀국한 뒤로 편지를 교환했다는 사실 등에 근거하여 영향 관계를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교류한 행적에 따라 그렇게 믿고자 하는 것일 뿐, 어떤 선법이 어떻게 계승되고 전개되었는지 어록과 문집을 엄밀하게 분석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한 학자는 거의 없다. 이 역주 작업이 세세하게 누구의 영향 아래 그들의 선법이 성립되었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근거를 뒷받침하는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 아닌 사실들에 근거 없이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분명한 증거인 어록을 통하여 선법의 전승이 그들의 현실적 관계만큼이나 친밀한 것인지, 아니면 해외 유학과 관계 없이 이들만의 독자적인 선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검증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들이 남긴 어록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길이 남아 있어 이 과제와 대결할 희망이 있는 것이다.

한국의 선어록은 조사선의 배경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간화선의 수행법과 사상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구절마다 들어 있는 화두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 선법의 핵심을 짚어낼 수 없다. 다만 간화선의 측면에서 보면 『백운어록』은 예외로 취급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각 어록은 서로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선사상의 측면에서 일관적으로 공유하는 맥락을 보여주고 있다.

각 어록의「상당」이나「입원법문」등에서 무자와 같은 특정한 화두를 직접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법문이 보여주는 대의는 간화선 특유의 방법을 고려하지 않고는 알 수 없고, 또한 그곳에 걸어놓은 관문의 빗장도 풀리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화두를 포착하는 안목이 없으면 법문의 본질을 빗나갈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항상 두 길을 막아놓고 말하기를 요구하는 배촉(背觸)에 대한 법문은 화두의 관문을 제시하는 전형적 방법인데, 이러한 예는 곳곳에서 발견된다.4) 이것을 다른 논법으로 풀면 유사한 느낌을 가질 수는 있어도 적확하게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주로 개인적으로 전하는 법어나 편지 등의 글에서는 구체적인 화두를 들려주고 그 참구법도 직접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조사선류의 활달한 법어와 화두 참구법은 상호 침투되어 긴밀하게 연관된다. 어록의 역주는 바로 이 점이 여실히 드러나도록 적절하게 번역하고 빈틈없이 해설하는 것이 핵심이다.

4) 『진각어록』 주석 92), 302) 등 참조.

1) 진각어록

이 책은 선어록의 내용적 요소를 빠짐없이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선어록으로서의 형식을 온전히 구비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어록이다. 다른 어떤 선 문헌도 그 구성과 내용에서 이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 어록에서 진각혜심은 역대 선가의 보검과 같은 수단들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 조사로서의 선기(禪機)를 남김없이 펼쳐 보인다. 진각은 역대 조사들의 문답과 언구들을 사통팔달 꿰뚫는 가운데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꼿꼿하게 자신의 견해를 보여준다. 조사로서의 품격을 따진다면 한국 선종사에서 필적할 선사가 없고, 우리나라 조사선・간화선의 종조(宗祖)로 자리매김할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 걸출한 인물이다.

정형화된 화두를 제기하지 않는「상당」의 구절 곳곳에는 조사의 본분이 각양각색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어느 말에나 화두의 관문이 가로막고 있어 그 속을 쉽게 열어 보여주지 않는다.「상당」에서는 ‘무자’나 ‘만법귀일’과 같은 화두를 직접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진각이 어떤 말에 관문의 빗장을 걸어놓았는지 간파해야 그 온전한 의미가 독자의 눈에 드러날 것이다. 선사는 이와 같이 조사로서 화두라는 덫을 쳐 놓고 자신의 정체를 알아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늘어놓은 말길을 지워 없애 갈곳을 잃게 만드는 수법에 조사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방패와 창을 모두 빼앗아 전투의 무기를 소진하듯이5) 진각은 상대가 소유한 의식의 수단을 해체시킨다. 여기에는 분별의 관념을 남김없이 내려놓은 상태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시하는 뜻이 들어 있다.

5) 진각어록「살인도 활인검」 참조.

절묘하게 고안된 착각으로 또 하나의 착각을 후려치는 방법6)으로 선어(禪語)가 가지는 관문으로서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부드러운 말씨로 ‘마음’을 일러주고 그에 대한 부가적 설명을 친절히 해 주어도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겹겹의 관문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7) ‘마음’이라는 평탄한 한 수를 놓으면서 시작하지만 착수하는 손길마다 상대가 착각하기 쉬운 함정수가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눈앞의 갖가지 현상과 교학적 개념까지 모든 것이 화두의 소도구가 되어 확정된 의미를 ‘의심’ 속으로 몰아넣고,8) 어떤 분별도 통하지 않는 은산철벽(銀山鐵壁)의 소식9)과 마주하도록 한다. 이처럼 진각은 낱낱의 식상한 말을 화두로 전환시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노련한 작가(作家)이다. 이 모든 수단은 목적지로 인도하려는 냉정한 조사의 면모이기도 하지만, 간화선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선사의 친절한 배려이기도 하다.

6) 진각어록「광엄선인에게 주는 법어」참조.

7) 진각어록「마음이란」,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참조.

8) 진각어록「주광세의 별세한 처를 위하여」 참조.

9) 진각어록「진퇴양난」, 「광엄선인에게 주는 법어」참조.

바로 지금 이 순간[此時]에 터를 잡고 현재의 상황에 딱 들어맞게 하는 설법10)은 시절인연(時節因緣)을 강조하는 조사선의 특징이다. 그 현장에서 바로 알아차릴 일이며 머뭇머뭇 기다리는 틈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그때마다 피부에 와 닿는 감성을 자극하여 조사의 뜻을 드러냄으로써 학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11)이다. 이 점에서 진각이 보여주는 별천지는 발을 디디고 있는 바로 그 현장이며, 그곳이 신선의 놀이터12)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선사의 상용물인 주장자로 본분을 가리키거나,13) 눈앞의 향궤(香几)를 지시하며 본분과 연관시키는 방법14)도 그와 마찬가지다. 고명한 곳으로 인도하더라도 결국은 반드시 현재의 그 사람이 살아가는 평상의 현장으로 되돌아온다.15) 자연물을 소재로 삼아 본분의 화두를 지시하는 것16)도 마찬가지 뜻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이 감성적으로 마주치는 현실을 곧바로 가리켜 그것으로부터 떠나지 못하도록 하지만, 그곳에 그대로 뿌리를 내리고 알려고 하는 시도도 막음으로써 그 모든 것에서 화두를 발견하도록 유도한다.17)

10) 진각어록「바로 지금」,「물을 찾는 물고기」참조.

11) 진각어록「천기누설」참조.

12) 진각어록「호리병 속의 별천지」참조.

13) 진각어록「주장자의 진실」,「물속에 어린 달」,「하나의 꿰미」참조.

14) 진각어록「흰 소가 있는 곳」참조.

15) 진각어록「소를 타고 소 찾는 사람」,「담준상인이 법어를 구하여」참조.

16) 진각어록「연지 찍고 분 바르고」참조.

17) 진각어록「여의주의 뜻」참조.

이 어록이 보여주는 인용의 정확성은 학자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진각은 결코 남의 말에 빚을 지고 어물쩍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관련된 용례들을 폭넓게 제시하므로 당시까지 선종에 전승된 다양한 전거를 접할 수 있다. 선사들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상세한 인용이 많지만, 그것이 조사의 본분과 충돌하지 않고 조사선과 간화선의 종지로 통일성 있게 수렴하고 있다.

경론의 인용도 이 하나의 목적을 부각시키거나 극적인 반전을 노리는 전략인 한에서 의미를 갖는다. 경전의 말씀과 조사의 말을 모조리 몰자미(沒滋味)한 화두로 설정하여 철저하게 의심의 대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뜻18)은 간화선의 입장을 나타낸다.『법화경』의 일대사인연을 제시하고 배촉관(背觸關)으로 귀착시킨 것19)과『문수사리문법신경』을 인용한 다음 결국에는 그것을 가루가 되도록 부수어버리라고 지시하는 방식20)은 전형적인 조사선의 틀이다. 선사의 선법을 보증하는 근거로써 경전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지(禪旨)를 드러내어 본분사(本分事)로 귀착시키기 위한 활용인 것이다. 법신에 관한 『금광명경』의 설을 화제로 던지고 ‘향상하는 하나의 길’을 열어놓아21) 안주하는 높은 지위에서 법신을 아래로 끌어내리거나, 대소승의 경전을 눈앞에 드러난 분명한 선의 세계로 조명하는 방법22)등에 숨길 수 없는 조사로서의 안목이 나타난다. 또한 전통적인 수행법인 지관(止觀)과 정혜(定慧)가 화두를 궁구하는 간화법에 모두 구현되어 있다는 말23)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는 진각만의 주장으로서 화두 공부의 본질을 깊이 간파한 경지가 드러난다.

18) 진각어록「상서 최우에게 보내는 답신」참조.

19) 진각어록「물들지도 벗어나지도 마라」참조.

20) 진각어록「어둠 속에 홀로 서라」참조.

21) 진각어록「향상하는 하나의 길」참조.

22) 진각어록「눈앞의 진실」참조.

23) 진각어록「손시랑이 법어를 구하여」참조.

2) 백운어록

백운의 선법은 꾸밈없고 자연스럽다. 그는 어느 종파나 조사의 선법을 강조하지도 않았고, 그때그때마다 종지에 부합하는 내용을 빌려와 활용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무리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간화선의 경우 몇몇 구절의 화두가 등장할 뿐 화두 참구의 방법을 애써 강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백운은 원나라에 들어가 견문을 넓힌 이래로 꾸준히 선사상의 정보를 비축함으로써 당대 조사선의 선법을 충실하게 전한 것으로 보인다.

원론적인 교설에 의존하지 않고 소리와 색과 언어 등으로 종지를 구체화하고 감각적 통로로 깨달음에 이르는 사례들을 모아 간단하게 논평한「조사선」이라는 글에서 백운이 지향하는 조사선의 특징을 포착할 수 있다. 현상에서 곧바로 가리킬 수 있는 대상을 통하여 종지를 나타내는 직지(直指)의 선풍을 백운이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백운은 직지의 뜻에 부합하는 역대 조사들의 문답과 기연의 요체를 발췌하여 선종의 종지를 소개한『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의 편자이기도 한데, 직지라는 하나의 개념에 조사선의 뜻을 모두 담을 수 있다는 발상이 그의 어록에도 초지일관 보인다. 천호(天浩)에게 붙인 편지에서 ‘남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조사선을 꿰뚫어야 한다’라며 조사들이 제시한 화두와 몇 가지 문답을 들어 그 맥락을 들려준 것24)에서도 백운의 입각점이 조사선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화제를 제기하고 몇 가지 의문으로 또 다른 문제를 던져주는 방법,25) 운문의 화두에 대한 법안의 평가를 비판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26)은 조사선에서 상용하는 형식이다. 분양선소(汾陽善昭)와 취암수지(翠巖守芝)가 선가의 종풍에 대하여 기술한 말을 축약하여 소개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다음 그것이 역대 선가의 뜻과 같은지 다른지를 묻는 형식27)도 그러하다. 부처님 탄생 설화에 대한 공안과 그에 대한 운문의 평석을 동시에 제기하고, ‘대단한 법안이여! 비록 운문의 뜻을 간파하기는 했지만 결국 운문을 추켜세워 주지는 못했다’28)라고 한 비판 역시 조사선에서 공안을 처리하는 일반적 양식이다. 이러한 면모가 있기 때문에 백운은 조사선의 전통을 이어간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선사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24) 백운어록「내불당의 감주 장로 천호에게 붙이는 편지」 참조.

25) 백운어록「지옥이 바로 정토」참조.

26) 백운어록「부처가 걸어간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참조.

27) 백운어록「망아지 한 마리가 세상을 짓밝은 소식」참조.

28) 백운어록「부처가 걸어간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참조.

본 어록에서도 역대 선사들의 법문과 평가들을 인용한 예가 많은데 백운 자신의 말과 그것이 확연한 경계로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누구의 말인지 밝히지 않거나 ‘옛사람이 말하기를’이라는 식의 표현으로 전거를 뚜렷이 제시하지 않고 전문을 그대로 수록한 경우도 다수 있다. 역주 과정에서 구절구절들을 하나씩 분석하다 보니 백운이 다른 선사들의 말을 자신의 말과 뒤섞거나 첨삭하여 변용한 내용이 많이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상당「깨달음의 실마리를 찾는가」에서는 서록본선(瑞鹿本先)의 말을 대체적으로 답습하면서 동시에 천태덕소(天台德韶)의 법문을 재구성하였는데, 한 구절 한 구절 찾아보지 않으면 백운 자신의 말로 알고 읽기 쉽다. 전체가 나한수인(羅漢守仁)의 법문과 다르지 않은 것29)도 그 예이다. 상당 「나한은 언제 오실까」에서는 운문의 문답을 제기하고 백운이 ‘나라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뒤 자신의 견해를 보이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사실상 이 대답은 황룡혜남(黃龍慧南)의 말을 그대로 빌려온 것이며, 그 다음의 상당30)도 황룡혜남의 법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바로 이어지는 상당31)은 응암담화(應菴曇華)의 법문과 동일하다. 첫 번째 시중「무심의 공덕」에서는 백운이 석옥청공으로부터 무념(無念)의 종지를 배우고 깨달았다는 일화를 말한 다음, 그것을 증명하는 뜻은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제자에게 내린 장문의 법어에서 남김없이 취하여 쓰고 있다. 교외별전의 취지를 밝히는 두 번째 시중「교외별전의 소식」의 대부분은 황벽희운(黃蘗希運)의『전심법요(專心法要)』에서 가져온 것이며, 시중「병을 약으로 아는 사람들」은 대혜종고의 법어를 그대로 실으면서 중간의 배치를 바꾼 정도이고, 그 다음의 시중 「공겁 이전의 소식」은 천태덕소(天台德韶)의 말에 기초한다. 이처럼 꽤 많은 부분이 하나의 전거 또는 둘 이상의 전거를 조합하여 구성한 것인데, 인용이라는 것을 직접 알 수 있는 표지(標識)가 없기 때문에 낱낱의 구절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이것은 또한『백운어록』이 형성된 근거를 밝히는 작업에도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사항이다.

29) 백운어록「학 다리와 오리 다리」참조.

30) 백운어록「번뇌의 경계에 서서」참조.

31) 백운어록「경전을 꿰뚫어보는 눈」참조.

백운은 석옥에게 무심(無心)의 종지를 받아 깨우쳤다고 고백하였고,「무심의 노래[無心歌]」를 지어 그 뜻을 더욱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희심(希諗)사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조주의 무심도인(無心道人)에 주목한 사실 등으로부터 그가 조사선의 선법을 무심으로 통일시켜 이해하였다고 판단된다. 이상공(李相公)에게 붙인 편지에서 대혜종고가 제자에게 준 법어를 고스란히 싣고 있으면서도, 대혜가 화두 참구의 요령을 밝힌 부분은 삭제하고 무심의 이치를 터득하라고 권하는 내용으로 대체한 것은 백운의 사유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백운의 선법을 무심선(無心禪)으로 성급하게 규정해 놓고 전체를 유추한다면 진실을 왜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에 분명하게 띄는 이러한 구절에서 그의 선법을 무심선으로 막연하게 규정할 일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조사선 전반의 선법이나 간화선의 방법과 연관되는지 어록을 통한 세밀한 분석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3) 태고어록

태고의 선법은 그 법명과 어울리게 어떤 언어나 분별의 조짐도 없는 ‘태고(太古)의 소리’32)를 중시한다. 이 소리는 본분을 일깨우는 소리이며, 그 어떤 맛도 남아 있지 않은 화두의 몰자미(沒滋味)한 소리이다. 그의 선사상은 철저하게 간화선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법어는 이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태고는 진각혜심에서 시작되어 수행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던 간화선을 대대로 이어지는 확고한 전통으로 정착시켰다.

32) 태고어록「입원법문」‘봉은선사 주지로 취임하며’ 참조.

주지로 취임하면서 행한 입원상당(入院上堂)이 많은 것도 이 어록의 형식적 특징 중 하나이다. 여기서 산문(山門)을 소재로 삼아 불출불입(不出不入)의 도리를 화두로 제시한 것이나, 주변의 사물 세계를 가리키는 직지(直指)의 방법33)은 조사선의 본령에 입각해 있는 면모이다. 아는 자에게도 30방을 때리고 모르는 자에게도 30방을 때려서34) 운신할 길을 봉쇄하거나, 나가지도 않고 들어오지도 않는 도리를 제기한 것35) 등은 화두 참구가 성숙되어 진퇴양난의 백척간두를 맞이하는 소식과 맞닿아 있다. 태고가 긍정의 형식보다 부정의 형식을 즐겨 쓴 의도는 여기에 있다. 예를 들면「진병상당」에서 ‘하나의 법도 설하지 않았다’라고 한 말과 자수회심(慈受懷深)이 긍정의 형식으로 내린 법문을 부정으로 바꾸어 활용한 것도 더 이상 앎의 수단이 통하지 않는 은산철벽(銀山鐵壁)의 경계로 유도하려는 뜻이다. 이것은 곧 화두 참구의 극치와 통한다.

33) 태고어록「입원법문」‘삼각산 중흥선사에 다시 주지로 취임하여’, ‘가지산 보림 선사에 주지로

취임하며’ 참조.

34) 태고어록「입원법문」‘봉은선사 주지로 취임하며’ 참조.

35) 태고어록「입원법문」‘희양산 봉암선사에 주지로 취임하며’ 참조.

「시중」에서는 무자(無字) 화두를 직접 제기하여 공부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스스로 점검하는 조목을 상세하게 열거한다. 이것은 그 뒤에 오는 여러 가지 법어의 대의를 총괄적으로 지시한다. 태고는 무자에 대한 의심을 품고 화두에 대한 분별이 전혀 없는 경계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잠시도 화두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대혜종고(大慧宗杲)만이 독자적으로 썼던 ‘마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경계(心無所之)’라는 용어를 특별히 취한 것 등에서 그의 선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그 밖에 전반적으로 고봉원묘(高峰原妙)・천목명본(天目明本)・몽산덕이(蒙山德異) 등 간화선사들의 방법론에 기초한 내용이 전개된다. 또한 그 취지와 비유에 진각혜심의 영향도 나타나며 그것은 고스란히 후대의 서산휴정(西山休靜)에게 계승된 것들이다. 공부를 할 때 화두 이외의 다른 생각이 파고들면 헛된 것에 미혹되므로 일상의 모든 경계에서 화두만을 알아차리고 대결해야 한다는 뜻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수행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세에 대하여 제시하고 화두를 점검하는 사항을 세세하게 나누어 보여줌으로써 참선의 방향을 구체화했다.

여러 거사들과 수행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내려준 법어에는 대부분 화두를 궁구하는 방법이 주제로 들어가 있으며, 무자 화두가 가장 많이 출현한다. 이것은 앞에서 나온 「시중」의 새로운 전개이다. 보조지눌(普照知訥)이 청정한 마음의 본체를 나타내기 위하여 쓴 공적(空寂)・영지(靈知)라는 개념을 태고는 화두를 바르게 들고 있는 심경으로 활용했다.36) 간화선의 관점에서 화두가 항상 뚜렷하게 들려 있는 상태에 공적과 영지가 모두 구현되어 있다는 뜻으로 보조의 전통을 새롭게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역대의 간화선사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독창적 관점인데, 지관(止觀)과 정혜(定慧)가 화두를 궁구하는 간화법에 모두 구현되어 있다고 한 진각혜심의 말을 이어받은 것이다. 무간단(無間斷)의 원칙에 따라 깨어 있거나 꿈을 꾸거나 항상 화두가 들려 있어야 한다37)고 하였고, 화두를 타파했더라도 반드시 종사를 친견하고 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많은 법어의 끝부분에서 반복하고 있다.

36) 태고어록「무제거사에게 주는 법어」참조.

37) 태고어록「무제거사에게 주는 법어」참조.

낙암거사(樂庵居士)와 백충신거사(白忠信居士)에게 염불(念佛)의 요지를 주는 법어에는 염불과 화두 참구법을 결합한 전형적인 선정일치(禪淨一致) 사상이 나타난다. 염불이나 전통적 관법 수행도 간화의 관점에서 통일시킴으로써 자신들의 근본적 입장을 분명히 드러낸다. 화두를 드는 요령으로 염불을 하면 그 공부에 차이점이 없다고 한다. 모든 법어에서 인용한 경전의 말들은 화두 참구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귀착된다.「진병상당」에서 ‘5교와 3승 12분교는 부처님이 지린 오줌일 뿐이며, 대대로 이어온 부처님과 조사들은 꿈속에서 꿈을 이야기하는 자들에 불과하다’라고 하면서 이 뜻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도리에도 근거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모든 인식과 언어의 실마리를 벗어나서 궁구할 하나의 화두를 던져준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태고가 간화선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선사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4) 나옹어록

나옹 선법의 기조는 동시대의 태고와 마찬가지로 조사의 기틀을 간직하고 발휘하는 간화선이다. 그는 간명하게 본분을 지시하지만 예리하게 전개되는 법어와 문답 속에 깃들어 있는 긴장감에는 조사의 본분이 뚜렷이 나타난다.

어록의 첫 부분인「입원법문」에서 나옹은 절의 곳곳을 돌면서 조사로서의 활달한 선기(禪機)를 남김없이 발휘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장자를 들었다가 내리치면서 그 소리와 형상을 매개로 삼아 전하는「결제상당」1의 법문은 조사선의 일반적 유산이다. 동시에 모든 형식의 분별을 차단하여 생각으로 모색할 수 있는 근거를 모조리 사라지게 한 다음에야 그 소리와 형상의 정체와 마주치도록 인도하는 것도 조사선의 방도와 통한다. 결국 눈앞에 분명하게 보이고 들리는 ‘이것’을 지시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나옹의 법문은 대부분 화두를 설정하는 법도에 맞추어져 있다. ‘나아가면 땅이 꺼져버리고 물러서면 허공이 부서져 내린다’38)라고 하면서 진퇴양난의 관문을 세우고 그 양단과 상관이 없는 여타의 통로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조사선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수단이며, 그것을 간화선에서 화두 설정의 방법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결제상당」 2에서 남자와 여자, 생과 사 등을 대치시켜 놓고 양자 사이의 경계를 모두 없앰으로써 분별할 여지를 빼앗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불자(拂子)에 부처와 조사가 앉아 있다고 설정한 「광제선사 개당법회」는 불자 자체를 은산철벽의 관문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입문삼구・삼전어 등의 틀을 공부거리로 조성한 것은 다른 세어록과 비교할 때 색다른 점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 격식이 가지고 있는 외형적 절차로 유도하였다가 마지막에는 무너뜨리는 임시설정으로서 화두의 허(虛)와 다르지 않다.

38) 나옹어록「소참」 참조.

삼현・삼요 등 임제종(臨濟宗)의 종지를 드러내는 수단을 모두 무화(無化)시키고, 조주의 무자(無字)를 제기한 다음, 사대・오온을 포함한 삼라만상 전체를 무자와 한 덩어리로 만들어 은산철벽을 마주하도록 하는「보설」의 취지로 보면, 이미 임제종이라는 전통적 영역에서 벗어난 간화선사 나옹의 본질이 드러난다. 여기서 나옹이 쓴 ‘효와( 訛)’라는 용어는 화두라는 언어가 가지는 묘미와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개념이다.

「시중」에서는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화두를 공부하려면 이전에 알고 있던 불법에 대한 정보와 각종 지식을 한꺼번에 쓸어 없애고 그에 대한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되며, 그런 뒤에 화두를 들고 끊임없이 반복하여 궁구하다 보면 어떤 경계에서나 화두에 대한 의심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맞이한다고 한다. 「상국 이제현에게 보내는 답신」2에서는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다른 화두와 바꾸지 말 것을 지시하는데, 그 뜻은「각성선화에게 주는 법어」에도 나타난다.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처음부터 참구하던 화두를 반복하여 의심하다가 억지로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저절로 의심이 살아 있는 경계에까지 이르러야 하며 공부에 진척이 없다는 생각에 다른 화두로 마음이 쏠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어록에는 전체적으로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 적지 않게 보이며, 화두를 참구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 있다는 신심(信心)과 견고한 의지를 누누이 강조하는 점에서는 고봉원묘(高峰原妙)의 영향이 컸음을 엿볼 수 있다.「지신사 염흥방에게 주는 법어」에서 시개시마(是箇什麽) 곧 ‘이 뭐꼬?’ 화두를 주고 일반적인 간화선의 원리에 따라 내리는 설명도 다른 문헌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각오선인에게 주는 법어」에서 태고와 마찬가지로 공적・영지를 화두 참구에 적용한 예는 한국 간화선의 맥을 잇는 징표이기도 하다.

나옹은 조사선・간화선의 계열과는 다른 사상과 수행법을 가졌던 인도 출신의 지공(指空)에 대하여 그 탄생일과 입적일에 행한 법문에서 그를 선종의 조사로 변모시킨다. 지공의 진영을 보고 ‘코가 불쑥 튀어나온 모습’으로 마무리 지은 것은 설명이 붙을 수 없는 몰자미(沒滋味)한 화두를 드러내는 조사들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누이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염송(念誦)을 권하면서 끊어지지 않고 드는 요령을 제시한 것은 태고와 마찬가지로 간화선의 방법을 염불에 적용한 예이며, 화두 참구 방법을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3. 서지 사항

1) 진각어록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의 어록이다. 원제목은『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이며, 『진각국사어록』이라고도 한다. 저본은 1526년(조선 중종21, 가정5) 3월의 유판본(留板本)이며, 2년 뒤인 1528년(가정7)에 간행된, 전남 순천(順天) 대광산(大光山) 용문사(龍門寺)의 유간본(留刊本)도 있는데 앞부분의 반 정도가 결락되어 남아 있지 않다. 이 두 판본 모두 고려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한불전6 pp.1a~47c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진각이 입적한 지 약 292년 뒤에 출간된 것이며, 그 이전의 판본은 현존하지 않는다. 또 다른 판본으로는 1940년 보제사(普濟社)에서 간행한 활자본이 있다. 상당(上堂)・시중(示衆)・소참(小參)・실중대기(室中對機)・수대(垂代)・하화(下火)・법어(法語)・조계진각국사서답(曹溪眞覺國師書答)・보유(補遺)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제사 판본은 목판본과 비교하여 내용상 크게 다르지는 않으며, 다만 편집 순서와 소제목 명칭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정도이다.

2) 백운어록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의 어록이다. 원제목은『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이다. 저본은 백운이 입적한 4년 뒤인 1378년(고려 우왕4)에 간행된 천령(川寧) 취암사(鷲岩寺) 유판본이다. 이것이 가장 오래된 목판본이며 이것을 저본으로 한 2권 1책의 필사본도 있지만 간행연대는 알 수 없다. 1934년 경성제대(京城帝大) 법문학부(法文學部)에서 일본 학자 다카하시(高橋亨)가 해제를 붙여 출간한 영인본도 있다. 한불전6 pp.637a~668c에 1378년 판본이 수록되어 있다. 상하 2권으로 법어・게송・시문・서장 등을 시자인 석찬(釋璨)이 모아서 엮었다. 책머리에는 고려 말의 유학자 이색(李穡)이 1378년에 쓴 서문과 이구(李玖)가 1377년에 쓴 서문이 실려 있다. 상권은 총 11문(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주 신광사입원법어(神光寺入院法語) 5편, 장단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 66편, 그리고 조사(祖師禪)・선교통론(禪敎通論)・운문삼구석(雲門三句釋) 등 44문의 글이 실려 있다. 하권에는 ‘1351년(지정 신묘) 5월 17일, 스님이 원나라 호주의 하무산에 있는 천호암에 이르러 석옥청공(石屋淸珙)스님에게 바친 어구. 至正辛卯 五月十七日 師詣湖州霞霧山 天湖庵 呈似石屋和尙語句’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시작으로 게송・진찬・서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3) 태고어록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의 어록이다. 원제목은『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이다. 상하 2권이며, 제자 설서(雪栖)가 엮었다. 태고가 입적한 3년 뒤인 1385년(고려 우왕11)에 쓴 이색(李穡)의「서문」으로 보아 그 무렵이나 이전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목판본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다. 저본은 1940년(소화15) 월정사(月精寺) 간행본이며, 이것은 보제사(普濟社)에서 발행한 연인본(鉛印本)과 같다. 한불전6 pp.669a~702a에 수록된 것의 저본이기도 하다. 이능화(李能化)의『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중편 pp.206~254에도 수록되어 있다.

4) 나옹어록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의 어록이다. 원제목은『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이며,『보제존자어록(普濟尊者語錄)』이라고도 한다. 초간본은 나옹 생존 시(44세)인 1363년(공민왕12)에 각련(覺璉)이 모아서 혼수(混修)가 교정하였고 백문보(白文寶)의 서문이 붙어 있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초간본이 일본의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에 소장되어 있다는 학계의 정보는 물증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저본은 1379년(우왕5)에 재간한 목판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권본으로 한불전6 pp.702b~729c에도 수록되어 있다. 시자 각련(覺璉)이 기록하고 환암혼수(幻庵混修)가 교정하였다. 이본으로는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간행연대 미상의 판본이 있는데 각뢰(覺雷)의 집록(集錄)으로 되어 있으며, 유사한 판본이 동국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1930년(소화5) 경성제국대학에서 저본을 영인하였고(현재 성균관대학교 소장), 1940년(소화15)에 월정사(月精寺)에서도 연인본(鉛印本)을 발행했다. 이능화(李能化)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중편 pp.257~312에도 수록되어 있다. 책머리에는 1379년(우왕5)에 이색(李穡)이 지은 서문과 제자 각굉(覺宏)이 서술한 행장 그리고 이색이 지은 비문 등이 실려 있다. 개당(開堂)・입원(入院) 등의 설법과 결제상당(結制上堂)・해제상당(解制上堂)・욕불상당(浴佛上堂) 등의 상당, 각종 보설(普說)・소참(小參)・만참(晩參)・시중(示衆) 등이 수록되어 있고, 지공화상의 탄생일・입적일과 기골(起骨)・입탑(入塔) 등의 행사 때 행한 법어, 제자들과 재가 신자들 개개인에게 내려준 법어, 스님들의 입적 때 행한 하화(下火)・살골(撒骨)의 법문 그리고 대어(代語)・감변(勘辨)・착어(着語) 등이 실려 있다. 또한 입문삼구(入門三句)・삼전어(三轉語)・공부십절목(工夫十節目) 등에서는 선의 도리를 간명하게 정리하여 제시했다. 

 

 

 

 

 

 

 

한국 선어록 - 해제

總目次 총목차 眞覺語錄 진각어록 白雲語錄 백운어록 太古語錄 태고어록 懶翁語錄 나옹어록 凡例 일러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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