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자료[511]浮休堂大師(부휴당대사) 선시모음
전등홍법 부휴당선수 대선사(傳燈弘法 浮休堂善修 大禪師)(1543-1615년)25
浮休堂大師集 부휴당대사집(善修 선수)
贈華禪伯 화(華) 선백(禪伯)에게 드림
解脫非眞寶 해탈도 참된 보배가 아닐진대
涅槃豈妙心 열반이 어찌 묘한 마음이 되리?
電光追不及 번갯불이란 따라가도 미치지 못하는데
兒輩謾勞尋 아이들이 쓸데없이 고생하며 찾는구나.
佛法無多字 불법이란 많은 글자가 필요하지 않으니
忘言須會宗 말을 잊고 핵심을 알아야만 하리.
頂門開活眼 정수리에 살아있는 눈이 열리면
魔外自歸降 마귀와 외도가 스스로 항복하리.
望鄕 고향을 바라보며
千里望家鄕 천 리 고향을 바라보니
歸心日夜忙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밤낮으로 바쁘구나.
故山何處在 고향의 산은 어디에 있는지?
雲水更茫茫 구름과 물이 아득하고 아득하네.
贈和法師 화(和) 법사(法師)에게 드림
當機開活眼 기틀을 당하여 살아있는 눈을 열고
應物振玄風 사물에 응하여 깊은 기풍을 떨치네.
更踏毘盧頂 다시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으면
蓮花出火中 연꽃이 불길 속에서 피어나리라.
萬里乾坤路 하늘과 땅 사이 만 리의 길
生涯在一囊 생애는 자루 하나 속에 있구나.
都忘身世了 몸과 세상을 다 잊고 나면
隨處弄靑黃 가는 곳마다 청색 황색 희롱하리.
雉嶽山上院 치악산(雉嶽山) 상원사(上院寺)1)에서
1) 상원사(上院寺) :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남대봉 아래에 있는 절.
雁塔庭中古 뜰 가운데 탑은 오래되었고
松風洞裏寒 골짜기에 솔바람은 차갑구나.
鍾聲驚醉夢 종소리는 취한 잠을 깨우고
燈火報晨昏 등불은 새벽과 저녁을 알리네.
掃地淸人骨 마당을 쓸면 사람의 뼈가 맑아지고
焚香淨客魂 향을 피우면 나그네의 혼이 맑아지네.
不眠過夜半 잠 못 이루는 깊은 밤
窓外雪紛紛 창 밖에 눈이 펄펄 내리는구나.
次覺林懸板韻 각림사(覺林寺)2) 현판에 있는 시의 운을 따라
2) 각림사(覺林寺) :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동쪽에 있었던 절.
山深野色斷 산이 깊으니 들도 보이지 않고
溪近水聲連 계곡물이 가까우니 물 소리 이어지네.
月隱峰頭樹 달은 봉우리 나무 사이로 숨고
烟生林下泉 안개는 숲 아래 샘물에서 생겨나네.
庭松含古態 뜰 앞의 소나무는 오래된 자태를 머금었고
春鳥報新年 봄 새는 새 해를 알린다.
獨倚南軒臥 홀로 남쪽 난간에 기대어 누웠더니
淸風起暮天 저녁 하늘에 맑은 바람이 일어나네.
次月精寺韻 월정사(月精寺)3)에서
3) 월정사(月精寺) :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五臺山)에 있는 절.
江湖萬里客 강호의 만 리 나그네
落日獨憑欄 해 떨어져 홀로 난간에 기대었네.
山影沈江倒 산 그림자는 강에 거꾸로 잠기었고
春禽帶暮還 봄 새는 저녁이 되자 돌아오네.
鄕愁天外散 향수는 하늘 멀리 흩어지고
歸意此中寬 이곳에선 돌아가고픈 마음 느긋해지네.
縹緲烟霞裏 아득한 안개 속에
巉巖幾百盤 수백 개의 우뚝한 바위 봉우리.
五臺山下路 오대산 산 아래의 길
日暮步遲遲 어두워질 무렵 걸음은 더 늦어지네.
入院渾忘世 절에 들어서면 세상을 모조리 다 잊고
登樓却憶師 누각에 오르면 문득 스승이 생각나네.
鍾聲雲裏寺 구름 속 절에선 종소리 들리고
松影月中危 소나무 그림자는 달빛 속에 우뚝하구나.
到處心凝定 가는 곳마다 마음이 선정에 드니
禪關久不移 수행의 자세 흔들림 없네.
次右慶樓韻 우경루(右慶樓)4)에서
4) 우경루(右慶樓) : 경주에 있던 사천왕사(四天王寺)의 누각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
된다. 사천왕사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탑·서탑이 있고,
북방으로는 좌경루(左經
樓)·우경루(右經樓)가 있어서 마치 본존불(本尊佛)이 안치된
금당을 중심으로
사천왕이 배치된 것과 같은 특이한 가람형태를 이루었다.
사천왕사는 정확하게
는 낭산(狼山)에 있으나,
시 내용에 나오는 함월산은 낭산과 인근해 있는 산이다.
含月山有寺 함월산(含月山)에 절이 있어
雲深水重重 구름 깊고 물도 겹겹
月映庭中塔 달은 뜰 가운데 탑을 비추고
風鳴樓上鍾 바람은 누각 위의 종을 울리네.
夜靜夢魂斷 밤이 고요하니 잠도 오질 않는데
興多詩思濃 감흥이 넘치어 시상(詩想)이 짙어지네.
岸巾吟一絶 두건을 벗고 시 한 수 읊자니
白髮轉髼鬆 흰 머리칼 더욱 헝클어지네.
次李相韻贈文道人 문(文) 도인(道人)에게
客裏還逢客 나그네가 나그네를 만나
談懷日欲傾 회포를 이야기하노라니 해가 기울려 하네.
心閑能外世 마음이 한가로와 능히 세상을 벗어나고
年老已忘形 나이가 늙어 이미 몸을 잊으며
磨業塵緣靜 업을 소멸시키니 세속의 인연이 고요해지고
凝神道眼明 정신을 모으니 도안(道眼)이 밝아지네.
想知常宴坐 생각건대 틀림없이 항상 편안히 앉아
返照自心經 자기 마음의 경전을 돌이켜 비춰보는가 보네.
次熙師韻 희(熙)5) 스님에게
5) 희(熙) : 부휴당 선수의 제자인
희언(熙彦, 1561~1647)을 가리키는 듯하다.
희언은 부휴당의 법을 잇는 7대 문파의 하나를 형성하였다.
松花長作食 송화가루로 늘 식사를 해 왔고
荷葉過殘年 연잎으로 남은 인생 보낼까 하오.
立志如山嶽 산과 같이 뜻을 세우고
安心似海天 바다처럼 마음 편안히 했네.
常懷求道念 항상 도를 찾는 마음을 품었고
不滯止啼錢 울음 그치게 하는 돈6)에 머물지 않았네.
若到心空處 만약 마음이 비는 곳에 이른다면
同塵隨世緣 세속으로 들어가 세상 인연을 따르리라.
6) 울음 그치게 하는 돈 : 어린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수단으로 누런 나뭇잎을
황금이라고 속이는 방법. 선수행에서 하나의 수단방법을 가지고는 움직일 수
없는 학인에 대하여 다른 공부로 옮겨가게 하는 방법으로, 실제는 그 문제를 해
결하지 못했지만 거짓으로 통과했다고 하여 허가하는 일. 임시 방편.
挽松雲章 송운(松雲)7)의 입적을 애도하며
7) 송운(松雲, 1544~1610) : 휴정의 제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이끌고 출전하였고,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포로를 송환해 오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법명은 유정(惟政)이며, 호는 사명당(四溟堂) 혹은 송운이라 하였다.
송운과 부휴당은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는 승려로서 각별한 교유를 나누었다.
高臥蓬萊杳靄間 봉래산 아지랑이 속에 자유롭게 살다가
聞兇入境出深山 흉도가 들어왔다 하니 깊은 산을 나와서
忘身爲國輸忠節 몸을 잊고 나라 위해 충절을 지키었고
渡海和戎濟世難 바다 건너 화친 맺어 세상을 구제했네.
長在轅門心自適 군문(軍門)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평온했고
常遊宦路意猶閑 벼슬길에 노닐어도 생각은 한가로왔네
死生有數存亡隔 죽고 사는 일 운명이라 생사가 갈렸으나
相見唯期換舊顔 다시 서로 만날 때면 옛 모습 바뀌었으면.
半百年間逢世亂 반 백년 세월 동안 세상의 난리 만나
戎衣幾夜宿江村 군복 입고 강촌에서 지낸 것이 몇 밤이나 될까.
親臨矢石心無劫 화살과 돌을 보고도 겁을 내지 아니하니
功被生民德益尊 공로가 백성에 미쳐 덕망 더욱 높아라.
已矣海幢從此倒 바다의 깃발 넘어지고 말았으니
嗟哉密旨向誰聞 아아, 오묘한 뜻 누구에게 물어보리.
秋天相見君知否 가을 날 서로 본 걸 그대는 아는가
又送門人慰遠魂 다시 문인(門人) 보내어 먼 영혼을 위로하노라.
次山影樓題 산영루(山影樓)8)에서
8) 산영루(山影樓) : 금강산(金剛山) 유점사(楡岾寺) 앞의
시내를 건너질러 지은누각.
千年檜影溪邊古 시냇가엔 천 년 된 노송나무 그림자 예스럽고
半夜疎鍾月下新 깊은 밤 드문 종소리 달 아래 새롭구나.
十里朝烟連海氣 십 리 아침 안개는 바다로 이어지고
數聲春鳥喚山人 몇 마디 봄 새 소리는 산에 사는 사람 부르네.
樓前水碧風生面 누각 앞에 물은 푸르고 얼굴에 바람 부는데
檻外雲濃露滴巾 난간 너머로 구름이 짙어 이슬이 수건을 적시네.
終日憑欄多勝事 하루 종일 난간 에 기대니 이렇게 좋은 걸,
胸中如鏡自無塵 가슴 속이 거울같아 티끌 하나 없구나.
次寄金生員 김(金) 생원(生員)9)이 보낸 시에 답함
9) 생원(生員) : 조선시대 과거의 일종인 생원과(生員科)에 합격한 사람을 일컫는 말.
塵世紛紛如火宅 티끌 세상 어지러워 불난 집과 같은데
隱淪林下擬亡名 숲 속에 숨어사는 이는 이름도 없는 듯하네.
閑居無事弄山月 한가로이 살면서 산 위의 달이나 희롱하고
靜坐焚香尋自經 고요히 앉아 향을 피워 자기 속의 경전을 궁구하네.
半夜鍾聲添意氣 깊은 밤 종소리는 의지와 기운을 더해주는데
暮天秋色動詩情 저녁 하늘 가을 빛은 시정(詩情)을 움직이네.
何處幽人吟送句 은자는 어디에서 시구를 보내주나
臨軒一詠眼還明 난간에서 시 한 수 읊으니 눈이 더욱 밝아지네.
次鍾峰 종봉(鍾峰)10) 스님에게 답함
10) 종봉(鍾峰) :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의 별호.
佛法流行不關時 불법이 퍼져 행해지는 건 시대와 관계 없나니
卽心便是豈盛衰 마음이 곧 이것인데 어찌 성쇠가 있으리?
聲前魔外俱腦裂 진리의 소리 앞에 마귀와 외도의 뇌가 찢어지고
句後人天共任持 진리의 구절 뒤에 모든 사람 함께 지니네.
法會儼然當處在 법회가 엄연히 그 곳에 있고
禪風凜爾箇中歸 선풍이 늠름하게 그 가운데 돌아올지라.
鳥啼花落眞消息 새 울고 꽃 지는 그것이 참소식이니
只自熙怡說向誰 다만 스스로 기뻐할 뿐 누구에게 설명할까?
今當後五百年時 지금은 후오백년(後五百年)11) 시절이라
吾道陵夷日益衰 우리의 도가 낮아져서 날로 쇠퇴하네.
可笑巴歌人共和 가소롭구나, 사람들은 유행가만 서로 부르니
堪嗟了義孰能持 궁극적 진리는 누가 능히 지니겠는가!
心猿騰逸難調制 마음의 원숭이가 날뛰어 말리기 어렵고
意馬飄馳不復歸 의지의 말이 마구 내달리어 돌아올 줄 모르네.
叔世若非終南老 말세에 만약 뛰어난 도인이 아니라면
法門消息付與誰 법문의 소식 누구에게 맡길까?
11) 후오백년(後五百年) : 불법의 전승 시기를 오백 년 주기로 다섯 시기로 나누는
데, 그 마지막 단계를 후오백년이라 한다. 이 시기에는 자기 교설만 옳다 하여
서로 다툰다고 한다.
次閔秀才 민(閔) 수재(秀才)에게
干戈四海漲烟塵 온 세상이 전쟁통으로 연기와 먼지 자욱하여
憂國憂民思渺然 나라와 백성을 근심하는 생각 끝이 없는데
宗社傾危今幾日 종묘사직이 위태롭게 된 것이 그 얼마인가
乘輿播越已多年 수레 타고 피난한 지 이미 수년이라.
斜陽獨立思良將 떨어지는 태양빛 속에 홀로 서서 훌륭한 장수를 그리워하고
月夜沈吟問上天 달밤에 고민하며 하늘에게 묻는다.
擧義寥寥無一士 의병을 일으킬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니
茫茫垂淚白雲邊 흰 구름 바라보며 아득한 마음으로 눈물 흘린다.
贈環師 환(環) 스님께
道本忘言難指注 도는 본래 말을 잊은 것이니 설명하기 어렵고
更無形色可思量 모양도 빛깔도 없으니 생각조차 하기 어렵네.
巖前翠竹和雲立 바위 앞에 푸른 대는 구름과 함께 서 있고
臺上黃花帶露香 대 위의 누런 꽃은 이슬 머금은 채 향기롭네.
贈某禪子 어떤 선승에게
尋師學道別無他 스승을 찾고 도를 배우는 것이 별 게 아니라
只在騎牛自到家 다만 소를 타고 자기 집으로 가는 일이라.
百尺竿頭能闊步 백 척 장대 위에서 활보할 수 있으니
恒沙諸佛眼前花 모래알같이 많은 부처도 눈 앞의 꽃12)이라.
撥草瞻風無別事 풀을 뽑고 풍모를 우러르는 것13)도 별 게 아니라
要明父母未生前 부모가 나를 낳기 이전의 나를 밝히는 일이라.
忽然踏着毘盧頂 홀연히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게 되면
觸目無非格外禪 눈에 보이는 것이 격외선(格外禪) 아님이 없으리.
12) 눈에 헛것으로 보이는 꽃의 존재. 환상이라는 의미.
13) 무명의 거친 풀을 뽑고 조사들의 수행 기풍을 우러른다는 말.
贈峻上人 준(峻) 상인(上人)에게
參問須宜除我慢 찾아가 물을 때에는 자만심을 버려야 하고
修行只合去貪嗔 행을 닦을 때에는 탐욕과 성냄을 버려야 하지.
雖聞毁譽如風過 칭찬과 비난 듣기를 바람 지나가듯 하면
萬事無心道自新 만사에 무심해져서 도가 절로 새로워지리.
次梁生員 양(梁) 생원(生員)에게 답함
晦迹韜光人不識 자취와 모습을 숨기어 남이 알지 못하게 하면 되지
何緣目擊認心通 무엇 때문에 직접 보고 마음이 통해야만 하는가?
儒冠釋服名雖異 유학자의 갓과 승려의 옷이 이름은 다르지만
語及禪風意亦同 말이 선풍(禪風)에 이르면 그 뜻은 한가지니라.
山中閑詠 산중에서 한가로이 읊다
掃地焚香晝掩關 마당을 쓸고 향을 피워 낮에도 문을 닫고 있으니
此身孤寂此心閑 이 몸은 외롭고 적막하나 이 마음은 한가롭다네.
秋風葉落山窓下 가을 바람에 낙엽 지는 산 속 창문 아래서
無事常將古敎看 일 없이 항상 옛 가르침 읽어보네.
感懷 감회
尋眞誤入是非端 진리 찾으려다가 시비의 실마리에 잘못 끌려들어가
不覺多年作笑端 여러 해 동안 웃음꺼리가 된 것도 알지 못하였네.
夢罷始知身世幻 꿈 깨자 비로소 이 몸과 세상이 다 헛것임을 알고
誓心終老白雲端 늙도록 흰 구름 곁에 있기를 마음에 맹서하였네.
次邊處士山居韻 산에 사는 변(邊) 처사(處士)에게 답함
溪水潺湲石怪奇 잔잔히 흐르는 계곡물과 기괴한 바위들
卜居應定百年期 응당 백 년을 기약하고 여기에 사시겠지.
雲深地僻人誰到 구름 깊고 땅이 궁벽하니 누가 오리오?
唯有山僧來打扉 와서 문 두드리는 사람은 오직 산승뿐이겠지.
贈淳上人 순(淳) 상인(上人)에게 드림
芧屋三間一夢身 초가 삼간에 꿈 속의 이 한 몸
兀然無事坐經春 꼿꼿한 자세로 일 없이 앉아 봄을 지내네.
有人若問幽居興 은거하는 재미가 어떠냐고 누가 묻는다면
楓嶽奇觀雨後新 단풍 든 산의 기이한 풍경이 비 온 뒤에 더욱 새롭다 하리.
感懷 감회
玉殿苔生沒路頭 아름다운 집에 이끼가 끼어 길이 다 덮여버리니
進前無力意悠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어 생각이 아득하구나.
可怜不把金剛劍 불쌍하게도 금강검을 잡지 못하고
空向雲山暗度秋 구름 낀 산에 부질없이 세월만 다 지나버렸네.
浮生冉冉水東流 뜬 인생이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不覺秋霜已落頭 어느 사이에 머리에 가을 서리가 내렸네.
事與心違身又老 일과 마음이 서로 어긋나고 몸도 늙어
斜陽獨立不堪愁 기우는 해에 홀로 서서 슬픔 견디기 어려워라.
贈照禪和 조(照) 스님에게
百歲光陰夢裏身 백 년의 시간 동안 꿈 속의 몸
豈能長久莫因循 어찌 늘 하던 그대로만 하리오?
要知格外眞消息 격외(格外)의 참된 소식 알려고 한다면
須向峰頭問石人 봉우리의 돌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하리.
秋日感懷 가을의 감회
半百年間已白頭 반 백년(半百年)간 이미 머리는 희어지고
病床孤臥意悠悠 병상에 홀로 누워있자니 생각이 막막하네.
不成壯志空成老 씩씩하던 뜻은 이루지 못한 채 늙어버렸는데
況値千山落木秋 더욱이 천 산에 낙엽 지는 가을이 되었구나.
贈敬倫禪子 경륜(敬倫) 스님에게
平生放浪倚雲邊 구름 끝에 의지하여 평생을 방랑하며
萬事無心任自便 만사를 무심하게 편한 대로 하였네.
何處靑山非我土 청산 어디인들 내 땅 아닌 곳이 있으랴
短筇今日又隨緣 오늘도 짧은 지팡이로 인연따라 다니네.
次諸賢避亂書懷 피난가는 여러 선비들을 보고 회포를 적다
憂國憂民日益深 나라와 백성에 대한 걱정 날로 깊어가는데
只緣兵火萬家侵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집들이 침략 당하네.
滿腔雖有忠情在 뱃속 가득히 충정(忠情)이 있으나
隻手無因露赤心 한쪽 손만으로는 붉은 마음을 드러낼 수가 없네.
移棲避寇入山深 도적을 피하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살지만
四境干戈日益侵 사방에선 전쟁이 더욱 심해만 가네.
又陷京都人枕死 서울도 함락되고 사람도 서로 베고 죽으니
誰能禦敵慰天心 누가 능히 적을 막아 하늘의 마음을 위로할까.
兇倭渡海陷諸城 흉포한 왜적이 바다를 건너 여러 성을 함락시키고
兵火屠燒又兩京 전쟁은 두 서울14)을 죽이고 불질렀네.
中外無人效死戰 안팎으로 죽을 각오로 싸우는 이가 없었으니
事君何處見忠誠 어디에서 임금 섬겨 충성심을 보이리?
14) 서울과 개성을 말한다.
湖東湖北暗烟塵 동쪽과 북쪽 지방이 어두운 연기와 먼지에 뒤덮이니
播越東西幾朔旬 동서로 피난한 지 몇 달이나 되는가?
賊勢四方如火熾 도적의 세력이 사방에 불길처럼 번지니
蒼生無處可安身 백성들은 안전하게 있을 곳이 없었네.
生斯季運命途薄 이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身帶窮愁世亦危 몸도 고달프고 세상도 위태롭네.
擧國人民交枕死 온 나라 백성들이 서로 베고 죽으니
斜陽獨立淚雙垂 지는 해에 홀로 서서 두 줄기 눈물 흘리네.
題雙溪寺 쌍계사(雙溪寺)에서
靑山依舊映雙溪 청산은 예전처럼 두 계곡물에 비치는데
鶴去人亡石逕迷 학은 떠나고 사람도 없어 돌오솔길이 희미하구나.
獨立傷心思故跡 상심한 채 홀로 서서 옛 자취를 생각하니
夕陽歸鳥入雲栖 석양에 돌아오는 새가 구름 속 보금자리로 날아 들어가네.
寄松雲 송운(松雲)15)에게 드림
15) 송운(松雲) : 유정(惟政)의 호.
朝採林茶暮拾薪 아침에는 숲 속에서 차를 따고 저녁에는 땔나무를 하며
又收山果不全貧 산 과일을 따오기도 하니 완전히 가난한 건 아니라오.
焚香獨坐無餘事 향을 피우고 아무 일 없이 홀로 앉았으니
思與情人一話新 정다운 사람과 대화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드는구료.
吹笛峰 취적봉(吹笛峰)16)
16) 취적봉(吹笛峰) :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이다.
雨後山花照眼明 비 온 뒤 산에 꽃 화사하게 피었는데
崔仙陳迹已千齡 신선 최치원17)의 옛 자취 이미 천 년이구나.
長生不老何須問 장생불로를 물을 필요 있을까?
雲裏依然吹笛聲 구름 속에 피리소리 고즈넉하게 들려오네.
17) 최치원(857~?) : 신라 말의 지식인이었던 최치원은 타락한 정치에 실망하고 가
야산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최치원은 신발만 남기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갔다는 전설이 있다.
紅流洞 홍류동(紅流洞)
雨歇春山草色濃 비 그친 봄 산에 풀빛이 짙고
花開兩岸映溪紅 꽃이 핀 양쪽 언덕 계곡물에 비치어 붉구나.
徘徊唫賞忘歸路 시 읊으며 배회하다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리니
疑是身空物亦空 내 몸도 공하고 만물도 다 공한 듯하네.
嘲士大夫 사대부를 조롱함
人間浮命電光中 인간의 뜬 목숨이 번갯불과 같은데
徒費精神走北東 헛되이 정신을 써서 북으로 동으로 내달리네.
退隱林泉貧亦樂 숲 속에 은거하면 가난해도 즐겁나니
不知身困是非風 시비(是非)의 바람에 몸이 고단한 일 없다네.
警世 세상사람을 경계시킴
百歲光陰如過隙 백 년이란 시간도 문틈을 지나는 것18)과 같으니
何能久住在人間 어찌 능히 인간 세상에 오래 머물 수 있으리오?
宜隨强健須勤做 젊고 건강할 때 부지런하게 해야 하니
生死臨時不自閑 생사에 임할 때에 스스로 한가하지 못하리라.
虛負光陰眞可惜 헛되이 세월을 저버리는 것이 참으로 애석하니
世間人老是非中 세상사람들은 시비 속에 늙어 가도다.
不如端坐蒲團上 차라리 단정히 방석 위에 앉아
勤做功夫繼祖風 부지런히 공부하여 조사의 기풍 잇는 것이 나으리.
病吟 병 중에 읊다
一身多病臥床頭 이 한 몸에 병이 많아 침상에 누워
自夏沈吟又過秋 여름부터 끙끙 앓다가 또 가을까지 지나네.
誰道須臾人命在 누가 사람의 목숨 잠시라고 했던가?
延年不死亦多愁 죽지 않고 시간을 끄니 이 또한 큰 근심이네.
冷熱交侵胸腹痛 냉기와 열기가 교대로 침노하고 가슴과 배가 아프니
千謀無計可安身 천 가지로 생각해도 몸을 편안히 할 방법이 없네.
不如星火闍維盡 유성(流星)처럼 속히 다비를 하여 다 태우고
還合眞如本自身 진여(眞如)의 본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으리.
臨終偈 임종게
七十餘年遊幻海 칠십 여 년 동안 환상의 바다에 노닐다가
今朝脫殼返初源 오늘 아침 껍질을 벗고 근원으로 돌아가네.
廓然眞性元無礙 텅 빈 참 성품은 원래부터 아무런 장애 없으니
那有菩提生死根 어찌 보리(菩提)나 생사의 뿌리가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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