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현금 갱무시절 (卽時現今 更無時節)
'지금이 바로 할 때이고
지금 하지 않으면 그 기회는 다시 없다'라는 뜻입니다.
임제 선사의 어록 중에서 좋아하는 한 구절 '즉시현금 갱무시절' 이라고 쓴 족자를 걸어 놓으니 낯설기만 하던 방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는 말. 한번 지나가 버린 과거를 가지고 되씹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기대를 두지 말고,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최대한으로 살라는 이 법문을 대할 때마다 나는 기운이 솟는다.
우리가 사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다. 이 자리에서 순간순간을 자기 자신답게 최선을 기울여 살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 아래서라도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 법정 스님 <맑고 향기롭게>
[임제선사 이야기]
임제의현선사는
중국 선종사(禪宗史)에서
육조(六祖) 다음 가는 위대한 선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남의 흉내를 내지 않고
독창적인 개오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섬짓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현재 산동성인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형(邢)씨였는데
불행하게도 유년의 연보는 밝혀지지 않고
866년에 입적하였음을 행장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태어난 것은 9세기 초가 아닌가 추정됩니다.
다만 20세가 넘어 선종에 입문하였으며
그 전에는 경ㆍ율ㆍ론 삼장(三藏)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정진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 선사 중에서
가장 야성적인 거친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철저한 부정을 통해 대긍정의 자유를
체득한 선사였음을
그의 대표작인 《임제어록》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운문(雲門)이
살불(殺佛)의 새로운 선종정신(禪宗精神)을
개척한 선사라면
임제는 살조(殺祖) 뿐만 아니라
일체 보살은 물론이고,
경전과 어록까지 부정해 버리는
야성적 일면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제는 일체를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훈성불(新薰成佛)이란 새로운 위상을 스스로 설정하고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는 새로운 자성주의(自性主義)를
제창하였습니다.
그리고 살불살조(殺佛殺祖)의 배경 속에는
정신적 우상을 파격(破格)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처와 법에 집착해 있으면
불과 법을 잃게 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성개오(自性開悟)를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임제도 자신이 발견한 무위진인을 깨닫고
체현하기 전에는 참으로 답답할 만큼
우치한 데가 있었습니다.
그는
20세가 되었을 때
안휘성에 있는 황벽선사(黃檗禪師)를 찾았습니다.
황벽문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이 때 목주선사(睦州禪師)는
황벽문하에서 뛰어난 수좌(首座)였습니다.
목주는 항상 임제를 눈여겨 보았습니다.
남다른 영특함과 행동이
목주를 감탄케 하였습니다.
3년 동안
임제는 아무 말 없이 정진에만 열중하였습니다.
황벽선사를 찾아 의심난 것을 묻지도 않았습니다.
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느긋한 자세였습니다.
이러한 여유있는 임제의 행동에
목주는 화살을 당겼습니다.
황벽문하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가 물었습니다.
3년이 되었다고 임제는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황벽에게 무엇인가 물은 사실이 있는가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임제의 말에 목주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불법의 근본 대의(大意)인가
질문을 하십시오.”
갑자기
임제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그 동안 그는
무엇을 물어야 할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목주의 가르침을 받은 임제는
황벽의 방으로 갔습니다.
삼배(三拜)를 했습니다.
황벽의 푸른 눈빛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황벽의 얼굴을 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황벽은
손에 쥐고 있던 봉(棒)으로
30번이나 쳤습니다.
“말할 것이 있으면 속히 일러라.”
임제는
아무 반항도 못 하고 매만 맞았습니다.
몸 전체에 장독(杖毒)이 맺혔습니다.
방으로 돌아온
임제는 허탈했습니다.
일종의 분노가 가슴에서
짐승처럼 꿈틀거리면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목주가 다시 찾아와
황벽에게 찾아가 무엇을 얻고 왔는가
물었습니다.
임제는
아무 소득도 없을 뿐 아니라
매만 맞고 왔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왜 황벽이 매질을 하였는가
물었지만 목주 역시 그 부분에는
입을 열지 않고
내일 또 한 번 찾아가 보라고 하였습니다.
날이 밝자
임제는 황벽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불법의 근본 대의가 무엇인가
물었습니다.
황벽은
벽력 같은 고함을 치며 봉을 휘둘렀습니다.
꼼짝없이 매를 맞았습니다.
온 육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은 아픔이
번졌습니다.
다음 날
임제는 목주의 권유에 못 이겨
들어가기 싫은 황벽을 또 찾았습니다.
황벽은
기다렸다는 듯이
또 매질을 하였습니다.
임제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30봉을 맞았으나
개오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어둠이 깊었습니다.
이 때 임제는
더 이상 무의미한 행동을 할 수 없다고
결심하고 황벽 곁을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임제는 목주에게
떠나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떠나기 전에 방장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후 목주는 다시 황벽에게 재빨리 가서
임제가 법기(法器)이오니
다른 방법으로 인도하십시오
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황벽은
찾아온 임제에게
애정을 갖고 말하였습니다.
“자네는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고안(高安) 강변으로 가서 대우(大愚)스님을 만나게.
그러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이야.”
대우스님을 찾아갔을 때
임제는 이미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우는 황벽과 달리 친절하였습니다.
사람을 다스리는 가풍이 달랐습니다.
대우는
임제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임제는 황벽의 종문(宗門)에서 왔다고 말하였습니다.
“황벽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세 번이나
불법의 근본 종지를 물었지만
그 때마다 몽둥이만 맞았습니다.
무슨 잘못을 하여 매를 맞았는지
그 이유를 지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벽이 자비로써 자네를 가르쳐 주었군.
그래, 그 이유를 몰라 여기까지 왔군.”
대우의 설명을 듣는 순간
임제는 어두운 가슴에 빛이 열렸습니다.
그것은 개오의 불빛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무위진인이 자기 면전(面前)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90봉의 매는
감정의 매질이 아니었고
대우의 말처럼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자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드디어
황벽이 내린 도리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임제는 “황벽의 불법이 별것이 아니군”하고
황벽을 부정해 버리는 자만을
내보였습니다.
“이 오줌싸개 같은 녀석아,
조금 전에는 아직도 자신에게 잘못이 있었느냐고 묻더니,
이제는 오히려 황벽의 불법이 별개 아니라고?
무슨 진리를 발견했는지 당장 말해 보라.”
임제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대우의 옆구리를 세 번 쳤습니다.
대우는
이 무례한 임제의 행동에
화도 내지 않고,
“자네 스승은 황벽이지 내가 아니네.”
이렇게 하여
임제는 황벽문하의 수제자가 되었고
임제종의 개산조(開山祖)가 되었습니다.
그 후
임제는 가르침의 핵심을
타인으로부터 미혹을 입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을 바로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羅漢)을 만나면 나한을 죽여라.
그래야만 비로소 해탈을 하여
그 어떤 것에도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자재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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