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대적 인식을 단칼에 벤다 - 괴안국어(槐安國語)
원문은 "양쪽 머리를 한꺼번에 자르는데는 서슬 푸른 한칼이다[兩頭俱截斷 日劍倚天寒]"입니다.
여기에서 '양쪽 머리[兩頭]'란 상대적인 인식 방식을 가리킵니다. 상대적인 인식이 성립하려면 적어도 두 개의 사물을 대립시키고 비교하는 것이 예컨대 선(善)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대립되는 개념인 악(惡)과 비교헤야 분명해듯이.
더 나아가 어떤 대상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면 그것과 대립되는 것들을 차례로 내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삼단논법 추리의 기본입니다. 그 관계는 상대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삼대적(三對的)이므로 그만큼 복잡해자고, 그 결과 '개념적'인 사고방식에 젖어들고 맙니다.
머리 속의 개념들은 모두 대립과 비교를 통해 얻은 지식이므로 양자택일의 경우에는 망설이게 됩니다. 인텔리일수록 판단이 서지 않아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도 그 한 예일 것입니다.
이것을 타개하는 인식 방법이 바로 선적(禪的)인 사색입니다. 상대적인 지식의 결점은 바로 상대적인 데 있으므로, 이 인식 방법과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선가에서는 '비운다'라고 합니다. 때로는 극단적인 명령어를 구사하여 '죽여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육체를 죽이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상대적인 인식이나 관념을 없애고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지요.
상대적인 지식을 없애는 것은 절대적인 지식입니다.그러나 상대에 대한 절대라면 역시 상대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컨대 나는 꽃이라는 대상을 봄으로 해서 꽃이구나 하고 인식하게 되는데, 다시 그 꽃의 색깔이나 향기, 미추(美醜)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와 대립되는 것을 연상애햐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그 꽃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알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지식일 뿐입니다.
"'내'가 '꽃'을 본다는 것은, 나와 꽃을 대립시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 절대적인 지식이란 내가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꽃 자체가 되어 꽃을 볼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단논법(一段論法)'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진수를 깨친 어떤 이학박사가 한 말입니다.
선을 깨친 사람들은 저마다 사물을 전과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것에 대해 기쁜 마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규정된 입장이나 시각에서 벗어났다'는 뜻일 것입니다. "달도 옛날의 달이고 꽃도 옛날의 꽃이지만 어디까지나 보는 이에게 달려있네"라고 읊은 게송도 있습니다. 일단논법의 인식 방법과 그 결과를 노래한 것입니다.
"산은 산이요 길도 옛길 그대로건만, 변한 것은 내 마음이로다."
이 노래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겠지요?
상대적인 인식을 일단논법의 칼로 떼어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상대적인 인식을 해체한 공(空)의 경지일 것입니다.
松原泰道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메모 :
'선(禪)'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12. 扶過斷橋水 伴歸無月村 -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0) | 2018.02.11 |
---|---|
[스크랩] 11. 兩忘 - 양쪽을 잊다 (0) | 2018.02.11 |
[스크랩] 9. 竹影掃階塵不動 -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0) | 2018.02.04 |
[스크랩] 8.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 대숲을 흔든 바람은… (0) | 2018.02.04 |
[스크랩] 7. 一期一會 - 일생 단 한 번의 만남 (0) | 2018.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