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아유사강(阿踰?江) 가에서 대비구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대균두(大均頭)는 한적한 곳에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항상 공덕을 더하는 어떤 이치가 있을까, 그런 이치는 없을까?'
균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그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 때 균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아까 한적한 곳에서 '혹 그 일을 하면 공덕을 더할 수 있는 그런 이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세존께 여쭈옵나니, 원컨대 말씀해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공덕을 더할 수 있느니라."
"어떤 일들이 공덕을 더하게 합니까?"
"공덕을 더하는 일곱 가지 일이 있으니, 그 복은 헤아릴 수 없고 또 그것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도 없느니라.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이른바 족성자(族姓子)나 족성녀(族姓女)가 승가람(僧伽藍)2)이 없는 곳에 승가람을 세운다면, 이것이 첫 번째로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또 균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승가람과 비구스님들에게 침상과 자리를 보시한다면, 균두야, 이것이 두 번째로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또 균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비구스님들에게 음식을 보시한다면, 균두야, 이것이 세 번째로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또 균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선여인이 비구스님들에게 비를 막을 옷을 보시한다면 균두야, 이것이 네 번째 공덕으로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또 균두야, 족성자나 족성녀가 비구스님들에게 약을 보시한다면, 이것이 다섯 번째로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또 균두야, 선남자나 선여인이 광야에 좋은 우물을 판다면, 균두야, 이것이 여섯 번째 공덕으로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또 균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길가에 집을 지어 선여인이 길가에 집을 지어 현재·미래·과거의 나그네들이 묵을 수 있게 한다면, 균두야, 이것이 일곱 번째 공덕으로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균두야, 이것이 이른바 일곱 가지 공덕으로서 그 복이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다니거나 앉거나 혹은 목숨을 마치더라도 그 복은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른다. 그 덕은 헤아릴 수 없어 어마어마한 복이 있다고만 말하니, 이는 또한 바닷물을 말이나 되로 그 양을 셀 수 없어 어마어마한 물이라고만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일곱 가지 공덕도 그와 같아서 그 복은 끝을 알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균두야, 선남자 선여인은 부디 방편을 구해 이 일곱 가지 공덕을 성취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나니 균두야,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 균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 승가라마(僧伽藍摩)라고도 하고 약칭으로 가람(伽藍)이라고도 하며, 중원(衆園)으로 한역하기도 한다. 승려들이 거처하는 동산을 뜻하는데 사원(寺院)의 통칭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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