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하늘과 더불어 말하고 묵묵히 하늘과 함께 간다 - 니시다 기타로(西田畿多郞)
일본인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畿多郞)가 쓴 편지글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철학자는 현재 당면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현재의 과제를 갖지 않는 자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의 친구로서 선불교의 대가인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는 "나는 죽음의 신과 겨루면서 일을 하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자신의 생애를 저술과 연구에 몰두하며 동서 문화교류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가 한 말들에는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깊이가 느껴지는 말들이 많습니다.
"잘나지 않아도 정직한 사람이 되어 남들이 신용하게 되면, 사람으로서 그것으로 족하다. 햇빛에 검게 타서 날마다 묵묵히 일하다가 때가 되면 '안녕!'하고 사라질 일이다. 이것은 평범한 한 시민의 말이다. 이밖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14세기의 고승 관산혜현(關山慧玄) 스님은 한평생 설법이나 문필에 관심을 두지 ?고 '묵묵히' 몸으로 선을 행한 선사입니다. 그래서 스님의 설법이나 필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그이 출생지에서 오직 '묵(默)'이라는 한 글자만 쓴 족자가 발견되었는데,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독일의 의사이지 문필가로 유명한 철학자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는 "인간의 말은 침묵에서 비롯되어 침묵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선은 말에 대한 침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말과 치묵ㅇ의 대립을 없앤 데서 선의 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진리는 그 자체로 존재합니다. 진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명백한 진실은, 설명하면 할 수록 점점 더 진실에서 멀어져 공허하게 들립니다. 부처님 생전에 부바이면서도 대승불교의 이치를 깊이 깨달은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침묵을 두고 "침묵은 우레와 같다[一默如雷]"고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삼론종(三論宗)의 시조인 중국 수나라 가상(嘉祥)대사는 침묵에 대해 "말하면서도 말이 없음이요, 말이 없으면서도 말하고 잇다. 큰소리 가득한데도 소리가 없고 한 소리도 없는데 그 목소리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침묵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는 가치판단과는 전혀 다른 가치입니다. 문제는 말과 침묵의 대립에 구애됨이 없이, 또한 말과 침묵을 초월한 데에도 머물지 않고, 말과 침묵의 상대성을 자유롭게 다루는 또 하나의 차원 높은 공(空)을 체험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웅변리라도 진실이 결여되면 하나마나한 것 입니다. 잠자코 있어도 진실을 느낄 수 있으면 그야말로 훌륭한 웅변이 아니겠습니까.
8세기에 살았던 중국 당나라의 영가(永嘉)대사는 <증도가(證道歌)>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도 선이요 앉아 있는 것도 선이다. 말하거나 묵묵히 있거나 고요하거나 언제든지 몸은 편안하다[행역좌선역선 어묵동정체안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松元泰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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