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가 흰꽃으로 들어간다 - 벽암록(碧巖錄)
흰꽃 속에 백마가 들어가면 색깔이 같기 때문에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흰꽃과 백마는 하얗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리고 리헌 점에서 평등합니다. 그러나 흰꽃과 백마는 질이 다릅니다. 이런 점에서 차별됩니다. 평등 속에서 차별을, 차별 속에서 평등을 응시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허하다고 보는 견해의 기반이 되는 것이 이 평등에서의 차별관(差別觀)이며, 차별에서의 평등관(平等觀)입니다. 이 양자를 별개로 보지 않고, 평등이 곧 차별이요 차별이 곧 평등이라고 보는 하나의 응결점, 이것을 표현한 것이 "백마가 흰 꽃 속으로 들어간다[白馬入芦花]"는 선어입니다.
수학에서 말하는 '동등'과 '동일'의 정의를 빌어서 생각해 보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고 그 의미도 깊어집니다. 동등은 A=B입니다. 평등은 여기에 해당됩니다. 둘 이상의 것을 비교하여 생기는 가치입니다. '동일'은 비교하여 생기는 가치가 아니라, 사물 자체를 말합니다.
예컨대 저는 지금 몽블랑 만년필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만년필과 같은 상품은 많이 제작되어 어디서나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쓰고 있는 만년필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만년필일 뿐입니다. 즉 차별에 의해 존재가 명확해집니다.
돈을 내면 '동등한' 만년필은 몇 개라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만년필을 잃어버리면 '동일한' 만년필은 어디 가서도 구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닮은 사람은 있어도 자기는 오직 이 지상에서 한 사람뿐입니다. 평등이 곧 차별이고, 차별이 곧 평등이라 함은 절대를 나타내는 '하나[一]'의 존엄성에까지 고양됩니다. 백마도 흰꽃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흰꽃과 백마는 유일한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이것을 일상생활에 옮겨서 생각해 보면, 백마라는 이름의 자신을 직장이라는 이름의 흰꽃에 전력투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와 일이 동화되어, 곧 주객(主客)이 하나의 되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충실한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마술(馬術)의 명인을 일컬어 "안장 위에 사람 없고, 안장 아래 말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명인이라면 안장에 구애받아서는 안 되며 안장에 대한 생각도 비워야 합니다. 평등이 곧 차별이고 차별이 곧 평등이라는 생각조차도 초월해야 하는 것입니다.
松原泰道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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