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짚신 - 벽암록(碧巖綠)
오래 신어서 망가진 짚신을 파초혜(破草鞋)라 하는데, 아무 소용도 없게 된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미개인이 아닌 이상 사람에게는 신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필요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발이나 지식도 낡으면 쓸모가 없어지게 되지만, 새것도 때로는 소용이 없게 됩니다.
선 수행을 시작하는 초기에는 지식은 망가진 짚신과 같습니다. 인간이 참된 의미에서 알몸이 되어야 할 때는 아무리 높은 수준의 지식도, 아니 수준이 �은 지식일수록 망가진 짚신처럼 거추장스럽게 달라붙은 장신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진실을 알게 되면 망가진 짚신을 다시 주워 올립니다. 옛날 스님들은 망가진 짚신을 다시 고쳐 신기도 하고 그대로 썩여 퇴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짚신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지식도 자기 마음의 밑거름으로 삼거나 사람답게 살기 위한 지혜를 얻는 수단으로 삼기도 합니다.
'짚신'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짚신이여, 너도 드디어 망가지려 하느냐
오늘 어제 그저께 사흘 동안 너를 신었다
내가 너와 둘이서 넘어온 산과 들을 생각하면
버리기가 아깝구나. 그리운 짚신이여
이 시를 어떻게 받아들이건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이 시를 선적(禪的)으로 생각하여, 버린 자식을 아쉬워하여 다시 주워보는 심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정하여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조강지처와 영원히 작별했을 때 문득 느끼게 되는 애정이나 회환과도 상통할 것입니다. 망가진 짚신에서 향수를 느끼듯,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비는 보리심(菩提心)으로 승화시킨 다면, '망가진 짚신'은 영원히 망가지지 않는 인생의 필수품이 될 것입니다.
松原泰道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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