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樹根深固 雖裁猶復生 受意不盡除 輒當還受苦 - <法句經>
나무의 뿌리가 깊고 견고하면
베어 내도 다시 싹이 돋듯이
갈애(渴愛)를 뿌리채 뽑아 버리지 않으면
살아나는 괴로움을 반번이 다시 받게 된다
불교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볼까요? 사랑이라는 것 자체를 금기하고 부정적으로 볼까요? 사랑을 '번뇌의 온상'이요 '업보의 원천'으로만 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사랑을 탐애(貪愛)와 신애(信愛)라는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목이 마를 때 물을 구하듯 누군가를 목마르게 사랑하고픈 충동을 '탐애' 혹은 '갈애(渴愛)'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갈애에서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갈애에서 두려움이 생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사랑만큼 소중한 것은 없지만 '갈애/탐애'로 잡착하는 것은, 해탈을 방해하는 근본 원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갈애-증오-원한-업-애욕을 끊어라', '애착을 끊어라'라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윤회의 고리를 끊으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대도(大道)는 어렵지 않나니 편견에서 벗어나라
사랑과 미움이 없으매 모든 것이 맑고 숨김 없어라
털끝만큼 차별하나 일으켜도 하늘과 땅이
무한히 벌어지나니 진리를 깨우치고자 한다면
뜻을 펴지도 거스르지도 말지어다
싫고 �은 것 때문에 버둥댐이 마음의 병이니라
선종의 3조 승찬대사의 <신심명(信心銘)> 첫 구절입니다. 사랑을 하는 데 편견과 싫고 좋은 분별이 앞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탐욕ㆍ번뇌ㆍ갈애를 떠난 선법(善法)을 닦고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즉 지극한 신심에서 우러나오는 '신애'가 되면 최고위 가치가 된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비(慈悲)입니다. 여기서 '자'는 '아버지의 사랑'에 비유할 수 있으며, '비'는 애린(愛憐), 동정(同情) 등을 지닌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에서는 사랑이 집착과 편견으로 치달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 이웃을 사랑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이끌어 주려는 부처님의 자비심에 기초한 사랑이라면 이것보다 훌륭한 가지� 없다고 봅니다.
이정우 「길을 묻는 그대에게」
'큰스님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자기 자신을 이겨라 (0) | 2018.02.11 |
---|---|
[스크랩] 은혜는 갚고 원한은 풀어라 (0) | 2018.02.11 |
[스크랩] 정신의 가난 (0) | 2018.02.11 |
[스크랩] 제2장 무심의 지혜 (0) | 2018.02.11 |
[스크랩] 움직이는 것은 마음 (0) | 2018.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