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들 이야기

[스크랩] 정신의 가난

수선님 2018. 2. 11. 13:11

 

身貧未是貧 神貧始是貧 身貧能守道 名爲貧道人

神貧無智慧 果受餓鬼身 餓鬼比貧道 不如貧道人 - 寒山ㆍ拾得

 

몸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정신의 가난이 진짜 가난일세

 

몸은 가난해도 도를 지키면

그를 가난한 도인이라 일컫나니

 

정신의 가난은 지헤가 없어

그 결과로 아귀의 몸을 맏는다

 

아귀와 가난한 도인을 건줄 양이면

어이 가난한 도인에 미칠까

 

물질이 풍족한 현대인과 물질은 비록 초라하였으나 정신응 풍요롭던 선조들의 삶을 비교해 볼 때,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육신의 가난보다 정신의 황페화가 더 큰 문제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넉넉하여도 마음의 넉넉함을 못 느끼면 그것이 진짜 가난입니다.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각 나라의 국민들에게 자신이 지금 과연 얼마나 행복한가를 물어 통계를 내 것입니다.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는 세게에서 사화조장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다는 유럽국들이고,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우리가 끔찍이도 가난하고 문명이 발달되지 못하였다며 불쌍하게 생각하는 나라들입니다. 그들이 미개해서 그렇다고, 세상을 몰라서 그렇다고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년에 약 13,000여 명의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하루에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한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스위스 등 유럽 선진국은 더 심각합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고 가난해서 자살하는 걸까요? 그들은 정신의 가난, 사랑의 가난, 관심의 가난으로 죽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새의 두 날게처럼 육체와 정신이 고르게 살쪄야 합니다. 육체만 왕성하게 성장하여 건장하다고 해서 다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그렇기만 하다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정신도 같이 성장해야 동물과 다른 '만물의 영장'이라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에는 하루 세 끼 기름진 음식을 끊임없이 공급하면서도 '정신의 식사'는 하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정신이 너무 배고프고 가난합니다.

 

일 주일에 한 권, 일주일에 한 번의 동교행사라도 좋으니 '정신의 식사, 정신의 만찬'을 듭시다. 정신의 가난이 진짜 가난이기 때문입니다.

 

이정우 「길을 묻는 그대에게」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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