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주 동자로부터 남쪽의 해주(海住)라고 하는 큰 성(城)에 있는 구족(具足) 우바이를 찾아가서 보살도에 대해 물어보라고 하는 가르침을 받고, 선재 동자는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집에 들어가 보니 그 우바이가 보배자리에 앉아 있는데, 젊은 나이에 살결이 아름답고 단정하였다. 소복단장에 머리카락이 길게 드리웠고, 몸에는 보배 영락과 같은 장신구를 하지 않았지만 그 몸의 색깔과 모습에는 위덕과 광명이 있어서 불보살을 제외하고는 미칠 이가 없었다. 집안에는 보살의 업으로써 이루어진 훌륭한 자리(座)가 깔려져 있었는데 의복이나 음식이나 살림살이 도구는 없고, 앞에는 조그만 그릇 하나만 놓여 있었다.
또 일만이나 되는 동녀가 주위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데 아름답고 단정한 모습이 참으로 빼어났다. 그 동녀들의 몸에서는 묘한 향기가 나서 모든 곳에 풍기니 중생들이 이 향기를 맡기만 하면 물러가지 아니하여 성내는 마음도 없고 원수가 맺히지도 않으며, 간탐하는 마음·아첨하는 마음·구부러진 마음·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성내는 마음·못난이 마음·교만한 마음이 없고, 평등한 마음을 내고 자비한 마음을 일으키고 이익되게 하는 마음을 내며, 계율을 지니는 마음에 머물러 탐하는 마음이 없으매, 그 소리를 들은 이는 기뻐하고 그 모습을 보는 이는 탐욕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 때 선재동자는 구족 우바이에게 예배드리고 나서 보살도를 닦는 법을 물었다. 이에 구족 우바이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다하지 않는 복덕장(福德藏) 해탈문을 얻었으므로 이렇게 작은 그릇에서도 중생들의 갖가지 욕망에 따라서 갖가지 맛좋은 음식을 내어 모두 배부르게 하나니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들이라도 그들의 욕망을 따라 모두 배부르게 하여도 그 음식은 끝나지도 않고 적어지지도 않느니라. 음식이 그러한 것처럼 갖가지 생활용품도 또한 그러하다.
선남자여, 시방세계의 모든 성문과 연각이 나의 음식을 먹으면 모두 성문이나 벽지불과를 얻으며,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이 먹게 되면 모두 마군을 항복받고 최고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선남자여, 나의 일만이나 되는 동녀를 비롯한 백만 아승지 권속들이 모두 나와 더불어 갖가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의 작용이 같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의 대중이 모인 도량에 나아감이 같고,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서 부처님께 공양함이 같고, 모든 법문을 나타내어 보임이 같고, 보살의 청정한 행에 머무름이 같다.
선남자여, 이 일만 동녀들은 이 그릇에 좋은 음식을 담아 가지고 한 찰나 동안에 시방에 두루 가서 모든 보살 성문 독각들에게 공양하며 내지 여러 아귀들까지 배를 채우게 한다. 이 일만 동녀들은 나의 이 그릇을 가지고 천상에 가면 하늘들을 만족하게 먹이고, 인간에 가면 사람들을 만족하게 먹인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다하지 않는 복덕장 해탈문만을 알 뿐이다.”
이와 같은 구족 우바이의 법문은 광대무변한 보살의 이타행에 대해 설한 것이다. 우선 그녀가 머무르고 있는 성의 명칭이 해주(海住)인 것은 온갖 덕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 마치 바다와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명칭이 구족(具足)인 것도 십(十) 바라밀과 사섭법과 사무량심을 구족하여 훌륭한 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평소 아무런 장신구도 하지 않은 채 소복단장을 하고 있다. 집안에는 의복이나 음식 가재도구도 없고, 다만 조그마한 그릇 하나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생활모습에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내세우려 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를 엿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보살의 업을 닦아서 아름답고 단정한 모습에 위덕(威德)과 광명을 갖추고 있다. 그녀의 훌륭한 덕은 거느리고 있는 동녀들에까지 영향을 끼쳐 그들의 몸에서 묘한 향기까지 나도록 하고 있다.
조그만 그릇 하나에서 시방세계 모든 중생들이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낼 수가 있고, 그와 같이 갖가지 생활용품도 낼 수 있다고 하는 의미는 사람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진여(眞如) 본각(本覺)의 마음에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이 구하는 일체의 것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것을 낼 수도 있다고 하는 의미인 것이다. 보살은 중생들의 바람과 구함에 응해서, 이들을 위한 광대한 원(願)을 일으켜 십바라밀·사섭법·사무량심 등과 같은 대승의 보살행을 무량하게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살행은 반드시 구족 우바이와 같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얼마든지 한 찰나 동안에 시방세계에 두루 가서 보살·성문 ·독각들에게 공양하며, 내지 여러 아귀 들까지 배를 채우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권탄준/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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