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수행에 나섰을 때 만난 한 스님으로부터 손수 쓴 서화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그 지헤에는 미칠수 있겠지만 그 어리석음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可及其智 不可及其遇]"라고 써 있었습니다.
아마도 젊은 제 모습에서 덕스러움보다는 영리함이 앞선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 족자를 방 한켠에 소중히 걸어놓고 있습니다. 그때 스님은 "사람이 영리해지기는 쉬워도 어리석어지기는 힘들지. 그런 바보가 되어 보게나"하고 작별인사를 한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잘 정비된 교육제도와 미디어의 발달 덕택에 많은 지식과 정보를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영리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 영리함을 배우기를 바라지 말고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위대한 어리석음을 꼭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 선사들은 편지를 쓸 때, 자기 자신을 가리켜 "어리석은 중"이라거나, "크게 어리석은 사람" 또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한 불교학자는 이를 두고 "스스로 어리석다 함은 겸손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깨달음에의 길을 닦아 위대한 진리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자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인간의 가장 크고 깊은 소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선 수행자들이 이 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설령 깨달음의 경지에는 도달해도 그것을 초월한 어리석음의 경지에는 미처 도달하지 못해서 깨달음의 티를 벗지 못하게 되면 어쩔까"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선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을 사랑하고 배우려면, 어리석음의 중요성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신이자 수필가인 찰스 램(Charles Lamb)은 "나는 어리석은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학력은 보잘것없었지만 그가 쓴 <엘리아 수필집>은 세계의 수필집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힙니다.
한 대기업 회장과 대화를 나누는 게기가 잇었는데, 그의 방에는 "어리석음을 지킨다[守遇]"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었습니다. "우직한 어리석음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가장 큰 미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나아가 "어리석음을 지킴이란 자기를 펴지 않는 지혜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어리석음이야말로 가장 큰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松元泰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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