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이여, 참으로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도반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도반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천명하노라."
[세존의 게송]
"걸어서는 결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남도 없다네.
그러므로 세상을 알고 슬기롭고
세상의 끝에 도달했고 청정범행을 완성했고
모든 악을 가라앉힌 자는 이 세상의 끝을 알아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네."
주)
세상의 끝, 즉 형성된 세상의 끝, 오취온의 끝에 이르지 않고서는 결코 윤회의 괴로움의 끝이란 없다는 말씀이시다.
" '세상'이란 괴로움의 진리(고제)이다.
'세상의 일어남'이란 일어남의 진리(집제)이다.
'세상의 소멸'이란 소멸의 진리(멸제)이다.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란 도의 진리(도제)이다.
세존께서는 '도반이여, 나는 이러한 네 가지 진리(사제)를 풀이나 나무등걸 등에서 천명하지 않는다. 네 가지 근본물질(사대)로 이루어진 바로 이 몸에서 천명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주석서 내용)
세존의 이 가르침은 이미 세존 당시에도 유명했던 명제였던 것 같다.
그레서 <세상의 끝에 도달함 경(S35:116>에서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를 찾아가서 이 명제에 대해서 해석해 줄 것을 요청하고, 아난다 존자는 "도반들이여, 눈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다. 귀를 통해서 ~ . 코를 통해서 ~ . 혀를 통해서 ~ . 몸을 통해서 ~ . 마노(意)를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을 두고 성자의 율에서는 세상이라 말합니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여섯 감각장소(육처)를 통해서 인식되고 지각되는 것이 세상이지 다른 세상은 없다는 말씀이다.
달리 말하면 세상이란 경험된 세상 즉 고성제일 뿐이다.
이것은 <디가 니까야>의 <범망경>(D1)의 입장과도 같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가도 거기서도 세상은 경험된 것일 뿐이기에 세상의 끝에는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섯 감각장소의 끝에 도달하는 수밖에 없으며 12연기의 가르침에 의하면 여섯 감각장소는 무명과 갈애에 조건지워졌기 때문에(상윳따 니까야 제2권 <세상 경>(S12:44) = S35:107)
이것을 없앰으로 해서 여섯 감각장소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 때 세상의 끝에 도달하게 된다.
그 방법은 팔정도를 닦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팔정도를 실천함을 통해서 경험된 세상일 뿐인 세상의 끝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 '상윳따 니까야(각묵 스님 옮김, 초기불전연구원)' 제1권의 <신의 아들 상윳따>(S2)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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