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론(中論)
《중론(中論)》(산스크리트어: Madhyamaka-śāstra 마드야마카 사스트라)은 용수가 만든 449구의 간결한 게송인 《중송(中頌)》(산스크리트어: Madhyamaka-kārikā 마드야마카 카리카)—《중관론송(中觀論頌)》이라고도 한다—에 청목(靑目: 4세기 전반)이 주석을 단 인도 불교의 논서이다. 《중관론(中觀論)》이라고도 한다. 4권으로 되어 있다. 구마라습이 다소 수정을 가해 한역하였다. 《중론》에 포함된 청목의 주석은 《중송》의 여러 주석들 중의 하나이다. 《중송》은 용수의 초기 작품으로서 초기 및 중기 대승불교 사상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그 후의 대승불교의 사상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중론》은 《반야경》에 바탕을 둔 유무2변(有無二邊)을 초월한 중도(中道)로서의 대승공관(大乘空觀)의 입장에서 원시불교 이래의 연기설(緣起說)에 새로운 해석을 내려, 모든 것이 연기(緣起) · 무자성(無自性) · 공(空)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종래의 모든 불교 학설을 종합적으로 비판하면서 불교의 이론과 실천을 일관하는 입장을 설정하고 있으며 원시불교의 근본정신을 재조명하여 되살리고 있다.
중론은 모두 27장 448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1. 관인연품 : 연의 고찰(16게)
2. 관거래품 : 가는 것과 오는 것의 고찰(25게)
3. 관육정품 : 눈 등의 지각 기관의 고찰(8게)
4. 관오음품 : 집합체의 고찰(9게)
5. 관육종품 : 과의 고찰(8게)
6. 관염염자품 : 탐욕과 탐내는 자의 고찰(10게)
7. 관삼상품 : 지어진 것의 고찰(34게)
8. 관작작자품 : 행위와 행위자의 고찰(13게)
9. 관본주품 : 선행자의 고찰(12게)
10. 관연가연품 : 불과 연료의 고찰(16게)
11. 관본제품 : 전후의 궁극의 고찰(8게)
12. 관고품 : 고의 고찰(10게)
13. 관행품 : 형성작용의 고찰(8게)
14. 관합품 : 연합의 고찰(8게)
15. 관유무품 : 자성의 고찰(11게)
16. 관박해품 : 속박과 해탈의 고찰(10게)
17. 관업품 : 업과 과보의 고찰(33게)
18. 관법품 : 아뜨만의 고찰(12게)
19. 관시품 : 시간의 고찰(6게)
20. 관인과품 : 집합의 고찰(24게)
21. 관성괴품 : 생성과 괴멸의 고찰(21게)
22. 관여래품 : 여래의 고찰(16게)
23. 관전도품 : 뒤바뀜에 대한 고찰(25게)
24. 관사제품 : 성스러운 진리의 고찰(40게)
25. 관열반품 : 열반에 대한 고찰(24게)
26. 관십이인연품 : 십이지의 고찰(12게)
27. 관사견품 : (잘못된)견해의 고찰(30게)
4권. K-577(16-350). T-1564(30-1). 요진(姚秦) 시대(A.D. 409) 번역. [역] 구마라집(鳩摩羅什). [저] 용수(龍樹). [범] Prajñān mam ladhyamakak rik . [장] Dbu-ma rtsa-ba i tshig-le ur-byas-pa es-rab ces-bya-ba. [별] 정관론(正觀論), 중관론(中觀論).
부처의 근본 교설인 연기설을 반야경의 사상에 입각해서 무자성 공 등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귀류법(歸謬法) 등의 논법을 예리하게 구사하여 외도와 소승의 사견과 편견을 논파하는 용수(龍樹)의 중송(中頌)에 대한 주석서다.
청목(靑目)이 본 불전의 제1품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부처는 각종 사견(邪見)을 끊고 불법(佛法)을 널리 알리고자 먼저 성문(聲聞)을 위한 가르침으로 12인연을 설하고, 나중에 대승을 위한 가르침으로 다시 불생(不生), 불멸(不滅), 불일(不一), 불이(不異) 등의 인연상(因緣相)을 설했는데, 불멸(佛滅) 후 500년이 되자 사람들이 대승에서 말하는 필경공(畢竟空)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과오를 일으키게 되었으므로, 용수가 그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해서 때문에 중송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본 불전은 27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는 모두 445개의 게송과 장행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게송은 용수의 저술이고 장행은 청목의 저술이다. 청목은 중송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반론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중송에 주석을 가하고 있다. 편의를 위해 품명 뒤에 각 품에 들어 있는 게송의 수를 적었다.
◈ 제1 관인연품(觀因緣品) : 16송. 인연을 논파하여 법의 생성에 대한 여러 희론을 제거한다. 첫머리에 다음의 귀경게, 즉 8불(不) 게(偈)가 있는데 이는 중송(中頌)의 핵심 사상을 드러낸다.
"불생(不生)과 불멸(不滅), 불상(不常)과 부단(不斷), 불일(不一)과 불이(不異), 불래(不來)와 불출(不出)의 인연을 능히 설하여 여러 희론(戱論)을 제거했으니, 여러 가르침 가운데 가장 뛰어난 가르침을 설하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이어서 여러 게송을 주석하면서, 결국 여러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비연(非緣)으로부터 생하는 것도 아니라고 설하고, 공(空), 즉 8불(不)의 새로운 인연설을 주장한다.
◈ 제2 관거래품(觀去來品) : 25송. 운동과 운동의 주체가 무자성(無自性) 공(空)임을 논한다. 여기서 '간다'는 말은 '없어진다'는 말과 통하는 것이므로, 가는 것을 부정함은 결국 8불(不) 중에서 불멸에 대해서 논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거자(去者) 거법(去法) 소거처(所去處)의 3법은 유(有)와 무(無) 가운데 어느 하나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허망(虛妄) 공 무소유(無所有)로서 다만 가명(假名)일 뿐이라고 설한다.
◈ 제3 관육정품(觀六情品) : 8송. '안, 이, 비, 설, 신, 의'라는 6정(情) 즉 근(根)이 실재라는 주장을 논파한다. 여러 게송을 주석하면서, 견(見) 즉 보는 작용과 견자(見者) 즉 보는 주체와 가견(可見) 즉 보여지는 대상이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는 실재라는 주장을 논파하고, 이어서 견과 가견이 없기 때문에 식(識) 촉(觸) 수(受) 애(愛) 등의 4법(法)이 없고, 애(愛)가 없기 때문에 4취(取) 등의 12인연분(因緣分)도 없다고 설한다. 이어서 이(耳) 등의 5정(情) 즉 근(根)과 성(聲) 등의 5진(塵) 즉 경(境)도 역시 이와 같다고 논한다.
◈ 제4 관오음품(觀五陰品) : 9송. 색, 수, 상, 행, 식의 5음(陰)이 자성적 실재라는 주장을 논파한다. 예를 들어 색(色)은 지 수 화 풍 등의 색인(色因)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색인을 떠나서 있을 수 없으며, 색인도 색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색과 색인의 관계는 옷감과 실의 관계처럼 독자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자성을 가지고 있는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서 수 상 행 식의 4음과 그 밖의 모든 법도 색과 동일하다고 설하여 5음이 자성적 실재라는 주장을 논파한다.
◈ 제5 관육종품(觀六種品) : 8송. 6종(種)은 각기 특정한 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성적 실재라는 주장을 논파한다. 여기서 6종이란 지 수 화 풍 공(空) 식(識)이라는 여섯 가지의 근본 요소를 말한다. 먼저 허공을 예로 들어 논한다. 색(色)이 없는 것을 허공상(虛空相)이라고 하는데, 색은 만들어진 법으로서 무상(無常)하다. 따라서 색이 생겨나지 않았을 때는 색의 소멸도 없을 것이고, 그때는 허공상도 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허공에 특정한 상이 있다고 하는 주장은 논파된다. 이어서 나머지의 다섯도 허공과 같다고 설하여 6종이 실재라는 주장을 논파한다.
◈ 제6 관염염자품(觀染染者品) : 10송. 탐욕 진에(瞋恚) 우치(愚痴) 등의 염법(染法), 즉 번뇌와 그 번뇌에 물드는 중생인 염자(染者)가 자성적 실재라는 주장을 논파한다. 즉 염자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염과 염자의 결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염과 염자가 자성적 실재라면 합(合)도 불합(不合)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에(恚) 치(痴)도 또한 그와 같고, 일체의 번뇌도 역시 그와 같다고 논하고 있다.
◈ 제7 관삼상품(觀三相品) : 35송. 유위법의 3상(相)인 생(生) 주(住) 멸(滅)이 자성적 실재라는 주장을 논파한다. 생(生)이 유위라면 3상(相)을 가질 것이며, 생이 무위라면 유위의 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3상은 한 곳에서 동시에 있을 수 없다. 또 만약 생 주 멸에 다시 유위의 상이 있다면 그것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따라서 3상은 자성적 실재라고 할 수 없으며, 환영이나 꿈과 같이 불가득(不可得)이라고 설한다.
◈ 제8 관작작자품(觀作作者品) : 12송. 작업(作業)과 작자(作者)가 자성적 실재라는 주장을 논파한다. 즉 작자는 작업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고 작업은 작자로 말미암아 있게 되는 것이므로, 만약 자성적인 작자와 작업이 있다면, 그 작자와 작업은 곧 무인(無因)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수(受)와 수자(受者)도 그와 같다고 설한다.
◈ 제9 관본주품(觀本住品) : 12송. 본주(本住), 즉 자아가 자성적 실재라는 주장을 논파한다. 자아는 모든 감각 기관과 정신 작용의 소유자 통일자 유지자가 되므로 감각 기관 등에 우선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주장에 따르면 본주뿐 아니라 안(眼) 등도 모두 자성적 실재가 된다. 그것들이 모두 자성적 실재라면 그들 사이에는 인과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자성적 실재로서의 본주는 성립할 수 없다고 설한다.
◈ 제10 관연가연품(觀燃可燃品) : 16송. 불과 땔감의 공 무자성을 논하고 있는데, 이는 불과 땔감의 비유를 통해 앞에서 논의한 작업(作業)과 작자(作者), 근(根)과 본주(本住) 등의 공 무자성을 재차 설하는 것이다.
◈ 제11 관본제품(觀本際品) : 8송. 흔히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중에서 최초의 시작이 되는 시점을 전제(前際)라 하고, 최후의 끝이 되는 시점을 후제(後際)라 한다. 본 품에서 설하는 본제란 곧 전제의 다른 말이다. 여기서는 생(生) 사(死), 즉 윤회에는 시작과 끝이 있을 수 없음을 논하고 있다. 즉 생이 먼저 있고 노(老) 사(死)가 뒤에 있다면, 노사 없이도 생이 있고, 생 없이도 노사가 있게 될 것이다. 또 노사가 먼저 있고 생이 뒤에 있다면, 그 노사는 원인이 없는 것으로 될 것이다. 또 생과 노사는 동시에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생사에는 전(前) 후(後) 동시(同時)가 모두 성립하지 않으므로 생사에는 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법에는 본제가 없다고 설한다.
◈ 제12 관고품(觀苦品) : 10송. 고(苦)가 불가득임을 밝힌다. 일반적으로 고를 짓는 자와 고를 받는 자는 5음(陰)이라고 생각되는데, 만약 고나 5음이 모두 자성적 실재라면 본래 고를 가지고 있지 않던 5음이 고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고가 자성적 실재라면 자작(自作)과 타작(他作) 공작(共作)과 무인작(無因作)의 4구(句)가 모두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는 무자성 공이며 결국은 불가득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모든 사물이 그와 같다고 설한다.
◈ 제13 관행품(觀行品) : 9송. 행(行)이란 사물이나 현상을 작용과 변화의 측면에서 포착한 것이다. 5음(陰) 12처 18계의 모든 존재는 이 행의 힘 때문에 성립하며, 때로는 그 법들 자체를 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 행이 무자성 불가득임을 설한다. 여러 행을 5음이라고 부른다. 이 5음은 모두 허망하여 정해진 상(相)이 없다. 또 여러 법은 다름이 있으므로 모두 무자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모든 법은 공이기 때문에, 무자성의 법 역시 없다. 세존이 공법(空法)을 설한 것은 여러 견해를 떠나고자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공이 있다고 한다면 여러 부처도 교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한다.
◈ 제14 관합품(觀合品) : 8송. 일반적으로 인식은 근(根) 경(境) 식(識) 등이 결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3법이 자성적 존재라면 결국은 결합이 있을 수 없음을 논한다. 즉 근(根)이란 견(見)이고 경(境)이란 가견(加見)이며 식(識)이란 견자(見者)인데, 이것들은 무자성 공으로서 다른 상이 없으며, 다른 상이 없으므로 결합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염(染), 가염(可染), 염자(染者)와 그 밖의 입(入) 즉 처(處)와 그 밖의 번뇌도 역시 이와 같다고 설한다.
◈ 제15 관유무품(觀有無品) : 11송. 여러 법이 무자성이라는 주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존재에 대한 유(有) 무(無)의 2견(見)을 논파한다. 먼저 병(甁)에 병의 자성이 있고 옷감에 옷감의 자성이 있는 것처럼, 여러 법에는 각기 자성이 있고 작용이 있으므로 실재함을 알 수 있으며, 이 자성은 중연(衆緣)의 화합에서 나온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이에 대해서 중연으로부터 나온 것은 작법(作法)이고 작법에는 정성(定性)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법에 자성이 있다면 중연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고 논파한다. 이어서 여러 법에 자성이 없으므로 타성(他性) 역시 있을 수 없고, 자성과 타성을 떠나서는 어떤 존재도 있을 수 없으므로 존재가 성립되지 않으며, 존재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비존재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고 논한다. 또 유와 무를 보고 자성과 타성을 본다면, 이는 곧 불법(佛法)의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 제16 관박해품(觀縛解品) : 10송. 계박(繫縛)과 해탈이 필경공(畢竟空)으로서 불가득임을 설한다. 계박이란 윤회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왕래(往來)라고 표현되었다. 여러 행(行)이 왕래한다고 하지만, 행이 상(常)이라면 왕래할 수 없고, 무상이라고 해도 왕래할 수 없다. 또 생멸의 상을 가지고 있는 여러 행은 계박되지도 않고 해탈되지도 않으며, 중생도 이와 같이 계박되지도 않고 해탈되지도 않는다고 설한다. 이어서 경전에서 열반이 곧 생사요,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설한 것과 같이, 제법(諸法) 실상(實相), 제일의(第一義)에서는 생사와 열반이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한다.
◈ 제17 관업품(觀業品) : 33송. 업이 마침내 공임을 밝힌다. 업은 공이라고 하나 단절이 없고, 유(有)라고 하나 영원한 것이 아니다. 부처는 업과 과보의 불실(不失)을 말했다. 여러 업은 자성이 없기 때문에 본래 불생(不生)이고, 불생이기 때문에 불멸(不滅)이다. 업은 연(緣)으로부터 생하는 것도 아니고, 비연(非緣)으로부터 생하는 것도 아니니, 업을 일으키는 자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한다.
◈ 제18 관법품(觀法品) : 12송. 자아와 아소(我所)에 대한 집착을 없앰으로써, 모든 법이 공이고 무아(無我)라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설한다. 즉 만약 자아가 곧 5음(陰)이라면 그 자아는 곧 생멸할 것이며, 자아가 5음과 다르다면 그 자아는 5음의 상(相)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아가 없다면 아소 역시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자아와 아소에 대한 집착을 없애서 무아의 지혜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 여러 부처는 자아를 설하기도 하고 무아를 설하기도 하지만, 여러 법의 실상 속에는 자아도 없고 비아(非我)도 없으며, 법의 실상은 무생(無生) 무멸(無滅)로서 열반과 같이 적멸이라고 논한다. 이어서 여러 법의 불일(不一)과 불이(不異), 불상(不常)과 부단(不斷) 등이 여러 세존이 가르친 법의 감로미(甘露味)라고 설한다.
◈ 제19 관시품(觀時品) : 6송. 자성설은 시간이 자성을 가지는 찰나적 단위라고 생각하여 과거를 원인으로 해서 현재와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시간이 자성적 실재라는 그와 같은 주장을 논파한다. 즉 만약 과거로 인해서 미래와 현재가 있다면, 미래와 현재는 마땅히 과거 속에 있어야 하지만, 자성적 실재인 과거 속에 자성적 실재인 현재와 미래가 함께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만약 사물로 인해서 시간이 있다고 한다면, 사물을 떠나서는 시간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사물은 실재하지 않으므로 시간 역시 실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제20 관인과품(觀因果品) : 24송. 자성설에서는 여러 인연이 화합해서 과가 생겨난다고 하지만, 인과가 자성적 실재라면 결국 인 과가 성립할 수 없음을 밝힌다. 즉 과에 자성이 있다면 그것은 본래부터 그런 것이므로 원인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또 그때 원인에는 원인으로서의 자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과(果)는 연(緣)의 합(合)이나 불합(不合)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으며, 과가 없으므로 합법(合法)도 있을 수 없다고 설한다.
◈ 제21 관성괴품(觀成壞品) : 20송. 성괴를 밝힌다. 성괴란 생겨나고 무너지는 것, 즉 형성과 파괴를 뜻한다. 또 형성은 생성을, 파괴는 소멸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형성과 파괴에 대해서 고찰함으로써 자성설에서는 인과의 상속(相續)이나 인과의 생멸이 성립할 수 없음을 논한다. 즉 자성적 실재는 형성될 수도 없고 파괴될 수도 없으며, 원인이 될 수도 없고 결과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 자성설에 있어서는 인과의 상속이나 윤회도 인정될 수 없다고 설한다.
◈ 제22 관여래품(觀如來品) : 16송. 여래는 모든 세간 중에서 가장 존귀하므로 마땅히 실재한다고 해야 한다는 주장을 논파한다. 5음(陰)은 여래가 아니고, 5음을 떠나서 여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여래 속에 5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5음 속에 여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여래가 5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로 구해도 불가득이므로 여래는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서 여래에 자성이 없는 것은 세간에 자성이 없는 것과 같다고 설한다.
◈ 제23 관전도품(觀顚倒品) : 24송. 전도(顚倒)란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모든 것이 무아(無我) 부정(不淨) 무상(無常) 고(苦)인데, 그것을 아(我) 정(淨) 상(常) 낙(樂)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전도 때문에 탐진치(貪瞋癡) 등의 여러 가지 번뇌가 생긴다고 생각되었다. 여기서는 정(淨)과 부정(不淨)의 전도를 예로 하여 이 전도와 번뇌 등이 모두 무자성 공이며, 따라서 생겨난 바도 없고 끊을 바도 없음을 설한다. 정(淨)과 부정(不淨)의 전도에 의해서 3독(毒)이 생긴다면 3독은 곧 무자성이며, 번뇌는 실체가 아닐 것이다.
또 정과 부정의 전도에 자성이 없다면, 번뇌는 그 둘로 인해서 생길 수 없다. 만약 번뇌에 자성이 있고 누구에게 속해 있다면, 그것은 끊을 수 없을 것이며, 또 만약 번뇌가 허망하여 자성이 없고 속하는 바 없다고 해도, 그것은 능히 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전도와 번뇌는 무자성 공으로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한다.
◈ 제24 관사제품(觀四諦品) : 40송. 4제(諦)와 관련해서 2제의 본성을 밝히고, 공에 집착함을 경계하여 이로써 법의 실상을 드러낸다. 먼저 공관(空觀)에 대한 반론을 소개한다. 즉 만약 일체가 모두 공이라면, 곧 4성제와 4도과(道果)와 불 법 승의 3보(寶)도 있을 수 없으니, 공법(空法)은 인과를 무너뜨리고 죄와 복을 무너뜨리며, 나아가 세속의 모든 법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한다. "너는 무엇이 공상(空相)이고, 어떤 인연으로 공을 설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또 공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의혹이 생긴다.
여러 부처님은 2제(諦)를 가지고 중생을 위해서 법을 설한다. 첫째는 세속제(世俗諦)이고 둘째는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다. 만약 2제를 분별해서 알지 못하면 곧 깊고 깊은 불법의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속제에 의하지 않고는 제일의를 얻지 못하며, 제일의를 얻지 못하고는 열반을 얻을 수 없다. 또 공의 뜻이 있으므로 모든 법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공의 뜻이 없다면 일체는 성립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 인연으로 생겨난 법을 나는 공이라고 설한다. 왜냐하면 중연(衆緣)이 화합해서 사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사물은 여러 인연에 속하기 때문에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으므로 공이다. 그러나 공도 또한 공이다. 그것은 다만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가명(假名)으로 설한 것이다. 또 그것은 유(有)와 무(無)의 2변(邊)을 떠났으므로 중도(中道)라고 부른다. 오히려 만약 일체가 공이 아니라면 곧 생멸이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곧 4성제의 법 등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 공이 없다면 얻지 못한 것은 영원히 얻을 수 없을 것이며, 번뇌를 끊을 수 없고, 고통이 다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어서 만약 공의 뜻이 무너진다면 인연성이 무너지고, 인연성이 부서지면 3보가 무너지며, 3보가 무너지는 것은 곧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이 될 것이라고 설한다.
◈ 제25 관열반품(觀涅槃品) : 24송. 해탈과 열반이 마침내 공으로서 불가득임을 설한다. 즉 "만약 여러 법이 공으로서 생도 없고 멸도 없다면, 따로 끊고 멸해서 열반이라 할 것이 없으며, 만약 여러 법이 불공(不空)이라고 해도 생이 없고 멸이 없어서 따로 끊고 멸해서 열반이라 할 것이 없다. 이와 같이 유와 무[空]의 2변(邊)으로는 열반에 도달하지 못하나니, 소위 열반이란 얻을 것도 없고 도달할 것도 없으며, 단멸(斷滅)도 아니고 상주(常住)도 아니다. 불생(不生)인 동시에 불멸(不滅)이니 이를 이름하여 열반이라고 한다.
또 열반이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 유와 무의 합(合)도 아니며, 비유(非有)인 동시에 비무(非無)도 아니다. 모든 시간과 모든 곳에서 열반의 상을 구하나 불가득이다."라고 논하고, 이어서 열반과 세간은 아무런 차별이 없으며, 세간과 열반 역시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설하고 있다.
◈ 제26 관십이인연품(觀十二因緣品) : 12송. 12지 인연의 발생과 소멸을 설한다. 여기서는 단지 12지를 설명하고 있을 뿐 자성설에 대한 논란이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본 불전이 12연기를 과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설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본문을 보면 12지 인연의 발생을 순서에 따라 설하고, 이어서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일은 모두 생(生)으로부터 있고, 또 이 인연으로 대고음(大苦陰)을 모은다. 이는 생사와 여러 행(行)의 근본으로서 어리석은 자가 짓는 바이며 지혜로운 자가 짓는 바가 아니다. 이를 여실하게 봄으로써 무명이 멸한다.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여러 행도 멸한다. 인(因)이 멸했으므로 과(果)도 역시 멸한다."라고 설하고 있다.
◈ 제27 관사견품(觀邪見品) : 31송. 여러 가지 사견을 논파함으로써 정견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인다. 여기서는 주로 3세를 통하여 자아가 실재한다는 사견을 논파하고 있다. 즉 "나는 과거세(過去世)에 있었는가 없었는가, 세간은 영원한가 하는 등의 견해는 모두 과거세에 의한 것이고, 나는 미래세(未來世)에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세간은 유한한가 등의 견해는 모두 미래세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과거세에 내가 있었다고 하는 등의 일은 있을 수 없다. 과거세 중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견해들은 모두 사견이다. 또 과거세의 내가 있지 않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과거세 중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공이니 세간이 영원하다는 등의 견해가 어디서, 어느 때, 누구에게서 일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논하고, 다음의 게송으로 논을 끝맺는다.
"모든 견해를 끊기 위해서, 자비심을 가지고 이 법을 설하신 위대한 고타마께, 저는 지금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중송은 반야경에서 설해진 바와 같은 공관(空觀)이야말로 불법(佛法)의 진정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상사적 의의를 가진다. 또 중송은 대승불교에 이론적 기초를 부여한 최초의 논서로서 대승 불교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는데, 중관학파는 용수의 중송을 중심으로 하여 발생하여 유식학파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학파를 형성하였으며, 중국에서는 백론(百論)과 십이문론(十二門論)과 함께 삼론종의 발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중송의 주석서로 용수의 근본중론무외소(根本中論無畏疏)와 십이문론, 청목의 중론, 무착(無着)의 순중론의입대반야바라밀경초품법문(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密經初品法門), 안혜(安慧)의 대승중관석론(大乘中觀釋論), 불호(佛護)의 근본중소(根本中疏), 청변(淸辯)의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 길장(吉藏)의 중관론소(中觀論疏), 담영(曇影)의 중론의소(中論義疏)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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