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6계(界)를 관찰하는 장[觀六種品] 8偈
[문] 6계(界)에는 각각 확정된 상(相)이 있다. 확정된 상이 있기 때문에 6계가 있다.
[답] 허공의 상(相)이 아직 있지 않을 때 허공은 없네.
만약 미리 허공이 있다면 상(相)이 없는 것이 되네. (1)
만약 아직 허공의 상(相)이 있지 않은데 미리 허공이 있다면 허공은 상이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왜 그러한가? 색(色)이 없는 공간[處]이 허공의 상이기 때문이다. 색은 지어진 것[作法]이기에 무상하다. 만약 색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면 아직 발생하지 않았으니 소멸하지 않을 것이며 그 때에는 허공의 상이 없을 것이다. 색에 의존해서 색이 없는 공간이 있다. 색이 없는 공간을 허공의 상(相)이라 한다.
[문] 만약 상(相)이 없이 허공이 있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답] 이 상(相)이 없는 법은 어떤 곳에도 있지 않네.
상이 없는 법에 있어서 상은 상을 띠는 일[所相]이 없네. (2)
만약 상주하는 법(法)과 무상한 법 중에서 상(相)이 없는 법을 구한다면 얻을 수 없다. 논자가 말하는 바와 같은 이 유위와 무위가 어떻게 각각 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답한다.) 그러므로 발생과 머묾과 소멸은 유위(有爲)의 상이고, 발생과 머묾과 소멸의 없음은 무위(無爲)의 상이다. 만약 허공이 상이 없는 것이라면 허공은 있지 않다. 만약 전에는 상이 없다가 후에 상이 와서 상이 된다고 말한다면 이것도 옳지 않다. 전에 상이 없다면 상을 띠게 하는 법[可相]이 없다. 왜 그러한가?
상(相)을 갖는 것에도 상을 갖지 않는 것에도 상은 거주하지 않네.
상을 갖는 것과 상을 갖지 않는 것을 떠난 다른 곳에도 거주하지 않네. (3)
등이 불룩 튀어나와 있는 것, 뿔이 있는 것, 꼬리 끝에 털이 나 있는 것, 목덜미가 축 늘어져 있는 것, 이것들이 소의 상(相)이다. 이 상들을 떠나서 소는 있지 않다. 만약 소가 있지 않다면 이 상들이 거주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상을 갖지 않는 법에서 상은 상을 띠는 일이 없다. 상을 갖는 법에도 상은 거주하지 않는다. 미리 상이 있기 때문이다. 물[水相]에 불의 상은 거주하지 않는다. 미리 자기의 상(相)이 있기 때문이다. 또 상을 갖지 않는 법에 상이 거주한다고 한다면 원인이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원인이 없는 것을 무[無法]라 한다. 상을 갖는 것[有相]과 상(相)과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은 항상 서로 의존[因待]하기 때문이다. 상을 갖는 것과 상을 갖지 않는 것을 떠나 다시 제3의 장소에서 상을 띠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게송에서 “상을 갖는 것과 상을 갖지 않는 것을 떠난 다른 곳에도 거주하지 않네” 하고 말한 것이다.
상[相法]이 있지 않으니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法]도 있지 않네.
상을 띠게 하는 것이 있지 않으니 상도 있지 않네. (4)
또 상이 거주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法]이 없다. 상을 띠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상도 없다. 왜 그러한가? 상에 의존해서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이 있고 상을 띠게 하는 것에 의존해서 상이 있다. 서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상이 있지 않고 상을 띠게 하는 것도 있지 않네.
상과 상을 띠게 하는 것을 떠나 다시 사물[物]이 있지 않네. (5)
인과 연들 속에서 처음에서 끝까지 구해 보아도 상과 상을 띠게 하는 것의 확정을 얻을 수 없다. 이 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법들은 다 있지 않다. 모든 법들은 다 상과 상을 띠게 하는 두 법에 포함된다. 어떤 때는 상(相)이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이 되고 어떤 때는 상을 띠게 하는 것이 상이 된다. 예를 들어 연기가 불의 상이 되고 다시 불이 연기의 상이 되는 경우와 같다.
[문] 유(有)가 있지 않다면 무(無)는 있을 것이다.
[답] 유(有)가 없다면 어떻게 무(無)가 있겠는가?
유와 무가 이미 없으니 유와 무를 아는 자는 누구인가? (6)
무릇 사물[物]이 스스로 괴멸했거나 다른 것에 의해 괴멸했다면 이를 무(無)라 한다. 무는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유(有)에 의지해서 있다. 그러므로 유가 없다면 어떻게 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사물의 무이겠는가?
[문] 유가 있지 않기에 무도 있지 않다. (그러나) 유와 무를 아는 자는 있을 것이다.
[답] 만약 (유와 무를) 아는 자가 있다면 유에 있거나 무에 있을 것이다. 유와 무가 이미 타파되었으므로 (유와 무를) 아는 자도 같이 타파된다.
그러므로 허공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며 상(相)도 아니고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그 밖의 다섯도 허공과 같네. (7)
허공에서 갖가지 상(相)을 구해 보아도 얻을 수 없듯이, 그 밖의 다섯 가지 이와 같다.
[문] 허공은 최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최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왜 먼저 타파하는가?
[답]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은 연들이 화합한 것이기 때문에 쉽게 타파된다. 식(識)은 고(苦)와 낙(樂)의 원인이기 때문에, 무상하게 변이하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쉽게 논파된다. 허공은 이와 같은 상(相)이 없고 단지 범부가 있다고 희망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래서 먼저 타파한다. 또 허공은 4대(大)를 지닌다. 4대를 인연으로 해서 식(識)이 있다. 그러므로 먼저 근본이 되는 것을 타파하면 그 밖의 것은 저절로 타파된다.
[문] 세간의 사람들은 모든 법의 있음[有]이나 없음[無]을 본다. 그대는 왜 홀로 세상과 상반되게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답] 지혜가 얕은 사람은 모든 법의 있음[有]이나 없음[無]를 보네.
그러니 봄[見]이 멸한 안은(安隱)한 법을 보지 못하네. (8)
만약 어떤 사람이 아직 도(道)를 얻지 못했다면 법들의 실상(實相)을 보지 못한다. 봄[見]을 사랑하기 때문에 갖가지 희론이 생긴다. 법(法)이 발생하는 것을 볼 때 이를 있다[有]고 여겨서 상(相)을 취해 “있다”라고 말한다. 법이 소멸하는 것을 볼 때 이를 단멸한다[斷]고 여겨서 상을 취해서 “없다”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이[智者]는 모든 법이 발생하는 것을 볼 때 없다고 보는 것[無見]을 멸하고, 모든 법이 소멸하는 것을 볼 때 있다고 보는 것[有見]을 멸한다. 그러므로 비록 모든 법들을 보는 것[所見]이 있다 할지라도 모두 환영과 같고 꿈과 같다. 나아가 무루도(無漏道)를 보는 것[見]도 멸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보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만약 봄[見]이 멸한 안은(安隱)한 법을 보지 못한다면 있음[有]를 보거나 없음[無]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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