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고
세간을 떠나 홀로 행하면
나는 연각의 과(果)라 말하노니
사량(思量)의 경계가 아니니라.
바깥의 실체(實體)를 분별함은
타력(他力)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자신(自身)의 미혹을 본다면
그때엔 모든 마음 굴리리라.
十지(地)가 곧 초지이며
초지(初地)가 곧 八지(地)이요
九지(地)가 곧 七지(地)이고
七지가 곧 八지이며
二지(地)가 곧 三지(地)이고
四지(地)가 곧 五지(地)이며
三지(地)가 곧 六지(地)이어서
고요함엔 차체 없나니라.
모든 법은 항상 고요하며
수행자도 법이 없나니
유무(有無)법이 평등하면
그때엔 성과(聖果)를 얻으리라.
모든 법은 체상(體相) 없거니
어찌하여 없는 법에서
능히 평등을 지으랴
고요하여 분별 없나니라.
만일 모든 마음과 안팎의
움직이는 법을 보지 않으면
그때에 모든 법을 멸하고서
평등한 마음 보리라.
어리석은 이 끝없이 유전(流轉)하면서
법을 취함이 품에 안음 같고
범부를 속이며 유전함은
쐐기로 인해서 쐐기 내는 것 같아서
저 인(因)과 관찰에 의하여
의(意)와 함께 경계를 취하며
식(識)의 종자에 의하여
능히 마음의 인(因) 짓나니라.
닦아 얻음과 주지(住持)함과
종류인 몸을 따라 얻음과
꿈 가운데에 얻은 바인
이의 신통 네 가지 있다네.
꿈 가운데에 얻은바 신통과
여러 부처님의 인(因)에서
종류의 몸을 취하여 얻은
저 신통은 진실한 신통 아니니라.
훈습한 종자로 마음을 훈습하여
법이 생겨서 굴르는 것 같으나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기에
그를 위하여 ‘모든 법 생긴다’ 말하노라
바깥 물건을 분별하여
모든 법상이 성취하기에
그때엔 마음이 민몰(悶沒)하여
자기 미혹을 보지 못하나니라.
무슨 까닭으로 생(生)을 말하며
무슨 까닭으로 무견(無見)을 말하며
볼수 없는데서 보는 것이온지
원컨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어떠한 사람을 위하여
어떠한 법이 있다 말하고
어떠한 사람 위해서는
어떠한 법이 없다 말씀하나이까.
마음 자체는 스스로 청정하건만
의(意)가 일어나서 함께 혼탁했나니
의(意)와 일체 식(識)이
능히 훈습하는 종자 지었나리라.
아라야가 몸을 내었고
의(意)는 나가서 모든 법 구하여
의식은 경계를 취(取)하고
미혹의 소견은 탐하여 취하나니라.
자심(自心)에서 보는 바 법인
외법(外法)은 외법 없나니
이와 같이 미혹을 관찰하고
항상 진여를 생각하리.
선(禪)을 닦는 자의 경계와
업(業)과 부처님의 위대한 일인
이 세 가지는 사의(思議)할 수 없고
지혜 있는 이의 경계라네.
과거, 현재, 미래와
열반과 허공을
나는 세체(世諦)에 의해 말함이나
진체(眞諦)는 명자가 없나니라.
二승(乘)과 외도들은
사견(邪見)에 집착하여
마음속 미몰(迷沒)하면서
바깥 법을 분별하네.
연각과 불과 보살이여
라한은 부처님을 보는데
보리의 굳은 종자가
꿈속에서 성취하네.
어떤 곳이 어떤 것 되오며
어찌하여 어떤 인(因)이 되고
하는 바는 무슨 뜻이 되나이까
원컨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환(幻)의 마음에서 고요함 버리고
있다 없다는 붕당의 말이 있네
마음속의 미혹이 견고하여
환이있다 없다들 말하네.
생멸상(生滅相)이 상응(相應)하여
상(相)과 가상(可相) 있고 없는 것이라네
분별은 오직 의(意)인데
다섯 가지 식(識)과 함께 한다네.
거울 모양과 물의 파도인 것들은
마음의 종자로부터 생기나니
만일 심(心)과 의(意)와
모든 색(色)이 나지 않는다면,
그때엔 뜻과 같은 몸 얻고
부처의 땅에 도달하리라.
모든 연(緣)과 음(陰)과 계(界)여
이는 법의 자체상이라네.
거짓 이름과 사람의 마음은
꿈과 같고 털바퀴와 같다네
세간을 환과 꿈 같이 보아서
진실을 얻어 의지하리.
모든 상(相)이 실상(實相)과 합하여
침량(斟量)의 인(因)을 떠나고
성인의 안으로 얻는 경계이리니
항상 묘행(妙行)을 관찰하리.
미혹하여 침량하는 인(因)으로
세간을 진실로 여기게 하나니
일체 희론을 떠나야 하며
지혜로서 미혹에 머무르질 않으리.
모든 법은 체상이 없나니
공(空)과 상(常)과 무상(無常)이다.
마음이 어리석음에 머물러서
미혹했기에 분별하나니라.
모든 법을 말하는 자여
무생(無生)을 말함 아니다
하나와 둘과 또 둘[二]에서
흘연(忽然)과 자재와 유(有)이며
때[時]와 훌륭함과 미진(微塵)과
연(緣)에 의하여 세간을 분별하나니
세간과 종자는 이 식(識)이어서
저 인(因)에 의지해서 생기나니라.
벽에 의지한 그림 모양과 같아서
사실을 알면 바로 없어지리니
사람이 눈홀림 보는 것 같아
생사(生死)를 본 것 또한 그러하네.
어리석은 사람은 어둠에서
속박과 해탈이란 생각 일으키나니
안과 밖의 가지가지와
모든 법과 인연 그것이었네.
이와 같이 관찰하고 수행하여
고요한 곳에 머무르고
훈습 가운데서 무심(無心)하면
마음이 훈습과 함께 아니하리라.
마음은 차별상(差別相)이 없는데
훈습이 마음에 얽힌 것이니
때[垢]와 같은 훈습이며
의(意)는 식(識)을 따라 난 것이라네.
비단[帛]과 같이 마음도 또한 그러하여
훈습에 의하여 나타나지 않나니
물건 같고 물건 없는것 아니기에
나는 ‘허공 같다’ 말하노라.
아라야인 몸 가운데에는
물건이 있고 없는 것 떠났나니
의식(意識)이 전멸(轉滅)하면
마음이 혼탁한 법을 떠나리라.
일체 법을 깨달았기에
나는 마음 부처라 말하노라.
三세(世)를 끊었으며
유무(有無) 법을 떠났네.
세상 법은 넷이 상응(相應)하며
모든 유(有)는 모두 환(幻) 같나니
이 두 법인 체상(體相)이요
七지(地)는 마음으로 난다네.
딴 지위도 또한 성취(成就)이고
二지(地)와 부처님 지위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와
욕계(欲界)와 열반이여
일체가 마음의 경계요
몸 가운데를 떠나지 않았다
만일 모든 법의 생김을 본다면
이는 미혹인 법을 낸 것이리.
자심(自心)에 미혹임을 깨달으면
이는 모든 법의생(生)함이 아니다
무생은 법의 체상이요
생(生)은 곧 세간에 집착함이네.
모든 상을 환 같이 볼 것이니
법의 체상은 이와 같나니라
자심(自心)에서 허망스리 취함이니
모든 법을 분별하지 말지어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이를 위하여
三승(乘)과 一승을 말했으며
또한 무승(無乘)을 말했노니
모든 성인이란 고요함이라네.
나의 법엔 두 가지 있나니
상법(相法)과 증득함’이다
네 가지 침량(斟量)하는 상(相)으로서
양(量)과 상응(相應)법을 세웠노라.
형체와 모양과 수승함과 종자로서
미혹함을 보게 되어
명자와 행처(行處)를 분별하나
성행(聖行)은 실로 청정하다네.
분별과 분별에 의하여
그러므로 분별상이 있나니
분별과 분별을 떠나면
실체이고 성인의 경계라네.
떳떳하고 진실하고 변함 아니어서
자성인 사법이며 실체이다
진여는 심법(心法)을 떠났으며
분별을 멀리 떠났다네.
만일 청정한 법이 없으면
또한 더러움도 없으리니
청정한 마음이 있으므로
더러운 법이 있음을 보나니라.
청정함은 성인의 경계이기에
그러므로 진실인 사법도 없나니
이 모든 법의 체상(體相)이
성인의 경계이라네.
인연으로부터 세간이 생겼나니
모든 분별을 떠나서
환과 꿈과 같다고 하면
법을 보고 해탈 얻으리라.
번뇌의 훈습 가지가지가
마음과 함께 상응하여 나기에
중생은 바깥 경계만을 보고
심법(心法)의 체성을 보지 못하나니라.
심법은 항상 청정하여
미혹으로 생김이 아니다
미혹은 번뇌로부터 일어나나니
그러므로 마음을 보지 못하네.
미혹이 곧 진실이니
딴 곳이란 얻을 수도 없다
음(陰)도 아니요 딴 곳도 아니니
음과 행(行)을 여실임으로 관찰하리
견(見)과 능견상(能見相)을 떠나서
만일 유위(有爲)법을 보고
자심(自心)과 세간을 본다면
저 사람은 능히 상(相)을 떠나리라.
유심(唯心) 법을 보지 말며
외의(外義)를 분별하지 말고
진여관(眞如觀)에 머물러서
마음의 경계를 벗어나야 하리.
마음 경계를 벗어나고는
모든 고요함도 멀리 떠나서
수행하여 고요함에 머무르면
수행자의 고요함에 머무름이리라.
마하연[大乘]을 보지 아니해도
저절로 고요하리니
모든 원(願)이 청정함에 의하여
지(智)와 무아(無我)도 고요하리라
응당 마음 경계를 관찰하며
또한 지혜의 경계도 관찰하고
지혜로서 경계를 관찰하여
상(相) 가운데에 미(迷)하지 아니하리.
마음의 경계는 고체(苦諦)이고
지혜의 경계는 집(集)이며
二체(諦)와 불지(佛地)는
이 반야의 경계라네.
과위 얻음과 열반과
또한 사 성도(聖道)로
일체 법을 깨달아서
청정한 불지(佛智)를 얻으리.
눈[眼]과 색(色)과 밝음과
허공과 심(心)과 의(意)인
이와 같은 것들이 화합하여
식(識)이 아라야로부터 난다네.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와 수(受)여,
이름도 사법도 없는 것이니
인(因)이 없이 분별하는 자여,
비각(非覺)을 취하는 것 같나니라.
의(義) 가운데에도 이름[名] 없으며
이름 가운데에 의(義)도 그러하여
인(因)과 무인(無因)이 생기나니
분별하고 분별하지 말지어다.
일체 법은 진실함 없고
언어도 또한 그러하며
공(空)과 불공(不空)의 의(義)도 그러한데
어리석은 이 법을 보고 옳게 여겨
‘진실에 머무른다’ 괜히 생각하여
사견(邪見)으로 거짓 이름을 말하네.
한 법이 다섯 가지로 되나니
여실히 멀리 떠나야 하네.
다섯 가지는 마(魔)의 법이니
초월하여 유무(有無)를 벗어나야 하네
수행의 경계가 아니요
이는 외도의 법이니라.
유(有)와 사뙨 법은 구하지 않으며
또한 상(相), 견(見), 아(我)도 없어야 하리
짓는 것 스스로 떳떳한 법이라 함은
오직 말로서만 난 것이라네.
실체(實諦)는 말 할 수도 없는데
적멸(寂滅)로서 법을 나타내나니
아라야식(識)에 의지하여
의식(意識)이 능히 굴러나네.
의지함이란 심의(心意)에 의지함이니
능히 전식(轉識)을 내나리라
의지한곳 허망으로 이루었으나
진여는 이 심법(心法)이라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능히 심성(心性)의 자체를 알리라.
떳떳함과 무상(無常)함과
의상(意相)과 사법이며
생(生)과 불생(不生)분별함을
행자(行者)는 응당 취하지 않으리
두 법을 분별하지 말 것이니
식(識)은 아라야로부터 나나니라.
한 의(義)에서 두 마음인 법이
이와 같이 생하는 것 알지 못하고
一二인 법을 취하나니
이는 범부의 경계라네.
말하는 이와 말함과 공(空)도 없나니
마음을 보기 때문인 것이다
자심을 보지 못하였기에
그러므로 견(見)의 그물이 나나니라.
모든 인연은 불생(不生)이며
모든 감관[根]도 이와 같나니
계(界)와 五음도 없으며
탐(貪)도 유위(有爲)도 없다네.
본래 업을 짓는 것도 없고
지음도 유위(有爲)도 아니며
제(除)함도 없고 속박도 없고
속박도 해탈도 없다네.
무기(無記)도 물건도 없고
법도 비법(非法)도 없으며
시간도 열반도 없고
법체도 또한 없다네.
부처도 실체(實諦)도 없으며
인(因)도 과(果)도 또한 없고
전도(顚倒)와 멸(滅)도 없으며
멸(滅)도 생(生)도 또한 없네.
十二지(支)도 또한 없고
변(邊)과 무변(無邊)도 또한 그러하여
모든 사견 떠났나니
그러므로 유심(唯心)이라 말하노라.
번뇌와 업과 몸이며
짓는 자와 과보(果報)여
꿈과 아지랑이와
건달바 성(城)들과 같다네.
심법(心法) 가운데에 머물러서
그리하여 모든 법상(法相)을 내고
심법 가운데에 머무르므로
단(斷)과 상(常)을 보나니라.
열반 가운데에는 음(陰)도 없고
아(我)도 상(相)도 또한 없으며
능히 유심(唯心)에 들어가서
해탈하고 상을 취하질 않는다네.
땅을 보임이 무슨 허물이랴
중생은 바깥을 보기 때문이다
마음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지만
훈습 때문에 나타나질 아니하네
때[垢] 가운데엔 흰 것 보이지 않고
흰것 가운데엔 때가 보이지 않나니
구름이 허공을 덮은 것 같아서
그러므로 마음이 나타나질 않네.
마음은 능히 모든 업 짓고
지(智)는 그 속에서 분별하며
혜(慧)는 능히 고요함 관찰하여
크고 묘한 법체를 얻는다네.
마음은 경계에 의해 얽히고
지(智)는 각관(覺觀)에 의해 나며
고요함인 수승한 경계는
혜가 그 속에서 행하느니라.
심(心)과 의(意)와 의식이
상(相) 가운데에서 분별하나니
분별 없는 체성을 얻어야 하리
二승(乘)은 참 제자(弟子)가 아니라네
고요하고 수승한 사람에겐
부처님의 지혜 청정하네
능히 승의(勝義)를 내고서
이미 모든 행상(行相) 떠났네
‘법체가 있다’ 분별하며
‘타력(他力)의 법은 없다’하여
미혹에서 분별함을 취하나니
타력을 분별하지 말지어다.
모든 대(大)가 색(色) 있는 것 아니며
색(色)있는 것은 모든 대 아니요
꿈과 환과 건달바며
짐승의 물 아닌 것 갈애 함이니라.
나에게 세 가지 지혜 있어서
언어 의지 했음이 성인이란 이름이었네.
마음은 법 가운데에 생김 없나니
그러므로 마음은 보이지 않네.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을
중생은 훈습에 의해 보나니
저 분별하는 상(相)에 의하여
모든 법을 말하였노라.
二승과 상응(相應)함을 떠났고
혜(慧)는 법상(法相) 나타냄 떠났는데
허망스리 법을 취하므로
성문(聲聞)은 법을 본다네.
능히 유심(唯心)에 들어가면
여래 지혜가 청정하리.
진실과 진실 아닌 것이여,
인연으로부터 생긴 법이네.
一과 二는 사견(邪見)이어서
필경 능히 취착하리라
가지가지 모든 인연은
환과 같아 실이 없다네.
이와 같은 모양인 가지가지는
능히 분별 이루지 못하고
번뇌상에 의지하여
모든 속박이 마음으로부터 나네.
분별의 법임을 알지 못하면
타력(他力)도 분별일 것이니
있는 바 분별인 체성은
곧 타력인 법이니라.
가지가지 분별의 견(見)이
타력에서 분별하나니라.
세체(世諦)와 제일의(第一義)와
제三 인(因)없이 생함인 것이다.
분별은 상속(相續)이라 말하고
그를 끊으면 곧 성인의 경계라네
수행자는 하나인 일이건만
오직 마음이 가지가지로 본 것이라네
저 곳에는 마음의 체성 없나니
이와 같은 분별상은
사람의 눈[眼]속에 눈병 같아서
가지가지 색(色)을 분별하네.
눈병은 색(色)과 비색(非色) 아니며
어리석게 타격을 봄도 그러하여
금이 진구(塵垢)를 떠남 같고
물이 진흙을 떠남 같나니라.
허공이 구름을 떠남과 같이
이와 같이 분별을 깨끗이 하리.
성문이 세 가지 있나니
응화(應化)함과 원으로 태어남과
탐(貪), 진(嗔), 치(痴)의 때를 떠난 것이니
성문은 법으로부터 태어나네.
보살도 또한 세 가지이다
여래는 상(相)이 없것만
중생심(衆生心)의 마음속에게
불, 여래 형상을 보인 것이니
분별하면 이와 같은 것은 없고
타력(他力)인 법체로 있나니라.
'입능가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입능가경(入楞伽經) 총품(게송) 6 (0) | 2018.03.11 |
---|---|
[스크랩] 입능가경(入楞伽經) 총품(게송) 5 (0) | 2018.03.11 |
[스크랩] 입능가경(入楞伽經) 총품(게송) 4 (0) | 2018.03.11 |
[스크랩] 입능가경(入楞伽經) 총품(게송) 2 (0) | 2018.03.11 |
[스크랩] 입능가경(入楞伽經) 총품(게송) 1 (0) | 2018.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