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제7상윳따 - 바라문 상윳따(Brahman samyutta. S7:1-S7:22)

수선님 2018. 3. 18. 12:15

                                   제7주제(S7)
                 바라문(브라흐민) 상윳따 (Brāhmaṇa-saṁyutta)

 

 

제1장 아라한 품
Arahanta-vagga


다난자니 경(S7:1)
Dhanañjanī-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어떤 바라문의 아내인 다난자니라는 바라문녀가 있었는데 세존과 법과 승가에 청정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날 다란자니 바라문녀는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그녀의 남편 바라문에게 음식을 차려서 가져 가다가 넘어졌다. 넘어져서는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귀의합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귀의합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귀의합니다.” 라고 세 번 감흥어를 읊었다.
註) 다난자니는 다난자리라는 족성이다. 그들은 바라문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족성이라고 한다. 다른 바라문들은 범천의 입에서 태어났지만 다난자니 족성은 범천의 머리를 열고 출현하였다고 한다. 이 바라문녀는 붓다의 제자로 수다원과를 얻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붓다의 가르침을 강하게 거부하였으며 그녀가 삼보를 칭송하면 귀를 막았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자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은 다난자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 가엾은(어리석은) 여자는 시도 때도 없이(아주 작은 일에 대해서도) 저 삭발한 사문을 칭송하는 말만 하는구나. 비천한 여자야, 이제 내가 가서 그대의 그 스승을 논파할 것이다.”
“바라문이여, 저는 신(하늘 사람)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서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를 논파할 수 있는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더라도 가십시오. 가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바라드와자 족성의 바라문은 분노하고 마음이 언짢아 하면서도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라드와자 족성의 바라문은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바라문]
 “무엇을 끊은 뒤에 깊이 잠들고
  무엇을 끊고 나면 슬퍼하지 않습니까?
  어떤 하나의 법 죽이는 것을
  당신은 허락하십니까, 고따마시여?”

 

[세존]
 “분노(성냄)를 끊은 뒤에는 편안히 잠들고
  분노를 끊고 나면 슬퍼하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분노는 뿌리에 독이 있고
  꼭대기에 꿀이 듬뿍 들어 있어서
  이런 분노를 죽이는 것이 성자들은 칭송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이것을 끊고 나면 슬퍼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바라드와자 족성의 바라문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라드와자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욕설 경(S7:2)
Akkos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욕쟁이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이 집에서 나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다고 들었다. 그는 분노하고 마음이 언짢아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오만불손하고 거친 말로 세존을 욕하고 비난하였다.
註) 욕쟁이 (악꼬싸)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앞 경에 나타난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동생이었다. 그를 욕쟁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는 500개의 게송으로 여래께 욕을 퍼붓기 위해서 왔다고 해서 욕쟁이 바라드와자라고 경을 합송한 분들(송출자)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는 사문 고따마가 우리 큰형을 출가시켜서 손해를 끼쳤고 집안을 분열시켰다고 하면서 분노하고 마음이 불편하여 세존을 욕하고 비난한 것이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욕쟁이 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라문이여. 그대의 친구와 동료나 가족과 친척들이 그대를 방문하러 오는가?”
“고따마 존자여, 때때로 나의 친구와 동료나 가족과 친척들이 나를 방문하러 옵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라문이여. 그러면 그대는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음식들을 내놓고 대접하는가?”
“고따마 존자여, 때때로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음식들을 내놓고 대접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런데 만일 그들이 받지 않으면 그 음식은 누구 것이 되는가?”
“고따마 존자여, 만일 그들이 받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것이 됩니다.”

 

"참으로 그러하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우리가 아무 욕도 하지 않는데도 욕을 하고, 모욕을 주지 않는데도 모욕을 주고, 시비를 걸지 않는데도 시비를 건다. 그러나 우리는 그대의 것을 받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그러므로 그것은 그대의 것이 된다. 바라문이여, 그러므로 그것은 그대의 것이 된다. 바라문이여, 욕하는 사람에게 맞서서 욕을 하고, 모욕을 주는 사람에게 맞서서 모욕을 주고,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 맞서서 시비를 걸면 이것은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고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바라문이여,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대와 함께 음식을 먹지 않고 서로 교환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그러므로 그것은 그대의 것이 된다.


“왕과 왕의 측신들은 고따마 존자에 대해서 ‘사문 고따마는 아라한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고따마 존자는 지금 화를 내고 있습니다.”
註) “왕과 왕의 측신들은 ~ 지금 화를 내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왜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는 그는 선인들이 화를 내면 저주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는 세존께서 ‘바라문이여, 그러므로 그것은 그대의 것이 된다.’라고 말씀하시자 ‘사문 고따마는 나에게 저주하고 있구나.’라고 하면서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세존]
 “온화하고 유순하고 바르게 생계를 유지하고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하였고
  지극히 평화롭고 모든 것에 고요하고
  분노가 없는 자가 어떻게 분노하겠는가?

 

  분노에 맞서서 분노하는 그런 자는
  더욱 더 사악한 자가 되나니(더욱 스스로를 나쁘게 만들 뿐)
  분노에 맞서서 분노하지 않으면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과 상대 둘 다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이니]
  상대가 크게 성이 난 것을 알면
  마음 챙기고 고요하게 자신의 평화를 지키며 처신한다.

 

  그런 그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까지 둘 다를 구제하나니
  이런 그를 어리석다 여기는 사람들은
  진리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욕쟁이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욕쟁이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욕쟁이 바라드와자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례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악꼬싸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아수라 왕 같은 자 경(S7:3)
Asurida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수린다카(아수랑 왕 같은)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이 집에서 나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다고 들었다. 그는 분노하고 마음이 언짢아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오만불손하고 거친 말로 세존을 욕하고 비난하였다.
註) 아수린다카(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앞의 두 바라문의 동생이었다고 한다. 그도 같은 이유로 왔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침묵하고 계셨다. 그러자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그대가 패배했도다. 사문이여, 그대가 패배했도다.”

 

 [세존]
 “어리석은 자 거친 말을 내뱉으면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승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견뎌내는 그런 자의 것이다.

 

  분노에 맞서서 분노하는 그런 자는
  더욱 더 사악한 자가 되나니
  분노에 맞서서 분노하지 않으면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도다.
 
  그런 사람은 자신과 상대 둘 다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이니
  상대가 크게 성이 난 것을 알면
  마음 챙기고 고요하게 처신하노라.

 

  그런 그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방까지 둘 다를 구제하나니
  이런 그를 어리석다 여기는 사람들은
  진리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바라문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례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떠한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아수린다카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시큼한 죽 장수(빌랑기카) 경(S7:4)
Bilaṅgi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빌랑기카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이 집에서 나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다고 들었다. 그는 분노하고 마음이 언짢아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곁에 섰다.

註) 시큼한 죽 장수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바라드와자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시큼한 죽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경을 합송한 분들이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는 나의 세 형들이 이 사람 때문에 출가하였다고 아주 분노하여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서 침묵하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음으로 빌랑기카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마음에 일으킨 생각을 아시고 빌랑기카 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청정하고 흠이 없고 타락하지 않은 분
  그런 사람에게 잘못을 범하면
  그 어리석은 자에게 죄악(과보)은 되돌아 옵니다.
  마치 바람을 거슬러 던진 먼지더미처럼.”

 

이렇게 말씀하시자 시큼한 죽 장수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바라문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례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빌랑기카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해코지 않음 경(S7:5)
Ahiṁsa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힝사까(해코지 않는)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힝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여, 저는 아힝사카입니다. 고따마 존자여, 저는 아힝사까입니다.”

 

 [세존]
 “만일 그대 이름처럼 그렇다면
  그런 그대 진정으로 해코지 않는(해를 끼치지 않는) 자로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해코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해코지 않는 자이니
  남을 해코지하지 않기 때문이로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해코지 않는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아힝사까 바라문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례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아힝사까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엉킨 머리 경(S7:6)
jaṭā-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엉킨 머리(머리를 묶은. 결발) 자따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엉킨 머리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바라문]

 “안의 엉킴(묶임)이 있고, 밖의 엉킴(묶임)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엉킴(매듭)으로 뒤얽혀 있습니다.
  고따마시여, 당신께 그것을 여쭈오니
  누가 이 엉킴을 풀 수 있습니까?”


[세존]
 “통찰지(지혜)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마음과 지혜를 닦는다.
  근면하고 슬기로운 비구는 이 엉킴을 푼다.

 

  탐욕과 성냄과 무명을 모두 없애버린 사람
  번뇌 다한 아라한들이 이러한 엉킴을 푼다.

  정신과 물질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
  부딪힘의 인식도 남김없이 소멸하고
  물질의 인식까지 남김없이 소멸하는
  여기서 그 엉킴은 잘려지도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자따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자따 바라문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례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자따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청정 경(S7:7)
Suddhi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수디카(숫디카)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수디카(청정)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바라문]

 “비록 계를 구족하고 고행(금욕수행)을 하더라도
  세상 어떤 바라문도 결코 청정해지지 않습니다.
  명지(지혜)와 실천을 구족한 자[明行足] 그가 청정하나니
  그 외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註) 여기서 명지란 삼베다를 말하고 실천이란 족성이라는 실천이다. 즉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서 바라문의 행을 하고 사는 그 자체가 바라문의 실천이라는 말이다. 바라문들은 명행족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바라문들의 명행족과 불교의 명행족에 대해서는 디가니까야 ‘암밧타 경’을 참조할 것.


 [세존]
 “비록 많은 만트라(바라문 진언)를 외우더라도
  안이 청정하지 못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삶을 연명한다면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지 않는다.

 

  끄샤뜨리야든 바라문이든 와이샤든
  수드라든 불가촉천민이든 
  부지런히 정진하고 스스로 독려하고 항상 분발하는 자가
  최상의 청정 얻나니,오 바라문이여, 그대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수디카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수디카 바라문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례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수디카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불에 헌공하는 자(S7:8)
Aggika-sutt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불에 헌공하는(악기카)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나는 불에 헌공을 할 것이다. 나는 아그니호뜨라(불을 공경하는 제사) 제사를 거행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버터를 넣은 우유죽(우유를 넣은 쌀죽)을 마련하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지니고) 걸식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들어가셨다. 라자가하에서 차례대로 걸식하면서 불에 헌공하는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거처로 다가가셨다. 가서는 한 곁에 섰다.
註) 아그니호뜨라 제사는 문자 그대로 불(agni)을 지펴서 불에 공물을 바치는 제사이다. 이 아그니호뜨라는 인도의 모둔 정규제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제사방법이다. 모든 정규제사는 제의서에 규정되어 있는 엄정한 방법에 따라 불을 지피는 제단을 만들어서 여기에 공물을 바치는 것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악기카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서 걸식을 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바라문]
 “삼명을 구족하고 좋은 집안 태생을 갖추고 많이 배웠으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사람만이

  나의 우유죽을 먹을 수 있습니다.”

 

[세존]
 “비록 많은 만트라를 외우더라도(암송한다고 할지라도)

  안이 청정하지 못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삶을 연명한다면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지 않는다.

 

  전생의 삶을 기억하고 천상과 지옥을 보며
  태어남 다 했고 해야 할 일 다 한 자가 성자이다.
 
  이 세 가지 명지에 의해 삼명 갖춘 바라문이 되나니
  명지와 실천 구족한 자만이 이 우유죽을 먹을 수 있다.”

 

악기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말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것을 드십시오. 존자가 바로 존경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바라문이십니다.”

 

[세존]ㅣ
 “게송 읊어 얻은 음식은

  내가 먹기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바라문이여, 그것은 바르게 보는 자들의 법이 아니다.
  게송 읊어 생긴 것을 깨달은 자들은 거부하나니
  바라문이여, 이런 법이 있나니 그분들의 품행(처신)이다.

  번뇌를 모두 부수어 버리고  완벽하신 분, 위대한 성인이 된 분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 없어져 후회가 가라앉아 버린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과 마실 것을 받들어 공양하라.
  공덕 구하는 자에게 그가 복밭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불에 헌공하는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악기카 바라문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례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을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악기카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순다리까 경(S7:9)
Sundari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살라의 순다리까 강 언덕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순다리까 강 언덕에서 불에 헌공을 하고 아그니호뜨라 제사를 거행하고 있었다.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불에 헌공을 하고 아그니호뜨라 제사를 거행한 뒤 ‘누가 이 남은 제사음식을 먹는 것이 좋을까?’라고 [생각하며] 온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서 머리를 덮은 채 어떤 나무 아래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왼손으로 남은 제사음식을 들고 오른 손에는 물병을 들고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서는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머리에 쓴 것을 벗어셨다. 그러자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이 존자는 머리 깎은 자로구나. 이 존자는 머리 깎은 자로구나.”라고 하면서 거기서 돌아서려 하였다. 그러나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어떤 바라문들도 머리를 깎고 있다. 그러니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태생을 물어보리라.’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존자의 태생은 무엇입니까(어떤 가문 출신입니까)?”

 

[세존]
 “태생을 묻지 말고 행실을 물어라.
  어떤 장작으로든 불은 지필 수 있느니라.
  낮은 가문에서도 의지가 굳은 성자는 나오는 법
  양심(부끄러운 마음)으로 자신을 제어하는 자가 혈통 좋은 사람이다.

 

  진리로 길들여지고 감각기능의 길들여짐(자제)이 완벽한 분
  지혜의 끝에(지혜의 궁극) 도달했고 청정범행을 완성한 분
  제사를 바르게 지내는 자는 그런 분을 빌어야 한다(소청).
  올바른 때에 공양 받아 마땅한 그에게 헌공하라.”

 

[바라문]
 “이러한 지혜에 통달한 분을 뵙다니
  참으로 나는 제사를 잘 지냈고 헌공을 잘하였습니다.
  존자와 같은 분들을 뵙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남은 저의 제사음식을 먹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것을 드십시오. 존자가 바로 바라문이십니다.”

 

 [세존]
 “게송 읊어 얻은 음식은

  내가 먹기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바라문이여, 그것은 바르게 보는 자들의 법이 아니다.
  게송 읊어 생긴 것을 깨달은 자들은 거부하나니
  바라문이여, 이런 법이 있나니 그분들의 품행(처신)이다.

 

  번뇌를 모두 부수어 버리고  완벽하신 분, 위대한 성인이 된 분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 없어져 후회가 가라앉아 버린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과 마실 것을 받들어 공양하라.
  공덕 구하는 자에게 그가 복밭이 되기 때문이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제가 누구에게 이 남은 제사음식을 주면 됩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제외하고는 이 남은 제사음식을 먹고 바르게 소화시킬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한다. 바라문이여, 그러니 그대는 이 남은 제사음식을 풀이 없는 곳에 버리거나 생명체가 살지 않는 물에 버려라.”

 

그러자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그 남은 제사음식을 생명체가 살지 않는 물에 버렸다. 그가 남은 제사음식을 물에 넣자 그것은 부글부글 끓고 쉭 소리를 내고 증기를 뿜고 연기를 뿜었다. 예를 들면 한낮에 달아오른 쟁기의 보습을 물에 넣으면 부글부글 끓고 쉭 소리를 내며 증기를 뿜고 연기를 뿜는 것처럼 그가 남은 제사음식을 물에 넣자 그것은 부글부글 끓고 쉭 소리를 내며 증기를 뿜고 연기를 뿜었다. 그러자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깜짝 놀라고 털이 곤두서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존]
 “나무에 불을 지펴, 바라문이여,
  겉으로 드러난 이 행위가 청정을 가져 온다고 생각하지 말라.
  밖으로 청정 구하는 자는 청정 얻지 못한다고
  현자들은 말한다.

 

  바라문이여, 나무에 불 지피는 것 버리고
  내적인 광명으로 나는 항상 타오르나니
  내게는 항상 불이 있고 마음은 항상 선정 삼매에 드나니
  그런 나는 아라한이요, 청정범행으로 살아간다.

 

  바라문이여, 그대의 자만은 어깨에 울러 멘 무거운 짐이고
  분노는 연기요, 거짓말은 재,
  혀는 주걱, 심장은 불 지피는 제단
  잘 길들여진 자신은 인간의 광명이다.

 

  바라문이여, 진리 법은 계행이라는 여울을 가진 호수
  선한 사람(참된)이 선한 사람에게 칭송을 해주는 맑고 맑은 곳이니
  지혜의 성취자는 거기서 목욕하여
  물들지 않은 몸으로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진리와 법, 제어(자제)와 청정범행(거룩한 삶)
  이것이 중도에 바탕을 두고 최상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실천하는 곧바로 선 사람들에게
  바라문이여, 그대는 성심으로 예배하라.
  이런 사람 일컬어 법을 따르는 사람이라고(진리 법을 따라 사는 사람) 나는 말한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순다리까 바라문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례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순다리카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많은 딸 경(S7:10)
Bahudhiti-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살라에서 어떤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이 열네 마리의 황소를 잃어버렸다. 그러자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은 그 황소들을 찾아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그 밀림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바라문]
“지난 엿새 동안 찾아도 보이지 않는 
 잃어버린 열네 마리의 황소가

 이 수행자에게는 없구나.
 그래서 이 사문은 행복하도다.

 

 참으로 이 사문에게는
 한 잎이나 두 잎이 달려있는
 병든 참깨 밭이 없으니
 그래서 이 사문은 행복하도다.

 

 참으로 이 사문에게는
 텅 빈 헛간 안에서
 신나게 돌아 다니며 춤춰 대는 쥐들이 없으니
 그래서 이 사문은 행복하도다.

 

 참으로 이 사문에게는
 일곱 달이나 되어
 해충들이 우글거리는 담요가 없으니
 그래서 이 사문은 행복하도다.

 

 참으로 이 사문에게는
 어떤 딸은 아들 하나, 어떤 딸은 아들 둘이 가진채
 과부가 된 일곱 딸들이 없으니
 그래서 이 사문은 행복하도다.

 

 참으로 이 사문에게는
 잠자리에서 발로 깨우는
 누렇게 뜬 곰보 마누라가 없으니
 그래서 이 사문은 행복하도다.

 

 참으로 이 사문에게는
 새벽같이 찾아와 ‘내 돈 내놔, 내 돈 내놔,’라고
 윽박지르는 빚쟁이들이 없으니
 그래서 이 사문은 행복하도다.”

 

[세존]
 “브라만이여, 지난 엿새 동안 보이지 않는 
  그대가 잃어 버린 황소 열네 마리
  내게는 없으니 

  그래서 나는 행복하도다.

 

  참으로 나에게는
  한 잎이나 두 잎이 달려있는
  병든 참깨 밭이 없으니
  그래서 나야말로 행복하도다.

 

  참으로 나에게는
  텅 빈 헛간 안에서
  신나게 돌아 다니며 춤춰 대는 쥐들이 없으니
  그래서 나야말로 행복하도다.

 

  참으로 나에게는
  일곱 달이나 되어
  해충들이 바글거리는 담요가 없으니
  그래서 나야말로 행복하도다.

 

  참으로 나에게는
  한 아들이나 두 아들을 가진
  과부가 된 일곱 딸년들이 없으니
  그래서 나야말로 행복하도다.

 

  참으로 나에게는
  잠자리에서 발로 깨우는
  누렇게 뜬 곰보 마누라가 없으니
  그래서 나야말로 행복하도다.

 

  참으로 나에게는
  새벽같이 찾아와 ‘내 돈 내놔, 내 돈 내놔.’라고
  윽박지르는 빚쟁이들이 없으니
  그래서 나야말로 행복하도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바라드와자 족성의 바라문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라드와자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제1장 아라한 품이 끝났다. 첫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다난자니 ② 욕설 ③ 아수라 왕 ④ 시큼한 죽 장수 ⑤ 해코지 않음 ⑥ 엉킨 머리

⑦ 청정 ⑧ 불의 헌공 ⑨ 순다리까 ⑩ 많은 딸이다.

 

제2장 청신사 품
Upāsaka-vagga


까시 바라드와자 경(S7:11)
Kasibhāradvāj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마가다국의 닥키나기리(남산)의 에까날라라는 바라문 마을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파종을 하는 시기가 되어서 쟁기를 맨 소 500마리를 준비하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일터로 가셨다.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음식을 배분하고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음식을 배분하는 곳으로 가셔서 한 곁에 서 계셨다.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서 걸식을 위해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습니다. 사문이여, 당신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십시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으십시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는다네.”
“그러나 우리는 고따마 존자의 멍에도 쟁기도 보습도 몰이막대도 황소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고따마 존자는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는다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뒤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바라문]
 “밭가는 농부라고 공언하시지만
  그대가 밭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밭가는 분이라면, 여쭙노니 말씀해 주소서
  당신의 밭갈이를 어떻게 이해하리까?”

 

[세존]
 “믿음은 씨앗, 고행은 비
  나의 통찰지(지혜)는 소의 멍에에 맨 쟁기
  양심(부끄러움)은 쟁기자루, 마음은 묶는 노끈
  나의 마음 챙김은 보습과 소를 모는 막대(회초리)이다.

 

  몸을 보호하고(조심하고) 말을 보호하고를
  먹는 음식량을 제어하고(도를 넘지 않고)
  진리를 잡초 뽑는 갈고리로 사용하여
  온화함에 도달하여 나의 멍에 풀었도다.

 

  정진이야말로 짐을 실어 나르는 가축

  속박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나를 싣고 간다.
  그것은 쉼 없이 가고 또 가나니
  그곳에 도달하면 사람은 슬퍼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밭갈이를 다 해마치고
  불사(不死)의 결실 거두게 되니
  이러한 밭갈이를 마치고 나면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풀려난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것을 드십시오. 고따마 존자는 진정한 농부이며 밭가는 분이십니다. 고따마 존자는 불사(不死)의 결실을 가져오는 밭갈이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존]
“게송 읊어 얻은 음식은

  내가 먹기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바라문이여, 그것은 바르게 보는 자들의 법이 아니다.
  게송 읊어 생긴 것을 깨달은 자들은 거부하나니
  바라문이여, 이런 법이 있나니 그분들의 품행(처신)이다.

 

  번뇌를 모두 부수어 버리고  완벽하신 분, 위대한 성인이 된 분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 없어져 후회가 가라앉아 버린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과 마실 것을 받들어 공양하라.
  공덕 구하는 자에게 그가 복밭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우다야 경(S7:12)
Uday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우다야 바라문의 집으로 가셨다. 우다야 바라문은 세존의 발우에 밥을 가득 채워드렸다.

 

두 번째로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우다야 바라문의 집으로 가셨다. 두 번째로 우다야 바라문은 세존의 발우에 밥을 가득 채워드렸다.


세 번째로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우다야 바라문의 집으로 가셨다. 세 번째로 우다야 바라문은 세존의 발우에 밥을 가득 채워드린 뒤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 고따마께서 계속해서 오시는 것을 보니 참으로 맛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신 분입니다.”(이 성가신 수행자 고따마가 자꾸만 오네요)

 

[세존]
 “계속해서 사람들은 씨앗을 뿌리고
  계속해서 하늘의 신들은 비를 내리고
  계속해서 밭가는 자 들판을 갈고
  계속해서 곡식은 영토에서 자랍니다.

 

  계속해서 걸식자는 걸식을 하고
  계속해서 보시의 주인은 보시를 하고
  계속해서 보시의 주인은 보시를 한 뒤에
  계속해서 천상으로 올라갑니다.

 

  계속해서 소치기는 젖을 짜고
  계속해서 송아지는 어미를 찾고
  계속해서 사람들은 두려워 떨고
  계속해서 우둔한 자는 모태에 들고
  계속해서 태어나고 또 죽고
  계속해서 사람들은 시체를 공동묘지로 나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곳으로 인도하는 도(길)를 얻으면
  다시 태어남이란 없나니
  광활한 통찰지를 가진 자에게(지혜를 두루 통달하여)
  계속해서 태어남이란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우다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데와히따 경(S7:13)
Devahit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바람에 기인한 병(풍병)에 걸리셨는데 우빠와나(우빠바나) 존자가 세존의 시자로 있었다. 세존께서는 우빠와나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이리 오라, 우빠와나여, 나에게 더운 물을 좀 가져다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우빠와나 존자는 세존께 응답한 뒤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데와히따 바라문의 집으로 갔다. 가서는 침묵하면서 한 곁에 서 있었다.
註) 바람에 기인한 병이란 위장의 바람을 말한다. 세존께서는 6년간 난행고행을 하신 여파로 종종 위장의 바람에 기인한 병을 앓으셨다.

 

데와히따 바라문은 우빠와나 존자가 침묵하면서 한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우빠와나 존자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바라문]
 “머리 깎고 가사 입은 존자께서
  침묵하며 한 곁에 서 계십니다.
  무엇을 구하러 무엇을 찾으러
  무엇을 요청하러 오셨습니까?”

 

[우빠와나 존자]
 “아라한, 세상에서 잘 가신 분[善逝], 성자께서
  바람에 기인한 병에 걸리셨습니다.
  바라문이여, 만일 뜨거운 물이 있으면
  성자를 위해 주십시오.

 

  예배를 받아야 할 분들의 예배를 받고
  공경을 받아야 할 분들의 공경을 받고
  존경을 받아야 할 분들의 존경을 받는
  그분께 가져다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자 데와히따 바라문은 사람을 시켜서 물 나르는 통에 뜨거운 물을 가져오게 한 뒤 당밀 봉지와 함께 우빠와나 존자에게 주었다. 그러자 우빠와나 존자는 세존께 가서 세존께서 뜨거운 물로 목욕시켜드리고 당밀을 뜨거운 물에 타서 세존께 드렸다. 세존께서는 증상이 갈라앉으셨다.

 

어느 날 데와히따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데와히따 바라문은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바라문]
 “어디에 보시할 것을 보시해야 하며
  어디에 한 보시가 큰 결실을 가져옵니까?
  공양하는 자 어떻게 해야 그 보시물은
  성취를 가져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존]
 “전생의 삶을 기억하고 천상과 지옥을 보며
  태어남 다 했고, 해야 할 일 다 해 마친 자가 성자로다.

  여기에 보시할 것을 보시해야 하며
  여기에 한 보시가 큰 결실을 가져 온다.


  공양하는 자 이렇게 해야 그 보시물은
  성취를 가져오도다.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데와히따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부자 경(S7:14)
Mahāsāl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바라문 부자가 남루한 모습을 하고 남루한 옷을 입고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부자 바라문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왜 그대는 남루하고 초라한 옷을 입고 있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제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는데 그 자식들이 아내의 꼬임에 빠져 저를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이 게송을 배워서 집회소(모임장소)에서 많은 군중들이 모이고 아들들도 함께 하였을 때 읋으라.”

 

“나는 그들의 탄생을 기뻐하고
 그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원했건만
 아내들의 꼬임에 빠져버린 그들은
 개가 돼지 쫓아내듯 나를 몰아냈다오.

 

 선량하지 못한 그들, 너무나 비열하여
 나를 두고 ‘아버지, 아버지’라 부르더니
 아들의 형색으로 태어난 그 악귀들
 마침내 늙은 나를 내다버렸다오.

 

 늙어서 쓸모가 없는 말이
 말구유에서 쫓겨나는 것처럼
 어리석은 놈들의 늙은 아버지는
 남의 집에서 구걸을 한다오.

 

 불효한 저 자식들보다
 내게는 지팡이가 더 나으니
 지팡이는 사나운 황소도 몰아내고
 사나운 개마저도 몰아낸다오.

 

 어둠 속에서는 지팡이가 내 앞에 가서 위험한 곳을 알려주고
 깊은 물 속에서는 나를 지탱하여 주네
 지팡이의 자비한 도움(힘)으로 나는
 비틀거리더라도 바로 설수 있다오.”

 

그러자 그 부자 바라문은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들을 배운 뒤 집회소에서 많은 군중들이 모이고 아들들도 함께 하였을 때 외웠다.

 

“나는 그들의 탄생을 기뻐하고
 그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원했건만
 아내들의 꼬임에 빠져버린 그들은
 개가 돼지 쫓아내듯 나를 몰아냈다오.

 

 선량하지 못한 그들, 너무나 비열하여
 나를 두고 ‘아버지, 아버지’라 부르더니
 아들의 형색으로 태어난 그 악귀들
 마침내 늙은 나를 내다버렸다오.

 

 늙어서 쓸모가 없는 말이
 말구유에서 쫓겨나는 것처럼
 어리석은 놈들의 늙은 아버지는
 남의 집에서 구걸을 한다오.

 

 불효한 저 자식들보다
 내게는 지팡이가 더 나으니
 지팡이는 사나운 황소도 몰아내고
 사나운 개마저도 몰아낸다오.

 

 어둠 속에서는 지팡이가 내 앞에 가서 위험한 곳을 알려주고
 깊은 물 속에서는 나를 지탱하여 주네
 지팡이의 자비한 도움(힘)으로 나는
 비틀거리더라도 바로 설수 있다오.” 

 

아들들은 한때 부유했던 그 바라문을 집으로 모셔가서 목욕을 시켜드리고 각각 옷 한 벌씩을 드렸다. 그러자 그 바라문은 옷 한 벌을 가지고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 바라문들은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을 위해서 스승에게 바치는 보시물을 구해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것을 제가 스승에게 바치는 보시물로 받아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연민하는 마음을 내시어 그것을 받으셨다. 그때 그 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마낫탓다 경(S7:15)
Mānatthadd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마낫탓다라는 바라문이 사왓티에 살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고(절을 하지 않고) 나이 많은 형에도 공경하지 않았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많은 대중에게 둘러싸여 법을 설하고 계셨다. 그때 마낫탓다 바라문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문 고따마는 많은 대중에게 둘러싸여 법을 설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사문 고따마에게 다가가리라. 만일 사문 고따마가 나에게 말을 걸면 나도 그에게 말을 걸 것이다. 만일 사문 고따마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나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마낫탓다 바라문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침묵한 채로 한 곁에 서 있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으셨다. 그러자 마낫탓다 바라문은 ‘이 사문 고따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라고 여기고 거기서 다시 되돌아 나오려고 하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마음으로 마낫탓다 바라문의 마음에 일어난 생각을 아시고 마낫탓다 바라문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자만(교만)을 키우는 것은, 바라문이여
  이로움(행복)을 원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이 아니다.
  그대가 어떤 목적 가지고 왔는지
  그것을 참으로 드러내어 말해보라.”

 

그러자 마낫탓다 바라문은 ‘사문 고따마는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세존의 발에 입맞추고 손으로 어루만지며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마낫탓다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마낫탓다입니다.”라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드렸다.

 

그 말을 들은 대중은 놀라는 마음이 생겨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마낫탓다 바라문은 어머니나 아버지에게도 공경하지 않고 스승에게도 공경하지 않고 나이 많은 형에게도 공경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문 고따마께는 이처럼 최상의 존경을 표합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마낫탓다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것으로 그대의 마음은 나에게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일어나서 대중들이 있는 곳에 가서 앉으라.”

 

마낫탓다 바라문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세존께 게송으로 여쭈었다.


[바라문]
  누구에게 자만을 보여서는 안 됩니까?
  누구에게 존중을 나타내야 합니까?
  누구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누구에게 깊은 경배 올려야 합니까?”


[세존]
 “어머니와 아버지, 맏형과 스승
  이들에게 자만을 보여서는 안 되고
  바로 이들에게 존중을 나타내야 하고
  바로 이들에게 존경을 표해야 하고
  바로 이들에게 깊은 경배 올려야 한다.

 

  자만을 죽여 없애어 겸손해진 사람은 
  할 바를 다했고 번뇌 없고 마음이 평온해 진 분들
  위없는 아라한들에게 예배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낫탓다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빳짜니까 경(S7:16)
Paccanī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빳짜니까사따라는 바라문이 사왓티에 살고 있었다. 그때 빳짜니까사따 바라문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 찾아가야겠다. 가서는 사문 고따마가 무어라 말하든지 나는 그것을 다 반대하고 반박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노지에서 포행을 하고 계셨다. 빳짜니까사따 바라문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포행을 하시는 세존을 따라서 포행을 하면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사문이여 법을 말해 주시오.”

 

 [세존]
 “마음은 잔뜩 오염되어 있으면서
  남을 공격하기를 거듭해서 시도하고
  오히려 반대하는 것 즐기는 자는
  좋은 말씀[金言.잘 설해진 말씀)] 이해하기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분노를 길들이고
  마음의 불신을 없애버렸다면
  반감마저 저 멀리 내던져버린 그런 자가
  좋은 말씀을 참으로 잘 이해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빳짜니까사따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나와깜미까 경(S7:17)
Navakammi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살라의 어떤 숲에 머무셨다. 그 무렵 나와깜미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그 숲 속에 일을 하러 왔다. 그리고 나와깜미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서 그 밀림의 살라 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그때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밀림에서 일을 하면서 기뻐한다. 그런데 이 사문 고따마는 무엇이 되어가는 것을 기뻐할까?’ 이런 생각을 한 후 나와깜미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게송으로 여쭈었다.

 

[바라문]

“비구여, 이 살라 숲에서 그대 어떤 일을 하십니까?
 고따마여, 이 숲에서 홀로 머물며

 어떤 일에서 기쁨 얻습니까?”

 

 [세존]
 “숲에서 해야 할 일 나에게는 없으며
  뿌리 잘린 나의 숲은 메말라버렸도다.
  숲(번뇌)이 없어지고 쇠살(고통.괴로움)이 없어진
  그러한 나는 숲에서 홀로 기뻐하도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나와깜미까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땔감나무 모으기(나무꾼들) 경(S7:18)
Kaṭṭhahār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살라의 어떤 숲에 머무셨다. 그 무렵 어떤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에게는 많은 바라문 수행자들이 제자로 있었는데 그들은 땔감나무를 모으기 위해서 밀림으로 갔다. 그리고 세존께서 그 밀림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아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에게 갔다. 가서는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은 아셔야 합니다. 지금 어떤 밀림에서 사문이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아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은 그 바라문 학도들과 함께 그 밀림으로 가서 세존께서 그 밀림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아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자 세존께 다가가서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바라문]
 “깊숙하고 많은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숲
  텅 비고 쓸쓸한 밀림에 들어와서는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의지는 굳건하고 
  비구여, 단아한 모습으로 명상을 하는군요.

 

  노래도 없고 음악도 없는 곳에서
  성자가 홀로 밀림에서 숲을 의지해
  희열에 찬 마음(즐거운 마음)으로 숲에 홀로 머무는
  경이로운 그대 모습이 제게 감동을 줍니다.

 

  세상의 주인인 [범천]의 동무가 되고
  위없는 범천의 세상을 그대는 원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 쓸쓸한 밀림에 의지하여(살면서)
  범천이 되기 위해 여기서 고행합니다.”

 

[세존]
 “어떤 소원 가졌든 어떤 기쁨 가졌든
  여러 가지 요소들에 범부 항상 집착하네.
  무지를 뿌리로 갈망이 생기나니
  나는 그 모두를 끝장내고 뿌리를 뽑았다.
 
  그런 나는 소망 없고 집착 없고 속박 없어
  제법(諸法.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나의 봄[見]은 청정하게 되었다.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서
  바라문이여, 두려움없이 확신에 차 나는 홀로 명상하노라.”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어머니 봉양(효자) 경(S7:1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머니를 봉양하는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어머니를 봉양하는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고따마 존자여, 저는 법답게(정당한 방법으로) 음식을 구걸합니다. 법답게 음식을 구걸해서 부모를 공양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제가 이렇게 하면 저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까?”

 

“분명히 그렇다, 바라문이여. 그대가 이렇게 하면 그대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법답게 음식을 구걸하고 법답게 음식을 구걸해서 부모를 봉양하는 자는 많은 공덕을 쌓는다.


 사람이 부모님을 법답게 봉양하면
 이와 같이 부모님을 시중들기 때문에
 여기서는 현자의 칭송을 받게 되고
 죽어서는 천상에서 크게 즐거움을 누린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머니를 봉양하는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훌륭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걸식자 경(S7:20)
Bhikkha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걸식하는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걸식하는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고따마 존자여, 저도 걸식자이고 당신도 걸식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이 차이점입니까?”

 

 “남한테 걸식을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비구가 되는 것이 아니니
  악취 나는 저 법(세간생활)을 받들어 행하는 한
  그는 결코 비구라 불릴 수가 없도다.

 

  공덕과 죄악을 모두 버리고
  청정범행(거룩한 삶)을 한결같이 행하고 닦으며
  지혜롭게 세상에서 유행하는 [그런 사문]
  그를 일러 참으로 비구라 부른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걸식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상가라와(쌍가라바) 경(S7:21)
Saṅgārav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상가라와라는 바라문이 사왓티에 살고 있었다. 그는 물을 통해 청정을 닦는 자였는데 물에 의한 청정을 믿어서 해질 무렵과 해뜰 무렵 물에 들어가는 의식을 실천하는데 몰두하면서 살았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상가라와라는 바라문이 사왓티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물을 통해 청정을 닦는 자인데 물에 의한 청정을 믿어서 해질 무렵과 해뜰 무렵 물에 들어가는 의식을 실천하는데 몰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니 세존께서 연민하는 마음을 내시어 상가라와 바라문의 집으로 가주시면 좋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지니고) 상가라와 바라문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상가라와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라문 상가라와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물을 통해 청정을 닦는 자인데 물에 의한 청정을 믿어서 해질 무렵과 해뜰 무렵 물에 들어가는 의식을 실천하는데 몰두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이여, 그런데 그대는 무슨 이익을 보기에(기대하기에) 물을 통한 청정을 닦는 자가 되어 물에 의한 청정을 믿어서 해질 무렵과 해뜰 무렵 물에 들어가는 의식을 실천하는데 몰두하면서 살고 있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저는 제가 낮에 지은 악업을 해질 무렵에 목욕하여 없애고 밤에 지은 악업은 해뜰 무렵에 목욕하여 없앱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런 이익을 보기에 물을 통한 청정을 닦는 자가 되어 물에 의한 청정을 믿어서 해질 무렵과 해뜰 무렵 물에 들어가는 의식을 실천하는데 몰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세존]
 “바라문이여, 법은 계행이라는 여울을 가진 호수
  맑고 투명하여 참된 자들이 참된 자들에게 칭송하는 곳
  지혜를 구족한 사람은 그곳에서 목욕하여
  물들지 않은 몸으로 저 언덕으로 건너가도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상가라와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코마둣사 경(S7:22)
Khomaduss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의 코마둣사라는 삭까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코마둣사 성읍으로 들어가셨다. 그때 코마둣사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어떤 일 때문에 집회소에 모여 있었고 비가 가끔 부슬부슬 내리기도 하였다.

 

세존께서는 그 집회소로 가셨다. 코마둣사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 머리 깎은 사문들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저들은 집회소의 법(마을의 규칙)을 알기나 하는가?”

 

그러자 세존께서는 코마둣사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참된 사람들 없는 곳은 바름 모임이 하나도 없고
  법을 말하지 않는 자들은 참된 사람 아니로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법을 말하는 자들이 진정 참된 사람이로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코마둣사의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희들을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제2장 청신사 품이 끝났다. 두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까시 바라드와자 ② 우다야 ③ 데와히따 ④ 부자 ⑤마낫탓다 ⑥ 빳짜니까 ⑦ 나와깜미까 

⑧ 땔나무 모으기 ⑨ 어머니 봉양 ⑩ 걸식자 ⑪ 상가라와 ⑫ 코마둣사이다.

 

 

바라문 상윳따(S7)가 끝났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37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