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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모음 - 제4장 평등한 마음 품(Samacitta-vagga.A2:4:1-A2:4:10)

수선님 2018. 4. 1. 12:27

제4장 평등한 마음 품(A2:4:1~A2:4:10)

Samacitta-vagga


바탕 경(A2:4:1)

Bhūm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참되지 못한 사람이 되는 바탕과 참된 사람이 되는 바탕을 설하리라. 잘 마음에 새겨 듣도록 하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참되지 못한 사람이 되는 바탕과 참된 사람이 되는 바탕인가?


비구들이여, 참되지 못한 사람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른다. 

비구들이여,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것을 참되지 못한 사람은 칭찬한다. 

비구들이여,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것이 참되지 못한 사람의 바탕이다.


비구들이여, 참된 사람은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한다. 

비구들이여,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것을 참된 사람은 칭찬한다. 

비구들이여,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것이 참된 사람의 바탕이다.”


은혜에 보답하지 못함 경(A2:4:2)

Duppaṭikāra-sutta  

1. “비구들이여, 두 사람의 은혜에 대해서는 쉽게 보답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어떤 사람이 둘인가? 부모님이다.


비구들이여, 수명이 백 년인 때에 태어나 백 년 동안 살면서 평생동안 한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다른 한쪽 어깨에 아버지를 태워드리더라도, 향을 뿌리고 안마를 해 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몸을 마사지 해 드리면서 봉양을 하더라도, 대소변을 받아내더라도, 그들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그의 부모님을 비록 칠보가 가득한 큰 땅을 통치하는 최고의 왕보다 높은 자리에 모시더라도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부모는 참으로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주는 것이니, 자식들을 키워주고 먹여주고 이 세상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2.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신심이 없는 부모로 하여금 스스로 삼보에 신심을 가지게 하고, 신심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한다. 계를 파한 부모로 하여금 스스로 계를 가지게 하고, 계에 머물게 하고, 계를 확고하게 굳히도록 한다. 인색한 부모로 하여금 스스로 보시하게 하고, 보시하는 것에 머물게 하고, 보시하는 것을 확고하게 굳히도록 한다. 통찰지가 없는 부모로 하여금 스스로 통찰지를 가지게 하고, 통찰지에 머물게 하고, 통찰지를 확고하게 굳히도록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참으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무슨 교설 경(A2:4:3)

Kiṁvād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바라문이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존자께서는 어떤 교설(가르침)을 가졌으며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지음에 대한 교설(가르침)과 짓지 않음에 대한 교설(가르침)을 가르친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떻게 지음에 대한 교설을 가르치시며 또한 짓지 않음에 대한 교설을 가르치십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짓지 않음에 대하 교설을 가르친다.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자에게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짓지 말 것을 가르친다. 

바라문이여, 나는 지음에 대한 교설을 가르친다.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하는 자에게 여러 가지 선법들을 지을 것을 가르친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와 같이 지음에 대한 교설과 짓지 않음에 대한 교설을 가르친다.”


2.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공양 받아 마땅함 경(A2:4:4)

 Dakkhiṇeyya-sutta 

1. 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나타삔디카 장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급고독 장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공양 받아 마땅한 분들이 세상에 얼마나 있으며 누구에게 공양을 올려야 합니까?”

“장자여, 세상에서 공양 받아 마땅한 자들은 다음의 두 부류이니 유학(有學.도와 과를 향해 닦는 사람들)과 무학(無學. 모든 도와 과를 성취한 아라한)이다. 

장자여, 이러한 두 부류가 세상에서 공양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고 여기에 공양을 올려야 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2. “이 세상에 유학과 무학이 있어

  그들은 보시자의 공양을 받기에 충분하다.

  몸과 말과 뜻이 옳고 바르기에 보시자의 복밭이 되고

  여기 올린 공양은 큰 결실을 가져온다.”


족쇄 경(A2:4:5)

Saṁyoj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카의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는 사왓티의 동쪽 원림(東園林)에 있는 미가라마따(녹자모)의 강당에 머물고 있었다.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이시여” 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들이여, 안의 족쇄에 묶인 사람과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에 대해서 설하겠습니다. 잘 마음에 새겨 들으십시요. 이제 설하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2. “도반들이여, 어떤 자가 안의 족쇄에 묶인 사람입니까?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돌아옵니다. 그는 이러한 상태로 다시 돌아오는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안의 족쇄에 묶인 자라 합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는 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옵니다.”


3. “도반들이여, 어떤 자가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입니까?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평화로운 마음의 해탈[心解脫] 가운데 하나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밖의 족쇄에 채인 자라 합니다.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자(불환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다시 어떤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감각적 쾌락을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그는 존재를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그는 갈애를 부수기 위해 수행합니다. 그는 탐욕을 부수기 위해 수행합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자라 불리는 밖의 족쇄에 묶인 자라 합니다.”

註) 욕계 존재를 안이라 하고, 색계 존재와 무색계 존재를 밖이라 한다. 안이라 불리는 욕계 존재에 대한 강한 욕망이 ‘안의 족쇄’이다. 밖이라 불리는 색계와 무색계 존재에 대한 강한 욕망이 ‘밖의 족쇄’이다. 혹은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가 안의 족쇄이고,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上分結]가 밖의 족쇄이다. 


4. 그때 평등한 마음을 가진 신들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신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사왓티의 동쪽 원림에 있는 미가라마따의 강당에 머물면서 비구들에게 안의 족쇄에 묶인 사람과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에 대해서 설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중들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세존께서 자비심을 내시어 사리뿟따 존자를 방문해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승낙하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듯이 재빠르게  제따 숲에서 사라져 사왓티의 동쪽 원림에 있는 미가라마따 강당에 있는 사리뿟따 존자의 면전에 나타나셔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사리뿟따 존자도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5. “사리뿟따여, 여기 평등한 마음을 가진 많은 신들이 내게 찾아왔다. 와서는 나에게 절을 하고 한 곁에 섰다. 

사리뿟따여, 한 곁에 서서 신들은 나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사왓티의 동쪽 원림에 있는 미가라마따의 강당에 머물면서 비구들에게 안의 족쇄에 묶인 사람과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에 대해서 설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중들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세존께서 자비심을 내시어 사리뿟따 존자를 방문해주십시오.’라고. 

사리뿟따여, 그 신들은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 마흔 명, 오십 명, 육십 명이 송곳 끝 하나 겨우 떨어질 정도의 좁은 장소에서 서로의 몸이 닿지 않은 채 서 있다.


사리뿟따여, ‘이 신들은 천상에서 마음을 닦았기 때문에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 마흔 명, 오십 명, 육십 명이 함께 송곳 끝 하나 겨우 떨어질 정도의 좁은 장소에서 서로의 몸이 닿지 않은 채 서 있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사리뿟따여, 그렇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리뿟따여, 그 신들이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 마흔 명, 오십 명, 육십 명이 함께 송곳 끝 하나 겨우 떨어질 정도의 좁은 장소에서 서로의 몸이 닿지 않은 채 서 있는 것은 오직 여기서 마음을 닦았기 때문이다.”


6. “사리뿟따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닦아야 한다. 

감각기능들을 고요히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리라. 감각기능들이 고요하고 마음이 고요한 자들은 몸으로 짓는 행위도 고요하고, 말로 짓는 행위도 고요하고, 마음으로 짓는 행위도 고요하다.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비구들에게 고요함의 선물을 선사하리라고 이와 같이 닦아야 한다. 


사리뿟따여, 외도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듣지 못하여 파멸한다.”


아라마단다 경(A2:4:6)

Ārāmadaṇḍ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와라나에 있는 깟다마다하의 강둑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라마단다라는 바라문이 마하깟짜야나 존자께 찾아갔다. 가서는 마하깟짜야나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바라문 아라마단다는 마하깟짜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2. “깟짜야나 존자시여,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끄샤뜨리야가 끄샤뜨리야와 싸우고, 바라문이 바라문과 싸우고, 재가자가 재가자와 싸웁니까?”

“바라문이여, 그들은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노예가 되고,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묶여있고,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빠져있고,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사로잡혀있고,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얽매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끄샤뜨리야가 끄샤뜨리야와 싸우고, 바라문이 바라문과 싸우고, 재가자가 재가자와 싸웁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그렇다면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사문이 사문과 싸웁니까?”

“바라문이여, 그들은 삿된 견해의 집착에 노예가 되어 있고, 삿된 견해의 집착에 묶여 있고, 삿된 견해의 집착에 빠져있고, 삿된 견해의 집착에 사로잡혀있고, 삿된 견해의 집착에 얽매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문과 사문이 싸웁니다.”


3. “깟짜야나 존자여,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노예가 됨과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묶임과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빠짐과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사로잡힘과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얽매임을 극복한 자가 있습니까? 

견해의 집착에 노예가 됨과 견해의 집착에 묶임과 견해의 집착에 빠짐과 견해의 집착에 사로잡힘과 견해의 집착에 얽매임을 극복한 사람이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이 세상에서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노예가 됨과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묶임과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빠짐과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사로잡힘과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얽매임을 극복한 자가 있습니다. 

견해의 집착에 노예가 됨과 견해의 집착에 묶임과 견해의 집착에 빠짐과 견해의 집착에 사로잡힘과 견해의 집착에 얽매임을 극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4. “깟짜야나 존자여,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노예가 됨,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묶임,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빠짐,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사로잡힘,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얽매임을 극복하고, 또 견해의 집착에 노예가 됨, 견해의 집착에 묶임, 견해의 집착에 빠짐, 견해의 집착에 사로잡힘, 견해의 집착에 얽매임을 극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라문이여, 동쪽 지역에 사왓티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지금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머물고 계십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노예가 됨,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묶임,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빠짐,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사로잡힘,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얽매임을 극복하셨고, 또 견해의 집착에 노예가 됨, 견해의 집착에 묶임, 견해의 집착에 빠짐, 견해의 집착에 사로잡힘, 견해의 집착에 얽매임을 극복하셨습니다.”


5.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바라문 아라마단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땅에 오른쪽 무릎을 꿇은 뒤 세존을 향해 합장을 하고 세 번 감흥어를 읊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귀의합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귀의합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귀의합니다.”


참으로 그분 세존께서는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노예가 됨,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묶임,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빠짐,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사로잡힘, 감각적 쾌락의 집착에 얽매임을 극복하셨고, 견해의 집착에 노예가 됨, 견해의 집착에 묶임, 견해의 집착에 빠짐, 견해의 집착에 사로잡힘, 견해의 집착에 얽매임을 극복하셨습니다.


경이롭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깟짜야나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깟짜야나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깐다라야나 경(A2:4:7)

Kaṇdarāy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마두라에 있는 군다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깐다라야나라는 바라문이 마하깟짜야나 존자께 찾아갔다. 가서는 마하깟짜야나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바라문 깐다라야나는 마하깟짜야나 존자께 이렇게 말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사문 깟짜야나는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반기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깟짜야나 존자가 그렇게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반기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 것은 온당하지가 않습니다.”


2.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께서는 나이 든 사람의 입장과 젊은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라문이여, 사람이 비록 나이가 들어 여든, 아흔, 백세가 되더라도 만약 그가 감각적 쾌락을 즐기고 감각적 쾌락 가운데 머물러 있고 감각적 쾌락의 불에 불타고 감각적 쾌락의 생각에 휩싸이고 감각적 쾌락을 찾아 헤매는 것에 힘을 쏟는다면 그는 어리석은 장로라 불립니다.


바라문이여, 비록 젊어 인생의 초반이고 머리카락이 검고 혈기가 왕성하더라도 만약 그가 감각적 쾌락을 즐기지 않고 감각적 쾌락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불에 불타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생각에 휩싸이지 않고 감각적 쾌락을 찾아 헤매는 것에 힘을 쏟지 않는다면 그는 현명한 장로라 불립니다.”


3.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바라문 깐다라야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젊은 비구들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였다.


“존자께서는 나이 든 어른이시고 나이 든 어른의 입장에 서 계십니다. 저는 젊은 사람이고 성숙되지 않는 자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경이롭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경이롭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깟짜야나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깟짜야나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도둑 경(A2:4:8)

Cora-sutta 

1. “비구들이여, 도둑들이 힘이 세고 왕이 힘이 약할 때, 그때 왕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거나 도시 밖으로 나가거나 혹은 변방의 지역들을 둘러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때 바라문들과 장자들도 또한 도시 안으로 들어오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밖에서 자신들의 일들을 행하는 것이 것이 쉽지 않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비구들이 힘이 세고 계를 잘 지키는 비구들이 힘이 약할 때, 그때 계를 잘 지키는 비구들은 침묵하고 승가 내에서도 침묵을 지키며 변방에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신과 사람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되게 한다.”


2. “비구들이여, 왕이 힘이 세고 도둑들이 힘이 약할 때, 그때 왕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거나 도시 밖으로 나가거나 혹은 변방들을 둘러보는 것은 쉽다. 그때 바라문들과 장자들도 또한 도시 안으로 들어오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밖에서 자신들의 일들을 행하는 것이 쉽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계를 잘 지키는 비구들이 힘이 세고 타락한 비구들이 힘이 약할 때, 그때 타락한 비구들은 침묵하고 승가 내에서도 침묵을 지키며 변방에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이로움이 되고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된다.”


닦음(수행) 경(A2:4:9)

Paṭipatti-sutta  

1. “비구들이여, 삿된 닦음은 재가자가 행하든 출가자가 행하든 둘 다 나는 칭찬하지 않는다. 삿되게 닦으면 재가자나 출가자나 삿된 닦음으로 인해 올바르고 유익한 법을 얻지 못한다.”


2. “비구들이여, 바른 닦음은 재가자가 행하든 출가자가 행하든 둘 다 나는 칭찬한다. 바르게 닦으면 재가자나 출가자나 바른 도 닦음으로 인해 올바르고 유익한 법을 얻는다.”


자구(字句) 경(A2:4:10)

Vyañjana-sutta 

1.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들은 경의 자구(字句)들을 잘못 파악하여 의미(뜻)와 법을 거스른다.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되게 한다. 이런 비구들은 악덕(惡德)을 쌓고 또한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2.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들은 경의 자구(字句)들을 바르게 파악하여 의미와 법에 따른다.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이로움이 되고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된다. 이런 비구들은 덕을 쌓고 또한 정법을 머물게 한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