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스크랩] 제22상윳따 - 제6장 속박 품(Upaya vagga. S22:53-S22:62)

수선님 2018. 4. 8. 11:50

                                  가운데 50개 경들의 묶음

                                    Majjhima-paññāsaka


제6장 속박 품

Upaya-vagga


속박 경(S22:53)

Upa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속박되면 해탈하지 못하고 속박되지 않으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물질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물질을 대상으로 하고 물질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느낌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느낌을 대상으로 하고 느낌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인식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인식을 대상으로 하고 인식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형성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형성을 대상으로 하고 형성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3.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물질과도 다르고 느낌과도 다르고 인식과도 다르고 형성과도 다른 의식이 오거나 가거나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는 것을 천명하리라.’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4.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느낌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인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형성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5. “의식이 확립되지 않고 증장하지 않으면 의도적 행위를 짓지 못하고 해탈한다. 해탈하기 때문에 평온하고  평온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갈증내지 않고 갈증 내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이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씨앗 경(S22:54)

Bīj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다섯 종류의 씨앗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뿌리로 번식하는 씨앗, 줄기로 번식하는 씨앗, 마디로 번식하는 씨앗, 싹으로 번식하는 씨앗, 다섯 번째로 종자(씨앗)로 번식하는 씨앗이다.”


3.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종류의 씨앗이 훼손되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과 햇빛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고 풍작을 가져올 수 있고 잘 심어졌지만 땅도 없고 물도 없다 하자. 그러면 이러한 다섯 종류의 씨앗이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종류의 씨앗이 훼손되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과 햇빛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고 풍작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잘 심어지지 않았으며 땅도 있고 물도 있다 하자. 그러면 이러한 다섯 종류의 씨앗이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종류의 씨앗이 훼손되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과 햇빛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고 풍작을 가져올 수 있고 잘 심어졌으며 땅도 있고 물도 있다 하자. 그러면 이러한 종류의 씨앗이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여기서 땅의 요소는 네 가지 의식의 거주처들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물의 요소는 즐김과 탐욕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다섯 종류의 씨앗은 음식과 함께 한 의식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4.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물질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물질을 대상으로 하고 물질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느낌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느낌을 대상으로 하고 느낌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인식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인식을 대상으로 하고 인식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형성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형성을 대상으로 하고 형성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5.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물질과도 다르고 느낌과도 다르고 인식과도 다르고 형성과도 다른 의식이 오거나 가거나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는 것을 천명하리라.’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6.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느낌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인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형성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7. “의식이 확립되지 않고 증장하지 않으면 의도적 행위를 짓지 못하고 해탈한다. 해탈하기 때문에 평온하고 평온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갈증 내지 않고 갈증 내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든다. ‘태어남을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감흥어 경(S22:55)

Ud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감흥어를 읊으셨다.


“‘업 지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오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업 지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에게는 다시 태어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확신하는 비구는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를 끊을 것이다.”


2.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업 지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오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업 지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에게는 다시 태어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확신하는 비구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를 자르게 됩니까?”


3.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보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여기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고(여기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여기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고(여기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4. “그는 ‘물질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인식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은 무상하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물질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은 괴로움이다.'라고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인식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물질은 형성된 것[有爲]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은 형성된 것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인식은 형성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은 형성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은 형성된 것이다.’라고 있는 그래도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물질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인식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5.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를 보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을 보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어,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를 보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을 보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어,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를 보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을 보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어,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를 보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을 보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어,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를 보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을 보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어,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자아 안에 의식이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7. “비구여, 그는 ‘물질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느낌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인식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형성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의식은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여, 그는 ‘물질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느낌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인식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형성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의식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여, 그는 ‘물질은 무아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느낌은 무아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인식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형성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의식은 무아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여, 그는 ‘물질은 형성된 것[有爲]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느낌은 형성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인식은 형성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형성은 형성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의식은 형성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여, 그는 ‘물질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느낌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인식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심리현상들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알음알이는 없어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8. “비구여, 물질이 없어지고 느낌이 없어지고 인식이 없어지고 형성이 없어지고 의식이 없어지기 때문에 ‘업 지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오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업 지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에게는 다시 태어남이 존재핮 않을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확신하는 비구는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를 자를 것이다.”


9.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확신하는 비구는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를 자를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면 즉시에 번뇌들이 멸진하게 됩니까?”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두려워한다. 

비구여,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는 ‘업 지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오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업 지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에게는 다시 태어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여,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구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업 지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오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업 지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에게는 다시 태어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0. “비구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물질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물질을 대상으로 하고 물질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느낌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느낌을 대상으로 하고 느낌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인식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인식을 대상으로 하고 인식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형성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형성을 대상으로 하고 형성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11. “비구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물질과도 다르고 느낌과도 다르고 인식과도 다르고 심리현상들과도 다른 알음알이가 오거나 가거나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는 것을 천명하리라.’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12. “비구여, 만일 비구가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여, 만일 비구가 느낌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여, 만일 비구가  인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여, 만일 비구가 형성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여, 만일 비구가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알음알이는 확립되지 않는다.”


13. “비구여, 의식이 확립되지 않고 증장되지 않으면 의도적 행위를 짓지 못하고 해탈한다. 해탈하기 때문에 평온하고 평온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갈증 내지 않고 갈증 내지 않으면 스스로 열반에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14. “비구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즉시에 번뇌들이 소멸하게 된다.


취착의 양상 경(S22:56)

Upādānaparipava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취착(집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오취온]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취착의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이다.”


3. “비구들이여, 만일 내가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와 그것의 네 가지 양상을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지 못하였다면,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내 스스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결코 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난 나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와 그것의 네 가지 양상을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기 때문에,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내 스스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천명하였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 각각에 대한 네 가지 양상이 있는가? 


나는 물질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물질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물질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道))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나는 느낌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느낌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나는 인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인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인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갈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나는 형성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형성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형성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나는 의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의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의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물질(물질적 요소)인가?

비구들이여, 네 가지 근본물질과 네 가지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 이를 일러 물질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음식이 일어나기 때문에 물질이 일어나고 음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물질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가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물질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물질을 소멸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는 자들은 바르게 닦는 자들이니, 바르게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물질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물질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느낌(감수작용)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느낌의 무리가 있나니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마노(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느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느낌이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가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느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느낌을 소멸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는 자들은 바르게 닦는 자들이니, 바르게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느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느낌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인식(지각작용)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인식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인식, 소리에 대한 인식, 냄새에 대한 인식, 맛에 대한 인식, 감촉에 대한 인식, 법(마음현상)에 대한 인식(식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인식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인식이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인식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가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인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인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는 자들은 바르게 닦는 자들이니, 바르게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인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인식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형성[行. 형성작용]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의도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의도, 소리에 대한 의도, 냄새에 대한 의도, 맛에 대한 의도, 감촉에 대한 의도, 법(마음현상)에 대한 의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형성들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형성들이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들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가 형성들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형성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형성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형성을 소멸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는 자들은 바르게 닦는 자들이니, 바르게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형성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형성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형성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의식(식별작용)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의식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의식, 소리에 대한 의식, 냄새에 대한 의식, 맛에 대한 의식, 감촉에 대한 의식, 법(마음현상)에 대한 의식(식별작용)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의식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정신∙물질이 일어나기 때문에 의식이 일어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가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의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의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는 자들은 바르게닦는 자들이니, 바르게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의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의식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일곱 가지 경우 경(S22:57)

Sattaṭṭh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경우를 잘 알고 세 가지를 면밀히 조사하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독존(獨尊)이요 삶을 완성한 최고의 인간이라 불린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일곱 가지 경우를 잘 아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물질을 꿰뚫어 알고(철저하게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위험함을 꿰뚫어 알고 물질로부터 벗어남을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느낌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위험함을 꿰뚫어 알고 느낌으로부터 벗어남을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인식을 꿰뚫어 알고 인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인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고 인식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인식의 위험함을 꿰뚫어 알고 인식으로부터 벗어남을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형성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위험함을 꿰뚫어 알고 형서으로부터 벗어남을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의식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위험함을 꿰뚫어 알고 의식으로부터 벗어남을 꿰뚫어 안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물질(물질적 요소)인가?

네 가지 근본물질과 네 가지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물질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음식이 일어나기 때문에 물질이 일어나고 음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물질이 소멸한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가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물질을 조건하여 일어나는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이 물질의 달콤함이다. 물질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이 물질의 위험함이다. 물질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고 욕탐을 제거하는 것이 물질로부터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물질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로부터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물질을 소멸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은 자들은 바르게 닦는 자들이니, 바르게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물질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물질로부터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물질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느낌(감수작용)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느낌의 무리가 있나니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느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느낌이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정도]가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느낌을 조건하여 일어나는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이 느낌의 달콤함이다. 느낌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이 느낌의 위험함이다. 느낌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고 욕탐을 제거하는 것이 느낌으로부터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은 느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으로부터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물질을 소멸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은 자들은 바르게 닦는 자들이니, 바르게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느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느낌으로부터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느낌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인식(지각작용)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인식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인식, 소리에 대한 인식, 냄새에 대한 인식, 맛에 대한 인식, 감촉에 대한 인식, 법(마음현상)에 대한 인식(식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인식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인식이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인식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가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인식을 조건하여 일어나는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이 인식의 달콤함이다. 인식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이 인식의 위험함이다. 인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고 욕탐을 제거하는 것이 인식으로부터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인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으로부터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인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은 자들은 바르게 닦는 자들이니, 바르게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인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인식으로부터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인식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형성(형성작용)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의도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의도, 소리에 대한 의도, 냄새에 대한 의도, 맛에 대한 의도, 감촉에 대한 의도, 법에 대한 의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형성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형성이 일어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가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형성을 조건하여 일어나는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이 심리현상들의 달콤함이다. 형성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이 형성의 위험함이다. 형성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고 욕탐을 제거하는 것이 심리현상들로부터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심리현상들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으로부터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형성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형성을 소멸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은 자들은 바르게 닦는 자들이니, 바르게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심리현상들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형성으로부터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형성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형성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의식(식별작용)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의식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의식, 소리에 대한 의식, 냄새에 대한 의식, 맛에 대한 의식, 감촉에 대한 의식, 법(마음현상)에 대한 의식(식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의식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정신∙물질(명색)이 일어나기 때문에 의식 일어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가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을 조건하여 일어나는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이 의식의 달콤함이다. 의식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이 의식의 위험함이다. 의식에 대한 욕탐을 길들이고 욕탐을 제거하는 것이 의식으로부터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의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으로부터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의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는 자들은 바르게 닦는 자들이니, 바르게 닦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와 같이 의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의식으로부터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의식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나니, 잘 해탈한 자들은 독존(獨尊)이요 독존인 자들은 그들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다.”


9.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일곱 가지 경우를 잘 안다.”


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세 가지를 면밀히 조사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요소[界]에 따라서 면밀히 조사하고, 감각장소[處]에 따라서 면밀히 조사하고, 연기(緣起)에 따라서 면밀히 조사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세 가지를 면밀히 조사한다.”


11.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일곱 가지 경우에 잘 알고 세 가지를 면밀히 조사하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독존(獨尊)이요 삶을 완성한 최고의 인간이라 불린다.”


정등각자 경(S22:58)

Sambudd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여래(이렇게 오신 님)∙아라한(거룩한 님)∙정등각자(바르고 원만히 깨달은 님)는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리지고 물질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정등각자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통찰지(지혜)로 해탈한[慧解脫] 비구도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물질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 그래서 그는 통찰지(지혜)로 해탈한 자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이 사리지고 느낌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정등각자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통찰지(지혜)로 해탈한[慧解脫] 비구도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느낌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 그래서 그는 통찰지(지혜)로 해탈한 자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이 사리지고 인식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정등각자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통찰지(지혜)로 해탈한[慧解脫] 비구도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인식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 그래서 그는 통찰지(지혜)로 해탈한 자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형성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이 사리지고 형성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정등각자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통찰지(지혜)로 해탈한[慧解脫] 비구도 형성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느낌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 그래서 그는 통찰지(지혜)로 해탈한 자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이 사리지고 의식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한 정등각자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통찰지(지혜)로 해탈한[慧解脫] 비구도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의식을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 그래서 그는 통찰지(지혜)로 해탈한 자라 불린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여래∙아라한∙정등각자와 통찰지로 해탈한 자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특별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밝혀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받아 지닐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4.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도(길)를 일으킨 분이고 아직 생기지 않은 도를 생기게 한 분이고 아직 설해지지 않은 도를 설한 분이고 도를 아는 분이고 도를 발견한 분이고 도를 이해하신  분이다. 그리고 지금의 제자들은 그 도를 따라가면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구족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아라한∙정등각자와 통찰지를 통한 해탈을 한 자의 차이점이고, 특별한 점이고, 다른 점이다.”


무아의 특징 경(S22:59)

Anattalakkhaṇ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아다(내가 아니다). 만일 물질이 자아라면(나라면) 이 물질은 고통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물질에 대해서 ‘나의 물질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물질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면 그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물질은 무아이기 때문에(나가 아니기 때문에) 물질은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물질에 대해서 ‘나의 물질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물질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무아다(내가 아니다). 만일 느낌이 자아라면(나라면) 이 물질은 고통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느낌에 대해서 ‘나의 느낌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느낌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면 그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느낌은 무아이기 때문에(나가 아니기 때문에) 느낌은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느낌에 대해서 ‘나의 느낌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느낌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인식은 무아다(내가 아니다). 만일 인식이 자아라면(나라면) 이 인식은 고통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식에 대해서 ‘나의 인식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인식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면 그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인식은 무아이기 때문에(나가 아니기 때문에) 인식은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인식에 대해서 ‘나의 인식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인식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형성은 무아다(내가 아니다). 만일 형성이 자아라면(나라면) 이 형성은 고통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형성에 대해서 ‘나의 형성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형성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면 그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형성은 무아이기 때문에(나가 아니기 때문에) 형성은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형성에 대해서 ‘나의 형성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형성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무아다(내가 아니다). 만일 의식이 자아라면(나라면) 이 의식은 고통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의식에 대해서 ‘나의 의식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의식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면 그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의식은 무아이기 때문에(나가 아니기 때문에) 의식은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의식에 대해서 ‘나의 의식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의식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3.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4.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건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건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건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형성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건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6.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비구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이러한 상세한 설명[授記]이 설해졌을 때 다섯 비구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마할리 경(S22:60)

Mahāl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의 큰 숲[大林]에 있는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릿차위의 마할 리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릿차위의 마할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2.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마할리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조건과 더불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것에는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조건과 더불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과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어떤 원인과 어떤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됩니까?”


“마할리여, 만일 물질에 전적으로 괴로움만이 있고 물질이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물질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물질에는 즐거움이 있고 물질은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물질에 탐닉한다. 탐닉하기 때문에 속박되고 속박되기 때문에 오염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된다.


마할리여, 만일 느낌에 전적으로 괴로움만이 있고 느낌이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느낌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느낌에는 즐거움이 있고 느낌은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느낌에 탐닉한다. 탐닉하기 때문에 속박되고 속박되기 때문에 오염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된다.


마할리여, 만일 인식에 전적으로 괴로움만이 있고 인식이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인식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인식에는 즐거움이 있고 인식은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인식에 탐닉한다. 탐닉하기 때문에 속박되고 속박되기 때문에 오염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된다.


마할리여, 만일 형성에 전적으로 괴로움만이 있고 형성이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형성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형성에는 즐거움이 있고 형성은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형성에 탐닉한다. 탐닉하기 때문에 속박되고 속박되기 때문에 오염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된다.


마할리여, 의식에 전적으로 괴로움만이 있고 의식이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의식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의식에는 즐거움이 있고 의식은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의식에 탐닉한다. 탐닉하기 때문에 속박되고 속박되기 때문에 오염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된다.”


3. “세존이시여, 그러면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과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어떤 원인과 어떤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청정하게 됩니까?”


“마할리여, 만일 물질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있고 물질이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물질에는 괴로움이 있고 물질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난다. 싫어하고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만일 느낌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있고 느낌이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느낌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느낌에는 괴로움이 있고 느낌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느낌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난다. 싫어하고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만일 인식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있고 인식이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인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인식에는 괴로움이 있고 인식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인식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난다. 싫어하고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만일 형성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있고 형성이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형성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형성에는 괴로움이 있고 형성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형성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난다. 싫어하고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의식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있고 의식이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의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의식에는 괴로움이 있고 의식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의식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난다. 싫어하고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것에는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불타오름 경(S22:61)

Ādi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물질은 불타오르고, 느낌은 불타오르고, 인식은 불타오르고, 형상은 불타오르고, 의식은 불타오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싫어하고 떠나고 느낌에 대해서도 싷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언어표현의 길 경(S22:62)

Niruttipat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현명한 비구나 거룩한 분들이 혼돈하지 않는, 과거에도 혼동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혼돈하지 않고 미래에도 혼돈하지 않게 될 결점이 없는 세 가지 언어 표현의 형식, 표명의 형식, 시설의 형식이 있다. 이 세가지란 어떤 것인가?


3. “비구들이여, 어떤 물질이든 지나가 버렸고 소멸하였고 변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있었다.’는 명칭과 ‘있었다.’라는 일반적 호칭과 ‘있었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다’는 명칭도 없고 ‘있을 것이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느낌이든 지나가 버렸고 소멸하였고 변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있었다.’는 명칭과 ‘있었다.’라는 일반적 호칭과 ‘있었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다’는 명칭도 없고 ‘있을 것이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인식이든 지나가 버렸고 소멸하였고 변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있었다.’는 명칭과 ‘있었다.’라는 일반적 호칭과 ‘있었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다’는 명칭도 없고 ‘있을 것이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형성이든 지나가 버렸고 소멸하였고 변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있었다.’는 명칭과 ‘있었다.’라는 일반적 호칭과 ‘있었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다’는 명칭도 없고 ‘있을 것이다.’는 명칭도 없다. 


바구들이여, 어떤 의식이든 지나가 버렸고 소멸하였고 변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있었다.’는 명칭과 ‘있었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었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다.’는 명칭도 없고, ‘있을 것이다.’는 명칭도 없다.”


4. “비구들이여, 어떤 물질이든 아직 생겨나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있을 것이다.’는 명칭과 ‘있을 것이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을 것이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다.’는 명칭도 없고 ‘있었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느낌이든 아직 생겨나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있을 것이다.’는 명칭과 ‘있을 것이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을 것이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다.’는 명칭도 없고 ‘있었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인식이든 아직 생겨나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있을 것이다.’는 명칭과 ‘있을 것이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을 것이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다.’는 명칭도 없고 ‘있었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형성이든 아직 생겨나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있을 것이다.’는 명칭과 ‘있을 것이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을 것이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다.’는 명칭도 없고 ‘있었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의식이든 아직 생겨나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있을 것이다.’는 명칭과 ‘있을 것이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을 것이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다.’는 명칭도 없고 ‘있었다.’는 명칭도 없다.”


5. “비구들이여, 어떤 물질이든 생겨나고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있다’는 명칭과 ‘있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었다.’는 명칭도 없고 ‘있을 것이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느낌이든 생겨나고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있다’는 명칭과 ‘있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었다.’는 명칭도 없고 ‘있을 것이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인식이든 생겨나고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있다’는 명칭과 ‘있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었다.’는 명칭도 없고 ‘있을 것이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형성이든 생겨나고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있다’는 명칭과 ‘있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었다.’는 명칭도 없고 ‘있을 것이다.’는 명칭도 없다. 


비구들이여, 어떤 의식이든 생겨나고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있다.’는 명칭과 ‘있다.’는 일반적 호칭과 ‘있다.’는 개념은 있지만, ‘있었다.’는 명칭도 없고 ‘있을 것이다.’는 명칭도 없다.”


6.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언어표현의 길, 이름붙이는 길, 개념의 길이 있나니 이것은 거부되지 않는 것이며, 과거의 [정등각자들에 의해서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서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7. “비구들이여, 욱깔라 지역 사람들과 왓사와 반냐 사람들은 원인 없음을 말하는 자(무인론자)들이요 업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도덕부정론자)들이요 아무 것도 없음을 말하는 자(허무론자)들이다. 그들조차도 이러한 세 가지 언어표현의 길, 이름붙이는 길, 개념의 길은 비난받지 않아야 하고 공박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들은 비방과 공격과 논박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제6장 속박 품이 끝났다. 여섯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속박 ② 씨앗 ③ 감흥어 ④ 취착의 양상 ⑤ 일곱 가지 경우 ⑥ 정등각자 ⑦ 무아의 특징 

⑧ 마할리 ⑨ 불타오름 ⑩ 언어표현의 길이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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