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스크랩] 제22상윳따 - 제5장 자신을 섬으로 품(Attadipa vagga. S22:43-S22:52)

수선님 2018. 4. 8. 11:50

제5장 자신을 섬으로 삼음 품

Attadīpa-vagga


자신을 섬으로 삼음 경(S22:43)

Attadīp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비구들이여,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 자들은 ‘우울, 슬픔, 근심, 절망,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은 무엇으로부터 생기고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라고 그 근원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은 무엇으로부터 생기고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거룩한 분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 물질을 자아라고 여기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진 것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거룩한 분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 느낌을 자아라고 여기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느낌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진 것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거룩한 분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 인식(지각)을 자아라고 여기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진 것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거룩한 분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 형성을 자아라고 여기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진 것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거룩한 분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 의식을 자아라고 여기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고, 의시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진 것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나 물질의 무상함과 변화와 사라짐과 소멸을 체득하여 ‘과거의 물질과 지금의 물질, 그 모든 물질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사람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끊어진다. 이런 것들을 끊어 버리면 갈증내지 않는다. 갈증내지 않으면 행복하게 머문다. 행복하게 머무는 사람을 '오로지 열반으로 향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느낌의 무상함과 변화와 사라짐과 소멸을 체득하여 ‘과거의 느낌과 현재의 느낌, 그 모든 느낌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사람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끊어진다. 이런 것들을 끊어 버리면 갈증내지 않는다. 갈증내지 않으면 행복하게 머문다. 행복하게 머무는 사람을 '오로지 열반으로 향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인식의 무상함과 변화와 사라짐과 소멸을 체득하여 ‘과거의 인식과 현재의 인식, 그 모든 인식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사람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끊어진다. 이런 것들을 끊어 버리면 갈증내지 않는다. 갈증내지 않으면 행복하게 머문다. 행복하게 머무는 사람을 '오로지 열반으로 향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형성의 무상함과 변화와 사라짐과 소멸을 체득하여 ‘과거의 형성과 현재의 형성, 그 모든 형성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사람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끊어진다. 이런 것들을 끊어 버리면 갈증내지 않는다. 갈증내지 않으면 행복하게 머문다. 행복하게 머무는 사람을 '오로지 열반으로 향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의식의 무상함과 변화와 사라짐과 소멸을 체득하여 ‘과거의 의식과 현재의 의식, 그 모든 의식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사람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끊어진다. 이런 것들을 끊어 버리면 갈증내지 않는다. 갈증내지 않으면 행복하게 머문다. 행복하게 머무는 사람을 '오로지 열반으로 향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주) 물질(色) = 물질적 요소 

    느낌(受) = 감수작용, 

    인식(想) = 지각작용, 

    형성(行) = 형성작용, 

    의식(識) = 식별작용


도(수행) 닦음 경(S22:44)

Paṭipad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자기 존재[有身]의 일어남으로 인도하는 길과 자기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설하리라.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자기 존재[有身]의 일어남으로 인도하는 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거룩한 분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 물질을 자아(나)라고 간주하고(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거룩한 분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 느낌을 자아(나)라고 간주하고(관찰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거룩한 분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 인식을 자아(나)라고 간주하고(관찰하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거룩한 분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그는 형성을 자아(나)라고 간주하고(관찰하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거룩한 분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 의식을 자아(나)라고 간주하고(관찰하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간주하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간주하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간주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자기 존재[有身]의 일어남으로 인도하는 길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자기 존재의 일어남으로 인도하는 길이란 괴로움의 일어남으로 인도하는 관찰이라는 것이 그 뜻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자기 존재[有身]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거룩한 분을 보고 거룩한 법을 알고 거룩한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분을 보고 참된 분의 법을 알고 참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그는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간주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거룩한 분을 보고 거룩한 법을 알고 거룩한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분을 보고 참된 분의 법을 알고 참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그는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거룩한 분을 보고 거룩한 법을 알고 거룩한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분을 보고 참된 분의 법을 알고 참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그는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거룩한 분을 보고 거룩한 법을 알고 거룩한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분을 보고 참된 분의 법을 알고 참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그는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거룩한 분을 보고 거룩한 법을 알고 거룩한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분을 보고 참된 분의 법을 알고 참된 분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그는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자기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자기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관찰이라는 것이 그 뜻이다.”


무상함 경1(S22:45)

Aniccat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지혜)로 보면 마음은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한다(벗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면 마음은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한다(벗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면 마음은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한다(벗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면 마음은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한다(벗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면 마음은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한다(벗어난다). ”


3.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의 마음이 물질의 요소로부터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하고(벗어나고), 비구의 마음이 느낌의 요소로부터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하고(벗어나고), 인식의 요소로부터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하고(벗어나고),인식의 요소로부터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하고(벗어나고), 의식의 요소로부터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하고(벗어나고), 해탈하기 때문에 평온에 머물고 , 평온에 머물기 때문에 행복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갈증내지 않고, 갈증내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든다. 

그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무상함 경2(A22:4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인식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형성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면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지 않게 된다. 과거에 대한 견해가 없으면 미래에 대한 견해도 가지지 않게 된다. 미래에 대한 견해가 없으면 고집스러운 집착이 없다. 고집스러운 집착이 없으면 물질로부터  마음은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한다(벗어난다). 해탈하기 때문에 안주하고 안주하기 때문에 만족하고 만족하기 때문에 갈증내지 않고 갈증내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든다. 
그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관찰 경(D22:47)

Samanupassan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아를 관찰하는 자들은 모두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를 자아로 관찰하는 것이지 그 외 다른 것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보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모르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모르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이와 같이 하여 사견을 통한 관찰과 ‘나는 있다.’는 사량분별(집착하고 헤아리고 추론한다)이 그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3.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생기면 눈의 감각기능, 귀의 감각기능, 코의 감각기능, 혀의 감각기능, 몸의 감각기능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기능들이 출현한다.


비구들이여, 거기에는 마노[意.마음]가 있고 [마노의 대상인] 법(마음현상)들이 있고 무명의 요소가 있다. 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닿은 배우지 못한 범부는 ‘나는 있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이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있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물질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물질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인식을 가질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한다.”


4. “비구들이여, 비록 다섯 가지 감각기능들이 바로 거기에 남아있지만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들에 대한 무명을 제거하고 명지(明知)가 일어난다. 

그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있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이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있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물질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물질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인식을 가질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무더기(존재의 다발) 경(S22:48)

Khand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와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를 설하리라.(다섯가지 존재의 다발과 다섯가지 집착된 존재의 다발)

註) 다섯가지 존재의 다발(Panca khandha.오온), 다섯가지 집착된 존재의 다발(pancupadanak khandha. 오취온)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든 과거의 것이건(속하든)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이와 같은 것을 물질의 무더기[色蘊]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든 과거의 것이건(속하든)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이와 같은 것을 느낌의 무더기[色蘊]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인식(지각)이든 과거의 것이건(속하든)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이와 같은 것을 인식의 무더기[色蘊]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형성이든  과거의 것이건(속하든)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이와 같은 것을 형성의 무더기[色蘊]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든 과거의 것이건(속하든)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이와 같은 것을 의식의 무더기[色蘊]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다섯 가지 무더기라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든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번뇌와 함께 하고 취착되기 마련인 것을 일러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色蘊]라 한다

(번뇌를 속성으로 하고 집착된 것이면 무엇이든지 집착된 물질의 무더기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든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번뇌와 함께 하고 취착되기 마련인 것을 일러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라 한다 

(번뇌를 속성으로 하고 집착된 것이면 무엇이든지 집착된 느낌의 무더기라 한다).


바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든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번뇌와 함께 하고 취착되기 마련인 것을 일러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라 한다 
(번뇌를 속성으로 하고 집착된 것이면 무엇이든지 집착된 인식의 무더기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형성이든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번뇌와 함께 하고 취착되기 마련인 것을 일러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色蘊]라 한다 
(번뇌를 속성으로 하고 집착된 것이면 무엇이든지 집착된 형성의 무더기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든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번뇌와 함께 하고 취착되기 마련인 것을 일러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무더기[色蘊]라 한다.
(번뇌를 속성으로 하고 집착된 것이면 무엇이든지 집착된 의식의 무더기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라 한다.”


소나 경1(S22:49)

Soṇ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장자의 아들 소나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장자의 아들 소나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소나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물질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열등하다.’라고 관찰하는(여긴다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소나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느낌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열등하다.’라고 관찰하는(여긴다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인식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열등하다.’라고 관찰하는(여긴다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형성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열등하다.’라고 관찰하는(여긴다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의식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열등하다.’라고 관찰하는(여긴다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3.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물질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도 관찰하지(여기지) 않고, ‘나는 동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고, ‘나는 열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느낌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도 관찰하지(여기지) 않고, ‘나는 동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고, ‘나는 열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인식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도 관찰하지(여기지) 않고, ‘나는 동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고, ‘나는 열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형성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도 관찰하지(여기지) 않고, ‘나는 동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고, ‘나는 열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의식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도 관찰하지(여기지) 않고, ‘나는 동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고, ‘나는 열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4.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운 것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운 것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운 것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운 것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운 것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5. “소나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관찰하여야 한다).


소나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관찰하여야 한다).


소나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인식(지각)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관찰하여야 한다).


소나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형성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관찰하여야 한다).


소나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관찰하여야 한다).


6. “소나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 하여 떠나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소나 경2(S22:5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장자의 아들 소나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장자의 아들 소나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물질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철저히 알지 못하고)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인식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인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인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수 없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수 없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지 못한다.”


3.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물질을 꿰뚫어 알고(철저히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고, 

느낌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고, 

인식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고, 

형성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고, 

의식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아는 사람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만하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만하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즐김의 멸진(환락의 소멸) 경1(S22:51)

Nandikkha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한 물질을 무상하다고 보면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그가 바르게 보면 싫어하고 떠난다. 즐김(환락)이 소멸하기 때문에 탐욕이 소멸하고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즐김이 소멸한다. 즐김과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은 해탈하며 이를 두고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한 느낌을 무상하다고 보면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그가 바르게 보면 싫어하고 떠난다. 즐김이 소멸하기 때문에 탐욕이 소멸하고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즐김이 소멸한다. 즐김과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은 해탈하며 이를 두고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한 인식을 무상하다고 보면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그가 바르게 보면 싫어하고 떠난다. 즐김이 소멸하기 때문에 탐욕이 소멸하고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즐김이 소멸한다. 즐김과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은 해탈하며 이를 두고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한 형성을 무상하다고 보면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그가 바르게 보면 싫어하고 떠난다. 즐김이 소멸하기 때문에 탐욕이 소멸하고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즐김이 소멸한다. 즐김과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은 해탈하며 이를 두고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한 의식을 무상하다고 보면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그가 바르게 보면 싫어하고 떠난다. 즐김이 소멸하기 때문에 탐욕이 소멸하고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즐김이 소멸한다. 즐김과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은 해탈하며 이를 두고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


즐김의 멸진 경2(S22:5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물질에 대해서 지혜롭게 마음에 사유하여 물질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여실히) 관찰하라. 

비구들이여, 물질에 대해서 지혜롭게 마음에 사유하여 물질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난다. 즐김(환락)이 소멸하기 때문에 탐욕이 소멸하고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즐김이 소멸한다. 즐김과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은 해탈하며 이를 두고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느낌에 대해서 지혜롭게 마음에 사유하여 느낌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여실히) 관찰하라. 

비구들이여, 느낌에 대해서 지혜롭게 마음에 사유하여 느낌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느낌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난다. 즐김이 소멸하기 때문에 탐욕이 소멸하고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즐김이 소멸한다. 즐김과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은 해탈하며 이를 두고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인식에 대해서 지혜롭게 마음에 사유하여 인식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여실히) 관찰하라. 

비구들이여, 인식에 대해서 지혜롭게 마음에 사유하여 인식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인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난다. 즐김이 소멸하기 때문에 탐욕이 소멸하고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즐김이 소멸한다. 즐김과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은 해탈하며 이를 두고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형성에 대해서 지혜롭게 마음에 사유하여 형성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여실히) 관찰하라. 

비구들이여, 형성에 대해서 지혜롭게 마음에 사유하여 형성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형성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난다. 즐김이 소멸하기 때문에 탐욕이 소멸하고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즐김이 소멸한다. 즐김과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은 해탈하며 이를 두고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의식에 대해서 지혜롭게 마음에 사유하여 형성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여실히) 관찰하라. 

비구들이여, 형성에 대해서 지혜롭게 마음에 사유하여 형성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형성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난다. 즐김이 소멸하기 때문에 탐욕이 소멸하고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즐김이 소멸한다. 즐김과 탐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은 해탈하며 이를 두고 원만하게 잘 해탈하였다고 한다." 



제5장 자신을 섬으로 삼음 품이 끝났다. 다섯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자신을 섬으로 삼음 ② 도 닦음 ③ ~ ④ 무상함 ⑤ 관찰 ⑥ 무더기[蘊] ⑦ ~ ⑧ 소나 두 가지 

⑨ ~ ⑩ 즐김의 소멸이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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