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스크랩] 제22상윳따 - 제15장 견해 품(Ditthi vagga. S22:150-S22:159)

수선님 2018. 4. 8. 11:53

                                        제15장 견해 품

                                         Diṭṭhi-vagga

  

내적인 것 경(S22:150)

Ajjha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집착.갈애)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 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새기고 기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비구들이여, 물질(물질적 요소)이 있을 때 물질을 취착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발생한다). 

느낌(감수작용)이 있을 때 느낌을 취착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인식(지각작용)이 있을 때 인식을 취착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형성(형성작용)이 있을 때 형성을 취착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의식(식별작용)이 있을 때 의식을 취착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면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것은 나의 것 경(S22:151)

Etaṁmam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집착)하고 무엇을 천착(사로잡혀, 구속되어)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 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새기고 기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물질을 취착하고 물질을 천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느낌이 있을 때 느낌에 취착하고 느낌에 천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인식이 있을 때 인식에 취착하고 인식에 천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형성이 있을 때 형성을 취착하고 형성을 천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의식이 있을 때 의식을 취착하고 의식을 천착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면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 자아 경(S22:152)

Soatt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穿鑿)하여 ‘이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 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새기고 기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취착하고 물질을 천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취착하고 느낌을 천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취착하고 인식을 천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취착하고 형성을 천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취착하고 의식을 천착하여 ‘이 자아가 바로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 데도 ‘이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이 자아가 바로 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면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나의 존재는 있지 않음 경(S22:153)

Nocamesiy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穿鑿)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 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새기고 기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취착하고 물질을 천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취착하고 느낌을 천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취착하고 인식을 천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취착하고 형성을 천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취착하고 의식을 천착하여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면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삿된 견해 경(S22:154)

Micchādiṭṭh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穿鑿)하여 삿된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 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새기고 기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취착하고 물질을 천착하여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취착하고 느낌을 천착하여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취착하고 인식을 천착하여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취착하고 형성을 천착하여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의식이 있을 때, 의식을 취착하고 의식을 천착하여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면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유신견 경(S22:155)

Sakkāyadiṭṭh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穿鑿)하여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有身見]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 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새기고 기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취착하고 물질을 천착하여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有身見]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취착하고 느낌을 천착하여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有身見]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그리고 인식을 취착하고 인식을 천착하여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有身見]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취착하고 형성을 천착하여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有身見]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취착하고 의식을 천착하여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삿된 견해[유신견]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삿된 견해[有身見]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삿된 견해[有身見]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삿된 견해[有身見]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삿된 견해[有身見]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삿된 견해[有身見]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면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자아에 대한 견해 경(S22:156)

Attānudiṭṭh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穿鑿)하여 자아에 대한 견해가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 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새기고 기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취착하고 물질을 천착하여 자아에 대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취착하고 느낌을 천착하여 자아에 대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취착하고 인식을 천착하여 자아에 대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취착하고 형성을 천착하여 자아에 대한 견해가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있을 때, 의식을 취착하고 의식을 천착하여 자아에 대한 삿된 견해가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자아에 대한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자아에 대한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자아에 대한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자아에 대한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자아에 대한 삿된 견해가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면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천착(穿鑿) 경1(S22:157)

Abhinives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穿鑿)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 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새기고 기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취착하고 물질을 천착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난다. 

느낌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취착하고 느낌을 천착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난다. 

인식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취착하고 인식을 천착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난다. 

형성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취착하고 형성을 천착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난다. 

의식이 있을 때, 의식을 취착하고 의식을 천착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족쇄와 천착과 속박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면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천착 경2(S22:15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穿鑿)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 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새기고 기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비구들이여, 물질(물질적 요소)이 있을 때, 그리고 물질을 취착하고 물질을 천착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난다. 

느낌(감수작용)이 있을 때, 그리고 느낌을 취착하고 느낌을 천착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난다. 

인식(지각작용)이 있을 때, 그리고 인식을 취착하고 인식을 천착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난다. 

형성(형성작용)이 있을 때, 그리고 형성을 취착하고 형성을 천착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난다. 

의식(식별작용)이 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취착하고 의식을 천착하여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가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족쇄와 천착과 속박과 탐착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면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아난다 경(S22:159)

Ānand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3.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홀로 머물며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수행하며 지내고자 합니다.”


4. “아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5.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형성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6.  “아난다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면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제15장 견해 품이 끝났다. 열다섯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내적인 것 ② 이것은 나의 것 ③ 이 자아 ④ 나의 존재는 있지 않음 ⑤ 삿된 견해 ⑥ 유신견 

⑦ 자아에 대한 견해 ⑧ ~ ⑨ 천착 ⑩ 아난다이다. 



마지막 50개 경들의 묶음이 끝났다. 여기에 포함된 품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구분 ② 설법자 ③ 무명 ④ 뜨거운 불더미 ⑤ 견해이다.


무더기[蘊] 상윳따(S22)가 끝났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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