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스크랩] 제23상윳따 - 라다 상윳따(Radha samyutta) - 제1장 첫번째 품(Pathama vagga. S23:1-S23:10)

수선님 2018. 4. 8. 11:55

                                         제23주제(S23)

                                    라다 상윳따 (Rādha-saṁyutta)


제1장 첫 번째 품

Pathama-vagga


마라 경(S23:1)

Mār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마라, 마라’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마라입니까?”


4. “라다여, 물질이 있을 때 마라가 있고 죽이는 자가 있고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다. 라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물질을 마라라 보고 죽이는 자라 보고 죽임을 당하는 자라 보고 병이라고 보고 종기라 보고 쇠살이라고 보고 지긋지긋한 통증이라 봐야 한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바르게 보는 것이다.


라다여, 느낌이 있을 때 마라가 있고 죽이는 자가 있고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다. 라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느낌을 마라라 보고 죽이는 자라 보고 죽임을 당하는 자라 보고 병이라고 보고 종기라 보고 쇠살이라고 보고 지긋지긋한 통증이라 봐야 한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바르게 보는 것이다.


라다여, 인식이 있을 때 마라가 있고 죽이는 자가 있고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다. 라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인식을 마라라 보고 죽이는 자라 보고 죽임을 당하는 자라 보고 병이라고 보고 종기라 보고 쇠살이라고 보고 지긋지긋한 통증이라 봐야 한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바르게 보는 것이다.

라다여, 형성이 있을 때 마라가 있고 죽이는 자가 있고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다. 라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형성을 마라라 보고 죽이는 자라 보고 죽임을 당하는 자라 보고 병이라고 보고 종기라 보고 쇠살이라고 보고 지긋지긋한 통증이라 봐야 한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바르게 보는 것이다.

라다여, 의식이 있을 때 죽이는 자가 있고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다. 라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의식을 마라라 보고 죽이는 자라 보고 죽임을 당하는 자라 보고 병이라 보고 종기라 보고 쇠살이라 보고 지긋지긋한 통증이라 봐야 한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바르게 보는 사람이다.


5. “세존이시여, 그런데 바르게 보는 것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라다여, 바르게 보는 것은 염오(싫어하여 떠남)를 위함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염오는 무엇을 위함입니까?”

“라다여, 염오는 탐욕의 사라짐[離慾]을 위함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탐욕의 사라짐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라다여, 탐욕의 사라짐은 해탈을 위함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해탈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라다여, 해탈은 열반을 위함이다.”


6. “세존이시여, 그러면 열반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라다여, 그대는 질문의 범위를 넘어서 버렸다. 그대는 질문의 한계를 잡지 못하였구나. 라다여, 청정범행을 닦는 것은 열반으로 귀결되고 열반을 궁극으로 하고 열반으로 완결되기 때문이다.”


중생 경(S23:2)

Sa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중생, 중생’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중생입니까?”

“라다여, 물질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가 있나니, 거기에 붙고 거기에 달라붙는다고 해서 중생이라 한다. 

라다여, 느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가 있나니, 거기에 붙고 거기에 달라붙는다고 해서 중생이라 한다. 인식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가 있나니, 거기에 붙고 거기에 달라붙는다고 해서 중생이라 한다. 

라다여, 형성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가 있나니, 거기에 붙고 거기에 달라붙는다고 해서 중생이라 한다. 

라다여, 의식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가 있나니, 거기에 붙고 거기에 달라붙는다고 해서 중생이라고 한다.”


4. “라다여, 예를 들면 사내아이들이나 여자아이들이 모래성을 지으면서 노는 것과 같다. 그들이 모래성에 대해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욕구를 여의지 못하고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열기를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는 한 그들은 모래성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으로 장난치고 귀하게 여기고 내 것으로 삼는다.


라다여, 그러나 사내아이들이나 여자아이들이 모래성에 대해서 탐욕을 여의고 욕구를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열기를 여의고 갈애를 여의면 그들은 모래성을 손이나 발로 뭉개버리고 흩어버리고 부숴버리고 놀이를 끝내버린다.”


5. “라다여, 그와 같이 그대들도 물질을 뭉개버리고 흩어버리고 부숴버리고 놀이를 끝내버리고 갈애의 소멸을 위해서 수행을 하도록 하라. 

라다여, 느낌을 뭉개버리고 흩어버리고 부숴버리고 놀이를 끝내버리고 갈애의 소멸을 위해서 수행을 하도록 하라. 

라다여, 인식을 뭉개버리고 흩어버리고 부숴버리고 놀이를 끝내버리고 갈애의 소멸을 위해서 수행을 하도록 하라. 

라다여, 형성을 뭉개버리고 흩어버리고 부숴버리고 놀이를 끝내버리고 갈애의 소멸을 위해서 수행을 하도록 하라. 

라다여, 의식을 뭉개버리고 흩어버리고 부셔버리고 놀이를 끝내버리고 갈애를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을 하도록 하라. 


라다여, 갈애의 소멸이 바로 열반이기 때문이다.”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 경(S23:3)

Bhavanett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의 소멸,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의 소멸’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이고, 어떤 것이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의 소멸입니까?”


“라다여, 물질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일러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이라 하고, 이들의 소멸을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의 소멸이라 한다. 


라다여, 느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일러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이라 하고, 이들의 소멸을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의 소멸이라 한다. 


라다여, 인식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일러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이라 하고, 이들의 소멸을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의 소멸이라 한다. 


라다여, 형성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일러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이라 하고, 이들의 소멸을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의 소멸이라 한다. 


라다여, 의식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일러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이라 하고, 이들의 소멸을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의 소멸이라 한다.”


통달해서 알아야 함 경(S23:4)

Pariññey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다여, 그대에게 통달해서 알아야 할 법들과 통달한 지혜와 통달해서 아는 자에 대해서 설하리니 그것을 들어라. 잘 듣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여라.”


3. “라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통달해서 알아야 할 법들인가?

라다여, 물질은 통달해서 알아야 할 법이다. 

라다여, 느낌은 통달해서 알아야 할 법이다. 

라다여, 인식은 통달해서 알아야 할 법이다. 

라다여, 형성은 통달해서 알아야 할 법이다. 

라다여, 의식은 통달해서 알아야 할 법이다.

라다여, 이를 일러 통달해서 알아야 할 법들이라 한다.


라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통달한 지혜인가?

탐욕이 다함, 성냄이 다함, 어리석음이 다함이다.

라다여, 이를 일러 통달한 지혜라 한다.


라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통달해서 아는 사람인가?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족성을 가진 아라한이라는 것이 그에 대한 대답이다.

라다여, 이를 일러 통달해서 아는 사람이라 한다.”


사문 경1(S23:5)

Samaṇ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라다여,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이다.”


4. “라다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러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위험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벗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수 없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수 없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지 (증명하지)못한다.”


5. “라다여, 그러나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러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위험함을 꿰뚫어 알고, 벗어남을 꿰뚫어 아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물이라 불릴 만하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만하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사문 경2(S23: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라다여,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이다.”


4. “라다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러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위험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벗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수 없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수 없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지 (증명하지)못한다.”


5. “라다여, 그러나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러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위험함을 꿰뚫어 알고, 벗어남을 꿰뚫어 아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물이라 불릴 만하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만하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흐름에 든 자[預流者] 경(S23:7)

Sotāpan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라다여,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의식의 무더기이다.”


4. “라다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러한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나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아라한 경(S23:8)

Arhan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라다여,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의식의 무더기이다.”


4. “라다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러한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취착 없이 해탈한다. 라다여, 이를 일러 비구는 아라한이고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고 한다.”


욕구를 버림 경1(S23:9)

Chandappah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라다여, 물질에 대한 욕구와 탐욕과 즐김과 갈애를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 물질은 버려질 것이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될 것이다.


라다여, 느낌에 대한 욕구와 탐욕과 즐김과 갈애를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 느낌은 버려질 것이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될 것이다.


라다여, 인식에 대한 욕구와 탐욕과 즐김과 갈애를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 인식은 버려질 것이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될 것이다.


라다여, 형성에 대한 욕구와 탐욕과 즐김과 갈애를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 형성은 버려질 것이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될 것이다.


라다여, 의식에 대한 욕구와 탐욕과 즐김과 갈애를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 의식은 버려질 것이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될 것이다.”


욕구를 버림 경2(S23:1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라다여, 물질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 물질은 버려질 것이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될 것이다.


라다여, 느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 느낌은 버려질 것이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될 것이다. 


라다여, 인식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 인식은 버려질 것이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될 것이다. 


라다여, 형성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 형성은 버려질 것이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될 것이다. 


라다여, 의식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버려라. 그렇게 하면 그 의식은 버려질 것이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될 것이다.”



제1장 첫 번째 품이 끝났다. 첫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마라 ② 중생 ③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 ④ 통달해서 알아야 함 ⑤ ~ ⑥ 사문 ⑦ 흐름에 든 자 

⑧ 아라한 ⑨ ~ ⑩ 욕구를 버림이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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