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 니까야(증일)

셋의 모음 - 제8장 아난다 품(A3:71-A3:80. Ānanda-vagga)

수선님 2018. 4. 8. 12:17

                            제8장 아난다 품

                                    Ānanda-vagga

 

찬나 경(A3:71)

Chan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찬나 유행승이 아난다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찬나 유행승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여, 그대들도 탐욕의 제거를 천명하고 성냄의 제거를 천명하고 어리석음의 제거를 천명합니다. 

아난다 존자여, 우리도 역시 욕망의 제거를 천명하고 성냄의 제거를 천명하고 어리석음의 제거를 천명합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러면 그대들은 욕망에서 어떠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욕망의 제거를 천명합니까? 

성냄에서 어떠한 위험(재난)을 보기 때문에 성냄의 제거를 천명합니까? 

어리석음에서 어떠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어리석음의 제거를 천명합니까?”


2. “찬나여, 탐욕에 물들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정신이 빠진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욕망을 제거한 자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습니다.


찬나여, 탐욕에 물들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정신 빠진 사람은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합니다. 

그러나 욕망을 제거한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찬나여, 탐욕에 물들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정신이 빠진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탐욕을 제거한 자는 자기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찬나여, 탐욕은 어둠을 만들고 눈을 없애버리고 무지를 만들고 통찰지를 소멸시키고 곤혹스러움에 빠지게 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3. "찬나여, 성내고 성냄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정신이 빠진 사람은 성냄에 물들고 성냄에 사로잡힌 정신이 빠진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성냄을 제거한 자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습니다.


찬나여, 성냄에 물들고 성냄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정신 빠진 사람은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합니다. 

그러나 성냄을 제거한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찬나여, 성냄에 물들고 성냄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정신이 빠진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냄을 제거한 자는 자기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찬나여, 성냄은 어둠을 만들고 눈을 없애버리고 무지를 만들고 통찰지를 소멸시키고 곤혹스러움에 빠지게 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4. "찬나여, 어리석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정신이 빠진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음을 제거한 자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습니다.


찬나여, 어리석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정신 빠진 사람은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음을 제거한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찬나여, 어리석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정신이 빠진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음을 제거한 자는 자기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찬나여, 어리석음은 어둠을 만들고 눈을 없애버리고 무지를 만들고 통찰지를 소멸시키고 곤혹스러움에 빠지게 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찬나여, 우리는 탐욕에서 이러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욕망의 제거를 천명합니다. 

찬나여, 성냄에서 이러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성냄의 제거를 천명합니다. 

찬나여, 어리석음에서 이러한 위험을 보기 때문에 어리석음의 제거를 천명합니다.”


5. “아난다 존자여, 그러면 이러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기 위한 법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찬나여, 이러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기 위한 법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이러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기 위한 법이고 닦음입니까?

“찬나여,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성스러운 바른 길[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찬나여, 이것이 그러한 욕망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기 위한 법이고 닦음입니다.”

“아난다 존자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기 위한 이러한 법은 참으로 경사로운 것이고 이러한 닦음은 참으로 경사로운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여, 참으로 그대들은 방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아지와까 경(A3:72)

Ājīva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지와까의 제자인 어떤 장자가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지와까의 제자인 어떤 장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다 존자시여, 어느 분들의 법이 잘 설해졌으며 어느 분들이 세상에서 잘 법을 닦으며 어느 분들이 세상에서 잘 가신 분[善逝]입니까?”

“장자여, 그렇다면 이제 그대에게 다시 물어 보리니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보십시오.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탐욕(욕망)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고 성냄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고 어리석음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법은 잘 설해진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난다 존자시여, 욕망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고 성냄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고 어리석음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는 분들의 법은 잘 설해진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2.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욕망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고 성냄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고 어리석음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잘 법을 닦는 분들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난다 존자시여, 욕망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고 성냄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고 어리석음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는 분들은 세상에서 잘 법을 닦는 분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3.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욕망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으며, 성냄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으며, 어리석음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잘 가신 분[善逝]들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난다 존자시여, 욕망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으며, 성냄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으며, 어리석음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분들은 세상에서 잘 가신 분들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4. “장자여, 그대는 ‘존자시여, 욕망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고 성냄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고 어리석음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는 분들의 법은 잘 설해진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대는 ‘존자시여, 욕망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고 성냄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고 어리석음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는 분들은 세상에서 잘 도를 닦는 분들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대는 ‘존자시여, 욕망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으며, 성냄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으며, 어리석음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분들은 세상에서 잘 가신 분들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존자시여. 참으로 자신의 법을 격찬하지도 않고 남의 법을 무시하지도 않으면서 적재적소에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질문에 대한 의미를 분명하게 설해주셨으며 자기 자신은 드러내지도 않으셨습니다.”


5. “아난다 존자시여, 존자들께서는 욕망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고 성냄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고 어리석음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설하십니다. 존자들의 법은 잘 설해진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존자들께서는 욕망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고 성냄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고 어리석음의 제거를 위해서 법을 닦습니다. 존자들은 세상에서 잘 법을 닦는 분들입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존자들께서는 욕망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으며, 성냄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으며, 어리석음이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분들입니다. 존자들은 세상에서 잘 가신 분[善逝]들입니다.”


6. “경이롭습니다,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아난다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마하나마 경(A3:73)

Sak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숲에 머물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병이 나아 회복되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무렵 삭까족 마하나마가 세존께 다가가서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삼매에 든 자의 지혜를 나는 인정하지 삼매에 들지 않은 자의 지혜는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오랫동안 법을 설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삼매가 먼저 있고 지혜가 뒤에 있습니까? 아니면 지혜가 먼저 있고 삼매가 뒤에 있습니까?”


2.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존께서는 병이 나아 회복되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 너무 심오한 질문을 드리는구나. 그러니 내가 삭까족 마하나마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법을 설해주어야겠다.’

아난다 존자는 삭까족 마하나마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한 쪽에 가서 이와 같이 말했다.


3. “마하나마여, 세존께서는 유학의 계도 말씀하셨고 무학(아라한)의 계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유학의 삼매도 말씀하셨고 무학의 삼매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유학의 통찰지도 말씀하셨고 무학의 통찰지도 말씀하셨습니다.”


4. “마하나마여, 그러면 어떤 것이 유학의 계입니까?

마하나마여, 여기 비구는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를 구족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뭅니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닦습니다. 

마하나마여, 이것이 유학의 계입니다.


5. 마하나마여, 그러면 어떤 것이 유학의 삼매입니까?

마하나마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마하나마여, 이것이 유학의 삼매입니다.”


6. “마하나마여, 그러면 어떤 것이 유학의 통찰지입니까?

마하나마여, 여기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마하나마여, 이것이 유학의 통찰지입니다.”


7. “마하나마여,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하고 이와 같이 삼매를 구족하고 이와 같이 통찰지를 구족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


마하나마여,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유학의 계도 말씀하셨고 무학의(아라한)의 계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유학의 삼매도 말씀하셨고 무학의 삼매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유학의 통찰지도 말씀하셨고 무학의 통찰지도 말씀하셨습니다.”


니간타 경(A3:74)

Nigaṇṭ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릿차위족 아바야와 릿차위족 빤디따꾸마라가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릿차위족 아바야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아난다 존자이시여, 니간타 나따뿟따 일체를 아는 자[一切知者]요 일체를 보는 자[一切見者]입니다. 그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지와 견을 선언합니다. ‘나는 가고 서고 자고 깰 때에 언제나 한결같은 지와 견이 확립되어 있다.’라고. 

아난다 존자이시여, 그는 오래된 업들은 고행으로 끝을 내고 새로운 업들은 더 이상 짓지 않기 때문에 조건을 제거한다. 이와 같이 업이 소멸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소멸하고, 괴로움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도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일체 괴로움이 멸절할 것이다. 현재에서 증명되는(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오염원들을 부수는 청정을 통해서 윤회를 건너게 된다고 합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 “아바야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오염원들을 부수는 청정을 세 가지로 바르게 설하셨나니, 그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것이 셋인가요?


아바야여, 여기 비구는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을 구족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뭅니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닦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오래된 업은 끝을 냅니다. 

이것이 현재에서 증병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바야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하여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오래된 업을 끝냅니다. 이것이 현재에서 증병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바야여, 이런 비구는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하고 이와 같이 삼매를 구족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아라한)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오래된 업을 끝을 냅니다. 이것이 현재에서 증병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바야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서는 오염원들을 부수는 청정을 이와 같이 세 가지로 바르게 설하셨나니, 그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3. 이렇게 말하자 릿차위족 빤디따꾸마라는 릿차위족 아바야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바야여, 그런데 그대는 왜 아난다 존자의 좋은 말씀을 좋은 말씀이라고 함께 기뻐하지 않습니까?”

“빤디따꾸마라여, 내가 어찌 아난다 존자의 좋은 말씀을 좋은 말씀이라고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아난다 존자의 좋은 말씀을 좋은 말씀이라고 함께 기뻐하지 않는 자는 그의 목이 떨어질 것입니다.”


격려해야 함 경(A3:75)

Samādapetabb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가 연민심을 가지고 있고 그대의 말이라면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혈육들에게 그대는 세 가지에 대해서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2. “아난다여, 깨달은 님께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지니도록 격려해야 하고 그것에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며, 영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들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이시다.’라고.


아난다여, 법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지니도록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병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승가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지니도록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四雙] 여덟 단계에 계신 분들[八輩]이시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시중받아 마땅하고,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3. “아난다여, 네 가지 근본 물질[四大], 즉 땅의 요소[地],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에는 변화가 있다. 그러나 세존께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변화란 없다. 

아난다여, 내가 말한 변화가 없다는 것은 깨달은 님께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가 지옥이나 축생의 모태나 아귀계에 태어나는 그런 경우란 없다는 것을 뜻한다.”


4. “아난다여,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즉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에는 변화가 있다. 그러나 법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변화란 없다. 

아난다여, 내가 말한 변화가 없다는 것은 법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가 지옥이나 축생의 모태나 아귀계에 태어나는 그런 경우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난다여,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즉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에는 변화가 있다. 그러나 승가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변화란 없다. 

아난다여, 내가 말한 변화가 없다는 것은 승가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가 지옥이나 축생의 모태나 아귀계에 태어나는 그런 경우란 없다는 것을 뜻한다.”


5. “아난다여, 그대가 연민심을 가지고 있고 그대의 말이라면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혈육들에게 그대는 이러한 세 가지에 대해서 격려해야 하고 안주하도록 해야 하고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존재 경(A3:76)

Bhava-sutta  

1.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존재, 존재’라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도대체 어떻게 존재가 있게 됩니까?”

“아난다여, 욕계의 과보를 가져오는 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욕계의 존재를 천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의식은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묶여 저열한 욕계에 의식을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런 것이 존재이다.”


2. “아난다여, 색계의 과보를 가져오는 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색계의 존재를 천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의식은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묶여 중간의 색계에 의식을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런 것이 존재이다.”


3. “아난다여, 무색계의 과보를 가져오는 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색계의 존재를 천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의식은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묶여 수승한 무색계에 의식을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런 것이 존재이다.”


의도 경(A3:77)

Cetanā-sutta  

1.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존재, 존재’라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도대체 어떻게 존재가 있게 됩니까?”

“아난다여, 욕계의 과보를 가져오는 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욕계의 존재를 천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의식은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저열한 욕계에 의도를 확립하고 소망을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런 것이 존재이다.” 


2. “아난다여, 색계의 과보를 가져오는 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색계의 존재를 천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의식은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에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묶여 중간의 색계에 의도를 확립하고 소망을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런 것이 존재이다.”


3. “아난다여, 무색계의 과보를 가져오는 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색계의 존재를 천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의식은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에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묶여 수승한 무색계에 의도를 확립하고 소망을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런 것이 존재이다.”


시중듦 경(A3:78)

Upaṭṭhāna-sutta  

1.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계와 서계를 지키고, 아주 하기 힘든 일에 몰두하고, 청정범행을 닦고 성심으로 남을 시중드는 것은 모두 그 결실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것을 분별해보라.”


2. “세존이시여, 계와 서계를 지키고 아주 하기 힘든 일에 몰두하고, 청정범행을 닦고, 성심으로 [남을] 시중드는 자에게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善法]들이 제거된다면 이처럼 계와 서계를 지키고 아주 하기 힘든 일에 몰두하고 청정범행을 닦고 성심으로 [남을] 시중드는 것은 그 결실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계와 서계를 지키고 아주 하기 힘든 일에 몰두하고 청정범행을 닦고 성심으로 남을 시중드는 자에게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제거되고 유익한 법[善法]들이 증장한다면 이처럼 계와 서계를 지키고 열심히 일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청정범행을 닦고 성심으로 남을 시중드는 것은 그 결실이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고 스승께서는 그것에 동의를 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스승께서 나의 대답에 동의를 하셨구나.’라고 안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가 물러간 지 오래지 않아서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유학이지만 그와 동등한 지혜를 가진 자는 쉽게 얻지 못한다.”


향기 경(A3:79)

Gandha-sutta  

1.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바람을 따라 가지만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하는 세 가지 향기가 있습니다. 무엇이 셋입니까? 

뿌리의 향기와 심재의 향기와 꽃의 향기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바람을 따라 가지만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하는 세 가지 향기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바람을 따라 가기도 하고 바람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바람을 따르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는 그런 향기가 있습니까?”

“아난다여, 그런 향기가 있다. 바람을 따라 가기도 하고 바름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바람을 따르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는 그런 향기가 있다.”


2.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향기가 바람을 따라 가기도 하고 바람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바람을 따르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합니까?”


“아난다여, 여기 마을이나 성읍에 사는 여자나 남자가 깨달은 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한다. 그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고, 거짓말하는 것을 멀리 여의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멀리 여의고,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질을 가졌고, 인색함의 때를 여읜 마음으로 재가에 머물고,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요구하는 것에 반드시 부응하고, 보시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자를 사문∙바라문들은 사방에서 칭송하여 말한다.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 사는 여자나 남자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한다.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고, 거짓말하는 것을 멀리 여의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멀리 여의고,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질을 가졌고, 인색함의 때를 여읜 마음으로 재가에 머물고,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요구하는 것에 반드시 부응하고, 보시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아난다여, 바로 이러한 향기가 바람을 따라 가기도 하고 바람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바람을 따르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한다.”


3. “꽃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오지 못하고

  전단 향과 따가라와 재스민 향기도 마찬가지네.

  여기 착한 사람 있어 그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오나니

  참사람의 향기는 모든 방향으로 퍼지네.”


아비부 경(A3:80)

Abhibhū-sutta  

1.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면전에서 ‘아난다여, 아비부라는 시키 세존의 제자는 범천의 세상에 있으면서 1000의 세계에 목소리를 듣게 한다.’라고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세존께서는 아라한이고 정등각이신데 얼마나 많은 세계에 세존의 목소리를 듣게 할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그는 제자였을 뿐이다. 여래들은 그 경지를 측량할 수가 없다.”


두 번째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면전에서 ‘아난다여, 아비부라는 시키 세존의 제자는 범천의 세상에 있으면서 1000의 세계에 목소리를 듣게 한다.’라고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세존께서는 아라한이고 정등각이신데 얼마나 많은 세계에 세존의 목소리를 듣게 할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그는 제자였을 뿐이다. 여래들은 그 경지를 측량할 수가 없다.”


2. 세 번째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면전에서 ‘아난다여, 아비부라는 시키 세존의 제자는 범천의 세상에 있으면서 1000의 세계에 목소리를 듣게 한다.’라고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세존께서는 아라한이고 정등각이신데 얼마나 많은 세계에 세존의 목소리를 듣게 할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그대는 1000의 작은 세계[小千世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설해주실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저는(비구들은)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아난다여, 그렇다면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아난다여, 그곳에 달과 태양이 움직이면서 사방을 비추고 광명이 빛나는 것을 하나의 세상이라 한다. 그러한 1000의 세상이 존재하나니 거기에는 1000의 달과 1000의 태양과 1000의 산의 왕인 수미산과 1000의 잠부디빠와 1000의 아빠라고야나와 1000의 웃따라꾸루와 1000의 뿝바위데하와 4000의 큰 바다와 1000의 사대왕천과 1000의 삼십삼천과 1000의 야마천과 1000의 도솔천과 1000의 자재천과 1000의 타화자재천과 1000의 범천이 있다. 

아난다여 이를 일러 1000의 작은 세계[小千世界]라 한다. 아난다여 소천세계의 1000배가 되는 세계를 일러 1000을 제곱한 중간 세계[中千世界]라 한다. 

아난다여 중천세계의 1000배가 되는 세계를 일러 1000을 세제곱한 큰 1000의 세계[三千大千世界]라 한다. 

아난다여,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삼천대천세계에 여래의 목소리를 듣게 할 수 있나니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4. “세존이시여, 어떻게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삼천대천세계에 여래의 목소리를 듣게 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여기 여래는 삼천대천세계를 빛으로 덮을 수 있느니라. 그곳에 사는 중생들이 그 광명을 인식할 때 여래가 음성을 내면 중생들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느니라.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삼천대천세계에 여래의 목소리를 듣게 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할 수가 있느니라.”


5.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우다이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우다이여, 저의 스승께서 이러한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을 가지셨으니 이것은 참으로 내게 이득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내게 큰 이득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우다이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그대의 스승께서 이러한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을 가지신 것이 그대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우다이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우다이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우다이여, 만일 아난다가 욕망을 다 버리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면 나에 대한 깨끗한 믿음 때문에 일곱 번을 신들이 세상에서 신들의 왕이 될 것이며 다시 일곱 번을 이 잠부 섬에서 대왕이 될 것이다. 우다이여, 그러나 아난다는 지금 여기에서 완전한 열반을 성취할 것이다.”


제8장 아난다 품이 끝났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