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꾸시나라 품
Kusināra-vagga
꾸시나라 경(A3:121)
Kusinār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꾸시나라에서 발리하라나 숲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어떤 마을이나 성읍을 의지하여 머문다. 이런 그에게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찾아와서 다음날 공양을 올리겠다고 청을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원한다면 그에 응한다. 그는 그 밤이 지나면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그 장자나 장자의 아들의 집으로 간다. 가서는 지정된 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맛있는 음식을 그가 만족하고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그에게 대접한다.
그러면 그 비구에게 ‘이러한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맛있는 음식을 내가 만족하고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나에게 대접하다니 참으로 장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미래에도 역시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맛있는 음식을 내가 만족하고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나에게 대접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그 음식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며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통찰함이 없이 수용한다. 그는 거기서 감각적 쾌락을 생각하고 성냄을 생각하고 해코지를 생각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실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방일하여 지내기 때문이다.”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어떤 마을이나 성읍을 의지하여 머문다. 이런 그에게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찾아와서 다음날 공양을 올리겠다고 청을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원한다면 그에 응한다. 그는 그 밤이 지나면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그 장자나 장자의 아들 집으로 간다. 가서는 지정된 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맛있는 음식을 그가 만족하고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그에게 대접한다.
그러나 그 비구에게 ‘이러한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맛있는 음식을 내가 만족하고 그만두라고 할 때가지 자기 손으로 직접 나에게 대접하다니 참으로 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미래에도 역시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맛있는 음식을 내가 만족하고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나에게 대접하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는 그 음식에 묶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위험을 보고 벗어남을 통찰하면서 수용한다. 그는 거기서 감각적 쾌락을 생각하지 않고 성냄을 생각하지 않고 해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실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방일하지 않고 지내기 때문이다.”
註)방일(放逸)은 악법(惡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갖춤에 있어서, 불수(不修) · 불습(不習) · 불별수습(不別修習) · 불견작(不堅作) · 불상작(不常作) · 불근수습(不勤修習)의 성질[性]을 말한다. 즉, 닦지 않는 마음[不修] · 익히지 않는 마음[不習] · 별도로 특별히 닦아 익히지 않는 마음[不別修習] · 굳건하게 짓지 않는 마음[不堅作] · 항상 짓지는 않는 마음[不常作] · 부지런히 닦고 익히지 않는 마음[不勤修習]을 말한다.
다툼 경(A3:122)
Bhaṇḍana-sutta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싸우기를 좋아하고 말다툼을 좋아하고 논쟁을 좋아하고 혀를 무기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머무는 그런 방향은 내가 생각만 해도 편하지 않는데 하물며 그곳에 가는 것임에랴.
비구들이여, 나는 여기에 대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참으로 그 비구들은 세 가지 법을 버렸고 세 가지 법을 많이 지었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세 가지 법을 버렸는가?
출리에 대한 사유와 성냄 없음에 대한 사유와 해코지 않음에 대한 사유이다.
비구들이여, 그들은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버렸다.
비구들이여, 어떤 세 가지 법을 많이 지었는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사유와 성냄에 대한 사유와 해코지에 대한 사유이다.
비구들이여, 그들은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많이 지었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싸우기를 좋아하고 말다툼을 좋아하고 논쟁을 좋아하고 혀를 무기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머무는 그런 방향은 내가 생각만 해도 편하지 않는데 하물며 그곳에 가는 것임에랴.
비구들이여, 나는 여기에 대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참으로 그 비구들은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버렸고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많이 지었다.’라고.”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화합하고 정중하고 논쟁하지 않고 물과 우유가 섞인 것 같고 애정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머무는 그런 방향은 내가 생각만 해도 편한데 하물며 그곳에 가는 것임에랴.
비구들이여, 나는 여기에 대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참으로 그 비구들은 세 가지 법을 버렸고 세 가지 법을 많이 지었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세 가지 법을 버렸는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사유와 성냄에 대한 사유와 해코지에 대한 사유이다.
비구들이여, 그들은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버렸다.
비구들이여, 어떤 세 가지 법을 많이 지었는가?
출리에 대한 사유와 성냄 없음에 대한 사유와 해코지 않음에 대한 사유이다.
비구들이여, 그들은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많이 지었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화합하고 대중과 함께 함을 좋아하고 논쟁하지 않고 물과 우유가 섞인 것 같고 애정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머무는 그런 방향은 내가 생각만 해도 편한데 하물며 그곳에 가는 것임에랴.
비구들이여, 나는 여기에 대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참으로 그 ㅈ비구들은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버렸고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많이 지었다.’라고.”
고따마까 경(A3:123)
Gotama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고따마까 탑묘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나는 최상의 지혜로 모든 법을 안 뒤에 법을 설한다. 최상의 지혜로 알지 못하고 설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나는 조건을 갖추어서 법을 설한다. 조건을 갖추지 않고 법을 설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나는 가르침의 기적을 갖추어 법을 설한다. 가르침의 기적을 갖추지 않고 법을 설하지 않는다.”
3.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모든 법을 안 뒤에 법을 설하고 조건을 갖추어서 법을 설하고 가르침의 기적을 갖추어 법을 설하면서 나는 교계하고 가르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지족하기를! 그대들은 마음이 흡족하기를! 그대들은 기뻐하기를! 세존은 정등각이고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으며 승가는 잘 법을 닦는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이 상세한 설명[授記]이 설해졌을 때 1000의 세계가 진동하였다.
바란두 경(A3:124)
Bharaṇḍu-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살라에서 유행을 하시다가 까삘라왓투에 도착하셨다.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서 까삘라왓투에 도착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삭까족 마하나마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마하나마여, 가서 내가 오늘 까삘라왓투에서 하룻밤 머무를 적당한 거처를 알아 보거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 응답한 뒤 까삘라왓투에 들어가서 온 까삘라왓투를 돌아다녔지만 세존께서 오늘 까삘라왓투에서 하룻밤 머무를 적당한 거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자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 가서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오늘 까삘라왓투에서 하룻밤을 머무를 적당한 거처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바란두까 깔라마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전에 세존과 함께 청정범행을 닦았던 자입니다. 세존께서는 오늘 하룻밤 그의 정원에 머무십시오.”
“마하나마여, 그러면 [그곳에] 가서 자리를 만들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 대답한 뒤 바란두까 깔라마의 정원으로 갔다. 가서는 자리를 만들고 발 씻을 물을 마련한 뒤 세존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자리를 펴고 발 씻을 물을 마련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3. 그러자 세존께서는 바란두까 깔라마의 아쉬람으로 가셨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앉아서는 발을 씻으셨다. 그러자 삭까족 마하나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세존께 시중을 드릴 적당한 시간이 아니다. 세존께서는 피곤하시다. 내일 나는 세존께 시중을 드리리라.’라고.
그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그 밤이 지나자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삭까족 마하나마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4. “마하나마여, 세상에는 세 부류의 스승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마하나마여, 여기 어떤 스승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넘어선 초선을 천명하지만 물질을 넘어선 무색계 증득은 천명하지 않고 느낌을 넘어선 열반도 천명하지 않는다.
여기 어떤 스승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넘어선 초선을 천명하고 물질을 넘어선 무색계 증득은 천명하지만 느낌을 넘어선 열반은 천명하지 않는다.
여기 어떤 스승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넘어선 초선을 천명하고 물질을 넘어선 무색계 증득을 천명하고 느낌을 넘어선 열반도 천명한다.
마하나마여, 세상에는 이러한 세 부류의 스승이 있다.
마하나마여, 그러면 이러한 세 스승들은 궁극적으로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5.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란두 깔라마는 삭까족 마하나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하나마여, 같다고 말해야 하오.”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삭까족 마하나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하나마여, 다르다고 해야 한다.”
두 번째로 바란두 깔라마는 삭까족 마하나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하나마여, 같다고 말해야 하오.”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삭까족 마하나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하나마여, 다르다고 해야 한다.”
세 번째로 바란두 깔라마는 삭까족 마하나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하나마여, 같다고 말해야 하오.”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삭까족 마하나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하나마여, 다르다고 해야 한다.”
6. 그러자 바란두까 깔라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큰 영향력을 가진 삭까족 마하나마의 면전에서 사문 고따마는 이처럼 세 번이나 나를 얕보았다. 그러니 나는 까삘라왓투를 떠나야겠다.’
그러자 바란두 깔라마는 까삘라왓투를 떠났다. 까삘라왓투를 떠난 그는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핫타까 경(A3:125)
Hattha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신의 아들 핫타까가 밤이 아주 깊었을 때 멋진 모습을 하고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나는 세존의 앞에 서리라.’고 하였지만 땅으로 가라앉고 스며들어서 바로 설 수가 없었다. 마치 정제된 버터와 참기름을 모래에 부으면 모래 속으로 스며들고 배어들어서 설 수 없는 것처럼 신의 아들 핫타까는 ‘나는 세존의 앞에 서리라.’고 하였지만 가라앉고 스며들어서 바로 설 수가 없었다.
2. 그러자 세존께서는 신의 아들 핫타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핫타까여, 그대의 거친 몸을 만들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신의 아들 핫타까는 세존께 대답한 뒤 자신의 거친 몸을 만들어서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신의 아들 핫타까가 한 곁에 섰을 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핫타까여, 그대가 인간이었을 때에 그대에게 나타났던 그 법들이 지금도 나타나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인간이었을 때에 제게 나타났던 그 법들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었을 때에 제게 나타나지 않았던 법들도 지금 제게 나타납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세존께서 지금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들과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에 둘러싸여서 머무시는 것처럼 저도 신의 아들들에 둘러싸여서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신의 아들들은 멀리서도 ‘신의 아들 핫타까의 곁에서 법을 들으리라.’고 하면서 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 가지 법을 충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무엇이 셋일까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을 친견하는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정법을 듣는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승가를 시중드는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충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 “저는 세존을 친견하는 것을
결코 충족하지 못하였습니다.
승가를 시중드는 것도
정법을 듣는 것도 그러하였습니다.
높은 계를 수행하고
정법 듣는 것을 좋아하고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충족하지 못한 핫타까는
무번천(無煩天, Avihā)에 태어났습니다.”
더러움 경(A3:126)
Kaṭuvi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걸식을 위해서 바라나시로 들어가셨다. 세존께서는 소를 매매하는 장소인 무화과나무 근처에서 탁발을 하시다가 어떤 비구가 삼매의 행복(즐거움)은 없고 밖의 감각적 쾌락의 행복에 빠져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림이 없고 집중되어 있지 않고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은 것을 보셨다. 그 비구를 보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비구여. 그대는 자신을 더럽게 하지마라.
비구여, 자신을 더럽게 하여 비린내를 풍기면 파리들이 그대에게 몰려들지 않을 것이고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
2. 그러자 그 비구는 세존의 이러한 교계를 듣고 절박함을 일으켰다.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걸식을 하여 공양을 마치시고 걸식에서 돌아와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나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바라나시로 들어갔다. 비구들이여, 나는 소를 사고파는 장소인 무화과나무 근처에서 탁발을 하다가 어떤 비구가 삼매의 행복은 없고 밖의 감각적 쾌락의 행복에 빠져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림이 없고 집중되어 있지 않고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은 것을 보았다. 그 비구를 보고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비구여, 비구여. 그대는 자신을 더럽게 하지 마라. 비구여, 자신을 더럽게 하여 비린내를 풍기면 파리들이 그대에게 몰려들지 않을 것이고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자 그 비구는 나의 이러한 교계를 듣고 절박함을 일으켰다.”
3.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더러움이고 어떤 것이 비린내며 어떤 것이 파리입니까?”
“비구여, 탐욕이 더러움이고 성냄이 비린내며 악하고 해로운 생각이 파리이다.
비구여, 참으로 자신을 더럽게 하여 비린내를 풍기면 파리들이 그대에게 몰려들지 않을 것이고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
4. “눈과 귀 보호하지 않고 감각기능들 제어하지 않는 자에게
욕망을 의지하는 나쁜 생각이라는 파리 떼가 몰려드나니
더러움을 만들어 비린내를 풍기는 비구는
열반으로부터 멀리 있고 오직 괴로움을 겪으리.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한 그는 마을에서건 숲에서건
마음의 고요함을 얻지 못하고 파리들만 앞세우고 다니네.
그러나 계를 구족하고 통찰지와 고요함을 즐기는 자들
그들은 파리를 모두 없애버리고 평화와 행복을 누리네.”
아누룻다 경1(A3:127)
Anurudd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누룻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누룻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인간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天眼]으로 여인은 대부분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봅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법들을 가진 여인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납니까?”
2. “아누룻다여, 세 가지 법을 가진 여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무엇이 셋인가?
아누룻다여, 여기 여인은 오전에 인색함의 때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집에 머문다.
낮에는 질투의 때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집에 머문다.
저녁에는 감각적 쾌락의 때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집에 머문다.
아누룻다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가진 여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아누룻다 경2(A3:12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누룻다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누룻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2.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인간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天眼]으로 1000의 세계를 살펴봅니다. 나에게는 불굴의 정진이 생겼고 마음 챙김은 확립되어 잊어버림이 없고 내 몸은 편안하여 동요가 없고 마음은 집중되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취착이 없어지지 않아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도반 아누룻다여, 그대가 ‘여기 나는 인간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천안]으로 1000의 세계를 살펴봅니다.’라고 하는 것은 그대의 자만(māna)입니다.
도반 아누룻다여, 그리고 그대가 ‘나에게는 불굴의 정진이 생겼고 마음 챙김은 확립되어 잊어버림이 없고 몸은 편안하여 동요가 없고 마음은 집중되어 하나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그대의 들뜸(uddhacca)입니다.
도반 아누룻다여, 그러나 그대가 ‘그러나 나는 아직 취착이 없어지지 않아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는 못하였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그대의 후회(Kukkucca)입니다.
아누룻다 존자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버리고 이러한 세 가지 법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불사(不死. 열반)의 경지로 마음을 향하게 하십시오.”
3. 그 후 아누룻다 존자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버리고 이러한 세 가지 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불사(不死)의 경지로 마음을 향하게 했다. 아누룻다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성취하고자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그래서 아누룻다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비밀리에 경(A3:129)
Paṭicchanna-sutta
1. “비구들이여, 세 가지는 비밀리에 행한다. 드러내지 않는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인은 비밀리에 행한다. 드러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바라문들의 주문(만뜨라)은 비밀리에 행한다. 드러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삿된 견해는 비밀리에 행한다. 드러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는 비밀리에 행한다. 드러내지 않는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는 [사방으로] 드러내어 비춘다. 숨기지 않는다. 무엇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둥근 달은 [사방으로] 드러내어 비춘다. 숨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둥근 태양은 [사방으로] 드러내어 비춘다. 숨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설한 법과 율은 [사방으로] 드러내어 비춘다. 숨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는 [사방으로] 드러내어 비춘다. 숨기지 않는다.”
바위에 새김 경(A3:130)
Pāsāṇalekha-sutta
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바위에 새긴 비명(碑銘)과 같은 사람,
흙에 쓴 것과 같은 사람,
물에 쓴 것과 같은 사람이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바위에 새긴 비명과 같은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낸다. 그리고 그 화는 오래간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바위에 새긴 것은 바람이나 물에 의해 즉시에 지워지지 않고 오래가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낸다. 그리고 그 화는 오래 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위에 새긴 비명과 같은 사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흙에 쓴 것과 같은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낸다. 그러나 그 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흙에 쓴 것은 바람이나 물에 의해서 즉시에 지워지고 오래가지 않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낸다. 그러나 그 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흙에 쓴 것과 같은 사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물에 쓴 것과 같은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격한 말을 듣고 거친 말을 듣고 마음에 들지 않은 말을 들어도 잘 받아들이고 교제하고 화합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물에 새긴 것은 즉시에 사라져버려 오래가지 않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사람은 격한 말을 듣고 거친 말을 듣고 마음에 들지 않은 말을 들어도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교제하고 화합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물 위에 쓴 것과 같은 사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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