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능가경

[스크랩] 입능가경 13. 항하사품(恒河沙品)

수선님 2018. 4. 8. 13:02

입능가경 13. 항하사품(恒河沙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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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명자(名字)에 의하여 말씀하심과 같아서, '과거·미래·현재 여러 부처님의 수가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여래의 입에 의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저희들이 수순하여 취하겠습니다. 또한 다시 뜻이 있는 것입니까? 원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말한 명자와 장구(章句)대로 이와 같이 취하지 말 것이다.

 

대혜여, 3세(世)의 부처님께서 항하의 모래뿐만이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세간에서 뛰어난 것을 비유한 것은 비유함과 같은 것만은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부처님·여래·응공·정변지께서는 세간에서 뛰어난 것을 비유로서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음'을 결정하여 말할 수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내가 말한 바는 다만 적은 부분일 뿐이다.

 

대혜여, 나와 여러 부처님·여래·응공·정변지의 말한 바 비유는 다만 적은 뜻만을 말한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들은 '모든 법이 떳떳하다'는 것에 집착하여 사견(邪見)을 증장(增長)하고 세간을 수순하여 생사에 윤회하니, 그들은 싫증을 내기 쉽고 듣고는 놀라며 두려워한다.

 

또한 여러 부처님께서 항하의 모래와 같다고 함을 들으면, 문득 여래의 위없는 성도(聖道)에서 얻기 쉽다는 생각을 내고, 출세의 법을 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부처님·여래가 항하의 모래 수와 같다고 말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내가 다른 경(經)에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시는 것이 우담바라꽃과 같다고 하면 중생이 듣고는 말하기를, '불도(佛道)는 얻기가 어렵다'고 하여 닦아 정진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나는 '불·여래가 항하의 모래 수와 같다'라고 말하였다.

 

대혜여, 내가 '부처님의 출세하시는 것이 우담바라꽃과 같다'라고 한 것은 가히 교화할만한 중생에 의하여 한 뜻이니, 그러므로 나는 '부처님께서 우담바라꽃과 같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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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우담바라꽃은 세상에서도 일찍이 본 사람이 없으며, 미래에도 또한 보지 못할 것이다.

 

대혜여, 부처님·여래께서는 세상에서 일찍 보았으며, 현재에 보고 미래에도 볼 것이다.

 

대혜여, 내가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자신의 얻은 바 법에 의하여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우담바라꽃과 같다'라고 말한 것으로, 여러 부처님·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대혜여, 나는 속 몸으로 증득한 법에 의하여 설법한다. 그러므로 세간을 뛰어넘는 비유를 말한다. 모든 범부와 믿음이 없는 중생은 능히 나의 말한 바 비유를 믿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자기 속 몸의 거룩한 지혜의 경계를 말함에 비유로도 말할 수 없으니, 심·의·의식을 멀리 떠나고 모든 견해의 자리를 뛰어넘는 것인 부처님·여래의 진여(眞如)법은 가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 가지 비유를 말하였다.

 

대혜여, 내가 말한 '여러 부처님께서 항하의 모래 수와 같다'라고 함은 이 적은 부분[少分]인 비유이다.

 

대혜여, 부처님·여래는 평등하여 평등 아닌 것이 아니니, 분별[能分別]과 분별되는 것[所分別]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항하에 있는 모래를 고기와 자라와 거북과 용과 소와 염소와 코끼리와 말과 모든 짐승이 밟을지라도, 그러나 저 항하의 모래는 분별을 내지 않으며 성내지 않고 또한 나를 괴롭게 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니, 분별이 없으므로 모든 더러움[垢]을 깨끗이 떠났기 때문이다.

 

대혜여, 부처님·여래·응공·정변지도 또한 이와 같아 속 몸으로 거룩한 지혜를 증득하여, 만족한 모든 힘과 신통과 자재한 공덕이 항하의 모래와 같은데, 일체 외도와 사론(邪論)인 모든 스승과 어리석은 이 '고기와 자라'인 것들이 성내는 마음으로 여래를 헐뜯고 꾸짖어도 여래는 동하지 않고 분별을 내지 않으며 본원력(本願力)으로 중생에게 삼매(三昧)·삼마발제(三摩跋提)를 주어 일체 모든 낙(樂)으로 하여금 만족하게 함으로써 분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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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부처님·여래가 항하의 모래 등과 같다고 말한 것은 평등하여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이니, 애착인 몸을 떠났기 때문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항하의 모래가 땅을 떠나지 못함과 같다.

 

대혜여, 불이 대지(大地)를 태울지라도 불이 땅과 다르지 않으므로 불이 땅을 태우지 않으니, 지대(地大)에는 불의 상속(相續)하는 자체(自體)가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전도된 지혜에 떨어져, 자심에서 분별하여 말하기를, '땅이 불에 태워 지게 된다'라고 하지만, 그러나 땅은 타지 않으니, 땅을 떠나고서 다시 4대(大)인 불의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혜여, 부처님·여래께서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부처님·여래·법신의 체(體)는 항하의 모래와 같아서 멸하지도 아니하며 없어지지도 않는다.

 

대혜여, 비유컨대 항하의 모래가 한량없고 가없는 것과 같다.

 

대혜여, 불·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세간에 출현하여 한량없는 광명을 놓고 일체 부처님의 큰 모임[大會]에 두루하며, 중생을 교화하려고 그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한다.

 

대혜여, 항하의 모래는 다시 나는 모양[生相]이 아님이 저 미진(微塵)과 같아서, 미진인 체상(體相)이 이와 같이 머무른다.

 

대혜여, 부처님·여래께서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세간에서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으니, 부처님·여래께서는 유(有)의 인(因)을 끊으셨기 때문이다.

 

대혜여, 항하의 모래가 만약 항하에서 나간다 해도 또한 나가는 것을 보지 않으며 항하 가운데에 들어간다 해도 또한 들어가는 것을 보지 않으며, 또한 생각을 일으키기를, '내가 항하에서 나가고 들어간다'라고 하지 않는다.

 

대혜여, 부처님·여래의 지혜의 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도 다 멸도(滅度)함이 아니며, 또한 증장(增長)함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은 몸[身]이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일체 몸이 있는 것은 모두 무상하고 마멸(磨滅)하는 법이요, 몸 없는 법은 아니지만 부처님·여래께서는 오직 법신(法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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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소유(蘇油 : 우유로 만든 향유)를 얻으려고 하는데, 항하의 모래를 눌러 짠다면 마침내 얻을 수 없으니, 소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부처님·여래께서는 중생에게 고뇌(苦惱)의 압박한 바 되어도 성냄은 얻을 수 없으니, 자기의 법계상(法界相)을 버리지 않으며, 자기의 법미상(法味相)을 버리지 않으며, 본원력(本願力)을 버리지 아니하고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어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구족함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며, 내가 '만약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하지 못한다면, 나의 몸도 또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라고 함이다.

 

대혜여, 항하의 모래가 물을 따라서 흐르고 마침내 물을 거슬러 흐르지 아니함과 같다.

 

대혜여, 부처님·여래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함도 또한 그러하여 열반을 따라 순종하고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

 

대혜여, 그러므로 '부처님·여래께서 항하의 모래와 같다'라고 말하였다.

 

대혜여, 항하의 모래가 물을 따라 흐른다 함은 간다는 뜻이 아니니, 만약 부처님·여래께서 간다는 뜻이 있다면 부처님·여래께서는 마땅히 무상하여 멸함일 것이다.

 

대혜여, 세간의 본제(本際 : 근본실제)도 오히려 가히 알지 못하는데, 알지 못한 것을 내 어찌 그에 의하여 간다는 뜻을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간다는 뜻이 되지 않는다.

 

대혜여, 간다는 뜻이란, '단멸의 뜻이 된다'라고 이름할 것이니, 어리석은 범부는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만약 중생이 세간에서 윤회하면서도 가고 오는 본제(本際)를 가히 알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해탈을 얻으셨으며,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해탈이라 말함은, 일체 희론과 번뇌와 끝없는 훈습과 분별하는 마음을 떠났으므로, 여실히 오직 제 마음에서 바깥의 분별하는 바를 나타내어 마음이 회전(廻轉)한 것을 능히 앎이니, 그러므로 나는 말하여 '해탈이 된다'라고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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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해탈이라 말한 것은 멸하는 법이 아니니, 그러므로 그대가 지금 나에게 묻기를, '만약 본제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해탈을 얻었는가'라고 하는 이 물음은 성립하지 못한다.

 

대혜여, 본제라고 말한 것은 이 분별하는 마음이니, 동일한 체(體)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대혜여,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면 다시 중생이 없으니, 바로 '분별은 중생이 된다'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진실한 지혜로서 내외(內外)법을 관찰하면 가지(可知)와 능지(能知)인 법이 없는 것이다.

대혜여, 일체법은 본래 고요한 것이다.

 

대혜여, 여실히 오직 제 마음에서 허망한 분별을 나타낸 것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므로 분별하는 마음을 낸 것이니, 여실히 아는 자는 분별을 내지 않는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러 부처님을 관찰하기를,
  '비유컨대 항하의 모래와 같아서
  멸함도 또한 생함도 아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능히 부처님을 보리라.
  
  모든 진구(塵垢)를 멀리 떠나서
  항하의 모래가
  물 흐름을 따르나 변치 않듯이

  법신도 또한 이와 같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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