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능가경

[스크랩] 입능가경 14. 찰나품(刹那品)

수선님 2018. 4. 8. 13:02

입능가경 14. 찰나품(刹那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여래·응공·정변지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일체 생멸(生滅)하는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일체법이 생각 생각에 머무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일체법이라는 것은 이른바 선법(善法)·불선법(不善法)·유위법(有爲法)·무위법(無爲法)·세간법(世間法)·출세간법(出世間法)·유루법(有漏法)·무루법(無漏法)·내법(內法)·외법(外法)이다.

 

대혜여, 줄여 말하면 5음(陰)법이니, 심(心)·의(意)·식(識)으로 인하여 훈습하며 증장한 것이다.

모든 범부인 사람들은 심·의·식으로 인하여 훈습함으로 선(善)·불선(不善)인 법을 분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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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성인은 현재 삼매(三昧)·삼마발제(三摩跋提)의 무루(無漏)인 선법(善法)의 낙행(樂行)을 증득하였다.
대혜여, 이를 선법(善法)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말한 바 선(善)·불선(不善)의 법이라 말한 것은 이른바 8식(識)이니, 무엇이 8식이 되는가? 첫째는 아리야식(阿梨耶識)이요, 둘째는 의(意)요, 셋째는 의식(意識)이요, 넷째는 안식(眼識)이요, 다섯째는 이식(耳識)이요, 여섯째는 비식(鼻識)이요, 일곱째는 설식(舌識)이요, 여덟째는 신식(身識)이다.

 

대혜여, 5식신(識身)은 의식신(意識身)과 함께 하여 선·불선의 법이 전전(展轉)히 차별되며 상속(相續)하지만, 자체는 차별이 없이 생하는 법을 수순하여 생겼다가 다시 멸하지만, 자심(自心)이 허망한 경계를 나타낸 것을 알지 못하고, 곧 멸할 때엔 능히 경계와 형상의 크고 작음과 수승하고 묘한 모양을 취한다.

 

대혜여, 의식이 5식신(識身)과 함께 서로 응하여 나는데, 한 생각의 순간[刹那]도 머무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나는 저 법을 말하여,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한다.

 

대혜여, 찰니가(刹尼迦 : 刹那)라고 말한 것은 공(空)이 된다고 이름함이요, 아리야식은 여래장이라고 이름함이니, 의(意)와 전식(轉識)과 함께 훈습함으로 '공이 된다'고 이름하며, 무루(無漏)인 훈습법을 구족하였으므로 '불공(不空)이 된다'고 이름함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깨닫지 못하고 모든 법이 찰나도 머무르지 아니함에 집착하여, 사견(邪見)에 떨어져서 말하기를, '무루의 법도 또한 찰나 동안도 머무르지 아니한다'라고 하니, 저 진여(眞如)인 여래장을 깨뜨리는 것이다.

 

대혜여, 5식신(識身)은 6도(道)에 나지 않으며, 고락(苦樂)을 받지 않으며, 열반의 인(因)도 짓지 않는다.

 

대혜여, 여래장은 고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생사(生死)의 인(因)은 아니지만, 다른 법은 함께 생(生)하며, 함께 멸하여 네 가지 훈습[四種熏習 : 無明·妄心·妄境·淨法의 네 가지 훈습]에 의하여 취(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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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범부는 사견(邪見)으로 훈습함을 알지 못하고, '일체법이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대혜여, 금강(金剛)인 여래장과 여래의 증득하신 법은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대혜여, 여래께서 증득하신 법이 만약 찰나 동안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면 일체 성자(聖者)는 성인(聖人)을 이룬 것이 아닐 것이다.

 

대혜여, 성인 아닌 것이 아니니, 성인이기 때문이다.

대혜여, 금강은 한 겁(劫) 동안 머물러 있어도, 무게와 부피가 그대로 있어 더하지도 줄지도 않는다.

 

대혜여,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가 모든 법을 분별하여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그러나 범부는 나의 뜻을 얻지 못했으니, 안팎의 모든 법은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함을 알지 못함이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또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6바라밀(波羅蜜)법이 만족하여지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는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6바라밀이 되며, 어찌하면 만족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바라밀의 차별이 세 가지 있으니, 이른바 세간바라밀(世間波羅蜜)과 출세간바라밀(出世間波羅蜜)과 출세간상상바라밀(出世間上上波羅蜜)이다.

 

대혜여, 세간바라밀이라 말한 것은 어리석은 범부가 나[我]와 내 것[我所]이라고 하는 법에 집착하여, 2변(邊)에 떨어져서 여러 가지 수승하고 묘한 경계를 위하여 바라밀을 행하고, 색(色) 등의 경계와 과보(果報)를 구함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단나바라밀(檀那波羅蜜 : 布施波羅蜜)·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 : 持戒波羅蜜)·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 : 忍辱波羅蜜)·비라바라밀(毘羅波羅蜜 : 精進波羅蜜)·선바라밀(禪波羅蜜 : 禪定波羅蜜)·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행하여 범천(梵天)에 태어나기도 하며, 5신통(神通)인 세간의 법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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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이를 세간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출세간바라밀이라고 말한 것은 성문과 벽지불이 열반인 마음을 취하여 바라밀을 수행함이다.

 

대혜여, 저와 같은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는 자신에서 열반락을 구하기 위하여 세간바라밀의 행을 행하며, 성문과 연각은 또한 다시 이와 같이하여 자신을 위하며, 열반락을 구하여 출세간바라밀을 행하며, 저 구경락(究竟樂)이 아닌 것을 구한다.

 

대혜여, 출세간상상바라밀은 여실히 다만 이 자심(自心)의 허망한 분별로써 바깥 경계를 나타낸 것을 능히 앎이니, 그 때엔 실로 오직 이 자심에서 안과 바깥의 법을 나타낸 것임을 알고 허망한 분별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안팎의 자심과 색상을 취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여실히 일체법을 알므로 단나바라밀을 행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는 안온(安穩)한 낙(樂)을 얻게 하니, 그러므로 이를 단나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저 일체법을 관찰하고 분별을 내지 않으며, 청량(淸凉)한 법을 수순하니, 이를 시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고, 저 수행함을 알아서,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경계가 진실이 아님을 여실히 아니, 이를 보살의 찬제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어떻게 정진행(精進行)을 닦는 것인가? 초(初)·중(中)·후(後) 밤에도 항상 부지런히 수행하여 여실법을 수순하여 모든 분별을 끊음이니, 이를 비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서, 외도의 능취와 가취의 경계를 따르지 아니함을 선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의 반야바라밀인가? 보살이 여실히 자심의 분별하는 상을 관찰하여, 분별함을 보지 아니하고 2변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여실한 수행에 의하여 몸을 전변하여 한 법도 생함을 보지 않으며, 한 법도 멸함을 보지 않고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행을 수행함이니, 이를 보살의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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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바라밀의 뜻[義]을 이와 같이 만족시키는 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공(空)과 무상(無常)과 찰나(刹那)를
  어리석은 이는 유위(有爲)라고 분별하여,
  강물과 등불과 종자와 같다고 하며
  공과 무상과 찰나라고 한다네.
  
  찰나의 뜻[義]을 분별하여
  찰나도 또한 이와 같다고 하나,
  찰니가(刹尼迦 : 刹那)는 불생(不生)이라서
  고요하여 짓는 바 떠났네.
  
  일체법은 생하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찰나의 뜻이라 말한다.
  물질은 생하면 멸함이 있으나
  범부를 위해 말을 아니하네.
  
  상속하는 법을 분별하며
  망상으로 6도(道)를 보지만,
  만약 무명(無明)이 인(因)이 되어
  모든 마음 능히 낸다한들
  
  형색도 생하지 아니 했으니
  중간이야 어디 의지해 머무르랴.
  생하면 곧 멸함이 있으니
  다른 마음도 저를 따라 나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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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색은 한 생각 머무름이 아니니
  어느 법에서 생함을 관찰하랴.
  어느 인(因)에 의해서 생긴 법이랴?
  마음은 인(因)없이 생하는 것이네.
  
  그러므로 생하는 것 성립하지 않으니,
  어떻게 생각이 무너짐 알 것인가.
  수행자가 정(定)을 증득하여
  금강과 불사리(佛舍利)로
  
  광음천(光音天) 궁전에서
  세간에 파괴되지 않는 일과
  그 증득한 법의 진실을
  여래께서는 지혜로 성취하였네.
  
  비구가 평등한 법을 증득하면
  어찌 생각이 머무르지 않음을 볼 것인가.
  건달바(乾闥婆)와 환상인 것이리.
  
  무엇 때문에 생각이 머무르지 않음인가?
  4대(大)와 보여진 형색이 없음이니,

  4대가 어찌 하는 일이겠는가?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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