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 니까야(증일)

넷의 모음 - 제17장 도 닦음 품(A4:161-A4:170. Paṭipadā-vagga)

수선님 2018. 4. 15. 12:31

제17장 도 닦음 품

Paṭipadā-vagga


간략하게 경(A4:161)

Saṁkhi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네 가지 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초월지)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 닦음이 있다.”


상세하게 경(A4:162)

Vitthata-sutta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초월지)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서 극심한 탐욕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선천적으로 심한 성냄을 가지고 태어나서 극심한 성냄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선천적으로 심한 어리석음을 가지고 태어나서 극심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더디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디다고 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서 극심한 탐욕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선천적으로 심한 성냄을 가지고 태어나서 극심한 성냄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선천적으로 심한 어리석음을 가지고 태어나서 극심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르다고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탐욕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심한 성냄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성냄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심한 어리석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더디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디다고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탐욕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심한 성냄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성냄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심한 어리석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극심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아주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르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 닦음이 있다.”


부정(不淨) 경(A4:163)

Asubha-sutta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믿음의 힘,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有學)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더디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디다고 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믿음의 힘,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르다고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이 더디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디다고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아주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르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이 있다.”


견딤 경1(A4:164)

Khama-sutta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견디지 못함의 닦음, 견딤의 닦음, 감각기능들을 길들임의 닦음, 고요함의 닦음이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견디지 못함의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모욕을 모욕으로 되갚고 분노를 분노로 되갚고 다툼을 다툼으로 되갚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디지 못함의 도 닦음이라 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견딤의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되갚지 않고 분노를 분노로 되갚지 않고 다툼을 다툼으로 되갚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딤의 도 닦음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기능들을 길들임의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귀로 소리를 들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귀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귀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코로 냄새를 맡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코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코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혀로 맛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혀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혀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몸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마노[意.정신]로 법(마음현상)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도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길들임의 도 닦음이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고요함의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성냄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해코지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계속적으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고요함의 도 닦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이 있다.”


견딤 경2(A4:165)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도 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견디지 못함의 닦음, 견딤의 닦음, 감각기능들을 길들임의 닦음, 고요함의 닦음이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견디지 못함의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날파리와 모기와 바람과 뙤약볕과 파충류에 닿음과 고약하고 언짢은 말들을 견디지 못하고,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디지 못함의 닦음이라 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견딤의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날파리와 모기와 바람과 뙤약볕과 파충류에 닿음과, 고약하고 언짢은 말들을 견디고,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딤의 닦음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기능들을] 길들임의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귀로 소리를 들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귀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귀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코로 냄새를 맡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코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코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혀로 맛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혀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혀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몸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마노[意]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도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길들임의 도 닦음이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고요함의 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성냄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해코지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계속해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고요함의 도 닦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 닦음이 있다.”


양쪽 모두 경(A4:166)

Ubhaya-sutta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초월지)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다.”


2.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이러한 닦음은 양쪽 모두 저열하다고 일컬어진다. 즉 닦음이 어려운 것도 저열하다고 일컬어지고 최상의 지혜가 더딘 닦음도 저열하다고 일컬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닦음은 양쪼 모두 저열하다고 일컬어진다.”


3.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닦음이 있다. 이것은 닦음이 어렵기 때문에 저열하다고 일컬어진다.”


4.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닦음이 있다. 이것은 최상의 지혜가 더디기 때문에 저열하다고 일컬어진다.”


5.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이러한 닦음은 양쪽 모두 수승하다고 일컬어진다. 즉 닦음이 쉬운 것도 수승하다고 일컬어지고 최상의 지혜가 빠른 닦음도 수승하다고 일컬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도 닦음은 양쪽 모두 수승하다고 일컬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이 있다.”


목갈라나 경(A4:167)

Moggall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는 목갈라나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목갈라나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목갈라나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2. “도반 목갈라나여, 네 가지 닦음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입니다. 

도반 목갈라나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이 있습니다.”


3. “도반 목갈라나여, 이러한 네 가지 도 닦음 가운데 어떤 도 닦음을 통해서 그대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네 가지 도 닦음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 입니까?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입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이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 가운데 나는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닦음을 통해서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


사리뿟따 경(A4:168)

Sāripu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목갈라나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목갈라나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2. “도반 사리뿟따여, 네 가지 닦음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 입니까?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입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이 있습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 가운데 어떤 닦음을 통해서 그대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까?”

“도반 목갈라나여, 네 가지 도 닦음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 입니까?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는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입니다. 

도반 목갈라나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이 있습니다.

도반 목갈라나여,이러한 네 가지 닦음 가운데 나는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닦음을 통해서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


정력적인 노력 경(A4:169)

Sasaṅkhāra-sutta 

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열렬한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열렬한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열렬한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열렬한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금 여기에서 열렬한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의 인식이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믿음의 힘, 양심의 힘,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열렬한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열렬한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의 인식이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믿음의 힘,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열렬한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금 여기에서 열렬한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열렬한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열렬한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 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열렬한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쌍 경(A4:170)

Yuganadd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원림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아난다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아난다 존자이시여" 라고. 아난다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2. “도반들이여, 어떤 비구든 비구니이든 나의 곁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설명하는 자는 모두 네 가지 특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합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사마타를 먼저 닦고 위빳사나를 닦습니다. (주1)

그가 사마타를 먼저 닦고 위빳사나를 닦을 때 도를 인식합니다. (주2)

그는 그 도를 거듭하고 닦고 많이 학습합니다. (주3)

그가 그 도를 거듭하고 닦고 많이 학습하면 족쇄들이 제거되고(주4) 잠재성향들이(주5) 끝이 나게 됩니다.”


주) 1. 첫 번째로 근접삼매나 본삼매를 일으킨다. 이것은 사마타이다. 그는 삼매와 이러한 삼매와 함께 하는 법에 대해서 무상등으로 관찰한다. 이것은 위빠싸나이다.

2. 첫 번째 흐름에 나아가는 도가 생긴다는 말이다. 예류도이다. 

3. 염오를 따라 관찰하는 것을 통해서 거듭한다. 해탈하기를 원함에 의해서 거듭 닦는다. 숙고함을 따라 관찰함을 통해서 많이 학습한다.

4. 유신견. 의심. 잘못된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 악처로 인도하는 감각적 쾌락. 악의, 이 다섯 가지 법들은 예류도의 지혜로 버리고, 나머지 거친 감각적 쾌락과 악의는 일래도에서, 미세한 감각적 쾌락과 적의는 불환도에서, 색계에 대한 욕망등 다섯 가지는 아라한도의 지혜로 버린다.

5. 사견/의심의 잠재적 성향은 첫번째 도에서 버려지고, 감각적 쾌락/적의의 잠재적 성향은 세 번째 도에서, 자만/존재/무명의 잠재적 성향은 네 번째 지혜로 버린다. 


3.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위빳사나를 먼저 닦고 사마타를 닦습니다. 

그가 위빳사나를 먼저 닦고 사마타를 닦을 때 법을 인식합니다. 

그는 그 법을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익힙니다. 

그가 그 법을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익히면 족쇄들이 제거되고 잠재적 성향들이 끝이 나게 됩니다.”


4.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함께 닦습니다. 

그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을 때 법을 인식합니다. 

그는 그 법을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익힙니다. 

그가 그 법을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익히면 족쇄들이 제거되고 잠재성향들이 끝이 나게 됩니다.”


주) 쌍으로 닦는다(yuganaddham bhaveti)라고 하였다. 그러나 증득에 든 마음으로 형성된 것들을 명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증득에 든 만큼 형성된 것들을 명상하고,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 만큼 다시 증득에 든다는 말이다. 주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초선을 증득한다. 거기서 출정한 뒤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 뒤 제2선 증득에 든다. 거기서 출정한 뒤 다시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에 든다. 거기서 출정한 뒤 다시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을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쌍으로 닦는다고 한다"(AA.iii.143)

따라서 표상이라는 개념에 집중된 사마타와 법의 찰나성(무상)등을 통찰하는 위빠사나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위빠사나 즉 법의 무상무아고를 통찰하는 것은 이처럼 반드시 사마타에서 출정한 뒤에야 가능하다는 것이 상좌부 불교의 전통이다. 


5.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마음을 안으로 확립하고 안정시키고 하나에 고정하여 삼매에 들 때 그는 법을 인식합니다. 그는 그 법을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익힙니다. 그가 그 법을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익히면 족쇄들이 제거되고 잠재적 성향들이 끝이 나게 됩니다.


주)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림(dhamm-uddhaccaviggahita)'이란 열 가지 위빠사나의 경계(dasa-vipassana-upakkilesa)라 불리는 들뜸에 의해서 붙들렸다는 의미이다. 청정도론에서는 이 문장에 대해 무애해도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리게 되는가? 그가 상카라들을 무상이라고 마음을 기울일 때 (1)광명이 일어난다. 광명이 법이라고 생각하고 광명으로 전향한다. 그것으로 인한 산만함이 들뜸이다. 그 들뜸에 마음이 붙들려 그들이 일어남을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일어남을 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일어남을 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일어남을 무아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상이라고 마음을 기울일 때 (2)지혜가 일어난다 ... (3)희열이 일어난다 ... (4)경안이 일어난다 ... (5)행복이 일어난다 ... (6)결심이 일어난다 ... (7)분발이 일어난다 ... (8)확립이 일어난다 ... (9)평온이 일어난다 ... (10)욕구가 일어난다. 욕구가 법이라고 생각하고 욕구로 전향한다. 그것으로 인한 산만함이 들뜸이다. 그 드뜸에 마음이 붙들려 그들이 일어남을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일어남을 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일어남을 무아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든 비구니든 나의 곁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설명하는 자는 모두 이러한 네 가지 특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합니다.”


(주) 사마타를 먼저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위빠싸나를 먼저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둘 다를 동시에 닦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에 대해서 본 경은 명쾌하게 대답을 주고 있다. 즉 사마타를 먼저 닦을 수도 있고, 위빠싸나를 먼저 닦을 수도 있고, 사마타와 위빠싸나를 함께 닦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개인의 문제일 뿐 어느 것을 먼저 닦아야 하는가는 정해진 순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마타와 위빠싸나를 쌍으로 닦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경에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석서에는 그런 경우를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쌍으로 닦는다는 이 말씀에 대해 사마타 즉 본삼매에 든 상태에서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는 위빠싸나를 동시에 닦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주석서의 설명을 잘 살펴보면 좋겠다. 사마타와 위빠싸나는 그 대상이 완전히 다르다. 사마타는 표상이라는 개념이 그 대상이고, 위빠싸나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이 그 대상이다. 그러므로 한 순간에 서로 다른 대상을 가진 사마타와 위빠싸나는 결코 함께 일어날 수 없다. 




제17장 도 닦음 품이 끝났다. 열일곱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간략하게 ② 상세하게 ③ 부정 ④ ~ ⑤ 견딤 ⑥ 양쪽 모두 ⑦ 목갈라나 ⑧ 사리뿟따 

⑨ 정력적인 노력 ⑩ 쌍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