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스크랩] 6. 좌선, 경행,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

수선님 2018. 4. 15. 13:17




6. 좌선, 경행,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


1. 좌선


좌선은 몸의 네 가지 자세인 행주좌와 중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 나타나는 물질적 정신적 현상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합니다. 주로 들숨 날숨에 의한 물질적 현상이지만, 때로는 피부의 감각으로 나타나는 가려움이나 통증 등도 알아차릴 대상이며, 정신적 현상으로 망상, 졸음, 싫증, 의심 등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합니다. 좌선은 일단 달아나는 마음을 몸에 붙이는 것으로 마음을 몸이라는 기둥에 알아차림이라는 끈으로 묶어서 마음을 길들이는 작업입니다.


< 좌선을 시작할 때 >


한국 위빠사나 선원에서는 좌선을 시작 할 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리드를 하고 수행자는 이 리드에 따라 좌선을 시작합니다. 이 방법은 저희 선원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신수심법을 다 아울러 수행하도록 저희 선원의 선원장이신 묘원 법사님께서 직접 프로그램화하신 것입니다.


또한 초보 수행자들이 혼자서 좌선을 할 때 자연스럽게 알아차림을 이어가게 해주는 방법입니다. 읽어보시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이와 같이 스스로 리드를 하며 자연스럽게 좌선을 시작해보십시오.


1) 바른 자세로 앉는다.

자, 몸의 긴장을 다 풀고 편안하면서도 바른 자세로 앉으십시오. 턱을 약간만 아래로 당기고, 허리는 편안하게 펴십시오. 손은 무릎 위에 편하게 올려놓으십시오. 발은 반가부좌나 두 발을 나란히 바닥에 내려놓는 평좌를 하십시오.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을 만큼 부담 없는 자신만의 편안한 자세로 앉으십시오.


2)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이제 현재의 마음상태를 알아차립니다. 지금 내 마음에 바라는 것이 있는가, 미워하는 것이 있는가, 졸리는가, 들떠있는가, 의심하고 있는가를 알아차리십시오. 어떤 마음이 있든지 그냥 “그런 마음이 있구나” 하고 알고 시비하지 마십시오.


3) 몸의 느낌을 알아차린다.

이제 마음이 몸으로 가서 몸의 느낌을 주시합니다. 눈꺼풀, 입술, 손, 엉덩이의 느낌을 차례대로 마음이 직접 머물러 느낌을 느끼고 내려갑니다. 서로 접촉된 부분에 있는 여러 가지 느낌들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해서 그 느낌들의 변화를 알아차리면서 내려갑니다.


자, 먼저 눈꺼풀이 있는 것을 아십시오. 눈꺼풀이 있는 것을 아는 것이 느낌입니다. 이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십시오. 눈꺼풀이 서로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직접 느껴 보십시오). 점차 닿아있는 부분에 따스함, 가벼움, 무거움, 떨림, 빛 등의 느낌이 느껴집니다. 그 중에서 지금 인식되는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리고 계속 그 느낌의 변화를 주시하십시오. -사이(얼마동안 지속함을 의미합니다) -


이제 입술로 갑니다. 입술이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 사이 -

이제 입술에 있는 따스함, 촉촉함, 떨림 등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변화를 보십시오. -사이 -


다음은 손으로 갑니다. 손이 어딘가에 닿아있습니다. 손이 닿아있는 부분에 마음을 두고 그 모양이나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사이-

손에 있는 따스함, 쑤심, 진동 등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중 한 느낌의 변화를 보십시오. -사이-


마지막으로 엉덩이로 갑니다. 엉덩이가 방석에 닿아있는 것을 아십시오. -사이 -

그리고 닿아있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무거움 단단함 떨림 등의 느낌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지금 알고 있는 느낌을 대상으로 그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사이-


4) 현재를 알아차린다.

자, 이제는 마음을 현재로 가져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그냥 지켜보십시오. 현재 내 마음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마음이 소리를 듣고 있음을 알거나 고요함을 알고 있습니다. 이 아는 마음도 현재와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알아차리고 있는 마음도 계속 생멸하면서 흐르고 있습니다. -사이 -


5) 호흡을 알아차린다.

지금 여기에 앉아있는 자신의 자세를 마음이 알고 있습니다. 앉아있는 몸을 전체적으로, 크게 알아차리십시오. 가만히 몸 전체의 느낌을 주시합니다. -사이 -


몸의 어디선가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호흡입니다. 호흡은 코, 가슴, 배, 몸의 일부에서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그 중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하나를 선택해서 그 자리에서 호흡에 의해 일어나는 움직임을 알아차리십시오. 호흡은 자연스런 호흡을 해야 합니다. 복식 호흡이나 단전호흡으로 호흡을 일부러 만들지 마십시오. -사이-


처음에는 호흡의 움직임 중에서 ‘일어남' 하나만을 알아차리십시오. -사이 -

어느 정도 집중이 되면 이제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십시오. 점차 집중이 더 잘 되어지면 일어남, 꺼짐, 쉼까지 알아차리십시오.


이렇게 처음에는 호흡의 일어남과 꺼지는 모양을 알아차리다가 점차 들숨과 날숨의 움직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십시오. -사이-


6) 장애(손님)를 알아차린다.

그러나 호흡을 알아차리는 중에 마음은 어느덧 망상이나 통증 졸림 싫증 의심에 빠집니다.

이런 손님(법, 장애)들을 없애려하거나 싫어하지 말고 나타나는 대로 알아차리고, 즉시 호흡으로 돌아와서 다시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7) 좌선 중에 이따금씩 앉아있는 자세가 바른가 살펴보고, 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알아차려 몸의 긴장을 풀고, 알아차림을 놓쳤더라도 시비하지 말고 다시 알아차림을 시작합니다.


또한 이따금씩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하고 현재를 알아차려보십시오. 만일 알아차림을 놓쳤더라도 지금부터 다시 알아차림을 하면 됩니다. 좌선 중에 나타나는 대상은 무엇이든지 다 알아차릴 대상인 법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바라거나 없애려고 하지 말고 나타나는 대로 모두 받아들여 알아차림으로 수용하십시오.





2. 경행


우리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움직이면서 보냅니다. 가고 서고 눕고 구부리고 돌고 허리를 펴고 등등으로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이 때에도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것이 경행이며, 이런 경행은 바로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림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우리들은 일상에서 어디를 갈 때 대부분 마음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현재의 몸과 마음에 있지 않고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벌써 마음이 미래로 달아나버려 현재를 놓친 것입니다. 때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느라 망상을 하면서 들뜨거나 근심걱정을 합니다. 이것은 깨어있지 못하고 대상에 빠져있는 것으로 불선심 상태입니다.


그래서 움직일 때도 알아차림을 이어가야 하는데, 수행자가 경행을 하면서 알아차림이 어느 정도 숙달되면, 실제 생활 속에서 움직일 때도 알아차림을 이어갈 수가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센터에서는 좌선과 함께 경행도 1:1의 비율로 시간표가 짜여져 있습니다. 좌선과 좌선 사이에 경행으로 알아차림을 하면 움직일 때나 움직이지 않을 때나 모두 알아차림이 이어집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모든 비밀이 경행에 있다고 할 만큼 경행은 중요합니다. 경행은 움직임의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므로 순간순간의 집중력을 길러줍니다. 그래서 경행으로 생긴 집중은 좌선으로 생긴 집중보다 잘 깨지지 않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좌선과 경행을 같은 비율로 수행하게 했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이 건강을 위한 특별한 다른 운동은 하지 않고, 오직 경행으로 다리의 근력을 키우고, 소화를 돕고, 혈액순환을 돕고, 체력을 길렀습니다.


그리고 탁발이나 전법여행을 나갈 때도 경행을 해서 알아차림을 유지했습니다. 그만큼 경행은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 경행하는 방법**


이제부터 경행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경행도 좌선과 마찬가지로 단계적으로 하는데 처음에는 알기 쉬운 것부터 가볍게 알아차리다가 점차 자세하게 알아차립니다. 경행의 순서는 서고, 가고, 서고, 돌고, 가고를 반복합니다.


1) 수행자는 먼저 왕복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서 섭니다. 우선 몸의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정면을 향하여  바르게 섭니다. 몸의 긴장을 풀고, 두 손은 앞으로 모아 잡거나 뒤로 뒷짐 지듯이 잡습니다.


2) 경행을 시작하려는 현재의 마음 상태를 한 번 알아차립니다. 바라는 마음, 하기 싫은 마음, 들뜬 마음, 아무 것도 없는 마음 등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3) 마음으로 현재 서 있는 자세에서 얼굴, 어깨, 손, 종아리, 발바닥까지 몸의 느낌을 직접 알아차리면서 죽 내려갑니다. 마음이 발까지 내려오면 발바닥이 닿은 것을 알아차리고, 이제 한 발을 들면서 발뒤꿈치가 들리는 것을 알아차리거나 발바닥이 닿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4) 이것이 잘 이어지면 한 발 전체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5) 그 다음 단계로 들어서 놓음으로 한 걸음을 좀더 세밀하게 알아차립니다.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하고, 앞으로 갈 때는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갑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반드시 멈추어 서서 서있는 몸의 자세를 알아차리고, 다시 돌면서 몸이 돌고 있는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다시 서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가려는 의도에 의해 그 길로 되돌아옵니다.


경행을 할 때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시선은 서너 걸음 앞의 바닥을 봅니다. 처음에는 약간 빨리 걷다가 차츰 적당한 속도를 유지합니다. 경행을 할 때 지나치게 천천히 걸으면 힘이 들어가 긴장할 수 있으며 너무 힘을 주었기 때문에 좌선하려고 앉으면 지쳐서 잠에 빠질 수 있습니다.



1. 섬의 자세

(1) 마음이 몸의 상체에서 하체까지 몸의 느낌을 죽 느끼면서 서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2) 이제 마음을 발에 두고 발이 바닥에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2. 갈 때

걸을 때 단계별로 나누어 알아차립니다. 이 경우에도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만 알아차립니다.


(1) 한 발을 들어서 놓으면서 발바닥이 바닥에 "닿음"을 알아차립니다.(1분절)

오른발 왼발이 닿을 때 닿는 것 하나만 마음이 직접 느낍니다.

(2) 닿음이 잘 진행되면 좀 더 길게 오른 발, 왼발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1분절로 알기)

(3) 1분절이 잘 진행되면 한 발의 들어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2분절로 알기)

이 때에는 발을 들 때의 가벼움이나 놓을 때의 무거움의 느낌이 있으면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4) 2분절이 잘 진행되면 이제는 한 발을 들어서, 앞으로, 놓음으로 좀더 자세하게 알아차립니다.(3분절로 알기)

시작과 중간과 끝의 전체를 알아차립니다.

또한 발을 들 때의 화대, 움직일 때의 풍대, 내려놓을 때의 수대, 닿았을 때의 지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5) 3분절에서 더 집중을 하고자 할 때는 "뒤꿈치 들고, 발을 들어서, 앞으로, 놓고, 누름"을 알아차립니다.(5분절 알기)

(6)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또 마음의 의도가 보이면 가려는 의도, 서려는 의도, 돌려는 의도를 알아차립니다.

(7) 집중이 잘 되어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면 차츰 발목, 무릎, 넓적다리, 허리의 움직임까지도 모두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3. 돌아 설 때

이 때에도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1) 천천히 돌면서 발의 움직임을 모두 알아차립니다.

(2) 혹은 어깨에 마음을 두고 어깨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경행을 여러 단계로 알아차리라고 설명을 하지만, 이것은 이론이고, 실제로는 자신의 알아차리는 힘만큼, 알아차려지는 만큼 알아차립니다. 수행자가 한번에 너무 많은 대상을 완벽하게 다 알려고 힘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완벽하게 다 보려는 마음 때문에 몸이 긴장하며 마음이 들떠서 대상에 붙어있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려지는 만큼만 꾸준하게 자연스럽게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것입니다.


길을 걸으면서 혹은 운동장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을 때에는 다리의 동선(풍대)을 주시하는 것이 알아차림의 연속에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걸으면서 집중이 되면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3. 와선(臥禪)



수행자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누워서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 몸과 마음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의무가 있습니다.


와선은 수행자의 자세가 누웠을 때 알아차림을 하는 것입니다. 주로 아침에 잠에서 깰 때, 저녁에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또는 자리에 누운 채로 알아차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잠들기 전에 알아차리는 것은 그날 하루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마음이며, 이런 알아차림을 통해 깨끗한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우면 몸이 최대한으로 이완되기 때문에 호흡이 잘 나타나서 호흡을 보기가 쉬워집니다. 또한 누웠을 때는 잠을 잘 일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욕망이 일어나지 않아 몸에 마음을 집중을 하기가 좋습니다.


잠자리에서 이렇게 매일 알아차림을 하는 것이 숙련이 되면 이 생에서 마지막 죽을 때, 즉 정신이 혼미해질 때 알아차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수행자가 죽음을 맞이할 때 알아차림으로 깨어있는 맑은 정신상태를 유지하면 그 마음(사몰심)을 조건으로 일어난 다음 마음, 즉 다음 생을 결정하는 마음(재생연결식)이 맑고 청정해집니다.


알아차림이 있는 사몰심은 다음 생을 지혜가 있는 물질과 정신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에 알아차림으로 깨어있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새로운 생은 반드시 전생의 죽는 순간의 마음상태와 같은 파장의 몸과 마음을 기본으로 하여 시작합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잠들기 전에 혼미해지는 물질과 정신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 죽는 순간 혼미하지 않고 깨어있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생에서 닦은 알아차림의 힘은 다음 생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가 됩니다.



1) 아침에 일어날 때 알아차리기

(1) 누운 자리에서 먼저 잠을 깬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2) 그리고 누워있는 몸으로 돌아와서 일어남, 꺼짐의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잠이 깨자마자 마음을 보면 벌써 근심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마음이 미래로 달아나 있지만, 이때 그 마음을 먼저 보아주고 현재로 돌아와 잠깐이라도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를 가장 좋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하루를 좋게 시작하면 이 좋은 파장이 다음 마음에 영향을 주며 계속 좋은 파장을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이 됩니다. 하루의 시작이 좋으면 하루가 끝날 때까지 좋게 됩니다.




2) 저녁에 자기 전에 알아차리기

(1) 자리에 누운 상태로 먼저 잠을 청하는 현재의 마음을 한 번 알아차립니다.

(2) 그리고 침대 바닥에 닿아있는 몸의 부분 부분을 그대로 죽 알아차려 내려갑니다.

(3) 그 다음 몸의 윗부분으로 얼굴, 목, 가슴, 배의 느낌을 알아차리다가 복부에서 호흡이 잡히면 배의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오면 잠을 잡니다.


보통 와선을 하면 금방 잠이 드는데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잠들면 깨끗한 숙면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알아차림에 의해 마음에 번뇌가 없는 깨끗한 상태에서 잠들기 때문에 악몽을 꾸거나 선잠을 자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잠을 못자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일어나 앉아서 좌선을 합니다.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면 자연스럽게 잠을 자면 됩니다.


보통 잠이 오지 않으면 지금 잠을 못자면 내일 힘들 것이라는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고, 이 두려움이 자꾸 생각을 일으키고, 점차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더욱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불면증일 때는 반드시 불안해하는 현재의 마음을 먼저 보아주고 바로 몸의 호흡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3) 숙면 중에는 물질과 정신을 대상으로 하는 알아차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여섯 감각기관이 작용하지 않고 잠재의식인 바왕가의 흐름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림은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할 수 없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근경식의 촉으로 현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정신적 현상이 알아차릴 대상이며, 이 대상은 매 순간 조건에 의해 달라집니다. 이 변화가 수행의 알아차릴 대상인데, 잠자는 상태는 잠재의식(바왕가)의 흐름이 이어질 뿐, 근경식의 촉으로 일어나는 알아차릴 대상인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숙면 중에는 현재의 오온이라는 법을 깨어서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래서 숙면을 취하면서도 숙면을 취하는 자신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수행자가 낮 동안에 알아차림이 잘 이어져 의식이 명료하게 깨어있었다면 그 힘으로 밤에도 잠이 들지 않고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계속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수행센터에서 하루 종일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집중 수행을 하면 밤에 누워있어도 잠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아침까지 와선으로 알아차림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잠을 자지 않았어도 아침에 몸이 가볍고 모든 피로가 풀려있습니다. 밤새 깨끗한 마음의 작용인 알아차림을 이어갔기 때문에 몸도 깨끗한 상태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4개월간 주무시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수행자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될 수 있으면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고 이어가도록 노력을 해야 하지만, 밤에 잠을 자면서 잠 속에서도 알아차림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도 하루에 네 시간씩은 주무셨답니다.


몽중일여는 관념을 대상으로 하는 사마타 수행의 이야기이지 실재하는 reality를 대상으로 하는 위빠사나 수행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4.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림


1) 지혜를 개발하는 위빠사나 수행은 법당이나 수행 처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보통 하루15시간 이상 활동을 하는데, 그 중 한두 시간의 좌선과 경행으로 알아차림이 잘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일상에서 활동하는 모든 시간을 알아차림과 함께 한다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급속히 성장할 것입니다.


다행히 위빠사나 수행은 알아차릴 대상이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이므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자신을 알아차리는 수행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날 때 일어나는 과정을 알아차릴 수 있고, 화장실에서 모든 행위를 알아차릴 수 있고, 세수할 때 세수하는 몸의 움직임과 느낌들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식사시에 손의 움직임, 음식 맛의 변화, 또는 음식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 급하게 빨리 먹으려는 마음 등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자신의 발걸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다가 직장의 일이 생각나면 생각한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발걸음을 알아차립니다. 직장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말하려는 의도와 상대의 말에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직원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반응하는 자신을 먼저 알아차릴 대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어 직장에서 말이나 행동의 실수가 적어지고, 가장 바르고 적절한 행동으로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알아차림이 없다면 대상과 부딪쳐 일어난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넘어가서 자신도 모르게 탐욕과 성냄으로 행동을 하여 미래의 괴로울 원인을 심게 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없는 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괴로움의 양과 질도 커집니다. 


그 외에도 일상에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모든 행위(몸의 움직임)와 거기에서 나타나는 느낌(受)과 생각(想)과 의도(行)와 그들을 이끄는 마음(識)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수행자가 이렇게 현재를 알아차리려고 노력만 하면 하루 종일 업무와 수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수행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알아차린 결과로 즉시 언행이 바르게 되길, 화가 안 나기를, 욕심을 내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바른 알아차림을 할 수 없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미 현재의 마음상태가 바라는 마음에 의해 들떠있어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할일은 그 무엇도 바라는 것 없이 현재를 그냥 단순하게 알아차리는 것뿐입니다.


수행의 좋은 과보는 수행을 한 만큼 조건이 성숙되어 저절로 나타납니다. 수행자가 기다린다고 빨리 오는 것이 아니고 기다리면 오히려 더 늦어집니다. 그냥 편안하게 현재를 알고, 알고....를 계속 이어가는 것만이 수행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 선원에서 좌선이나 경행으로 알아차림이 숙련되면, 일상에서 알아차림을 유지할 수 있고, 이렇게 알아차림이 이어지는 수행자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현상을 알아차림으로 다 수용하는 지혜가 생깁니다. 이 지혜는 수행자를 항상 평화롭고 안락하게 살도록 이끌어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주자주 알아차리려는 의도를 내어, 현재를 알아차려야지 하고, 실제로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알아차림을 생각으로만 하고, 실제 알아차리는 행위가 없다면 이는 망상이지 수행이 아닙니다. 이때라도 현재 생각만 한 것을 알고, 즉시 몸으로 돌아와

몸의 실재하는 느낌을 알아차리면 그때부터 위빠사나 수행이 시작됩니다.




2) 그럼  이렇게 일상에서 알아차림을 하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


그것은 첫 시간에 손바닥을 마주 대고 느낌을 알아차려 보았듯이 마음을 현재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고 있다면 마음에 탐진치라는 번뇌가 일어날 틈이 없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마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곧 마음은 정화되고 고요해져서 오온의 실재하는 성품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 이렇게 '있는 그대로' 대상의 성품을 보는 것이 위빠사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시작은 마음을 현재 자신의 몸에 붙이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마음이 감각기관(6근)을 통해서 밖의 감각대상(6경. 형상, 소리, 냄새, 맛, 접촉, 생각)과 만나면, 즉시 좋고, 싫고, 해롭고, 이롭고 라는 느낌과 인식을 바탕으로

일어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이 일을 합니다. 그 결과로 괴로움을 다시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번뇌를 생산하지 않으려면 일상에서 항상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에 주의를 집중해서 알아차림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괴로움을 소멸하는 8정도 위빠사나 수행의 시작이며, 완전한 열반을 얻을 때까지 지속해야하는 선한 마음의 작용(淨心所)입니다.


수행자가 항상 알아차림(sati. 사띠)이라는 티켓을 지니고 있으면 언젠가는 불사(不死)의 문, 즉 열반에 도착하는 열차를 타게 됩니다.



3) 일상에 알아차림(사띠. 正念)은 분명한 앎(삼빠쟌나. 正知)과 연결됩니다. 대념처경의 신념처 중 분명한 앎(삼빠쟌나) 편에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돌아갈 때도 분명히 알면서 한다. 팔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에도 분명히 알면서 한다.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 때에도 분명히 알면서 한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에도 분명히 알면서 한다. 대소변을 볼 때에도 분명히 알면서 한다. 가고 서고 앉고 잠들거나 잠에서 깨어날 때에도 말하거나 침묵 할 때에도 분명히 알면서 한다.”


분명한 앎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현재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하여 네 가지 분명한 앎을 하는 것입니다.


1) 이익이 있는가, 없는가?

2) 시기 상황이 적절한가? 이익은 있지만 시기가 적절하지 않은가?


3) 지금 대상이 알아차릴 대상(실재. 몸과 마음)인가? 아닌가?

즉  알아차릴 대상이 아닌 것(관념)을 붙잡고 있는가?,


4) 지금 대상을 무상, 고, 무아의 지혜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 대상을 어리석음으로 보고 있는가?


이것이 네 가지 분명한 앎(삼빠쟌나)입니다.


대념처경의 분명한 앎은, 일상의 모든 행위에 대한 알아차림으로, 현재의 행위가 해탈열반을 얻는데 이익이 있는지, 시기 상황이 적절한지, 관념이 아닌 실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리석음 없는, 무상, 고, 무아의 측면에서 집착 없이 행위를 하는지 등으로

자신의 행위를 분명한 앎(正知. 삼빠쟌나)과 함께 알아차림을 합니다. 결국 완전한 알아차림(正念)은 분명한 앎(正知)과 함께 합니다.





 

출처 : 정신을 바짝차리고
글쓴이 : 해맑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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