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스크랩] 5. 신념처 수행의 이익과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

수선님 2018. 4. 15. 13:17


 

5. 신념처 수행의 이익과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


1. 신념처 수행의 이익.


대념처경에는 신념처 수행의 대상으로 1)호흡에 대한 알아차림, 2)몸의 자세에 대한 알아차림, 3)분명한 앎을 지닌 알아차림, 4)몸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에 대한 성찰, 5)물질의 요소에 대한 성찰, 6)묘지에서의 아홉 가지 성찰로 모두 14가지가 수행의 대상입니다.


이와 같이 몸에 대하여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을 하면 어떤 이익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지금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마음이 알아차리면, 마음은 과거 미래가 아닌 현재로 와 있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알아차릴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현재만이 알아차릴 바른 대상입니다.


실제로 마음이 과거 미래에 가 있으면 후회나 들뜸의 상태가 되며, 그 상태에서는 현재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불선한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몸에 붙여 현재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면 그 순간 마음은 번뇌가 없는 깨어있는 상태가 되어 바른 말과 행위가 뒤따릅니다.


수행자는 항상 어떤 상황을 만나든 알아차리고 빨리 몸으로 돌아와 현재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관념에 빠지지 않고, 실재인 법을 대상으로 볼 수 있으며, 탐진치가 없는 청정한 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2) 우리의 마음은 자꾸 밖으로 나가는 습성이 있는데, 마음이 밖으로 나갔다 들어올 때는 반드시 대상에 대하여 선악, 미추, 호 불호, 등의 번뇌를 가지고 들어옵니다. 신념처는 밖을 향해 달아나는 마음을 몸에 붙여서 밖의 대상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을 길들여 주는 이익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마음이 몸을 알아차리는 동안은 번뇌가 들어올 틈이 없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신념처로 마음을 몸에 붙이는 것은 바른 노력이며, 이렇게 알아차린 만큼 마음이 순화됩니다.


3) 마음을 몸에 붙여 6문에서 알아차림을 하면 이 알아차림이 몸의 여섯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번뇌(탐진치)를 걸러내어 불선업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신념처로 6문을 지킴으로 자연히 계율을 지키게 되며, 그 다음 정(定)과 혜(慧)가 뒤 따릅니다.


4)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으로 알아차림이 좋아지면 마음이 안정되어 바른 집중이 생기며,  이런 집중된 마음에서 걸으려는 의도에 의해 풍대가 일어나서 걷는 동작이 있을 뿐이라고 있는 그대로 알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매순간 의도에 의해서 움직이는 물질이 있을 뿐, ‘나’라고 하는 자아가 있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무아를 이해하게 됩니다. 오직 그 순간 조건에 의한 물질과 정신의 작용이 일어나고, 이것도 조건에 의해 다시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온은 조건에 의해서 매 순간 변하고, 조건에 의해 일어나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그 결과로 괴롭다는 無常. 苦. 無我 의 성품을 보여주지만, 우리는 아직 보는 힘이 없어 보지 못할 뿐입니다.


이렇게 몸의 현상을 마음이 알아차리면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보는 지혜가 익어갑니다. 그래서 몸 아플 때도 마음까지 아프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것이 위빠사나 1단계 지혜인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입니다.


5) 좌선이나 경행으로 마음이 몸의 현상들을 알아차리다 보면, 모든 현상이 나의 의지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성숙된 조건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현상이든지 원인과 결과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힘이 생깁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2단계 지혜인 원인과 결과를 식별하는 지혜, 즉 연기를 이해하는 지혜입니다.


결국 신념처 수행은 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몸을 '나의 것' '나' '나의 자아'라고 집착하는 유신견에서 벗어나고, 몸을 단지 물질적 현상으로 보는 안목이 생기며, 몸에 대한 잘못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우선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좌선이나 경행을 하는 것입니다.





2.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


이제 실제로 좌선과 경행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만나게 되는 수행의 장애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수행을 시작하면 맨 먼저 나타나는 것이 다섯 가지 장애입니다.


모처럼 마음을 내어 방석 위에 다리를 가지런히 놓고 호흡을 알아차려 봅니다. 처음에는 배가 일어나고 꺼지는 모양, 움직임을 알아차리다가 점점 그 움직임 안에 있는 느낌들이 보이고 그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공기가 들어오면서 빵빵하고 공기가 빠지면서 푹 꺼지는, 공기의 들어오고 나가는 느낌들이 잡히기도 하고, 묵직하고 가볍고 따뜻하고 시원하며 계속 변하는 호흡의 느낌들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매 호흡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이 계속 유지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호흡의 일어남 꺼짐 쉼의 상태를 분명하게 자세히 볼 수 있는 집중(사마디)의 상태로 갑니다. 이 경우는 수행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보 수행자들은 호흡이 잘 느껴지지도 않고, 머리 속에서는 계속 생각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리가 저리고 아프기 시작합니다. 혹은 정신이 멍해지면서 졸리고, 몸은 잠을 자고 싶어 합니다.


또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이걸 왜 하지? 하기 싫다! 이것을 해서 정말 평화로워질까? 사람으로서 과연 깨달을 수가 있기는 한 것인가? 등등의 의심이 나면서 좌선을 그만두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수행자가 수행을 시작하면 맨 처음 부딪치는 장애로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이것은 수행을 못하게 막는 장애이지만, 수행자가 대처하기에 따라서는 수행을 도와주는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수행 중에 나타나는 망상, 통증, 가려움, 졸음, 나태, 의심, 성냄, 바라는 마음 등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맞이하여 알아차리면 알아차릴 때마다 알아차리는 힘이 쌓여갑니다.


수행자는 이런 장애를 법으로 받아들여 반응하지 않고 제대로 알아차리면, 지금 대상을 알아차린 마음에 의해 그 전에 있었던 장애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장애들이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 조건에 의해 사라지는 생멸을 보아 무상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장애들은 고통이며,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이런 장애를 통해서 무상, 고, 무아의 법을 통찰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장애들은 그동안 살면서 쌓아온 자신의 축적된 성향(업력)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살면서 쌓아온 탐진치의 마음습관들이 일어날 조건을 만나서 일어나는 한 순간의 현상들입니다.


수행자가 장애를 싫어하지 않고 나타나는 대로 알아차려줄 때, 장애에 걸리지 않고 오히려 장애를 통해서 지혜가 성숙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장애와 함께 발전해 가는 것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수행자가 나타난 장애(손님)를 알아차려 주면 장애는 자기할 일을 하고 사라지지만, 장애를 싫어하거나 무시하면 장애는 아주 자리 잡고 보아줄 때까지 계속 나타납니다. 싫어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탐욕과 성냄이라서 장애를 일으키는 마음의 힘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장애에 휘둘려 현재의 대상인 호흡에 마음을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장애를 정말 장애로 만들거나 또는 법을 보여주는 스승으로 만드는 것은 수행자의 마음자세와 알아차리는 힘이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장애에 대하여 반응하지 않고, 장애를 알아차린 뒤에는 반드시 주 대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장애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알아차립니다.


① 장애[法]가 일어난 것을 알아차립니다. - 알아차림

② 장애에 반응한 마음이나 장애를 일으킨 마음을 봅니다. - 심념처

③ 그 마음 때문에 일어난 가슴이나 머리의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며 그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알아차립니다. - 수념처

④ 그런 다음 반드시 주 대상으로 돌아와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신념처


이런 방법으로 현재를 알아차리는 마음이 장애와 수행의 주 대상으로 오가면서 계속 나타나는 대로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고 법이 되어 오직 "대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만 남게 됩니다. 이제야 수행자의 마음이 안정되어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지혜 수행으로 바르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수행 중에 나타나는 장애에 반응하지 않고 알아차리면, 알아차리는 힘이 쌓여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에 대해서 알아차림으로서 걸리지 않고, 모든 괴로움을 나타날만해서 나타난 법으로 받아들이는 힘이 생깁니다.


일상의 모든 문제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스스로 선택한 괴로움입니다. 이 괴로움의 원인은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탐욕과 성냄이라는 마음의 힘 때문에 겪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의 힘을 선한 쪽으로 바꾸는 것에서만 답이 있습니다.


수행자가 이런 일상의 문제를 법으로 알아차리면, 일단 마음이 안정되고, 안정된 마음은 현실의 문제를 바르게 볼 수 있게 하고 그 결과로 가장 바른 행위를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 보입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문제라고 괴로워하지 않고, 그것을 당당하게 수용하여 가장 바른 말과 행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깁니다.


이것은 알아차림(sati)으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여의고, 관용 자애 지혜라는 새로운 마음습관을 길들여 그동안 축적된 탐진치의 힘을 차츰 약화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겪는 장애나 일상에서 겪는 괴로움이 사실은 법이며, 이것은 지혜를 성숙시키려고 '와서 보라'고 나타난 수행자의 친구이며 스승입니다.



















출처 : 정신을 바짝차리고
글쓴이 : 해맑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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