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주제(S41)
찟따 상윳따 Citta-saṁyutta
족쇄 경(S41:1)
Saṁyoj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맛치까산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많은 장로 비구들은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서 원형천막에 함께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반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까? 아니면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까?”
거기서 어떤 장로 비구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도반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다.”
다른 장로 비구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도반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다.”
2. 한편 찟따 장자가 어떤 일 때문에 미가빠타까에 도착했다. 찟따 장자는 이렇게 들었다.
‘많은 장로 비구들이 맛치까산다에서 망고 원림에 머물렀다. 그들은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서 원형천막에 함께 모여 앉아 ‘도반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까? 아니면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어떤 장로 비구들은 ‘도반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다.’라고 설명했고, 다른 장로 비구들은 ‘도반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다.’라고 설명했다.’라고.
그러자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시여, 많은 장로 비구들이 맛치까산다에서 망고 원림에 머물렀다. 그들은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서 원형천막에 함께 모여 앉아 ‘도반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까? 아니면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어떤 장로 비구들은 ‘도반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다.’라고 설명했고, 다른 장로 비구들은 ‘도반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장로들은 ‘도반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다.’라고 설명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장자여.”
3. “존자들이여, 족쇄와 족쇄가 되는 법들이라는 이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다.
존자들이시여, 그렇다면 이제 비유를 하나 들겠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여기서 어떤 지혜로운 사람들은 제가 하려는 말이 뜻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존자들이시여, 예를 들면 검은 황소와 흰 황소가 하나의 멍에나 밧줄에 묶여 있다 합시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검은 황소는 흰 황소의 족쇄고 흰 황소는 검은 황소의 족쇄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장자여.
장자여, 검은 황소는 흰 황소의 족쇄가 아니고 흰 황소는 검은 황소의 족쇄가 아닙니다. 이 둘은 하나의 멍에나 밧줄에 묶여 있을 뿐입니다.”
“존자들이시여, 그와 같이 눈이 형색들의 족쇄도 아니고 형색들이 눈의 족쇄도 아닙니다. 이 둘을 반연하여 거기서 일어나는 욕탐이 바로 족쇄입니다.
귀가 소리들의 족쇄도 아니고 소리들이 귀의 족쇄도 아닙니다. 이 둘을 반연하여 거기서 일어나는 욕탐이 바로 족쇄입니다.
코가 냄새들의 족쇄도 아니고 냄새들이 코의 족쇄도 아닙니다. 이 둘을 반연하여 거기서 일어나는 욕탐이 바로 족쇄입니다.
혀가 맛들의 족쇄도 아니고 맛들이 혀의 족쇄도 아닙니다. 이 둘을 반연하여 거기서 일어나는 욕탐이 바로 족쇄입니다.
몸이 감촉들의 족쇄도 아니고 감촉들이 몸의 족쇄도 아닙니다. 이 둘을 반연하여 거기서 일어나는 욕탐이 바로 족쇄입니다.
마노(마음)가 법(마음현상)들의 족쇄도 아니고 법들이 마노의 족쇄도 아닙니다. 이 둘을 반연하여 거기서 일어나는 욕탐이 바로 족쇄입니다.”
4. “장자여, 그대는 심오한 세존의 말씀에 정통한 통찰지의 눈[慧眼]을 가졌으니 이것은 참으로 그대에게 이득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그대에게 큰 이득입니다.”
이시닷따 경1(S41:2)
Isida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많은 장로 비구들이 맛치까산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찟따 장자가 장로 비구들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시여, 장로들께서는 내일 저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장로 비구들은 침묵으로 허락하였다.
그러자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들이 허락한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장로 비구들에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2. 장로 비구들은 그 밤이 지나자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찟따 장자의 거처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때 찟따 장자가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는 가장 연장인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 존자시여, ‘요소(界)들의 다양함, 요소들의 다양함’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요소들의 다양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가장 연장인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 존자시여, ‘요소들의 다양함, 요소들의 다양함’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요소들의 다양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가장 연장인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 존자시여, ‘요소들의 다양함, 요소들의 다양함’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요소들의 다양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세 번째에도 가장 연장인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3. 그 당시 장로들 중에서 이시닷따 존자가 가장 어린 나이였다. 이시닷따 존자는 가장 연장인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 존자시여, 제가 찟따 장자의 이 질문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도반 이시닷따여, 그대가 찟따 장자의 질문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오.”
“장자여, 그대는 ‘장로 존자시여, ‘요소들의 다양함, 요소들의 다양함’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요소들의 다양함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시닷따 존자시여.”
“장자여, 세존께서는 요소들의 다양함에 대해서 ‘눈의 요소, 형색의 요소, 눈의 의식의 요소, 귀의 요소, 소리의 요소, 귀의 의식의 요소, 혀의 요소, 맛의 요소, 혀의 의식의 요소, 몸의 요소, 감촉의 요소, 몸의 의식의 요소, 마노의 요소, 법의 요소, 마노의 의식의 요소’로 말씀하셨습니다.
장자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요소들의 다양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4. 찟따 장자는 이시닷따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장로 비구들에게 딱딱하고 부드러운 여러 맛난 음식을 손수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그리고 장로 비구들은 공양을 마치고 발우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그러면서 가장 연장인 존자가 이시닷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이시닷따여, 그대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다니 장합니다. 나에게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도반 이시닷따여, 그러니 다음에도 이러한 질문이 있으면 그대가 그것에 대답을 하십시요.”
이시닷따 경2(S41: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맛치까산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찟따 장자가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시여, 장로들께서는 내일 저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장로 비구들은 침묵으로 허락하였다.
그러자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들이 허락한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장로 비구들에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2. 장로 비구들은 그 밤이 지나자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찟따 장자의 거처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때 찟따 장자가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는 가장 연장인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 존자시여, 이 세상에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생깁니다.
장로 존자시여, 이러한 견해들과 [[디가 니까야] 「범망경」(D1)에서 말씀하신 62가지 견해들은 무엇이 있을 때 존재하고 무엇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가장 연장인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 존자시여, 이 세상에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생깁니다.
장로 존자시여, 이러한 견해들과 『디가 니까야』 「범망경」(D1)에서 말씀하신 62가지 견해들은 무엇이 있을 때 존재하고 무엇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가장 연장인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 존자시여, 이 세상에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생깁니다.
장로 존자시여, 이러한 견해들과 『디가 니까야』 「범망경」(D1)에서 말씀하신 62가지 견해들은 무엇이 있을 때 존재하고 무엇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가장 연장인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3. 그 당시 이시닷따 존자가 장로들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었다. 이시닷따 존자는 가장 연장인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 존자시여, 제가 찟따 장자의 이 질문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도반 이시닷따여, 그대가 찟따 장자의 질문에 대해서 설명을 하십시오.”
“장자여, 그대는 ‘장로 존자시여, 이 세상에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생깁니다. 장로 존자시여, 이러한 견해들과 『디가 니까야』 「범망경」(D1)에서 말씀하신 62가지 견해들은 무엇이 있을 때 존재하고 무엇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습니까?” 라고 질문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시여.”
“장자여, 이 세상에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생깁니다. 장자여, 이러한 견해들과 「범망경」(D1)에서 말씀하신 62가지 견해들은 불변하는 자신이(자아가) 존재한다는 견해[有身見]가 있을 때 존재하고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4. “이시닷따 존자시여, 그러면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有身見]는 어떻게 해서 존재합니까?”
“장자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여,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는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는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는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는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의식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장자여, 이렇게 해서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는 존재합니다.”
“이시닷따 존자시여, 그러면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有身見]는 어떻게 해서 존재하지 않습니까?”
“장자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이해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어,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는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는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는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렇게 해서 불변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5. “이시닷따 존자시여, 이시닷따 존자께서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장자여, 나는 아완띠에서 왔습니다.”
“이시닷따 존자시여, 아완띠에는 이시닷따라는 선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아직 서로 만나 보지는 못한 저희의 도반인데 출가했다고 합니다. 그 존자님을 뵌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장자여.”
“이시닷따 존자시여, 그러면 지금 그 존자께서는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이렇게 말하자 이시닷따 존자는 침묵했다.
“이시닷따 존자시여, 존자께서 바로 그 이시닷따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장자여.”
“이시닷따 존자시여, 이시닷따 존자께서는 맛치까산다의 이 멋진 망고 원림에서 기쁘게 지내십시오. 저는 이시닷따 존자께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으로 성심을 다해 잘 보필하겠습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장자여.”
6. 찟따 장자는 이시닷따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장로 비구들에게 딱딱하고 부드러운 여러 맛난 음식들을 손수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그리고 장로 비구들은 공양을 마치고 발우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그러면서 가장 연장인 존자가 이시닷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이시닷따여, 그대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다니 장합니다. 나에게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도반 이시닷따여, 그러니 다음에도 이러한 질문이 있으면 그대가 그것에 대답을 하십시오.”
7. 그러나 이시닷따 존자는 거처를 정돈하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맛치까산다를 떠났다. 그는 맛치까산다를 떠난 뒤 다시는 거기로 돌아가지 않았다.
마하까의 기적 경(S41:4)
Mahakapāṭihāri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맛치까산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찟따 장자가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시여, 장로들께서는 내일 저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장로 비구들은 침묵으로 허락하였다.
그러자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들이 허락한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장로 비구들에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2. 장로 비구들은 그 밤이 지나자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찟따 장자의 거처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찟따 장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버터를 넣은 우유죽을 손수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그리고 장로 비구들은 공양을 마치고 발우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그러자 찟따 장자는 집안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모두 버리시오.’라고 말한 뒤 장로 비구들의 뒤를 따라갔다.
3. 그날은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 장로 비구들은 그 더위에다 음식까지 먹었기 때문에 마치 몸이 천근만근이나 되는 듯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당시 마하까 존자가 그 장로들 가운데서 가장 어린 나이였다. 마하까 존자는 가장 연장인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 존자시여, 시원한 바람이 불고 구름이 덮개처럼 드리우고 이따금 비가 내리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도반 마하까여, 그렇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구름이 덮개처럼 드리우고 이따금 비가 내리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그러자 마하까 존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구름이 덮개처럼 드리우고 이따금 비가 내리는 그러한 신통을 나투었다.
그것을 본 찟따 장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것이 이 비구 승가 가운데서 가장 나이 어린 비구의 신통의 행이구나.’
4. 마하까 존자는 원림에 도착하자 가장 연장인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 존자시여, 이 정도 하면 되었습니까?”
“도반 마하까여, 그 정도 했으면 충분히 되었습니다. 도반 마하까여, 그 정도 제공했으면 충분합니다.”
5. 승원으로 돌아 온 장로 비구들은 승방으로 들어갔고 마하까 존자도 승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찟따 장자는 마하까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까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는 마하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하까 존자시여, 마하까 존자께서는 제게 인간을 능가하는 신통변화를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자여,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의 윗옷을 마루 위에다 놓고 그 위에다 풀 더미를 펴놓으십시오.”
“알겠습니다, 마하까 존자시여.”라고 찟따 장자는 대답한 뒤 윗옷을 마루 위에다 놓고 그 위에다 풀 더미를 펴놓았다.
이윽고 마하까 존자는 승방으로 들어가서 문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신통을 나투었는데 불이 열쇠구멍과 빗장 안으로부터 나와서 풀 더미를 태웠지만 윗옷을 태우지는 않았다.
그러자 찟따 장자는 윗옷을 턴 뒤 놀라서 털이 곤두선 채로 한 곁에 서 있었다.
마하까 존자는 승방으로부터 나와서 찟따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이 정도 하면 되었습니까?”
“마하까 존자시여, 그 정도 했으면 충분히 되었습니다. 마하까 존자시여, 그 정도 제공했으면 충분합니다.
존자시여, 마하까 존자께서는 맛치까 산다의 이 멋진 망고 원림에서 기쁘게 지내십시오. 저는 마하까 스님께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이 약품으로 성심을 다해 잘 보필하겠습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장자여.”
6. 그러나 마하까 존자는 거처를 정돈하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맛치까산다를 떠났다. 그는 맛치까산다를 떠난 뒤 다시는 거기로 돌아가지 않았다.
까마부 경1(S41:5:)
Kāmabhū-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까마부 존자는 맛치까산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찟따 장자가 까마부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까마부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에게 까마부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 “장자여, 이런 말이 있습니다.
‘흠집 없는 바퀴와 흰 차일을 가졌으며
하나의 바퀴 살을 가진 수레가 구르나니
근심 없고 흐름을 끊었으며
속박 없이 오는 저것을 보라.’
장자여, 이렇게 간략하게 말씀하신 뜻을 그대는 어떻게 자세하게 봅니까?“
“까마부 존자시여, 그런데 이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장자여.”
“까마부 존자시여, 그렇다면 제가 그 뜻을 숙고할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주십시오.”
2. 찟따 장자는 잠시 침묵한 뒤 까마부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까마부 존자시여, 흠집이 없다는 것은 계행을 두고 한 말입니다. 흰 차일이란 해탈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의 바퀴살이란 마음 챙김을 두고 한 말입니다. 구른다는 것은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마차란 네 가지 근본물질을[四大]로 이루어졌으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인 이 몸을 두고 한 말입니다.
까마부 존자시여, 탐욕은 근심입니다. 성냄은 근심입니다. 어리석음은 근심입니다. 번뇌 다한 비구는 이것들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존재하지 않게 하였고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번뇌 다한 비구는 근심이 없다고 말해집니다.
까마부 존자시여, 오는 것은 아라한을 두고 한 말입니다. 흐름이란 갈애를 두고 한 말입니다. 번뇌 다한 비구는 이것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존재하지 않게 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번뇌 다한 비구는 흐름을 끊었다고 말해집니다.
까마부 존자시여, 탐욕은 속박입니다. 성냄은 속박입니다. 어리석음은 속박입니다. 번뇌 다한 비구는 이것들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존재하지 않게 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번뇌 다한 비구는 속박이 없다고 말해집니다.”
까마부 존자시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흠집 없는 바퀴와 흰 차일을 가졌으며
하나의 바퀴살을 가진 수레가 구르나니
근심 없고 흐름을 잘랐으며
속박 없이 오는 저것을 보라.’
까마부 존자시여, 세존께서 이렇게 간략하게 말씀하신 뜻을 저는 이렇게 자세하게 봅니다.”
3. “장자여, 그대는 심오한 부처님의 말씀에 정통한 통찰지의 눈[慧眼]을 가졌으니 이것은 참으로 그대에게 이득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그대에게 큰 이득입니다.”
까마부 경2(S41: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까마부 존자는 맛치까산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찟따 장자가 까마부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까마부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2. “까마부 존자시여, 얼마나 많은 작용들[行]이 있습니까?”
“장자여, 세 가지 작용들이 있으니 몸의 작용[身行], 말의 작용[口行], 마음의 작용[心行]입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부 존자시여.”라고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3. “까마부 존자시여, 그러면 얼마나 많음 몸의 작용들이 있고, 얼마나 많은 말의 작용이 있고, 얼마나 많은 마음의 작용들이 있습니까?”
“장자여, 들숨날숨은 몸의 작용이고, 일으킨 생각[거친 사유.尋]과 지속적인 고찰[미세한 사유.伺]은 말의 작용이고, 느낌과 인식(지각)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부 존자시여.”라고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4. “까마부 존자시여, 그러면 왜 들숨날숨은 몸의 작용입니까? 왜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은 말의 작용입니까? 왜 느낌과 인식은 마음의 작용입니까?”
“장자여, 들숨과 날숨은 몸에 속하는 것이고, 이런 법들은 몸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들숨날숨은 몸의 작용입니다.
장자여, 먼저 생각을 일으키고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뒤에 말을 터뜨립니다. 그래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말의 작용입니다.
장자여, 느낌과 인식은 마음에 속하는 것이고 이런 법들은 마음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느낌과 인식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부 존자시여.” 라고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5. “까마부 존자시여, 그러면 어떻게 상수멸(想受滅, 인식과 느낌의 그침)에 듭니까?”
“장자여, 비구가 상수멸에 들 때 ‘나는 상수멸에 들 것이다.’라거나, ‘나는 상수멸에 들고 있다.’라거나, ‘나는 상수멸에 이미 들었다.’라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상수멸에 들기 전에 그렇게 마음을 닦은 것이 그를 그대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부 존자시여.” 라고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6. “까마부 존자시여, 비구가 상수멸에 들 때 어떤 법들이 먼저 소멸합니까? 몸의 작용들입니까, 아니면 말의 작용들입니까. 아니면 마음의 작용들입니까?”
“장자여, 비구가 상수멸에 들 때 먼저 말의 작용들이 소멸하고 그 다음이 몸의 작용들이고 그 다음이 마음의 작용들입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부 존자시여.” 라고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7. “존자시여, 그러면 죽어서 임종한 사람과 상수멸에 든 비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장자여, 죽어서 임종한 사람은 몸의 작용이 소멸하고 가라앉아버렸고, 말의 작용이 소멸하고 가라앉아버렸고, 마음의 작용이 소멸하고 가라앉아버렸습니다. 목숨이 다했고, 온기도 다해버렸고, 감각기능들이 완전히 부수어졌습니다.
장자여, 그러나 상수멸에 든 비구는 몸의 작용이 소멸하고 가라앉아버렸고, 말의 작용이 소멸하고 가라앉아버렸고, 마음의 작용이 소멸하고 가라앉아버렸지만 목숨은 다하지 않았고 온기도 다하지 않았고 감각기능들은 맑고 깨끗합니다.
장자여, 이것이 죽어서 임종한 사람과 상수멸에 든 비구의 차이점입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부 존자시여.” 라고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8. “까마부 존자시여, 그러면 어떻게 상수멸에서 출정합니까?”
“장자여, 비구가 상수멸에서 출정할 때 ‘나는 상수멸에서 출정할 것이다.’라거나, ‘나는 상수멸에서 출정하고 있다.’라거나, ‘나는 상수멸에서 이미 출정하였다.’라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상수멸에 들기 전에 그렇게 마음을 닦은 것이 그를 그대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부 존자시여.”라고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9. “까마부 존자시여, 그러면 비구가 상수멸에서 출정할 때 어떤 법들이 먼저 일어납니까? 몸의 작용입니까, 아니면 말의 작용입니까, 아니면 마음의 작용들입니까?”
“장자여, 비구가 상수멸에서 출정할 때 먼저 마음의 작용들이 일어나고, 그 다음이 몸의 작용들이고, 그 다음이 말의 작용들입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부 존자시여.” 라고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10. “까마부 존자시여, 그러면 상수멸로부터 출정하는 비구는 얼마나 많은 감각접촉[觸]과 닿게 됩니까?”
“장자여, 상수멸로부터 출정하는 비구는 세 가지 감각접촉과 닿게 됩니다. 그것은 공한 감각접촉과 표상 없는 감각접촉과 원함 없는 감각접촉입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부 존자시여.” 라고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11. “까마부 존자시여, 그러면 상수멸로부터 출정하는 비구의 마음은 무엇으로 기울고 무엇에 기대고 무엇을 향합니까?”
“장자여, 상수멸로부터 출정하는 비구의 마음은 멀리 여읨으로 기울고 멀리 여읨에 기대고 멀리 여읨을 향합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부 존자시여.”라고 찟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12. “까마부 존자시여, 그러면 상수멸을 증득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법들의 큰 도움이 있어야 합니까?”
“장자여, 그대는 처음에 질문했어야 할 것을 뒤에 질문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설명하겠습니다. 장자여, 상수멸을 증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법의 큰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마타와 위빳사나입니다.”
고닷따 경(S41:7)
Goda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고닷따 존자는 맛치까산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찟따 장자가 고닷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고닷따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에게 고닷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무량한 마음의 해탈과 무소유의 마음의 해탈과 공한 마음의 해탈과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이라는 이러한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까? 아니면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까?”
“고닷따 존자시여, 여기에 하나의 방법이 있어서 이 방법에 의하면 이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 있어서 이 방법에 의하면 이 법들은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다.”
2. “장자여, 그러면 어떤 방법이 있어서 그 방법에 의하면 이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까?”
"고닷따 존자시여, 여기 비구는 자애가 함께 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뭅니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뭅니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충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고 자애가 함께 한 마음으로 모든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여기 비구는 연민이 함께 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뭅니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뭅니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충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고 자애가 함께 한 마음으로 모든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여기 비구는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 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뭅니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뭅니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충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고 자애가 함께 한 마음으로 모든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여기 비구는 평온이 함께 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뭅니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뭅니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기처럼 여기고, 충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고 평온이 함께 한 마음으로 모든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이를 일러 무량한 마음의 해탈이라고 합니다.”
3.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무소유의 마음의 해탈입니까?”
고닷따 존자시여, 여기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에 들어 머뭅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이를 일러 무소유의 마음의 해탈이라 합니다.”
4.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공한 마음의 해탈입니까?”
여기 비구는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서 ‘이것은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하다.’라고 숙고합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이를 일러 공한 마음의 해탈이라 합니다.”
5.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입니까?”
고닷따 존자시여, 여기 비구는 모든 표상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들어 머뭅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이를 일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이라 합니다.”
6. "고닷따 존자시여, 이런 방법이 있어서 이 방법에 의하면 이 법들은 뜻도 다르고 문자도 다릅니다.”
7. "장자여, 그러면 어떤 방법이 있어서 그 방법에 의하면 이 법들은 뜻도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까?”
“고닷따 존자시여, 탐욕은 한계를 짓는 것이고, 성냄은 한계를 짓는 것이고 어리석음은 한계를 짓는 것입니다. 번뇌 다한 비구는 이것들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존재하지 않게 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습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어떠한 무량한 마음의 해탈이 있더라도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 그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런데 이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은 탐욕이 공하고 성냄이 공하고 어리석음이 공합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탐욕은 무엇이 있는 것이고 성냄은 무엇이 있는 것이고 어리석음은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번뇌 다한 비구는 이것들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존재하지 않게 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습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어떠한 무소유의 마음의 해탈이 있더라도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 그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런데 이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은 탐욕이 공하고 성냄이 공하고 어리석음이 공합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탐욕은 표상을 만드는 것이고 성냄은 표상을 만드는 것이고 어리석음은 표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번뇌 다한 비구는 이것들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존재하지 않게끔 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습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어떠한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이 있더라도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 그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런데 이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은 탐욕이 공하고 성냄이 공하고 어리석음이 공합니다.
고닷따 존자시여, 이러한 방법이 있어서 이 방법에 의하면 이 법들은 뜻은 하나이고 문자만 다릅니다.”
8. “장자여, 그대는 심오한 부처님의 말씀에 정통한 통찰지의 눈[慧眼]을 가졌으니 이것은 참으로 그대에게 이득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그대에게 큰 이득입니다.”
니간타 나따뿟따 경(S41:8)
Nigaṇṭhanāṭapu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맛치까산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장자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가 ‘일으킨 생각(거친 사유)과 지속적인 고찰(미세한 사유)이 없는 삼매가 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의 소멸은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을 믿습니까?”
“존자시여, 저는 세존께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는 삼매가 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의 소멸은 존재한다.’라고 하신 것을 믿음으로 모두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2. 이렇게 말하자 니간타 나따뿟따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회중을 둘러본 뒤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찟따 장자의 올곧음을 보시오. 찟따 장자는 참으로 정직합니다. 찟따 장자는 남을 현혹시키지 않습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치 그물로 바람을 잡으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강가 강의 흐름을 자신의 주먹으로 막으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3. “존자시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혜와 믿음 가운데서 어떤 것이 더 수승합니까?”
“장자여, 믿음보다는 지혜가 더 수승합니다.”
“존자시여, 저는 원하기만 하면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존자시여, 저는 원하기만 하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들어 머뭅니다.
존자시여, 저는 원하기만 하면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존자시여, 저는 원하기만 하면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존자시여, 저는 참으로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봅니다. 그러므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는 삼매가 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의 소멸은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제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믿음으로 다가가겠습니까?”
4. 이렇게 말하자 니간타 나따뿟따는 자신의 회중을 곁눈질로 둘러본 뒤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찟따 장자의 올바르지 못함을 보시오. 찟따 장자는 참으로 교활합니다. 찟따 장자는 남을 현혹시킵니다.”
“존자시여, 조금 전에 존자께서는 ‘그대들은 찟따 장자의 올바름을 보시오. 찟따 장자는 참으로 정직합니다. 찟따 장자는 남을 현혹시키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그대들은 찟따 장자의 올바르 못함을 보시오. 찟따 장자는 참으로 교활합니다. 찟따 장자는 남을 현혹시킵니다.’라고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존자시여, 만일 당신의 첫 번째 말씀이 진실이라면 나중 것은 거짓입니다.
존자시여, 만일 당신의 첫 번째 말씀이 거짓이라면 나중 것은 진실입니다.
5. "존자시여, 그리고 열 가지 법다운 질문이 있습니다. 만일 이것의 뜻을 아신다면 니간타의 회중과 더불어 제게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고,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고,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고,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고,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고,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6. 그러나 찟따 장자는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이 열 가지 법다운 질문을 실제로 묻지는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왔다.
나체수행자 깟사빠 경(S41:9)
Acelakssap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맛치까산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깟사빠 존자여, 당신은 출가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장자여, 내가 출가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깟사빠 존자시여, 그러면 당신은 이 30년 동안에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하여 편안하게 머무르십니까?”
“장자여, 나는 이 30년 동안에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그 어떤 것도 증득하지 못했고 편안하게 머무르지도 못합니다. 단지 나체로 살고 머리를 깎고 앉을 자리에 까는 좌구를 청소하는 도구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2. 이렇게 말하자 찟따 장자는 나체수행자 깟사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이롭습니다, 깟사빠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존자시여. 얼마나 법이 잘 설해졌으면 30년 동안에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그 어떤 것도 증득하지 못했고 편안하게 머무르지도 못하며, 단지 나체로 살고 머리를 깎고 앉을 자리에 까는 좌구를 청소하는 도구를가지고 있을 뿐이라니요!”
3. “장자여, 그러면 그대는 얼마나 오랫동안 재가신도로 있었습니까?”
“깟사빠 존자시여, 제가 재가신도가 된 지도 30년이 되었습니다.”
“장자여, 그러면 그대는 이 30년 동안에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하여 편안하게 머뭅니까?”
“깟사빠 존자시여,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깟사빠 존자시여, 저는 원하기만 하면 감각적 욕망(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깟사빠 존자시여, 저는 원하기만 하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들어 머뭅니다.
깟사빠 존자시여, 저는 원하기만 하면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깟사빠 존자시여, 저는 원하기만 하면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깟사빠 존자시여, 만일 제가 세존보다 먼저 죽는다면 세존께서 저를 두고 ‘찟따 장자에게는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그런 족쇄가 남아 있지 않다.’라고 설명하시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닙니다.”
4. 이렇게 말하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찟따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이롭습니다, 장자여. 놀랍습니다, 장자여. 얼마나 법이 잘 설해졌으면 흰 옷을 입는 재가자가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할 수 있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다니요!
장자여, 나는 이 법과 율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5. 그러자 찟따 장자는 나체수행자 깟사빠를 데리고 장로 비구들에게로 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시여, 이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재가에 있었을 때 저의 오랜 친구였습니다. 장로들께서는 이 사람을 출가시켜주십시오. 구족계를 주십시오. 제가 이 사람을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으로 성심을 다해 잘 보필하겠습니다.”
6.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이 법과 율에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깟사빠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7. 깟사빠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병문안 경(S41:10)
Gilānadass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맛치까산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장자여, 그대는 ‘나의 미래세에 전륜성왕이 되리라.’라는 염원을 가지십시오.”
이렇게 말하자 찟따 장자는 그 숲의 신들과 나무의 신들과 약용식물과 고목에 거주하는 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역시 무상하고, 그것도 역시 견고하지 않고, 그것도 역시 버리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이렇게 말하자 찟따 장자의 친구와 동료와 가족과 친척들은 찟따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찟따여, 마음 챙김을 확립하십시오.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했기에 그대들은 나에게 ‘찟따여, 마음 챙김을 확립하십시오.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는것입니까?”
“찟따여, 당신은 ‘그것도 역시 무상하고, 그것도 역시 견고하지 않고, 그것도 역시 버리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숲의 신들과 나무의 신들과 약용식물과 고목에 거주하는 신들이 ‘장자여, 그대는 ‘나는 미래세에 전륜성왕이 되리라.’라는 염원을 가지십시오.’라고 말했기 때문이요. 그래서 나는 ‘그것도 역시 무상하고, 그것도 역시 견고하지 않고, 그것도 역시 버리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3. “찟따여, 그러면 숲의 신들과 나무의 신들과 약용식물과 고목에 거주하는 신들은 무슨 이로움을 관찰하기 때문에 ‘장자여, 그대는 ‘나는 미래세에 전륜성왕이 되리라.’라는 염원을 가지십시오.’라고 말했습니까?”
“그 신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찟따 장자는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다. 그러므로 만일 그가 ‘나는 미래세에 전륜성왕이 되리라.’라는 염원을 가지면 그는 계행을 구족하였고 그의 마음의 염원이 청정하기 때문에 성취가 될 것이다. 그러면 정의롭고 법다운 이 왕은 법다운 공양물을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보시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원림의 신들과 숲의 신들과 나무의 신들과 약용식물과 고목에 거주하는 신들은 이러한 이로움을 관찰하기 때문에 ‘장자여, 그대는 ‘나는 미래세에 전륜성왕이 되리라.’라는 염원을 가지십시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나는 ‘그것도 역시 무상하고, 그것도 역시 견고하지 않고, 그것도 역시 버리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4. “찟따여, 그러면 저희들에게도 훈계와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렇다면 그대들은 이와 같이 믿음을 가지고 실천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며, 명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라고 여래.아라한.정등각께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구족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시간을 가리지않고 과보를 드러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의 길로 인도하고, 지혜 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법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구족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바르게 길을 걷고 있으며,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지혜로게 길을 걷고 있으며,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충실하게 길을 걷고 있으니, 곧 네 쌍의 분들이요 여덟 단계에 있는 분들이시다.[사쌍팔배. 四雙八輩]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며, 시중들어 마땅하며, 보시하여 마땅하며, 합장드려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승가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구족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집안에 있는 보시할 수 있는 물건은 무엇이든 모두 혼자 두고 사용하지 않고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진 분들과 함께 나누어가질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와 같이 믿음을 가지고 실천하여야 하오.”
5. 찟따 장자는 친구와 동료와 가족과 친척들을 세존과 법과 승가에 청정한 믿음을 가지게 하고 보시하도록 격려한 뒤 임종하였다.
찟따 상윳따(S41)가 끝났다.
① 족쇄 ② ~ ③ 이시닷따 ④ 마하까의 기적 ⑤ ~ ⑥ 까마부 ⑦ 고닷따 ⑧ 니간타 나따뿟따
⑨ 나체수행자 깟사빠 ⑩ 병문안이다.
찟따 상윳따(S41)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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