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 니까야(증일)

일곱의 모음 - 제5장 큰 제사 품(A7:41-A7:50. Mahāyañña-vagga)

수선님 2018. 5. 6. 12:02

제5장 큰 제사 품

Mahāyañña-vagga


거주처 경(A7:41)

Ṭtit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가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비구들이여, 각자 다른 몸을 가지고 각자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인간들과 어떤 신들과 어떤 악처에 떨어진 자들이다. 이것이 첫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註) 여기서 중생들이란 재생연결식으로 설하였다. 즉 아비담마적으로 보면 어떤 곳에 재생연결식이 처음 생기는 것이 그곳에 중생이 태어나는 것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여기서 어떤 신들이란 욕계 천상의 신들을 말한다. 주석서에서는 인간들과 여섯 욕계 천상의 신들과 일부 악처 중생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lbid)


3. “비구들이여, 각자 다른 몸을 가졌지만 모두 같은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초선(初禪)을 닦아서 태어난 범신천의 신들이다. 이것이 두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4. “비구들이여, 모두 같은 몸을 가졌지만 각자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광음천의 신들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5. “비구들이여, 모두 같은 몸을 가졌고 모두 같은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변정천의 신들이다. 이것이 네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6. “비구들이여, 물질[色]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도달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7. “비구들이여,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의식[識]’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도달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8. “비구들이여, 일체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도달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의식의 거주처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가 있다.”

註) 의식의 거주처(vinnanatthitiyo)


필수품 경(A7:42)

Parikkhāra-sutta 

1.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삼매의 필수품이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 챙김[正念]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의 일념[cittassekaggata. 心一境性]이 이러한 일곱 가지 구성요소들로 치장될 때 이것을 성스러운 바른 삼매가 기반을 가졌다고 하고 필수품을 가졌다고 한다.”


불[火] 경1(A7:43)

Aggi-sutta 

1.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불이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 헌공의 불, 가장(家長)의 불, 보시의 불, 장작의 불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불이 있다.”


불 경2(A7:44)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이 큰 제사를 마련하고 있었다. 제사를 위해 오백 마리의 황소가 제사 기둥으로 끌려나왔고, 제사를 위해 오백 마리의 수송아지가 제사 기둥으로 끌려나왔고, 제사를 위해 오백 마리의 암송아지가 제사 기둥으로 끌려나왔고, 제사를 위해 오백 마리의 염소가 제사 기둥으로 끌려나왔고, 제사를 위해 오백 마리의 숫양이 제사 기둥으로 끌려나왔다. 그때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도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다.”

두 번째로 한 곁에 앉아서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도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다.”

세 번째로 한 곁에 앉아서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도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처럼 고따마 존자와 우리는 참으로 모든 것이 일치합니다.”


2. 이렇게 말하자 아난다 존자가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세존.아라한.정등각들께는 이렇게 여쭈면 안 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바라문이여, 세존.아라한.정등각들께는 이렇게 여쭈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자 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고자 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교계하소서. 세존께서는 저를 훈도하소서. 그러면 그것은 제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입니다.’라고.”


3. 그러자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불을 안치하고자 하고 제사 기둥을 세우고자 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교계하소서.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훈도하소서. 그러면 그것은 제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사람이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세 가지 칼을 세우나니 그것은 해롭고 괴로움을 초래하고 괴로움을 익게 한다. 무엇이 셋인가?


바라문이여, 몸의 칼과 말의 칼과 마음의 칼이다. 

바라문이여,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워서 그는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이러한 마음을 일으킨다. ‘제사를 위해 이러한 황소들을 죽이리라. 제사를 위해 이러한 숫송아지들을 죽이리라. 제사를 위해 이러한 암송아지들을 죽이리라. 제사를 위해 이러한 염소들을 죽이리라. 제사를 위해 이러한 숫양들을 죽이리라.’라고. 

바라문이여, 그는 ‘공덕을 지으리라.’라고 하면서 악덕을 짓고, ‘선을 행하리라.’라고 하면서 불선을 행하고, ‘좋은 곳[善處]으로 가는 길을 추구하리라.’라고 하면서 불행한 곳[惡處]으로 가는 길을 추구한다.

바라문이여, 그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첫 번째로 이러한 마음의 칼을 세우나니 그것은 해롭고 괴로움을 초래하고 괴로움을 익게 한다.


다시 바라문이여, 그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이러한 말을 내뱉는다. 

‘제사를 위해 이러한 황소들을 죽이리라. 제사를 위해 이러한 숫송아지들을 죽이리라. 제사를 위해 이러한 암송아지들을 죽이리라. 제사를 위해 이러한 염소들을 죽이리라. 제사를 위해 이러한 숫양들을 죽이리라.’라고. 

바라문이여, 그는 ‘공덕을 지으리라.’라고 하면서 악덕을 짓고, ‘선을 행하리라.’라고 하면서 불선을 행하고,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을 추구하리라.’라고 하면서 불행한 곳으로 가는 길을 추구한다. 

바라문이여, 그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두 번째로 이러한 말의 칼을 세우나니 그것은 해롭고 괴로움을 초래하고 괴로움을 익게 한다.


다시 바라문이여,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워서 그는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제사를 위해 황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제사를 위해 수송아지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제사를 위해 암송아지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제사를 위해 염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제사를 위해 숫양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바라문이여, 그는 ‘공덕을 지으리라.’라고 하면서 악덕을 짓고, ‘선을 행하리라.’라고 하면서 불선을 행하고,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을 추구하리라.’라고 하면서 불행한 곳으로 가는 길을 추구한다. 

바라문이여, 그는 불을 안치하고 제사 기둥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세 번째로 이러한 몸의 칼을 세우나니 그것은 해롭고 괴로움을 초래하고 괴로움을 익게 한다.”


4. “바라문이여, 세 가지 불을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탐욕의 불과 성냄의 불과 어리석음의 불이다."


5. "바라문이여, 그러면 왜 탐욕의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가?

바라문이여, 탐욕에 물들고 탐욕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속박된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 뒤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탐욕의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왜 성냄의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가? 

바라문이여, 성내고 성냄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속박된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 뒤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성냄의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왜 어리석음의 불을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가? 

바라문이여, 어리석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속박된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 뒤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어리석음의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


바라문이여, 이러한 세 가지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


6. “바라문이여, 세 가지 불은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헌공의 불, 가장(家長)의 불, 보시의 불이다. "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헌공하는 불인가?”


7. “바라문이여, 여기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일러 헌공의 불이라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바라문이여,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그가 왔고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헌공의 불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가장(家長)의 불인가? 바라문이여, 여기 그의 아들과 아내와 하인과 전령과 일꾼을 일러 가장의 불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가장의 불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보시의 불인가? 

바라문이여, 여기 사문∙바라문들은 교만과 방일함을 금하고 인욕과 온화함에 헌신하여 살면서 각자 자신을 길들이고 각자 자신을 제어하고 각자 자신을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나니, 이를 일러 보시의 불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보시의 불은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바라문이여, 이러한 세 가지 불은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8. “바라문이여, 그러나 장작불은 때때로 지펴야 하고 때때로 돌봐야 하고 때때로 꺼야 하고 때때로 방치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욱가따사리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런 저는 오백 마리의 황소를 풀어서 살려주겠습니다. 오백 마리의 숫송아지들을 풀어서 살려주겠습니다. 오백 마리의 암송아지를 풀어서 살려주겠습니다. 오백 마리의 염소를 풀어서 살려주겠습니다. 오백 마리의 숫양들을 풀어서 살려주겠습니다. 그리고 풀을 가져와서 먹게 하겠습니다. 시원한 물을 마시게 하겠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쐬게 하겠습니다.”


인식 경1(A77:45)

Saññā-sutta 

1.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인식을 닦고 많이 닦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무엇이 일곱인가?”


2.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죽음에 대한 인식,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 오온에 대해 무상(無常)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인식을 닦고 많이 닦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인식 경2(A7:46)

Saññā-sutta 

1.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무엇이 일곱인가?”


2.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죽음에 대한 인식,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 오온에 대해 무상(無常)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이다.”


3. “‘비구들이여,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성행위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해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닭의 깃털이나 힘줄의 일부분을 불에다 던지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가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성행위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온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무는데도 마음이 성행위하는 것으로 달려가고 유쾌함이 자리 잡는다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없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러 성행위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온이나 혹은 혐오가 확고하게 되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졌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있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이다.”


4. “‘비구들이여, 죽음에 대한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죽음에 대한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삶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닭의 깃털이나 힘줄의 일부분을 불에다 던지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가 죽음에 대한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삶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온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죽음에 대한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무는데도 마음이 삶에 대한 집착으로 달려가고 유쾌함이 자리 잡는다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죽음에 대한 나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없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죽음에 대한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러서 삶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평온이나 혐오가 확고하게 되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죽음에 대한 나의 인식은 닦아졌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있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죽음에 대한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이다.”


5. “‘비구들이여,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맛에 대한 갈애로부터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닭의 깃털이나 힘줄의 일부분을 불에다 던지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가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맛에 대한 갈애로부터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온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무는데도 마음이 맛에 대한 갈애로 달려가고 유쾌함이 자리 잡는다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나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없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러서 맛에 대한 갈애로부터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온이나 혐오가 확고하게 되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나의 인식은 닦아졌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있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닦고 많이 학습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이다.”


6. “‘비구들이여,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세상에 머무르려는 생각에 대해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닭의 깃털이나 힘줄의 일부분을 불에다 던지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가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삼계에 머무르려는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온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무는데도 세상에 머무르려는 생각에 대해 마음이 달려가고 유쾌함이 자리 잡는다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나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없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러서 세상에 머무르려는 생각에 대해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온이나 혐오가 확고하게 되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나의 인식은 닦아졌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있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이다.”


7. “‘비구들이여, 오온에 대해 무상(無常)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오온에 대해 무상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대해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정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닭의 깃털이나 힘줄의 일부분을 불에다 던지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가 오온에 대해 무상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대해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온이나 혹은 혐오감이 확고해진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오온에 대해 무상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무는데도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대해 마음이 달려가고 유쾌함이 자리 잡는다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오온에 대해 무상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없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오온에 대해 무상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러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대해 마음이 물러서고 움츠리고 외면하고 그곳으로 손을 뻗치지 아니하여 그것에 대한 평온이나 혐오가 확고하게 되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오온에 대해 무상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졌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있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오온에 대해 무상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학습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이다.”


8. “‘비구들이여,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게으름과 나태함과 태만함과 방일함과 수행하지 않음과 되돌아 관찰하지 않음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기나니, 예를 들면 칼을 빼든 살인자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기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무는데도 게으름과 나태함과 태만함과 방일함과 수행하지 않음과 되돌아 관찰하지 않음에 대해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 나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없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러서 게으름과 나태함과 태만함과 방일함과 수행하지 않음과 되돌아 관찰하지 않음에 대해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기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졌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생겼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이다.”


9. “‘비구들이여,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이 없어지거나 세 가지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완전하게 해탈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무는데도,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이 없어져서 세 가지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완전히 해탈하지 못하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없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러서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이 없어져서 세 가지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완전히 해탈하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졌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있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하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학습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인식을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음행 경(A7:47)

Methu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께서도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천명하십니까?”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에 대해서 바르게 말하기를 ‘그는 훼손되지 않고, 뚫어지지 않고, 오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닦는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면서 말한 것이 틀림없다. 

바라문이여, 나는 훼손되지 않고, 뚫어지지 않고, 오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닦는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청정범행의 훼손이고 뚫어짐이고 오점이고 얼룩입니까?”


2.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르게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서원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성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자로 하여금 향수를 바르게 하고, 주무르게 하고, 목욕하게 하고, 만지게 한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만족을 느낀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청정범행의 훼손이고, 뚫어짐이고, 오점이고, 얼룩이다. 

바라문이여, 이를 일러 이 사람은 청정하지 못한 범행을 닦는다고 한다. 그는 음행의 족쇄에 묶여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3.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르게 청정범행을 한다고 서원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성행위를 하지도 않고 여자로 하여금 향수를 바르게 하거나, 주무르게 하거나, 목욕하게 하거나, 만지게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자와 함께 농담하고, 놀이하고, 유희를 한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만족을 느낀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청정범행의 훼손이고, 뚫어짐이고, 오점이고, 얼룩이다. 

바라문이여, 이를 일러 이 사람은 청정하지 못한 범행을 닦는다고 한다. 그는 음행의 족쇄에 묶여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4.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르게 청정범행을 한다고 서원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성행위를 하지도 않고 여자로 하여금 향수를 바르게 하거나, 주무르게 하거나, 목욕하게 하거나, 만지게 하지도 않는다. 여자와 함께 농담하고, 놀이하고, 유희를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눈으로 여자의 눈을 깊이 응시하고 쳐다본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만족을 느낀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청정범행의 훼손이고, 뚫어짐이고, 오점이고, 얼룩이다. 

바라문이여, 이를 일러 이 사람은 청정하지 못한 범행을 닦는다고 한다. 그는 음행의 족쇄에 묶여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5.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르게 청정범행을 한다고 서원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성행위를 하지도 않고 여자로 하여금 향수를 바르게 하거나, 주무르게 하거나, 목욕하게 하거나,만지게 하지도 않는다. 여자와 함께 농담하고, 놀이하고, 유희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기의 눈으로 여자의 눈을 깊이 응시하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이 웃거나 얘기하거나 혹은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울 때 벽을 넘어 혹은 담장을 넘어 여자의 소리를 엿듣는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만족을 느낀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청정범행의 훼손이고, 뚫어짐이고, 오점이고, 얼룩이다. 

바라문이여, 이를 일러 이 사람은 청정하지 못한 범행을 닦는다고 한다. 그는 음행의 족쇄에 묶여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6.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르게 청정범행을 한다고 서원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성행위를 하지도 않고 여자로 하여금 향수를 바르게 하거나, 주무르게 하거나, 목욕하게 하거나,만지게 하지도 않는다. 여자와 함께 농담하고, 놀이하고, 유희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기의 눈으로 여자의 눈을 깊이 응시하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이 웃거나 얘기하거나 혹은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울 때 벽을 넘어 혹은 담장을 넘어 여자의 소리를 엿듣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전에 여자와 함께 웃고, 얘기하고, 놀이하던 것을 회상한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만족을 느낀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청정범행의 훼손이고, 뚫어짐이고, 오점이고, 얼룩이다. 

바라문이여, 이를 일러 이 사람은 청정하지 못한 범행을 닦는다고 한다. 그는 음행의 족쇄에 묶여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7.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르게 청정범행을 한다고 서원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성행위를 하지도 않고 여자로 하여금 향수를 바르게 하거나, 주무르게 하거나, 목욕하게 하거나,만지게 하지도 않는다. 여자와 함께 농담하고, 놀이하고, 유희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기의 눈으로 여자의 눈을 깊이 응시하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이 웃거나 얘기하거나 혹은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울 때 벽을 넘어 혹은 담장을 넘어 여자의 소리를 엿듣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전에 여자와 함께 웃고, 얘기하고, 놀이하던 것을 회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사로잡혀 탐닉하는 것을 본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만족을 느낀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청정범행의 훼손이고, 뚫어짐이고, 오점이고, 얼룩이다. 

바라문이여, 이를 일러 이 사람은 청정하지 못한 범행을 닦는다고 한다. 그는 음행의 족쇄에 묶여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8.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르게 청정범행을 한다고 서원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성행위를 하지도 않고 여자로 하여금 향수를 바르게 하거나, 주무르게 하거나, 목욕하게 하거나,만지게 하지도 않는다. 여자와 함께 농담하고, 놀이하고, 유희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기의 눈으로 여자의 눈을 깊이 응시하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이 웃거나 얘기하거나 혹은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울 때 벽을 넘어 혹은 담장을 넘어 여자의 소리를 엿듣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전에 여자와 함께 웃고, 얘기하고, 놀이하던 것을 회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빠지고 사로잡혀 탐닉하는 것을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천상의 지위를 바라면서 청정범행을 한다. ‘나는 이 계나 서계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신이나 혹은 다른 어떤 작은 신이 되리라.’라고.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만족을 느낀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청정범행의 훼손이고, 뚫어짐이고, 오점이고, 얼룩이다. 

바라문이여, 이를 일러 이 사람은 청정하지 못한 범행을 닦는다고 한다. 그는 음행의 족쇄에 묶여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9. “바라문이여, 내가 만일 이러한 일곱 가지 음행의 족쇄 가운데 어떤 하나의 음행의 족쇄라도 제거하지 못했음을 나 자신에게서 보았다면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내 스스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천명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러한 일곱 가지 음행의 족쇄 가운데 어떤 하나의 음행의 족쇄도 제거하지 못했음을 내 자신에게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내 스스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내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


10. 이렇게 말씀하시자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속박 경(A7:48)

Saṁyog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속박과 속박에서 벗어남에 관한 법문을 설할 것이다.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속박과 속박의 벗어남에 관한 법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여자는 안으로 여자의 기능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여자의 행위와 여자의 외관과 여자의 자만과 여자의 의욕과 여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남자의 기능에 마음을 기울이고 남자의 행위와 남자의 외관과 남자의 자만과 남자의 의욕과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속박을 갈구한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그녀는 갈구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자의 성을 기뻐하고 집착하여 남자의 속박에 묶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여자는 여자의 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속박에 묶인다.


비구들이여, 여기 남자는 안으로 남자의 기능에 마음을 기울이고 남자의 행위와 남자의 외관과 남자의 자만과 남자의 의욕과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여자의 기능에 마음을 기울이고 여자의 행위와 여자의 외관과 여자의 자만과 여자의 의욕과 여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속박을 갈구한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갈구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남자의 성을 기뻐하고 집착하여 여자의 속박에 묶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남자는 남자의 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속박에 묶인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속박에서 벗어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여자는 안으로 여자의 기능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여자의 행위와 여자의 외관과 여자의 자만과 여자의 의욕과 여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남자의 기능에 마음에 기울이지 않고 남자의 행위와 남자의 외관과 남자의 자만과 남자의 의욕과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속박을 갈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그녀는 갈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자의 성을 기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남자의 속박에 묶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여자는 여자의 성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남자는 안으로 남자의 기능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남자의 행위와 남자의 외관과 남자의 자만과 남자의 의욕과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여자의 기능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여자의 행위와 여자의 외관과 여자의 자만과 여자의 의욕과 여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장식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속박을 갈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그는 갈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남자의 성을 기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여자의 속박에 묶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남자는 남자의 성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속박에서 벗어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속박과 속박에서 벗어남에 관한 법문이다.”


보시 경(A7:49)

D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짬빠에서 각가라 호수의 언덕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많은 짬빠의 청신사들이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짬빠의 청신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설법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존자시여, 우리가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설법을 들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청신사들이여, 그렇다면 이번 포살일에 오십시오. 그러면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설법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짬빠의 청신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2. 짬빠의 청신사들은 그 포살일에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는 짬빠의 청신사들과 함께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없고 큰 이익이 없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되고, 또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됩니까?”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없고 큰 이익이 없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되고, 또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된다.”


3.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없고 큰 이익이 없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되고, 또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됩니까?”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고, ‘나중에 이것을 누리리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한다. 그리고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숙소와 불을 보시한다. 

사리뿟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보시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여기서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고, ‘나중에 이것을 누리리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사람은 이러한 보시를 한 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사대왕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그는 그 업과 신통과 명성과 권위가 다하면 다시 돌아오는 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오게 된다.”


4. “사리뿟따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이것을 누리리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보시는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한다. 그리고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숙소와 불을 보시한다. 

사리뿟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보시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이것을 누리리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보시는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선조들이 과거에 보시를 했고 과거에 행했다. 오래된 가문의 전통을 내가 없애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한다. 그리고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숙소와 불을 보시한다. 

사리뿟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보시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이것을 누리리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보시는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선조들이 과거에 보시를 했고 과거에 행했다. 오래된 가문의 전통을 내가 없애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음식을 만들지만 이들은 만들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자가 만들지 않는 자들에게 보시하지 않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한다. 그리고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숙소와 불을 보시한다. 

사리뿟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보시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이것을 누리리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보시는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선조들이 과거에 보시를 했고 과거에 행했다. 오래된 가문의 전통을 내가 없애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음식을 만들지만 이들은 만들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자가 만들지 않는 자들에게 보시하지 않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전의 선인(仙人)들은 큰 제사를 지냈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다. 그들처럼 나도 보시하여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되리라.’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한다. 그리고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숙소와 불을 보시한다. 

사리뿟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보시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이것을 누리리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보시는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선조들이 과거에 보시를 했고 과거에 행했다. 오래된 가문의 전통을 내가 없애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음식을 만들지만 이들은 만들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자가 만들지 않는 자들에게 보시하지 않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의 선인(仙人)들은 큰 제사를 지냈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다. 그들처럼 나도 보시하여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되리라.’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보시를 할 때 마음이 맑아지고 흡족함과 기쁨이 일어난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한다. 그리고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숙소와 불을 보시한다. 

사리뿟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보시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부(富)를 기대하며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이것을 누리리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보시는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선조들이 과거에 보시를 했고 과거에 행했다. 오래된 가문의 전통을 내가 없애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음식을 만들지만 이들은 만들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자가 만들지 않는 자들에게 보시하지 않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의 선인(仙人)들은 큰 제사를 지냈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다. 그들처럼 나도 보시하여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되리라.’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보시를 할 때 마음이 맑아지고 흡족함과 기쁨이 일어난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을 장엄하고 마음의 필수품을 위해 보시를 한다. 그리고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의복과 탈 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숙소와 불을 보시한다. 

사리뿟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보시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5.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기대를 갖고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보에 마음이 묶여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부(富)들 기대하며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누리리라.’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보시는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선조들이 과거에 보시를 했고 과거에 행했다. 오래된 가문의 전통을 내가 없애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음식을 만들지만 이들은 만들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자가 만들지 않는 자들에게 보시하지 않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전의 선인(仙人)들은 큰 제사를 지냈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다. 그들처럼 나도 보시하여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되리라.’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보시를 할 때 마음이 맑아지고 흡족함과 기쁨이 일어난다.’라는 생각으로 보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마음을 장엄하고 마음의 필수품을 위해 보시를 한다. 이러한 보시를 한 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신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그는 그 업과 신통과 명성과 권위가 다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게 된다.


사리뿟따여, 이러한 이유와 이러한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없고 큰 이익이 없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되고, 또 여기 어떤 사람의 보시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 그런 보시를 하게 된다.”


난다마따 경(A7:50)

Nanamāt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많은 비구 대중과 함께 닥키나기리에서 유행을 하였다. 그 무렵에 웰루깐따끼의 난다마따 청신녀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 앉아서『숫따니빠따』「도피안 품」을 독경하고 있었다. 


그때 웻사와나 대왕이 어떤 일이 있어 북쪽 지방에서 남쪽 지방으로 가다가 난다마따 청신녀가「도피안 품」을 독경하는 것을 들었다. 듣고는 그것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거기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난다마따 청신녀는「도피안 품」의 독경을 마치고는 침묵하였다.

웻사와나 대왕은 난다마따의 청신녀의 독경이 끝난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장합니다, 청신녀여. 장합니다, 청신녀여.”

“잘 생긴 분이여, 그대는 누구십니까?”

“청신녀여, 나는 웻사와나 대왕입니다.”

“장하십니다, 잘 생긴 분이여. 그렇다면 제가 독경한 이 법문을 손님께 드리는 선물로 대왕께 바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신녀여. 이것을 손님에게 주는 선물로 잘 받겠습니다. 그런데 내일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를 상수로 하는 비구 대중이 공양을 하지 않는 채 웰루깐따끼로 올 것입니다. 그 비구 승가에 공양을 올린 뒤 내가 올린 공양이라고 말씀드려주십시오. 이것이 청신녀인 그대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2. 난다마따 청신녀는 그 밤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하였다. 그리고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를 상수로 하는 비구 대중이 공양을 하지 않은 채 웰루깐따끼에 도착하였다. 그러자 난다마따 청신녀는 어떤 사람을 불러서 말했다.

“여보시오, 이리 오세요. 그대는 웰루깐따까에 머물고 있는 비구 대중에게 가서 ‘존자님들이여, 출발하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난다마따의 집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시간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그 사람은 난다마따 청신녀에게 대답한 뒤 웰루깐따끼에 머물고 있는 비구 대중에게 “존자님들이여, 출발하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난다마따의 집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시간을 알려드렸다.


그러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난다마따 청신녀의 집으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난다마따 청신녀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비구 대중에게 맛있는 여러 음식을 자기 손으로 직접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사리뿟따 존자가 공양을 마치시고 그릇에서 손을 떼자 난다마따 청신녀는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난다마따 청신녀에게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난다마따여, 그런데 누가 비구 대중이 올 것이라고 그대에게 알려주었습니까?”

“존자시여, 여기 저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 앉아서 「도피안 품」을 독경하고 난서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떼 웻사와나 대왕은 저의 독경이 끝난 것을 알고는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장합니다, 청신녀여. 장합니다, 청신녀여.’ ‘잘 생긴 분이여, 그대는 누구입니까?’ ‘청신녀여, 나는 웻사와나 대왕입니다.’ ‘장하십니다, 잘 생긴 분이여. 그렇다면 제가 독경한 이 법문을 손님께 드리는 선물로 대왕께 바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누이여. 이것을 손님에게 주는 선물로 잘 받겠습니다. 그런데 내일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를 상수로 하는 비구 대중이 공양을 하지 않은 채로 웰루깐따끼로 올 것입니다. 그 비구 대중에게 공양을 올린 뒤 내가 올린 공양이라고 말씀드려주십시오. 이것이 내가 청신녀인 그대에게 주는 선물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존자시여, 그러므로 이번 보시로 생긴 공덕과 이익은 모두 웻사와나 대왕의 행복이 되었으면 합니다.”


3. “경이롭습니다, 난다마따여.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웻사와나 대왕은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을 가졌는데 그런 신의 아들과 직접 대화를 하였군요.”

“존자시여, 이것은 제게 경이로운 것도 아니고 놀라운 것도 아닙니다. 제게는 다른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존자시여, 여기 제게는 난다라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사랑스럽고 소중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어떤 이유로 강제로 끌고 가서 목숨을 빼앗아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잡혔거나 잡힐 때나, 끌려갔거나 끌려갈 때나, 죽었거나 죽어갈 때나 저의 마음이 흔들린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4. “경이롭습니다, 난다마따여.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이처럼 마음을 청정하게 하다니요.”

“존자시여, 이것은 제게 경이로운 것도 아니고 놀라운 것도 아닙니다. 제게는 다른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존자시여, 여기 제 남편이 임종을 하여 어떤 약카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기의 전생의 몸을 [만들어] 제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5. “경이롭습니다, 난다마따여.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이처럼 마음을 청정하게 하다니요.”

“존자시여, 이것은 제게 경이로운 것도 아니고 놀라운 것도 아닙니다. 제게는 다른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존자시여, 저는 어릴 적에 어렸던 남편에게 시집와서 마음으로라도 거역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몸으로 나쁜 행실을 하였겠습니까?”


6. “경이롭습니다, 난다마따여.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이처럼 마음을 청정하게 하다니요.”

“존자시여, 이것은 제게 경이로운 것도 아니고 놀라운 것도 아닙니다. 제게는 다른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존자시여, 저는 청신녀가 되기로 맹세한 뒤로 어떤 학습계목도 고의적으로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7. “경이롭습니다, 난다마따여.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존자시여, 이것은 제게 경이로운 것도 아니고 놀라운 것도 아닙니다. 제게는 다른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존자시여, 저는 원하기만 하면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뭅니다.

저는 원하기만 하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뭅니다.

저는 원하기만 하면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저는 원하기만 하면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뭅니다.”


8. “경이롭습니다, 난다마따여.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존자시여, 이것은 제게 경이로운 것도 아니고 놀라운 것도 아닙니다. 제게는 다른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존자시여,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 안에서 제거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합니다.”

“경이롭습니다, 난다마따여. 놀랍습니다, 난다마따여.”


사리뿟따 존자는 난다마따 청신녀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제5장 큰 제사 품이 끝났다. 다섯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거주처 ② 필수품 ③ ~ ④ 불  ⑤ ~ ⑥ 인식 ⑦ 음행 ⑧ 속박 ⑨ 보시 ⑩ 난다마따다.


첫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이 끝났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