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 니까야(증일)

일곱의 모음 - 제7장 대 품(A7:61-7:70. Mahā-vagga)

수선님 2018. 5. 6. 12:04


제7장 대 품

Mahā-vagga


양심 경(A7:61)

Hir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양심과 수치심이 없을 때 양심과 수치심이 없는 자에게 감각기능의 단속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할 때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하는 자에게 계행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계행이 없을 때 계행을 파한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바른 삼매가 없을 때 바른 삼매가 깨진 자에게 여실지견(如實知見.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림)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여실지견이 없을 때 여실지견이 없는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염오와 탐욕의 빛바램이 없을 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가지와 잎이 없는 나무는 새싹이 자라나지 못하고 껍질이 완성되지 못하고 연한 목재[白木質]가 완성되지 못하고 심재(心材)가 완성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양심과 수치심이 없을 때 양심과 수치심이 없는 자에게 감각기능의 단속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할 때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하는 자에게 계행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계행이 없을 때 계행을 파한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바른 삼매가 없을 때 바른 삼매가 깨진 자에게 여실지견(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여실지견이 없을 때 여실지견이 없는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염오와 탐욕의 빛바램이 없을 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2. “비구들이여, 양심과 수치심이 있을 때 양심과 수치심을 구족한 자에게 감각기능의 단속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감각기능을 단속할 때 감각기능을 단속하는 자에게 계행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계행이 있을 때 계행을 구족한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바른 삼매가 생길 때 바른 삼매를 구족한 자에게 여실지견(如實知見)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여실지견이 생길 때 여실지견을 구족한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이 생길 때 염오와 탐욕의 빛바램을 구족한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는 새싹이 자라나고 껍질이 완성되고 연한 목재[白木質]가 완성되고 심재(心材)가 완성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양심과 수치심이 있을 때 양심과 수치심이 있는 자에게 감각기능의 단속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감각기능을 단속할 때 감각기능을 단속하는 자에게 계행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계행이 있을 때 계행을 구족한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바른 삼매가 생길 때 바른 삼매를 구족한 자에게 여실지견(如實知見)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여실지견이 생길 때 여실지견을 구족한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빛바램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이 생길 때 염오와 탐욕의 빛바램을 구족한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註) 여실(如實)은 진실한 이치에 계합하는 것 · 진실에 계합하는 것 · 사실에 계합하는 것 · 실제에 계합하는 것 · 사실 그대로 · 있는 그대로 또는 진실하게를 뜻한다. 즉, 여실(如實)에서 여(如)는 계합(契合) 또는 상응(相應)을 의미하고, 실(實)은 진실한 이치 · 진실 · 실제 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여실(如實)한 사유(思惟)는 진실한 이치에 계합하는 사유, 즉 참다운 사유를 말하고, 여실(如實)하지 못한 사유(思惟)는 진실한 이치에 계합하지 못하는 사유, 즉 진실한 이치와는 어긋나는 사유, 참답지 못한 사유, 올바르지 못한 생각을 말한다. 다른 예로, 여실수행(如實修行)은 진실한 이치에 계합하는 수행을 말한다

다른 예로, 여실(如實)히 지은 과악(過惡)을 드러내는 것은 '있는 그대로' 즉 '사실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 과악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바른 가르침을 스승 등이 줄 수 있게 된다.

또다른 예로, 여실(如實) 즉 진실한 이치에 계합하는 것은 좁은 뜻으로는 4성제와 계합하는 것을 뜻하고 넓은 뜻으로는 12연기와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


태양 경(A7:62)

Sūri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암바빨리 숲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견고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안식을 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모든 것들[諸行]에 대해서 역겨워해야 마땅하며[厭惡] 탐욕이 사라지도록 해야 마땅하며[離慾] 해탈해야 마당하다.[解脫]

 

비구들이여, 산의 왕 수미산은 8만4천 요자나의 길이고, 8만4천 요자나의 너비며, 8만4천 요자나가 대해 속에 잠겨 있고, 8만4천 요자나가 대해 위로 솟아 있다. 

비구들이여, 여러 해 동안, 수백 년 동안, 수천 년 동안, 여러 백 천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시기가 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씨앗류와 초목류와 약초와 풀과 밀림은 모두 시들고 말라버려서 존재하지 않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견고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안식을 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역겨워 해야 마땅하며, 탐욕이 사라지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


3.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때, 어느 곳에 두 번째 태양이 나타난다. 

비구들이여, 두 번째 태양이 나타나면 작은 강이나 작은 못은 모두 시들고 말라버려서 존재하지 않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견고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안식을 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역겨워 해야 마땅하며 탐욕이 사라지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


4.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때, 어느 곳에 세 번째 태양이 나타난다. 

비구들이여, 세 번째 태양이 나타나면 강가, 야무나, 아찌라와띠, 사라부, 마히 같은 큰 강들도 모두 시들고 말라버려서 존재하지 않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견고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안식을 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역겨워 해야 마땅하며 탐욕이 사라지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


5.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때, 어느 곳에 네 번째 태양이 나타난다. 

비구들이여, 네 번째 태양이 나타나면 이 큰 강들의 근원인 아노땃따, 시하빠빠따, 라타까라, 깐나문다, 꾸날라, 찻단따, 만다끼니 같은 큰 호수들도 시들고 말라버려서 존재하지 않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견고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안식을 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역겨워 해야 마땅하며 탐욕이 사라지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


6.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때, 어느 곳에 다섯 번째 태양이 나타난다. 

비구들이여, 다섯 번째 태양이 나타나면 대해에 100요자나의 물이 줄어들고 200요자나의 물이 줄어들고 … 700요자나의 물이 줄어든다. 대해에 7딸라만큼의 물만 남게 되고 6딸라 … 5딸라 … 4딸라 … 3딸라 … 2딸라 … 1딸라만큼의 물만 남게 된다. 대해에 7길만큼의 물만 남게 되고 6길 … 5길 … 4길 … 3길 … 2길 … 단 한 길만큼의 물만 남게 되고 반 길만큼만 남게 되고 엉덩이만큼만 남게 되고 무릎만큼만 남게 되고 발목만큼만 남게 된다.

비구들이여, 마치 가을에 억수같은 비가 내리면 여기저기 소발자국들에 물이 고이듯이 대해에는 소발자국 정도의 물이 남게 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다섯 번째 태양이 나타나면 대해의 물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물도 남지 않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견고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안식을 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역겨워 해야 마땅하며 탐욕이 사라지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

註) 1딸라(tāla) : 야자나무(tāla) 키만큼의 높이를 말한다.


7.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때, 어느 곳에 여섯 번째 태양이 나타난다. 

비구들이여, 여섯 번째 태양이 나타나면 이 대지와 산의 왕 수미산은 연기를 내고 연기를 내뿜고 연기를 분출한다. 예를 들면 도공의 가마가 달구어지면 먼저 연기를 내고 연기를 내뿜고 연기를 분출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여섯 번째 태양이 나타나면 대지와 산의 왕 수미산은 연기를 내고 연기를 내뿜고 연기를 분출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견고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안식을 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역겨워 해야 마땅하며 탐욕이 사라지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


8.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때, 어느 곳에 일곱 번째 태양이 나타난다. 

비구들이여, 일곱 번째 태양이 나타나면 이 대지와 산의 왕 수미산은 불이 붙고 맹렬히 불타올라 하나의 불덩이가 된다. 비구들이여, 이 대지와 산의 왕 수미산은 활활 타오르고 맹렬하게 타올라 그 화염은 바람을 타고 번져 범천의 세상까지도 간다. 

비구들이여, 산의 왕 수미산이 활활 타오르고 맹렬히 타올라 무너지고 불꽃의 무더기에 압도될 때 100요자나의 꼭대기 무너지고 200요자나 … 300요자나 … 400요자나 … 500요자나의 꼭대기가 무너진다.

비구들이여, 이 대지와 산의 왕 수미산이 활활 타오르고 맹렬히 타올라 없어질 때 재도 먼지도 남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정제된 버터나 기름이 활활 타오르고 맹렬히 타오르면 재도 먼지도 남지 않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이 대지와 산의 왕 수미산이 활활 타오르고 맹렬하게 타올라 없어질 때 재도 먼지도 남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견고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안식을 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역겨워 해야 마땅하며 탐욕이 사라지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


9. “비구들이여, 여기서 견해를 갖춘 자들 말고는 ‘이 대지와 산의 왕 수미산이 활활 타오를 것이고 소멸할 것이고 없어질 것이다.’라는 이 말을 누가 믿겠는가?

비구들이여, 옛날에 수넷따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쾌락을 여의었다. 수넷따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수넷따 스승은 제자들에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하였다. 

수넷따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모든 면에서 교법을 이해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선처인 범천의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교법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어떤 자들은 타화자재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났고, 어떤 자들은 화락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났고, 어떤 자들은 도솔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났고, 어떤 자들은 야마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났고, 어떤 자들은 삼십삼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났고, 어떤 자들은 사대왕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났고, 어떤 자들은 부유한 끄샤뜨리야 가문의 동료로 태어났고, 어떤 자들은 부유한 바라문 가문의 동료로 태어났고, 어떤 자들은 부유한 장자 가문의 동료로 태어났다.

비구들이여, 그때 수넷따 스승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음 생에 제자들과 똑같은 곳에 태어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참으로 더 높은 자애를 닦아야겠다.’라고.”


10. “수넷따 스승은 7년을 자애의 마음을 닦았다. 7년을 자애의 마음을 닦은 뒤 일곱 번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동안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세상이 수축할 때 그는 광음천에 가있었으며 세상에 팽창할 때 텅 빈 범천의 궁전에 태어났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는 범천이었으니 대범천이었고 지배자였고 지배되지 않는 자였고 전지자였고 전능자였다.

비구들이여, 다시 그는 서른여섯 번을 신들의 왕인 삭까였다. 그리고 그는 여러 일곱 번을 전륜성왕이었느니, 정의롭고 법다운 왕이었으며 사방을 정복한 승리자여서 나라를 안정되게 하고 일곱 가지 보배를 두루 갖추었다. 천 명이 넘는 그의 아들들은 용감하고 훤칠하며 적군을 정복하였다. 그는 바다를 끝으로 하는 전 대지를 몽둥이와 칼 없이 법으로써 승리하여 통치하였다.

비구들이여, 그러한 수넷따 스승은 이처럼 장수하고 오래 살았지만 태어남∙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였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였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네 가지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계(戒)를 깨닫지 못했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고, 성스러운 삼매[定]를 깨닫지 못했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고, 성스러운 통찰지[慧]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고, 성스러운 해탈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11.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성스러운 계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삼매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통찰지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해탈을 깨닫고 꿰뚫었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갈애는 잘라졌고,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은 부수어졌으며, 다시 태어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계와 삼매와 통찰지와 위없는 해탈 -

  명성을 가진 고따마는 이 법들을 깨달았노라.

  그리하여 괴로움을 끝내었고 혜안을 가졌고

  오염원들을 모두 멸진하였고 깨달은 스승은

  법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이제 그 법을 비구들에게 설했노라.”


도시 비유 경(A7:63)

Nagaropama-sutta 

1.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가 일곱 가지 도시의 필수품으로 잘 보호되어 있고, 네 가지 음식을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고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고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을 때,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외부의 적들과 원수들로부터 정복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떠한 일곱 가지 도시의 필수품으로 그것은 잘 보호되어 있는가?”


2. “비구들이여, 여기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깊이 박혀있고 튼튼히 박혀있고 요지부동이고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 있다. 이러한 첫 번째 도시의 필수품으로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잘 보호되어 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깊고 넓은 해자가 있다. 이러한 두 번째 도시의 필수품으로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잘 보호되어 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높고 넓은 길이 있다. 이러한 세 번째 도시의 필수품으로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잘 보호되어 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창과 칼과 같은 많은 무기들을 모아 두었다. 이러한 네 번째 도시의 필수품으로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잘 보호되어 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많은 군대가 있나니 상병, 기마병, 전차병, 궁수, 기수, 군대 참모, 보급병, 고위 관리, 왕자, 정찰병, 영웅, 용사, 동체 갑옷 입은 자, 하인들이다. 이러한 다섯 번째 도시의 필수품으로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잘 보호되어 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현명하고 명석하고 슬기로운 수문장이 있어서 모르는 자들이 들어오는 것은 막고 아는 자들은 허락한다. 이러한 여섯 번째 도시의 필수품으로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잘 보호되어 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회반죽을 바른 높고 넓은 성벽이 있다. 이러한 일곱 번째 도시의 필수품으로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잘 보호되어 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일곱 가지 도시의 필수품으로 그것은 잘 보호되어 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떠한 네 가지 음식을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고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고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풀과 장작과 물을 많이 저장해두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쌀과 보리를 많이 저장해두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참깨와 녹두와 메주콩과 다른 곡물을 많이 저장해두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는 정제된 버터, 생 버터, 기름, 꿀, 당밀, 소금과 같은 약을 많이 저장해두었나니, 내부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함이다.”

 

4. "비구들이여,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가 이러한 일곱 가지 도시의 필수품으로 잘 보호되어 있고, 이러한 네 가지 음식을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고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고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을 때,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외부의 적들과 원수들로부터 정복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가 일곱 가지 좋은 법을 구족하고, 또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때,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마라를 무력하게 만들고 사악한 자를 무력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면 어떠한 일곱 가지 좋은 법을 구족하였는가?”


5. “비구들이여, 마치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깊이 박혀있고 튼튼히 박혀있고 요지부동이고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 있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제자는 여래의 깨달음에 청정한 믿음이 있고 신뢰가 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며, 영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라고.

비구들이여, 믿음의 기둥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개발하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일을 개발하고,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그는 이러한 첫 번째 좋은 법을 구족하였다.


비구들이여, 마치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한 깊고 넓은 해자가 있듯이, 성스러운 제자는 양심을 가졌다. 

그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말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부끄러워하고, 삿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에 빠져있음을 부끄러워한다.

비구들이여, 양심의 해자를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개발하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일을 개발하고,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그는 이러한 두 번째 좋은 법을 구족하였다.


비구들이여, 마치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주위를 에워싼 높고 넓은 길이 있듯이, 성스러운 제자는 수치심을 가졌다. 

그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말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수치스러워하고, 삿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에 빠져있음을 수치스러워한다.

비구들이여, 수치심의 길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개발하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일을 개발하고,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그는 이러한 세 번째 좋은 법을 구족하였다.


비구들이여, 마치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창과 칼과 같은 무기들을 많이 저장해두듯이, 성스러운 제자는 많이 배웠다.[多聞] 

그는 배운 것을 바르게 호지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한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며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가르침들이 있으니, 그는 그러한 가르침들을 많이 배우고 호지하고 말로써 친숙해지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비구들이여, 배움의 무기를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개발하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일을 개발하고,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그는 이러한 네 번째 좋은 법을 구족하였다.


비구들이여, 마치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많은 군대, 즉 상병, 기마병, 전차병, 궁수, 기수, 군대 참모, 보급병, 고위 관리, 왕자, 정찰병, 영웅, 용사, 동체 갑옷 입은 자, 하인들이 있듯이, 성스러운 제자는 열심히 정진한다. 

그는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제거하고 유익한 법[善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며 머문다. 그는 굳세고 분투하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바램을 내팽개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정진의 군대를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개발하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일을 개발하고,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그는 이러한 다섯 번째 좋은 법을 구족하였다.


비구들이여, 마치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모르는 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아는 자들이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여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현명하고 명석하고 슬기로운 수문장이 있듯이, 성스러운 제자는 마음 챙김을 한다. 

그는 최상의 마음 챙김과 슬기로움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챙긴다.

비구들이여, 마음 챙김의 수문장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개발하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일을 개발하고,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그는 이러한 여섯 번째 좋은 법을 구족하였다.”


비구들이여, 마치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회반죽을 바른 높고 넓은 성벽이 있듯이, 성스러운 제자는 통찰지를 가졌다. 

그는 일어나고 사라짐을 꿰뚫고, 성스럽고 통찰력이 있고,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통찰지를 구족하였다.

비구들이여, 통찰지의 성벽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개발하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일을 개발하고,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그는 이러한 일곱 번째 좋은 법을 구족하였다.”


6.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풀과 장작과 물을 많이 저장해두듯이, 성스러운 제자도 자신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열반에 도달하기 위하여,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쌀과 보리를 많이 저장해두듯이, 성스러운 제자도 자신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열반에 도달하기 위하여,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참깨와 녹두와 메주콩과 다른 곡물을 많이 저장해두듯이, 성스러운 제자도 자신을 기쁘게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열반에 도달하기 위하여,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정제된 버터, 생 버터, 기름, 꿀, 당밀, 소금과 같은 약을 많이 저장해두듯이, 성스러운 제자도 자신을 기쁘게 하고 초조하지 않게 하고 편히 머물게 하고 열반에 도달하기 위하여,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들어 머문다."

 

7.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러한 일곱 가지 좋은 법을 구족하고, 또한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이러한 네 가지 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때,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마라를 무력하고 만들고 사악한 자를 무력하게 만든다고 한다.”


법을 앎 경(A7:64)

Dhammaññū-sutta 

1.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다. 무엇이 일곱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법을 아는 자, 의미를 아는 자, 자신을 아는 자, 적당한 양을 아는 자, 때를 아는 자, 회중을 아는 자, 인간의 높고 낮음을 아는 자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법을 아는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안다. 만일 비구가 경, 응송,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법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경, 응송,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법을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를 [설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의미를 아는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은 이 말의 의미고, 이것은 이 말의 의미다.’라고 각각의 말의 의미를 안다. 만일 비구가 ‘이것은 이 말의 의미고, 이것은 이 말의 의미다.’라고 각각의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의미를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이것은 이 말의 의미고, 이것은 이 말의 의미다.’라고 각각의 말의 의미를 안다. 그래서 그는 의미를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를 설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자신을 아는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나에게는 이 정도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와 영감이 있다.’라고 자신을 안다. 만일 비구가 ‘나에게는 이 정도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와 영감이 있다.’라고 알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나에게는 이 정도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와 영감이 있다.’라고 자신을 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와 자신을 아는 자를 설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적당한 양을 아는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의 [네 가지] 필수품을 받음에 적당한 양을 안다. 만일 비구가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의 [네 가지] 필수품을 받음에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적당한 양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의 네 가지 필수품을 받음에 적당한 양을 안다. 그래서 그는 적당한 양을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와 자신을 아는 자와 적당한 양을 아는 자를 설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때를 아는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금은 가르칠 시간이다. 지금은 질문할 시간이다. 지금은 수행할 시간이다. 지금은 한거할 시간이다.’라고 적당한 때를 안다. 만일 비구가 ‘지금은 가르칠 시간이다. 지금은 질문할 시간이다. 지금은 수행할 시간이다. 지금은 한거할 시간이다.’라고 적당한 때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때를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지금은 가르칠 시간이다. 지금은 질문할 시간이다. 지금은 수행할 시간이다. 지금은 한거할 시간이다.’라고 적당한 때를 안다. 그래서 그는 때를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와 자신을 아는 자와 적당한 양을 아는 자와 때를 아는 자를 설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회중을 아는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은 끄샤뜨리야 회중이다. 이것은 바라문의 회중이다. 이것은 장자의 회중이다. 이것은 사문의 회중이다. 거기에는 이와 같이 다가가야 하고 이와 같이 서야 하고 이와 같이 앉아야 하고 이와 같이 말해야 하고, 이와 같이 침묵해애 한다.’라고 회중을 안다. 만일 비구가 ‘이것은 끄샤뜨리야의 회중이다. 이것은 바라문의 회중이다. 이것은 장자의 회중이다. 이것은 사문의 회중이다. 거기에는 이와 같이 다가가야 하고 이와 같이 서야 하고 이와 같이 앉아야 하고 이와 같이 말해야 하고 이와 같이 침묵해야 한다.’라고 회중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회중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이것은 끄샤뜨리야의 회중이다. 이것은 바라문의 회중이다. 이것은 장자의 회중이다. 이것은 사문의 회중이다. 거기에는 이와 같이 다가가야 하고 이와 같이 서야 하고 이와 같이 앉아야 하고 이와 같이 말해야 하고, 이와 같이 침묵해야 한다.’라고 회중을 안다. 그래서 그는 회중을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와 자신을 아는 자와 적당한 양을 아는 자와 때를 아는 자와 회중을 아는 자를 설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인간의 높고 낮음을 아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거룩한 스승을 친견하고자 하고, 다른 사람은 거룩한 스승을 친견하고자 하지 않는다. 거룩한 스승을 친견하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거룩한 스승을 친견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거룩한 스승을 친견하고자 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정법을 듣고자 하고, 다른 사람은 정법을 듣고자 하지 않는다. 정법을 듣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정법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정법을 듣고자 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귀 기울여 법을 듣고 다른 사람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법을 듣는다. 귀를 기울여 법을 듣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귀를 기울여 법을 듣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귀를 기울여 법을 듣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들은 뒤 법을 호지하고, 다른 사람은 들은 뒤 법을 호지하지 않는다. 들은 뒤 법을 호지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들은 뒤 법을 호지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들은 뒤 법을 호지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호지한 법들의 의미를 숙고하고, 다른 사람은 호지한 법들의 의미를 숙고하지 않는다. 호지한 법들의 의미를 숙고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호지한 법들의 의미를 숙고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호지한 법들의 의미를 숙고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의미를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여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다른 사람은 의미를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여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지 않는다. 의미를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여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의미를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여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의미를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여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이 이익을 위해서는 닦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서는 닦지 않고,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닦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닦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닦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서는 닦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닦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닦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인간의 높고 낮음을 아는 자다."

 

4.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다.”


빠릿찻따까 나무 경(A7:65)

Pāricchattaka-sutta 

1.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에 있는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새잎이 돋으면 삼십삼천의 신들은 ‘빠릿찻따까 꼬윌라라에 새잎이 돋는구나. 이내 잎이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음이 흡족해진다.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에 있는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잎이 떨어지면 삼십삼천의 신들은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잎이 떨어지는구나. 이내 꽃눈이 돋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음이 흡족해진다.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에 있는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눈이 돋으면 삼십삼천의 신들은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눈이 돋는구나. 이내 꽃망울이 생길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음이 흡족해진다.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에 있는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망울이 서면 삼십삼천의 신들은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망울이 서는구나. 이내 꽃봉오리가 생길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흡족해진다.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에 있는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봉오리가 생기면 삼십삼천의 신들은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봉오리가 생기는구나. 이내 홍련처럼 꽃이 반개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음이 흡족해진다.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에 있는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홍련처럼 꽃이 반개하면 삼십삼천의 신들은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홍련처럼 꽃이 반개하는구나. 이내 꽃이 만발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음이 흡족해진다.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의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이 만발하면 마음이 흡족해진 삼십삼천의 신들은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 아래서 천상의 넉 달 동안을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겼다. 그리고 꽃이 만발한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는 사방으로 50요자나까지 그 광채가 빛났으며 바람을 따라 그 향기가 100요자나까지 퍼졌나니 이것이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의 위력이다.” 

註)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는 영어로 coral tree(산호 나무)라고 번역한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 나무는 삼십삼천의 난다나 정원에 있으며 이곳에 있는 수담마 회의장 앞에 마가(Magha)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 둘레는 무려 100요자나라고 한다.


2.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가 집에서 나와 출가를 결심할 때 성스러운 제자는 삼십삼천의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새잎이 돋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수하고 집을 나와 출가하였을 때 성스러운 제자는 삼십삼천의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잎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가,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물 때 성스러운 제자는 삼십삼천의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눈이 돋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가,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물 때 성스러운 제자는 삼십삼천의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망울이 서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가,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물 때 성스러운 제자는 삼십삼천의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봉오리가 생기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가,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물 때 성스러운 제자는 삼십삼천의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이 반개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때 성스러운 제자는 삼십삼천의 빠릿찻따까 꼬윌라라 나무에 꽃이 만발한 것과 같다."


3, "비구들이여, 그때 땅의 신들은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한다. 

‘아무개라는 존자가 아무개라는 존자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 머무르다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집을 나와 집 없이 출가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땅의 신들의 말을 듣고 사대왕천의 신들도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한다. 

‘아무개라는 존자가  아무개라는 존자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 머무르다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집을 나와 집 없이 출가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사대왕천의 신들의 말을 듣고 삼십삼천의 신들도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한다. ‘아무개라는 존자가 아무개라는 존자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 머무르다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집을 나와 집 없이 출가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삼십삼천의 신들의 말을 듣고 야마천의 신들도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한다. ‘아무개라는 존자가 아무개라는 존자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 머무르다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집을 나와 집 없이 출가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야마천의 신들의 말을 듣고 도솔천의 신들도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한다. ‘아무개라는 존자가 아무개라는 존자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 머무르다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집을 나와 집 없이 출가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도솔천의 신들의 말을 듣고 화락천의 신들도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한다. ‘아무개라는 존자가 아무개라는 존자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 머무르다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집을 나와 집 없이 출가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화락천의 신들의 말을 듣고 타화자재천의 신들도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한다. ‘아무개라는 존자가 아무개라는 존자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 머무르다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집을 나와 집 없이 출가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타화자재천의 신들의 말을 듣고  범신천의 신들도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한다. ‘아무개라는 존자가 아무개라는 존자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 머무르다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집을 나와 집 없이 출가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한다. ‘아무개라는 존자가 아무개라는 존자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 머무르다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집을 나와 집 없이 출가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라고.


그러면 바로 그 순간과 바로 그 시점에 그 소리는 범천의 세상까지 울려 퍼진다. 이것이 번뇌 다한 비구의 위력이다.”


존경함 경(A7:66)

Sakkatv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암바빨리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삼매에 머무는 중에 문득 마음에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하는가?’


그러고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비구는 스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승가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닦음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삼매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불방일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친절한 환영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내게는 이런 법들이 청정하고 깨끗하다. 나는 세존께 가서 이러한 법들을 아뢰어야겠다. 그러면 나의 이런 법들은 더 청정하게 될 것이고 또한 더 청정하다고 평가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청정하고 깨끗한 금화를 얻으면 그는 ‘내가 얻은 이 금화는 청정하고 깨끗하다. 나는 대장장이들에게 가서 이 금화를 보여야겠다. 그러면 내가 얻은 이 금화는 대장장이의 도가니를 거쳐 더 청정하게 될 것이고 또한 더 청정하다고 평가될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와 같이 내게는 이런 법들이 청정하고 깨끗하다. 나는 세존께 가서 이러한 법들을 아뢰어야겠다. 그러면 나의 이런 법들이 더 청정하게 될 것이고 또한 더 청정하다고 평가될 것이다.’


2. 사리뿟따 존자는 해거름에 삼매에서 일어나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제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삼매에 머무는 중에 문득 마음에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하는가?’ 

그러자 제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비구는 스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승가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수행규칙과 학습(닦음)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삼매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불방일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비구는 친절한 환영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라고

그때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는 이런 법들이 청정하고 깨끗하다. 나는 세존께 가서 이러한 법들을 아뢰어야겠다. 그러면 나의 이런 법들은 더 청정하게 될 것이고 또한 더 청정하다고 평가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청정하고 깨끗한 금화를 얻으면 그는 ‘내가 얻은 이 금화는 청정하고 깨끗하다. 나는 대장장이들에게 가서 이 금화를 보여야겠다. 그러면 내가 얻은 이 금화는 대장장이의 도가니를 거쳐 더 청정하게 될 것이고 또한 더 청정하다고 평가될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와 같이 내게는 이런 법들이 청정하고 깨끗하다. 나는 세존께 가서 이러한 법들을 아뢰어야겠다. 그러면 나의 이런 법들이 더 청정하게 될 것이고 또한 더 청정하다고 평가될 것이다.’라고.”


“장하고도 장하구나, 사리뿟따여. 사리뿟따여, 

비구는 스승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승가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삼매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불방일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비구는 친절한 환영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면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유익함을 닦아야 한다.”


3.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해 주신 것의 뜻을 저는 이와 같이 자세하게 압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법을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법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승가를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승가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삼매를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삼매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고 삼매를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불방일을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고 삼매를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불방일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고 삼매를 존중하지 않고 불방일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친절한 환영을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고 삼매를 존중하지 않고 불방일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친절한 환영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는 비구가 법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는 비구는 법도 존중합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는 비구가 승가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는 비구는 승가도 존중합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는 비구가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는 비구는 수행규칙과 학습도 존중합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는 비구가 삼매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는 비구는 삼매도 존중합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고 삼매를 존중하는 비구가 불방일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고 삼매를 존중하는 비구는 불방일도 존중합니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해규칙과 학습을 존중하고 삼매를 존중하고 불방일을 존중하는 비구가 친절한 환영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고 삼매를 존중하고 불방일을 존중하는 비구는 친절한 환영도 존중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해 주신 것의 뜻을 저는 이와 같이 자세하게 압니다.”


4. “장하고도 장하구나, 사리뿟따여. 사리뿟따여, 내가 간략하게 설한 것의 뜻을 그대는 이와 같이 자세하게 아는구나.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법을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법도 존중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승가를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승가도 존중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삼매를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삼매도 존중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고 삼매를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불방일을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고 삼매를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불방일도 존중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고 삼매를 존중하지 않고 불방일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가 친절한 환영을 존중할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고 삼매를 존중하지 않고 불방일을 존중하지 않는 비구는 친절한 환영도 존중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는 비구가 법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는 비구는 법도 존중한다.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는 비구가 승가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는 비구는 승가도 존중한다.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는 비구가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는 비구는 수행규칙과 학습도 존중한다.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는 비구가 삼매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는 비구는 삼매도 존중한다.

사리뿟따여,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고 삼매를 존중하는 비구가 불방일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고 삼매를 존중하는 비구는 불방일도 존중한다.

세존이시여,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해규칙과 학습을 존중하고 삼매를 존중하고 불방일을 존중하는 비구가 친절한 환영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중하고 수행규칙과 학습을 존중하고 삼매를 존중하고 불방일을 존중하는 비구는 친절한 환영도 존중한다. 


사리뿟따여, 내가 간략하게 설한 것의 뜻을 그대는 이와 같이 자세하게 보아야 한다.”


수행 경(A7:67)

Bhāvanā-sutta 

1. “비구들이여, 닦음과 익힘(수행)에 몰두하지 않고 머무는 비구에게도 이러한 바람은 일어날 것이다. 

‘오, 참으로 나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기를.’이라고. 그러나 그는 결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무엇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성스러운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바른 길[八支聖道]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암탉에게 여덟 개나 열 개나 열두 개의 계란이 있다 하자. 그런데 암탉은 계란들 위에서 바르게 품지도 못하고 바르게 온기를 주지도 못하고 바르게 냄새를 느끼게 하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 암탉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날 것이다. 

‘오, 이 병아리들이 발톱 끝이나 부리로 계란의 껍질을 잘 부순 뒤 안전하게 뚫고 나오기를.’이라고. 그렇지만 병아리들은 발톱 끝이나 부리로 계란의 껍질을 잘 부순 뒤 안전하게 뚫고 나올 수 없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 암탉이 계란들 위에서 바르게 품지도 못하고 바르게 온기를 주지도 못하고 바르게 냄새를 느끼게 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수행에 몰두하지 않고 머무는 비구에게도 이러한 바람이 일어날 것이다. 

‘오, 참으로 나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기를.’이라고. 

그러나 그는 결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무엇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성스러운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바른 길[八支聖道]이다.”


2. “비구들이여, 수행에 몰두하여 머무는 비구에게 이러한 바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 참으로 나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기를.’이라고. 

그러나 그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무엇을 수행하기 때문인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성스러운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바른 길[八支聖道]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암탉에게 여덟 개나 열 개나 열두 개의 계란이 있다 하자. 그런데 암탉은 계란들 위에서 바르게 품고 바르게 온기를 주고 바르게 냄새를 느끼게 한다. 그렇지만 그 암탉에게 이런 바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 이 병아리들이 발톱 끝이나 부리로 계란의 껍질을 잘 부순 뒤 안전하게 뚫고 나오기를.’이라고, 그러나 병아리들은 발톱 끝이나 부리로 계란의 껍질을 잘 부순 뒤 안전하게 뚫고 나올 수 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 암탉이 계란들 위에서 바르게 품고 바르게 온기를 주고 바르게 냄새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수행에 몰두하여 머무는 비구에게 이러한 바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 참으로 나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기를.’이라고, 

그러나 그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무엇을 수행하기 때문인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성스러운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바른 길[八支聖道]이다.”


3.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목수나 목수의 도제가 까뀌 자루에 생긴 손가락 자국이나 엄지손가락 자국을 보고 ‘오늘은 나의 까뀌 자루가 이만큼 닳았고 어제는 이만큼 닳았고 그 전에는 이만큼 닳았다.’라고 알지 못한다. 대신에 다 닳았을 때 닳았다고 안다. 그와 같이 수행에 몰두하여 머무는 비구에게 ‘오늘은 나의 번뇌들이 이만큼 다했고 어제는 이만큼 다했고 그 전에는 이만큼 다했다.’라고 알지 못한다. 대신에 번뇌가 다 했을 때 다 했다고 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돛대와 밧줄을 장착하여 바다로 항해하는 배가 육 개월 동안 항해한 뒤 겨울철에 해안에 닿는다 하자. 그러면 그 밧줄들은 바람과 햇볕으로 약해지고 다시 우기에 많은 비에 젖으면 쉽게 푸석푸석해질 것이고 썩어버릴 것이다. 그와 같이 수행에 몰두하여 머무는 비구의 열 가지 족쇄는 쉽게 푸석푸석해지고 썩어버린다.”


불(火) 경(A7:68)

Agg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살라에서 많은 비구 대중과  함께 유행(遊行)하셨다. 세존께서는 대로를 따라 걷고 계시다가 어느 지역에서 불꽃을 튀기면서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큰 불무더기를 보셨다. 그것을 보시고 길을 벗어나 어떤 나무 아래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아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불꽃을 튀기면서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저 큰 불무더기를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꽃을 튀기면서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저 큰 불무더기를 껴안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과 부드럽고 아름다운 손발을 가진 끄샤뜨리야의 딸이나 바라문의 딸이나 장자의 딸을 껴안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낫겠는가?”

“세존이시여, 부드럽고 아름다운 손발을 가진 끄샤뜨리야의 딸이나 바라문의 딸이나 장자의 딸을 껴안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불꽃을 튀기면서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저 큰 불무더기를 껴안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은 고통일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고 선언하나니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지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고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에게는 불꽃을 튀기면서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저 큰 불무더기를 껴안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이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고 단말마의 고통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손발을 가진 끄샤뜨리야의 딸이나 바라문의 딸이나 장자의 딸을 껴안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2.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힘센 남자가 말총으로 만든 질긴 밧줄로 사람의 두 무릎을 감아서 단단하게 죄면 그것은 우선 겉 피부를 벗겨지게 할 것이고, 그 다음에 속 피부를 벗겨지게 할 것이다. 그 다음에 살을 끊을 것이고, 그 다음에 힘줄을, 그 다음에 뼈를 끊을 것이다. 뼈를 끊은 뒤 그것은 골수에 닿은 채로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과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경배를 받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낫겠는가?”

“세존이시여,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경배를 받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힘센 남자가 말총으로 만든 질긴 밧줄로 사람의 두 무릎을 감아서 단단하게 죄면 그것은 우선 겉 피부를 벗겨지게 할 것이고, 그 다음에 속 피부를 벗겨지게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살을 끊을 것이고, 그 다음에 힘줄을, 그 다음에 뼈를 끊을 것이다. 뼈를 끊은 뒤 그것은 골수에 닿은 채로 있는 것은 고통일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고 선언하나니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에게는 힘센 남자가 말총으로 만든 질긴 밧줄로 사람의 두 무릎을 감아서 단단하게 죄면 그것은 우선 겉 피부를 벗겨지게 할 것이고, 그 다음에 속 피부를 벗겨지게 할 것이다. 그 다음에 살을 끊을 것이고, 그 다음에 힘줄을, 그 다음에 뼈를 끊을 것이다. 뼈를 끊은 뒤 그것은 골수에 닿은 채로 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이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고 단말마의 고통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가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경배를 받는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3.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힘센 남자가 기름에 씻은 예리한 창으로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것과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합장 공경을 받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낫겠는가?”

“세존이시여,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합장 공경을 받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힘센 남자가 기름에 씻은 예리한 창으로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것은 고통일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고 선언하나니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에게는 힘센 남자가 기름에 씻은 예리한 창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이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고 단말마의 고통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가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합장 공경을 받는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4.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힘센 남자가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철판으로 [사람의] 몸을 감싸는 것과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옷을 수용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낫겠는가?”

“세존이시여,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옷을 수용하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힘센 남자가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철판으로 [사람의] 몸을 감싸는 것은 고통일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고 선언하나니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에게는 힘센 남자가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철판으로 그의 몸을 감싸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이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고 단말마의 고통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가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옷을 수용한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힘센 남자가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 부젓가락으로 사람의 입을 벌려서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덩이를 입에다 넣으면 이 무쇠덩이는 그의 입술을 태우고 입과 혀와 목구멍과 뱃속을 태우고 창자와 장간막을 거쳐 아래로 빠져나갈 것이다. 이것과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탁발음식을 수용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낫겠는가?”

“세존이시여,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탁발음식을 수용하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힘센 남자가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 부젓가락으로 사람의 입을 벌려서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덩이를 입에다 넣으면 그 무쇠덩이는 그의 입술을 태우고 입과 혀와 목구멍과 뱃속을 태우고 창자와 장간막을 거쳐 아래로 빠져나가는 것은 고통일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고 선언하나니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에게는 힘센 남자가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 부젓가락으로 그의 입을 벌려서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덩이를 입에다 넣으면 그 무쇠덩이는 그의 입술을 태우고 입과 혀와 목구멍과 뱃속을 태우고 창자와 장간막을 거쳐 아래로 빠져나갈 것인데 이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이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고 단말마의 고통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가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탁발음식을 수용한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6.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힘센 남자가 사람의 머리나 어깨를 잡고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로 된 침상이나 무쇠로 된 의자에 앉게 하거나 눕게 하는 것과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침상과 의자를 수용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낫겠는가?”

“세존이시여,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침상이나 의자를 수용하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힘센 남자가 사람의 머리나 어깨를 잡고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로 된 침상이나 무쇠로 된 의자에 앉게 하거나 눕게 하는 것은 고통일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고 선언하나니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에게는 힘센 남자가 그의 머리나 어깨를 잡고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로 된 침상이나 무쇠로 된 의자에 앉게 하거나 눕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이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고 단말마의 고통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가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침상과 의자를 수용한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7.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힘센 남자가 사람의 발을 위로, 머리를 아래로 잡고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 가마솥에 집어던져 넣으면 그 속에서 한 번은 위로 올라가고 한 번은 아래로 내려가고 한 번은 옆으로 가기도 하면서 거품을 일으키면서 삶길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과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사원을 수용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낫겠는가?”

“세존이시여,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사원을 수용하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힘센 남자가 사람의 발을 위로, 머리를 아래로 잡고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 가마솥에 집어던져 넣어 그 속에서 한 번은 위로 올라가고 한 번은 아래로 내려가고 한 번은 옆으로 가기도 하면서 거품을 일으키면서 삶기는 것은 고통일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고 선언하나니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졌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에게는 힘센 남자가 그의 발을 위로, 머리를 아래로 잡고 시뻘겋게 불타는 뜨거운 무쇠 가마솥에 집어던져 넣어 그 속에서 한 번은 위로 올라가고 한 번은 아래로 내려가고 한 번은 옆으로 가기도 하면서 거품을 일으키면서 삶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이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고 단말마의 고통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법을 가지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진 자가 부유한 끄샤뜨리야나 부유한 바라문이나 부유한 장자가 신심으로 보시한 사원을 수용한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8.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와 같이 닦아야 한다. 

‘우리가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수용하도록 해준 그들의 행위는 많은 결실과 많은 이익을 가져올 것이고, 우리의 출가도 헛되지 않고 결실이 있고 이익이 있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자신의 이익을 보는 자는 이와 같이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성취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남의 이익을 보는 자도 이와 같이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성취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둘 모두의 이익을 보는 자도 이와 같이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성취해야 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이 설해지자 60명 정도의 비구는 입으로 뜨거운 피를 토했다. 60명 정도의 비구는 ‘행하기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너무나 행하기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하면서 청정한 삶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60명 정도의 비구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수넷따 경(A7:69)

Sunetta-sutta 

1. “비구들이여, 옛날에 수넷따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욕망을 여의었다. 

수넷따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수넷따 스승은 제자들에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하였다. 그런데 수넷따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수넷따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2. “비구들이여, 예전에 무가빡카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욕망을 여의었다. 

무가빡카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무가빡카 스승은 제자들에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하였다. 그런데 무가빡카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무가빡카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비구들이여, 예전에 아라네미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었다. 

아라네미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아라네미 스승은 제자들에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하였다. 그런데 아라네미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아라네미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비구들이여, 예전에 꿋달라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욕망을 여의었다. 

꿋달라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꿋달라 스승은 제자들에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하였다. 그런데 꿋달라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꿋달라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비구들이여, 예전에 핫티빨라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욕망을 여의었다. 

핫티빨라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핫티빨라 스승은 제자들에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하였다. 그런데 핫티빨라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핫티빨라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비구들이여, 예전에 조띠빨라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욕망을 여의었다. 

조띠빨라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조띠빨라 스승은 제자들에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하였다. 그런데 조띠빨라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조띠빨라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비구들이여, 예전에 아라까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쾌락들에 대해 욕망을 여의었다. 

아라까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아라까 스승은 제자들에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하였다. 그런데 아라까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아라까 스승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할 때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3.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욕망을 여의었으며 수백 명의 수행원들과 제자들의 무리를 거느린 이러한 일곱 스승들에게 마음이 타락한 사람이 욕을 하고 비난한다면 그는 많은 악덕을 쌓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교단의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쾌락들에 대해 욕망을 여의었으며 수백 명의 수행원들과 제자들의 무리를 거느린 이러한 스승들에게 마음이 타락한 사람이 욕을 하고 비난한다면 그는 많은 악덕을 쌓는다. 그런데 견해를 구족한 사람을 마음이 타락한 사람이 욕을 하고 비난한다면 그는 이보다 더 많은 악덕을 쌓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다른 외도들을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동료 비구들을 욕하고 비난하여 자신의 공덕을 파버리는 것처럼 그만큼의 공덕을 파버린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동료 비구들에 대해서 마음을 타락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닦아야 한다.”


아라까 경(A7:70)

Araka-sutta 

1. “비구들이여, 옛날에 아라까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그는 교단의 창시자였으며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욕망을 여의었다. 아라까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아라까 스승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하였다.”


2. “바라문이여, 사람의 목숨이란 짧고 제한적이고 덧없고 많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많은 절망을 준다. 그러니 만트라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란 없다.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풀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이 태양이 떠오르면 즉시에 사라져버리고 오래 머물지 못하듯이, 사람의 목숨이란 이슬방울처럼 짧고 제한적이고 덧없고 많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많은 절망을 준다. 그러니 만뜨라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란 없다.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굵은 빗방울의 비가 떨어질 때 물에 수포덩어리가 [생겼다가] 즉시 사라져버리고 오래 머물지 못하듯이, 사람의 목숨이란 수포덩어리처럼 짧고 제한적이고 덧없고 많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많은 절망을 준다. 그러니 만뜨라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란 없다.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물위에 막대기로 그은 선이 즉시 사라져버리고 오래 머물지 못하듯이, 사람의 목숨이란 물 위에 막대기로 그은 선처럼 짧고 제한적이고 덧없고 많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많은 절망을 준다. 그러니 만뜨라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란 없다.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산에서 쏟아지는 강물이 급류와 함께 [떨어진 풀과 나뭇잎 등을] 쓸어 가버리면서 멀리 흐르면, 그것은 찰나라도 잠시라도 순간이라도 멈추지 않는다. 대신에 돌진하고 질주하고 잽싸게 달리듯이, 사람의 목숨이란 산에서 쏟아지는 강물처럼 짧고 제한적이고 덧없고 많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많은 절망을 준다. 그러니 만뜨라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란 없다.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그의 혀 끝에 있는 한 덩이의 가래침을 별 어려움 없이 내뱉듯이, 사람의 목숨이란 한 덩이의 가래침처럼 짧고 제한적이고 덧없고 많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많은 절망을 준다. 그러니 만뜨라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란 없다.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온종일 데워진 철판 위에다 작은 고깃덩이를 놓으면 즉시 사라져버리고 오래 머물지 못하듯이, 사람의 목숨이란 고깃덩이처럼 짧고 제한적이고 덧없고 많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많은 절망을 준다. 그러니 만뜨라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란 없다.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갈 때 끌려가는 발자국마다 살해의 곁으로 가고 죽음의 곁으로 가듯이, 사람의 목숨이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짧고 제한적이고 덧없고 많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많은 절망을 준다. 그러니 만뜨라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란 없다.”


3. “비구들이여, 그 무렵에 인간은 6만 살의 수명을 가졌으며 여자는 500살이 결혼 적령기였다. 그 때의 인간들에게는 오직 여섯 가지 재해밖에 없었다. 그것은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목마름, 대변과 소변이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인간이 이처럼 오랜 수명을 가졌고 이처럼 오래 살았고 이처럼 재해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라까 스승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법을 설하였다. 

‘바라문이여, 사람의 목숨이란 짧고 제한적이고 덧없고 많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많은 절망을 준다. 그러니 만뜨라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란 없다.’라고.


비구들이여, 지금 여기서 바르게 말하는 자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목숨이란 짧고 제한적이고 덧없고 많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많은 절망을 준다. 그러니 만뜨라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란 없다.’라고.


비구들이여, 지금 여기서 오래 사는 사람도 백 년의 이쪽저쪽이다. 백 년을 살아도 삼백 계절밖에 살지 못하나니 겨울철이 백 번이고, 여름철이 백 번이고, 우기철이 백 번이다. 삼백 계절을 살아도 천2백 달밖에 살지 못하나니 겨울철이 4백 달, 여름철이 4백달, 우기철이 4백 달이다.

천2백 달을 살아도 2천4백 번의 보름밖에 살지 못하나니 겨울철에 8백 번의 보름이 있고, 여름철에 8백 번의 보름이 있고, 우기철에 8백 번의 보름이 있다. 2천4백 번의 보름을 살아도 3만6천 밤밖에 살지 못하나니, 겨울철에 만2천 밤이 있고, 여름철에 만2천 밤이 있고, 우기철에 만2천 밤이 있다. 3만6천 밤을 살아도 밥을 먹는 것은 7만2천 번밖에 안되나니 겨울철에 2만4천 번의 밥을 먹고, 여름철에 2만4천 번의 밥을 먹고, 우기철에 2만4천 번의 밥을 먹는다. 여기에는 어머니 젖을 먹는 것과 밥을 굶는 것도 포함된다. 여기서 밥을 굶을 때는 이러하다. 화가 나면 밥을 먹지 않고, 괴로워도 밥을 먹지 않고, 병이 들어도 밥을 먹지 않고, 포살(우뽀사타)을 지킬 때도 밥을 먹지 않고 얻지 못했을 때도 밥을 먹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백 년을 사는 인간의 수명을 말하였고 수명의 기간도 말하였고 계절도 말하였고 해도 말하였고 달도 말하였고 보름도 말하였고 밤도 말하였고 밤낮도 말하였고 밥을 먹는 것도 말하였고 밥을 굶는 것도 말하였다.”


4. “비구들이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이제 나는 연민으로 그대들에게 하였다.


비구들이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집들이 있다. 삼맬를 닦아라.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다.”


제7장 대 품이 끝났다. 일곱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양심 ② 태양 ③ 도시 비유 ④ 법을 앎 ⑤ 빠릿찻따까 나무 ⑥ 존경함 ⑦ 수행 ⑧ 불 ⑨ 수넷따 

⑩ 아라까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