湯田豊『인도사상사』에서
龍樹의 중관사상은 앞절에서 보았듯 二諦說에 기초한 中道사상으로, 世俗諦로서 勝義諦인 覺證의 세계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곧 각증의 세계에서 체득된 이치가 言說로 나타난 것이 緣起·空으로, 이 연기·공의 개념과 배치되는 外道나 有部의 自性등의 개념을 논리적으로 비판한 것이 용수의 『中論』 및 그의 다른 저술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용수의 중관사상은 佛滅後 상당한 기간이 지난뒤 불교 역사상 부파불교의 전개와 대승불전의 발생과 같은 역사적 정황을 전제로 나타나지만, 이미 『중론』에서도 밝히고 있듯 용수는 그의 사상적 근본이 불교의 개조인 불타에게서 출발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앞절에서 본 『중론』의 귀경게에서도 용수의 입장을 볼 수 있지만,『중론』의 마지막 게송에서도 그가 불타에게 사상적 출발을 두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체의 [잘못된] 견해를 끊기위하여, 愍心에 가득차,
正法을 설하신 그 고타마 붓다에게 나는 귀의합니다.(중론, 27-30)
이처럼 용수는 그의 사상적 출발점이 불타에게 비롯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지만, 그러면 용수는 어떠한 면에서 불타를 그 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먼저 필자는 正覺을 얻은 고타마 싣타르타, 곧 불타가 설법하기를 주저한 소위 「梵天의 勸請」장면은 중관사상의 근간인 이제설의 출발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불타는 6년간의 수행을 통해 고행에 의한 수행 방법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지 않음을 깨닫고, 피팔라(Pippala) 나무 아래에서 禪定에 들게 된다. 그리하여 얼마되지 않아 깨달음을 얻어 불타가 되고 그 깨달음의 희열을 만끽하게 되지만, 막상 그 심오한 깨달음의 내용을 타인에게 설하고자 하였을 때, 불타는 도리어 다음과 같은 염려를 하고 있다.
지금 내가 얻은 이 법은 너무나 깊어 알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지극히 미묘하고, 最上으로, 賢聖은 아는 바이지만,
愚者는 배우는 바가 아니다.
중생은 異見·異忍·異欲·異命으로,
異見에 의지하여 巢窟을 즐긴다.
중생은 이 소굴을 즐기는 까닭에,
緣起의 법이 깊고 깊은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 깊고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있다.
모든 욕망이 멸하여 愛가 다한 涅槃인 이곳을
또 한 보기 어려운 까닭에,
내가 지금 설법하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고,
곧 내가 오히려 피로하고 괴로울 뿐이다.(四分律, 32권)
이것은 불타가 正覺의 내용이 너무도 미묘하여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하는 부분으로, 소위「범천의 권청」으로 알려진 대목이다. 이 범천이 불타에게「세간에는 번뇌가 적고 총명하여 쉽게 제도할 수 있는 자가 있다」라고 청하여 불타는 법을 설할 것을 결심하지만, 이처럼 언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각증의 세계가 곧 二諦 가운데 勝義諦의 연원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甚深微妙한 각증의 세계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初轉法輪을 통해 언설로 표현되고, 따라서 그 언설에 의한 설법은 붓다의 입멸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불타가 최초로 설법한 초전법륜에 의하면, 2邊의 양극단을 떠나는 中道의 이치가 설해지고 있으며, 또한 구체적으로 四諦에 대한 가르침이 설해지고 있다.
이 최초의 설법에 나타나는 중도의 이치는 불타 사상의 근본으로, 이 중도사상이 불교의 근본사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타가 각증의 세계에서 체득한 이치란 무엇일가. 그것의 앞의 사분율에서도 나타나듯 구체적으로는 緣起(prtiityasamutpaada)로 표현되는 이치이다. 곧 각증의 체험 그 자체는 언표되기 어렵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이 연기라는 말에 함축되어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 연기의 구체적인 세계를 자각한 불타가 최초로 언표한 것이 중도의 원리이고, 사제의 원리이었던 것으로, 곧 그러한 원리는 연기에 대한 확신에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타가 이처럼 연기의 세계에 대해 확신을 가진 것은 당시의 사상적 분위기와 어떠한 관련을 갖는 것일까. 그 시대상황을 알기위해서는 불타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대 인도 사상의 전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도의 고대사상은 주지하는 바와같이 베다(Veda)로 대표되는 聖典에 의해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베다는 고대 인도 아리야인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신에 대한 찬가 및 각종 제사의식등을 모은 것으로 고대 인도인의 사상 및 문화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이 베다에 대한 연구는 종교학, 언어학 등의 학문을 태동시키는 바탕이 되지만, 무엇보다도 고대인의 정신적 발달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즉 상히타(SaMhita)·브라흐마나(Braahma?a)·아란야카(AAraNyaka)·우파니샤드(UpaniSad)의 네부분으로 이루어진 베다는 시대적으로 인간의 사색단계가 깊어지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대 인도의 종교형태는 제사와 의례가 주된 것이지만, 의례를 담당한 제관에 의해 각종 찬가가 신에게 바쳐지고 있으며, 그러한 신에 대한 찬가도 시대에 따라 보다 근원적인 神格에게로 향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프라쟈파티(PrajNYaapati), 비슈바카르만(Vi$vakarman)등으로써, 리그베다 상히타에서는 궁극의 존재를 단지 「一者(Tad ekam)」이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탐구는 베다의 네부분에서 각기 나타나는 것으로, 특히 그 궁극적 존재에 대한 탐구는 우파니샤드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고 있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極致(Veda-anta)라는 의미에서 베다의 結晶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인도 정통의 베단타 철학으로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최초의 우파니샤드는 불타 탄생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에서 베다의 사상적 전통은 기원전 1500년 정도부터 최초 우파니샤드의 발생시기인 기원전 600여년 까지 무려 천여년에 걸친 사상적 단계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랜 전통을 갖는 베다의 사상은 우파니샤드에 이르러 그 절정을 맞이하고, 그 사상적 정점에서 등장한 것이 아트만(aatman, 我)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즉 궁극의 존재로서 아트만에 대한 知가 절대적으로 추구된 것이 우파니샤드의 전체적인 분위기였고, 아울러 아트만에 대한 정의는 우주의 궁극적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과 함께 당시 사상가의 뇌리를 사로잡았던 중요한 테마이었던 것이다.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상가인 야즈냐발캬(YaajNYavalkya)는 브리하드 아란야카 우파니샤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실로 일체는 그 일체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아트만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일체가 사랑스러운 것이다. 실로 마이트레이여, 보여지고, 들려지고,
생각되어지고, 이해되어지는 것이 바로 아트만이다. 실로 그 아트만이 보여지고,
들려지고, 생각되어지고, 이해되어지는 것에 의해 일체는 알려진다.(BAU.2·4·5)
이처럼 우파니샤드의 사상가들은 궁극적 존재로서 아트만에 대해 아트만이 모든 만물의 근본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각 기능도 아트만에 의해 작용하는 것이라고까지 이론을 전개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궁극적 존재로서 아트만에 대한 탐구는 불타 탄생이전에 이미 인도의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불타도 또한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까닭에 불타의 최초 교설이 담겨있는 阿含經에는 이러한 궁극적인 문제와 그 당시의 다양한 견해등이 상세히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즉 불타가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十四無記」「十難無記」등은 잘 알려진 것이며, 또한 불타는 당시의 견해를 宿命論·尊祐論·無因無緣論등으로 종합해 비판하고 있으며(중아함, 度經), 또 당시의 여러 사상을 62見으로 나누어 비판하고 있다(장아함, 梵動經).
이러한 비판은 불타시대에 이미 다양한 사상이 난립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며, 특히 無我說로서 아트만을 비판한 것은 전통적인 베다의 사상을 거부하는 강렬한 메시지이었던 것이다. 이 비판이 불교의 三法印 중의 하나인 諸法無我의 법인으로, 불타는 이미 우파니샤드의 아트만이 무엇이며, 그것이 인간에게 어떠한 고통을 수반하는지를 냉철히 파악하고 있었다. 불타는 그 아트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그때 세존은 여러비구에게 말했다.
色은 我가 아니다. 만약 색이 아라면
마땅히 색에서 病苦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마땅히 색에 있어서 이와같이
하고자 하거나 이와같이 하고자 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색에는 아가 없는
까닭에, 색에는 병이 있고 고가 생긴다.
또한 색에 있어서 이와같이 하고자
하거나 이와같이 하고자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受想行識도 또한 그와같다.(잡아함 No.33)
곧 불타는 현상의 사물, 즉 色 가운데 아트만이 있다면, 변하거나 바뀜이 없이 영원히 고정된 것으로 변화되지 않을 것이지만, 실은 그러한 아트만이 없는 까닭에 변화와 고통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같이 변화되고 고통이 일어나는 것은 곧 우리의 五蘊으로, 따라서 오온인 이 신체에는 아트만이 없는 것이다. 이 오온에 아트만이 없다는 것은, 일체는 불타가 각증의 세계에서 체득한 연기의 도리로 이루어져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곧 연기의 이치로 일체가 이루어졌음에도 아트만의 실체에 의해 세계가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서 고통이 발생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기도하다.
다시말해 불타가 아트만을 안아트만(anaatman) 즉 無我로서 부정하는 것은, 그 근저에 일체는 연기의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 곧 일체는 서로 인연생기로서 결과를 갖는 것이지, 고정적인 실체가 원인·결과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타는 연기를 설함으로서 당시의 주된 사상적 과제인 아트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러나 불멸후 불교의 역사적 전개속에서 아트만과 같은근본실체에 대한 문제는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 이르러 「自性(svabhava)의 실재」에 대한 문제로 바뀌었으며, 또한 이 실체적인 자성에 대한 반발이 초기대승불전 가운데 공사상의 천명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성의 개념을 용수도 더이상 방관할 수 없었으며, 더우기 불타가 설한 연기의 이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자성의 개념을 불교의 정통교리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용수의 중관사상은 불타의 각증의 세계와 언표의 세계에 대한 분립을 이제설의 명확한 제시를 통해 통합시키고, 아울러 불타의 연기설을 재천명함으로서 불타의 본면목을 밝히고자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