湯田豊『인도사상사』에서
모든 사고나 견해는 한쪽에 치우친 것으로 필연적으로내면적인 모순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인간의 사고에 의해 파악되는 것은 남김없이 배척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가르주나는 생각했다. 나가르주나의 변증법이란 모든 견해나 주장이 내면적인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것을 논증하려고 하는 시도이다. 상대적인 것, 타에 의존하는 제약된 존재가 논리적 모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을 그는 폭로했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사고를 초월하고 있는 까닭에 마침내 그것은 불확정적인 것으로서 이해하는 이외에 달리 길이 없다라고 나가르주나는 생각했다. 나가르주나의 변증법 속에 우리들은 이성에 대한 그의 조소를 발견할 수가 있다. 인간의 이성 혹은 사고에 대하여 그는 철저한 불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가르주나에 의하면 사물이 독립의 존재이기 위하여는 자성(svabh?va)을 가지지 않으면 않된다. 그리고 사물에 자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다른 사물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물에 의존하고 있는 한 사물은 독립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로서 우리들의 인생에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신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다른 것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사물에는 자성이 결해 있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tattva)은 그 자신 만으로 존재하여 조금도 다른 사물에 좌우되지 않는다. 타트바에 대하여 나가르주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 적정인 것, 산만한 논의(=희론)에 의해 부연 되지 않는 것, 망상을 떠나 있는 것, 일의적인 것, 이것이 진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의 특징이다.(『중론』18-9)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다른 사물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 자신만으로 존재한다. 이 존재를 이성 내지 사고를 통하여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일체의 사물은 다른 것에 의존하고 다른 것과의 관련에 있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물이 다른 것에 의존하고 다른 것과 관련하여 존재하는 상태를 나가르주나는 <연기(pratiityasamutpaada)>라 이름하였다. 전세계가 <관계의 그물> 속에 던져져 있어 본질적으로 연기이며, 따라서 비실재인 것을 나가르주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다른 것에 의존하고 있는 것(=연기)을 우리들은 空性($uunyataa)이라 이름 한다. 그것은 비유적인 명칭이다. 그것은 곧 중도이다.(『중론』24-8)
중관파의 논리에 의하면 이 세상의 일체 사물운 자성에 있어 공이다. 사물은 다른 것에 의존하여 생기한다. 그런 까닭에 <연기>가 바로 공의 의미이다. 그러나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존재>, <비존재>, <그 둘> 및 <그 둘 모두 아닌 것>이라는 네가지 논점(catuHkoTi, 四句分別)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이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이것들 네 개의 논점이라고 하는 네 개의 극단 즉 인간의 견해(dRSTi)를 떠나 있다. 네가지 논점이라는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일체의 사고 범주에 대한 모순을 지적하여 그것을 백일하에 드러내고자하는 논리적 조작이 곧 중관체계의 변증법이다.
나가르주나 자신은 인간의 모든 사상, 견해를 비판하고, 논적의 주장이 일면적인 것으로 더욱이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철저히 논박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어떠한 견해도 갖지 않고 어떠한 입장도 지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긍정적 주장에는 근거가 없으며, 일체 인간의 사고가 모순에 빠져있는 것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나가르주나는 “모든 견해가 공이다(『중론』13-8)”라고 하는 것을 명쾌히 논증했다. 그리고 동일한 것이지만 ‘모든 견해의 방기(『중론』27-30)’를 강조했다. 이 목적을 위해 나가르주나가 사용한 이론적 무기가 그 독자의 변증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