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대 품
Mahā-vagga
사자 경(A10:21)
Sīha-sutta
1. “비구들이여, 동물의 왕 사자가 해거름에 굴에서 나온다. 굴에서 나와서는 기지개를 켜고, 기지개를 켠 뒤 사방을 두루 굽어본다. 사방을 두루 굽어본 뒤 세 번 사자후를 토한다. 세 번 사자후를 토한 뒤 초원으로 들어간다. 무슨 이유 때문에 사자후를 토하는가? ‘내가 위험한 곳에 머물고 있는 작은 생명들을 해치지를 않기를.’하는 생각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사자는 여래∙아라한∙정등각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회중들에게 법을 설하나니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사자후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에게는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나니, 이러한 힘을 구족하여 여래는 대웅(大雄)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梵輪]를 굴린다. 무엇이 열인가?”
2. “비구들이여, 여기 여래는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3.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의 과보를 조건과 원인과 함께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의 과보를 조건과 원인과 함께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가 가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4.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모든 행처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모든 [태어날 곳]으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5.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여러 요소[界]를 가졌고 다양한 요소를 가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여러 요소를 가졌고 다양한 요소를 가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6.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중생들의 다양한 성향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중생들의 다양한 성향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7.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믿음 등의 기능[根]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믿음 등의 기능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8.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等地]의 오염원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等地]의 오염원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9.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宿命通]
비구들이여, 여래가 이와 같이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하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10.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天眼通]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리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11. “다시 비구들이여, 여래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모든 번뇌를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무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비구들이여, 여래에게는 이러한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나니, 이러한 힘을 구족하여 여래는 대웅(大雄)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梵輪]를 굴린다.”
교리 경(A10:22)
Adhivuttipad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따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아난다여, 나는 이런저런 교리들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게 하는 법들을 두려움 없이 천명한다. 그것은 사람이 그대로 닦고 익히면, 있는 것을 있다고 알게 되고, 없는 것을 없다고 알게 될 것이고, 저열한 것을 저열하다고 알게 될 것이고, 수숭한 것을 수승하다고 알게 될 것이고, 위가 있는 것을 위가 있다고 알게 될 것이고, 위가 없는 것을 위가 없다고 알 수 있는 그런 법을, (삿된) 견해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설하기 위함이다. 그대로 알아야 하고, 보아야 하고, 실현되어야 하는 것을 그대로 알고, 보고, 실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如實知]가 지혜들 가운데서 위없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지혜보다 더 높고 더 수승한 다른 지혜는 없다고 말한다.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나니, 이러한 힘을 구족하여 여래는 대웅(大雄)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梵輪]을 굴린다. 무엇이 열인가?”
3. “아난다여, 여기 여래는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아난다여, 원인을 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이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4.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의 과보를 조건과 원인과 함께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아난다여, 여래가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의 과보를 조건과 원인과 함께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가 가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5.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모든 행처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아난다여, 여래가 모든 [태어날 곳]으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6.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여러 요소[界]를 가졌고 다양한 요소를 가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아난다여, 여래가 여러 요소를 가졌고 다양한 요소를 가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7.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중생들의 다양한 성향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아난다여, 여래가 중생들의 다양한 성향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8.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믿음 등의 기능[根]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아난다여, 여래가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믿음 등의 기능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9.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等地]의 오염원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아난다여, 여래가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等地]의 오염원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10.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宿命通]
아난다여, 여래가 여러 전생을 기억하여,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하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11.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天眼通]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리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12. “다시 아난다여, 여래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아난다여, 여래가 모든 번뇌를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무는 이것도 여래의 힘이니 이런 힘이 생겼기 때문에 여래는 대웅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이러한 열 가지 여래의 힘이 있나니, 이러한 힘을 구족하여 여래는 대웅(大雄)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신성한 바퀴를 굴린다.”
몸 경(A10:23)
Kāya-sutta
1. “비구들이여, 말이 아니라 몸으로 제거해야 할 법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몸이 아니라 말로 제거해야 할 법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 있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말이 아니라 몸으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으로 어떤 해로운 잘못을 범했다. 지혜로운 그의 동료 비구들이 이런 그를 잘 파악하여 이렇게 말해준다. ‘도반께서는 몸으로 어떤 해로운 잘못을 범했습니다.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버리고 몸으로 짓는 좋은 행위를 닦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라고. 그는 지혜로운 동료 비구들이 해준 말을 잘 파악하여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버리고 몸으로 짓는 좋은 행위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말이 아니라 몸으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라 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이 아니라 말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말로 어떤 해로운 잘못을 범했다. 지혜로운 그의 동료 비구들이 이런 그를 잘 파악하여 이렇게 말해준다. ‘도반께서는 말로 어떤 해로운 잘못을 범했습니다. 말로 짓는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말로 짓는 좋은 행위를 닦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라고. 그는 지혜로운 동료 비구들이 해준 말을 잘 파악하여 말로 짓는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말로 짓는 좋은 행위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몸이 아니라 말로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은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성냄은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어리석음은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분노는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원한은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위선은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앙심을 품음은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인색은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나쁜 질투는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법들이다.”
5. “비구들이여, 나쁜 질투는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나쁜 질투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이 풍족하다. 그것에 대해 어떤 하인이나 심부름꾼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오, 참으로 이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이 풍족하지 않기를.’ 혹은 사문이나 바라문이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풍족하게 얻는다. 그것에 대해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오, 참으로 이 존자가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풍족하게 얻지 못하기를.’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나쁜 질투라 한다.
비구들이여, 나쁜 질투는 몸으로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6. “비구들이여, 나쁜 바램은 몸으로도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나쁜 바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없으면서 ‘사람들이 나를 믿음 있는 사람으로 알기를.’하고 바란다. 계행이 나쁘면서 ‘사람들이 나를 계를 지키는 사람으로 알기를.’하고 바란다. 적게 배웠으면서 ‘사람들이 나를 많이 배운 사람으로 알기를.’하고 바란다. 무리지어 살기를 좋아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한거하는 사람으로 알기를.’하고 바란다. 게으르면서 ‘사람들이 나를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으로 알기를.’하고 바란다. 마음 챙김을 놓아버렸으면서 ‘사람들이 나를 마음 챙김을 확립한 사람으로 알기를.’하고 바란다. 삼매에 들지 못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삼매에 든 사람으로 알기를.’하고 바란다. 통찰지가 없으면서 ‘사람들이 나를 통찰지를 가진 사람으로 알기를.’하고 바란다. 번뇌를 다하지 못했으면서 ‘사람들이 나를 번뇌가 다한 사람으로 알기를.’하고 바란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나쁜 바램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나쁜 바램은 몸으로 말로도 제거할 수 없고 통찰지로 거듭 본 뒤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7.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탐욕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성냄에 속박되어 벗어 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분노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원한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위선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앙심을 품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인색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질투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바램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면 이 비구에 대해서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탐욕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성냄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분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분노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원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원한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존자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위선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존자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앙심을 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앙심 품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꿇어 알 때 인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인색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질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나쁜 질투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바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나쁜 바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라고.”
9.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탐욕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성냄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어리석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분노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원한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위선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앙심을 품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인색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나쁜 질투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나쁜 바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면, 이 비구에 대해서 이렇게 알아야 한다.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탐욕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성냄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어리석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분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분노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원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원한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위선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앙심을 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앙심 품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인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인색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질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나쁜 질투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바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나쁜 바램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라고.”
쭌다 경(A10:24)
Cund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마하쭌다 존자는 쩨띠에서 사하자띠에 머물고 있었다. 거기에서 마하쭌다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마하쭌다 존자시이여.”라고. 마하쭌다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2. “도반들이여, 비구가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라고 지혜에 대해서 말한다 합시다. 그런데 만일 그 비구가 탐욕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냄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분노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한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위선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앙심을 품음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색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질투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바램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 비구에 대해서는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탐욕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성냄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분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분노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원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원한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존자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위선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존자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앙심을 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앙심 품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꿇어 알 때 인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인색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질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나쁜 질투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바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나쁜 바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라고.”
3. “도반들이여, 비구가 ‘나는 몸을 닦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통찰지를 닦습니다.’라고 수행에 대해 말한다 합시다. 그런데 만일 그 비구가 탐욕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냄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분노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한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위선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앙심을 품음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색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질투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바램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 비구에 대해서는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탐욕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성냄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분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분노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원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원한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존자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위선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존자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앙심을 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앙심 품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꿇어 알 때 인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인색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질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나쁜 질투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바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나쁜 바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라고.”
4. “도반들이여, 비구가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 나는 몸을 닦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통찰지를 닦습니다.’라고 지혜와 수행에 대해 말한다 합시다. 그런데 만일 그 비구가 탐욕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냄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분노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한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위선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앙심을 품음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색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질투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바램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 비구에 대해서는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탐욕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성냄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분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분노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원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원한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존자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위선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존자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앙심을 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앙심 품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꿇어 알 때 인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인색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질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나쁜 질투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바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나쁜 바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라고.”
5.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가난하면서도 번영에 대해 말하고, 재물이 없으면서도 재물에 대해 말하고, 재산이 없으면서도 재산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그가 정작 재물을 마련할 기회가 왔을 때에도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을 벌어들이지 못한다 합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렇게 알 것입니다. ‘이 존자는 가난하면서 번영에 대해 말하고, 재물이 없으면서도 재물에 대해 말하고, 재산이 없으면서도 재산에 대해 말하는구나.’라고.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그것은 정작 재물을 마련할 기회가 왔을 때 이 존자가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을 벌어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비구가 ‘나는 이런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 나는 몸을 닦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통찰지를 닦습니다.’라고 지혜와 수행에 대해 말한다 합시다. 그런데 만일 그 비구가 탐욕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냄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분노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한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위선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앙심을 품음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색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질투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쁜 바램에 속박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 비구에 대해서는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탐욕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성냄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분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분노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원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원한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존자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위선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존자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앙심을 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앙심 품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꿇어 알 때 인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인색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질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나쁜 질투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 비구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바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존자는 나쁜 바람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구나.’라고.”
6. “도반들이여, 비구가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라고 지혜에 대해 말한다 합시다. 만일 그 비구가 탐욕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성냄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어리석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분노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원한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위선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앙심을 품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인색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나쁜 질투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나쁜 바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면, 이 비구에 대해서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탐욕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성냄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어리석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분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분노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원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원한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위선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앙심을 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앙심 품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인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인색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질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나쁜 질투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바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나쁜 바램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라고.”
7. “도반들이여, 비구가 ‘나는 몸을 닦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통찰지를 닦습니다.’라고 수행에 대해 말한다 합시다. 만일 그 비구가 탐욕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성냄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어리석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분노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원한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위선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앙심을 품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인색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나쁜 질투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나쁜 바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면, 이 비구에 대해서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탐욕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성냄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어리석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분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분노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원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원한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위선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앙심을 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앙심 품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인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인색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질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나쁜 질투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바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나쁜 바램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라고.”
8. “도반들이여, 비구가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 나는 몸을 닦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통찰지를 닦습니다.’라고 지혜와 수행에 대해 말한다 합시다. 만일 그 비구가 탐욕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성냄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어리석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분노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원한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위선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앙심을 품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인색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나쁜 질투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나쁜 바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면, 이 비구에 대해서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탐욕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성냄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어리석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분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분노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원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원한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위선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앙심을 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앙심 품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인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인색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질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나쁜 질투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바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나쁜 바램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라고.”
9.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부자이면서 부(富)에 대해 말하고 재물이 있으면서 재물에 대해 말하고, 재산이 있으면서 재산에 대해 말한다 합시다. 이런 그가 재물을 마련할 기회가 오면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을 벌어들인다 합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그에 대해 알 것입니다. ‘이 존자는 부자이면서 부(富)에 대해서 말하고, 재물이 있으면서 재물에 대해 말하고, 재산이 있으면서 재산에 대해 말하는구나.’라고.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재물을 마련할 기회가 올 때 이 존자는 재물이나 곡식이나 은이나 금을 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비구가 ‘나는 이 법을 알고, 이 법을 봅니다. 나는 몸을 닦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통찰지를 닦습니다.’라고 지혜와 수행에 대해 말한다 합시다. 만일 그 비구가 탐욕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성냄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어리석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분노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원한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위선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앙심을 품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인색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나쁜 질투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고, 나쁜 바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면, 이 비구에 대해서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탐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탐욕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성냄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어리석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분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분노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원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원한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위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위선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앙심을 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앙심 품음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인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인색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질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나쁜 질투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
이 비구는 어떻게 꿰뚫어 알 때 나쁜 바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를 꿰뚫어 아는구나. 그래서 이 비구는 나쁜 바램에 속박되지 않아 벗어나는구나.’라고.”
까시나 경(A10:25)
Kasiṇa-sutta
1. “비구들이여,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가 있다. 무엇이 열인가?”
2.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땅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물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불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바람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파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노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붉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하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허공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의식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가 있다.”
註) 1) 둘이 아니라는 것(advaya)은 땅의 까시나 등 [여러 까시나] 가운데서 하나가 다른 상태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물에 들어간 사람에게 사방이 모두 물뿐이요 다른 것이 없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오직 땅의 까시나만 있을 뿐이지 다른 까시나가 섞이지 못한다. 이것은 다른 까시나에도 다 적용된다.
2) '제한이 없음'이란 그 까시나를 확장하는데 제한이 없음을 말한다. 마음으로 그것을 확장할 때 전체적으로 하지 '이것은 처음이고 이것은 중간이다.'라고 한계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음으로 확장한다는 것은 닦은 마음으로 대상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닦은 마음은 까시나가 제한적이건 광대하건 전체적으로 마음에 주의를 기울일 뿐 일부분만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3) 여기서 의식의 까시나라는 것은 까시나를 제거한 허공에 대해 생긴 의식이다. 까시나를 제거한 허공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10.8참조
4) 의식의 까시나 대신에 광명의 까시나(āloka-karaṇa)를 말하기도 한다.
깔리 경(A10:26)
Kāḷī-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마하깟짜나 존자가 아완띠에서 꾸라라가라의 산협(山峽)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꾸라라가라에 사는 깔리 청신녀가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꾸라라가라에 사는 깔리 청신녀는 한 곁에 앉아서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2. “존자시여, 세존께서는『상윳따 니까야』「마라 상응」(S4)의「처녀들의 질문」에서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이익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모습을 한 군대를 이기고
나는 홀로 삼매를 닦아 행복을 깨달았노라.
그러므로 사람들과 더불어 친구를 사귀지 않나니
나는 어떤 사람과도 친구를 맺지 않노라.’
존자시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이 말씀의 뜻을 어떻게 상세하게 알아야 합니까?”
3. “깔리여, 땅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깔리여, 그러나 땅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최고의 경지를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깔리여, 물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깔리여, 그러나 물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최고의 경지를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깔리여, 불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깔리여, 그러나 불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최고의 경지를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깔리여, 바람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깔리여, 그러나 바람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최고의 경지를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깔리여, 파란색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깔리여, 그러나 파란색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최고의 경지를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깔리여, 노란색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깔리여, 그러나 노란색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최고의 경지를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깔리여, 빨간색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깔리여, 그러나 빨간색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최고의 경지를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깔리여, 흰색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깔리여, 그러나 흰색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최고의 경지를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깔리여, 허공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깔리여, 그러나 허공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최고의 경지를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깔리여, 의식의 까시나를 증득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것으로 이익을 성취했습니다.
깔리여, 그러나 의식의 까시나의 증득에 관한 한 최고의 경지를 세존께서는 최상의 지혜로 아셨습니다.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아신 뒤 세존께서는 일어남을 보셨고, 위험을 보셨고, 벗어남을 보셨고,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어남과 위험과 벗어남과 바른 길과 삿된 길에 대한 지와 견을 보셨기 때문에 이익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아셨습니다.
깔리, 그래서 세존께서는『상윳따 니까야』「마라 상응」 (S4)의「처녀들의 질문」에서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이익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모습을 한 군대를 이기고
나는 홀로 삼매를 닦아 행복을 깨달았노라.
그러므로 사람들과 더불어 친구를 사귀지 않나니
나는 어떤 사람과도 친구를 맺지 않노라.’
깔리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이 말씀의 뜻을 이렇게 상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주) '까시나(kasina)"란 선정의 수행에서 마음집중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를 말하며, 넓게는 그러한 도구를 사용하여 행하는 수행법 자체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컨대, 흙에 의한 까시나'의 경우, 인위적으로 만든 흙이든 혹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흙이든, 흙에 대해 마음을 집중하여 눈으로 한참 보고난 후, 그것의 영상을 마음에 새긴다고 한다. 그리하여 거기에 마음작용이 완전히 고정될 때, 여러 잡다한 번뇌와 욕망등이 차단되어 첫번째 선정에 이른다고 한다. 나머지 제시되는 까시나의 경우도 대략적인 방법과 원리 마찬가지이다.
큰 질문 경1(A10:27)
mahāpañh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따삔띠카 승원에 머물고계셨다.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사왓티로 탁발을 갔다. 탁발을 가는 도중에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사왓티로 탁발을 가는 것은 너무 이르다. 우리는 지금 외도 유행승들의 숲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그리고 비구들은 외도 유행승들의 숲으로 갔다. 가서는 외도 유행승들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에게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말했다.
2.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제자들에게 ‘오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일체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라. 일체법을 항상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머물라.’라고 법을 설합니다.
벗들이여, 우리도 제자들에게 ‘오라,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일체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라. 일체법을 항상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머물라.’라고 법을 설합니다.
벗들이여, 그러면 법을 설하는 것과 교훈을 주는 것에 관한 한 사문 고따마와 우리 사이에 차이점은 무엇이고, 특별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3. 비구들은 외도 유행승들의 말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공박하지도 못했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세존의 곁에 가서 이 말의 뜻을 여쭈어서 정확하게 알아보리라.’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비구들은 사왓티에서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4. “세존이시여, 저희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사왓티로 탁발을 갔습니다. 탁발을 가는 도중에 저희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사왓티로 탁발을 가는 것은 너무 이르다. 우리는 지금 외도 유행승들의 숲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그리고 저희들은 외도 유행승들의 숲으로 갔습니다. 가서는 외도 유행승들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습니다. 한 곁에 앉은 저희들에게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제자들에게 ‘오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일체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라. 일체법을 항상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머물라.’라고 법을 설합니다. 벗들이여, 우리도 제자들에게 ‘오라,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일체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라. 일체법을 항상 최상의 지혜로 알면서 머물라.’라고 법을 설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법을 설하는 것과 교훈을 주는 것에 관한 한 사문 고따마와 우리 사이에 차이점은 무엇이고, 특별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라고.
저희들은 외도 유행승들의 말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공박하지도 못했습니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세존의 곁에 가서 이 말의 뜻을 여쭈어서 정확하게 알아보리라.’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습니다.”
5. “비구들이여, 그렇게 말하는 외도 유행승들에게는 이와 같이 말해주어야 한다.
‘벗들이여,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고,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고,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고,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고,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고,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면 외도 유행승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들의 (앎.지혜)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하고 사문∙바라문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설명으로 마음을 흡족하게 할 자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나 혹은 여래나 여래의 제자로부터 그것을 들은 자가 아니고는 구 누구도 보지 못한다.”
6.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한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한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모든 중생들은 음식으로 생존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한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7.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두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두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정신[名]과 물질[色]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두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8.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세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세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세 가지 느낌[受]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세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9.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네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네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네 가지 음식(네 가지 자양분)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네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주) 일체의 중생들은 네 가지 자양분을 먹으면서 살아간다. 여기에서 네 가지 자양분이란 '덩어리진 자양분(kabalimkaro aharo), 감촉에 의한 자양분(phasso aharo), 마음의 생각에 의한 자양분(manosancetana aharo), 의식에 의한 자양분(vinnanam aharo)을 말한다. 이것은 유정들이나 중생들이 현재 머무르거나 다시 태어나는데 필요한 네 가지 자양분이다.
10.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섯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다섯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 오취온]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다섯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주)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란,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느낌)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의식(식별) 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을 말한다.
11.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섯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여섯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入處]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여섯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12.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곱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일곱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머무름)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일곱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주) 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satta vinnanatthitiyo)이란, 유정들의 의식이 머무는 양태를 일곱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곧 중생들이 살아가는 방식 즉 세계가 각각 다름을 의미한다.
①여러 몸과 각기 다른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nanattakaya nanattasannino vinnanatthiti) ②몸은 여럿이되 동일한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nanattakaya ekattasannino vinnanatthit) ③몸은 동일하되 각기 다른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ekattakaya nanattasannino vinnanatthiti) ④동일한 몸과 동일한 지각력을 지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ekattakaya ekattasannino vinnanatthiti) ⑤공간에 걸림이 없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akasanancayatanupaga vinnanatthiti. 공무변처) ⑥의식에 걸림이 없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vannanancayatanupaga vinnanatthiti. 식무변처) ⑦아무것도 없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akincannayatanupaga vinnanatthiti.무소유처)의 일곱 가지를 말한다.
13.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덟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여덟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여덟 가지 세상의 법(세간의 법)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여덟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주) 여덟가지 attha lokadhamma)세간의 법(이란, ①얻음(labha) ②얻지 못함(alabha) ③명예(yasa)④불명예(ayasa) ⑤비난(ninda) ⑥칭찬(pasamsa) ⑦즐거움(sukha) ⑧괴로움(dukkha)이다.
14.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홉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아홉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아홉 가지 중생의 거주처(머무름)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아홉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주) 중생들의 아홉 가지 거주처란 위의 일곱 가지 의식의 거주처에 ⑧지각이 있는것도 없는 것도 아닌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nevasannanasannayatanupaga vinnanatthiti.비상비비상처) ⑨지각이 없는 중생(asannasatta.상수멸)의 두 가지를 더한 것이다.
15.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열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어떤 열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十不善業道]에 대해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열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낸다.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주)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선하지 않은 업의 길. dasa akusalakammapatha) 이란, ①생명을 죽이는것(panatipata) ②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adinnadana) ③성적으로 음란한 행위(삿된 음행. kamesumicchacara) ④거짓말(musavado) ⑤이간하는 말(pisuna vaca) ⑥거친 말(pharusa vaca) ⑦꾸며대는 말(samphappalapa) ⑧간탐(abhijjha) ⑨성냄(byapada) ⑩삿된 견해(micchaditthi)를 말한다.
여기서 첫 번째 세 가지는 몸에 관련한 해로운 업의 행위이며, 그 다음 네 가지는 말에 관련한 해로운 업의 행위이며, 마지막 세 가지는 마음에 관련한 해로운 업의 행위이다.
이러한 열 가지 해로운 업의 반대가 바로 열 가지 선한 업의 길(dasa kusalakammapatha)이다.
큰 질문 경2(A10:2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까장갈라에서 대나무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많은 까장갈라에 사는 청신사들이 까장갈라 비구니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까장갈라 비구니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까장갈라의 청신사들은 까장갈라 비구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2. “까장갈라이시여, 세존께서는 큰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고,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고,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고,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고,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고,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까장갈라이시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해주신 이 말씀의 뜻을 어떻게 상세히 이해해야 합니까?”
3. “청신사들이여, 나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바도 없고 이해한 바도 없고, 또한 마음을 닦는 비구들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바도 없고 이해한 바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이제 그것을 들으십시오. 듣고 마음에 잘 새기십시오. 나는 설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까장갈라의 청신사들은 까장갈라 비구니에게 대답했다.
까장갈라 비구니는 이와 같이 말했다.
4. “세존께서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한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한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요?
모든 중생들은 음식으로 생존합니다.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한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서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 “세존께서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두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두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요?
정신[名]과 물질[色]에 대해서입니다.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두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서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 “세존께서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세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세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요?
세 가지 느낌[受]에 대해서입니다.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세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서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 “세존께서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네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네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요?
네 가지 마음 챙김[四念處]에 대해서입니다.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네 가지 법에 대해서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서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 “세존께서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도반들이여, 비구는 다섯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요?
다섯 가지 기능[五根]에 대해서입니다.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에 대해서 바르게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서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초기불교의 수행법인 37조도품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기능 가운데 특히 다섯 가지를 오근이라고 하여 수행과 관련된 것이라고 언급한다. 즉, 믿음의 기능[信根], 정진의 기능[精進根], 마음 집중의 기능[念根], 삼매의 기능[定根], 통찰지의 기능[慧根]이다. 다섯 가지 기능의 각각에 대해 살펴보면, 신근은 불(佛)·법(法)·승(僧)·계(戒)에 대한 사정신(四淨信)과 연관되어 확신을 통해 일어난다. 정진근은 사정근(四正勤)과 연관되어 분발을 통해 일어나고, 염근은 사념처(四念處)와 연관되어 확립을 통해 일어난다. 정근은 사선(四禪)과 연관되어 산란하지 않음을 통해 일어나고, 혜근은 사성제(四聖諦)와 연관되어 바라봄을 통해 일어난다.
9. “세존께서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여섯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요?
여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에 대해서입니다.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여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에 대해서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서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여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란, ①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 ②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悲心解脫] ③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喜心解脫] ④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捨心解脫] ⑤표상 없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 ⑥나에게는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이] 없어졌으며 ‘이러한 내가 있다.’라고 보지도 않음.
10. “세존께서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일곱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염오하고, 바르게 탐욕을 사라지게하고, 바르게 해탈하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그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일곱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칠각지]에 대해서입니다.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 대해서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서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 “세존께서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여덟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여덟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요?
성스러운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바른 길[八支聖道=팔정도]에 대해서입니다.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여덟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서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2. “세존께서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아홉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요?
아홉 가지 중생의 거처에 대해서입니다.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아홉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서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 “세존께서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열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어떤 열 가지 법에 대해서인가요?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十善業道]에 대해서입니다.
청신사들이여, 비구는 이러한 열 가지 법에 대해 바르게 마음을 닦고, 바르게 그 한계를 보고, 바르게 의미를 관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세존께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4. “청신사들이여, 세존께서는 큰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에 대한 질문과 하나에 대한 개요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있고, 둘에 대한 질문과 둘에 대한 개요와 둘에 대한 설명이 있고, 셋에 대한 질문과 셋에 대한 개요와 셋에 대한 설명이 있고, 넷에 대한 질문과 넷에 대한 개요와 넷에 대한 설명이 있고, 다섯에 대한 질문과 다섯에 대한 개요와 다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섯에 대한 질문과 여섯에 대한 개요와 여섯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일곱에 대한 질문과 일곱에 대한 개요와 일곱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덟에 대한 질문과 여덟에 대한 개요와 여덟에 대한 설명이 있고, 아홉에 대한 질문과 아홉에 대한 개요와 아홉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열에 대한 질문과 열에 대한 개요와 열에 대한 설명이 있다.’라고.
청신사들이여, 나는 세존께서 이처럼 간략하게 설해주신 이 말씀의 뜻을 이렇게 상세하게 이해합니다.
청신사들이여, 그대들이 원한다면 세존께 가십시오. 가서 세존께 이러한 뜻을 아뢰어 세존께서 그대들에게 설명해주시는 대로 호지하십시오.”
“알겠습니다.”라고 까장갈라의 청신사들은 까장갈라 비구니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까장갈라 비구니에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까장갈라의 청신사들은 이제까지 있었던 까장갈라 비구니와의 대화를 모두 세존께 아뢰었다.
15. “장하고 장하구나, 청신사들이여. 청신사들이여, 까장갈라 비구니는 현자이다.
청신사들이여, 까장갈라 비구니는 큰 통찰지를 가졌다. 만일 그대들이 내게 와서 이 뜻을 물었다면 나도 그와 같이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니 까장갈라 비구니가 설명한 그대로 그 뜻을 잘 호지하라.”
꼬살라 경1(A10:29)
Kosala-sutta
1. “비구들이여, 까시와 꼬살라의 영역에 관한 한, 그리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정복에 관한 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최고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도 변화가 있고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최고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나니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 “비구들이여, 달과 태양이 궤도를 따라 움직이면서 사방을 비추고 광명이 빛나는 곳까지를 1,000겹의 세상이라 한다. 그러한 1,000겹의 세상에는 1,000의 달과 1,000의 태양과 산의 왕인 1,000의 수미산과 1,000의 잠부디빠와 1,000의 아빠라고야나와 1,000의 웃따라꾸루와 1,000의 뿝바위데하와 4,000의 큰 바다와 4,000의 대왕과 1,000의 사대왕천과 1,000의 삼십삼천과 1,000의 야마천과 1,000의 도솔천과 1,000자재천과 1,000의 타화자재천과 1,000의 범천의 세상이 있다.
비구들이여, 1,000의 세상에 관한 한 대범천이 최고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대범천에게도 변화가 있고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최고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나니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 “비구들이여, 세상이 수축하는 그런 때가 온다. 세상이 수축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게 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오랜 세월 산다.
비구들이여, 세상이 수축할 때(무너질 때) 광음천의 신들은 최고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광음천의 신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최고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나니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4. “비구들이여,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가 있다. 무엇이 열인가?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땅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물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불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바람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파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노란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빨간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흰색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허공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어떤 자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의식의 까시나를 인식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의 까시나의 장소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 가운데 어떤 자가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둘이 아니며 제한이 없는 의식의 까시나를 인식할 때 그것이 최고니, 참으로 이러한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인식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최고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나니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5.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八勝處]가 있다. 무엇이 여덟인가?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色]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제한된 것이고 곱거나 혹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첫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무량한 것이고 곱거나 혹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두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제한된 것이고 곱거나 혺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세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무량한 것이고 곱거나 혹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네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것은 파랗고 파란색이며 파랗게 보이고, 파란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다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것은 노랗고 노란색이며 노랗게 보이고, 노란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은 본다. 그것은 빨갛고 빨간색이며 빨갛게 보이고 빨간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일곱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것은 희고 흰색이며 희게 보이고, 흰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여덟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 가운데 어떤 자가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색깔들을 보는 바, 그것은 희고 흰색이며 희게 보이고 흰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할 때 그것이 최고니, 참으로 이러한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 인식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최고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나니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6. “비구들이여, 네 가지 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닦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 닦음 가운데 도 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 최고니, 참으로 이러한 닦음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닦음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최고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나니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7. “비구들이여, 네 가지 인식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어떤 자는 제한된 것을 인식한다. 어떤 자는 고귀한 것을 인식한다. 어떤 자는 무량한 것을 인식한다. 어떤 자는 ‘아무 것도 없다.’라고 무소유처를 인식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인식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인식 가운데 어떤 자가 ‘아무 것도 없다.’라고 무소유처를 인식할 때 그것이 최고니, 참으로 이러한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인식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최고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나니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8. “비구들이여, 외도들의 견해 가운데는 ‘만일 과거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 존재는 있지 않을 것이고, 만일 미래에 내가 없다면 내게 장애도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것이 최고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되나니, 존재에 대해 혐오하지 않음도 그에게는 생기지 않을 것이고, 존재의 소멸에 대해 혐오함도 그에게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이러한 견해를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견해를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최고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나니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9.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궁극적인 의미의 청정을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궁극적인 의미의 청정을 천명하는 자들 가운데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에 들어 머무는 자가 최고다. 그들은 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한 뒤 법을 설하나니 이런 교설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이러한 교설을 가진 중생들에게도 변화가 있고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에 대해 염오한다. 그것을 염오하면서 최고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나니 하물며 저열한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10. “비구들이여, 지금 여기에서 최고의 열반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지금 여기에서의 최고의 열반을 천명하는 자들 가운데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 뒤 취착 없는 해탈을 한 자가 최고다. 이런 교설을 가졌고 이렇게 설명하는 나에 대해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근거 없고 헛되고 거짓이고 사실과 다른 것으로 비방한다. ‘사문 고따마는 감각적 욕망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지도 못하고 물질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지도 못하고, 느낌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지도 못한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나 나는 감각적 쾌락을 넘어섰음을 천명하고, 물질을 넘어섰음을 천명하고, 느낌을 넘어섰음을 천명한다. 금생에 더 이상 갈애가 없고 고요하고 침착하여 취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천명한다.”
꼬살라 경2(A10:3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따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전쟁에서 이기고 원하는 것을 얻어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숲으로 가서 그는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숲으로 들어갔다.
2. 그 무렵에 많은 비구들이 노지에서 포행을 하고 있었다. 그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시여, 지금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저는 세존∙아라한∙정등각을 친견하고 싶습니다.”
“대왕이시여, 저기 문이 닫혀있는 저 처소입니다. 그러니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다가가서 서두르지 말고 현관에 들어간 뒤 헛기침을 한 후 빗장을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세존께서 그대에게 문을 열어 드릴 것입니다.”
3.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문이 닫혀있는 처소로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가서 서두르지 않고 현관에 들어간 뒤 헛기침을 한 후 빗장을 두드렸다. 세존께서는 문을 열어 주셨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세존의 발에 입을 맞추고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세존이시여, 저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입니다.”라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드렸다.
“대왕이시여, 그대는 무슨 이익을 보기에 이 몸에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이런 자애로움을 드러내시오.”
4. “세존이시여, 저는 은혜를 알고 감사함을 보기에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바른 길을 닦으십니다.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함과 유익함인 성스러운 방법에 확고하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바른 길을 닦으셔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함과 유익함인 성스러운 방법에 확고하게 하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註) 은혜를 앎이라고 한 것은, 왕이 예전에 몸이 뚱뚱한 적이 있었다. 양동이 분량의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에게 날마다 음식을 조금씩 줄이도록 하기 위해 이런 교훈을 주셨다. ‘사람이 마음 챙기면서 주어진 음식에 대해 적당함을 알 때 그의 병이 줄어들고 목숨을 보존하면서 천천히 늙어가리’ 그는 이 교훈을 지니고 날마다 조금씩 줄여나가 나중엔 많아도 한 그릇 분량의 음식으로 줄여갔고 그의 몸매는 날씬해졌다. 그래서 그때 세존께서 베풀어주셨던 그 고마움에 대하여 은혜를 알고 감사함을 본다고 꼬살라 왕이 말한 것이다.
자애로움은 주석서는 자애가 함께한 몸과 말로 하는 선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5.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계를 지니셨습니다. 세존께서는 계와 성자의 계와 유익한 계를 지니시고 유익한 계를 구족하신 분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계를 지니시어 세존의 계와 성자의 계와 유익한 계를 가지시고 유익한 계를 구족하신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6.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오랜 세월 숲속에 머무시고 숲이나 밀림의 외딴 거처에 거주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오랜 세월 숲속에 머무시고 숲이나 밀림의 외딴 거처에 거주하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7.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그것으로 만족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그것을 만족하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8.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공양 받아 마땅하시고, 선사받아 마땅하시고, 보시 받아 마땅하시고, 합장 받아 마땅하시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공양 받아 마땅하시고, 선사받아 마땅하시고, 보시 받아 마땅하시고, 합장 받아 마땅하시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신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9.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철저한 번뇌의 소멸과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 즉 소욕에 대한 이야기, 지족에 대한 이야기, 한거(閑居)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 불굴의 정진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통찰지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를 원하는 대로 얻으실 수 있고, 힘들이지 않고 얻으실 수 있고, 어려움 없이 얻으실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철저한 번뇌의 소멸과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 즉 소욕에 대한 이야기, 지족에 대한 이야기, 한거(閑居)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 불굴의 정진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통찰지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를 원하는 대로 얻으실 수 있고, 힘들이지 않고 얻으실 수 있고, 어려움 없이 얻으실 수 있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10.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을 원하는 대로 얻으시고, 힘들이지 않고 얻으시고, 어렵지 않게 얻으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을 원하는 대로 얻으시고, 힘들이지 않고 얻으시고, 어렵지 않게 얻으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11.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전생을 기억하십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내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전생을 기억하십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해내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12.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리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리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13. “다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를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무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무시는 이러한 이익을 보기에, 저는 세존께 이렇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자애로움을 드러냅니다.”
14. “세존이시여, 이제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저는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대왕이시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물러갔다.
제3장 대 품이 끝났다. 세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사자 ② 교리 ③ 몸 ④ 쭌다 ⑤ 까시나 ⑥ 깔리 ⑦ ~ ⑧ 큰 질문 ⑨ ~ ⑩ 꼬살라이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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