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스크랩] 94. 泥佛不渡水 神光照天地 - 진흙 불상은 물을…

수선님 2018. 5. 20. 13:10


진흙 불상은 물을 건널 수 없고, 마음의 빛만이 천지를 비춘다 -  벽암록(碧巖錄)

 

 

같은 말에 "나무로 만든 불상은 불에 견디지 못하고 쇠로 만든 불상은 용광로를 견디지 못한다[木佛不渡火 金佛佛渡爐]"가 있다.

 

우상숭배를 경계한 말들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에 불과한 불상에 잘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늘의 빛[神光]만이 천지만물을 비춥니다. '하늘의 빛'이란 신비로운 빛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마음 속 깊이 묻혀 있는 순수한 인간성을 의미합니다. 이 순수한 인간성은 불이나 물이 침범할 수도 없고 도적도 훔쳐가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의 빛'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늘의 빛은 마음의 빛, 곧 심광(心光)과 같은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크게 경계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조각한 상은 존중하면서도 같은 돌로 된 시냇물의 조약돌은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의 편견이나 기호를 싫어하신 것입니다. 돌부처에 경배하려면 산속의 돌도 마찬가지로 경배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루신 깨달음의 내용은, "여태껏 미쳐 모르고 있었지만 초목이나 조약돌 같은 만물 모두가 여래(如來)가 지닌 지헤의 모습이고 자비의 표혐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동파의 시에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에서 어떤 게시를 읽는 ㄷ오시에 거기에 자기 마음을 투입하는 것이 바로 선(禪)의 태도입니다.

 

특별한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은, 만물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모습으로 경배하고, 그 큰 마음을 체득하라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만물도 무심(無心), 경배하는 마음도 무심, 무심과 무심의 만남이 '하늘의 빛'이 되어 자기의 안팎을 비추는 것입니다.

 

황벽(黃檗)선사는 때만 되면 예불을 올려 이마에 혹이 가라앉을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자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나는 부처님에게 구하지 않고, 법에게 구하지 않으며, 승려에게 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불ㆍ법ㆍ승(佛法僧)은 불교의 삼보(三寶)라 하여 지고한 존재입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예불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선엄함으로써, 선사는 삼보에도 집착해서는 안 됨을 경계한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불상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선에 집착하여 교만해진다(禪天魔)'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선을 수행하는 이라면 경건한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진흙으로 만든 불상은 물에 약하다. 나는 단지 이 불상에 예불을 올릴 뿐이다"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松原泰道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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