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나의 모음 Ekādasaka-nipāta
제1장 의지처 품
Nissaya-vagga
무슨 목적 경(A11:1)
Kimatthi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유익한 계들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유익한 계들의 목적은 후회 없음이고, 이익은 후회 없음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후회 없음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후회 없음의 목적은 환희고, 이익은 환희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환희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환희의 목적은 희열(기쁨)이고, 이익은 희열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희열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희열의 목적은 편안함이고, 이익은 편안함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편안함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편안함의 목적은 행복(즐거움)이고, 이익은 행복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행복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행복의 목적은 삼매고, 이익은 삼매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삼매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삼매의 목적은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如實知見]이고, 이익은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목적은 염오(厭惡)고 이익은 염오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염오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염오의 목적은 탐욕을 떠남이고 , 이익은 탐욕의 사라짐이다.”
“세존이시여, 탐욕의 사라짐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탐욕의 사라짐의 목적은 해탈지견이고, 이익은 해탈지견이다.”
2. “아난다여, 이와 같이 유익한 계들의 목적과 이익은 후회 없음이다. 후회 없음의 목적과 이익은
환희다. 환희의 목적과 이익은 희열이다. 희열의 목적과 이익은 편안함이다. 편안함의 목적과 이익은 행복이다. 행복의 목적과 이익은 삼매다. 삼매의 목적과 이익은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이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목적과 이익은 염오(厭惡)다. 염오의 목적과 이익은 탐욕의 사라짐이다.
탐욕의 사라짐의 목적과 이익은 해탈지견이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유익한 계들은 점점 수승한 경지로 나아간다.”
의도 경(A11:2)
Cetan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게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고 계를 구족한 자는 ‘내게 후회가 없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계를 지키고 계를 구족한 자에게 후회가 없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후회가 없는 자는 ‘내게 환희가 생기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후회
없는 자에게 환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환희하는 자는 ‘내게 희열이 생기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희열을 느끼는 자는 ‘내 몸이 편안하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이 편안한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 몸이 편안한 자는 ‘내가 행복을 느끼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몸이
편안한 자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행복한 자는 ‘내 마음이 삼매에 들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행복한
자의 마음이 삼매에 드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삼매에 든 자는 ‘나는 있는 그대로 알고 보게 되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삼매에 든 자가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는 ‘나는 염오하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가 염오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염오하는 자는 ‘내게 탐욕이 사라지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염오하는 자에게 탐욕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탐욕이 사라진 자는 ‘나는 해탈지견을 실현하기를.’하는 의도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탐욕이 사라진 자가 해탈지견을 실현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탐욕의 사라짐의 목적과 이익은 해탈지견이다. 염오의 목적과 이익은
탐욕의 사라짐이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목적과 이익은 염오(厭惡)다. 삼매의 목적과 이익은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이다. 행복의 목적과 이익은 삼매다. 편안함의 목적과 이익은 행복이다.
희열의 목적과 이익은 편안함이다. 환희의 목적과 이익은 희열이다. 후회 없음의 목적과 이익은
환희다. 유익한 계들의 목적과 이익은 후회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 오직 법들이 법들을 생기게 하고, 오직 법들이 법들을 충만하게 한다.”
의지처 경1(A11:3)
Upanis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게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상실해 버린다. 후회 없음이 없을 때 후회 없음이 없는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상실해 버린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가 없는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이 없는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이 없는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이 없는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바른 삼매가 없을 때 바른 삼매가 없는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는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염오가 없을 때 염오가 없는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탐욕의 사라짐이 없을 때 탐욕의 빛바램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2.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가지와 잎이 없는 나무는 새싹이 자라나지 못하고 껍질이 완전하지 못하고 연한 목재[白木質]가 완전하지 못하고 심재(心材)가 완전하지 못한 것과 같다. 그와 같이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후회 없음이 없을 때 후회 없음이 없는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가 없는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상실해
버린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이 없는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이 없는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이 없는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바른 삼매가 없을 때 바른 삼매가 없는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는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염오가 없을 때 염오가 없는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탐욕의 사라짐이 없을 때 탐욕의 사라짐이램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린다.”
3. “비구들이여, 계를 지키고 계를 구족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후회가 없을 때 후회가 없음을 구족한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구족한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구족한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구족한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구족한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바른 삼매가 있을 때 바른 삼매를 구족한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구족한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구조한 것이다. 염오가 있을 때 염오를 구족한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탐욕의 사라짐이 있을 때 탐욕의 사라짐을 구족한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4.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가지와 잎이 있는 나무는 새싹이 자라나고 껍질이 완전하고 연한 목재가 완전하고 심재(心材)가 완전한 것과 같다. 그와 같이 계를 지키고 계를 구족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후회가 없을 때 후회가 없음을 구족한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구족한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구족한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구족한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구족한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바른
삼매가 있을 때 바른 삼매를 구족한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구족한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염오가 있을 때 염오를 구족한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탐욕의 사라짐이 있을 때 탐욕의 사라짐을 구족한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구족한 것이다.”
의지처 경2(A11:4)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도반 사리뿟따 존자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2. “도반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후회 없음이 없을 때 후회 없음이 없는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가 없는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이 없는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상실해 버립니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이 없는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이 없는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바른 삼매가 없을 때 바른 삼매가 없는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는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염오가 없을 때 염오가 없는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탐욕의 사라짐이 없을 때 탐욕의 사라짐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3. “도반들이여, 예를 들어 가지와 잎이 없는 나무는 새싹이 자라나지 못하고 껍질이 완전하지
못하고 연한 목재가 완전하지 못하고 심재(心材)가 완전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후회 없음이 없을 때 후회 없음이
없는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가 없는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이 없는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이 없는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이 없는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바른 삼매가 없을 때 바른 삼매가 없는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는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염오가 없을 때 염오가 없는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탐욕의 사라짐이 없을 때 탐욕의 사라짐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4. “도반들이여, 계를 지키고 계를 구족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후회가 없을 때 후회가 없음을 구족한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구족한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구족한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구족한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구족한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바른 삼매가 있을 때 바른 삼매를 구족한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구족한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구조한 것입니다. 염오가 있을 때 염오를 구족한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탐욕의 사라짐이 있을 때 탐욕의 사라짐을 구족한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5.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가지와 잎이 있는 나무는 새싹이 자라나고 껍질이 완전하고 연한 목재가 완전하고 심재(心材)가 완전한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계를 지키고 계를 구족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후회가 없을 때 후회가 없음을 구족한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구족한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구족한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구족한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구족한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바른 삼매가 있을 때 바른 삼매를 구족한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
[如實知見]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구족한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구조한 것입니다. 염오가 있을 때 염오를 구족한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탐욕의 사라짐이 있을 때 탐욕의 사라짐을 구족한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의지처 경3(A11:5)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난다 존자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거기에서 아난다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도반 아난다 존사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2. “도반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후회 없음이 없을 때 후회 없음이 없는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가 없는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이 없는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상실해 버립니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이 없는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이 없는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바른 삼매가 없을 때 바른 삼매가 없는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는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염오가 없을 때 염오가 없는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탐욕의 사라짐이 없을 때 탐욕의 사라짐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3. “도반들이여, 예를 들어 가지와 잎이 없는 나무는 새싹이 자라나지 못하고 껍질이 완전하지
못하고 연한 목재가 완전하지 못하고 심재(心材)가 완전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후회 없음이 없을 때 후회 없음이
없는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환희가 없을 때 환희가 없는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희열이 없을 때 희열이 없는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편안함이 없을 때 편안함이 없는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행복이 없을 때 행복이 없는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바른 삼매가 없을 때 바른 삼매가 없는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없는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염오가 없을 때 염오가 없는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탐욕의 사라짐이 없을 때 탐욕의 사라짐이 없는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버립니다.”
4. “도반들이여, 계를 지키고 계를 구족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후회가 없을 때 후회가 없음을 구족한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구족한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구족한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구족한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구족한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바른 삼매가 있을 때 바른 삼매를 구족한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구족한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구조한 것입니다. 염오가 있을 때 염오를 구족한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탐욕의 사라짐이 있을 때 탐욕의 사라짐을 구족한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5.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가지와 잎이 있는 나무는 새싹이 자라나고 껍질이 완전하고 연한 목재가 완전하고 심재(心材)가 완전한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계를 지키고 계를 구족한 자에게 후회
없음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후회가 없을 때 후회가 없음을 구족한 자에게 환희는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환희가 있을 때 환희를 구족한 자에게 희열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희열이
있을 때 희열을 구족한 자에게 편안함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편안함이 있을 때 편안함을
구족한 자에게 행복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행복이 있을 때 행복을 구족한 자에게 바른 삼매는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바른 삼매가 있을 때 바른 삼매를 구족한 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고 봄
[如實知見]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구족한 자에게 염오는 조건을 구조한 것입니다. 염오가 있을 때 염오를 구족한 자에게 탐욕의
사라짐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탐욕의 사라짐이 있을 때 탐욕의 사라짐을 구족한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을 구족한 것입니다.”
재난 경(A11:6)
Vyas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게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청정범행을 닦는 이에게 욕설과 비방을 하고 성자를 헐뜯는 비구가 열한 가지 재난
가운데 어떤 재난에도 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피할 수 없다. 무엇이 열하나인가?”
2. “얻지 못한 것을 얻지 못하고, 얻은 것으로부터 퇴보하고, 계∙정∙혜라 불리는 정법이 그에게
깨끗하게 드러나지 않고, 정법들에 대해 오만해지고,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고, 다른
오염된 범계(犯戒)를 저지르고, 닦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혹독한 병에
걸리고, 미치고 마음이 혼미해지고, 미혹한 채 죽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청정범행을 닦는 이에게 욕설과 비방을 하고 성자를 헐뜯는 비구가 열한 가지 재난
가운데 어떤 재난에도 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피할 수 없다.”
인식 경1(A11:7)
Saññ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2. “아난다여,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다.”
3.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4. “아난다여, 여기 비구가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止]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放棄]이요, 갈애의 소진이요, 탐욕의 사라짐이요, 소멸이요, 열반이다.’라는 이러한 인식을 가진다. 아난다여, 이렇게 해서 비구는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다.”
인식 경2(A11: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띠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세존이시여,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여기 비구가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止]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放棄]이요, 갈애의 소진이요, 탐욕의 사라짐이요, 소멸이요, 열반이다.’라는 이러한 인식을 가진다. 아난다여, 이렇게 해서 비구는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다.”
아난다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3. “도반 아난다여,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4.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도반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止]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放棄]이요, 갈애의 소진이요, 탐욕의 사라짐이요, 소멸이요, 열반이다.’라는 이러한 인식을 가집니다. 도반 아난다여, 이렇게 해서 비구는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이 없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없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없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없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없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없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없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지만, 그러나 인식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5. “경이롭습니다, 도반이여. 놀랍습니다, 도반이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도반이여, 방금 저는 세존께 찾아가서 이 뜻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세존께서도 사리뿟따 존자가 설명한 것처럼 이런 단어와 이런 문장으로 그 뜻을 설명하셨습니다.
경이롭습니다, 도반이여. 놀랍습니다, 도반이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 경(A11:9)
Manasikār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와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띠카 승원에 머물고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구가 눈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이치에 맞게 마음을 내지 않고), 형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귀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소리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코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냄새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혀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맛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몸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감촉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땅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물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불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바람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공무변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식무변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소유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비상비비상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 세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저 세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그러나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2. “아난다여, 비구가 눈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형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귀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소리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코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냄새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혀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맛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몸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감촉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땅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물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불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바람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공무변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식무변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소유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비상비비상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 세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저 세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그러나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다.”
3.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눈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형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귀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소리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코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냄새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혀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맛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몸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감촉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땅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물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불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바람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공무변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식무변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소유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비상비비상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 세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저 세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그러나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4.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止]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放棄]이요, 갈애의 소진이요, 탐욕의 사라짐이요, 소멸이요, 열반이다.’라고 이렇게 마음에 주의를 기울인다.
아난다여, 이렇게 해서 비구는 눈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형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귀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소리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코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냄새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혀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맛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몸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감촉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땅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물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불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바람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공무변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식무변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소유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비상비비상처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 세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저 세상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에 고찰한 것을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그러나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이 있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다.”
산다 경(A11:10)
Sand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냐띠까에서 벽돌집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산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산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산다여, 혈통 좋은 말의 생각처럼 생각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의 생각처럼 생각하지 말라. 산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의 생각인가?”
3. “산다여,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는 여물통 근처에 묶여있을 때 오직 ‘꼴, 꼴’이라고만 생각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는 여물통 근처에 묶여있을 때 ‘오늘 말 조련사는 내게 어떤 일을 시킬까? 나는 무엇으로 그에게 보답할까?’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여물통
근처에 묶여 있을 때 오직 ‘꼴, 꼴’이라고만 생각한다.
산다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 같은 사람은 숲으로 가서도 나무 아래로 가서도 빈 집으로 가서도 마음이 감각적 쾌락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쾌락에 압도되어 머물고, 일어난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감각적 쾌락을 안에 품고, 이리저리
생각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간절히 생각한다.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고, 일어난 성냄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성냄을 안에 품고, 이리저리 생각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간절히
생각한다.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히고, 해태와 혼침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해태와 혼침을 안에 품고, 이리저리 생각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간절히 생각한다.
들뜸과 후회에 사로잡히고, 들뜸과 후회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들뜸과 후회를 안에 품고, 이리저리 생각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간절히 생각한다.
의심에 사로잡히고 의심에 압도된 마음으로 머물고, 일어난 의심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의심을 안에 품고, 이리저리 생각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간절히
생각한다.
그는 땅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물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불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바람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공무변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식무변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무소유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비상비비상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이 세상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저 세상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산다여,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와 같은 사람은 이와 같이 주의를 기울인다.”
4. “산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혈통 좋은 멋진 말의 생각인가?
산다여, 혈통 좋은 멋진 말은 여물통 근처에 묶여 있을 때 오직 ‘꼴, 꼴’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혈통 좋은 멋진 말은 여물통 근처에 묶여 있을 때 ‘오늘 말 조련사는 내게 어떤 일을 시킬까? 나는 무엇으로 그에게 보답할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물통 근처에 묶여
있을 때 오직 ‘꼴, 꼴’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산다여, 혈통 좋은 멋진 말은 자기 앞에 떨어지는 회초리를 빚처럼 보고, 족쇄처럼 보고, 손실처럼
보고, 최악의 패처럼 본다.
산다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혈통 좋은 훌륭한 사람은 숲으로 가서도 나무 아래로 가서도 빈 집으로 가서도 감각적 욕쾌락 사로잡히지 않고 감각적 쾌락에 압도되지 않은 마음으로 머물고, 일어난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성냄에 사로잡히지 않고 성냄에 압도되지 않은 마음으로 머물고, 일어난 성냄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해태와 혼침(졸음과 혼침)에 사로잡히지 않고 해태와 혼침에 압도되지 않은 마음으로 머물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들뜸과 후회(들뜸)에 사로잡히지 않고 들뜸과 후회에 압도되지 않은 마음으로 머물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의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의심에 압도되지 않은 마음으로 머물고, 일어난 의심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는 땅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물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불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바람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공무변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식무변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소유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비상비비상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 세상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저 세상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주의를 기울인다.
산다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혈통 좋은 훌륭한 사람을, 신들은 인드라와 범천과 빠자빠띠와 더불어
멀리서도 예배할 것이다.
‘좋은 태생의 인간인 당신께 귀의합니다.
최고의 인간인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대상으로 삼아 주의를 기울이는
그것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5. 이렇게 말씀하시자 산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생각하면서 혈통 좋은 훌륭한 사람은 생각을 합니까? 왜냐하면 그는 땅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물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불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바람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공무변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식무변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소유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비상비비상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 세상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저
세상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대상으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그러나 그는 주의를 기울입니다. 혈통 좋은 훌륭한
사람은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기에, 신들이 인드라와 범천과 빠자빠띠와 더불어 멀리서도 그를
예배합니까? ‘좋은 태생의 인간인 당신께 귀의합니다. 최고의 인간인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대상으로 삼아 주의를 기울이는 그것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6. “산다여, 혈통 좋은 훌륭한 사람에게는 땅에 대해 땅이라는 인식(지각)이 분명하고, 물에 대해
물이라는 인식이 분명하고, 불에 대해 불이라는 인식이 분명하고, 바람에 대해 바람이라는 인식이
분명하고, 공무변처에 대해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분명하고, 식무변처에 대해 식무변처라는 인식이
분명하고, 무소유처에 대해 무소유처라는 인식이 분명하고,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비상비비상처라는 인식이 분명하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세상이라는 인식이 분명하고, 저 세상에 대해 저 세상이라는
인식이 분명하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 대해서도 인식이
분명하다.
산다여, 이와 같이 주의를 기울이는 혈통 좋은 훌륭한 사람은 땅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물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불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바람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공무변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식무변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소유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비상비비상처를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 세상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저 세상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주의를 기울인다.
산다여, 이와 같이 골똘히 생각하는 혈통 좋은 훌륭한 사람을, 신들은 인드라와 범천과 빠자빠띠와
더불어 멀리서도 예배할 것이다.
‘좋은 태생의 인간인 당신께 귀의합니다.
최고의 인간인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대상으로 삼아 주의를 기울이는
그것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공작 보호 구역 경(A11:11)
Moranivāp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공작 보호 구역에 있는 유행승들의 숲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구경의 완성을 이루었고, 네 가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며,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았고, 구경의 목적을 이루었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최상이다.
무엇이 셋인가?
무학의 계의 무더기[戒蘊]와 무학의 삼매의 무더기[定蘊]와 무학의 지혜의 무더기[慧蘊]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구경의 완성을 이루었고, [네 가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며,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았고, 구경의 목적을 이루었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최상이다.”
3. “비구들이여, 또 다른 세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구경의 완성을 이루었고, 네 가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며,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았고, 구경의 목적을 이루었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최상이다. 무엇이 셋인가?
신통변화[神足通], 남의 마음을 알아 드러내는 기적[觀察他心神變], 가르침의 기적[敎誡神變]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구경의 완성을 이루었고, [네 가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며,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았고, 구경의 목적을 이루었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최상이다."
4. “비구들이여, 또 다른 세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구경의 완성을 이루었고, 네 가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며,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았고, 구경의 목적을 이루었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최상이다. 무엇이 셋인가?
바른 견해와 바른 지혜와 바른 해탈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구경의 완성을 이루었고, 네 가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며,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았고, 구경의 목적을 이루었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최상이다.”
5.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구경의 완성을 이루었고, [네 가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며,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았고, 구경의 목적을 이루었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최상이다. 무엇이 둘인가?
영지[明]와 실천[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법을 구족한 비구는 구경의 완성을 이루었고, 네 가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며,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았고, 구경의 목적을 이루었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최상이다.”
6. “비구들이여, 사낭꾸마라 범천이 이런 게송을 읊었다.
‘가문을 신뢰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끄샤뜨리야가 단연 으뜸이고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는
영지(靈知)와 실천을 구족한 자[明行足]가 단연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게송은 사낭꾸마라 범천이 잘 노래한 것이지 잘못 노래한 것이 아니며, 잘 설한
것이지 잘못 설한 것이 아니며, 의미를 구족한 것이지 의미를 구족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도 동의한다. 비구들이여, 나도 역시 이와 같이 말한다.
‘가문을 신뢰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끄샤뜨리야가 단연 으뜸이고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는
영지(靈知)와 실천을 구족한 자[明行足]가 단연 으뜸이다.’”
제1장 의지처 품이 끝났다. 첫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무슨 목적 ② 의도 ③ ~ ⑤ 의지처 ⑥ 재난 ⑦ ~ ⑧ 인식 ⑨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 ⑩ 산다
⑪ 공작 보호 구역이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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