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이치가 둘이 아니다
이와 사는 둘이 아니다.
그 존귀함은 원융에 있다.
理事不二 貴在圓融
이사불이 귀재원융
- 법안 문익 선사
이(理)와 사(事)는 본래 둘이 아니다. 실은 선(禪)과 교(敎)도 둘이 아니다. 그런데 둘이 아닌 이와 사를 나누고 달리 취급한다. 선과 교도 나누어서 달리 취급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개인으로 보면 몸과 마음을 둘로 보고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 생각하고 취급하면 반드시 병이 발생한다. 몸의 병도 생기고 마음의 병도 생긴다. 조화를 이루지 못한 까닭이다. 둘로 보지 않는 것은 그 소중함이 원융과 조화에 있다. 원융하여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거나 걸리지 않고 자유로운 것이 이상적이다.
한 가정으로 보면 아내와 남편과 모든 가족이 하나지만, 각각 따로 생활한다면 원융과 조화가 깨어진다. 어느 한 사람에게 치우쳐서 가정이 돌아간다면 병든 가정이라 할 수 있다. 동등하고 평등하고 원융하고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원만한 가정이요, 병이 없는 가정이다. 이와 사가 하나라는 이치는 원융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자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진흙소가 물위를 걸어간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너럭바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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