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제56주제 - 제2장 전법륜 품(S56:11-S56:20. Dhammacakkapavattana-vagga)

수선님 2018. 6. 10. 11:43

제2장 전법륜 품

Dhammacakkapavattana-vagga


초전법륜 경(S56:11)

Dhammacakkapavatt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무셨다.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출가자는 이와 같은 두 가지 극단을 멀리해야 한다. 둘이란 무엇인가?

감각적 쾌락에 관련하여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닉은 하천하고, 비천하고, 범속하고, 거룩하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하며, 자신에 대한 고행의 탐닉은 고통스럽고, 거룩하지 못하고, 이익이 

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들 두 가지 극단을 멀리하여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았다. 이러한 중도는

것은 눈을 만들고, 지혜(智)를 만들고, 평안을 만들고, 철저한 앎(證智), 완전한 깨달음(正覺),

열반으로 이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눈을 만들고, 지혜(智)를 만들고, 

평안(寂靜.적정)을 만들고, 철저한 앎(證智), 완전한 깨달음(正覺),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인가?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니[八支聖道],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바른 

언어), 바른 행위, 바른 삶(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바른 새김), 바른 삼매(바른 집중)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눈을 만들고, 지혜(智)를 만들고, 평안(寂靜.적정)을 만들고, 철저한 앎(證智), 완전한 깨달음(正覺),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이다.”


4. “다시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가 있다.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슬픔. 비탄. 고통. 근심. 번민도 괴로움이다. 사랑하지 않는 이와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무더기[五取蘊.오취온] 자체가 

괴로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게 하는 갈애로서, 기쁨과 탐냄과 더불어 여기저기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있음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있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가 있다. 

그것은 갈애로부터의 남김없는 탐냄의 떠남,소멸, 포기, 버림, 해탈, 집착 없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 [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

[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

[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5.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실로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로서 완전히 알아야 한다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실로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는 완전히 알았다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

[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

[光]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실로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로서 끊어야 

한다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

[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실로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로서 끊었다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실로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로서 겪어 알아야 한다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

[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실로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로서 겪어 알았다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실로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로서 닦아야 한다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다시 비구들이여, 실로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로서 닦았다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나에게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혜[慧]가 생기고, 밝음[明]이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 .


6. “비구들이여, 나는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세 겹의 반복(三轉)을 이루는 12가지 

모습을 여실하게 알고 보아 청정하게 되지 못하였다면, 비구들이여, 나는 하늘(神)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브라흐마가 사는 세계, 바라문이 사는 인간의 세계, 하늘사람이 사는 세계에 대해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노라고 공언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나는 실로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세 겹의 반복을 이루는 12가지 모습을 여실하게 알고 보아 청정하게 된 후, 비구들이여, 나는 나는 하늘(神)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브라흐마가 사는 세계, 바라문이 사는 인간의 세계, 하늘사람이 사는 세계에 대해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노라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지혜(智)와 봄(見)이 생겼다.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동요됨이 없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다섯 비구는 즐거워하며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찬탄하였다. 


또한 이러한 설법이 설해질 때, 꼰단냐 존자에게 더러움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法眼]이 생겼다. ‘일어남(集)이 있는 모든 법은 그 일체가 소멸하는 법이다.'라고."


7. 이와 같이 세존께서 법륜(법의 바퀴)을 굴리실 때 땅에 거주하는 신(bhumma deva)이 외쳤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神)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땅에 거주하는 신의 소리를 듣고 사대왕천의 신(catumaharajika deva)들이 외쳤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사대왕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삼십삼천의 신(tavatimsa deva)들이 외쳤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삼십삼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야마천의 신(yama deva)들이 외쳤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야마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도솔천의 신(tusita deva)들이 외쳤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도솔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화락천의 신(nimmanarati deva)들이 외쳤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화락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타화자재천의 신(paranimmitavasavatti deva)들이 외쳤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타화자재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범중천의 신(brahmakayika deva)들이 외쳤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서 세존께서 굴리신 이 법의 바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등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이처럼 그 찰나, 그 짧은 시간, 그 순간에 소리는 범천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그 소리는 퍼져나갔다. 

그러자 일만 세계가 흔들리고 진동하고 심하게 요동하였다. 여러 하늘이 지닌 여러 하늘의 위엄을 

넘어 무량하고 웅장한 빛이 세상에 명료하게 드러났다.


8. 그러자 세존께서는 감흥어를 읊으셨다.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궁극적인 앎을 얻었다).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라고. 이렇게 해서 꼰단냐 존자는 안냐꼰단냐로 불리우게 되었다.


여래 경(S56:12)

Tathāga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러한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완전히 알아야 한다'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완전히 알았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러한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끊어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버려졌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겪어 알아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겪어 알았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닦아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닦았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무더기 경(S56:13)

Khand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무더기[五取蘊]라는 것이 그 대답이니, 그것은 물질의 무더기, 느낌의 

무더기, 인식의 무더기, 형성의 무더기, 의식의 무더기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그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지고 소멸함, 떠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해탈,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니[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

[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 챙김

[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8. “비구들이여, 이것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안의 감각장소 경(S56:14)

Ajjhattikāyat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인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入處]라는 것이 그 대답이니, 그것은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코의 감각장소, 혀의 감각장소, 몸의 감각장소, 마노(마음)의 감각장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이러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그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지고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바른 길[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 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6. “비구들이여, 이것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호지 경1(S56:15)

Dhār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설하니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호지하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호지하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괴로움은 세존께서 설하신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의 일어남은 세존께서 설하신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의 소멸은 세존께서 설하신 세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세존께서 설하신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습니다.”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비구여, 그대는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으니 장하구나. 

비구여, 괴로움은 내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괴로움의 일어남은 내가 설한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괴로움의 소멸은 내가 설한 세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내가 설한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비구여, 이와 같이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그대는 잘 호지하라.”


3. “비구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호지 경2(S56:1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호지하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호지하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괴로움은 세존께서 설하신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괴로움의 일어남은 세존께서 설하신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괴로움의 소멸은 세존께서 설하신 세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세존께서 설하신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고따마가 설한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습니다.”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비구여, 그대는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으니 

장하구나. 

비구여, 괴로움은 내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비구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구여, 괴로움의 일어남은 내가 설한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비구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구여, 괴로움의 소멸은 내가 설한 세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비구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구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내가 설한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비구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와 같이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그대는 잘 호지하라.”


3. “비구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무명 경(S56:17)

Avijj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2. “세존이시여, ‘무명, 무명’이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이고 어떻게 해서 무명에 빠지게 됩니까?”

“비구여, 괴로움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대한 무지 – 이것을 일러 무명이라 하고, 이렇게 해서 무명에 빠지게 된다.”


3. “비구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명지 경(S56:18)

 Vijj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2. “세존이시여, ‘밝음, 밝음’이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밝음이고 어떻게 해서 밝음에 도달하게 됩니까?”

“비구여,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지혜 – 이것을 일러 밝음이라 하고, 이렇게 해서 밝음에 도달하게 된다.”


3. “비구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뜻의 함축 경(S56:19)

Saṅkās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무셨다.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나는 시설(施設)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라는 여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어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표현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뜻(의미)이 함축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나는 시설(施設)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라는 여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어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표현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나는 시설(施設)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라는 여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어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표현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뜻(의미)이 함축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나는 시설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라는 여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어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표현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4.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진실함 경(S56:20)

Tat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무셨다.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네 가지 진실함, 거짓이 아님,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진실함, 거짓이 아님,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이 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제2장 전법륜 품이 끝났다. 두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초천법륜 ② 여래 ③ 무더기 ④ 안의 감각장소 ⑤ ~ ⑥ 호지 ⑦ 무명 ⑧ 명지 ⑨ 뜻의 함축 

⑩ 진실함이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37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