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낭떠러지 품
Papāta-vagga
세상에 대한 사색 경(S56:41)
Lokacint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옛날에 어떤 사람이 라자가하를 나가서 ‘나는 세상에 대한 사색을 하리라.’라고 하면서 수마가다 호수로 갔다. 가서는 세상에 대한 사색을 하면서 수마가다 호수의 언덕에 앉아 있었다. 비구들이여, 수마가다 호수의 언덕에서 그 사람은 네 무리의 군대가 연꽃의 줄기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참으로 미쳤나보다. 나는 참으로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비구들이여, 그러자 그 사람은 라자가하로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의 무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시여, 저는 참으로 미쳤나 봅니다. 저는 참으로 제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보시오, 도대체 그대는 어떻게 미쳤고 어떻게 제정신이 아니요? 도대체 그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보았습니까?’
‘존자들이시여, 저는 라자가하를 나가서 ‘나는 세상에 대한 사색을 하리라.’라고 하면서 수마가다 호수로 갔습니다. 가서는 세상에 대한 사색을 하면서 수마가다 호수의 언덕에 앉아 있었습니다. 존자들이시여, 수마가다 호수의 언덕에서 나는 네 무리의 군대가 연꽃의 줄기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존자들이시여, 이처럼 저는 참으로 미쳤고, 이처럼 저는 참으로 제 정신이 아닙니다. 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보시오, 참으로 그대는 미쳤습니다. 참으로 그대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대가 본 것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4.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본 것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본 것은 아니다.
비구들이여, 옛날에 신과 아수라들 간에 전쟁이 발발하여 신들이 이기고 아수라들이 패했다. 패한 아수라들은 두려워서 신들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연꽃 줄기를 통해서 아수라의 도시로 들어갔다.”
5.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세상에 대한 사색을 하지 말아야 한다.
즉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목숨)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이런 것을 사색하는 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지 못하고, 청정범행의 시작이 아니고,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사색할 때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사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사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사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사색해야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이런 것을 사색하는 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고, 청정범행의 시작이고,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사라짐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6.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낭떠러지 경(S56:42)
Papā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서 빠띠바나 봉으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3.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빠띠바나 봉으로 가셨다.
어떤 비구가 빠띠바나 봉에 큰 낭떠러지가 있는 것을 보고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낭떠러지는 참으로 큽니다.
세존이시여, 이 낭떠러지는 많은 두려움을 줍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이 낭떠러지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두려움을 주는 다른 낭떠러지가 있습니까?”
“비구여, 이 낭떠러지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두려움을 주는 낭떠러지가 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낭떠러지가 이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두려움을 줍니까?”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行. 형성]을 기뻐하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한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기 때문에,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는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기 때문에, 태어남의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늙음의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죽음의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의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나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의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고, 늙음의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고, 죽음의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의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대열뇌(大熱惱) 경(S56:43)
Mahāpariḷā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대열뇌라는 지옥이 있다.
거기에는 눈에 보이는 형상은 무엇이든지 원하지 않는 것만 보이고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것만 보이고 좋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보이고 마음에 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무엇이든지 원하지 않는 것만 보이고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것만 보이고 좋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보이고 마음에 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코로 맡아지는 냄새는 무엇이든지 원하지 않는 것만 보이고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것만 보이고 좋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보이고 마음에 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혀로 맛보아지는 맛은 무엇이든지 원하지 않는 것만 보이고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것만 보이고 좋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보이고 마음에 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몸으로 감촉되는 촉감은 무엇이든지 원하지 않는 것만 보이고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것만 보이고 좋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보이고 마음에 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마노[意.마음]로 식별되는 법(마음현상)은 무엇이든지 원하지 않는 것만 식별되고 원하는 것은 식별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것만 식별되고 좋아하는 것은 식별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식별되고 마음에 드는 것은 식별되지 않는다.”
3.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열뇌는 참으로 큽니다.
세존이시여, 이 열뇌는 많은 두려움을 줍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이 열뇌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두려움을 주는 다른 열뇌가 있습니까?”
“비구여, 이 열뇌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두려움을 주는 다른 열뇌가 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다른 열뇌가 이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두려움을 줍니까?”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한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한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곳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한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성스러운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한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기 때문에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는다. 그들은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기 때문에 늙음으로 인도하는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는다. 그들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기 때문에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는다. 그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기 때문에,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는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기 때문에, 그들은 태어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들은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기 때문에, 늙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늙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들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기 때문에,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기 때문에,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4.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는다. 그들은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는다. 그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으로 부터 벗어나고 태어남으로부터 해탈한다. 그들은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기 때문에, 늙음으로부터 벗어나고 늙음으로부터 해탈한다. 그들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기 때문에,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죽음으로부터 해탈한다. 그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지 않기 때문에,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의 열뇌에 굽히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벗어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뾰족지붕 집 경(S56:44)
Kūṭāgār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누가 말하기를 ‘나는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지 않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지 않고, 바르게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누가 말하기를 ‘나는 뾰족지붕 집의 아래층을 만들지 않고 위층을 만들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누가 말하기를 ‘나는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지 않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지 않고 바르게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누가 말하기를 ‘나는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한 뒤에 바르게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누가 말하기를 ‘나는 뾰족지붕 집의 아래층을 만들고 나서 위층을 만들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누가 말하기를 ‘나는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관통한 뒤에 바르게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머리카락 경(S56:45)
Vāl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걸식을 위해서 웨살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난다 존자는 많은 릿차위 청년들이 공회당에서 궁술 수련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멀리서 작은 열쇠구멍을 통해서 화살을 쏘기도 하고 실수하지 않고 먼저 쏜 화살의 화살 깃을 다시 다른 화살로 적중시키기도 하였다.
2. 아난다 존자는 이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이들 릿차위 청년들은 잘 훈련이 되었구나. 참으로 이들 릿차위 청년들은 아주 잘 훈련되었구나. 참으로 멀리서 작은 열쇠구멍을 통해서 화살을 쏘기도 하고 실수하지 않고 먼저 쏜 화살의 화살 깃을 다시 다른 화살로 적중시키기도 하다니!’라고.
3. 아난다 존자는 웨살리에서 걸식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서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걸식을 위하여 웨살리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저는 많은 릿차위 청년들이 공회당에서 궁술 수련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작은 열쇠구멍을 통해서 화살을 쏘기도 하고 실수하지 않고 먼저 쏜 화살의 화살 깃을 다시 다른 화살로 적중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제게 ‘참으로 이들 릿차위 청년들은 잘 훈련되었구나. 참으로 이들 릿차위 청년들은 아주 잘 훈련되었구나. 참으로 멀리서 작은 열쇠구멍을 통해서 화살을 쏘기도 하고 실수하지 않고 먼저 쏜 화살의 화살 깃을 다시 다른 화살로 적중시키기도 하다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아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것이 더 행하기 어렵고 더 성취하기 어렵겠는가? 멀리서 작은 열쇠구멍을 통해서 화살을 쏘기도 하고 실수하지 않고 먼저 쏜 화살의 화살 깃을 다시 다른 화살로 적중시키기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곱 가닥으로 쪼개진 머리카락을 화살촉으로 꿰뚫는 것인가?”
“세존이시여, 일곱 가닥으로 쪼개진 머리카락을 화살촉으로 꿰뚫는 것이 더 행하기 어렵고 더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아난다여, 그렇지만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꿰뚫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꿰뚫고,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꿰뚫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꿰뚫는 것이 더 꿰뚫기 어려운 것을 꿰뚫는 것이다.”
5.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암흑 경(S56:46)
Andhakār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암흑으로 덮여 있고 칠흑 같이 어두우며 우주의 틈새에 놓여 있는 끝없이 깊고 텅 빈 곳이 있어, 그곳에는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을 가진 해와 달도 광선을 비추지 못한다.”
3.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암흑은 참으로 큽니다.
세존이시여, 이 암흑은 많은 두려움을 줍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이 암흑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두려움을 주는 다른 암흑이 있습니까?”
“비구여, 이 암흑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두려움을 주는 다른 암흑이 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다른 암흑이 이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두려움을 줍니까?”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한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한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한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한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기 때문에,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는다. 그들은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기 때문에,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는다. 그들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기 때문에,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는다. 그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기 때문에,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적으로 짓는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기 때문에, 태어남의 암흑에 떨어진다. 그들은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기 때문에, 늙음의 암흑에 떨어진다. 그들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기 때문에, 죽음의 암흑에 떨어진다. 그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해서 짓기 때문에,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의 암흑에 떨어진다.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4.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적으로 짓지 않는다. 그들은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적으로 짓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적으로 짓지 않는다. 그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적으로 짓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적으로 짓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의 암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늙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적으로 짓지 않기 때문에, 늙음의 암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적으로 짓지 않기 때문에, 죽음의 암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인도하는 의도적 행위들을 계속적으로 짓지 않기 때문에,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의 암흑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벗어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구멍을 가진 나무조각 경1(S56:47)
Chiggaḷayug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하나의 구멍만을 가진 나무조각을 큰 바다에 던져 넣는다 하자. 마침 거기에 눈먼 거북이가 있어서 백 년 만에 한 번씩 물위로 올라온다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 면 만에 한 번씩 물위로 올라오는 그 눈먼 거북이가 그 나무 조각에 나있는 하나의 구멍 속으로 목을 넣을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가능하다 해도 그것은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나 가능할지 모릅니다.”
“비구들이여, 백 년 만에 한 번씩 물위로 올라오는 눈먼 거북이가 그 나무조각의 단 하나의 구멍 속으로 목을 넣은 것이 어리석은 자가 한번 파멸처(악도)에 떨어진 뒤에 다시 인간의 몸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곳에는 법다운 행위가 없고 바른 행위가 없으며, 그곳 사람들은 유익함을 행하지 않고 공덕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서로서로 잡아먹는 것과 약육강식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들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3.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구멍을 가진 나무조각 경2(S56:4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이 대지를 하나의 물의 무더기로 만든다 하자. 여기에다 사람이 하나의 구멍만을 가진 나무조각을 던져 넣는다고 하자. 그러면 동쪽에서 부는 바람은 그것을 서쪽으로 몰고 갈 것이고 서쪽에서 부는 바람은 그것을 동쪽으로 몰고 갈 것이며, 북쪽에서 부는 바람은 그것을 남쪽으로 몰고 갈 것이고 남쪽에서 부는 바람은 그것을 북쪽으로 몰고 갈 것이다. 마침 거기에 눈먼 거북이가 있어서 백 년 만에 한 번씩 물위로 올라온다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 년 만에 한 번씩 물위로 올라오는 그 눈먼 거북이가 그 나무조각에 나있는 하나의 구멍 속으로 목을 넣을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백 년 만에 한 번씩 물위로 올라오는 눈먼 거북이가 그 멍에에 나있는 단 하나의 구멍 속으로 목을 넣은 것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이 인간의 몸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래∙아라한∙정등각자가 세상에 출현하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래가 설한 법과 율이 세상을 비추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제 그대들은 이러한 인간의 몸을 받았다. 여래는 세상에 출현하였다. 여래가 설한 법과 율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수미산 경1(S56:49)
Sinerupabbatarāj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산의 왕 수미산 위에 강낭콩만한 자갈 일곱 개를 놓는다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일곱 개의 강낭콩만한 자갈인가, 아니면 산의 왕 수미산인가?
“세존이시여, 산의 왕 수미산이 더 많습니다. 일곱 개의 강낭콩만한 자갈은 아주 적습니다. 일곱 개의 강낭콩만한 자갈은 산의 왕 수미산에 비하면 헤아릴 것도 못되고 비교할 것도 못되며 아예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견해를 구족하고 관통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멸진하고 해소된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있는 괴로움은 아주 적다. 그에게 남아있는 괴로움은 멸진하고 해소된 이전의 괴로움의 무더기에 비하면 헤아릴 것도 못되고 비교할 것도 못되며 아예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이제 최대 일곱 생만이 더 남아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수미산 경2(S56:5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산의 왕 수미산이 철저하게 소진되고 없어져서 강낭콩만한 자갈 일곱 개만이 남아있다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산의 왕 수미산인가, 아니면 남아있는 일곱 개의 강낭콩만한 자갈인가?”
“세존이시여, 철저하게 소진되고 없어진 산의 왕 수미산이 더 많습니다. 남아있는 일곱 개의 강낭콩만한 자갈은 아주 적습니다. 일곱 개의 강낭콩만한 자갈은 산의 왕 수미산에 비하면 헤아릴 것도 못되고 비교할 것도 못되며 아예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견해를 구족하고 관통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멸진하고 해소된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있는 괴로움은 아주 적다. 그에게 남아있는 괴로움은 멸진하고 해소된 이전의 괴로움의 무더기에 비하면 헤아릴 것도 못되고 비교할 것도 못되며 아예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이제 최대 일곱 생만이 더 남아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제5장 낭떠러지 품이 끝났다. 다섯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세상에 대한 사색 ② 낭떠러지 ③ 대열뇌 ④ 뾰족지붕집 ⑤ 머리카락 ⑥ 암흑
⑦ ~ ⑧ 구멍을 가진 멍에 ⑨ ~ ⑩ 수미산이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37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상윳따 니까야(잡)'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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