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1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불법은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고,
'마음 법'(心法)은 <머무름이 없음>(無住)으로써 근본을 삼는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의 요점은 곧
일체가 마음 뿐이요, 마음밖엔 티끌 만한 한 법도 없어서,
특별히 따로 알아야 할 만한 법도 없고,
기억해 지녀야 할 법도 없으며, 설명을 할 법도 없고, 설명을 들어야 할 법도 없으니,
「마땅히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쓸지니라」고 하신 것 뿐입니다.
만법은 연생(緣生)이요, 연생은 무생(無生)이거늘,
상(相)에 헷갈린 범부가 연생법(緣生法) 가운데서 망령되이 생멸상(生滅相)을 봄으로써
꿈과 같고 환과 같은 이 세간상(世間相)을 실유(實有)로 오인하여 집착하게 된 것이니,
결국 꿈속에서 모든 게 있다고 하나, 꿈을 깨고 나면, 곧 성품을 밝히고 보면,
티끌 만한 한 법도 볼 것이 없는 게 바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인 겁니다.
따라서 미혹하건 깨닫건, 끊어지건 이어지건, 깨끗하건 물들건
이 모두가 오직 꿈속의 일일뿐임을 분명히 알아서,
도무지 간여(干與)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비출 수만 있다면, ···
이렇게 내내 무심히 비출 수만 있다면, 이것이 바로 반야(般若)가 드러나는 첫 걸음이니,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내내 이렇게만 할 수 있으면 머지 않아
부동(不動)의 본래 마음이 우뚝 드러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코 함부로 알음알이를 굴리면서 헤아리고 짐작하고 하는 일은 지금 당장 그만둬야 합니다.
* * *
모두들 꿈속에서 모든 것이 있다고 하지만 꿈을 깨고 나면,
곧 성품을 밝히고 보면 티끌 만한 한 법도 볼 것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꿈속에 나타난 모든 것은
분명히 마음이 변해서 나타난 것임에 틀림 없는데,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엔
이것들이 모두 저 바깥에 있는 실체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분별하고 집착하고 갈등하게 되는 겁니다.
이제 모든 현전상(現前相)이 다 인연생기(因緣生起)이므로
무생(無生)이요 무상(無相)이며, 무성(無性)이요 무작(無作)임을 밝히니,
안으로는 <나>도 없고,
밖으로는 상대할 티끌 만한 한 법도 없음이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따라서 지금 <있는 이대로>의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함을 알 것이요,
이것이 바로 모든 유위법(有爲法)이 다 꿈과 같고 환과 같다고 말하는 근거인 겁니다.
따라서 짓는 때에 <짓는 자>도 <짓는 바>도 없나니,
사람도 법도 다 뺏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가운데 다시 무엇에 빙의(憑依)하여
선과 악, 죄와 복, 득과 실을 논하겠어요?
나아가서 있고 없음과, 삶과 죽음 등이 모두 세간에서의 빈 말일 뿐임을 밝히니,
마침내 이 우주(宇宙)가 몽땅 나의 거푸집일 뿐임을 아는 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한 생각으로 능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내고,
한 생각으로 능히 이것을 거둬서 공무(空無)로 돌릴 수 있는 게
모두가 중생심의 본래 갖춰진 성덕(性德)이거늘, 중생이 쓰는 마음이 너무 옹색할 뿐입니다.
* * *
일체 만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어서,
<그렇고> <그렇지 않음>을 결정지어 말할 수 없는 게 제법실상(諸法實相)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현전상(現前相)을 실유(實有)로 오인하여 이를 분별함으로써
생멸상(生滅相) 거래상(去來相) 유무상(有無相) 등을
마치 실제인 양 그 모습을 취하여 집착하는 게
무명의 근본인 겁니다.
그저 <있다>고 하면 있는 줄만 알고,
<없다>고 하면 없는 줄만 알아서,
이것을 취하여 헛되이 지견(知見)을 세움으로써
의근(意根)에 무수한 법진(法塵)이 쌓이는 바람에
본래의 천진한 영성(靈性)을 등지고 돌보지 않은지가 너무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정법을 만나서 이 모든 망정(妄情)을 제해야 하는 게 공부의 요체 이거늘,
다시금 이런 저런 지견을 얻어서 나름대로 기뻐하니, 참으로 어쩔 수가 없군요.
그래서 고인은 이르기를,
「바보들은 한번 보면 기뻐하지만, 지인(至人)은 한번 보면 한번 성을 낸다」고 한 거예요.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보살은 <없다>는 말을 들으면 <있음>만 보내는 게 아니고 <없음> 까지 마저 보냄으로써
<천진한 무의주(無依住)의 영성>을 어둡히지 않을 줄 안다는 사실 말입니다.
* * *
꿈인 줄 알았으면 그것이 이미 여읜 건데, 무슨 사설이 그리도 많아요?
지금 있는 이대로의 일상이 모두 꿈과 같아서 실답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면,
휘둘리건 휘둘리지 않건 또 자재하건 자재하지 못하건 무슨 상관이에요?
요는, 연생(緣生)하는 만법이 자체성이 없어서,
안으로는 <나>도 없고 밖으로는 상대할 티끌 만한 한 법도 없는 게 제법실상(諸法實相)인 겁니다.
인연의 가화합(假和合)으로 있는 이 <나>와,
역시 인연화합으로 있는 밖의 모든 세간상(世間相)이
자체성이 없어서 꿈 같고 환(幻) 같은 것임에도,
미혹한 중생이 이 모든 것을 실유(實有)로 잘못 알고 집착하기 때문에,
이 미집(迷執)을 떼 주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이 꿈과 같고 환과 같음을 밝혀 집착을 여의게끔 하는 것이
마음공부의 요체인 겁니다.
모두들 꿈속에서 모든 게 있다고들 하지만, 깨고 나면, 곧 성품을 보고 나면,
비록 면전에 산하대지가 또렷또렷해도 티끌 만한 한 법도 볼 것이 없는 게 진실인 겁니다.
볼만한 경계가 없으면 마음이 없고,
마음이 없으면 일체의 이치와 도리가 붙을 데가 없어서,
세간상이 지금 있는 이대로 상주(常住)하니,
이것이 바로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열리는 겁니다.
그러기에 고인이 이르기를,
「여몽삼매(如夢三昧) 하나 만으로 구경(究竟)할 수 있다」고 했으니,
헛되이 견문각지(見聞覺知)를 좇으면서 분별을 일삼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와 같이 오래도록 무심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머지 않아서 여여한 본체가 우뚝 드러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 *
혼돈(混沌)이 나뉘기 이전의 회매(晦昧)가 허공을 이루고,
이 허공이 맺히고 엉키면서 이 몸과 마음과 이 세계를 이루었으니,
지금의 이 세간상(世間相)이 바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 근본은 성품도 모습도 작용도 없으면서,
능히 인연에 감응(感應)하여 중생의 마음 속에
항하사(恒河沙) 같은 만상(萬像)을 나투되,
마치 빈 골짜기의 메아리인 양 화현(化顯)한 것이
바로 현전(現前)하는 제법실상(諸法實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체 만유(萬有)는 자체성(自體性)이 없는, 전혀 허환(虛幻)한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 면전에 전개되고 있는 일체의 현전상(現前相)은
― 자·타(自他)와 유정(有情) 무정(無情)을 막론하고 ―
이 모두가 다 자기 마음이 변해서 나타난 것일 뿐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일상에 보고 듣고 하는 모든 것은,
몽땅 제가 스스로 '제 마음'을 보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는, 하나의 영성(靈性)이 스스로 연려(緣慮)의 기능이 있으므로,
이것을 취하여 <나의 마음>으로 삼고는,
이 사고(思考)가 다시 사고의 흐름 가운데서 헛되이 <사고하는 사람>을 지어내서는,
이것을 <나>로 여기게 된 것이니, ···
결국 <나 있음>도 <나 없음>도 다 이 <성품도 모양도 작용도 없어서>,
찾으면 아무데도 없는 영각성(靈覺性)일 뿐이요,
이것이 바로 법성신(法性身)이며,
이것이 바로 일체만유의 의지처(依支處)인 것입니다.
요약컨대, 그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고 머무름이 없는 지혜>를 이끌어서,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참 나>(眞我)의 몸은
본래 온 누리에 두루하여 미치지 않는 데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뿐인 도리>(唯心之理)를 최상승(最上乘) 법문이라 하는 것이며,
모든 경전과 논서의 요지가 한결같이 <마음을 밝히라>는 한 마디 뿐,
다른 도리가 있는 게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 * *
범부가 어찌하여 범부 탈을 벗지 못하는가 하면,
<만법의 성품 없음>을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법은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고유의 성품과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세상사를 꾸려나가는 실체는 없다는 말입니다.
작용의 주체가 없는데 어떻게 작용이 혼자서 이루어지겠어요?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현전상(現前相)은 꿈과 같고 환과 같아서,
티끌 만한 한 법도 마음에 붙여둘 것이 없는 게 제법실상(諸法實相)인 겁니다.
따라서 참된 구도자라면 우선
▷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
▷ '인간'이라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
▷ '중생'이라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
▷ 고유의 성품을 갖고 있으면서
일정한 장소에 일정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
··· 등을 철저히 깨달아 살펴야 합니다.
그러기에 경에 이르기를,
「이 몸과 마음과 이 세계와,
나아가서 저 허공까지도 몽땅 허망해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사무쳐 깨달으면,
이 사람을 일러서 <비로소 발심(發心)한 사람>이라 하고,
이를 <견도(見道)한 사람>이라 한다」고 했던 겁니다.
요약컨대, 눈에 가리움이 있으면 허공 꽃이 비 내리듯 하여,
범부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것이니,
이에 '허공 꽃'이란 바로 산하대지 삼라만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염화미소(拈花微笑)의 뜻이니,
곧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열리면
비록 면전에 산하대지가 또렷또렷해도, 티끌 만한 한 법도 볼 것이 없다고 한 까닭입니다.
당신이 깨닫건 깨닫지 못하건, 바다는 오늘도 종일 물결치기를 쉬지 않습니다.
요약컨대, 불법의 요체는 「실제(實際)란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집착하지 말라」는 것일 뿐이니,
헛되이 망식(妄識)을 굴리면서 이럴까 저럴까 망설인다면 어느 세월에 쉬겠어요?
그러므로 한 순간이나마 조작(造作) 없는 마음에 맡길 수만 있다면
곧 <진정한 해탈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삼매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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